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슬의 ‘건강의 지평선’ ⑥ 잘 죽을 권리, 호스피스와 대체의학

호스피스는 ‘삶의 마지막을 함께 완성하는 공간’

  • 글 : 박한슬 의료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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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시간표’를 알 수 있는 암은 호스피스에 가장 적합한 질병
⊙ 암 치료 등 위해 대체의학 찾는 이유 중 하나는 가족의 정서적 위안
⊙ 호스피스는 삶의 마지막을 존엄하고 편안할 수 있도록 돕는 돌봄의 철학을 실천하는 공간
⊙ 암 환자 중 입원형 호스피스 비율, 미국 50% 이상… 한국은 18~21일 호스피스 체류

박한슬
1991년생. 차의과학대 약학과 졸업, 연세대 통계·데이터사이언스 석사 / 《중앙일보》 《주간조선》 칼럼니스트, 서울시 청년정책자문단 / 저서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 《숫자 한국》 외 다수
서울 강남성모병원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수녀와 자원봉사자들이 환자를 위해 성가를 불러주고 있다. 사진=조선DB
최근 페이스북에서 퍽 감동적인 사진을 하나 보았다. 호스피스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 한 분이 재직 중인 병원에서 열린 결혼식 사진을 올린 것. 갑작스러운 발병과 투병으로 인해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게 한(恨)이 된 환자분을 위해, 호스피스 병원에서 약식으로 결혼식을 올려준 것이었다. 임종이 임박한 환자들이 잠시 머무는 또 하나의 병실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을 인간답게 정리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호스피스 병원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선 호스피스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다. 서구에서도 호스피스 제도가 자리 잡은 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지만, 선진국 중 가장 고령화(高齡化) 속도가 가파른 우리 처지에선 관련 제도의 도입과 확산이 더 빨라야만 한다. 호스피스라는 제도 자체가 고령화, 그리고 암(癌)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현대에 들어서 뒤바뀐 ‘죽음의 왕좌’
 
  암은 과거엔 지금처럼 위험한 질병으로 여기지 않았다. 암에 걸려 사망하는 사람 자체가 적었고, 암 발생에 대한 보고 자체도 많지 않았다. 혹자는 이를 현대화된 생활양식 탓에 증가한 것이라고 호도(糊塗)하기도 하나, 실상은 조금 다르다.
 
  미국의 공식 통계를 살펴보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인 1914년의 조사에선, 전체 사망자 중 최소 30% 이상이 각종 감염성 질환으로 인해 사망했다. 항생제가 나오기 이전엔 단순한 세균성 장염도 치료할 약이 없어, 오염된 식수로 목숨을 잃는 일이 흔했다. 이러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페니실린의 대량 양산이 처음으로 가능해지며, 감염성 질환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이 극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실제로 6·25 전쟁이 발발한 1950년의 자료를 살펴보면, 미국 사망자의 40%가 심장질환 혹은 뇌혈관질환으로 사망한 게 확인된다. 항생제의 개발로 감염병이 줄자, 심뇌혈관질환이 미국인의 목숨을 가장 많이 앗아가는 주범이 됐다. 다행스러운 건, 심뇌혈관질환 연구가 누적되어 심장마비나 뇌졸중 같은 질환을 예방할 방법을 찾아냈다는 점이다.
 
  바로 고혈압과 당뇨병, 고지혈증에 대한 관리다. 과도하게 높아진 혈압은 심장과 혈관에 부담을 주니, 별다른 증상이 없어도 혈압을 미리 낮춰주면 심장마비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지나치게 높은 혈당 수치와 기준에서 벗어난 혈액 내 지질 수치도 마찬가지다. 이들 위험요인을 약물을 통해 적극적으로 교정하자는 움직임이 20세기 내내 이어졌고, 심장질환 사망률은 1950년 대비 60% 이상 감소했다. 그 빈자리를 차지한 게 바로 암이다. 다른 원인으로 죽는 일이 적극적으로 예방되자, ‘죽음의 왕좌(王座)’ 자리가 돌고 돌아 암까지 내려온 셈이다. 마치 대행의 대행이 국정을 책임지는 상황 같다고나 할까.
 
 
  사망률 부동의 1위, 암
 
  21세기 내내 암을 정복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이 강구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암은 사망률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의 사망 원인 통계를 살펴보면, 암으로 인한 사망자가 전체 사망자의 24.2%를 차지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사망자 넷 중 하나가 암으로 사망할 정도로 비중이 큰데, 면역항암제와 같은 최신 항암제로도 이런 상황을 획기적으로 바꿀 여지는 크지 않다.
 
  그 이유는 암이라는 질병 자체가 가진 특성이 까다로워서인데, 암은 기본적으로 ‘내 세포’가 변이(變異)를 일으켜 생겨난다. 낡은 피부가 때수건에 밀려 사라지고, 그 아래에 새 피부가 자라나는 건 우리 몸의 세포가 자연스러운 교체 과정을 거쳐서다. 그런데 이런 자연스러운 세포의 분열과 성장 과정에서 드문 확률로 유전적 오류가 생기는 경우들이 있다. 작은 오류는 큰 영향이 없지만, 오류가 누적되다 보면 점차 세포 본연의 기능이 훼손될 수준으로 심각한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러다 개중 일부는 끊임없이 분열하고 팽창하는 성질만 남은 암세포가 된다.
 

  감염병은 외부 병원체를 제거하면 치료할 수 있고, 심장질환은 혈압이나 혈당 등 조절 가능한 요인들을 통해 일정 부분 예방이 가능하다. 반면 암은 내 몸 안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세포 분열 중 발생하는 오류에서 비롯되기에, 근본적으로 예방이 어렵다. 성인 남성의 몸에 있는 세포가 대략 36조(兆) 개인데, 이 중 3300억 개의 세포가 매일 새로 바뀐다. 세포 하나만 놓고 봤을 땐 암세포로 변하는 게 극히 드문 오류 확률이라도, 압도적 숫자와 시간 앞에선 암세포의 등장이 필연이다. 다른 원인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지 않는다면, 노인의 몸에는 시기는 달라도 암세포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현재 의학의 최선은 암의 조기(早期) 검진이다. 주변 조직으로 전이(轉移)되지 않은 초기 상태의 암은 수술로 깔끔하게 절제가 가능한 경우가 많고, 방사선 치료나 항암 치료로 5년 이내 재발이 없는 완치 판정을 받는 비율도 높기 때문이다.
 
 
  암은 은밀하게 다가오는 병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암을 이르게 발견하진 못한다. 어떤 암은 별다른 자각 증상도 없이 빠르게 시작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췌장암이다. 췌장은 위 뒤편, 복강(腹腔) 깊숙이 자리 잡아 겉으로 만지거나 눈으로 보기 어렵다. 게다가 췌장에서 종양이 자라더라도 명확한 증상이 거의 없다. 배가 불편하다거나, 식욕이 좀 줄었다는 정도의 모호한 신호는 무심코 넘기기 일쑤고, 혈변이나 심한 복통이 나타날 땐 이미 암이 상당히 진행되었을 시점이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한 해 동안 췌장암으로 사망한 사람은 7700여 명에 달한다. 암 중에서는 5번째로 높은 수치이며, 5년 생존율은 16.5%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췌장암을 진단받은 열 명 중 여덟 명 이상은 결국 이 암으로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다. 이게 꼭 췌장암만의 특수한 사례라고 보기도 어렵다. 암이라는 병은 본질적으로 은밀해, 별다른 자각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다.
 
  슬픈 건 어떤 종류의 암이건, 주변의 다른 조직으로 전이가 많이 이루어진 경우엔 대처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암 연구가 수십 년 동안 진행되며, 치료법이 많이 개발되긴 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앞선 건 암의 상태를 평가해 앞으로의 예후(豫後)를 확인하는 부분이다. 말기 암 진단을 받고 여러 차례 항암 치료를 진행했음에도, 결국 완치 가능성이 작다는 판정을 받으면 그때부턴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낼지를 고민해야만 한다. 치료를 넘어, 삶의 마무리를 본격적으로 고민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더는 치료가 어렵다’는 선언 이후에 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를 환자들조차도 잘 모른다는 게 문제다. 이 시기에 방황하는 환자들을 낚아채는 게 소위 ‘대체의학’이다.
 
  2019년 의료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이 하나 있었다. 폐암으로 투병 중이던 한 남성 코미디언이 ‘개 구충제(驅蟲劑)’를 암 치료 목적으로 복용하고 있다고 밝히자, 전국의 암 환자들이 해당 구충제를 구하려 발품을 팔아댄 것.
 
  당연한 말이지만, 견공(犬公) 용도로 나온 약은 견공에게만 써야지 이걸 사람이 먹을 이유는 없다. 구충제에 암 치료 효과가 없는 건 물론이고, 회충 잡는 독성 탓에 과량 복용하면 간이 망가지는 부작용까지 경험할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다. 구충제 복용 소식을 알렸던 당사자도 효과를 보지 못한 건 마찬가지였고, 암이 계속 진행되다 결국 2021년에 숨을 거뒀다. 그는 늦게나마 구충제 복용을 권한 걸 후회한다며 발언을 철회하긴 했으나, 그가 퍼트린 허위 정보는 계속 남아 대한종양내과학회 홍보위원회에서 지속적으로 관련 내용을 바로잡아야만 하는 실정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구충제 사건이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비슷한 유의 건강 괴담이 지속적으로 말기 암 환자를 홀린다는 점이다.
 
  국내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살펴보자. 윤영호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는 국내 말기 암 환자 481명을 대상으로 보완대체요법 사용 여부를 조사한 바 있는데, 응답자의 42%가 보완대체요법을 사용해 본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 중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건 특정한 건강식품이나 한약재 등을 복용하는 것이었는데, 이런 처치가 실제로 생존 일수에 차이가 있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었다. 당연하게도 아무런 효과가 없더라는 게 해당 논문의 결론이다.
 
  항암에 특정한 버섯이 좋다는 둥, 서양에서 수입한 ‘겨우살이’가 도움이 된다는 둥 절박한 말기 암 환자들을 꾀어내는 다양한 대체의학 시도들이 있지만 실제로는 돈과 시간만 낭비할 뿐 암 치료 효과를 내진 못하더란 것이다. 유럽종양학회 공식 학회지인 《종양학 연보(Annals of Oncology)》에 실린 우리 사회의 슬픈 단면이다.
 
 
  대체의학을 찾는 이유
 
  물론 극히 드물게 말기 암이 전적으로 회복되었다는 기적 같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현대의학으로 확인할 수 없는 모종의 이유로 발생하는 현상인데, 이런 증언을 내놓는 이들이 극히 소수인 이유는 비슷한 행동을 했던 대다수의 암 환자는 실패를 경험하고 이미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는 이해할 수 없는 경험을 근거 삼아 엉뚱한 무용담을 퍼뜨린다. 결과적으로 또 다른 환자들이 대체요법에 의존하다 목숨을 잃지만, 극히 일부는 살아남아 재차 다른 이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다.
 
  가장 나쁜 부분은 이런 구전담이 대부분 선의(善意)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이다. 악순환도 이런 악순환이 없다. 그런데 좀 더 근원적으로 따져보면 말기 암 환자들이 이런 대체요법을 찾는 데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한국 최대의 노숙인과 장애인 복지 시설이자, 가톨릭계 구빈(救貧) 단체인 꽃동네의 후원으로 진행된 연구를 살펴보자. 가톨릭꽃동네대 이수한 교수 연구팀은 말기 암 환자들이 보완대체요법을 선택한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꼽는다.
 
  첫 번째는 현대의학의 한계다. 병원에서 말기 판정을 받았으니, 이를 대체하거나 보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불확실한 대체의학 요법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의사의 무성의하고 부정적인 태도에 따른 불신이다. 말기라는 냉혹한 진단을 사무적으로 전달하는 것에 그칠 뿐, 말기 암이라는 충격적 상황을 이해하고 넘기는 데 도움을 주지 않더란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족의 정서적 위안이다. 가족으로서 도리를 하지 못했다는, 아픈 가족을 위해 무언가라도 하고 싶다는 욕구가 대체의학 추구로 나타나게 됐단 것이다. 즉 현대의학의 한계도 영향 요인이긴 하나 살아 있는 동안, 아픈 가족을 위해 뭔가를 했다는 위안, 그리고 아픔을 보듬는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다.
 
 
  호스피스의 탄생
 
호스피스의 창시자 시실리 손더스. 사진=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
  말기 암 환자에게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고, 가족이 함께 상황을 이겨내며 ‘최선을 다했다’는 감정적 충족을 경험하게 할 수 있다면, 무분별한 대체의학 시도를 줄일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암 환자의 여명(餘命)을 헛된 치료법을 좇느라 허비하는 대신, 가족과 함께 보내는 소중한 시간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호스피스 의료기관이다. 단순히 예정된 사망에 맞춰 대기하는 장소도 아니고, 회복을 염원하며 말기의 고통을 가중하는 곳도 아니다.
 
  치료가 더는 불가능하다면, 남은 시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물음에 답하고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 ‘호스피스(hospice)’였다. 단지 생명을 연장하는 것보다, 삶의 마지막을 존엄하고 편안할 수 있도록 돕는 돌봄의 철학을 실천하는 공간으로서 고안된 시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대적 의미의 호스피스 제도를 처음 제안하고 실천한 인물은 시실리 손더스(Dame Cicely Saunders) 박사다. 원래는 간호사였고, 뒤늦게 의사가 되었으며, 환자들의 고통에 깊은 연민을 가진 그녀는 1967년, 런던 남부에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St. Christopher’s Hospice)를 건립한다. 이곳은 죽음을 더 이상 실패나 패배로 간주하지 않고, 한 인간의 삶이 끝나는 마지막 여정을 의미 있게 완수하도록 돕는 공간이었다. 수명을 늘리는 것보다, 남은 시간의 질을 지키는 것에 가치를 두었다. 호스피스는 태생부터 철저히 기독교적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몸이 아픈 이들을 구호하고, 길을 잃은 이들을 환대하며, 그 누구도 버려지지 않도록 하는 일이 호스피스의 본질인데, 이는 중세 수도원에서부터 내려온 오랜 이방인에 대한 환대(hospitalitas)의 실천이었다. 그래서 ‘호스피스’라는 말 자체에 순례자의 쉼터, 낯선 이의 안식처라는 뜻이 담겨 있다. 죽음 앞에 선 이가 외롭지 않도록, 마지막 길을 혼자 걷지 않도록 돕는 것. 이것이 손더스 박사가 말한 ‘총체적 돌봄(total care)’의 핵심이었다. 단지 통증을 줄이는 약을 처방하는 것을 넘어, 마음의 두려움을 돌보고, 가족의 죄책감을 덜어내며, 죽음을 마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영적(靈的) 치유가 호스피스의 시작부터 함께했다.
 
 
  ‘죽음의 시간표’
 
  그런데 여기서 암의 의학적 특성이 호스피스라는 제도에 재차 영향을 준다. 암이야말로 호스피스에 가장 적합한 병이라서다.
 
  현대의 암은 발병의 예측은 어려워도 예후의 파악은 쉽다. 이런 암의 예측 가능성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호스피스에 가장 적합한 질병이 되게 만든다. 다른 질병의 죽음은 종종 갑작스럽게 닥친다. 심근경색이나 뇌출혈처럼 순식간에 생명을 앗아가는 질환은 유족에게 이별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암은 다르다. 치료와 재발, 전이, 완치 실패 판정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은 대부분 일정한 순서를 따른다.
 

  암이 예후를 갖는 질병이라는 말은 그래서 생물학적 진단일 뿐 아니라 사회적 단서이기도 하다. ‘앞으로 몇 달, 길어야 몇 년’이라는 시한부 판단이 가능하다는 건, 곧 남은 시간을 미리 정리하고 설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암 환자는 마지막 삶의 단계를 대비하고, 가족과 의료진은 그 시간을 어떻게 채워나갈지 함께 고민할 수 있다. 호스피스는 이 계획의 마지막 장을 맡는 이들이다. 암이라는 질병 덕분에, 우리는 죽음을 비로소 관리 가능한 과정으로 다룰 수 있게 된 셈이다.
 
  이렇게 확보된 ‘죽음의 시간표’는 환자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암이라는 질병은 한 개인의 삶을 정리하는 동시에, 가족 구성원 전체의 정서적 준비를 가능케 한다. 병문안 대신 작별 인사를, 연명 치료 대신 따뜻한 손을, 막연한 죄책감 대신 슬픔을 공유할 시간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호스피스는 말기 환자를 위한 공간이자, 가족 모두가 이별을 준비하고 삶의 마무리를 함께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다. 급작스러운 사고사나 심장마비의 경우 이런 시간적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다. 호스피스가 단지 치료를 포기한 자들이 머무는 병동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 모두가 마지막 책임을 다하는 장소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용률 저조한 한국 호스피스
 
서울 금천구에 있는 ‘전진상 호스피스센터’. 가정 같은 분위기에서 환자 죽음까지 함께하는 독립 시설형 호스피스다. 배현정 원장과 노상미 센터장이 회진을 돌고 있는 모습. 사진=조선DB
  우리나라에서 한 해 동안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약 8만5000명에 달한다. 이 중 말기 상태에서 호스피스로 옮겨져 삶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이들은 다섯 명 중 한 명도 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가 집계한 공식 통계에 따르면, 국내의 암 사망자 중 입원형 호스피스를 이용한 비율은 2017년 기준 22%에 불과했고, 이후에도 이 수치는 큰 폭으로 개선되지 않았다. 미국은 같은 시기 50%를 넘겼고, 영국 역시 40% 이상이 호스피스 병동에서 생을 마쳤다. 다른 주요 선진국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호스피스 이용률은 많이 떨어진다. 이는 호스피스에 대한 인지도 자체가 낮은 것도 한 가지 원인이지만, 치료 불가 판정을 내리기 어려운 국내 의료 현장의 분위기에 더해 환자의 호스피스로의 전원이 지나치게 늦은 것도 한몫한다. 마지막의 마지막에야 호스피스로 전원 되어, 호스피스 효용을 느끼긴커녕 사망을 대기하는 장소라는 인식만 더 커지는 것이다.
 
  실제로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입원형 호스피스를 이용한 환자들의 평균 체류 기간은 불과 18~21일 정도에 불과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말기 암 환자에게 최소한 90일, 즉 3개월 이상의 돌봄이 필요하다고 권고하지만, 현실에선 이것에 4분의 1도 되지 않는 시간을 두고 생을 마감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원인 중 하나는 건강보험의 비용 지출 구조, 다시 말해 보험 수가(酬價) 때문이다. 호스피스는 환자가 남은 생을 편히 보낼 수 있도록 검사와 처치를 최소화하고, 환자의 삶의 질을 우선시하는 공간이다. 그러니 같은 기간 환자가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때와 비교하면, 병원 경영의 관점에선 일종의 손해다. 금전적인 형태의 비용 벌충이 어렵다면, 다른 형태로라도 호스피스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
 
 
  재택형 호스피스
 
재택형 호스피스.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팀이 암 환자의 자택을 찾아 상태를 살펴보고 진료를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물론 가장 중요한 건 호스피스에 대한 대대적 인식 개선을 꾀하는 것이다. 치료가 불가능하게 됐다는 선언은 돌봄이 끝났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이 지점에서 비로소 진짜 돌봄이 시작된다고 봐야 한다. 삶의 연장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지만, 남은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은 여전히 가능하다. 무의미한 고통을 줄이고 존엄을 지키겠다는 적극적인 선택이다. 우리는 생명을 살리는 기술엔 무한히 투자하면서도, 삶의 마지막을 책임지는 문화엔 너무 오래 무관심해 왔다. 이제 호스피스를 단지 ‘죽음을 기다리는 장소’가 아니라 ‘삶의 마지막을 함께 완성하는 공간’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제도 설계의 관점에서도 호스피스를 단순한 입원 병동에 국한하지 말고, 지역사회와 연계된 다양한 모델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영국이나 호주는 1차 의료기관이 조기부터 삶의 마무리를 설계하는 데 개입하고, 자택에서도 말기 돌봄이 가능하도록 하는 재택형 호스피스 체계가 안정적으로 구축돼 있다.
 
 
  암 외 질환에도 호스피스 문턱 낮춰야
 
  병원 중심의 구조에서는 치료와 돌봄의 연속성이 단절되기 쉬운데, 평소 환자를 알고 있는 주치의가 예후를 파악하고 돌봄 계획을 세울 수 있다면 훨씬 이른 시점에 환자와 가족의 삶을 준비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남은 시간을 더 의미 있게 쓸 수 있는 구조적 여지를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장기적으로 암 외의 다른 말기 질환에 대해서도 호스피스의 문턱을 낮혀야 한다. 존엄한 죽음을 맞는데 호스피스 이용이 가장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살펴봤듯 호스피스는 치료의 끝이 아니다. 치료가 더는 가능하지 않을 때, 인간으로서 마지막 존엄을 지키는 책임이자 배려다. 우리 모두에게 다가올 죽음을 미루지 않고 마주할 수 있다면, 그 순간은 단지 끝이 아니라 제대로 살았다는 증명이 될 수 있다. 호스피스에서 미처 참석하지 못한 결혼식을 재현하듯, 삶의 마지막 순간을 가족과 함께 관계를 재정립하고, 기억을 더듬어 보람찬 삶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좁은 의료라는 한계에서 벗어나 삶과 돌봄을 포괄하는 논의가 건강이다.
 
  필자는 초고령 사회에서 노년에 대한 논의는 이런 것들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믿는다. 질병의 치료를 넘어, 노년에 다다른 사회 구성원의 삶을 총체적으로 짚어보고 긍정할 수 있는 곳이 한 곳 정도는 있어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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