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용접공학 1세대 황선효 소장

“용접은 우리나라 제조업의 성공 열쇠”

  • 글 : 김광주 월간조선 기자  kj961009@chosun.com
글자 크기 조정
  • 스크랩
  • 본문 음성 듣기
  • 글자 크기 조정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 ‘박정희 유학생’으로 13년간 독일 유학… 국내 최초 독일식 전문가 양성 과정 도입
⊙ “용접은 용접봉 드는 일… 학위 위주가 아닌 현장 중심으로 가르쳐야”
⊙ 재직했던 한밭대에 1억원 기부 “46년간 국가로부터 혜택 받았다”

黃善孝
1942년생.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獨 아헨 공대 철강공학 석·박사 / 獨 아헨 공대 철강연구소 연구원,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책임연구원,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겸직교수, 한국기계연구원 해사기술연구소 용접기술연구부 부장, 국립한밭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역임. 現 한밭용접연구소 소장
황선효 소장이 9월 5일 《월간조선》과의 인터뷰 도중 시편(試片)을 들고 설명하고 있다.
“그 당시엔 물리학과를 졸업해 갖고선 취직할 데가 없었어요. 물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물리학과를 나왔고, 좋은 학과라는 건 분명하지. 하지만 저 때만 해도 물리학과를 나와선 잘 풀리면 중고등학교 교편을 잡는 정도였어요. 그래서 기왕 다른 전공을 공부할 거면, 마침 그때 포철(포항제철) 만든다 하고 철강 붐이 일었으니까, 돈벌이 잘되는 데로 가려고 했죠. 용접 쪽으로 뭔가를 해보려는 큰 뜻이 있었던 것도 아니에요.”
 
  팔순 넘은 노교수는 겸손했다. 황선효(黃善孝·83) 한밭용접연구소 소장은 60년 전 독일로 건너가 원래 전공인 물리학이 아닌 철강공학을 13년 동안이나 공부하게 된 배경을 솔직하게 얘기했다. 그때만 해도 몰랐다고 한다. 평생 연구한 용접 기술과 철강공학이 고국의 미래를 어떻게 바꿔 놓을지.
 
  국가 주력 산업의 근간이 용접이다. 자동차, 선박, 방위산업은 물론 원자력 발전소에서도 용접 기술을 활용해 뭐든지 붙인다. 9월 5일 대전에 위치한 황 소장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철 조각을 용접으로 이어 붙인 모형 시편(試片)을 가져온 그는 실내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모든 게 다 용접 아니냐”고 했다. 한국 철강산업과 용접공학의 ‘1세대’인 황 교수는 그 발전사(史)를 담담히 풀어 놓기 시작했다.
 
 
  ‘박정희 유학생’
 
  “대학교(서울대 물리학과) 4학년 때 벽에 붙은 공고문을 보니까 독일 장학생을 10명 정도 받으니 원하는 사람은 응시하라고 쓰여 있더라고요. 그때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독일에 갔어요. 돌아다니면서 거지 흉내를 냈겠죠. 여기저기 가서 ‘뭐 좀 해달라’고요. 그중 하나가, ‘젊은 한국인들을 위해 장학금 좀 지원해 주세요….’ 지나고 보니 참 현명한 결정이지.”
 
  ― 독일에 갔을 때 기술력 격차를 많이 느꼈나요?
 
  “제가 대학교를 졸업할 때만 해도 우리나라에 포철(현 포스코)이 없었어요. 그땐 전기로(電氣爐)라고 해서, 전기를 통해 열을 가하고 그걸로 철을 달구고 두들겼죠. 한국에서 직접 철을 생산한다니, 그것도 연간 6000만~7000만 톤씩? 꿈에도 생각 못 했죠. 마침 그 당시에 철 생산 기술이 가장 발달한 나라가 독일이었어요. 영국, 미국보다 훨씬 기술이 좋았죠.”
 
  ― 아헨(Aachen) 공과대학에선 어떤 걸 보고 겪었나요?
 
  “독일에 루르(Ruhr) 공업지대라고 있어요. 철강공학을 시작하려고 알아보니 루르 공업지대가 독일에서 각종 철광석, 철 가공도 하고 용접도 하고 포징(drop forging·단조), 주물(鑄物)… 여러 가지를 하는 대표적인 곳이더라고요. 그 지역에서 학문적 수요를 맡는 게 아헨 공대였어요. 그런 것들을 정제해서 용광로에 넣고, 철강 제품을 만들고. 철광석 돌멩이에서 쇳물을 만들어야 하고 그 쇳물을 가공하고 주조(鑄造)해서 포밍(forming·성형)하는 전 과정이 이뤄지다 보니, 이걸 공부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헨 공대에는 광산학부도 있고 금속학부도 있고, 철강과 광산을 합쳐 놓은 학부가 있었어요. 금속학부 안에도 8~9개 학과, 그 외에도 비철금속과가 있었고요. 철이 아닌 알루미늄, 니켈, 코퍼(구리)를 다루는 학과죠. 포밍을 다루는 학과도 있었어요. 그리고 각 학과마다 연구소도 하나씩 있었어요. 관련 산업 현장이 학교 주변에 깔려 있었죠.”
 

  ―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어떤 업적을 이뤘습니까?
 
  “일부 도움이 됐겠지만 제가 인볼브(involve·참여)해서 국가산업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연구원으로 일하고 대학에서 엔지니어를 기르고, 가르칠 뿐이죠.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기르는 게 더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 책상머리 이론과 현장 교육은 다르다는 거군요.
 
  “다르죠. 물론 대학에서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 하지만 대학 졸업하고 논문 쓰는 사이에 시간이 가버려요. 실제 물건을 만드는 데 학술활동이 가장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현장 기술이 필수적이에요. 현장을 서포트해야죠. 박정희 대통령 때 기능 교육의 중요성을 일찍이 알아보고 폴리텍대학(구 직업훈련원)을 만들었죠. 정말 필요한 조치였고 탁월한 혜안(慧眼)이었어요.”
 
 
  기능사 양성 모델이 된 독일
 
한밭대가 황선효 소장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헌정한 동판. 사진=한밭대
  황선효 소장은 국내 용접 기능사 양성 시스템에 주춧돌을 놓은 인물이다. 1980년 12월 용접기술협의회가 발족했고, 이 단체 창립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한국기계연구원 용접기술연구부 책임연구원을 맡을 때였다. 1982년 5월엔 한국기계연구소 용접연구실장으로 부임했다. 독일에서 철강 재료의 저온균열(수소 유기파괴) 발생 메커니즘을 전공한 황 소장은 국내 용접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용접학회와 용접조합을 창립하고 1986년 국내 최초로 독일식 용접 전문기술자(SFI) 양성 사업을 시작하는 등 많은 역할을 했다.
 
  황 소장이 독일에서 맺은 인적 네트워크는 여기에 큰 도움이 됐다. 국내 용접 분야 전문가 양성에 필요한 틀을 구축하는 데 관련 분야 강국과의 교류는 필수적이었다. 용접전문기술자(IWE) 과정은 2024년 12월까지 총 38회 운영됐으며 과정을 거쳐 자격증을 취득한 인원은 807명이다. 이들은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용접 전문기술자로 활동하고 있다.
 
  ― 용접전문 기술자 과정을 개설하게 된 배경이 있나요?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국내 용접 엔지니어의 양성 기관이 없었어요. 각 기업이 내부에서 OJT(직장내 교육)를 할 수 있는 유능한 용접 엔지니어도 거의 없는 상황이었고. 이런 국내 사정을 감안해 한국기계연구원 선박분소 용접기술연구실에서 용접 엔지니어 양성에 중점을 두고 있었어요. 그 모델이 된 게 독일의 SFI 제도였고요. 이러한 사업계획서를 독일 정부에 제출했어요. 다행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서 1986년 8월부터 한국기계연구원에서 SFI를 국내 최초로 시작할 수 있게 됐죠.”
 
  고령의 나이에 걷는 속도도 더딘 그는 현장 기술 인재를 한 명이라도 더 양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지난 8월 30일엔 교수로 재직했던 한밭대에 1억원을 기부했다. 산학(産學) 협력과 후학을 위해서다. 그러면서 “46년간 국가의 혜택을 받으며 생활해 오고 있다”며 “이제는 사회에 무언가 환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뜨거운 열기 앞에서 용접봉을 드는 일’
 
한국의 용접 교육은 기능보다 이론 중심이어서 제한적이다. 사진은 용접 장면. 사진=뉴시스
  하지만 앞으로의 신규 기능사 양성에 대해 황선효 교수는 “우려스럽다”고 했다. 앞서 2022년 법무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조선업(造船業) 활황기에 맞춰 용접공과 도장공에 대한 E-7(특정활동) 비자의 쿼터제를 폐지하는 등 외국 인력의 추가 고용을 위한 요건을 완화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4년 산업기술인력 수급실태조사’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조선업은 8년 연속 인력 감소세에서 반등했지만 외국인 비중도 전년 대비 6.2%p 늘었다. 또 구인과 채용 인력 가운데 경력자 비중이 5년간 점진적 상승 추세를 이어 가고 있다.
 
  ― 현재 기능공이 충분히 배출되고 있다고 보나요?
 
  “옛날엔 용접 기능공의 숫자가 많았어요. 우리나라에서만 한 해에 용접 관련 인원만 1만 명 단위로 나왔죠. 지금도 그 정도로 필요할 거예요. 하지만 요즘의 기능 교육에 대해선 아쉬움이 남아요. 독일과 같은 선진국에선 매년 1000명 단위로 기능공이 나오는데, 그들이 대학 졸업자 부럽지 않은 봉급을 받고 일해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차이가 나다 보니 용접 기능을 가르치는 것도 대학처럼 이뤄지고 있어요. 용접은 뜨거운 열 앞에서 용접봉을 들고 잘 지져야 하는 일 아닙니까? 근데 수준을 높인다는 이유로 정작 필요한 교육을 안 하고 학생 수를 늘리기 위해 대학교 학위 과정 위주로 하니 문제가 있죠. 아무래도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보니 기능을 가르치는 곳에서도 현실적인 교육보단 이론, 자격증 취득 위주로 가르치고 있어요. 기능사 1급 자격증을 갖고 있어도 당장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인력이 아니에요.”
 
 
  AI가 도달하지 못하는 영역
 
  ― 자격증을 따기 위한 ‘족집게 과외’로는 한계가 있다는 건가요?
 
  “그렇지. 자격증 따는 건 좋죠. 그런데 그 자격증이 실제 능력을 대변할 수 있는 자격증이어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자격증과 실제 실력 사이에 괴리가 있는 거예요. 독일은 실제 현장에 맞는 교육을 하고, 이런 쪽으로 강해요.”
 
  ― 그래도 국내 용접 기능사들의 손기술은 인정받지 않나요?
 
  “박정희 대통령과 박태준(朴泰俊) 포항제철 초대 회장 때 쌓은 용접 기능사들의 기량이 영향을 줬겠죠. 그 기능사들이 좋은 교육을 받아서는 아니라고 봐요. 현장에서 개인이 치열한 노력을 했을 것이고, 기업에서도 투자를 하는 등 애를 썼죠. 하지만 현재는 용접 분야 인재들이 줄어들고 있어요.”
 
  ― 요즘엔 인공지능(AI)를 활용한 용접 로봇도 등장했습니다.
 
  “사람을 대체할 수 있으면 아주 좋다고 봐요. 하지만 용접을 하는 대상은 굉장히 다양해요. 용접하기 아주 어려운 환경도 있고, 재료나 설계에 따라서 어떻게 움직이며 용접해야 하는지 까다로운 것도 있어요. 그걸 AI가 판단해서 자동으로 움직이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거예요. 고급 제품이나 복잡한 구조물은 필히 사람이 해야 할 영역이라고 봅니다. AI가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커지겠지만 도달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다고 봅니다.”
 
  ― 용접 기술자를 양성해야 할 필요도가 줄진 않을까요?
 
  “용접 기술 교육의 수혜자는 용접 재료 및 장비 제조업자와 관련 공공기관이 될 겁니다. 이 숫자는 대단히 많을 거예요. 용접은 우리나라 제조업 성공의 열쇠라고 할 수 있어요. 조선, 방위산업, 철도 차량, 자동차, 항공기, 건설, 토목, 화학 플랜트, 반도체 등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 걸쳐 존재해요. 용접 기술 관련 인력은 직접 용접을 하는 용접 기능사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용접부의 품질을 보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국제 용접 전문기술자(IWE) 등이 있어요. 용접 기술자를 적극적으로 양성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죠.”
 
 
  용접만큼 중요한 ‘비파괴 검사’
 
  용접은 이어 붙인다고 다가 아니다. 이음새가 잘 붙었는지, 내부에 보이지 않는 기포나 흠집, 균열 등 다양한 결함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방사선이나 초음파 등을 통해 반드시 확인을 거쳐야 하는데 이를 ‘비(非)파괴 검사’라고 한다.
 
  황 교수가 가져온 시편 두 개는 철 조각 몇 개를 이어 붙인 고철 덩어리에 불과해 보였다. 황 교수는 기자의 속내를 눈치챘다.
 
  “사람들 눈엔 고철이고 별거 아니지만 하나에 60만~400만원 정도 합니다.(웃음) 가공 벤딩, 주물, 주조 등을 하고 용접을 하면 결함 확률이 높아지죠. 그래서 현장에 들어가기 전 검사자들은 목업(mockup·실물 크기 모형) 테스트를 하려면 이런 시편을 보여 주고 결함 검출을 잘하는 사람인지 확인해 봅니다. 이에 대한 국제규격은 ‘ISO’라고 하고요.”
 
  ― 여기 보이는 기포 자국이 결함인가요?
 
  “아, 그 부분은 결함이 맞죠. 하지만 눈에 안 보이는 결함을 부수지 않고 찾는 게 비파괴 검사에요.”
 

  ― 비파괴 검사 방법엔 어떤 게 있나요?
 
  “방사선도 있고 초음파도 있고, 쇳가루가 자석에 반응하는 것을 이용한 것도 있고, 약물을 표면에 뿌려서 크랙을 확인하는 방법도 있어요.”
 
  ― 접합 부위가 너덜너덜해진 걸 찾는 건가요?
 
  “보기에 너덜너덜한 게 아니라, 용접한 자리에 쇳물이 녹았다가 식은 데가 있잖아요. 거기에 보이지 않는 크랙들이 많이 생기죠. 그러다 그 부위가 깨지면 사고가 납니다.”
 
  그가 연구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한밭용접연구소와 명예교수로 있는 한밭대에선 용접 및 비파괴 검사(NDT) 교육을 핵심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선 과거 KS(한국산업표준) 체계에 따른 비파괴 검사 규정이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었지만 국제적 인지도 측면에서 한계가 있었다. 이에 황 교수를 필두로 한 한밭대 용접접합센터는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교육 및 평가 체계를 정립해 다양한 분야에서 즉시 투입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 스크랩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