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위기의 한국 경제

되돌아보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26년 경제의 함정

“‘환율 오르면 외환위기’ 주장은 1997년의 트라우마 탓, 그러나…”

  •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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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번 신뢰 잃은 외환시장은 정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1997년)
⊙ “환율 급등 근본 원인은 재정 살포… 외화 유출 요인 늘어난 것도 한몫”(2026년)
⊙ “증시 상승을 산업으로 연결하지 못하면 국가에 아무런 보탬 못 돼”
⊙ “대통령의 정치철학이 경제정책에 너무 직접 반영되는 것 아닌가”
⊙ “공공 부문 취약성 심각… 앞으로의 위기, 민간 부문에서는 나오지 않을 것”
⊙ “자강력 없는 국가는 샅바 놓친 씨름꾼”

鄭德龜
1948년생. 고려대 상과 졸업, 美 위스콘신대 경영대학원 석사 / 재무부 경제협력국장·국제금융국장, 재정경제원 대외경제국장·기획관리실장·제2차관보·차관, IMF 외환위기 및 뉴욕 외채 협상 수석대표, 산업자원부 장관, 서울대 국제금융연구센터 소장, 중국 베이징대 초빙교수·인민대 재정금융대학원 특임교수·중국사회과학원(CASS) 정책고문, 제17대 국회의원, 국제회계기준재단(IFRS) 이사 역임. 現 니어재단 이사장 / 저서 《외환위기 징비록》 《거대 중국과의 대화》 《한국을 보는 중국의 본심》 《극중지계》 등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원–달러 환율이 치솟았다고 해서 외환위기를 말하는 것은 성급합니다. 1997년과 지금의 상황은 명확히 다릅니다. 하지만 한국 경제 곳곳에 암초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현재 상황을 이렇게 바라봤다. ‘제2의 외환위기’가 언급되는 시점에서 정 이사장을 만난 것은 그가 과거 IMF 외환위기 당시에 재정경제원의 고위직에 있었으며 IMF 협상 수석대표를 맡는 등 당시의 상황을 소상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 이사장은 산업자원부 장관을 끝으로 공직(公職)을 떠나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및 국제금융연구센터 소장, 중국 베이징대 초빙교수, 제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07년 순수 민간 독립 싱크탱크인 니어재단(NEAR·North–East Asia Research Foundation)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아 20년째 학문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그가 새로운 길에 들어선 이유는 나름 특별하다. 그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몸소 겪으면서 많은 회한을 갖게 됐다고 한다. 왜 그때 그 위기를 막을 수 없었을까, 그로 인한 굴욕의 세월, 가족의 해체, 기업의 연쇄 부도, 집단 해고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하나 등 깊은 고뇌의 늪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지난 1월 8일, 니어재단 사무실이 있는 서울 서초구에서 그를 만나 외환위기 당시의 상황, 또 그 이전에 개방의 순서와 속도를 놓고 벌였던 뜨거운 논쟁에 대해 들었다.
 
 
  “1997년 외환위기 원인은 ‘개방 속도의 차이’”
 
2025년 12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2.3%를 기록하며 4개월 연속 2%대 상승률을 보였다. 고환율 등 영향으로 석유류와 수입 농축수산물 등 먹거리 가격이 올랐다. 사진=뉴시스

  ― ‘제2의 외환위기’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선 외환위기 때와 요즘은 세계의 통화(通貨) 체계가 바뀌었다는 것을 지적해야겠습니다. 1990년대 후반은 미국 재무부의 파워, 즉 달러 파워가 전성기였고, 동아시아는 금융 정책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시절입니다. 대다수 동아시아 국가의 통화 정책은 자국(自國)의 정치 상황에 심하게 휘둘리고 있었고, 금융 부문은 낙후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루빈 재무부 장관 등 행정부는 ‘아시아 국가를 달러의 영향력 내에 두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시아 국가들은 그렇잖아도 금융 부문이 취약해 건조주의보가 발효된 상황이었는데, 동아시아 위기의 산불이 한국에까지 번진 겁니다.”
 
  ― 지금의 상황과는 완전히 다르군요.
 
  “당시 동아시아 국가들은 국내 지향적 금융 제도를 대외 개방 체제로 바꾸려고 시도하던 중이었고, 준비가 미처 끝나지 않았는데 금융을 개방하게 되면서 문제가 폭발했습니다.”
 
  정덕구 이사장은 지난 2001년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 금융위기와 불일치 현상(East Asian Financial Crisis and mismatch phenomenon)’이라는 주제로 강의했을 때 외환위기의 원인을 ‘개방 속도의 차이’라고 발표했다.
 
  “통상 경제학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하는 이유를 국가의 펀더멘털이 약하거나, 부동산이나 재정 부문이 큰 폭의 붐 버스트(boom–bust) 사이클에 휩쓸리거나, 또는 위기 상황에서 자기실현적(self–fulfilling) 위기감 속에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 위기가 증폭되는 경우 등으로 설명해 왔습니다. 저는 한국의 외환위기는 대내외 개방 순서나 속도의 불일치(mismatch) 상황에서 촉발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일부에서는 우리가 성급하게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해서 외환위기를 부추겼다고 하는데, 맞기도 틀리기도 한 말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은 시장·경제 개방에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태국을 시작으로 불어닥친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한국으로까지 번진 겁니다.”
 
 
  “기아車 처리 과정에서 국제금융계 신용 잃어”
 
1997년 5월 17일, 알선수재와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된 김영삼 대통령 차남 김현철씨가 구치소로 가는 차에 올라타고 있다. 사진=조선DB

  1997년 1월, 자금난에 시달리던 한보철강이 부도를 냈다. 한보철강 사태는 정치권으로 불씨가 번져 현직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씨가 구속됐다. 당시 한보철강이 부도를 내고, 경제부총리가 바뀔 때까지만 해도 한국 경제가 IMF 구제금융까지 갈 것으로 보는 사람은 없었고, 정 이사장이 몸담고 있던 재정경제원도 ‘나라가 위기니 잘 헤쳐 보자’고 하는 수준이었다.
 
  한보철강 사태가 사그라지기도 전에 기아자동차 사태가 터졌다. 당시 정부와 채권단의 기아그룹 처리 방안은 단순했다. 경영진을 퇴출하고, 채권단이 중심이 되어 회생 가능한 회사는 살리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정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선홍 당시 기아그룹 회장은 채권단의 요구를 이런저런 핑계를 대 회피하며 시간을 끌었고, 세간에 ‘정부가 기아차를 삼성차에 넘기려 한다’는 음모론이 퍼지면서 시간만 흘러갔다. 정부와 채권단은 10월 24일에야 기아차에 대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기아 사태가 장기화하자 외국의 시선은 싸늘해졌다. 무디스, S&P 등 신용평가 기관들이 한국의 신용등급을 낮췄고, 국내 기업들의 단기채무 만기 연장률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정덕구 이사장의 얘기다.
 
  “기아차 사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 금융기관들이 국제금융계에서 신뢰를 잃어버렸습니다. 한보철강 사태 이후 대기업들이 줄줄이 부도를 내는데, 그 기업들에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의 부실화는 불 보듯 뻔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떤 외국 금융기관이 한국 기업이나 금융기관에 돈을 빌려주겠습니까.”
 
  ― 기아차를 원칙대로 처리했다면 어땠을까요?
 
  “한보철강 사태가 정치권의 이슈가 되면서 당시 정부는 사실상 정책 대응 능력을 잃었습니다. 김영삼 정권을 뒷받침한 경제기획원 출신의 시장경제주의자들이 아이러니하게도 기아차의 부도를 막고 환율을 묶으려고 했습니다.”
 
 
  “대선 앞두고 상황 파악 제대로 못 해”
 
  ― 시장주의자들은 뭐든지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사람들 아닙니까.
 
  “홍재형(洪在馨) 당시 재정경제원 장관, 정인용(鄭寅用) 전 재무부 장관의 개방파와 국내파가 계속 부딪쳤습니다. 개방파들은 환율의 밴드를 넓히고 금리를 자유화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석채 등 당시 청와대 수석들이 이를 묵살했습니다. 그 시절의 우리나라 거시경제 책임자들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내정치적 고려 속에 시대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우리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지속적으로 상실해 왔고 막바지 단계에서 기아차를 원칙대로 부도 처리하지 않으면서 신뢰 위기가 시작됐습니다.”
 

  ― 결국 외환위기의 시작은 한보철강·기아차의 부도가 도화선이라는 얘기군요.
 
  “한국 정부가 기아차를 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외국인들은 ‘저 나라는 썩은 동아줄이구나’라고 생각하고 투매(投賣)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외환보유고 관리는 은행에 맡겼고, 은행은 해외 지점을 통해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해외 지점장은 최고 좋은 자리 중 하나였죠. 그런데 그들은 동포들을 통해 자금을 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정부에서 외환이 필요해서 은행에 요청했더니 부실 교포 기업들에게서 회수할 수 있는 달러가 거의 없었습니다. 나중에 IMF의 요구로 당장 사용 가능한 외환보유고(usable reserve)를 계산했더니 100억 달러도 되지 않았습니다.”
 
 
  美, 日에 “금융위기시 IMF 통하도록 하자”
 
  1997년 7월 초, 태국에서 동남아시아 외환위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태국 당국은 7월에 변동환율제 채택을 선언했다. 자국 바트화(貨)의 평가절하를 용인하겠다는 뜻이었다. 태국 정부가 손을 놓자 바트화는 바로 다음 날 17% 이상 평가절하됐다. 결국 IMF는 태국에 11억 달러 구제금융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하고, 태국 정부로부터 긴축재정·금융개혁 등 구조조정을 약속받았다. 인도네시아도 같은 해 8월에 외환위기에 휩싸였다. 우리나라의 강경식 경제부총리 등 당국자들은 해외에서 ‘한국 경제 설명회’를 개최하며 “우리는 튼튼하다”고 애써 말했지만, 국제 금융가에서 한국 경제에 대한 의구심은 커졌다.
 
  가까스로 지탱하던 한국은 10월 말부터 혼란에 빠져들며 붕괴 조짐을 보였다. 정덕구 이사장은 “재경원이 여러 조치를 내놨지만, 한번 신뢰를 잃은 외환시장은 정부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한국은 일본에 달러를 빌리기 위해 도움을 요청했지만,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동남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11월 초에 일본 총리에게 공식 서한을 보내 “금융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나라가 생기더라도, 양국 간 해결 방식을 취하지 말고 IMF를 통해 지원받도록 하자”고 한 터였다. 일본이 우리의 요청을 거절하자, 우리 경제는 더욱 위기 속으로 빠졌다. 1997년 11월 9일, IMF의 스탠리 피셔 부총재는 강경식 부총리에게 동남아시아를 순방 중인 캉드쉬 총재를 만나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이런 가설도 있다. 만일 당시 일본 정부가 1000억 달러 정도의 외환을 동아시아 위기 발생 국가에 제공했다면 동아시아 위기 국면도 크게 약화하고 일본은 아시아 패권(覇權)에 조금 더 가까이 서게 되었을 것이라는. 그러나 일본 대장성은 미 재무부의 압박에 굴복했다. 그리고 동아시아 패권은 중국으로 넘어갔다. 이후 일본 경제는 장기 침체기에 빠져들었다.
 
 
  “외환위기, ‘시그널’ 있었다”
 
  정덕구 이사장은 “외환위기의 시그널은 애당초부터 있었다. 우리는 금융개혁을 하는 타이밍을 완전히 놓쳤다”고 말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7년 1월에 ‘금융개혁 의지’를 천명했다. 재경원과 한국은행 등 소위 ‘금융 공급자’가 주도하는 금융개혁이 아니라 ‘금융 수요자’의 눈으로 개혁 과제를 도출한다는 취지로, 민간인을 중심으로 금융개혁위원회를 구성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이렇게 되자 금융정책의 본산인 재경원이 청와대에서 철저히 배척당했다는 말도 나왔다.
 
  김영삼 정부가 1997년에 금융개혁을 외쳤지만, 사실 훨씬 이전부터 우리에게는 이를 준비할 기회가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1993년에 ‘신(新)경제 5개년계획’을 발표했는데 그중 하나가 금융개혁이었다. 정 이사장은 당시 ‘금융개혁반장’으로서 개혁의 큰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금융실명제의 소용돌이에 빠지며 금리 등 구체적 개혁은 실종됐다고 한다. 정 이사장의 얘기다.
 
  “미국이 1985년에 ‘플라자 합의’를 주도할 때 미국의 전략가들이 세계를 미국의 달러 체제에 포함하려 한다는 것을 우리가 읽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88올림픽 이후에 한국 금융시장을 개방하라는 미국의 압박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미국의 거대한 전략이었던 겁니다.”
 
  ―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금융 개방을 준비할 시간이 우리에게 있었던 거군요.
 
  “정인용 당시 재무부 장관이 1987 년에 저를 재무부 자본시장과장 자리에 앉혔습니다. 나중에 증권정책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저는 그동안 국가가 운영했던 증권거래소를 민영화하고 모든 매매거래를 전산화했습니다. 증권회사를 대형화시키고, 5년 단계적으로 자본시장 개방안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개방파 vs 국내파
 
  ― 재무부에서 외환위기 훨씬 이전에 금융시장 개방을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었네요.
 
  “저는 개방파였는데, 재무부 내에서 국내파로 불리던 사람들은 금융시장을 외국에 개방하는 것을 극단적으로 꺼렸습니다. 나름 국내 경제 사정이 있었습니다만, 때문에 국내 개혁의 진척이 빠르지 않았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OECD 가입(1996년)을 준비하던 1995년에 저는 재무부 대외경제국장으로서 OECD 가입 협상을 위한 수석대표를 맡았습니다. 그때 우리의 목적은 개방을 늦추려는 것이었습니다. 금융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시대적 흐름이기는 하지만,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 볼 목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국내시장 개혁은 하나도 준비가 돼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재무부 내에서 의견 충돌이 컸군요.
 
  “홍재형 재무부 장관 등 개혁파들은 금리(金利) 자유화를 먼저 한 뒤에 자본시장을 개방하려고 했습니다. 금리가 자유롭게 움직이지 않고, 환율이 변동환율이 아닌 상황에서 자본 개방은 있을 수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런데 금리 자유화, 환율 유동화, 자본의 자유화는 한꺼번에 못합니다(‘Impossible Trinity’라고 부른다). 단계적으로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금리 자유화를 먼저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임자들은 금리 자유화를 반대했습니다. 1988년부터라도 자본 개방을 했어야 하는데 결국 시기를 놓쳤습니다. 그 이전에 금리가 시장에 유연하게 반응하고 환율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는 아주 부분적인 자본 개방만 가능했습니다.
 
  그때 자본 개방을 못 한 또 하나의 결정적인 이유는, 국내 자본시장 사이즈가 너무 작았고, 직접금융시장(채권·주식 발행)을 넓히기 위해서 규제 개혁을 해야 했기에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우리나라 상황이 이런데 어떻게 본격적인 자본 개방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미국의 금융 개방 압박은 엄청났습니다. 미 재무부와 국무부의 연합작전이 동아시아에 펼쳐지면서 동아시아 각국이 개방 체제로의 러시를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1997년 大選과 겹치며 총체적 난국”
 
한국은행은 1998년 2월 26일 기업은행이 ‘금 모으기 운동’을 통해 모은 금 290kg을 12개의 금괴로 만들어 처음으로 사들였다. 사진= 조선DB

  ― 지금 원–달러 환율이 치솟으니까 다들 걱정을 하는데요.
 
  “한국은 환율만 좀 오르면 외환위기 난다고 하는데, 일종의 트라우마입니다. 일부에서는 한국이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금 모으기 운동’이 결정적이었다고 하는데, 그 역시 언론이 너무 과대포장을 한 겁니다.
 
  사실상 김영삼 정부의 마지막 1년은 경제 정책이 잘 펼쳐질 수 없었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 대통령이 깊은 레임덕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제가 강의를 나갔는데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의 제프리 프랜켈 교수가 ‘대한민국에 1997년 12월에 대통령 선거가 없었다면 외환위기가 안 일어나지 않았을까요?’라고 묻더군요. 사실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었습니다.”
 
  ― 어떻게 답변했습니까?
 
  “대선이 없었더라면 한국이 11월에 IMF 구제금융 신청을 하지 않았을 수는 있지만, 이미 국제사회의 신뢰가 바닥났고 외환보유고가 거의 고갈 수준이었기 때문에 그 후 언젠가는 위기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답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대통령 선거철이 되면 온통 거기에 정신이 집중되면서 정책의 마비 현상이 일어납니다. 우리나라의 경상수지는 조립 산업 중심의 산업 구조 때문에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고, 외환보유고는 바닥에 접근하고 있었고, 금리·환율이 사실상 묶여 있고, 금융기관에는 부실 자산이 쌓이는 등 총체적 난국이었습니다. 다만 정부가 제때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금융 시스템이 잘 작동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 시기의 문제일 뿐, 결국 외환위기가 불거지기는 했을 거라는 거군요.
 
  “위기 요인은 계속 쌓여 가고 있었습니다. 일례로 재정경제원 탄생 당시 경제기획원과 재무부 차관들이 모여서 새로운 조직 도표를 놓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국제금융국을 없앴습니다. 정부의 한 부서에서 국제금융 문제를 집중력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한 장치를 없앤 겁니다. 저는 두 차관 앞에서 ‘앞으로 크게 후회할 일이 있을 것’이라고 반발했지만 그들은 무반응이었습니다. 위기가 터진 후에 부랴부랴 국제금융차관보와 국제금융국을 잠정 기구로 신설했습니다. 제가 IMF에 외채(外債) 협상을 하러 뉴욕에 갔을 때 그 사람들을 전부 데려갔습니다.”
 
 
  “통화·재정 정상화되면 환율 급등 해소”
 
IMF 구제금융 발표 이튿날인 1997년 12월 2일 오후 서울 명동에서 열린 금융노련의 IMF 구조조정안 반대 집회. 사진=조선DB

  ― 지금의 한국 경제는 그때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죠.
 
  “변동금리·변동환율제이고, 한국의 대외신인도가 높고, 산업구조 개편으로 경상수지가 흑자 구조입니다. 자본 계정에 너무 의지할 필요성이 적다는 얘깁니다. 과거와 달리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도 일부 관료들만 예의주시할 뿐 대기업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습니다. 부대적(附帶的)인 위기 요인이 과거보다 많이 사라졌습니다.”
 
  ― 그런데도 왜 환율이 계속 치솟고 있을까요?
 
  “새 정부 초기에는 대외 균형(환율)보다 대내 균형(금리)에 더 치중합니다. 그러다가 대외 부문에 문제가 생기면 그제야 아우성을 치지요. 이번 환율 급등은 외화 유출 요인이 늘어난 것이 한몫을 했습니다. 해외 증권 투자가 많아졌고, 경상수지에서 돈을 번 것보다 많은 부분을 해외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외환 거래 규모보다 기관투자가, 증권 투자자, 해외 부동산 투자가 늘어나면서 자본 계정에서 달러가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근원적인 문제는 정부가 돈을 너무 많이 살포했다는 것입니다. 환율은 국내 통화가치와 반대 함수입니다. 재정 부문에서 돈을 살포해서 시장에 돈이 넘쳐나고, 한쪽에서는 건설업·석유화학 등의 부실이 늘어나면서 부실 채권이 늘고 있습니다. 은행 수지가 나빠질 위험에 있다 보니 한은이 그걸 막기 위해 돈을 풀었습니다. 한은도 통화를 살포하고, 재정 당국도 통화를 살포하다 보니 물가가 뛰기 시작했습니다. 또 달러를 벌어들인 기업은 환율이 더욱 오를 것으로 기대해서 환전(換錢)하지 않습니다. 외환 포지션을 늘리려 하지요.
 
  현 미국 정부는 달러 강세보다 달러 약세를 선호합니다. 현재 급격한 원화 약세는 금리 등 통화 정책이 정상화되고 안정적인 재정 정책으로 복귀되면 해소될 것입니다.”
 
 
  “‘신뢰의 위기’에 빠지면 걷잡을 수 없어”
 
  정덕구 이사장이 말을 이었다.
 
  “저는 30년 이내에 달러가 기축(基軸)통화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고 봅니다. 달러가 기축통화인 이유는 무제한의 달러 공급 능력과 함께, 이를 대체할 수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미 하원은 재정적자를 막기 위해 달러를 찍어 낼 수 있는 한도를 정했습니다. 만기가 되어 돌아오는 재정증권을 리볼빙하려면 통화를 찍어야 하는데, 이것이 재정적자 요인이기 때문에 추가 한도가 얇습니다.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이른바 ‘스위프트 체제’, 즉 모든 석유의 거래는 달러로만 한다는 협정을 깼습니다. 탈(脫) 달러화(化)의 시그널로 인식되고, 달러가 과거처럼 파워풀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더구나 미국이 전(全) 세계를 상대로 관세를 부과한 덕에 미국 내 외화 유입이 늘어나면서 미국의 물가는 더욱 오를 겁니다.”
 
  ― 강(强)달러는 기본적으로 앞으로도 유지될 것이라고 보시는군요.
 
  “이미 언급한 대로 미국은 지금 달러 약세를 선호합니다. 따라서 한국이 대외 환경 때문에 외환위기로 가지는 않을 겁니다. 국내 외환보유고가 4200억 달러이고, 경상수지가 안정적인 흑자 구조인 상황에서 위기까지 갈 국면이 아닙니다. 현재 외환보유고는 통화 당국이 시장 대응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습니다.
 
  하지만 ‘신뢰의 위기’에 빠지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고환율이 지속되자,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무역회사 CEO들을 소집했습니다. 달러를 풀라는 얘기였는데, 환율이 앞으로 오를 것이라 판단하면 사기업이 정부의 말을 계속 들을까요? 지금 한국은행은 금리 정책의 딜레마, 트릴레마에 빠져 있어 이 상황에서 금리 인하를 선택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물가는 오르고 금리는 내리지 못하면 국제시장은 한국 통화 당국의 신뢰 상실을 이용하려 할 것입니다. 지금 정부는 지나친 확장적 재정 정책을 포기하고 재정건전성을 선언해야 합니다.”
 
  ― 재정건전성을 천명해야 한다는 겁니까?
 
  “지금은 경계선에 있습니다. 투자자들에게 금리는 시장의 수요–공급에 의해 움직이며, 더 이상의 통화 증발(增發)은 없다는 인식을 확실하게 심어 주면 외환위기 얘기는 나오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반대로 한다면 사람들은 ‘한국의 상황이 과거 1990년대 후반과 비슷하다’고 인식하게 되고, 그러면 외국계 헤지펀드들이 투기적 공격을 감행할 수 있습니다.”
 
  ― 헤지펀드로부터의 위협이 있을 수 있군요.
 
  “그런 상황이 되지 않도록 한국 정부가 환율이 추가로 오를 요인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금리를 자유롭게 하고, 신뢰의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빙글빙글 도는 월풀에 들어가면 헤어나올 수 없듯이,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트럼프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달러 강세”
 
  정덕구 이사장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달러 강세를 선호하지 않는 것이 원–달러 환율의 새로운 국면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달러 강세입니다.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이유입니다. 달러 강세가 되면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가 확대되고, 재정 부담으로 돌아옵니다. 트럼프가 관세 정책에서 일부 수정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기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입니다. 심지어 상호관세를 줄이지 않을까 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러나 1985년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에 금리 인하를 강요하고 무역 흑자를 강력히 유도하는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였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 그런데 환율이 요즘 치솟는 것은 한국만의 현상이라고들 합니다.
 
  “시장을 억누르기만 하면 시장의 반란에 직면합니다. 그리고 신뢰의 위기에 빠집니다. 시장의 신뢰를 쌓는 것이 거시정책의 정석입니다. 이재명 정부가 부동산을 억누르니 화폐가 다 금융시장에 쏠렸습니다. 정부가 공공연하게 코스피 5000 시대를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코스피가 오른 것은 몇 개의 주력 사업이 돈을 많이 벌게 될 사이클에 진입했기 때문이며, 대다수의 주가는 크게 변동이 없습니다. 이럴 때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이 증시 호황을 이용해 자본시장에서 대규모 증자를 해서 현재의 주가를 쿨다운하고, 그 자금으로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합니다. 주력 대기업은 증시 호황을 활용해서 자기금융, 직접금융을 확대하는 것이 국가에 도움이 됩니다.”
 
  ― 이재명 정부는 상법 개정이 코스피 지수가 상승하는 데 한몫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일부 기업 투명성 확대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요인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상법 개정은 주가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불안정성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더구나 정부가 주가 전망치를 제시하고 또 그걸 국정 운영의 목표로 삼는 것은 잘못된 얘기입니다. 모든 자원이 증시에만 쏠리는 것은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닙니다. 증시가 오르는 것을 산업으로 연결하지 못하면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되듯이 국가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합니다.”
 
 
  “실물 투자로 연결되지 않는 금융 호황은 거품에 불과”
 
  정덕구 이사장은 “증권정책과장을 2년 7개월 했던 사람으로서 나름의 철학이 있었다. 직접금융시장은 큰 호수이고, 그곳에서 물을 떠서 투자할 수 있는 실물 투자로 연결되지 않으면 거품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 일부에서는 우리가 미국과 통화 스와프를 체결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합니다.
 
  “지금보다는 바이든 행정부 때가 적기(適期)였을 것입니다. 바이든 때는 양국의 분위기가 지금보다 훨씬 좋았고, 우리가 1000억 달러만이라도 통화 스와프를 체결했다면 현재의 분위기를 개선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됐을 겁니다. 그러나 미국은 G7 등 교환성 통화국 이외에는 원칙적으로 통화 스와프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외교가 이를 깨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정덕구 이사장은 “단순히 환율로만 경제위기를 논할 수 없다. 몸에 암세포가 생겼는데 그 증상으로 열이 났다고 해서 해열제만 먹고 치료가 됐다고 볼 수는 없듯이 경제 상황 전반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대통령의 정치철학이 너무 경제 정책에 직접 반영되지 않나 싶습니다. 가령 32년 동안 유지했던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정책 기능을 분리하고, 환경부를 기후에너지환경부로 확대 개편하는 것이 과연 환경 개선과 에너지 공급에 도움이 될까요? 과연 한국 경제를 선순환으로 이끌까요? 나중에 결과가 잘못된다면 그건 고스란히 정부의 책임으로 돌아갈 겁니다.
 
  재정 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이 정권 말기에 국가부채 비율이 60%를 넘어서지 않을까 하는 우려 속에 있습니다. 확장적 재정 정책의 대상자는 정말 죽어 넘어가는 계층, 중소·영세 업자, 새로운 성장산업이야 합니다. 재정 확산이 상당히 많은 위기 요인을 키우고 있습니다. 재정 승수효과가 무시되며 양적 확산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상황을 예상하자면, 경제성장률은 1% 미만으로 떨어지고 물가가 오르면서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갈 우려가 있는데, 재정 확대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면 해외 신용평가 기관이 경고를 보낼 수 있습니다. 이는 국제적인 신용위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제 전문가들이 국정 전반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프로페셔널리즘으로 과잉 정치와 싸워야 합니다.”
 
  ―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입니까?
 
  “거시경제 전반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전략가가 필요합니다. 부동산, 물가, 환율이 치솟는 심각성을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더구나 지금의 공무원은 국가의 문제를 위해서 ‘장렬히 전사하겠다는 마음’이 없는 일반 월급쟁이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굴종하나, 추종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의해서 생존하고 있습니다. 만일 과거와 같은 외환위기가 왔을 때 지금의 공무원들이 그 정도의 충성심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정치 과대화 현상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모든 것은 정치, 다수당이 전횡합니다. 전문가들의 견해는 반영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시장 체제는 도처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과거 외환위기 때 국회의원들이 국난을 타개하기 위해 어떤 애를 썼습니까? 지역구 이익을 위해 공무원들을 질타하던 그들은 위기가 발생하자 마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처럼, 타조처럼 모래에 머리를 박고 가만히 떨고만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선진도상국”
 
  ― 우리의 잠재성장률은 계속 추락하고 있습니다.
 
  “잠재성장률이 5년마다 1%p씩 떨어져 오다 보니 우리의 경제 규모가 전 세계 10위에서 13위로 추락했는데,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믿고 싶지만 앞으로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처럼 0.5%대의 성장률로 추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1인당 GDP도 3만 6000달러대에 오래 정체되어 있습니다. 아직 우리 경제는 두 개의 벽에 부딪쳐 있습니다. 첫째는 1인당 GDP가 미국의 70% 벽을 넘지 못하고, 둘째는 세계경제 속 비중이 2% 벽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 집중력 있게 육성해야 합니다. 어른이 되지 못했는데 늙어 버리는 현상이 엿보입니다. 기업이 투자하지 않고, 정부가 개혁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입니다. 기술 진보의 속도는 광속(光速)인데, 정부의 속도는 느리기 짝이 없습니다.
 
  2000년 이후의 대한민국 경제는 민간 부문이 이끌고 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환골탈태한 기업들이 자생력을 확보했고, 일부의 우려와 달리 재벌 3세 경영이 성공하고 있습니다. 이들 3세는 현실적이고, 국제 네트워크를 십분 살려서 성공적으로 경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공 부문은 완전히 폐허가 되고 있습니다. 국민의 평균 수준도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국정을 장악해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모든 부분에서 권력투쟁이 진행 중입니다. 특히 공공 부문의 취약성은 심각합니다. 앞으로의 위기는 민간 부문에서는 나오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은행을 포함한 공공 부문이 자성(自省)하지 않으면 선진국이 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선진도상국(先進途上國)입니다. 많은 선진도상국 부문이 증후군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 금융권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군요.
 
  “은행은 빚더미에 앉은 가계 부문에 의지해 생존하는 기형적 존재가 됐습니다. 세계적인 금융회사를 키울 수 있는 인물이 없고, 다시 옛날로 돌아가 25년의 세월을 날렸습니다. 은행의 전산망 수준이 세계적이라는 점 빼곤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은행의 업무는 신용을 창출해서 투자를 촉진하는 것인데, 부동산 붐을 타고 가계 부채를 통해 배를 불리고만 있습니다. 은행을 지주회사 체제로 바꾼 것은 세계시장으로 진출하라는 주문이었는데, 우리 은행의 세계시장 진출률이 5%도 되지 않습니다. 뉴욕 외채 협상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대한민국을 살렸는데, 오늘의 현실을 보면 한탄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동맹과 연대에 기초한 自强능력 키울 때”
 
2025년 10월 20일, 니어재단이 추최한 ‘복합전환기, 한국의 자강지계’ 세미나에서 발언하는 정덕구 이사장. 사진=니어재단

  〈국가 생존을 위해 자강, 동맹, 연대의 구성 비율에서 우리 스스로 힘을 기르는 ‘자강’의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는 대내외적 압박이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하다. 누구도 대신 걸어 줄 수 없는 길, 그것이 ‘자강’이다. 누군가가 펼쳐 준 우산 아래 머무는 안일함이 아니라 스스로 비를 막을 수 있는 우의(雨衣)를 갖춰 입겠다는 결기다. 우리가 말하는 자강은 고립주의적 독자 노선이 아니다. 동맹과 연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그에 종속되지 않고, 그 안에서 국가 역량을 극대화하며 전략적 자율성을 확장해 가는 ‘동맹과 연대에 기초한 자강’이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새로운 국가전략의 핵심이다.〉
 
 
니어재단이 최근 발간한 《대한민국 자강지계》.
최근 니어재단은 《대한민국 자강지계(自强之計)》라는 책을 출간했다. 무료로 배포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재단 사무실에는 책을 요청하는 전화가 폭주하고 있다고 한다. 정덕구 이사장의 얘기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은 미국의 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면 국제사회 일부에서는 미국을 악마화하고 있죠. 한국도 미국을 ‘선한 사마리아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미국은 국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베트남, 이라크, 아프간 전쟁에서 보여 줬듯이 미국의 전략은 자주 실패합니다. 결과적으로 세계 어떤 나라도 독자 생존력을 가진 곳은 없습니다. 따라서 자강과 연대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 자급자족을 운운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거죠.
 
  “중국은 물 부족 국가이며, 식량을 자급하지 못합니다. 우리나라 역시 에너지·곡물 수입 비중이 높아 독자 생존력이 약한 국가입니다. 미국은 공산품을 생산하지 못해 독자 생존력이 없습니다. 독자 생존력이 없는 국가가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자강과 연대뿐입니다. 극좌파들의 ‘자주(自主) 노선’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을 하려는 시도에 불과합니다. 마오쩌둥은 ‘혼자 할 수 있다’고 믿었다가 국민을 굶겨 죽였고, 그나마 덩샤오핑에 의해 살아났던 시장경제를 시진핑이 다시 뒤흔드는 사례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 ‘자강’이 독자적 생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군요.
 
  “자강·동맹·연대의 ‘전략 매트릭스’가 함께 수반되어야 합니다. 한 국가의 자강이 높아질수록 동맹과 연대의 질(質)이 높아집니다. 가령 자강 20%, 동맹 70%라면 이건 수직적 동맹의 상태에서 우리가 상대 국가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자강 40%, 동맹 40%만 되더라도 호혜적인, 이중적인 거래관계에 의한 동맹이 가능합니다. 미국이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 거래관계적인 동맹을 하자는 겁니다.”
 

 
  자강·동맹·연대의 전략 매트릭스
 
 
제공=파카(PARKER) 만년필
― 우리의 자강 수준을 높여야 대등한 관계가 가능하겠군요.
 
  “우리는 여전히 미국을 보며 한국전쟁 때 초콜릿, 추잉검을 던져 준 시기의 미국으로 생각하고, 우리가 미국에서 무엇을 받을 수 있을까만 고민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미군이 주한미군 방위비를 올린 것도 그것이 거래관계에 의한 동맹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미국을 믿되,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백방으로 자강을 해도 동맹이 없으면 언제든 북중러의 위협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합니까?
 
  “군사안보, 경제, 과학기술에서 자강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군사 부문에서는 독자 ISR(Intelligence, Surveillance, Reconnaissance·정보 감시 정찰) 자산을 확충하고, 킬웹(북한이 핵·미사일을 발사하기 전에 사이버 작전 등을 이용해 교란할 수 있는 군 작전)을 구축해 시범 운용해야 합니다. 레이저 무기 시제품을 개발하고, 전략미사일과 드론 전력을 체계화해야 합니다. 경제에서는 희토류의 대(對) 중국 의존도를 감축하고, 반도체 소재 자급률을 향상시켜야 합니다. 미국, 독일, 일본이 장악하는 원천기술을 우리가 확보하는 것이 지상과제입니다. 방위산업의 수출 역시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과학기술에서는 국가 R&D 예산을 혁신하고, 첨단 인재를 양성하며, AI 반도체 국가 프로젝트를 시행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활용해 우리는 미국과의 관계를 과학기술동맹, 경제동맹으로 확장해야 합니다.
 
  2023년에 한미일 3국은 역사적인 ‘캠프 데이비드 선언’에 합의했습니다. 자유와 인권, 법치라는 핵심 가치를 공유하며 세계 질서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캠프 데이비드 원칙’ ‘캠프 데이비드 정신’이 아직 살아 있습니다.”
 
 
  미국과의 ‘보완적 생존’ 관계를 위해
 

  ― 미국이 우리에게 한미 관세협상 타결의 조건으로 3500억 달러 투자 패키지를 요구해서 말이 많았는데요.
 
  “미국의 자세가 고압적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과의 보완적 생존 관계를 위해, 앞으로 50년 동안 미국과 보완적 생존관계를 확고히 할 철도를 놓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미국이 우리의 우방국이자 형제국가인데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요구한다고 감정적으로 대응할 일이 아닙니다. 미국이 추구하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동맹입니다. 일방적으로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이해타산을 따져서 자국에 이익이 되면서도 세계 평화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자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자강력이 없는 나라와 국민은 씨름판에서 샅바를 놓친 씨름꾼과 같이 이리저리 끌려다니다가 결국은 주저앉고 만다’는 선현의 촌철살인을 되새겨야 할 때입니다. 힘이 지배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미국도 우리의 생존을 보장하는 보호막(safeguard)은 아니며, 대한민국의 생존을 보호해 줄 나라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루빨리 자강 능력을 키워서 대등한 상황에서 미국과 동맹, 연대를 지속해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시대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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