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뿌리를 찾아서

SK家의 산실, 수원 고택과 선경도서관을 가다

“첫째도 인간, 둘째도 인간” 최종현 선대회장의 인재 양성과 SK의 도약

  • 글 : 고기정 월간조선 기자  yamko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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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현 회장, 점퍼 입고 새벽 순시하기도”(선경도서관장)
⊙ “기업의 자산은 곧 사람” 선경도서관, 수원과 함께한 30년
⊙ SK, 선경도서관에 250억 이어 25억 추가 기부
⊙ 가문의 기억을 품은 SK 고택, 기업정신의 산실로
⊙ 先代의 뜻을 오늘의 성과로… 최태원 회장이 이어 가는 SK정신
2025년 8월 27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에 위치한 선경도서관을 찾았다. 故 최종건 SK 창업회장 동상이 수원 선경도서관을 바라보고 있다. 같은 날 SK는 선경도서관에 25억을 기부한다고 밝혔다. 사진=SK그룹
“이거 보세요. ‘석유에서 섬유까지’라고 되어 있지요? ‘기업 확장과 함께 경영 능력을 배양시켜야 한다’는 말이 여기 있어요. 하드웨어가 중요하지만 소프트웨어도 중요하다고 강조한 말이지요. 여기에 우리 ‘선경 경영 체계’가 잉태돼 있습니다. 2000년대에 우리 회사가 일류가 된다는 것도 예측했습니다. 그때 그런 얘기를 하니까 아무도 안 믿었죠. 요즘 와서야 다들 믿지만.”
 
  《월간조선》 1990년 5월호에 실린 고(故) 최종현(崔鍾賢) SK그룹 선대(先代)회장의 인터뷰다. 그는 1975년 1월 《사보 선경》에 “석유회사를 세우겠다”는 구체적 계획을 밝힌 자료를 기자에게 보여 주며 이같이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약속을 지켰다. 1980년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해 주력 업종을 에너지·화학 분야로 전환했고, 이를 기반으로 창립된 SK이노베이션은 오늘날 대한민국 석유화학 산업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명실상부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SK가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고 최종건(崔鍾建) 창업회장과 최종현 선대회장의 토대가 있었다. 형제인 두 사람 가운데 장남 최종건 창업회장은 수원에서 직물공장으로 시작해 섬유로 사업을 확장하는 등 SK그룹의 초석을 닦았다. 그러다 그가 병환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당시 부사장이던 동생 최종현이 회사를 맡게 되었고, 선경직물 사장에 취임했다.
 
  최 선대회장은 인터뷰에서 “우등상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평범한 수원 출신 소년이 한국 5대 재벌의 수장이 되기까지에는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는 뜻이다.
 
  2025년 인크루트 조사 결과, 대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업 1위로 SK하이닉스가 꼽혔다. SK가 수많은 청년이 꿈꾸는 기업으로 성장한 비결은 무엇일까? 그 발자취를 따라 수원으로 향했다.
 
 
  ‘기업의 자산은 곧 사람’
 
수원 선경도서관 앞뜰에는 최종건 창업회장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동상 뒷편에는 ‘기업의 자산은 곧 사람’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하 사진=고기정
  서울에서 버스로 약 한 시간 반을 달리면 경기 수원시 팔달구 신풍동의 선경도서관이 보인다. 건물 앞뜰에는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높이의 최종건 창업회장 동상이 서있고, 표지석에는 그의 신념인 ‘기업의 자산은 곧 사람’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1973년 먼저 세상을 등진 형의 뒤를 이어 선경그룹을 맡았고, 형의 애향정신을 기리기 위해 도서관 건립을 결심했다. 1989년 부지를 매입해 1991년 수원시에 기증했고, 1993년 착공을 시작해 1995년 완공된 건물을 통째로 기부했다. 총 250억원이 투입된 연면적 8312㎡ 규모로, 당시 서울 강남 테헤란로의 중대형 빌딩을 살 수 있는 자금에 해당이다. 도서도 아낌없이 사들였다. 당시 선경그룹은 도서 4만 9598권, 비도서 2529점 등 총 5만 2127권을 도서관에 기증했다. 도서구입비만 8억원인데 이는 타 도서관의 4배에 이르는 규모다. 지역사회에 ‘지식의 요람’을 선물한 것이다.
 

  도서관에 기업 이름을 걸었지만 이익을 바라지는 않았다. 개관 당시 최종현 선대회장은 “최 창업회장이 강조한 ‘기업도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뜻을 이어받아 지역사회에서 기업의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잘 관리된 도서관을 보고 있자니 SK가 대한민국을 위해 노력해 온 세월이 느껴져 뭉클해졌다.
 
  개관 30주년을 맞은 도서관은 세월이 무색할 만큼 깔끔했다. 기자가 놀라움을 표하자 관계자는 “회장님께서 도서관을 지을 때 제일 좋은 것들로만 짓게 하셨다”며, 당시 비용을 따지지 않고 최고 수준의 자재를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선경도서관은 SK의 지역 인재 육성 의지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평일 오후임에도 도서관은 이용객들로 붐볐다. 1층 로비 한가운데서 열린 ‘사람을 키우다, 지식을 나누다-SK 최종건·최종현 회장 특별전’ 때문일지도 모른다. 전시 공간에는 최종현 선대회장의 삶과 SK의 성장 과정을 보여 주는 패널과 사진, 도서 등이 자리했다. 그들의 어록을 캘리그라피로 적어 놓은 책갈피도 관람객들에게 인기였다. 1995년 개관식에 참석한 최종현 선대회장의 사진도 눈길을 끌었다.
 
SK그룹 역사
 
  공정거래위원회가 2025년 발표한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정현황’에 따르면 SK그룹의 자산 총액은 362조 962억원으로 재계 2위에 올랐다. SK이노베이션, SK하이닉스, SK네트웍스 등 198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현재는 최태원 회장(최종현 선대회장 장남)이 그룹을 이끌고 있다.
 
  SK(구 선경)는 원래 직물회사로 시작했다. 1953년 최종건 창업회장이 귀속재산 ‘선경직물’을 불하받은 게 그룹의 시초다. 1966년 해외통상을 인수한 후 일본 데이진사(社)와 합작해 ‘선경화섬’을 세워 아세테이트 생산을 시작했고, 1969년 선경합섬도 세워 종합섬유사업군(群)을 형성했다.
 
  1973년 최종건 창업회장이 사망하면서 동생 최종현 선대회장이 경영권을 승계받았다. 이후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를 내세우며 컨트롤타워 조직 ‘기획실’을 발족한 뒤, 1979년 고유 경영관리 체계 ‘SKMS(Sunkyung Management System)’를 정립했다.
 
  1980년에는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해 주력 업종을 에너지·화학 분야로 바꾸었고, 1985년에는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조직해 정보통신 사업 준비에도 주력한 후 1989년 ‘수펙스(SUPEX) 추구법’을 도입했다.
 
  1994년에는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해 사세를 더욱 키워 갔다. 이후에도 SK커뮤니케이션즈를 통해 라이코스코리아, 싸이월드 등의 IT 업체를, SK텔레콤을 통해서는 신세기통신, 하나로텔레콤 등의 통신 업체를, SK에너지를 통해 인천정유 등 각종 기업들을 인수하면서 단숨에 대한민국 4대 재벌로 급부상한다. 1998년 현 명칭인 SK로 바꾼 후 1999년에는 을지로입구에 있던 지상 13층짜리 선경빌딩을 헐고 종각역 인근 종로구 서린동 사옥으로 그룹 본사를 이전했다.
 
  SK, 선경도서관에 25억 추가 기부
 
수원시립 선경도서관에서 故 최종건 SK 창업회장과 최종현 선대회장을 기리는 전시가 열렸다.
  당시 인구 75만 명의 대도시였던 수원은 공공도서관이 두 곳뿐이라 시민 불편이 컸다. 선경도서관 개관 이후 시민들은 안정적으로 독서 문화를 향유할 수 있었다. 최 선대회장은 도서관을 단순한 책 보관소가 아니라 ‘사람과 생각이 만나는 장(場)’으로 만들고자 했다. 주부와 어린이 열람실을 따로 마련하고, 강당과 전시실에서는 독서교실, 독후감 발표회, 전문가와의 만남, 가족극장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렸다. 2025년 기준 선경도서관엔 연(延) 2113만 명이 방문했으며 도서 대출 권수는 연 720만 권에 달한다.
 
  지난 8월 27일 열린 개관 30주년 기념식에서 SK그룹은 선경도서관에 25억원을 추가 기부한다고 발표했다. 행사에는 김병수 수원시 도서관사업소장, 이명옥 선경도서관장, 한정규 (사)화성연구회장, 황미숙 문명역사연구소 소장, 고영자 수원시민, 김상훈 캘리그라피 작가 등이 참석했다. 도서관은 이번 출연을 계기로 노후화한 시설을 개보수하고 시민의 복합문화공간으로 변화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날 간담회에서 이명옥 관장은 “선경도서관은 전국 최초로 전산화를 시작한 도서관”이라며 “후원에 감사드리며, 앞으로 전국의 대표 문화 명소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또 “당시 막내 직원이라 (최 선대회장을)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선배들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도서관에 대한 애정이 깊어 새벽마다 점퍼만 걸친 채 현장을 자주 찾으셨다고 한다”고 전했다.
 
  수원 시민 고영자씨는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책을 구매할 수 없었던 시절, 아이들과 함께 매일 선경도서관에 책을 보러 왔었다”며 “저희 가족은 30년 동안 선경도서관의 혜택을 받고 살았다. 저에게는 친정집 같은, 가슴이 짠해지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작은아이 이름을 ‘선경’이라고 지었는데 선경도서관에서 꿈을 키우며 무럭무럭 자라 SK에 입사하게 됐다”고 밝혀 놀라움을 안겼다.
 
 
  SK의 뿌리 ‘SK 고택’
 
SK 고택 내부 모습. 당시 사용하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수원역 번화가에서 차량으로 겨우 10분쯤 달리니 높은 건물이 사라지고 한적한 동네가 나타났다. 담장이 옹기종기 붙어 있고 대부분의 도로가 1차로일 만큼 고요한 동네였다. 기자 일행의 발걸음이 오히려 소란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평화로웠다.
 
  논밭 사이로 작은 한옥이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도 검은 기와지붕과 길게 뻗은 붉은 벽돌 담장이 범상치 않아 보이는 이곳이 바로 SK의 발상지인 ‘SK 고택’이다.
 
  경기도 수원시 평동 7번지에 위치한 SK 고택은 1926년 최종건 창업회장, 1929년 최종현 선대회장이 태어나 40여 년을 산 SK가(家)의 뿌리다. 1921년 최태원 회장의 조부모이자 두 형제의 부모인 최학배(崔學培) 선생과 이동대(李同大) 여사가 터를 잡아 4남 4녀의 대가족을 꾸렸다. 고택은 1111㎡ 부지 위에 75㎡ 규모의 한옥과 94㎡ 전시관으로 구성돼 있다. 붉은 벽돌 담장에는 ‘SK 古宅(고택)’이라는 검은 문패가 걸려 있고, 아치형 대문을 지나면 넓은 마당 너머로 기와와 목재가 어우러진 한옥이 드러난다. 내부는 현대식으로 단장했으나 당시 사용하던 유품이 전시돼 멋스러움이 묻어난다. 대부분의 전시품은 SK가에서 기증한 것으로, 1950~60년대 최 창업회장의 사업 설립기와 최 선대회장의 수출·고도화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내부는 대청마루, 안방, 건넌방으로 이뤄져 있다. 처마에는 ‘학유당(學楡堂)’이라고 새겨진 현판이 붙었다. 창업회장과 선대회장의 부친인 최학배 선생의 ‘학(學)’ 자와 느릅나무 ‘유(楡)’ 자에서 따왔다.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고향의 느릅나무 한 쌍을 낙양으로 옮겨 신성한 공간으로 여겼다는 고사와 연결해 ‘창업자의 고향’이라는 의미로 붙였다고 한다.
 
 
  걸인에게도 밥상 차려 준 이동대 여사
 
경기 수원시 권선구에 위치한 SK 고택. 최종건 창업회장과 최종현 선대회장이 태어나 40여 년을 산 SK가의 뿌리다.
  한옥 안으로 들어서면 절구, 항아리, 가마솥이 있는 부엌이 나온다. 가옥 바깥에는 온돌 구조가 남아 옛 주거 방식을 보여 준다. 고택 관계자는 “이동대 여사는 선경직물(현 SK네트웍스) 임직원들이 방문할 때마다 이 부엌에서 직접 음식을 해 대접했다”고 전했다. 또 제사 때 음식을 이웃과 나누고, 걸인에게도 밥상을 차려 주고 보냈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SK의 뿌리를 이룬 셈이다.
 
  신발을 벗고 들어선 내부는 정갈하게 관리된 한옥의 멋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성인 6~8명이 누울 수 있을 만큼 넓은 대청마루는 가족들이 제사를 지내고 함께 뛰놀던 공간이었다. 안방에는 자개장, 재봉틀, 출장 가방, 이불, 금고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안쪽 다락에는 이동대 여사가 8남매를 위해 간식을 두고 살림을 챙겼던 흔적이 남아 있다. 벽에는 최학배 선생과 이동대 여사의 사진이 걸려 있다.
 
  방 한켠에 달러화 위폐가 가득 담긴 상자가 뚜껑이 열린 채 놓여 있어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관계자는 “최 선대회장을 유학 보내기 위해 최학배 선생이 모아 놓은 자금을 복원해 전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창업회장이 사업을 이끌어 갈 자금이 없어 어려움을 겪었을 때 최 선대회장이 자신의 미국 유학 자금을 기꺼이 내주어 선경직물이 계속해서 사업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고택 곳곳에 깃든 생활의 자취는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SK가의 정신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었다.
 
  직물을 보관하던 창고는 전시관으로 탈바꿈했다. 이곳은 오늘날 SK가 있기까지의 역사를 시청각 자료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첫 번째 공간인 ‘SK 고택에서 시작되다’ 존(zone)에서는 SK가의 가계도와 역사가 소개되며, 디지털화된 가족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최학배 선생과 이동대 여사의 생전 모습이 인공지능(AI) 기술로 움직이는 이미지로 재현돼 눈길을 끌었다. 이어 양옥집 접견실을 재현한 ‘SK의 성장과 함께하다’ 존, 그리고 SK그룹의 사회공헌 활동을 소개하는 ‘다음 세대에 나눔을 전하다’ 존에서는 그룹의 성장 과정과 나눔의 정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든 것은 최종건 창업회장, 최종현 선대회장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무인(無人) 포토부스였다. 사진기 앞에 서면 두 사람 중 한 명과 합성 사진을 남길 수 있어 젊은 세대에게 특히 호응이 높았다. 다소 ‘MZ스러운’ 시도였지만, SK의 정신을 쉽고 친근하게 전하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2024년 4월 8일에는 최태원 회장이 SK 일가 20여 명과 함께 고택을 찾아 느릅나무를 심으며 선대의 기업가 정신을 계승할 뜻을 새겼다. 최 회장은 또 관람객들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의자와 음료를 비치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마당 한쪽에 놓인 의자가 그의 세심한 배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수원 선경사업관
 
  SK 고택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수원 선경사업관’이 나온다. 옛 선경직물 공장 터에 박물관을 지어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의 수원 근대 산업 역사와 선경직물의 초창기 모습을 볼 수 있는 전시관으로 꾸몄다. 수원시와 SK네트웍스·SK건설이 2020년 ‘구 선경직물 재현건물 재조성협약’을 체결하고 함께 수원 선경산업관을 조성했다고 한다. 평동 문화공원에는 옛 선경직물 사무실로 사용했던 관리동 건물과 본관동 건물이 재현돼 있었는데, 건물 활용 방안을 고심하던 수원시가 SK 측으로부터 ‘선경직물 옛 건물을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연출하고 싶다’는 내용의 의향서를 받고 협약을 체결했다. 화~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지상 2층, 연면적 122㎡ 규모인 본관동에는 수원 근·현대 산업사(1층), 선경직물에서 시작된 SK그룹의 발전사를 볼 수 있는 전시물이 있다. 당시 선경직물 집무실도 재현했다. 명함에 적힌 최종현 선대회장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면 SK의 역사를 설명하는 음성 안내가 나오는 것도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박물관 관람에 감초 같은 역할을 해줬다. 단층 71㎡ 규모의 관리동에서는 옛 선경직물에서 사용했던 방직기 등 선경직물 관련 전시물을 볼 수 있다.
 
 
  선대의 정신을 오늘의 성과로 잇는 SK
 
  최종건 창업회장은 선경직물을 운영하던 시절, 전기가 끊겨 공장 가동이 어려운 시간에는 한글을 모르는 직원을 불러모아 한글을 직접 가르쳤다. 최종현 선대회장도 형의 인재 사랑을 이어받아 실천했다. 최 선대회장은 “기업 경영에서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첫째도 인간, 둘째도 인간, 셋째도 인간이다”라고 강조했다.
 
  두 선대 회장의 철학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고스란히 이어졌다. 최 회장은 1998년 부친 최종현 선대회장 별세 이후 선경도서관에서 열린 추도음악회에 참석해 선친을 기리며 그 뜻을 잇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후 2018년 선대회장 20주기를 맞아 사재로 보유하던 SK(주) 주식 20만 주(당시 약 520억원 상당)를 출연해 ‘최종현학술원’을 설립하고 직접 이사장을 맡았다.
 
  ‘제집 어른 섬기면 남의 어른도 섬긴다’는 속담이 있듯, 선대 회장들을 각별히 기리는 최태원 회장은 직원들을 살뜰히 챙기는 경영자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SK하이닉스는 올해 최대 1억원의 성과급 지급 소식으로 직원들의 애사심을 높였고, 세계적 성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최 회장이 이끌어 가는 SK그룹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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