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개항 150주년, 근대화를 다시 생각한다

문명사적 관점에서 본 한국의 근대

한국 사회의 주요 모순은 전근대와 근대 간의 문명 모순

  • 글 : 최범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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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항 이후 150년은 근대 혁명 과정… 대한민국 건국은 한국의 근대 혁명이 낳은 가장 중요한 성취
⊙ ‘해방 전후사의 인식’을 넘어서 ‘개항 전후사의 인식’ 필요
⊙ 한국 근대, 근대적인 외양에 봉건적인 몸통이 한 몸을 이루고 있어
⊙ 정신적 전근대 세력(수구좌파)과 물질적 근대 세력(보수우파)만 있을 뿐 정신적 근대 세력(진보우파) 없어
⊙ 의식의 측면에서 우파도 좌파와 마찬가지로 종족주의자, 집단주의자, 본질주의자
⊙ 대한민국에 대한 외재적·정치경제적 근대화 달성했지만, 내재적·사회문화적 근대화는 결여한 반쪽 근대화

최범
1957년생.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 대학원 미학과 석사 / 《월간 디자인》 편집장, 민족미술협의회(민미협) 편집실장,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편집실장 및 부설 문예아카데미 기획실장 / 저서 《이상한 나라, 대한민국》 외 저서 다수
대한민국 건국은 한국의 근대 혁명이 낳은 가장 중요한 성취다.
한국사에서 ‘문명 전환(文明轉換)’이라고 부를 만한 사태는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기원전 1세기경 고조선(古朝鮮)의 멸망 후 한사군(漢四郡)의 설치로 인해 한반도가 중국 문명권으로 편입된 것이다. 또 한 번은 1876년 강화도조약에 따른 개항(開港)으로 근대 문명으로의 길이 열린 것이다.
 
  운요호(雲揚號) 사건의 결과 맺게 된 강화도조약은 한국사 최초의 근대적인 국제 조약이었지만, 그 의미는 단지 하나의 외교적 사건으로 그치지 않는다. 강화도조약은 개항으로 이어졌고, 개항은 개국(開國)과 개화(開化)를 가져왔다. 개화는 곧 근대화(近代化)의 시작이었다. 그것은 실로 한국이 중세(中世)의 동아시아 문명으로부터 근대의 세계 문명으로 나아가게 된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2026년은 그 150년이 되는 해다. 이런 점에서 개항은 고조선 멸망 이후 ‘2000년래의 대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개항이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일본에 의해 강요된 것이라는 점에서 보듯이 한국의 근대는 외부의 압력으로 시작되었다. 한마디로 타율적(他律的) 근대화였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문명의 중심부가 아닌 이상 모든 문명 전환은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의해 이루어진다. 내부의 자생적(自生的) 변화보다 외부의 충격에 의한 변화가 훨씬 더 일반적이라는 이야기다. 다만 주변부의 경우 이러한 중심부의 문명 충격을 받아 기존 문명이 완전히 파괴되어 소멸되는가 아니면 그 충격을 흡수하여 주체화(主體化)하는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외부의 충격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내 것으로 삼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타율적 근대화
 
  예컨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전근대(前近代) 문명은 서구 근대 문명의 충격에 의해 거의 완전히 파괴되거나 교체되었다. 아프리카인의 노예화, 북미(北美) 원주민 문명의 파괴, 남미(南美)의 아스테카·마야·잉카 문명의 몰락 등이 그것이다. 이것은 ‘문명 전환’이라기보다는 ‘문명 파괴’ 내지는 ‘문명 교체’라고 해야 맞을 듯싶다. 어떻게 평가하든 간에, 이후 이 지역들의 현실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대로다.
 
  하지만 동아시아 문명은 이 정도는 아니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문명 역시 서구 근대 문명의 침범(서세동점·西勢東漸)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았지만 기존 문명이 완전히 해체되거나 몰락하는 수준까지 가지는 않았다. 이것은 동아시아 문명이 아프리카나 아메리카의 그것보다는 강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서구 근대 문명의 침입에 가장 선제적(先制的)으로 방어하고 적응한 곳은 일본이었다. 서구의 도전에 중국이 맥을 못 추고 반(半)식민지가 된 것에 비하면 일본의 반응은 놀라운 것이었다. 이리하여 이후 동아시아의 패권(覇權)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갔음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물론 지금 중국이 권토중래(捲土重來)를 노리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한국 근대화의 계기가 된 개항은 서구에 의해 먼저 개항한 일본에 의해 강제된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이러한 외부로부터의 강제에 주체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고, 급기야 한국보다 한발 앞서 근대화된 일본에 의해 식민지가 되었다.
 
  이후 식민지로부터의 해방, 20세기 중반의 근대 국가 건설, 그리고 20세기 후반의 산업화와 민주화 등을 거쳐 지금 21세기에 이르고 있다. 이것이 지난 150년간 한국 근대화의 간략한 여정이다.
 
 
  한국 근대 문명은 혼종 문명
 
  개항은 근대화의 서막이었다. 이후 150년의 한국사가 근대화의 역사였다는 말이다. 그러면 한국 근대화의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근대화는 문명 전환이다. 전근대로부터 근대로의 문명 전환은 격렬한 문명 충돌을 일으키고 문명 충돌은 심대한 문명 모순을 낳기 마련이다. 이것이 한국 근대의 성격을 결정지은 기본적인 조건이었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근대화 과정과 구조를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또 한국 근대가 갖는 특수성을 이해해야 한다. 한국 근대가 결코 근대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의 인식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개항으로 촉발된 문명 전환이 전근대로부터 근대로의 이행인 것은 맞지만, 단순히 전근대 문명이 근대 문명으로 교체된 것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근대로의 문명 전환의 과정과 양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한국의 근대 문명 전환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그것이 가진 전근대와 근대의 결합 양태를 이해해야 한다. 그러니까 한국의 근대 문명 전환은 전근대로부터 근대로의 단순 교체가 아니라, 차라리 전근대와 근대가 독특한 방식으로 결합된 또 하나의 문명 양태, 즉 하나의 혼종(混種) 문명으로 보아야 한다.
 
  한국의 근대화는 아프리카나 아메리카처럼 기존 문명이 완전히 파괴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위에 외래 문명이 덧씌워지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마치 하나의 텍스트 위에 또 하나의 텍스트가 얹힌 것과도 같다. 이러한 구조는 다시 다음 두 가지 사실을 말해준다.
 
 
  한국의 ‘봉건’은 ‘잔재’가 아니라 ‘몸통’
 
  첫째, 한국의 기존 문명, 즉 오랜 동아시아 문명은 완전히 파괴되지 않고 여전히 한국 사회와 한국적 삶의 기저(基底)를 이루고 있다. 한국의 전근대 문명은 죽지 않았다는 말이다. 오히려 시퍼렇게 살아서 펄떡펄떡 뛰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평가하든 간에 말이다.
 
  다른 한편 외래의 근대 문명은 한국 사회의 외양을 지배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인의 삶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서구적이고 근대적이다. 따라서 겉으로만 보면 한국 사회는 완전히 근대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껍데기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의 내면, 즉 속살은 여전히 전근대적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한국 사회의 외양, 즉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부문에 걸친 겉모습은 근대적이다. 이를 외재적(外在的) 근대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외양 아래 한 꺼풀만 벗겨보면, 거기에는 여전히 전근대적인 것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를 내재적(內在的) 전근대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봉건 잔재’라고 말하지만, 한국의 봉건은 결코 잔재가 아니다. 봉건적인 의식과 삶의 방식은 근대적인 외양 아래 엄연히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봉건 잔재가 아니라 ‘봉건 몸통’이라고 불러야 맞다. 근대적인 외양에 봉건적인 몸통, 이것이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한국 근대의 진면목이다. 이러한 근대와 전근대의 샌드위치 구조, 겉은 근대적이지만 속은 전근대적인 것, 이러한 모순 결합과 이종 교배야말로 한국 근대의 특수성인 것이다.
 
 
  위로부터의 근대화
 
한국의 근대화 혁명은 이승만과 박정희 등에 의한 위로부터의 근대화운동이었다.

  물론 어느 사회든지 그 사회를 이루는 구조와 요소들은 일률적이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는 차이와 불균등이 있기 마련이며 심지어는 상호 모순되고 충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것을 가리켜 문화지체(文化遲滯), 불균등 발전, 비동시적(非同時的)인 것의 동시성 등으로 부른다.
 
  한국 근대도 마찬가지다. 아니 한국 근대야말로 이러한 모순적이고 이질적인 구조가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경우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한국 사회가 근대화된 결과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여전히 근대화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지만 이러한 전근대와 근대의 모순 결합과 이종 교배, 이것이 바로 한국 근대의 특수성이다. 이러한 한국 근대의 특수성을 직시하지 않는 이상, 한국 사회에 대한 객관적 인식은 불가능하다.
 
  한국의 근대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바로 그 발생 경로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근대화는 내부로부터가 아니라 외부로부터, 그리고 아래로부터가 아니라 위로부터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의 근대화가 외부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개항의 사례에서 보듯이 명확하다. 아널드 토인비의 말처럼 문명은 도전에 대한 반응이다. 한국의 근대는 바로 이러한 외부로부터의 도전에 대한 반응의 결과인 것이다.
 
  아울러 한국의 근대가 위로부터 이루어졌다는 것은 이러한 외부로부터의 근대화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각성된 소수의 엘리트가 앞장서서 근대화의 과제를 수행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갑신정변(甲申政變)과 갑오개혁(甲午改革)의 개화파(開化派), 구한말(舊韓末)의 독립협회, 식민지하에서의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근대 국가 건설, 산업화 등이 모두 소수의 엘리트(김옥균, 김홍집, 서재필, 이승만, 박정희 등)에 의한 위로부터의 근대화 운동이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서구를 기준으로 보면 한국 근대화의 경로는 거꾸로 된 것이었다. 서구의 근대화는 종교개혁과 르네상스, 과학 혁명과 시민사회의 형성 등 서구 사회 내부의 자생적 발전에 따른 결과다. 따라서 서구의 근대는 내부적이며 또 아래로부터 이루어졌다. 이에 비하면 한국의 근대는 정반대다. 마치 마르크스가 헤겔의 철학을 가리켜 머리를 땅으로 향하고 거꾸로 서 있는 꼴이라고 한 것처럼, 한국의 근대화는 서구와 달리 내부로부터가 아니라 외부로부터, 아래로부터가 아니라 위로부터 추진되었다.
 
  그런데 앞서도 얘기했지만 주변부 지역의 문명화 과정을 생각해 보면 이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현실을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인식하고 바람직한 방향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외부화를 내부화로, 위로부터를 아래로부터로 바꿔나가야 한다. 근대를 무조건 외세의 침략으로 보고 부정하거나 식민지 근대화라고 자조(自嘲)해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이러한 한국 근대의 구조와 경로를 솔직히 인식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감정적인 부정은 현실 인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 근대 인식의 최대 맹점(盲點)은 한국 근대를 근대로만 보는 것이다. 하지만 말했듯이 한국 근대는 근대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거기에는 광범위하고 뿌리 깊은 전근대성도 공존하고 있다. 한국 근대의 이질성과 복합성, 중층성을 그 자체로 똑바로 볼 때 한국 근대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가능하다.
 
 
  한국 사회와 문명 모순
 
  이제까지의 논의는 오늘날 한국 사회를 인식하는 데 하나의 열쇠를 제공해 준다. 그것은 바로 한국 사회의 모순 구조를 분석하는 것이다. 개인이든 사회든 간에 그것을 가장 잘 인식하는 방법의 하나는 그 대상이 가진 모순을 통찰하는 것이다. 헤겔식으로 말하면 변증법적(辨證法的) 인식이 필요하다.
 
  그러면 한국 사회의 모순은 무엇일까. 한국의 근대화가 외래적이고 하향적이라는 것은 바로 오늘날 한국 사회가 가진 모순의 근본 원인이 거기에 있음을 시사해 준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한국 근대화의 특수성이 잉태한 모순은 단순히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바로 지금 현재 한국 사회에 공시적(共時的)으로 배열되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회에는 균열과 대립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러한 균열과 대립은 종종 심각한 적대로 발전하여 사회 자체를 파괴하기도 한다. 현대사회의 대표적인 모순은 계급, 인종, 종교, 젠더, 세대, 지역 등의 경계를 타고 드러난다.
 
  한국 사회는 어떤가. 한국 사회에도 인종과 종교를 제외한 모든 형태의 균열과 대립이 존재한다. 한국은 발달된 자본주의 사회로서 계급 모순이 엄존한다. 그리고 식민지 경험으로 인한 민족 모순도 뿌리 깊다. 오랜 남성 중심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젠더 모순 역시 만만치 않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오늘날 한국 사회의 내적 갈등과 대립을 드러내는 모순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순들보다 상위에서 더 강한 갈등과 대립을 드러내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전근대와 근대의 대립, 즉 문명 모순이다. 계급 모순, 민족 모순, 젠더 모순 등은 거기에 비하면 부차적(副次的)인 하위 모순일 뿐이다.
 
 
  한국의 민족 모순은 식민 지배에 대한 원한 감정
 
 
마오쩌둥
마오쩌둥(毛澤東)은 《모순론(矛盾論)》에서 한 사회에 두 가지 이상의 모순이 있을 경우, 반드시 그중에서 주도적·결정적 역할을 하는 주요 모순이 있기 마련이며 그것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주요 모순은 깊게 찾을 것도 없이 전근대와 근대의 문명 모순이다. 이러한 문명 모순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전 영역과 경계를 가로지르는 최상위의 모순인 것이다. 그리하여 문명 모순은 한국 사회의 하위 모순들(계급 모순, 민족 모순, 젠더 모순)의 위에 있으면서 그것들을 가로지르고 굴절시킨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계급 모순은 순수한 자본주의 사회의 그것이라기보다는 전근대성과 근대성의 대립이라는 형태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반일(反日)·친북적(親北的)인 한국의 노동운동을 보면 알 수 있다.
 
  민족 모순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과 같은 단일민족 국가에는 민족 모순이 있을 수 없다. 한국이 점차 다민족·다문화 사회로 나아간다고들 말하지만, 아직까지는 단일민족·단일문화의 통합성을 깰 정도는 아니다. 따라서 세계적인 기준으로 볼 때 한국과 같은 단일 사회에는 내부의 민족 모순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한국의 민족 모순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과거의 식민 지배에 대한 원한 감정이 투사(投射)된 것으로 다른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인종 모순이나 민족 모순과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
 
  한국인들이 느끼는 민족 모순은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경험한 과거 식민 지배의 상처 입은 기억 때문에 생겨났다 해도 무방하다. 이런 점에서 나는 사실상 현재 한국의 민족 모순은 허구이며 없다고 보는 편이다. 마치 신체 일부가 잘려나가 존재하지 않는데도 여전히 통증을 느끼는 환상통처럼 말이다.
 
 
  한국 여성운동의 역설
 
반일시위 모습. 한국의 민족주의는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한 원한 감정과 종족주의적 측면이 강하다. 사진=조선DB

  젠더 모순은 어떤가. 한국의 페미니즘은 상당 부분 여성운동이기는커녕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주의(家父長主義)에 포섭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페미니즘을 말하는 많은 운동이 사실상 가부장주의의 복화술(複話術)에 가깝다고 본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위안부는 대부분 하층 여성이었기 때문에 위안부 문제는 계급 모순과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일본군에게 이용되었다는 점에서 민족 모순을 안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위안부는 남성(그 남성이 어떤 종족이든지 상관없이)에 의한 여성의 성(性) 착취라는 점에서 젠더 모순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렇듯 위안부 문제 하나만 보더라도 계급·민족·젠더 모순이 교차성을 이루고 있다.
 
  교차성 개념은 원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에서 나온 것인데, 어떠한 젠더 모순도 순수하거나 단일하지 않다는 통찰에서 나온 것이다. 예를 들어 같은 여성이라고 하더라도 백인 여성과 흑인 여성, 중산층 여성과 하층민 여성이 느끼는 젠더 모순은 그 정도가 같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회적 모순의 복합성과 중층성을 사유(思惟)하기 위해서 도입된 것이 바로 교차성 개념이다.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국의 위안부운동은 그것이 지닌 계급 모순과 젠더 모순에는 눈을 감고 모든 것을 반일이라는 민족 모순 하나로 환원해 버린다. 사실 위안부 문제는 계급이나 민족 문제 이전에 무엇보다도 먼저 여성 인권과 관련된 젠더 의제인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위안부운동은 여성운동이기는커녕 민족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가부장주의에 포섭되어 버리는 지독한 역설(逆說)을 보여줄 따름이다.
 
  한국의 여성운동에는 이런 경우가 적지 않다. 이 역시 한국 사회에서 개별적인 하위 모순들이 전근대와 근대의 문명 모순에 의해 어떻게 굴절되고 변형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모든 개별 모순(계급 모순, 민족 모순, 젠더 모순)은 결코 그 자체로 순수하거나 단일한 형태로 드러나지 않고, 모두 그 위에 있는 전근대와 근대의 문명 모순에 의해 그 양상이 최종적으로 결정된다. 한국의 노동운동, 민족운동, 여성운동은 모두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점에서 한국 사회의 여러 모순을 서구 사회와 같은 층위에서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히 한국 사회의 모순들은 한국 근대의 특수성에 비추어 이해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문명 모순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최종심급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혁명과 대한민국 혁명
 
  근대는 혁명이다. 근대는 중세로부터의 문명 교체로서 체제 교체나 국가 교체, 정권 교체 등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근본적인 변화다. 따라서 문명 자체의 소멸을 제외하고는 역사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최상위 수준의 변화라고 할 것이다. 그것은 문명이 삶의 방식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명의 변화는 혁명 중의 혁명이 아닐 수 없다.
 
  전통사회에서 혁명은 역성(易姓) 혁명이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왕의 성(姓)을 바꾼다(易)는 뜻이다. 신라에서 고려로,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변화는 왕의 성이 바뀌는 역성 혁명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중세 문명 내에서의 국가의 교체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문명 혁명은 그 차원 자체가 다르다. 문명은 인간의 삶 전 영역에 걸친 층위로서 문명 전환은 곧 문명 혁명이며 삶의 혁명이었다.
 
  따라서 개항 이후 지난 150년의 시간은 한국의 근대 혁명이라는 과정으로 볼 때 제대로 인식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조선의 멸망과 일제의 식민지, 해방과 미군정,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화, 민주화 등의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건은 역시 한반도 남부에서의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보아야 한다. 대한민국 건국은 한국의 근대 혁명이 낳은 가장 중요한 성취였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세 문명하에서라면 대한민국 같은 국가는 결코 등장할 수 없다.
 
 
  대한민국은 혁명 국가
 
이인호 교수.

  대한민국의 건국과 발전에는 개항 이후 전개된 크게 두 가지의 움직임이 바탕이 되었다. 하나는 개화파로부터 시작하여 독립협회, 일제하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이승만의 외교 활동으로 이어지는 공화주의운동이다. 또 하나는 구한말의 실력 양성과 자력갱생, 일제하의 물산장려운동, 박정희의 경제 개발로 이어지는 발전주의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이러한 정치적 공화주의운동과 경제적 발전주의운동이 양 날개를 이루어 낳은 찬란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역시 문제는 이러한 대한민국의 성격과 성취가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학자 이인호 교수는 저서 《대한민국 건국은 혁명이었다》에서 책 제목 그대로 대한민국을 혁명 국가라고 말한다. 이인호의 말처럼 대한민국의 건국은 혁명이 맞다. 대한민국은 한민족과 한반도 역사에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권력이 국민에게 있고 자유로운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활동이 보장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이전에 한반도에 존재했던 모든 국가는 권력이 왕과 귀족 같은 소수 특권층에게 있었다. 백성은 각종 납세와 부역의 의무를 지기만 했지 어떠한 권리도 갖지 못했다. 이러다가 한국인이 최초로 경험한 근대 국가인 식민지 조선에서 비로소 경제적 권리가 주어졌다. 그러나 조선인에게 정치적 권리는 없었다. 대한민국 이전의 모든 국가에서 인민은 통치의 대상일 뿐 주체가 아니었다.
 
  이런 점에서 대한민국은 분명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경이로운 국가가 맞고, 이런 대한민국의 탄생이 혁명이 아닐 수는 없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러한 대한민국 건국혁명론이 대다수의 한국인에게 낯설게 여겨진다는 사실이다.
 
 
  정체성이 불안한 나라 대한민국
 
  대한민국이 어떤 국가인가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관점이 대립한다. 하나는 좌파(左派)의 관점이고 또 하나는 우파(右派)의 관점이다.
 
  좌파는 대한민국을 ‘친일파가 세운 나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본다. 이것이 바로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비롯한 좌파 서적들이 보여주는 관점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혁명 국가이기는커녕 말 그대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다.
 
  이와 반대로 우파는 대한민국의 탄생을 축복으로 본다. 우파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건국과 호국과 부국(富國)으로 이어지는 서사로 보며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듯 대한민국을 보는 관점에서 좌파와 우파는 타협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날카롭게 대립한다. 한국의 좌파와 우파는 대한민국의 존재 자체를 보는 관점에서부터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한민국의 정체성(正體性)은 매우 불안정하다. 좌파는 대한민국을 부정하며 우파는 대한민국을 긍정한다. 엄연히 현실에 존재하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대해 극단적으로 상반된 관점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체제는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
 
  사상(思想)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은 자유다. 적어도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 이상은 사상과 양심과 표현의 자유가 인정된다. 하지만 비록 사상의 차원에서일지라도 반(反)대한민국파와 대한민국파의 대립과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은 국가 정체성과 통합의 차원에서 볼 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 이전에 먼저 좌파는 왜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우파는 왜 대한민국을 긍정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자.
 
 
  좌파의 종족주의, 우파의 성공사관
 
2008년 8월에 열린 건국 60주년 기념세미나 모습. 대한민국 성공 사관의 입장을 반영했다. 사진=조선DB

  그럼 먼저 좌파는 왜 대한민국을 부정하는가. 좌파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논리적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친일파가 세운 나라이자 분단 국가라는 것이다. 이것은 대한민국이 자주 국가가 아닌 외세의 식민지이며 완전체가 아닌 반쪽짜리 국가라는 것이다. 좀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대한민국은 외세의 씨, 업둥이, 즉 우리 핏줄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처럼 좌파의 대한민국 부정사관에는 기본적으로 혈통 중심의 사고방식이 들어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반쪽짜리 분단 국가라는 것 역시 생물학적인 유기체주의의 관점이다. 이렇게 보면 좌파의 국가관과 역사관은 생물학적 기준에 따른 순혈주의, 종족주의, 유기체주의로서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에 기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내가 한국 좌파를 전근대 세력으로 보는 이유다.
 
  그러면 반대로 우파는 대한민국을 어떻게 볼까. 우파야말로 대한민국 건국의 주체이기 때문에 우파의 대한민국관은 긍정적이다. 우파가 보기에 대한민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한 국가이며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국가가 된 선진국이다. 이른바 대한민국 성공사관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인식이 기반이다. 건국과 호국과 부국사관은 이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파, 대한민국의 외형에만 초점 맞춰
 
  대한민국의 이러한 성취는 모두 사실이며 부정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대한민국 성공사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대한민국의 외형적인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 성공사관은 한결같이 자유민주주의 국가 수립, 경제 개발 성공, 선진국 수준의 국민소득 달성 등에만 주목한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의 내면적 취약성에 대해서는 무심하다.
 
  더 근본적으로는 내가 모순 결합이자 이종 교배라고 부르는 한국 근대성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인식이 우파에게는 없다. 한국 사회의 전근대성이 어떻게 근대화의 발목을 잡고 있는지에 대해 우파는 무지하다. 한마디로 한국 우파가 이해하는 대한민국은 외형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나는 이러한 외형적 성취를 부정하지 않으며 높게 평가한다. 문제는 외형적 성취의 지속가능성이다. 이것을 위협하는 전근대성의 귀환 또는 복수(?)에 대한 문제의식을 우파는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민국 성공사관의 피상성(皮相性)이라고 할까, 납작한 인식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대한민국을 보는 좌파와 우파의 관점은 비대칭적인데, 바로 여기에 한국 근대성의 구조적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나는 본다. 그러니까 한국의 좌파는 한국 사회의 전근대성, 즉 종족적 집단주의의 이념을 신봉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의 우파는 근대성 중에서도 물질적이고 제도적인 측면, 즉 외재적 근대성을 담지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한국에는 정신적 전근대 세력(수구좌파)과 물질적 근대 세력(보수우파)만 있을 뿐 정신적 근대 세력(진보우파)은 없다고 보는 이유다. 좌파가 보는 대한민국이 반쪽 종족 국가라면 우파가 생각하는 대한민국은 반쪽 국민 국가인 것이다. 대한민국은 어떤 측면에서 보든지 간에 통합된 국민 국가와는 거리가 멀다.
 
  나는 이러한 사태가 근본적으로 한국 근대의 수준이 낮은 단계에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대한민국 체제에 대한 낮은 수준의 합의는 결국 한국 근대에 대한 낮은 수준의 이해에 근거한다고 믿는다. 한국 근대에 대한 낮은 수준의 이해는 결국 근대에 대한 인식을 제한하며, 이런 가운데 여전히 전근대성과 근대성의 공존, 충돌, 병치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근대성과 근대성의 문명 모순이 한국 사회의 최상위 모순이라는 점은 이미 충분히 피력하였다.
 
 
  한국 우파의 웃지 못할 현실
 
광복회는 1919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고 주장한다. 사진=조선DB

  대부분의 우파에게 대한민국이 혁명 국가라는 의식이 없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본다. 어쨌든 사실관계에서 대한민국을 세우고 발전시킨 것은 우파이건만, 왜 우파는 좌파의 비판(친일파, 외세 의존, 매판 세력)에 대해서 소극적 방어밖에 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바로 의식의 측면에서 우파도 좌파와 마찬가지로 종족주의자, 집단주의자, 본질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외재적 근대성(근대 국가 건설과 경제 개발)과 내재적 전근대성(집단주의와 비합리주의)의 모순이라고 말하는 것의 핵심이다. 한국 우파는 외재적 근대성을 이루어낸 담지자들이다. 하지만 그에 걸맞은 내재적 근대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자신들이 혁명 세력이라는 자각과 의식이 없다. 혁명은 했지만 혁명 세력은 아니다. 이것이 한국 우파의 웃지 못할 현실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혁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역사를 근대 역사 속에 놓고 보아야 한다. 대한민국 혁명은 한국 근대 혁명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을 한국의 근대 혁명 속에 위치시키고 그 역사적 의미와 전망을 부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럴 때 대한민국 혁명의 의미도 밝혀질 것이라고 본다. 이에 비하면 1919년이냐 1948년이냐 하는 건국절 논쟁조차도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나는 대한민국을 한국 근대 역사 속에 위치시킨다. 19세기 말 개항 이후 이어진 근대화 혁명의 일환으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대한민국의 문명사적 의미가 제대로 파악된다. 대한민국은 외재적 근대화, 즉 정치·경제적 근대화를 달성한 국가다. 하지만 내재적 근대화, 즉 사회·문화적 근대화는 결여된 국가다. 정치·경제적 근대성과 사회·문화적 전근대성의 이종 교배가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자연히 대한민국 혁명, 아니 한국 근대 혁명의 과제가 무엇인가 하는 것으로 우리 자신을 이끈다.
 
 
  반쪽 근대화
 
  “이제 하나의 순환을 끝내고 새로운 순환을 준비할 때다.”
 
  1990년대 초 사회주의권이 붕괴하던 시절에 많이 듣던 표현이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한국의 근대화에 대해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1차 근대화 프로젝트를 끝내고 2차 근대화 프로젝트를 준비할 때라고. 그러면 1차 근대화는 무엇이었고 2차 근대화는 무엇인가. 그것은 어떻게 다른가.
 
  1차 근대화는 1876년 개항 이후 지난 150년간을 가리킨다. 이때 한국인은 조선 망국(亡國), 일제 식민지, 해방과 미군정, 남북한의 근대 국가 건설과 전쟁,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 등을 겪었다. 이 150년의 전반은 조선의 붕괴와 식민지의 시간이었고 후반은 대한민국과 발전의 시간이었다.
 

  대한민국은 한민족 역사상 최초로 국민에게 주권이 있고 사적 소유가 인정된 근대 국가로 출발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근대화는 근대 국가 수립이라는 정치 영역, 산업화라는 경제 영역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사회는 여전히 전근대적인 집단주의가 지배하고 문화 역시 무속(巫俗) 같은 비합리주의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경제적 근대화를 이루었지만 사회·문화적 근대화는 이루지 못한 것이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근대화는 반쪽 근대화이다.
 
  이것은 물이 반쯤 찬 컵처럼 보기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정치·경제적 근대화는 위대한 성과다. 하지만 여전한 사회·문화적 전근대성은 정치·경제적 근대화의 성과를 깎아먹을 뿐 아니라 위협한다. 과연 사회·문화적 근대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정치·경제적 근대성이 재생산되고 지속가능할지 심히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근대화 패러다임의 전환 필요
 
  이제 한국의 근대화를 진전시켜야 한다. 정치·경제 영역의 근대화를 넘어서 사회·문화 영역의 근대화를 추진해야 한다. 그리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영역에 걸친 고른 근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근대화 150년을 맞은 지금 우리 앞에 주어진 새로운 과제다. 이것이 바로 2차 근대화다.
 
  1차 근대화도 쉽지는 않았지만 2차 근대화 역시 간단히 이루어질 수 없다. 어쩌면 2차 근대화는 1차 근대화보다 더 어려울지 모른다. 정치·경제 영역의 1차 근대화는 소수의 카리스마 있는 엘리트에 의해 위로부터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자체로 위대한 성과였다. 비서구 국가 중에서 이 정도의 성취를 이룬 나라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2차 근대화는 1차 근대화의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2차 근대화는 내부로부터, 아래로부터의 근대화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근대화의 진정한 주체가 되고 근대적인 문명 의식이 내면화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근대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문명은 보통 수천 년의 시간 단위를 갖는다. 그에 비하면 한국의 근대화 150년은 초입의 초입에 불과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한국의 근대 문명이 어떤 모습으로 나아갈지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짧은 경험을 가지고 큰 방향을 잡아나가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거대한 막대기의 자루 끝을 잡고 휘두르는 것에 지나지 않겠지만, 나비의 날갯짓과 같은 것이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숲속에서 길을 잃으면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지금 우리가 되돌아가서 살펴보아야 할 지점은 어디인가. 바로 한국 근대의 출발점이었던 150년 전의 개항이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을 넘어서 ‘개항 전후사의 인식’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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