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남에 대형 쇼핑몰 없는 것은 호남-좌파 동맹의 산물
⊙ 전근대적 농촌 생활의 유산인 계모임 많이 하는 광주 사람들… ‘도시의 익명성’ 없어
⊙ 대한민국이 호남을 국민의 일원으로 통합하는 데 실패한 것이 자유민주주의 체제 위기의 핵심
⊙ 호남-주사파 연합이 1987 체제의 승자이고 대한민국의 사실상의 오너
⊙ 다른 지방도 호남을 흉내 내서 정치권력을 이권화하는 ‘대한민국의 호남화’
朱東植
1958년생. 국민대 국어국문과 졸업 / 제3의길 편집인,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 미래통합당 광주 서구갑 후보자 역임. 現 호남대안포럼 공동대표
⊙ 전근대적 농촌 생활의 유산인 계모임 많이 하는 광주 사람들… ‘도시의 익명성’ 없어
⊙ 대한민국이 호남을 국민의 일원으로 통합하는 데 실패한 것이 자유민주주의 체제 위기의 핵심
⊙ 호남-주사파 연합이 1987 체제의 승자이고 대한민국의 사실상의 오너
⊙ 다른 지방도 호남을 흉내 내서 정치권력을 이권화하는 ‘대한민국의 호남화’
朱東植
1958년생. 국민대 국어국문과 졸업 / 제3의길 편집인,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 미래통합당 광주 서구갑 후보자 역임. 現 호남대안포럼 공동대표

- 광주의 정율성기념관은 호남과 주사파의 동맹관계를 잘 보여 준다. 사진=월간조선
1960년대에 우리나라는 경지정리사업을 본격화했다. 불규칙하고 협소한 농경지를 효율적인 영농이 가능한 형태로 개선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경지를 반듯하게 구획하고 농로(農路), 용수로, 배수로 등을 정비하여 영농 기계화의 기반을 마련하려는 시도였다. 하천을 직선화하여 물길 주변의 유휴지를 농경지로 확보하고, 농지 면적을 늘릴 수 있었다. 이 사업의 핵심 원리가 논두렁 즉 농로의 직선화였다.
이렇게 반듯하게 다듬어진 농촌 풍경을 반기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의 젖가슴을 연상시키는 곡선 위주의 농촌 풍경을 기계적이고 딱딱한 도시의 살풍경한 직선으로 변모시켰다는 불만이 그것이다. 우리 사회에 이런 불만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다. TV의 ‘자연인’ 프로그램에 등장한 남성이 “나는 효율화니 직선화니 하는 게 싫다”고 발언하는 영상을 본 적도 있다.
광주지하철은 ‘공기 수송 열차’
전라선이라는 단어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광주(光州)광역시의 경험을 떠올렸다. 2020년 총선에 보수 정당 후보로 출마하기 위해 40여 년 만에 돌아간 광주는 내 고향이었지만 낯설었다. 출퇴근 시간에도 빈자리가 많아 ‘공기 수송 열차’라는 별명으로 불린다는 지하철 1호선의 풍경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빈자리가 많음에도 묘하게 이용이 쉽지 않던 광주지하철의 수수께끼는 금방 풀렸다. 고속버스 터미널, 광주시청, 전남대와 조선대 그리고 그 대학들의 부속병원 심지어 기아 타이거즈의 홈구장인 챔피언스필드까지, 대규모 교통 수요가 생길 만한 핫플레이스는 마치 빗속을 꿰뚫듯 피해 간 노선 때문이었다. 거꾸로 된 체리피킹이라고나 할까? 평소 갈 일이 많은 장소에 지하철이 가지 않으니 이용하는 발길이 뜸해지고 차량에 빈자리가 많아지는 것은 필연이었다. 반면 5·18의 성지(聖地)인 아시아문화전당(옛 전남도청)이나 금남로 그리고 김대중컨벤션센터는 지하철 노선도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광주지하철 1호선 노선이 이렇게 불합리하게 그려진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있다. 지역구민의 요구를 앞세운 정치인들, 그리고 교통 수요를 뺏길 것을 우려한 택시나 시내버스 사업자들의 압력도 있었다고 한다. 나름 각자의 합리적인 요구를 반영한 결과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체적인 결과도 합리적이었을까? 전국 최저치를 뚫고 내려가는 호남 지자체들의 재정자립도, 천정으로 치솟는 청년들의 호남 탈출 러시가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 준다. 부분으로 볼 때는 진실이지만 그 부분의 결합인 전체로 볼 때 거짓이 드러나는 합성의 오류라고나 할까.
지나치게 이분법적인 사고일 수 있지만 직선, 기계, 도시, 효율 등은 근대화의 상징처럼 쓰이는 경우가 많다. 반면 곡선, 수(手)작업, 농촌, 감성 등은 일반적으로 전(前)근대적 가치를 대변한다. 호남은 이런 전근대적 가치를 정당화하는 근거지 역할을 해오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직선화 반대는 호남의 전근대적 행태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근대는 하나의 시스템이다. 근대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서로 필수불가결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얘기이다. 근대화의 출발인 산업혁명은 과학과 합리주의의 소산이며 동시에 사유재산권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사유재산권은 기업과 시장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며 엄정한 법치(法治)의 보호 아래에서만 실현 가능하다.
법치는 개인의 권리와 불가분의 관계이다. 개인은 자유의 기본 단위이며 계약의 주체이다. 이렇게 근대가 하나의 시스템으로서 다양한 요소의 결합인 것처럼, 전근대도 다양한 측면을 갖고 있다. 호남은 이런 전근대성이 총체적으로 결합한, 일종의 전형성(典型性)을 드러내곤 한다. 이 글은 내가 다시 찾은 고향 광주·전라도에서 체험한 총체적 전근대성에 대한 증언이다.
‘코스트코 하나 없는 도시’
이재명 대통령은 2017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신세계 복합쇼핑몰의 광주 입점에 반대하는 상인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사진=뉴시스광주에서 국민의힘 당협위원장 활동을 하면서 직면한 고민의 하나는 우파의 가치를 대중적으로 알릴 수 있는 이슈의 발굴이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중 광주시청 홈페이지의 민원 게시판을 찾게 됐다. 별생각 없이 민원을 읽어 가던 나는 하나의 단어가 되풀이해 등장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코스트코였다. 광주에 코스트코를 유치해 달라는 청원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청원 자체도 많았지만 반응도 적극적이었다. ‘좋아요’ 반응이 ‘싫어요’를 압도했다. 청원에 달린 댓글들은 더 적나라했다. ‘코스트코 하나 없는 도시. 광역시 이름이 부끄럽다. 광주군으로 바꾸자’ 등 분노에 찬 반응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시민들의 코스트코 유치 요구가 이렇게 뜨겁다면 시청도 적극적인 반응을 보여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시청의 답변은 모호하기 짝이 없었다. 시민들의 요구를 좀 더 검토하겠다는 식이었다.
코스트코 유치 청원에 반대하는 댓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영세 상인 보호’니 ‘골목상권’이니 하는 단어로 점철된 댓글들이었다. 그 댓글들을 살펴보다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코스트코 유치 청원 글은 내용도 풍부하고 필자도 여럿인데, 반대 댓글은 같은 사람이 비슷한 내용을 거의 ‘복붙(복사해 붙이기)’하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코스트코 입점을 반대하는 좌파 시민단체의 회원일 것이라는 심증이 갔다. 광주에서는 시민들의 광범위한 요구도 의식화되고 조직화된 좌파들에 의해 가로막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문제를 이슈화해서 시민들의 좌파에 대한 분노를 끌어내고 기업과 시장의 가치에 대한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문제를 좀 더 조사해 본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코스트코는 벌크 판매 중심이다 보니 소규모 자영업자들도 자주 이용한다. 그런데 광주에 코스트코 점포가 없다 보니 시민들이 승합차를 단체로 빌려 대전까지 원정 쇼핑을 간다는 얘기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코스트코만이 아니라 이케아, 스타필드, 이마트 트레이더스 등 대형 쇼핑몰 브랜드가 단 하나도 광주에 입점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전남과 전북에도 이들 브랜드의 점포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가두리 양식장’
하지만 진짜 충격적인 사실은 따로 있었다. 광주 시민들이 대부분 이 문제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광주 시민 여론조사를 한 결과 코스트코 찬성 의견이 훨씬 많았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공감하는 사안이 이렇게까지 공론화되지 않을 수 있을까? ‘광주에 대학은 많아도 학생은 없고, 신문은 많아도 독자는 없고, 시민단체는 많아도 시민은 없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광주는 공론의 장(場)이 철저하게 무너진 도시였던 것이다. 2022년 대선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이 문제를 공약으로 내걸었을 때 던진 충격파가 이 사실을 증명한다. 호남의 실상은 대한민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철저하게 고립되어 사육되는 가두리 양식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양식장의 주인은 좌파 활동가들과 그 제도권 에이전트인 더불어민주당이었다.
전라도 사람들은 좌파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가로막는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왜 그것을 용인하고 심지어 지지할까? 그것은 전라도와 좌파가 일종의 동맹관계이기 때문이다. 호남이 이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좌파의 핵심 도그마인 반(反)기업·반시장의 가치를 내재화(內在化)할 수밖에 없다. 코스트코는 기업과 시장 특히 미국 자본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호남에게 거부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코스트코가 없는 것은 불편하고 아쉽다. 하지만 전라도가 코스트코를 비롯한 대형 쇼핑몰들을 덥석 받아들일 경우 소탐대실(小貪大失)이 될 가능성이 크다. 코스트코 부재(不在)가 생활상의 작은 불편이라면, 그 불편을 감수하면서 유지하는 좌파와의 동맹은 전라도의 사활(死活)이 걸린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전라도는 반기업 반시장을 고수한다. 이것은 곧장 반미반일(反美反日)로 이어지고 거대한 전근대의 벽을 세우게 된다. 이 전근대의 벽은 대한민국 근대화의 진로를 결정적으로 가로막고 있다.
“뭣 헐라고 빌릴라고 그러요?”
2020년 총선이 끝나고 우파 지인들이 광주로 찾아온다는 연락이 왔다. 선거운동 하느라 고생했다고 위로할 겸 광주에서의 경험을 공유하는 차원이었다. 10명이 넘는 규모였기에 모임 장소를 따로 구해야 했다. 음식점이나 카페를 이용할 수는 없었다. 지인들의 성향 상 광주 사람들이 싫어할 내용으로 목소리를 높이게 될 텐데 그 과정에서 무슨 사태가 생길지 알 수 없었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구청에서 모임 장소를 빌려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전화를 걸어 보니 코로나19 때문에 대부분 장소 대여를 중단한 상태였고, 일부 대여가 가능한 곳은 저녁 6시까지만 이용할 수 있었다. 시민들이 모임 장소로 이용하려면 업무가 끝난 저녁 6시 이후 시간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평범한 시민들이 아니라 의식화된 시민단체들을 배려한 것 같았다. 그들에게는 회의하고 토론하는 게 일상이니 저녁 6시 이전에 모임 장소를 빌려야 할 것이다. 이것도 광주의 특징이라고 생각했다.
그나마 저녁 6시 이후에 이용 가능한 곳이 있어서 전화를 걸었다. 구청 부서마다 “우리 담당이 아니다”라며 전화를 돌리는 바람에 대여섯 번 허탕을 치고 나서야 전화가 연결됐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여성은 “우리도 코로나 때문에 장소 대여를 중단했다”고 알려 줬다. 별수 없었다. 다른 장소를 알아보는 수밖에. 이런저런 궁리를 하는데 전화가 걸려 왔다. 낯선 번호였다. 전화를 받자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로 봐서는 60대는 넘은 것 같았다.
“내가 어디어디(내가 빌리려 한 공간) 책임잔디, 장소 빌린다고 했소?”
“네, 맞습니다.”
“뭣 헐라고 빌릴라고 그러요?”
그건 알아서 뭐 하려고? 기분이 나빴지만 혹시라도 장소를 빌릴 가능성이 있을까 싶어 꾹 참고 어떤 사람들이 모여서 어떤 모임을 가질 것인지 설명했다. 하지만 이것저것 캐묻던 그 남자는 “우리도 장소 안 빌려주요” 하고 전화를 끊었다. 울화통이 터져서 다시 전화를 걸어 퍼부어 주고 싶은 걸 참느라 힘들었다. 결국 광주의 지인이 장소를 빌려줘서 유쾌하게 모임을 가질 수 있었다.
광주 사람들의 계모임
이 경험에서 실감한 것은 광주에 거대한 ‘감시 체계’가 작동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었다. 그 남자는 장소를 빌려줄 것도 아니면서 무엇을 캐내려고 그런 전화를 걸었을까? 혹시 불순한 모임이라도 하는 것 아닌지 의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불순함의 정체가 대한민국 다른 지역의 기준과 다르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자유나 반공(反共) 등 대한민국의 정체성(正體性)이 그 남자에게는 불순한 가치였을 것 같다. 이건 억측이 아니라 광주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얻은 확신이다. 선거운동 과정의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내 신상을 파악한 것 아닌지 의심도 해봤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광주의 감시 체계는 다른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광주에 머무는 2년 동안 주소지를 세 번 옮겼다. 그리고 그때마다 전화를 받았다. 내가 실제 그 주소지에 거주하는지 확인하는 통장의 전화였다. 40년 넘게 객지 생활을 하면서 이사도 많이 다녔지만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광주의 ‘거대한 감시망’을 피부로 느낀 사례들이었다.
나중에 확인해 봤더니 이건 행정 절차의 하나라고 했다. 그 통장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지방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호남은 왜 이렇게 다른 지방과 다를까? 그 차이가 대한민국과의 이질성(異質性)으로 확인될까 봐 두려웠다.
국민의힘 여성 당원에게서 들은 얘기도 있다. 나보다 몇 살 연상으로 짧은 만남이었지만 누님처럼 대해 주던 분이었다. 그분은 조만간 광주를 떠나 서울로 이사 갈 예정이라면서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위원장님, 광주 사람들이 계(契)모임 몇 개씩 하는지 아시오?”
“모르는데요.”
“한 사람당 대여섯 개씩은 헐 것이요. 요것이 무슨 뜻인지 잘 생각하셔야 헌당께.”
나도 객지 생활을 하면서 이런저런 모임을 꽤 많이 한 편이지만 주위에 계모임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광주 시민들은 대부분 계모임을 한다고?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닌 대여섯 개씩이나? 광주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계모임 얘기가 가끔 나왔던 것이 비로소 기억났다. 그런데 계모임의 뜻을 잘 생각해야 한다고 한 것은 무슨 의미였을까? 그분은 머지않아 서울로 이사했고 그래서 그분이 말한 뜻을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다만 짐작할 뿐이다.
광주에서 국민의힘 당협위원장을 하면서 지인들을 만나면 “때려치워라”라는 말을 듣는 일이 많았다. 나를 걱정해 주는 분들일수록 더 그랬다. 광주에서는 우파 정치가 불가능하니 일찌감치 포기하라는 충고였다. 그런 말을 하는 분들 중에는 국민의힘 당원들도 있었다. 그 여성 당원의 말도 그런 맥락 아니었을까? 무엇보다 광주를 떠나면서 해준 말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했다. “포기하라, 포기하라, 포기하라.” 이런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비공식적 감시 체계 작동하나?
광주에서 정치를 잘 안다는 분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전라도에도 좌파와 민주당을 싫어하는 분들이 40%는 된다고 한다. 그런데 왜 정작 투표를 해보면 80~90%에 육박하는 민주당 몰표가 나오는 걸까? 민주당을 싫어하는 분들이 자신의 표심(票心)을 표출하는 것을 가로막는 어떤 감시 체계가 작동하는 게 아니라면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모임 장소 빌리는 이유를 꼬치꼬치 따지고, 이사할 때마다 실제 거주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그런 비공식적 감시 체계의 일환 아닐까?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감시 체계는 시민들이 서로의 생각과 행동을 들여다보는 시스템일 것이다.
계모임은 전근대적 농촌 생활의 유산이다. 행사를 공동으로 도와주면서 서로 품앗이를 해주는 조직으로, 현대에 들어와서는 사(私)금융의 기능을 하는 일이 많아졌다. 농촌에서는 이웃집 숟가락 숫자까지 안다고 할 정도로 서로의 생활을 훤히 들여다보게 된다. 이걸 ‘따뜻한 정(情)’이라고 미화하기도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프라이버시가 보장받지 못하는 환경이다. 근대적 도시 생활의 특징인 익명성(匿名性)이 없다는 얘기다.
광주처럼 특정 정치 성향이 지배적이고 게다가 5·18의 비극적인 체험을 공유하는 도시에서는 ‘익명성 부재(不在)’의 위험성이 더욱 높아진다. 그런 분위기에서 시민들이 다양한 계모임으로 거미줄처럼 촘촘히 엮인다면 서로의 정치 성향을 손바닥처럼 환히 들여다보게 된다. 투표장 안에까지 따라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그와 비슷한 사회적 압력을 받게 된다. 강경한 우파 성향인 광주의 지인 한 분도 동창 모임 등에서 힘든 경우가 많다고 토로하곤 했다. 광주를 떠나며 계모임에 대해서 주의를 환기한 여성 당원의 메시지도 그런 것 아니었을까. 광주의 전근대성을 극복하지 못하면 우파 정치가 불가능하다는.
韓方병원이 많은 도시 광주
광주에는 또 한방(韓方)병원이 많다. 2023년 기준 광주의 한방 병상은 5835개로, 전국 한방 병상의 16.7%에 이른다. 광주광역시 인구가 대한민국 인구의 2.73%에 불과한 것과 비교하면 뭔가 기형적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 한방병원이 보험 사기의 무대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른바 ‘사무장 병원’도 많고 허위·과잉 입원을 통한 입원비 부당 청구, 진료 기록 조작, 브로커를 통한 보험 사기 환자 모집, 비급여 항목을 급여 항목으로 둔갑시켜 청구하기 등의 수법이 널리 쓰인다고 한다.
2018년부터 2023년 6월 30일까지 광주 소재 한방병원의 부당이득 환수 건수는 94건으로 전국 17개 시도 중 가장 많았다. 2023년 기준 광주·전남·전북의 한방병원 요양급여비가 전국 총액(3948억원)의 35.6%(1404억원)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1인당 한방병원 급여비 청구도 광주가 7만 312원으로 전국 평균 9671원의 7배에 이른다. 가장 적은 경북(1321원)에 비하면 무려 53배이다. 광주광역시에 이어 전북(2만 534원), 전남(1만 4993원) 등 호남 지역 지자체가 1~3위를 독식했다.
전라도 사람들이 보험 사기를 치기 위해 한의대에 입학하고 힘들게 공부했을 리는 없다. 한방병원이 많아지고 좁은 시장에서 경쟁하다 보니 보험 사기에 빠져들게 됐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전라도 사람들은 왜 한방을 좋아할까? 이 문제를 조사한 자료는 본 적이 없지만, 참조할 만한 사례는 알고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A는 나보다 어렸지만 직장의 선배여서 친구처럼 지냈다. 그의 친형은 광주의 운동권 원로였고, A 자신도 5·18 유공자로 5·18 묘역에 안장돼 있다. 그의 생전에 가끔 집안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형제들이 다들 공부를 잘하고 동생 중 하나는 의대에 갈 성적인데도 한의대에 갔다고 들었다. 집안 분위기로 봐서는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다. 짐작건대 ‘미국’으로 상징되는 모든 것, 가령 현대의학도 그들에게는 기피 대상 아니었을까? 조선의 선비들이 상투 자르고 양복 입는 것을 지조(志操)의 상실처럼 여겼던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전라도의 우수한 인재들이 그런 분위기를 공유하는 것이 한의대 선호 현상으로 이어진 것 같다.
A의 동생이 한의대를 졸업했는지, 했다면 어디에서 진료를 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A부터가 꼿꼿한 성품이었고, 그의 형제들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알고 있다. 최소한 파렴치한 보험 사기에 빠져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보험 사기에 빠져든 전라도의 한의사들도 처음부터 파렴치한 사람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한의대 입학이라는 선택이었다. 일종의 경로 의존성인 셈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한의학은 과학적 근거가 약하다. 한의사들이 의사들처럼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과학적 근거가 약한 한의학으로 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한계에 부딪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험 사기는 근대적 질서가 작동하는 사회에서 전근대적 사고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봉착하는 필연적인 귀결이라고 본다. 그래서 한의학도, 호남도 역설적인 의미에서 과학이다.
대한민국의 근대화는 여전히 미완성
근대화의 결정적인 티핑 포인트는 국민국가의 수립(nation building)이다. 근대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하여 하나의 유기체로 기능하는 시스템이 국민국가이기 때문이다. 고정된 영토 안에서 근대적 헌정(憲政)질서가 거기에 동의하는 국민들을 대상으로 작동하는 공동체이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의 근대화는 여전히 미완성이다. 국토의 절반을 점거한 소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다른 형태의 국민국가, 다른 방식의 근대화를 주장하며 대한민국을 적대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단은 남북의 각각 다른 근대화 방식의 외적 표현이며 서로 체제의 우월성을 놓고 경쟁하는 장치이다. 이 대립을 해소하지 못하는 한 한반도의 근대화는 완성되지 못하며 역사의 다음 단계로의 진입도 불가능하다. 어느 체제가 더 올바른 근대화인지 검증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사적 정당성이 입증된 시스템의 성과 위에서 새로운 도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경제와 인권, 민주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대한민국과 북한의 경쟁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압승이다. 북한 방식의 근대화는 철저하게 실패했다.
하지만 국민 통합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 못하다. 대한민국 내부에서조차 친북(親北) 이적(利敵) 세력이 정치적 우위를 나타내고 있다. 그 가장 중요한 배경이 호남이다. 대한민국은 호남을 국민의 일원으로 통합하는 데 실패했고, 그것이 자유민주주의 체제 위기의 핵심이다.
정율성기념관의 의미
2019년 1월 31일 광주시청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광주형 일자리’ 투자협약식이 열렸다. 사진=조선DB호남은 주사파(主思派) 세력과 동맹관계이다. 호남-주사파 연합이 1987 체제의 승자이고 대한민국의 사실상의(de facto) 오너이다. 호남과 주사파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이다. 호남에 대한 국민적인 혐오와 분노가 엄청난데도 호남이 어마어마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은 주사파의 이념적 패권(覇權)과 5·18 등 호남의 상징자산이 결합한 결과이다. 우파들은 호남의 경제적 몰락에 주시하며 왜 좌파 이념의 포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지 한탄하지만, 이것은 문제의 일면만 본 단견(短見)이다.
호남은 주사파와의 동맹을 통해 경제적으로도 최대한의 혜택을 얻고 있다. 호남은 복합쇼핑몰에 대한 욕구가 간절하면서도 복합쇼핑몰 입점을 반대하는 민주당을 선거에서 지지한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철저하게 합리적인 선택이다. 복합쇼핑몰 부재는 생활상의 불편이지만, 주사파와의 동맹은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시아문화전당이니 광주형 일자리니 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끌어오고, 호남 출신들이 공공과 민간의 고위직에 대거 진출하는 배경이 무엇일까? 주사파와의 동맹을 통해 발휘되는 정치권력의 힘이다. 이 권력이 사라지면 호남은 죽는다. 호남이 이승만(李承晩)과 박정희(朴正熙)를 증오하고 광주 시내에 정율성기념관을 짓는 것은 주사파에 대한 충성 서약이다.
‘대한민국의 호남화’
물론 호남의 이런 선택은 장기적으로 몰락하는 길이다. 언제까지 정부 예산을 약탈하고 기업체 멱살을 붙잡아서 연명(延命)할 것인가. 결국 파탄의 날은 반드시 닥쳐온다.
하지만 지금 당장 주사파와 결별하면 호남은 찬바람 부는 광야에서 헐벗은 채 새로 출발해야 한다. 시장경제에서 살아남을 지적(知的) 인프라도 경험도 거의 없다. 죽을 때 죽더라도 일단 현상 유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출향민(出鄕民)을 포함한 호남 공동체의 암묵적인 합의 사항이다. 그래서 모든 호남인은 일종의 공범(共犯) 관계이다. 여기에서 자유로운 호남인은 사실상 없다.
호남이 경제를 정치화하고 정치를 경제화하는 것은 이런 구조적 필연성 때문이다. 정치로 먹고산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구조는 점차 무거워지고 있다. 비용과 사회적 부담이 너무 커진 것이다. 호남이 정치·사회적으로 마이너일 때는 이 구조를 쉽게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메이저가 된 지금은 그게 어렵다. 다른 지방도 호남을 흉내 내서 정치권력을 이권화(利權化)하고 ‘큰 정부’와 ‘규제 강화’를 주장한다. 그런 구조에서 경제의 몰락은 필연이다. ‘대한민국이 풍족해야 거기 기생(寄生)할 수 있는’ 호남의 모델이 성립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호남화’ 현상의 귀결이다. 이적 세력의 발호에 따른 안보 위협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는다.
호남은 대한민국과 적대관계이다. 호남이 승리하면 대한민국은 망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결국 호남도 몰락한다. 이 적대관계를 공생(共生)관계로 승화시키는 것이 대한민국 근대화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이라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