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

김성민 전 자유북한방송 대표

20여 년간 북한에 자유 메시지를 전파한 투사이자 시인

  • 글 : 고기정 월간조선 기자  yamko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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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월간조선
20여 년간 대북 라디오 방송을 이끌며 북한 인권과 북한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던 김성민(金聖珉) 전 자유북한방송 대표가 9월 12일 오후 1시5분경 향년 63세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2017년 폐암과 전이 뇌종양이 발병해 치료를 받았다. 이후 병세가 호전됐으나 지난해 다시 암이 전이돼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고인은 1962년 자강도 희천시에서 시인 김순석의 아들로 태어났다. 평양 김형직사범대학 어문학부를 졸업한 뒤 북한군 예술선전대에서 장교(대위) 작가로 활동하던 중 1995년 북한을 탈출해 1999년 2월 한국에 입국했다.
 
  고인은 한국에 들어온 후에도 틈틈이 시작(詩作)을 이어온 예술가였다. KBS의 대북 방송인 ‘사회교육방송’에서 근무하다 2003년 노무현 정부 당시 대북 방송을 전면 중단하자 일을 그만뒀다. 이후 2005년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2007년 4월 《자유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올해 6월에는 시집 《병사의 자서전: 시가 있는 이야기》(북앤피플 펴냄)를 펴냈다.
 

  고인은 탈북 초기부터 북한 인권 활동을 펼쳤다. 2004년 4월에는 서울에서 국내 첫 민간 대북 방송인 자유북한방송을 창립했다. 인터넷 방송으로 시작한 자유북한방송은 2005년 12월부터 단파(短波) 방송으로 전환됐다. 그는 수시로 협박 편지·이메일을 받으면서도 북한 정권을 향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고인은 지난 1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제가 자부하는 것은 자유북한방송은 대북 방송을 시작한 이후로 매일 2시간씩, 365일, 20년 동안 단 하루도 중단하지 않고 방송을 했다는 것”이라며 “이렇게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끌고 온 것에 긍지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의 맏형
 
김성민 대표가 《병사의 자서전》 출판기념회에서 탈북자들과 활짝 웃고 있다. 가운데 모자 쓴 이가 김 대표.
  또한 고인은 2004년부터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매년 북한자유주간 행사를 진행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고인은 작년 제1회 북한이탈주민의 날에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북한이탈주민으로서 탈북민 정착 지원 공로로 훈장을 받은 것은 고인이 최초다. 그 외에도 프랑스 국경없는기자회가 주는 올해의 매체상(2008), 대만 민주주의기금이 수여하는 아시아 민주인권상(2009),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이 주는 북한인권상(2019) 등을 받았다.
 
  고인은 북한 체제에 대해서는 불굴의 투사였지만, 고향을 떠나온 후 마음 둘 곳 없어 하는 이탈주민들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운 맏형이었다. 탈북자들을 18평짜리 임대아파트로 불러 삽겹살을 구워 주고 술잔을 기울이는 고인 때문에 집 도배를 몇 번을 다시 해야 했다고 한다. 그가 지냈던 백두한라회 회장, 탈북자동지회 회장 직책은 ‘벼슬’이 아니라 봉사하는 자리였다.
 

  고인의 뒤를 이어 자유북한방송 신임 대표를 맡게 된 이시영씨는 지난 3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김성민 이사장을 만난 것은 천운”이라며 “초창기 헤매던 제게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해서 좋다’며 호방하게 웃었고, 실수를 할 때마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며 칭찬해 줬다. 살면서 그렇게 늘 처음 만났을 때처럼 변함없는 분은 처음 뵈었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아내 문명옥씨와 딸 예림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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