경제 인사이트

반도체 클러스터 새만금 이전, 왜 안 되나

반도체 생태계와 정책 신뢰 망가뜨리는 치명적 자해행위

  • 글 : 이양승 군산대 무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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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안호영(완주·진안·무주) 의원은 용인에 있는 삼성반도체 클러스터를 새만금으로 이전하자고 주장하고 나섰다. 사진=뉴시스
1980년대~90년대 초 영화 <터미네이터 1·2>가 한국 극장가를 휩쓸었을 때, 한국 정치는 AI가 아니라 ‘스크린 쿼터’를 먼저 떠올렸다. 당시 한국 사회는 한국 영화보다 할리우드 영화에 몰리는 한국 관객들을 취재하느라 소동이 벌어졌다. 그 소동 속에 나온 대안(代案)은 당시 유명무실했던 스크린 쿼터제를 실효화해 재미없는 한국 영화를 억지로 보게 하자는 것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오도(誤導)된 ‘균형발전’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균형발전 개념도 넓은 의미에서 쿼터제다.
 
 
  ‘갓 쓰고 스포츠카 타기’
 
  3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또다시 비슷한 논란에 들어와 있다. 이미 첫삽을 뜬 용인 반도체 메가클러스터를 쪼개 새만금으로 보내자는 주장이 공공연히 등장한다. 간단하다. 재미없는 영화를 강제로 보게 하는 것처럼 기업들이 가기 싫어하는 곳에 강제로 가게 하는 것이다. 누가 봐도 지방선거용이다.
 
  미국은 반도체를 전략자산으로 관리한다. 일본은 소재·장비 산업을 국가전략 차원에서 복원했다. 중국은 수익성이 아니라 체제 생존 논리로 AI에 투자하고 있다. 세계는 패권 전쟁을 하는데 한국은 구역 다툼을 하는 격이다.
 
  한국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늘 비슷한 반응을 보여 왔다. 인터넷이 나오면 차단망부터, 플랫폼이 나오면 규제부터, 원전(原電)이 나오면 정치화부터, AI가 나오면 윤리위원회부터 떠올린다. 산업을 어떻게 키울지를 묻기 전에, 어떻게 나누고 어떻게 묶을지부터 고민하는 나라인 것 같다. 이런 접근방식이 계속된다면 한국의 미래는 명확하다. 기술을 선도(先導)하는 나라가 아니라, 따라가기 바빠 문화 지체(遲滯)에 빠지는 나라다. 그래서 ‘갓 쓰고 스포츠카 탄다’고 하는 것이다.
 

  에드워드 글레이저 교수의 “도시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한마디로 집적경제의 모든 게 요약된다. 혁신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접촉, 기업과 기업의 왕래, 문제 해결 과정에서의 비공식적 지식 교류에서 나온다. 반도체처럼 공정 미세화의 한계와 싸우는 산업일수록 이런 지식 스필오버(spillover)의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반도체 클러스터를 위해 꼭 필요한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규모의 경제. 반도체는 대표적인 고정비 집약 산업이다. 여러 기업과 연구소, 장비업체, 인력시장이 한데 모일 때, 중복 투자를 줄이고 학습 효과를 공유하며 실패의 비용을 분산할 수 있다.
 
  둘째, 외부성.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투자는 그 자체로 주변 기업의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 대기업의 설비 투자가 늘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이 모이고, 그들이 축적한 노하우는 다시 대기업의 수율과 공정 안정성을 끌어올린다.
 
  셋째, 전문적 생산요소의 공동시장. 반도체 엔지니어와 공정기술자는 어디서나 즉시 대체 가능한 노동력이 아니다. 이들이 두텁게 쌓인 지역에서만 기업은 신속히 인력을 충원하고, 개인은 더 나은 기회를 찾아 이동할 수 있다. 즉, ‘두꺼운(thick) 노동시장’이 필요하다.
 
 
  ‘정책 非일관성의 나라’
 
경기 용인시의 반도체 클러스터 국가산업단지 부지 전경. 이곳 약 200만 평에 산업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사진=조선DB

  세계의 반도체산업은 우연이 아니라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에 따라 특정 지역에 뿌리내렸다. 미국은 실리콘밸리와 애리조나, 일본은 규슈(九州), 대만은 신주(新竹), 한국은 경기 남부다. 기업의 비용 계산과 인력 이동, 공급망 최적화가 축적된 결과다. 그런데 그걸 정치적 구호 하나로 재배치하자고 한다. 이것은 균형발전이 아니라 균형퇴행이다. 더 심각한 건 그러한 시도가 한국을 ‘정책 비일관성’의 나라로 만든다는 점이다.
 
  정책적 비일관성을 쉽게 말하면, 처음에는 A라고 약속해 투자를 유도해 놓고, 매몰비용이 발생한 뒤 B로 바꾸는 행태다. 합리적인 기업일수록 그런 나라에서는 투자를 주저하게 된다. 다음 정부, 다음 선거, 다음 정치 국면에서 언제든 판이 뒤집힐지 모른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새만금으로 이전하자는 주장 자체가 ‘정책적 비일관성’ 문제를 일으킨다.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이미 집행 중인 국가전략 프로젝트도 정치적 필요에 따라 뒤집힌다’는 잘못된 신호를 발신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한국 산업 정책의 신뢰를 갉아먹는 치명적 자해(自害)행위에 대한 지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새만금이야말로 이 정책적 비일관성의 최대 피해자였다. 새만금 개발사업은 40년 가까이 이어져 왔지만 아직도 ‘완성’이 아니라 ‘착수’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도체공장 하나엔 수십조원이 들어가고, 투자 회수 기간은 20~30년 단위로 간다. 그런데 정치 논리에 따라 국가 프로젝트가 뒤집히고 계획이 번복되는 나라를 어느 글로벌 기업이 신뢰하겠는가.
 
  문제는 단순히 중앙정부의 변심이 아니라, 정책 추진 기회가 열려 있을 때조차 이를 활용하지 못하고 스스로 기회를 흘려보낸 지역 정치권에 있다. 어찌 보면 새만금은 정책 비일관성의 실험장이었고, 동시에 그 희생양이었다. 새만금 개발이 지체된 이유는 예산 부족보다 실은 정책적 비일관성에 따른 신뢰 부족에서 찾을 수 있다. 신뢰가 없는 곳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할 기업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새만금을 또다시 새로운 정책적 비일관성의 무대로 만들겠다는 발상이 바로 ‘반도체 클러스터 이전’이다. 하나 더 지적할 게 있다. 새만금은 행정구역상 군산·김제·부안 세 지역으로 쪼개져 있다. 군산인가 김제인가 부안인가? 이 질문이 나오는 순간 세 지역 정치인들의 이전 유치 경쟁과 갈등이 시작될 것이고, 새만금 내부는 또 하나의 정치 전장(戰場)이 될 수밖에 없다. “새만금으로 가자”는 말이 정치적 수사(修辭)에 불과한 이유다.
 
 
  ‘통 큰 통합’ 필요
 
  진정한 새만금 개발 전략은 따로 있다.
 
  첫째, 선택과 집중이다. 지금 새만금은 2차전지산업 특화라는 비교적 명확한 방향을 갖고 있다. 이미 투자가 진행 중이고, 항만과 넓은 부지라는 입지적 특성도 배터리산업에 더 잘 맞는다.
 
  둘째, 행정 통합이다. 하나의 산업단지가 군산·김제·부안으로 갈라진 구조 자체가 이미 비효율의 씨앗이다. 새만금이 진짜로 경쟁력을 가지려면 하나의 권역, 하나의 행정, 하나의 의사 결정 체계로 움직여야 한다. 새만금의 진정한 집적화를 위해선 행정 통합과 아울러 지역 국립대학 통합까지 ‘통 큰 통합’이 필요하다. 전문화된 인적 자본 공급을 위해서다.
 

  반도체 클러스터는 정치로 짓는 게 아니다. 과학과 공학, 그리고 수십 년간 축적된 생태계가 필요하다. 경기 남부는 반도체 클러스터로, 새만금은 2차전지 클러스터로 특화되는 게 가장 실효적이다.
 
  지금 벌어지는 클러스터 이전 논쟁은 너무 소모적이다. 우여곡절 끝에 클러스터를 새만금으로 이전한다고 결론이 난다면 원래대로 클러스터를 다시 수도권으로 옮기자는 주장이 다시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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