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반 동안 기부금 3천억원 모금… 한국 대학 역사상 최고 금액
⊙ “기부금 모금은 ‘사람 연구’가 기본인 과학… 기부자의 평생의 꿈을 대학이 대신 이뤄 준다”
⊙ “한국 대학들, 정부가 대학의 학생 선발권 박탈하고 16년간 등록금 동결한 결과, 세계 50위권 진입도 힘들어”
⊙ 고대생 다섯 명 중 한 명은 외국인 유학생… 한국 대학 중 국제화 1위 기록
金東元
1960년생.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美 위스콘신-매디슨 대학 노사관계학 석·박사 / 美 뉴욕 주립대 경영대학 교수,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겸 노동문제연구소장·경영대학 학장 겸 경영전문대학원 원장,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회장, 국제고용노동관계학회 회장 역임. 現 고려대 21대 총장
⊙ “기부금 모금은 ‘사람 연구’가 기본인 과학… 기부자의 평생의 꿈을 대학이 대신 이뤄 준다”
⊙ “한국 대학들, 정부가 대학의 학생 선발권 박탈하고 16년간 등록금 동결한 결과, 세계 50위권 진입도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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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東元
1960년생.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美 위스콘신-매디슨 대학 노사관계학 석·박사 / 美 뉴욕 주립대 경영대학 교수,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겸 노동문제연구소장·경영대학 학장 겸 경영전문대학원 원장,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회장, 국제고용노동관계학회 회장 역임. 現 고려대 21대 총장

- 사진=조준우
김동원 고려대 총장은 한국의 대학 기부금 역사를 새로 써내려 가고 있는 인물이다. 2023년 3월 취임 이래 2년 반 동안 모금한 기부금이 무려 3000억원 단일 대학의 모금액으로 역대 최고액이다. 특히 2023년엔 한 익명의 기부자가 630억원을 맡기기도 했다. 한국의 대학 사상 단일건 최대 규모의 기록이다.
서울 안암동 고려대 총장실에서 김동원 총장을 만났다.
― 막대한 기부금을 모은 비결이 궁금합니다.
“제 개인의 능력이라기보다는 여러 여건이 맞아떨어졌습니다. 올해가 개교 120주년이기도 하고, 고려대가 세계적인 명문으로 도약하고자 하는 비전에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셨습니다. 제가 경영학을 연구하고 가르쳐 온 덕에 특히 기업 경영인들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었던 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분들이 어떤 생각으로 대학에 기부를 결심하는지를 잘 안다고 할까요.”
“美 대학 총장, 업무 시간의 60~70%를 기부금 모금에 써”
그는 경영대 학장 시절에도 탁월한 모금 성과를 올렸다. 당시 약 200억원을 모금했다. 역시 고려대 역사상 단과대 학장으로 최고 기록이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미국 어느 대학의 총장을 만났는데, 저에게 묻더군요. ‘하루 중 얼마나 기부금 모금에 시간을 씁니까?’ 답했지요. ‘제 시간의 3분의 1쯤 할애합니다.’ 그랬더니 그 총장이 ‘그 정도로 충분하겠냐’며, 자신은 업무 시간의 60~70%를 기부금 모금에 쓴다고 하더군요. 미국 대학에는 한 건에 2조원, 3조원 규모의 기부가 들어오기도 합니다.”
― 2조원이요?
“우리와는 스케일 자체가 다르지요. 미국은 한국보다 대학 등록금이 비쌉니다. 그러나 그곳 역시 뭔가 새롭게 일을 시작하려면 기부금으로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기부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겁니다. 한국의 대학 등록금은 지난 16년간 동결됐어요. 이런 상황에서 대학이 하고 싶은 걸 하려면 기부금 외엔 방법이 없습니다.”
고려대 캠퍼스에는 현재 여러 곳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다. 10월 현재 5개 건물이 신축 중이고 11개 건물이 리모델링 중이다. 김 총장의 말이다.
“캠퍼스가 환골탈태 중이지요. 기부해 주신 분들 덕분에 가능한 겁니다. 제가 한국의 대학 총장 중 아마 기부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편일 겁니다.”
김 총장은 2023년 취임하며 “사립대학의 발전 모델을 제시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표적인 것이 ‘예산 제로베이스(zerobase) 검토’다.
― 예산 제로베이스 검토가 뭡니까?
“대학의 재무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싶었습니다. 오랜 기간 관행적으로 불필요하게 편성되는 예산이 많습니다. 회계를 깊이 들여다보지 않은 채 ‘올해 경기가 작년보다 좋으니 예산을 10% 올리자’ 혹은 ‘경기가 안 좋으니 5% 줄이자’ 이런 식으로 예산을 책정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어느 조직에서나 목격되는 일입니다. 저는 우선 예산을 제로베이스로 만들어 ‘이게 정말 필요한 예산인가?’를 하나하나 검토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그 결과 코로나 시기의 재정 적자를 2년 내에 흑자 전환하는 성과도 이뤄 냈습니다.”
― 그 과정을 통해 실제로 예산 절감 효과가 있었습니까?
“어떤 부서에서는 자발적으로 인력을 다른 부서에 양보하고, 그 대가로 상금을 받기도 했어요. 그 결과 전체 경상비 예산의 약 20%를 절감할 수 있었어요. 모든 부속 기관이 흑자 전환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이렇게 절감한 예산으로 건물을 짓고 해외 유수 학자들을 초빙하는 겁니다.”
“기부자 90% 이상이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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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5일 고려대 중앙광장에서 열린 개교 120주년 기념식에서 김동원 총장은 ‘넥스트 인텔리전스’라는 비전을 발표했다. |
“많은 분들이 기부를 감성적인 행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기부는 철저히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비즈니스입니다. 예를 들어, 기업의 평균 이익률은 3%에 불과합니다. 수조원 규모의 기업이라야 연간 1000억원 정도의 이익을 낼 수 있단 얘기지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기부금 모금은 수익성이 매우 높은 ‘사업’인 겁니다. 치밀한 분석과 전략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 고도의 비즈니스군요.
“기부를 하려는 분들의 기대와 학교가 제공할 수 있는 혜택을 서로 맞춰 가는 굉장히 전략적인 과정입니다. 단순히 자주 만나 술 마시고 골프 치면서 기부를 받는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 식으로만 기부가 이뤄진다면 얼마나 쉽겠습니까. 비영리 조직의 기부금 모금을 다루는 학문이 있습니다. 여러 이론들이 있지요. 저도 그걸 현실에 적용해 보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출간된 기부 관련 서적은 다 읽어 본 것 같네요.”
― 기부금 모금의 학문적 이론도 있군요.
“맞습니다. 예를 들면 ‘기부자에게 7번 이상 감사 인사를 해야 된다’는 이론도 있어요. 대학에 대한 기부는 크게 두 가지 모델로 나뉩니다. 첫째, 국가와 인류를 위해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학자를 길러 달라는 뜻해서 기부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엔 그 학교와 특별한 인연이 없어도 기부가 이뤄집니다. 하버드대 같은 명문대가 이런 기부를 자주 받지요. 둘째, 학교와 관련된 사람들이 애교심을 갖고 기부하는 경우입니다. 고려대는 후자에 가까워요. 실제 고려대에 기부하는 분들 중 90% 이상이 졸업생입니다.”
“모금의 기본은 인물 연구”
― 졸업생이라고 해서 무조건 기부하진 않을 것 같은데요.
“거액 기부의 경우 기본적으로 일정 규모 이상의 자산가들이 자신이 평생 꿈꿔 온 일을 대학이 대신 이뤄 주길 바라며 기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기부자를 깊이 연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일종의 ‘사람 공부’인 셈이지요. 기부자가 평소 어떤 일에 관심이 많고, 어떤 글을 썼으며 어떤 사업을 하고 있는지 등을 파악하면 답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평생 다문화 가정을 위해 봉사해 온 분이라면, 그분께는 다문화 가정 관련 프로그램을 제안하는 식입니다.”
― 평소에 인물 연구를 해야겠군요.
“그게 기부금 모금의 기본이나 다름없어요. 학교에 대외협력팀이 있습니다. 매주 회의를 열며 전략을 연구하지요. 기부자에 대해 연구한 다음 여러 아이템을 만들어 제안하는 식입니다.”
― 특별히 기억에 남는 기부 사례가 있습니까?
“법대 졸업생 중에 ‘일타 강사’로 유명한 분이 계십니다. 그분께 기부금 약정식 때, 총장실에 처음으로 오셨는지 물었어요. 그랬더니 두 번째라는 겁니다. 알고 보니 학교 다닐 때 총장실을 점거했다가 결국 출교 처분을 받았고, 나중에 복교한 경우였습니다. 당시 출교시킨 교수님에게 이런 말을 들었답니다. ‘학교에 애착이 있으니 점거도 하는 거다. 너 같은 애들이 나중에 학교에 기부금 낼 거다.’”
사고 사망자 아버지의 기부
― 실제로 이루어졌군요.
“정말 흥미로운 경우였어요. 슬픈 기부도 있습니다. 생명과학부 졸업생의 아버님께서 2억원을 기부하시겠다는 겁니다. 알고 보니 그 졸업생이 지난 2022년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분이었습니다. 하루아침에 딸을 잃고 일기장을 보니 장래 희망으로 ‘학교에 기부하기’가 적혀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이 딸이 직장에 다니며 모은 돈에 더해 기부를 하신 겁니다. 딸의 소원을 이뤄 주기 위해서요. 기부금을 전달받을 때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 그분은 기부를 통해 딸을 기리신 셈이군요.
“네. 다른 분도 계십니다. 사업을 하시면서 꾸준히 기부를 이어 온 자수성가한 교우분인데요. 크지 않은 건설회사를 운영하시면서 40대 때부터 수익이 생길 때마다 매번 몇억원씩 기부하셨습니다. 그렇게 모인 기부금이 벌써 100억원을 넘겼습니다. 정작 본인은 안암동 인근의 작은 아파트에서 매우 검소하게 생활하시죠. 평생 번 돈을 다 학교에 기부하신 것 같아요.”
― 참 대단한 분이군요.
“기부금을 전달하실 때 가족들이 함께한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가족들이 기부에 반대하는가’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아드님과 함께 오셨는데 아드님도 기부를 기꺼이 찬성하더군요. 학교 차원에서 이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기부자님과 이분의 동기들을 모두 학교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한 적이 있습니다. 보통 동기 모임에 대여섯 분이 모이신다는데 그날은 30여 분이 오셨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부축을 받으면서도 오셨어요. 기부자님께서 평소에는 늘 덤덤한 분이셨는데 그날만큼은 정말 기뻐하셨던 게 기억납니다.”
“기부는 굉장한 심리적 보상 줘”

― 선물 같은 식사 자리였네요. 기부자에게 그만한 예우가 없겠군요.
“제가 경영대 학장을 할 때 다른 단과대 학장들에게 기부에 대한 강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얘기한 기부의 원칙 중 하나가 ‘예우’입니다. 고대의 경우 기부금의 80%가량이 과거 기부한 분이 또 하는 겁니다. 사실 새로운 기부자가 발굴되는 경우는 흔치 않아요. 기부는 한번 한 사람이 반복적으로 합니다. 금액은 상관없어요.”
― 이유가 뭘까요?
“기부는 굉장히 큰 심리적 보상을 줍니다. 저도 기부를 해봤는데 기분이 아주 좋아요. 나의 기부금으로 누가 어떤 혜택을 받는다는 상상을 하면요. 그러니 기부한 분들에게 잘하는 게 사실은 가장 중요한 거죠. 그런데 기부자들 중 90% 이상이 불만을 느낍니다. ‘내가 평생 번 재산을 줬는데 내가 원하는 만큼 되는 것 같지 않다.’ 저희 학교만의 얘기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그렇습니다.”
―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주기적으로 소통합니다. 기부금을 내기 전에도, 그 후에도요. 제가 직접 만나기도 하고, 기부금 사용 보고서를 계속 보냅니다. ‘내가 낸 기부금이 이렇게 쓰이고 있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요. 기부는 일회성 거래가 아닌, 수십 년 이상 이어질 인연을 맺는 겁니다. 대를 이어 기부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 기부자 옆의 다른 이가 그 모습을 보면서 기부를 고려하는 경우도 있겠네요.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이 정도로 기부금이 모인 것도 다른 분들의 기부 소식을 접하고 동참한 분들 덕분인 것 같아요.”
김동원 총장 취임 후 고려대의 대학 평가 순위는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QS 세계대학평가(QS World University Rankings)의 경우 2023년 79위에서 2024년 67위, 2025년에는 61위로 올라서며 세계 60위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 대학 경쟁력 낮은 건 정부 규제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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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25일 고려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10회 넥스트 인텔리전스 포럼에서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A. 로빈슨 교수가 강연을 했다. |
그럼에도 한국 대학은 여전히 세계 상위권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25년 기준 세계 30위권에 들어간 대학이 한 군데도 없다. 서울대가 38위에 머물러 있다. 세계 13위(2025년)의 경제 규모인 한국의 위상과는 괴리가 크다.
― 국력에 비해 한국 대학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유가 뭘까요?
“정부의 규제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문제들이 있어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극심한 이데올로기 양극화 문제입니다. 둘째, 심각한 저출생·노령화지요. 셋째, 교육 붕괴입니다. 초·중·고는 학생이 없어서 붕괴되고, 대학은 궁핍화해 붕괴 중입니다.”
― 궁핍화요?
“일부 지방 대학 중엔 입학하는 학생들이 없으니 캠퍼스가 엉망이 된 곳도 있어요. 강의실부터 시작해 환경이 너무 열악하니 학생들이 등교를 안 하고 집에서 인터넷으로 강의를 듣기도 한답니다.”
― 심각한 문제군요.
“한국의 산업 분야나 기관 중 경쟁력이 상당히 떨어지는 곳들이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분야가 대학과 금융입니다. 한국의 금융은 세계 순위 100위 안에도 들지 못할 지경입니다. 두 분야의 공통점이 ‘정부 규제가 매우 철저하다’는 점입니다. 정부가 콱 틀어쥐고 아무것도 못 하게 하고 있어요. 그러니 혁신이 불가능합니다.”
“韓 대학 등록금, 美의 10분의 1”
― 정부가 대학을 어떻게 통제하고 있습니까?
“주로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학생 선발권을 정부가 가져갔어요.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대학이 본고사를 통해 직접 학생을 선발했지만, 현재는 대학이 선발권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반면, 외국 대학들은 각 대학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 교육 방향에 맞춰 학생을 직접 선발하고 있습니다. 대학마다 추구하는 인재상이 다른 만큼, 대학 스스로 학생을 뽑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정부가 학생 선발을 대신하고 있어요. 대학이 원하는 인재를 선발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둘째, 등록금 동결입니다. 2009년 이후 16년째 한국의 대학 등록금은 사실상 동결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 그런가요?
“얼마 전에 미국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USC)를 방문해 총장님을 만났습니다. 저를 보더니 ‘똑같은 대학의 총장을 만났다’며 반가워하는 겁니다. 양교 모두 학생 수가 약 5만 5000명이고 세계 대학 순위도 60위권으로 비슷합니다. 공통적으로 재계 인사나 운동선수를 많이 배출하기도 했습니다. 미식축구 선수 O. J. 심슨(Simpson)도 USC 출신이거든요.”
― 비슷한 점이 많네요.
“그런데 제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모든 게 비슷한데 한 가지는 확연히 다르다’고요. 바로 등록금입니다. USC의 등록금은 6만에서 8만 달러에 달합니다. 반면 고려대 등록금은 달러로 환산하면 약 6000달러에 불과합니다. 무려 열 배 차이가 나는 셈이죠. 게다가 16년째 등록금이 동결된 상태입니다. 물가상승률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16년 전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등록금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셈입니다.”
“등록금은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해야”
― 그렇군요.
“이런 상황에서 7만, 8만 달러의 등록금을 받는 해외 명문 대학과 경쟁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입니다. 등록금을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거라 봅니다. 대학마다 지향점이 다르거든요. 고려대처럼 세계적 경쟁력을 추구하는 학교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겠지요. 등록금을 올리는 학교도, 안 올리는 곳도 있을 겁니다.”
― 학생이 선택할 수 있겠군요.
“대학의 발전이 곧 국가 발전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지금처럼 대학의 성장을 억제한다면, 한국이 선진국으로 체질을 완전히 바꾸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집니다. 지금 우리는 원천 기술을 보유하지 못해 다른 나라가 개발한 기술을 신속히 따라가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 결과 세계 경제 순위 10위권에서 계속 멀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 인구도 줄고 있지요.
“인구가 줄면 기술이라도 뛰어나야 하는데 혁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지요. 고대는 현재 다문화 가정 학생들을 기회균등전형을 통해 선발하고 있어요. 인구 감소를 고려해 먼 미래를 내다보면, 이제는 결국 이민 정책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국제적 경쟁력 없는 대학 살아남기 힘들 것”
김동원 총장은 경영학 중에서도 노사관계를 전공했다. 대학 경영에 대해 물었다.
― 직접 경영해 보시니 어떻습니까? 학교라는 곳이 경직되고 보수적인 조직 아닌가요?
“신입 직원들에게 늘 이렇게 말합니다. ‘예전의 보수적인 조직을 생각하면 안 된다. 자신이 대기업 해외영업부 직원이라고 생각하고 일해야 한다.’ 학생 수가 점점 줄고 있습니다. 대학이 크게 변하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모두 어려움을 겪는다고 봐야 합니다.”
― 고려대 같은 명문 대학도 그럴까요?
“변하지 않으면 많이 위축되겠죠. 선택지가 많아지면서 학생들이 중도에 학교를 떠나기가 쉬워졌습니다. 현재 소위 ‘스카이(서울대·고려대·연세대)’ 대학을 다니다 중간에 그만두는 학생들이 적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대학이 40여 곳에 응시생은 80만 명 정도였지만, 지금은 대학은 250여 곳으로 늘어난 반면, 수능 응시생은 35만 명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해외 대학 진학자도 많으니, 대학이 개혁하지 않으면 자연스레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 대학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국제화가 필수입니다. 고려대는 모든 공식 문서와 공지 이메일에 국·영문을 동시에 표기합니다. 2년 전부터 시행했어요. 초기엔 학교 구성원들이 많이 힘들어 했지만 이제는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대 재학생 약 5만5000명 중 외국인 학생이 약 1만1000여 명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 학생 다섯 명 중 1명은 외국 출신이라는 얘기군요.
“외국에서 온 학생들은 학교 재정에도 상당히 기여하고 있어요. 정원외 학생들의 등록금은 자율적으로 책정할 수 있습니다. 미국 대학들도 타주(他州)나 외국에서 온 유학생들에겐 등록금을 더 받는 경우가 있잖아요.”
― 그렇게 되는군요.
“외국 유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고려대는 정말 ‘가성비’가 뛰어난 대학입니다. 등록금은 미국 사립대학의 10분의 1인데, 강의 수준은 높고, 한두 달에 한 번씩 노벨상 수상자들이나 각 국가의 전·현직 수반들이 방문해 강연을 합니다. 축제 기간엔 아이돌 공연도 열리죠. 외국엔 이런 대학이 거의 없거든요. 그러니 전 세계에서 학생들이 모여드는 겁니다. 앞으로 국제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는 대학은 한국에서도 살아남기 힘들 겁니다.”
《코리아 타임스》가 주관한 ‘2026 국제화 우수대학 평가’에서 고려대가 국내 대학 중 종합 1위를 차지한 배경엔 이런 노력이 있었다.
‘고대생=막걸리에 파전’은 기억 저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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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성전문 설립자 이용익 선생. |
― 지난 120년간 고려대가 대한민국 역사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은 무엇일까요?
“1905년 ‘교육구국’, 즉 나라를 구하는 인재를 기른다는 목표로 설립된 이후, 고려대는 대한민국의 독립과 산업화, 민주화 그리고 선진화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습니다. 고대보다 더 많이 기여한 학교를 찾기 힘들 정도입니다. 이제는 민족의 대학을 넘어 인류에 공헌하는 대학으로 도약할 때입니다.”
고려대는 개교 120주년을 맞아 새로운 비전을 발표했다. 바로 ‘위 아 더 넥스트(We are the next)’ 그리고 그것을 구체화한 개념인 ‘넥스트 인텔리전스(next intelligence)’다. 세계화된 차세대 엘리트들을 양성해 지구적 위기를 극복하고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여는 데 공헌하겠다는 뜻이다. 민족의 대학에서 인류의 대학으로 ‘퀀텀 점프’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대단한 변화다. 고려대생이라고 하면 ‘막걸리와 파전’을 떠올렸던 시기는 기억 저편으로 가고, 이제는 캠퍼스를 오가는 학생들 다섯 명 중 한 명은 전세계 각지에서 온 외국인 학생들이다.
고려대가 개교 120주년을 맞아 설립한 글로벌 연구 협력 네트워크 ‘케이클럽(K–CLUB)’에는 전 세계 63개국 출신 150여 명의 연구자들이 모여 인류가 직면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AI 시대에 대학 더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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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7일부터 12일까지 고려대학교에서 국제 기후 교육 프로그램 ‘기후행동단 여름학교(Climate Corps Summer School)’가 열렸다. |
“기후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어요. 한국도 이번 여름 상당히 더웠지요. 인도 어느 지역에선 너무 더워서 낮엔 커튼 내리고 잠을 자고 밤에 일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기후가 급속하게 바뀌니 ‘기후 난민’이 생기고 산업에도 영향이 미치고 있어요. 예전엔 미국 캘리포니아가 농업의 중심지였지만, 기후 변화로 인해 이제는 농업이 어려워졌습니다. 지구가 완전히 망가지기 전에 우리가 반드시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후행동단(Climate Corps)’을 만들었어요. 6대주(洲) 각지에서 학생과 교수진 150여 명이 모여 기후 문제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 AI 시대에 과연 대학이 필요하냐는 회의적인 시선도 있습니다.
“인공지능(AI)으로 인해 대학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대학이 해야 할 일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AI가 발전할 수 있도록 연구를 선도하는 일이고, 둘째 AI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이해하고, 인문·사회과학에 투자하는 겁니다. AI는 리더십, 소통, 돌봄, 협상 같은 인간적인 역량을 갖추지 못합니다.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결정을 AI는 못 내리죠. AI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를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이 따라가지 못한다면 영화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 같은 현실이 올지도 모릅니다.”
― AI 시대의 새로운 윤리가 필요하군요.
“맞습니다. 인류가 기술을 통제할 수 있도록 윤리, 문사철(文史哲), 리더십 등 형이상학적인 능력 함양을 대학이 담당해야 합니다. 정부나 기업이 대신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죠. 그래서 저희는 문과대학 건물을 새로 짓고 있습니다. 인문·사회과학이 학문의 중심이 될 가능성을 보며 미리 대비하는 겁니다.”
― 당장은 AI 시대에 대비하는 교육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그렇지요. 지난 2년간 고려대도 AI에 엄청나게 투자하며 AI 전공 교수님들을 수십 명 영입했습니다. 그렇지만 한계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AI는 결국 ‘도구’에 불과합니다. AI를 활용한 결과물의 수준은 그걸 사용하는 사람의 능력에 달려 있는 거예요. AI가 제공하는 거짓 정보를 분별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의 장래는 대학에 달렸다”
― AI가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는 ‘핼루시네이션(hallucination·환각)’ 현상도 여전하지요.
“맞아요. 당분간은 인간이 앞서가고 AI가 따라오는 구조가 될 겁니다. 그렇기에 인간의 능력을 꾸준히 키워야 합니다. 대학은 단순히 정보나 AI 분야에만 투자할 게 아니라, 인간 지성에 자신감을 갖고 함양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과 인간지능(Human Intelligence)이 결합한 ‘넥스트 인텔리전스’입니다.”
― 그게 대학의 역할이군요.
“그래서 대학에 관심을 가져 주시길 국민들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교회와 함께 대학은 가장 오랫동안 존속해 온 조직입니다. 1500년이 넘었지요. 대학은 사회 조직 중 유일하게 미래를 대비하는 조직입니다. 반면 정부나 기업, 군대는 주로 현재를 관리하는 조직이에요. 대학은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검증하고, 미래를 준비하며 지식을 축적하고 인재를 키워 냅니다.”
―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대학에서 우수한 인재를 많이 길러 낸 덕에 크게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국민들이 대학의 중요성에 다소 무덤덤해지신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10대 경제 강국인 한국의 대학들이 세계 경쟁력이 떨어져 세계 50위권에도 들기 힘든 현실입니다. 이 때문에 한국의 미래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을 국민들께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결국 한국의 장래는 대학에 달려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