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태영 교수, 30년간 1500여 사례 상담 후 ‘한국형 통합적 가족치료 모델’ 구축
⊙ “姑婦갈등으로 야기되는 부부문제는 한국 부부에게 가장 공통적으로 나타나”
⊙ “가부장적이었고 분노 조절이 안 된 친정아버지··· 아내는 분노 조절 어려움 겪으며 남편 폭행”
⊙ “가정에 무관심하고 이기적인 친정아버지와 닮은 남편··· 아내는 남편과 외모·행동 비슷한 아들 학대”
朴泰英
1960년생. 숭실대 사회복지학과·동 대학원 졸업, 美 플로리다주립대 대학원 졸업(가족치료 박사) /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숭실대 사회복지대학원장 역임
⊙ “姑婦갈등으로 야기되는 부부문제는 한국 부부에게 가장 공통적으로 나타나”
⊙ “가부장적이었고 분노 조절이 안 된 친정아버지··· 아내는 분노 조절 어려움 겪으며 남편 폭행”
⊙ “가정에 무관심하고 이기적인 친정아버지와 닮은 남편··· 아내는 남편과 외모·행동 비슷한 아들 학대”
朴泰英
1960년생. 숭실대 사회복지학과·동 대학원 졸업, 美 플로리다주립대 대학원 졸업(가족치료 박사) /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숭실대 사회복지대학원장 역임

- 한국 가정은 가족 중심주의 내지 집단주의가 강하다. 늙은 부모에 대한 효(孝)와 정(情)이 가족 갈등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 일러스트=조선DB
가족치료 전문가인 박태영 교수가 평생 매달린 통합적 가족치료 모델은 30년간 다문화 가족을 포함한 국내외 부부 갈등 사례를 1500건 이상 상담한 끝에 완성한, 땀과 시간의 결실이자 해법이라 할 수 있다.
부부문제 뿌리엔 한국 특유의 孝와 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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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박태영 교수. 박 교수는 30년간 1500여 사례의 가족상담을 했다. |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남아 있으면, 성인이 된 후 결혼 생활에서도 배우자나 자녀와의 갈등으로 확대되어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 그럴 경우 가족 갈등이 세대(世代)로 이어진다. 또 위기를 겪으며 자녀들은 신체적 질환, 정신적 질환, 반(反)사회적 성격장애를 겪기도 한다. 여기에는 전이(轉移), 애착(愛着) 관계,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지만 역(逆)기능적인 의사소통 방식, 미분화(未分化), 효(孝)와 시댁(媤宅) 문제 등이 복잡한 회로처럼 얽혀 있다. 이 중 ‘효’를 둘러싼 갈등은 서구 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한국적 현상이다.
가족중심주의 내지 집단주의가 강한 한국의 가정은 효와 정(情)을 매우 중시한다. 효는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을, 정은 공감·연민·동정심·정서적인 밀착의 혼합을 의미한다. 한 음절로 된 이 ‘효’와 ‘정’ 같은 우리 정서를 외국어로 번역할 때 등가적(等價的)인 표현을 찾는 것이 매우 큰 도전이라는 번역가들의 말을 많이 들어보았다. 이 번역하기 어려운 한국적인 정서를 토대로 박태영 교수의 연구가 출발했다.
남자가 결혼 후에도 효와 정에 얽매여 부모와 사고·감정에서 분리가 안 되면 머지않아 부부관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게 박 교수의 분석이다. 이 과정에서 서로에게 한(恨)과 화병(火病)이 생길 수 있다. 박 교수는 “한이 축적되어 한국인들에게 화병(분노장애)이 생긴다”고 했다. 화병은 1995년 미국정신의학회(APA)에 의해 문화관련증후군(culture-bound syndrome)의 하나로, 한국의 문화 사회적 맥락에서 나타나는 증후군이라 영어로 번역 불가능하기에 우리말 발음 그대로 ‘hwabyung’으로 등재되었다. 특히 “고부(姑婦)갈등으로 야기되는 부부문제가 한국 부부들에 가장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라고 박 교수는 소개한다.
결혼한 자식의 삶에 관여하는 한국 부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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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영 교수 팀이 쓴 ‘한국형 통합적 가족치료 모델’ 논문이 세계적 권위의 학술 저널 《패밀리 프로세스(Family Process)》 최신호에 실렸다. |
“한국의 어머니들은 아들이 결혼했음에도 여전히 자녀의 삶에 관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자녀의 결혼 생활에 개입하는 것을 자녀를 돌보는 일이자 의무이고, 심지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데 기인해요.”
― 결혼 후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이 결혼한 아들과 며느리, 시어머니 사이에 있는 것 같아요.
“결혼한 아들과 어머니 사이의 사고와 감정의 미분화는 며느리와 시어머니 간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요. 더군다나 결혼한 아들이 부모를 모시는 것은 좋은 의도임에도, 그들의 동거는 아들의 결혼 생활에 치명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죠. 특히 홀시어머니인 경우는 아들의 부부관계를 최악으로 치닫게 할 수 있어요.”
박 교수는 “상담을 받으러 찾아온 내담자와 그들 구성원들의 의사소통 문제와 미분화 문제 그리고 원가족(부모)과의 해결되지 못한 감정이 현재의 핵가족과 타인에게도 전이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목격했다”고 밝힌다.
부부갈등, 자녀에게 정서적 고통으로 대물림
‘가족문제’는 문제 가족을 분열(分裂)·와해(瓦解)시키고 이혼, 재혼, 외도, 가정폭력, 집단따돌림, 자살, 알코올 중독, 도박 중독, 게임 중독, 분노조절장애, 우울증, 공황장애, 성기능장애, 섭식장애(신경성 식욕부진증, 신경성 폭식증, 폭식장애 등), 틱장애, ADHD(주의력결핍 과대행동장애) 등의 문제를 낳는다. 문제는, 이러한 부부갈등이 세대 간에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자녀들은 부모와 똑같은 정서적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게 되고 심지어 결혼을 거부하고 비혼(非婚)을 고수한다. 물론 결혼 거부와 비혼의 원인은 더욱 복잡하고 다양하지만, 박 교수 팀 논문에서는 가족문제에서 비롯한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한다.
박 교수는 남편이 원가족(부모) 사이에 걸린 사례, 아내가 원가족(친정부모) 사이에 걸린 사례, 부부 모두 원가족과 걸린 사례 등을 ‘촉발 요인’(사건)과 ‘잠재 요인’(전이, 애착 관계,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해 온 역기능적인 표현 방식, 미분화, 효와 시댁 문제)으로 나눠 통합적으로 설명했다.
우선 그는 한국인 남편 A(장남·31)씨와 일본인 아내 B(35)씨의 부부갈등 사례를 통해 한국의 가족문화를 예시했다.
남편 A씨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외국으로 일하러 떠난 후 연락이 두절되어 어머니가 경제적인 책임을 졌다. 아내 B씨는 일본의 친정부모와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친정부모는 딸의 결혼 과정에서 사위 A씨를 못마땅하게 여겼고, 둘의 결혼 생활을 걱정했다. 이들 부부의 갈등은 세 가지 사건을 통해 촉발됐다.
첫째, B씨가 일본에서 자녀를 출산했을 때 B씨 친정부모는 사위 A씨를 집 안에 들이지 않았다.
둘째, B씨는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남편 A씨에게 유리 젖병, 아기 면이불과 면 방한복을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부주의했던 남편이 고무 젖병, 나일론이 섞인 이불과 방한복을 준비한 것을 보고 B씨는 남편이 자녀를 보호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셋째, B씨는 남편이 아이의 음식을 못 먹게 했다.
박 교수는 이들 부부를 여러 차례 만나 상담을 진행하며 부부갈등에 영향을 미친 세 가지 잠재 요인을 발견했다.
| 가족상담의 주요 개념 1. ‘전이(Transference)’는 한 사람의 감정, 생각 그리고 소망이 과거에 알았던 사람과 유사한 사람에게 투사(投射)될 때 발생하게 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과거에 중요했던 사람인 것처럼 느끼고 대하는 것을 말한다. 2. ‘애착 관계(Attachment relationship)’는 생애 첫 몇 년 사이에 형성되어 영향력 있는 인지 구조로 구축된다. 유아는 양육자(주로 부모)와의 상호작용 경험을 근간으로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일련의 표상(表象)들을 축적한다. 애착 관계가 형성되지 못하면 자녀는 성장하여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다. 3. ‘시도된 해결책(Attempted solution)’, 다시 말해 역(逆)기능적인 상호작용 의사소통 방식은 가족 간에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관계를 악화시킨다. 예컨대 위기에 처한 가족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비난, 지적, 간섭이나 폭력, 욕설 같은 역기능적인 의사소통 방식으로 부부문제에 대처하는 경우다. 4. ‘자아 분화(Differentiation of Self)’는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에서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자신의 사고와 감정을 분리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과 타인을 분리해 상대방의 의견에 좌우되지 않고 가치관과 신념에 따라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하면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 반대 개념이 미분화라고 할 수 있다. |
드러난 갈등 이면의 ‘잠재 요인’ 찾기
우선, 부부는 개인적인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 음식, 옷차림, 교육, 소비 방식, 그리고 양육 방식에서 견해가 달랐다. 아내 B씨는 집안일을 혼자 하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었고 가사일을 돕지 않는 남편 A씨를 비난했다. 반면 남편 A씨는 시어머니를 홀대하는 아내 B씨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남편은 고집스럽고 비판적인 아내가 정이 없다고 여겼다. 사실, 남편(사위)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던 친정부모의 영향으로 일본인 아내 B씨는 남편과 시집에 불만을 드러냈다.
둘째, 부부갈등에 영향을 미친 사회문화적인 요인도 간과하기 어렵다. 남편 A씨는 본가(시댁) 방문에 대한 아내 B씨의 부정적인 태도에 불만이 많았으며, 부부는 본가를 방문할 때마다 싸웠다. 아내와 시집 간의 갈등은 아내의 원가족 문화와 관련이 있었다. 친인척과 단절된 아내 B씨는 빈번한 시댁 방문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서구적 개인주의 가치관을 수용하는 일본 사회에서 성장한 아내 B씨는 집단주의보다 개인주의적 가치를 중요시했고 ‘효도’를 구시대적이고 비민주적인 것으로 여겼다.
셋째, 아내 B씨의 과도한 결벽증 성향이 부부갈등과 고부갈등에 영향을 미쳤다. 일반적으로 일본은 한국보다 청결을 더욱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러한 문화적 차이가 아내의 청결에 대한 강박적인 태도를 설명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남편을 폭행하는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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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남아 있으면, 성인이 된 후 결혼 생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러스트=조선DB |
아내 D씨는 남편 C씨가 아내를 항상 떠보는 듯한 의사소통 방식을 사용하고, 이러한 표현 방식이 시어머니의 의사소통 방식과 똑같다고 느꼈다고 한다. 반면 남편 C씨는 과거의 일까지 끄집어내는 D씨의 의사소통 방식이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D씨는 친정아버지의 외도로 어려서 아버지와 갈등 관계에 있었고 어머니를 대신해 아버지와 싸우기도 했다. 친정아버지는 가부장적이었고 분노 조절이 안 됐는데, 남편 역시 분노 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반면 친정어머니와 두 남동생은 모두 온순한 성격이었다. 친정아버지는 딸(D씨)이 어렸을 때부터 “모든 것이 네 잘못이다. 너만 우리 집에서 문제야! 너만 고치면 돼!”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곤 했다. 남편 C씨 또한 친정아버지처럼 엄격한 성격이었고, 아내를 자주 비난했다. C씨는 아내에게 “당신이 문제야! 당신만 가만히 있으면 돼!”라는 식으로 말했는데, 이 말투는 D씨의 친정아버지와 판박이 같았다. 아내는 친정아버지의 비난하는 말투를 그대로 닮은 남편 때문에 분노를 조절할 수 없었고, 그럴 때 나오는 방식이 바로 폭력이었다. 여기서 아내 D씨의 ‘아버지와 해결되지 못한 감정’이 남편에 이어지는 것(전이)을 볼 수 있다.
기막히게도 남편 C씨도 자기 어머니의 분노 조절이 안 되는 모습을 아내에게서 본다고 했다. C씨는 13년간의 유학 생활로 어머니와 오랜 기간 떨어져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와 ‘분리’가 되지 못했다. C씨는 고부갈등 상황에서 아내 D씨 편을 들지 않았고 아내를 무시하는 태도를 고수했다. 아내 D씨는 남편이 시어머니 편을 들고 자신을 배려하지 않는 모습 속에서 친정아버지와 싸울 때 한 번도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던 어머니와 동생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전이)고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분노 조절이 안 되는 D씨는 남편에게 아버지의 역기능적인 표현 방식을 사용하여 부부관계가 더욱 악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아들을 학대하는 엄마
또 다른 사례 가족은 아내 E(34)씨, 남편 F(36)씨, 아들(6), 딸(2)로 구성되었다. 아내 E씨는 아들에게 폭언과 폭력을 썼고, 아들은 언제부턴가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E씨의 친정어머니 역시 어린 E에게 폭언과 폭력을 쓴 적이 있었다고 한다. 친정어머니는 시집과의 갈등에 남편과의 스트레스까지 더해져, 그 감정을 자녀들에게 매우 폭력적인 방식으로 표출했다고 한다.
E씨의 친정아버지는 가정에 무관심한 편이었고 이기적인 성격이었다. 딸 E씨를 어렸을 때부터 간헐적으로 성추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딸은 친정어머니에게 아버지의 성추행과 관련된 사실은 물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E씨는 친정아버지와는 달리 자상하고 순진했던 남편 F씨에게 호감을 가져 결혼했다. 그러나 막상 결혼 후 남편은 가정에 무관심하고 이기적이어서 친정아버지와 매우 유사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E씨는 아들을 임신했을 때 잔소리와 간섭이 심한 시어머니에게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남편 F씨는 본가 부모의 부부갈등으로 인해 어머니와 밀착 관계를 유지했고, 그런 심리적 미분화로 시집과 관련한 아내의 스트레스를 이해하지도, 배려해 주지도 못했다. 또한 F씨는 다혈질인 아버지와 여동생과 갈등이 심했는데, 분노 조절이 안 되는 아내 E씨에게서 자기 아버지와 여동생이 느껴졌다(전이)고 한다.
한편 E씨는 친정어머니와 시집과의 갈등에서, 어머니 편을 들어주지 않고 가사를 전혀 도와주지 않으며 TV만 보았던 아버지와 유사한 남편 F씨(전이)에게 분노 조절이 안 되었다. 심지어 E씨는 남편의 외모와 행동을 닮은 아들에게서 남편이 연상되었다(전이). 결국 E씨는 남편을 닮은 아들에게 친정어머니에게 받았던 방식 그대로 폭언과 폭력을 돌려주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결국 그 트라우마가 아들에게 부메랑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자기 또는 부모 닮은 이성과 결혼하는 이유
박태영 교수는 “30년간 상담을 연구하며 발견한 게 세 가지 있는데, 그중 ‘전이’와 ‘역기능적 의사소통 방식’은 한국이나 서양이 똑같다”고 말했다.
“섹스리스 부부이든 성(性) 중독자이든, 그리고 이혼과 재혼 가정, 미국-한국, 한국-일본, 한국-캄보디아 같은 다문화 가정이든 아니든, 전이 문제는 동서양의 차이가 없어요.”
―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신다면?
“남편이 섹스리스여서 아내와 성관계를 안 한다고 합시다. 이유 중의 하나는, 부인이 너무 세. 결혼하기 전에 강한 부모가 있어요. 만약 부모 없이 조부모 밑에서 자랐다면, 할머니가 센 사람이에요.”
― 센 사람이 부모라면, 센 사람을 배우자로 만났을 때 잘 대처할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아요. 신기하게도 비슷한 남녀끼리 만나요. 보웬(Murray Bowen)의 가족체계 이론에 따르면, 자기 분화 수준이 비슷한 사람을 배우자로 만난다고 해요. 분화가 덜 된, 혹은 안 된 두 사람이 결혼하면 그 자녀들은 부모의 평균치보다 (자아 분화 수준이) 떨어진다고 해석하거든요.”
― 왜 끼리끼리 만나는지 이해가 되네요.
“또 하나는, 자기에게 익숙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이를 배우자로 찾아요. 여자의 친정아버지가 폭력적이고 알코올 중독자였다면, 희한하게도 아버지와 똑같은 남자를 찾는다는 겁니다. 경험주의적 가족치료의 대가인 사티어(Virginia Satir)가 말하길, 자기 역할에 익숙하기에 배우자를 자신도 모르게 폭력주의자나 중독자로 고른다는 것이죠.”
― 그게 운명일까요? 운명의 굴레를 못 벗는….
“운명이긴 한데, 저는 상담자를 고치는 게 중요해요. 국제결혼 부부를 여섯 쌍 상담했는데 한국이든 해외든 전이 문제는 똑같더라고요. 《리바이어던》(1651)을 쓴 홉스(Thomas Hobbes)는 ‘인간은 현재의 상황을 과거 경험에 입각해 본다’고 합니다. 과거의 렌즈에 비친 유사한 사건이나 사람들과의 관계가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는 것이죠.”
― 무의식적으로 끌린다고들 하는 데도 이유가 있네요.
“사람을 보는 틀이, 자신의 엄마 또는 아빠한테 느꼈던 그 감정에서 배우자를 찾습니다. 마치 무의식적으로 냄새에 끌리듯 말이죠. 그러나 시도된 해결책, 즉 역기능적 상호작용적인 의사소통 방식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유지시키거나 악화시킵니다. 이것도 동서양 가족이 똑같습니다.”
― 사람들은 흔히 자기의 표현 방식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상대방이 못 알아듣는 게 문제라고 여기죠. 그게 문제입니다.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준다면서도 송곳처럼 콕 찌를 때가 있어요.”
―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부모의 표현 방식이 걸려 있어서 지혜롭지 못할 때가 있지요. 알기에 누그러뜨리려 노력을 많이 하고, 가능하면 우회적으로 표현하려 하죠. 그런데 상대에 따라 달라집니다. 뭔가 원인을 제공했기에 반응이 나타나는 겁니다.”
한국 부부갈등 90% 이상은 남편이 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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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영 교수는 “남편이 효자일 경우 부부관계가 무너질 수 있다”고 말한다. 며느리는 시부모와의 관계가 그만큼 어려울 수 있다. 일러스트=조선DB |
“전이는 프로이트(Sigmund Freud) 심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고, 문제 해결 시도는 밀턴 에릭슨(Milton H. Erickson)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개는 미국 심리학자들이 별 관심이 없어요. 다 아니까. 심리학자들은 우리 연구에서 한국적인 독특한 현상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게 ‘효’라는 유교적 집단주의입니다. 사실, 유교주의에서 오는 제 상담 케이스의 90~95%가 보통 남편이 효자입니다. 효자일 경우 부부관계가 무너질 수 있어요.”
― 역설적이네요.
“효가 왜 문제냐. 성경 말씀에 보면 ‘남녀가 결혼하면 부모로부터 떠나라’고 했거든요. 근데 떠나라는 게 공간적으로 떠나는 것도 있지만, 정서적으로 분리하라는 거거든요. 결혼하면 부모에게서 떠나 부부가 일단 합쳐져야 됩니다. 그러나 한국은 안 돼요. 가정이든 사회든 부모를 공경하라고 가르치거든요.”
기자는 신약 마태복음 19장 4~5절을 쉽게 떠올렸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제일 골치 아픈 사람이 사는 곳이 어디일까요? 경상도 안동에 사는 여성들이 공황장애이니 뭐니로 찾아옵니다. 제사 있죠, 명절 있죠, 시부모 생일 있죠. 효가 왜 문제가 되냐. 남편이 아내와 자식보다 부모부터 챙기니까요. 남편이 자기 원가족과 분리가 안 되는 집안은 휴가 때 친가를 갑니다. 아내 입장에선 그건 휴가가 아니죠.”
― 이런 경우에 상담은 어떻게 풀어나가나요?
“먼저 전이와 의사소통 방식, 그리고 효 문제를 훑어요. 거기서 딱 걸리면 자기와 부모 간의 전이 문제를 살핍니다. 부부간의 ‘문제가 있는 의사소통 방식’이 이전의 부모와 걸려 있는지도 들여다봅니다. 문제를 푼다고 시도한 ‘역기능적 의사소통’이 다 상승작용을 해버려 문제를 더 악화시키기 때문이죠.”
대화할수록 갈등 커진다면, 말부터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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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영 교수는 “지금까지 부부가 사용한 비효과적인 의사소통 방식을 깨닫고 서로 마주 보며 솔직한 대화를 하도록 돕는 것이 가족치료의 목표”라고 말한다. 일러스트=조선DB |
“예컨대 전이, 내적 작동 모델, 시도된 해결책(역기능적인 상호작용 의사소통 방식), 자아 분화, 한국의 가족문화 등이 고통을 겪고 있는 이의 증상과 어떻게 연결됐는지 인식하고 궁극적으로 관계 변화를 추구하는 데 있습니다. 새로운 의사소통을 시도하는 것이죠.”
박 교수는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행동의 변화, 즉 언어의 변화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부부가 사용한 비효과적인 의사소통 방식이 원가족(부모)에서 전수된 것과 같이 자녀에게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서로 마주 보며 솔직한 대화를 하도록 시도하는 것이죠. 자신과 배우자에 대한 부부의 인식 변화가 행동, 즉 의사소통 방식의 변화로 이어지게 만듭니다.”
박태영 교수가 전해 주는 한국형 가족치료 사례를 들으면서, 집집마다 품은 갈등의 내용은 각기 다르지만 그것이 표면에 드러나는 과정은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또한, 결혼과 관련된 다양한 명언들이 떠올랐는데, 이들 중에는 서로 상반되는 내용도 많다. 이는 결혼이라는 관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그리고 갈등을 해결하는 데 어떤 태도가 필요한지를 시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장 큰 행복은 결혼이다.’(윌리엄 라이언 펠프스)
‘좋은 결혼이란 개인이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허용하며,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도 함께 발전하는 것이다.’(펄 S. 벅)
‘가장 위대한 결혼은 팀워크 위에 세워진다. 상호 존중, 적절한 존경심, 그리고 끝없는 사랑과 은혜의 토대로 이루어진다.’(폰 위버)
‘결혼이란 혼자일 때는 없었던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려는 시도이다.’(에디 캔터)
‘사랑은 눈을 멀게 하지만, 결혼은 눈을 뜨게 만든다.’(폴린 토마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