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위기의 한국 경제

흔들리는 통화정책, 치솟는 환율

“환율 상승, 문재인–이재명 정부가 돈을 너무 많이 풀었기 때문”

  •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글자 크기 조정
  • 스크랩
  • 본문 음성 듣기
  • 글자 크기 조정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 “원-달러 환율 1500원 넘으면 단기간에 폭등… 돈 푸는 것 멈춰야”
⊙ “환율 1500원 넘으면 대한민국에 대한 신뢰 문제로 번질 수 있어”
⊙ 외환보유고 4200억 달러? 단기외채 1600억 달러 등 약 3000억 달러는 상시 상환 압박 받을 수 있어”
⊙ “외국인 주식 투자 3000억 달러 중 3분의 1 정도는 위기시 한순간에 빠져나갈 수 있어”
⊙ “기업이 수출로 벌어들이고 국내로 들여오지 않은 달러 1100억 추산”
⊙ 한은이 정부 발행 국채 인수한 다음 날 한은 총재-국무총리 만남… “정말 이례적인 일”

吳正根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동 대학원 경제학 석사, 영국 맨체스터대 경제학 석·박사 / 동남아중앙은행(SEACEN) 선임연구원 조사국장, 한국은행 국제연구팀장·통화연구실장·금융경제연구원 부원장, 고려대 정경대 경제학과 교수,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 한국국제금융학회 회장, 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원, 자유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 간사위원 역임. 現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자유시장연구원 원장, 바른언론시민행동 공동대표 / 저서 《금융위기와 금융통화정책》 《팍스 아메리카나 3.0》 《구조전환기의 한국 통화금융정책》 등
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 원장
“과거의 사례를 보면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서면 1700원까지 치솟는 것은 금방입니다. 그러면 한국 경제에 또다시 위기의 경고등이 켜질 겁니다.”
 
  오정근(吳正根) 자유시장연구원 원장(前 고려대 교수)은 과거의 원-달러 환율 그래프를 보여 줬다. 환율은 평상시라면 등락을 거듭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시장에서 위기라고 느끼면 걷잡을 수 없이 폭주한다. 1997년 1월 말에 900원대 후반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불과 1년도 되지 않은 그해 12월에 1964원을 기록한 바 있다.
 
  경제학 박사인 오정근 원장은 한국은행(이하 한은) 출신으로 한은 통화연구실장과 금융경제연구원 부원장을 지냈고, 고려대 교수와 한국국제금융학회 회장을 지낸 금융통화 전문가다. 지난 1월 7일에 자유시장연구원 사무실이 있는 서울 강남의 수서에서 오 원장을 만나 현재의 환율과 통화 정책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원–달러 종가 차트. 문재인 정부에 이어 이재명 정부 들어 환율이 상승세를 타고 있다. 사진=오정근 원장

 
  “시중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려 있다”
 
원–달러 환율이 올 들어 다시 상승 흐름을 타면서 1450원대까지 다시 올라선 1월 11일 서울 중구 명동 환전소 전광판. 사진= 뉴시스

  ― 원–달러 환율에 적정선이 있습니까?
 
  “현재 한국의 경제 상황을 고려했을 때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으면 심리적 마지노선이 뚫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환율이 지금과 같이 급등세를 계속 유지한다면 과거와는 다른 형태의 외환위기가 올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 환율이 오르는 이유는 뭡니까?
 
  “시중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려 있습니다. GDP 대비 40%를 내내 밑돌던 국가 채무가 문재인 정부 때 40%를 돌파했고, 이재명 정부 들어 50%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시중에 돈이 너무 많으면 원화 가치가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 채무뿐 아니라 예산도 넘쳐납니다. 문재인 정부 때 정부 예산이 최초로 500조원을 넘었고, 현 이재명 정부의 올해 예산은 728조원입니다.
 
  현 정부 들어 기본소득, 지역민생기금, 가계안정자금 등의 명목으로 돈을 많이 풀어서 물가가 오르고 서민들의 삶이 어려워졌습니다. 정부가 돈을 써서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그 기업의 고용이 늘어나서 중산층의 삶이 나아져야 하는데, 정부가 돈은 썼지만 허공으로 사라지고 마는 일이 반복되는 모양새입니다.”
 
  ― 무역은 흑자인데 기업들이 달러를 국내로 가져오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리죠.
 
  “우리 기업이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국내로 가져오지 않아서 해외에 묶여 있는 돈이 1100억 달러로 추산됩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강성 노조의 득세,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 주 52시간제, 반(反)기업 정서를 가진 정부의 등장을 고려할 때 외국에서 벌어들인 돈을 굳이 한국으로 들여올 필요가 있느냐는 복잡한 정서가 섞여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채무와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문재인 정부 들어 증가한 국가채무 비율이 이재명 정부 후반엔 GDP의 60%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오정근 원장

 
  “리볼빙 해 주지 않으면 외환위기”
 
  ―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4200억 달러로 세계 9위이며, 최근 환율이 1500원대에 육박했지만 경제위기를 언급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우리의 외환보유액은 절대 넉넉지 않습니다. 내면을 들여다보면 상황이 녹록지 않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외화를 보유한 대만은 외채(外債)가 전혀 없습니다. 대만을 강소국이라고 부르는 이유죠. 일본은 외채가 있지만 외환보유액이 1조 달러가 넘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수준인 대만은 외국에 갚아야 할 채무가 없이 순수한 자기들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고, 일본은 우리의 두 배가 넘는 외환을 보유하고 있는데 우리가 넉넉하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 우리가 갚아야 할 외채를 고려할 때 4200억 달러는 부족하다고 보는군요.
 
  “외채는 1년 미만의 만기를 가진 단기외채와 1년 이상인 장기외채로 구분합니다. 평상시라면 1년 만기 외채는 리볼빙이 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외환시장이 ‘한국에 외환이 부족하다’고 인식하면 리볼빙을 해 주지 않고 ‘당장 갚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게 1997년 외환위기 상황이었습니다. 홍콩, 싱가포르, 미국, 런던 등의 금융기관들이 갑자기 사이가 나빠져서 리볼빙을 해 주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로서는 부실을 막아야 하기에 언제든지 우리에게 외채 상환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단기외채 1600억 달러, 장기외채 중 1년 안에 만기가 돌아오는 1300억 달러 등 약 3000억 달러는 상시 상환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외국인, 언제든 주식시장 떠날 수 있어”
 
  ― 우리 보유분 4200억 달러 중 3000억 달러는 언제 빠져나가도 이상하지 않네요.
 
  “게다가 우리는 에너지, 곡물 등 1년에 6300억 달러 수준을 수입해야 하는 수입국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통상 ‘한 국가는 수입 물량의 25% 정도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어야 무역 거래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합니다. 우리는 최소 1600억 달러를 늘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거죠. 외국에서 우리에게 언제든지 갚으라고 요구할 수 있는 외채에 우리가 무역을 위해 보유해야 할 최소분을 합치면 4600억 달러입니다. 우리의 외환보유액은 절대 넉넉하지 않으며 약간 부족한 상황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외채가 큰 문제네요.
 
  “대만처럼 외채가 없어서 우리가 보유 중인 4200억 달러가 모두 우리 돈이라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게다가 에너지·곡물에 취약하기 때문에 국가를 운영하는 데 기본적으로 돈이 많이 들어갑니다. 그나마 외국인들이 3000억 달러(국내 시가총액의 33% 정도)를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하고 있는데, 과거 경험을 보면 그 자금의 3분의 1 정도는 위기시 한순간에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인 마지노선인 1500원을 넘어서면 그들은 한국 주식시장을 떠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외국 투자자들의 달러에 기대하는 것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봐야 합니다.
 
  ― 코스피가 4700포인트(1월 14일 기준)를 오르내리는 상황에서 외국인이 갑자기 돈을 빼겠습니까?
 
  “외국인이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것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차 등 특정 회사의 주식을 사들이는 겁니다. 하지만 환율이 1500원을 넘으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신뢰 문제로 번질 수 있고, 언제든지 주식시장에서 돈을 뺄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일본이 미국과 상시 무제한 통화 스와프를 체결한 것은 부러운 일일뿐더러, 우리가 상시 무제한 통화 스와프를 체결하지 않은 것은 몹시 안타까운 일입니다.”
 
 
  “통화 스와프는 미국의 보증”
 
  ― 한때는 미국과 통화 스와프를 맺었는데 더는 그런 조치가 없지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는 유럽중앙은행(EU), 영국, 스위스, 캐나다 및 일본과 상시 무제한 통화 스와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연준은 금융위기와 같은 비상 시국에 기본 6개월 단위로 전(全) 세계 각국 중앙은행과 통화 스와프 계약을 체결하기도 합니다. 통화 스와프는 단순히 우리가 미국에서 언제든지 달러를 빌릴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일종의 미국 보증과 같습니다.”
 
  ― 미국의 보증이라, 의미 있는 얘기네요.
 
  “미국이 통화 스와프를 체결한 국가를 보면 대부분 미국의 절대적인 동맹국들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들 반열에 올라 미국과 상시적인 무제한 통화 스와프를 체결했다면 외환위기를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미국이 보증을 서는 국가라는 얘기고, 언제든 미국으로부터 달러를 빌려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일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앞세웠고, 외교력을 바탕으로 미국과 상시 무제한 통화 스와프를 체결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미국 입장에서 동맹국과 통화 스와프를 체결하는 것은 손해 보는 일이 아닙니다.”
 
  ― 일부에서는 우리가 미국과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체결할 때 통화 스와프를 넣었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일리 있는 얘기입니다. 한국은 미국의 확실한 동맹국이며, 미국이 일방적으로 도와주는 국가가 아니라 미국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국가입니다. 미국의 군사력은 해군에서 나오는데, 한국의 조선 기술은 미국의 해군 기술력을 강화하는 핵심 축입니다. 마스가 프로젝트는 미국의 안보 협상에서 굉장히 중요한 분기점이었고, 우리가 이를 활용했다면 훨씬 많은 것을 얻어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상시 무제한 통화 스와프와 같은 것은 협상한 정부 관료의 안목이 있었다면 얻어 낼 수도 있는 결과였는데, 무척 아쉽습니다.”
 
  ― 통화 스와프의 중요성을 너무 몰랐네요.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이 줄어들면 이제는 달러를 빌려달라고 미국에 읍소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금융에 방파제가 생길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놓쳤습니다. 미국과 통화 스와프 체결에 일본의 다카이치 총리가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를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합니다.”
 
 
  “최근 한은 행보 미심쩍어”
 
  오정근 원장은 “시중에 돈이 지나치게 풀려 있으며, 최근 한은의 행보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현재 재정이 너무 많이 풀린 상황에서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적극재정을 얘기하는 것은 많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경제활동에 쓰이는 자금의 총량을 의미하는 유동성은 협의(狹義)통화(M1), 광의(廣義)통화(M2), 금융기관 유동성(Lf), 광의유동성(L) 등으로 측정된다. 협의통화(M1)는 시중에 유통되는 현금에 예금 취급 기관의 요구불예금을 더한 것이다. 광의통화(M2)는 협의통화(M1) 외에 머니마켓펀드(MMF), 2년 만기 정기 예·적금, 수익증권, 양도성예금증서, 환매조건부채권, 2년 미만 금융채와 금전신탁 등 2년 이내 현금화할 수 있는 단기금융상품이다. 쉽게 말해 M1과 M2는 ‘현금화될 수 있는 돈’이다.
 
  지난해 10월 평균 광의통화량(M2)은 4471조6000억원대로 전월보다 무려 41조1000억원(0.9%) 늘었다. 좁은 의미의 통화량인 M1(1332조8000억원대)도 0.2% 늘었다. 시중에 돈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자 “수도권 집값이 오르고 환율이 상승한 이유는 과도한 통화량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에 한은은 최근 블로그에서 “최근 수도권 주택 가격, 환율 상승에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어서 이를 유동성 증가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무리다. 통화정책만으로 국내 유동성을 완벽히 통제하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
 
 
  한은, 작년 12월 갑자기 통화지표 개편
 
  그런데 한은은 지난해 12월에 통화지표를 개편했다. M2의 구성 항목 중 ETF(상장지수펀드)를 포함한 주식형·채권형 펀드를 M2에서 제외한다고 밝힌 것이다. 이것들을 빼면 지난해 10월 말의 전년동기비 M2 증가량은 종전의 8%대에서 5%대로 줄어든다. 이를 토대로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린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오정근 원장의 지적이다.
 
  “M2에서 ETF를 빼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ETF는 2년 이내에 현금으로 쓸 수 있는 것인데 굳이 그것을 뺄 필요가 있느냐는 겁니다.”
 
  ― 왜 한은이 통화지표를 개편했을까요?
 
  “글쎄요, 저는 한은이 통화를 너무 발행해서 물가가 오르고 환율이 오른다는 비난을 면하기 위해서 그랬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한은이 이번에 통화지표를 개편하면서 밝힌 이유는 2017년에 개정된 IMF 국제통계 기준에 맞췄다는 것입니다. IMF가 제기한 기준이기는 하지만, 시점이 한참 지나 갑자기 그 기준을 맞춘다는 것은 오해를 살 소지도 없지 않습니다.”
 
  ― 다른 얘기지만 문재인 정부 시절에 경기종합지수를 개편해서 추락하던 경기가 반등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부동산 통계를 조작한 적이 있지요.
 
  “오얏나무 밑에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지금 이 시점에 굳이 통화지표를 개편할 이유가 있었는지 싶습니다. 지금 돈이 너무 많이 풀려서 환율이 올랐고, 외환위기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말이죠.”
 
 
  정부, 3년 3개월 만에 국채 발행
 
김민석 국무총리(왼쪽)가 2025년 12월 9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총리 집무실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경제 현안 관련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이재명 정부는 지난해 12월 8일에 국채(國債)를 발행했고, 그중 1조 3000억원어치를 한은이 산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국채를 발행한 것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2년 9월 이후 3년 3개월 만이다.
 
  ― 국채를 발행하면 누가 삽니까?
 
  “통상 한은과 시중 금융기관이 인수합니다.”
 
  ― 미국 국채를 제일 많이 가진 곳은 중국·일본 등이라고 하던데, 우리나라 국채를 해외에서 사 가지 않습니까?
 
  “미국 국채는 기축(基軸)통화인 달러이지만, 우리나라는 기축통화국이 아니라서 해외 기관이 사는 것은 아주 일부분입니다. 정부의 국채를 한은이 샀다는 것은 엄밀히 말해 정부의 재정 부족을 한은이 메워 주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 이창용 한은 총재와 김민석 국무총리가 만난 것도 정말 이례적입니다.”
 
  김민석 국무총리와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해 12월 9일 오전 7시30분에 정부서울청사 총리 집무실에서 만나 경제·금융 현안 관련 간담회를 했다. 총리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한은 총재는 재정경제부(구 기획재정부) 장관,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금융감독원장 등을 제외하고는 정부 고위 관료와 회동하는 것을 통상 꺼려 왔다. 더구나 국무총리와 회담한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한은에 30년 가까이 근무했지만 총재가 국무총리를 만난 기억은 없습니다. 게다가 두 사람이 만난 것은 한은이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인수한 바로 다음 날이었습니다. 어떤 대화가 오갔을지 궁금한 대목입니다.”
 
  ― 그렇게 이례적입니까?
 
  “한은 총재와 재정경제부 장관은 추구하는 방향은 다르지만 서로 협조해야 하는 사이입니다. 미국의 연준 의장과 재무부 장관은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사이죠. 하지만 한은 총재와 국무총리의 만남은 유례가 드뭅니다.”
 
 
  중앙은행이 제 역할 못 한 베네수엘라
 
  ― 한은은 독립 기관이지요.
 
  “예전에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때 하이퍼인플레이션(월간 물가상승률이 50%를 넘는 극단적 인플레이션)이라고 해서 물가가 100만% 이상 치솟은 적이 있습니다. 계란을 사려면 돈을 한 바구니 가져가야 했죠. 그때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중앙은행을 우습게 보고 돈을 마구 찍어서 정부 재정을 파탄시킨 겁니다. 학자들은 ‘재정의 통화화’가 경제에 대단히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고 통화가 정부 재정을 뒷받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독립성이 강화된 연방은행을 만들었습니다. 유럽중앙은행의 전신이죠. 그리고 중앙은행에는 국가가 철저히 독립권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그것을 따라서 한은에 통화 정책 결정의 독립성, 정책 결정 과정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겁니다. 정부와 별도로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한은 독립권입니다.
 
  중앙은행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사례는 베네수엘라에서 충분히 보지 않았습니까.”
 

  ― 좌파 정부가 돈을 풀 때마다 베네수엘라 얘기를 많이 했죠.
 
  “베네수엘라 차베스, 마두로도 돈을 많이 찍어서 2018년에 18만%라는 전대미문의 인플레이션 기록을 세웠습니다. 월급을 받아도 이미 물가가 너무 올라 빵조차 사 먹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 그 결과 국민의 5분의 1이 생존을 위해 다른 국가로 탈출한 사례를 우리는 봤습니다.
 
  그럼에도 일부 경제학자들이 정부의 재정 정책을 수용하기 위해서 중앙은행이 돈을 계속 발행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얼마 전까지 미국에서 논란이 됐던 현대통화이론(Modern Monetary Theory·MMT)인데, 요즘 얘기가 쏙 들어갔습니다. 저런 얘기를 들으면 학자들이 잘못 생각하는 건지, 어디 자리라도 하나 차지할 요량으로 시장을 호도하는 것이 아닌지 싶은 생각이 듭니다.”
 
  ― 한은은 왜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인수해 줍니까?
 
  “금융시장의 안정화를 위해서입니다. 국채를 발행했는데 아무도 인수해 주지 않으면 국채 가격이 내려가고, 그러면 금리가 올라가니까. 국채 금리가 올라가면 시장 금리도 올라가서 대출을 받은 서민들의 고충이 늘어나니까요.”
 
 
  “중앙은행은 경제의 마지막 보루”
 
  ― 국가의 통화 정책은 왜 중요합니까?
 
  “통화가 안 풀리면 경기가 침체하고, 반대로 너무 풀리면 물가가 오르고 환율이 오릅니다. 적절한 금리 수준이 얼마인가를 연구하고 집행하는 것이 중앙은행입니다. 한은에서 그 적정선을 연구합니다. 굉장히 전문적인 영역입니다.”
 
  ― 한은의 존재 이유는 뭡니까?
 
  “한국은행법에 따르면 금융 안정과 물가 안정이 목표입니다. 금융의 안정은 금융기관들의 부실률이 낮아 금융시장이 안정되는 것이며, 물가 안정은 말 그대로입니다. 미국은 그게 연준인데, 역시 목표는 고용 안정과 물가 안정입니다. 한 국가의 중앙은행은 경제의 마지막 보루입니다. 그래서 한은 총재는 법으로 임기가 보장돼 있습니다.
 
  철의 여인이라 불린 대처 전 영국 총리는 독일연방은행이 인플레이션 억제와 경제 안정을 위해 금리를 대폭 인상할 조짐을 보이자, 이로 인해 영국이 받을 타격을 감안해 직접 독일연방은행 총재를 만나기 위해 찾아갔습니다. 연방은행 총재의 위상은 그 정도입니다. 하지만 독일연방은행 총재는 대처 총리와의 만남 이후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1989년에 영국에 경제위기가 시작됐습니다. 제2차 오일쇼크(1973년) 이후 가장 심각한 위기였는데 1980년대 후반의 금융·재정 위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확립하는 것은 총재가 스스로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 한은에도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있지 않습니까.
 
  “일부 우려도 없지 않습니다. 금통위 위원은 당연직인 한은 총재·부총재를 포함해 7명인데, 나머지 5명에 대한 추천권을 재정경제부 장관, 한은 총재, 금융위원회 위원장,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전국은행연합회 회장이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금리 인하나 동결 등 결정 사안에 대해 한은 총재와 부총재, 한은 총재 추천 위원 등 한은 총재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되는 조직입니다.”
 
 
  “물가·환율 계속 오르면 외환위기 다시 올 수 있다”
 
  오정근 원장은 “이제라도 돈 푸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예를 들면 농수산부 발표에 따르면 농가 한 가계당 연간 수입이 5000만원 정도인데 이 중 정부 보조금이 2000만원이라고 합니다. 정부에서 보조금을 지원해 주다 보니 사실 농사를 열심히 짓는 농가가 많지 않습니다. 일본은 정부가 보조금을 많이 지원해 주지 않기 때문에 보리·밀 농사를 꾸준히 하고 하지만 우리나라의 논은 겨울철에는 잠정 휴업 상태입니다. 사료조차 국내에서 생산하지 못해 수입에만 의존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정부가 돈을 풀 때는 성장으로 이어지는 분야에 지출해야 합니다. 경제성장을 위한 지출이 아니라면 재정을 제로베이스, 즉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해야 합니다.”
 
  ― 앞으로 정부가, 또 한은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정부가 무작정 돈을 풀기 위해 국채를 발행해서는 안 되며, 그 국채를 한은이 대부분 사는 일은 신중해야 합니다. 정부의 국채를 무작정 한은이 받아 주면 재정위기 가능성이 올라갑니다. 물가 상승, 환율 상승 상황이 이대로 지속한다면 과거에 겪었던 혹독한 외환위기가 다시 불거지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습니다.”⊙
  • 스크랩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