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역사

LA폭동으로 다시 부각된 ‘루프톱 코리안’

트럼프 주니어가 ‘루프톱 코리안’을 언급한 이유는?

  •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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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LA폭동 당시 한인타운 수호 위해 총을 들고 지붕으로 올라간 한인들
⊙ LA폭동 취재해 논픽션 쓴 폴라 유 작가, “폭동 당시 흑인 수백 명이 한인 가게 지켜주기도…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고 ‘루프톱 코리안’ 이미지 활용하면 이런 연대와 친절 지워지고 무작위로 총을 쏘는 ‘미친 자경단’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 트럼프 주니어가 올린 사진 원작자 강형원 사진기자, “트럼프 주니어에게 사진 삭제 요청했지만 대답 없어”
1992년 LA폭동 당시 한인타운 가주마켙 옥상에서 밤을 새운 한인 남성이 소총을 손질하고 있다. 트럼프 주니어가 SNS에 올린 사진이 바로 이 사진이다. 사진=강형원 포토저널리스트
‘지붕에서 한국어가 들리면 폭동이 멈춘다(Everybody rioting until the roof starts speaking Korean).’ 기묘한 문장이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Donald Trump Jr·48)의 SNS에 등장했다. 6월 9일(한국시각) 얘기다. 트럼프 주니어는 총기를 손보고 있는 한국인 남성의 사진을 SNS에 올렸다. X(구 트위터)며 인스타그램, 트루스소셜까지 그의 계정마다 등장했다. 이 사진에는 지붕에서 한국어 운운하는 특이한 자막과 함께 트럼프 주니어의 의견이 달려 있다. ‘Make Rooftop Koreans Great Again!(루프톱 코리안을 다시 위대하게!)’ X에서만 이틀 만에 600만 명 이상이 이 게시글을 봤다. 참고로 트럼프 주니어의 X 팔로워 수는 1500만 명이 넘는다.
 
  이게 다 무슨 뜻일까. 1992년 LA폭동을 알아야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다.
 
 
  폭동 일어나자 철수한 경찰
 
  1992년 4월 2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그날 선고된 한 판결 때문이었다. 흑인 남성 로드니 킹(1965~2012년, 사건 당시 25세)은 1991년 음주와 마약을 하고 과속으로 운전하다 경찰 단속에 걸리자 저항했다. 백인으로 이뤄진 LA 경찰들은 집단구타하다시피 하며 킹을 제압했고, 이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공개되어 공분을 샀다. 경찰들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1명은 재심).
 
  분노한 흑인들은 폭동을 일으켰고, 흑인 밀집 구역 바로 옆에 있는 한인타운으로 약탈과 방화가 번졌다. 지리적 인접성 탓도 있었지만, 1년여 전 일어났던 라타샤 할린스(Latasha Harlins, 당시 15세) 살해 사건의 여파도 컸다. LA에서 주류판매점(Liquor Store)을 운영하던 한인 이민자 1세대 중년 여성 두순자가 자신의 가게에서 흑인 소녀 라타샤 할린스를 절도범으로 오인해 몸싸움 끝에 권총으로 사살한 사건이다.
 
  이 일은 어쩌면 도화선에 불과했다. 흑인과 히스패닉 이민자들 사이에는 한인들에 대한 불만이 이미 쌓여 있었다. 한인들은 편의점과 주류판매점 등 흑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가게들을 운영했는데, 영어와 미국 문화에 능숙지 않은 한인 1세대들과 흑인들 사이에 오해가 쌓이는 경우가 잦았다. 영어를 잘 못하는 이민 1세들은 오해가 쌓였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폭동이 일어나자 한인들의 상점은 이윽고 목표물이 됐다.
 

  4월 29일 사무실에서 나와 차를 몰고 이동하던 강형원 당시 《LA타임스》 사진기자는 경찰 교신을 듣고 있었다. 사진기자에게 지급되는 취재 차량에는 경찰의 무선 교신을 언제든 들을 수 있는 무전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언제든 사건 현장으로 달려가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상한 지시가 흘러나왔다. ‘전 경찰대원은 플로렌스와 노먼디 거리 교차 지점에서 떠나라.’ 그곳으로 가라는 게 아니라 떠나라니, 곱씹을수록 희한한 지시였다.
 
  얼마 후, 《LA타임스》 사진기자들끼리 쓰는 무전기에서 동료 기자의 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플로렌스와 노먼디 교차점에 있다. 폭동이 일어나 난리가 났다’는 내용이었다. 안 그래도 로드니 킹 사건의 판결을 듣고 흑인 사회의 반응을 걱정하던 참이었다.
 
  그날 저녁 강 기자는 동료와 함께 폭동 현장으로 갔다. 흑인들이 쇼핑센터의 철문을 구부러뜨리고 들어가 물건들을 훔쳐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히스패닉들도 약탈 행렬에 가세했다. 그 모습을 촬영하는데 덩치 큰 흑인 남성이 야구 방망이를 들고 그를 향해 달려왔다. 강 기자는 대기 중이던 신문사 차량으로 정신없이 달려갔다. 운전대에 앉아 대기하고 있던 동료는 강 기자가 차 안으로 뛰어들자마자 가속 페달을 밟았다. 부근 건물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폭도들이 약탈한 상점에 불을 질러서였다. 그곳 어디에서도 현장을 지키는 경찰을 만날 수 없었다.
 
 
  망루가 된 쇼핑센터
 
자발적으로 자경대를 조직해 한인타운을 지킨 한인 청년들. 이들의 손에 들린 권총은 이들이 공격이 아닌 방어를 위해 무장했다는 걸 보여준다. 사진=강형원
  그다음 날 아침 배포된 《LA타임스》엔 강 기자가 포착한 폭동 현장이 생생히 담겨 있었다. 다음 날인 4월 30일, 폭동의 불길이 한인타운으로 번졌다. 어느 건물에서 한인 남성들이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이 TV 뉴스에 나왔다. 강 기자는 그곳이 어디인지 단박에 알아봤다. ‘가주마켙.’ 한인타운 중심에 위치한 그곳은 한인 이민자들이 한국 식재료와 생필품을 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였다. 여러 개의 상점이 모여 있는 마치 쇼핑센터에 자리한 재래시장 같은 곳이었다. 그곳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곳이 아닌 한인들이 안부를 주고받고, 일상을 나누는 한인 커뮤니티의 구심점 중 한 곳이었다. 상점이 모여 있으니 집중적으로 약탈당했다. 강 기자는 카메라를 들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총을 든 한인들이 가주마켙 옥상으로 올라갔다. 시야가 트인 그곳은 방어에 적합했다. 이미 가게를 지키던 한인 여러 명이 습격으로 부상당한 후였다. 한인 보석상 앞에서는 여성들이 총탄을 맞고 병원으로 실려 갔다. 한인들의 고단한 삶을 껴안아주던 그곳이 그날 밤 한인들의 삶을 지켜주는 망루가 됐다. ‘루프톱 코리안’ 한인 1세 남성들은 대부분 한국에서 군복무하며 총을 다뤄봤다. 한국 전쟁과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이들도 있었다. 한인 자경대는 총을 쥔 채 옥상에서 밤을 맞았다. 강 기자도 그들과 함께였다.
 
 
  한인 청년 이재성의 죽음
 
4월 30일 밤 한인타운을 지키던 한인 청년들이 총탄에 맞았다. 19세였던 이재성 군은 이때 사망했다. 사상자가 나오자 그때서야 LA 경찰이 출동했다. 사진=강형원
  타다다타다다, 밤 11시쯤 총소리가 들려왔다. 총소리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됐다. 방향을 헤아려보고 있는데 차 한 대가 달려왔다. 차체에 총알 자국이 보였다. ‘저쪽에 큰일 났어요!’ 강 기자는 총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한인 청년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그중 한 명이 19세 청년 이재성이다. 집안의 3대 독자였던 이재성은 그렇게 숨을 거뒀다. LA에 많은 기자가 있었지만 그날 그 모습을 지켜본 기자는 강 기자 한 명뿐이었다. 트럼프 주니어가 올린 사진 역시 그가 가주마켙에서 촬영했다.
 
  다음 날인 5월 1일 미국 뉴스는 한인 청년 이재성의 이야기로 도배됐다. 신문과 TV마다 강 기자가 촬영한 현장 사진이 등장했다. 결국 그날 오후 5시 로드니 킹이 나섰다. 기자회견에서 킹이 말했다. “People, I just want to say, can we all get along? Can we get along?(여러분, 그냥 한마디만 하고 싶어요. 우리 모두 사이좋게 지낼 수는 없을까요? 잘 지낼 수 없을까요?)” 이후 폭동이 소강되기 시작했다.
 
  4월 29일부터 5월 3일까지 이어진 폭동의 결과는 참혹했다. 사망자 63명, 부상자 2300여 명, 체포자 1만2000명 이상, 화재 3600건, 전소된 건물 1100채, 재산 피해액은 10억 달러가량. 이 중 한인들의 피해액은 절반가량인 4억~5억 달러. 한인 상점 2300곳이 파괴됐고 이 중 상당수는 재개장하지 못했다. 많은 한인이 여러 이유로 보상을 받지 못했다. 이를테면 현금으로 거래하며 제대로 매출 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다.
 
  한인들은 LA폭동을 ‘사이구(Sa-i-gu)’라 부른다. 폭동의 시작 날짜를 의미한다. 사이구는 여러 층위를 품은 사건이다.
 
  첫째, LAPD(경찰국)의 잘못된 관행과 판단이다. LAPD는 FBI, NY PD와 함께 우수한 경찰 조직으로 알려져 있었다. 강 기자의 말이다.
 
  “당시 LA 경찰은 관행적으로 6피트(약 183cm) 이상의 덩치 큰 백인 남성만을 선발한다고 알려져 있었어요. 한국어를 구사하며 한인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한인 경찰은 단 두 명이었지요. 군 복무 이력 덕분에 선발된 경우였습니다.”
 
  애초 시발점이 된 로드니 킹 사건에도 한 집단으로만 구성된 조직의 특성이 반영됐을 터다. 더군다나 LA 경찰은 폭동이 일어나자 일제히 물러나 부촌 지역인 베벌리힐스 쪽으로 떠나버렸다. 그곳으로 폭도들이 가지 못하도록 길목을 집중적으로 지키기 위해서였다. 총기로 무장하고 현장을 지킨 한인 데이비드 주는 이후 이렇게 증언했다.
 
  “바로 부근에 경찰차가 4대나 있었는데 총소리가 나자 0.5초 만에 모두 떠나버렸습니다. 경찰이 그렇게 빨리 철수하는 건 처음 봤습니다. 정말 실망했어요.”
 
  거칠게 말하면 흑인이 한인들을 약탈하고 불을 지르고 총격을 하든 내버려 두고 경찰들은 주로 백인 부자들이 거주하는 부촌만 지켰단 얘기다.
 
 
  언론이 폭동 부추겨
 
  둘째, 인종차별은 백인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LA폭동 후 한인들 사이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평소 한인들이 흑인과 히스패닉들을 경원시한 것에 대해서였다. 라타샤 할린스 사건에도 ‘흑인은 쉽게 물건을 훔친다’는 선입견이나 경험칙, 혹은 그 둘이 섞인 어떤 의식이 작용했을 터다.
 
  셋째, 언론의 실수가 불러온 비극이다. 이경원 대기자(1928~2025년)는 일찌감치 LA폭동을 미디어가 부추긴 폭동이라 분석했다. 이 대기자는 한인 최초의 주류 언론 기자로, 미국에서 ‘아시아 언론의 대부’라 불리며 ‘알링턴 언론 기념관’의 ‘20세기를 빛낸 500명의 미국 언론인’ 가운데 유일한 동양계 기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이렇게 봤다. 공교롭게도 5월 첫째 주는 미국 방송국들의 시청률 측정 기준이 되는 주였다. 이 시기에 측정된 시청률로 광고 단가가 정해진단 얘기다. 폭동이 일어나자 방송사들은 일제히 현장을 생중계했다. 상점이 약탈되고 총을 든 한인 남성들이 흑인들과 대치하는 광경은 영화보다 더 흥미진진했다. 시청률을 올리기에 이만한 소재가 없었다. 이 와중에 자신들의 가게를 지키는 한인들을 비추며 폭도라고 잘못된 보도를 한 경우도 있었다.
 
  ABC방송과 LA지국 KABC TV는 한술 더 떴다. 폭동이 시작되자 라타샤 할린스 사건을 집중 소개했다. 결과적으로 한·흑 갈등을 부추긴 셈이다. 《LA타임스》의 일부 기자, 특히 흑인 기자들은 ‘오렌지 주스 한 병 때문에 흑인 소녀를 죽였다’며 사건을 집중 부각했다. 그 흑인 소녀가 두순자보다 덩치가 컸고 몸싸움 과정에서 두순자의 안면을 여러 번 가격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강 기자 역시 미디어가 폭동을 부추겼다는 데 동의한다.
 
  “생방송을 통해 경찰들이 그 지역을 떠났다는 게 실시간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자 폭도들이 더 많이 달려 나왔어요. 방송이 폭동의 촉매제 역할을 한 겁니다.”
 
  약탈 현장에 흑인이 아닌 히스패닉들이 대거 껴 있었다는 사실은, 공권력 부재로 생긴 치안 공백이 폭동 확산에 큰 역할을 했다는 걸 알려준다.
 
 
  한인 가게 지킨 흑인들
 
  한인 2세 작가 폴라 유(Paula Yoo·유보라·56)는 지난해 논픽션 《RISING FROM THE ASHES: LOS ANGELES, 1992. EDWARD JAE SONG LEE, LATASHA HARLINS, RODNEY KING, AND A CITY ON FIRE(잿더미에서 일어나다)》를 냈다. 100명 이상의 ‘사이구’ 관련자들을 인터뷰해 썼다. 이 책은 2025년 YALSA 청소년 논픽션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폴라 유는 그의 책에서 김완준씨의 일화를 소개했다. 김씨는 흑인 밀집 지역 컴턴(Compton)에서 음반 가게 ‘사이카델릭 레코드(Cycadelic Records)’를 운영했다. 힙합과 랩 음반을 파는 이 음반 가게는 곧 갱스터 랩 음반 유통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된다. 메이저 음반사의 앨범뿐 아니라, 인근 상인과 협력해 지역 인디 뮤지션들의 앨범을 직접 제작해 판매하기도 했다. 당연히 단골손님들은 흑인이었다.
 
  폭동이 일어난 후 집에 머물러 있던 김씨 가족은 약탈이 수그러들자 가게로 달려갔다. 별다른 방호 시설이 없어 약탈됐을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가게는 멀쩡했다. 평소 단골손님이었던 흑인들이 가게 앞을 지키고 있었다. ‘김 사장님, 아무도 당신 가게에 손대지 못하게 우리가 여기 있었어요.’ 김씨는 이들과 일일이 포옹하며 고맙다고 말했다.
 
 
  폭동이 남긴 것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한번은 음반 가게에서 12세 흑인 소년이 CD를 훔치다 들켰다. 김씨는 이 아이를 꾸짖지 않았다. 손에 CD를 들려주며 아이를 다독였다. ‘다음에는 그냥 이야기하렴.’ 훗날 어른이 된 이 소년이 음반 가게를 찾아왔다. 이미 김씨가 세상을 떠난 후였다. 김씨의 아들 커크(Kirk)에게 그가 말했다. ‘당신의 아버지는 제 인생에서 제게 잘해준 유일한 어른이었어요.’ 이 외에도 흑인들이 한인들의 사업장을 지켜준 경우가 여럿 있었다.
 
  5일간의 폭동은 무엇을 남겼을까. 그날 그곳에서 총을 들었던 이들, 이들을 지켜봐야 했던 많은 이가 오랜 기간 정신적으로 힘들어했다. 일부 흑인 목회자들과 지도자들은 한인 사회에 사과와 연대의 뜻을 전했다. 한인과 흑인 청소년 교류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강렬한 사진으로 현장을 기록한 강 기자는 《LA타임스》 입사 5년 만에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음반 가게 아들 커크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힙합 레이블 경영자 겸 음악 프로모터로 성장했다. 사이구를 되새기며 한인 커뮤니티는 조직력 강화, 정치 참여 확대, 타인종 커뮤니티와 연대하려 노력해 왔다. 지방 의회에 한인들이 꾸준히 진출했고, 지난해엔 드디어 최초의 한국계 미국인 상원의원(앤디 킴)이 탄생했다. 그렇다면 결국 해피엔딩일까.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후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해 미국 내 여러 지역에서 불법이민자 밀집 지역을 급습하고 체포 작전을 확대했다. 그러자 지난 6월 6일 LA에서 시위가 시작됐다. 6월 8일 트럼프 대통령은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동의 없이 2000명의 주 방위군(National Guard)을 투입했다.
 
 
  ‘루프톱 코리안’이라는 상징
 
  트럼프 주니어의 ‘루프톱 코리안’ 게시글이 올라온 후 로스앤젤레스 한인회(Korean American Federation of Los Angeles)는 로이터 통신을 통해 입장을 냈다.
 
  〈시위와 불안이 완전히 진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도널드 J. 트럼프 주니어는 6월 8일 일요일 X에 게시물을 올리며 1992년 LA폭동의 ‘루프톱 코리안’을 언급하며 현재의 불안을 조롱했습니다. 그는 현직 대통령의 장남이자 약 1500만 명의 팔로워를 가진 영향력 있는 인물입니다. 그의 행동은 지금과 같은 살얼음판 같은 시기에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인들의 과거 상처가 어떤 목적으로든 절대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촉구합니다.〉
 
  폴라 유에게 트럼프 주니어의 게시글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의 답이다.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고 이러한 이미지를 정치적 목적으로 재활용하는 것은 1992년 코리아타운에서 실제로 벌어진 깊은 비극과 공포를 폄하할 뿐만 아니라, 그해에 있었던 연대와 친절의 행위들을 지워버립니다. 당시 수백 명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나서서 한인 소유 상점들을 지키기 위해 연대한 일 역시 1992년에 분명히 일어난 일이에요. 이런 따뜻한 이야기들은 종종 무시되거나 제대로 보도되지 않지요. 우리 두 커뮤니티 간의 관계는 왜곡되고 편향된 시선으로 전달되었고, 진정성과 섬세함이 결여된 이미지가 남게 된 겁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게다가 이러한 이미지 재활용은 한인 남성들을 마치 ‘미쳐 날뛰는 자경단’이나 가해자로 그리는 인종차별적 고정관념을 지속적으로 강화합니다. 이들은 단지 가게뿐 아니라 그들의 직원,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무기를 든 사람들이었어요. 무장을 하지 않은 군중을 향해 무작위로 총을 쏘는 ‘미친 자경단’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두려웠고, 절박했으며, 그 어둡던 시기에 놀라운 용기와 회복력을 보여준 사람들이에요.”
 
  강 기자는 트럼프 주니어에게 무단으로 사용한 자신의 사진을 내리라고 요구했다. 변호사와 함께 법적 대응도 검토 중이다. 6월 14일 현재 트럼프 주니어 측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다. ‘루프톱 코리안’도 여전히 그의 SNS에 걸려 있다. 그날 밤 지붕 위의 한인들이 지키려 했던 건 단순히 물건이 아니라 ‘삶’과 ‘존엄’ 그리고 ‘자유’ 같은 게 아니었을까. 지금의 미국을 만든 그 자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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