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 成 種 한국은행 도쿄사무소장
1947년生. 부산高, 서울大 경제학과 졸업. 美 브라운大 대학원 경제학과(석사) 수료. 한국은행 조사국 및 국제국에서 조사역·과장·부국장 역임. 2000년 6월부터 현직.
일본은 내리 10년째 경제침체기에 있지만 아직도 수출상품 경쟁력은 세계 1위다. 사회적으로 제기된 문제점의 해결을 위해 국가 전체가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저축을 너무 많이 해서 고민인 日本人들은 한국의 열한 배나 되는 內需시장을 갖고 있다. 일본은 우리보다 변화의 속도는 분명 느리지만 그들에게는 한번 한다면 철저히 하는 전통이 있다1947년生. 부산高, 서울大 경제학과 졸업. 美 브라운大 대학원 경제학과(석사) 수료. 한국은행 조사국 및 국제국에서 조사역·과장·부국장 역임. 2000년 6월부터 현직.
건재한 일본 경제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 경제는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뻗어나고 있었다. 일본 경제의 호황과 円高(엔고)의 영향으로 일본 땅을 다 팔면 그 25배나 되는 미국 땅도 살 수 있다고 호언하는 사람도 있었다. 1986년부터 1990년까지 5년 간 일본의 GDP는 연평균 5% 성장하였다. 같은 기간 중 6大 도시의 地價는 연평균 22% 상승하였다.
1980년대 초부터 미국 학계에서는 일본 경제가 주요한 연구 테마였다. 일본적 경영 체제, 종신고용제의 장점에 관한 연구가 학계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일본 관료의 우수성도 지적되었다.
그런 중에도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일본 경제의 한계에 대해 언급하는 학자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때 주로 지적된 문제들은 일본 경제의 폐쇄성, 경쟁 제한적인 각종 규제, 금융산업의 낙후성 등이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그동안의 일본 경제의 호황이 거품이었다는 것이 여실히 증명되었다. 6大 도시의 地價는 1991년부터 2000년까지 10년 간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고 골프회원권 값은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곳도 흔하다. 성장은 마이너스 아니면 제자리 걸음이었다.
부동산, 건설, 유통업 등에서 기업 도산이 늘어나면서 일본 경제의 구조적인 취약성이 새삼스럽게 부각되었다. 이 기간을 사람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상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 적어도 2∼3년 간은 지속될 전망이다.
일본 경제가 이처럼 장기 침체 상태에 빠지자 한국에서는 일본 경제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형성되었는데 이는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일본 경제가 10년 이상 지속된 침체 결과 지금은 극심한 불황 상태에 빠져 있다는 시각이다. 둘째, 일본 경제는 그 내재적인 문제점으로 인해 앞으로 회복될 가망이 없으며 한국이 더 이상 일본 경제에서 배울 점이 없다는 시각이다.
첫번째 시각은 일본에 와 본 한국 사람이라면 그것이 오해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에서 듣거나 자료를 통해서 본 일본 경제는 금방 쓰러질 것 같았는데, 실제 일본에 와서 보니 말로는 어렵다고 하면서도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정상적인 경기 상태와 별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이다. 연말 백화점이나 商街는 호경기를 방불하게 손님들이 줄 서 있고, 고급 외제 상품은 시장에 나오자 마자 매진되는 사례가 허다하니 말이다.
일전에 한국을 방문했던 어느 일본 사람의 말로는 한국 사람이 더 일본 경제를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사실 일본 사람들은 우리가 한국에서 생각하는 만큼 不況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그 이유에 대해 어떤 일본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선, 일본의 제조업은 아직도 경쟁력이 강하고 기업의 신용도도 높아서 外資가 갑자기 유출되어 한국이 경험한 것과 같은 외환위기가 발생할 우려가 없다는 점을 든다.
그리고 일본에는 아직도 종신고용제가 관행으로 되어 있어 실직자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점을 들었다. 또한 일본은 개인의 금융 자산이 家口당 평균 3083만 엔(약 3억3770만원에 상당하며 우리나라는 家口당 평균 약 5969만원) 가량 축적되어 있어 당장의 소비생활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 등을 들었다.
强者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
두 번째 시각은 어느 정도 감정적인 판단도 개입되어 있는 듯하지만, 일본 경제의 장래에 대해서는 한국에 비교적 비관적인 견해가 팽배해 있다. 이는 특히 아시아 금융 위기 이후 미국식 개혁이 모든 개혁의 기준이 되고 있는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한국 사람들은 언제부터인지 일본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아마 古來(고래)로 우리가 항상 일본에 문화를 전해 주었다는 긍지에서 우러나온 선입견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러한 선입견이 진실을 파악하는 눈을 흐리게 한다면 이는 우리의 손해로 돌아오게 된다.
일본에는 전통적으로 강자의 논리가 지배해 왔다.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武士 제도의 전통 때문일 것이다. 强者가 항상 우대받다 보니 强者의 기득권을 유지·보호하려는 힘이 지금도 사회 곳곳에 배어 있다. 우체국의 금융 업무를 민영화하는 문제도 겉으로는 우체국 직원의 취업 보장이 문제라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우체국의 조직적인 지지로 당선된 의원들과 이들이 소속된 파벌의 저항 때문에 답보 상태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건설, 유통, 통관, 검사 등 각계에 뻗치고 있는 규제도 결국은 관료와 기득권을 보호하려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각종 규제의 고리가 高비용을 초래하여 오늘날 「日本病」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는 일본의 현재와 장래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이것이 일본 경제의 한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일본 경제의 장래에 대해 기대감을 가지고 있으며, 언젠가는 일본 경제가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러한 믿음은 어디에 기초하고 있는가?
일본 경제의 한계는 대개 과거 일본 경제를 이끌어 왔던 강점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더 이상 일본에 적용하기 힘들어진 요소들이다. 이들은 오히려 일본 경제의 장기적인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흔히 지적되는 요소가 일본의 장기 고용제도이다. 일본에는 대개 평생 직장이며 중도에 직장을 그만두거나 해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일본의 이러한 고용 제도를 기업 지배구조론 입장에서는 「종업원 중시 지배구조」로 분류한다. 서구, 특히 미국식 기업의 「株主 중시 기업 지배구조」와 대칭되게 사용하고 있다. 일본의 기업이 고용을 얼마나 중시하는지는 다음 일화가 잘 말해 준다.
종업원을 해고하는 것은 사장의 최대 죄악
2000년 8월 초 어느 날 일본경영자단체연맹(日經聯)이 주최하는 하계 세미나가 同 연맹 후지 연수소에서 열리고 있을 때의 일이다. 일본에 있어서의 경영자의 역할에 관한 세미나에서 초청 강사인 히토츠바시(一橋) 대학의 요네쿠라(米倉) 교수가 『일본 기업의 경영도 株主 중시 경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에 주최 측인 日經聯의 오쿠다(奧田) 회장(도요타 자동차 회장)을 비롯하여 많은 경영자가 반론을 제기하였다. 반론의 요지는 『일본 기업 경영의 목적은 고용 유지로서 「인간 존중의 이념」에 바탕을 두고 「인간의 모습을 띠는 시장 경제」의 실현이다. 그것이 경영자의 사명이다』는 것이었다(「日經聯타임즈」 2000년 8월10일자). 이는 결국 일본의 기업은 고용 유지를 가장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기업에 이러한 고용제도가 도입된 데에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일본에 있어서 「사회적 公器로서의 기업」 개념은 明治시대 이래 私企業 정당화의 이념으로 형성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대기업 경영자들에게 인식되는 主流(주류) 이념이다. 이러한 이념은 많은 대기업에서 社訓으로도 채택되고 있을 정도로 일반적이다.
19세기에 산업화를 시작한 일본은 산업 근대화를 촉진하는 과정에서 봉건사회의 강력한 反자본주의적 가치관을 조속히 극복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개화기 선각자들은 사업을 통해 아무리 조그만 이익이라도 벌어들이는 것은 그것이 자동적으로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된다고 가르쳤다. 사업가의 이익 획득 동기가 老後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든지, 자식을 위한 것이든지, 아니면 단순히 蓄財를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국가를 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직장을 제공하고, 그들이 나라에 세금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은 다시 새로운 건국의 과제에 직면하였다. 재벌 해체와 경영자 추방은 일본 대기업의 개념을 바닥으로부터 변화시켰다. 전쟁 이전에는 家族 재벌이었던 미츠비시(三菱), 미츠이(三井), 스미토모(住友), 야스다(安田)의 4大 재벌이 일본 全산업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러한 재벌이 戰後에 해체되었다. 재벌 해체와 동시에 경영자 추방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재벌계 기업 경영자 약 1400명, 기타 戰時 군수기업 250社의 경영자 2200명 등 총 3600여 명이 추방되어 대부분 前職으로 돌아오지 못하였다.
이들을 이어 경영의 책임을 맡은 사람은 젊고, 현장 실무 경험이 많은 전문 관리자들이었다. 이들은 기업과 국가의 재건에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이처럼 대규모로 광범위하게 기존 권력을 붕괴하고 재산을 再분배한 것은 근세 경제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大변혁이었다.
이로써 일본에서는 「자본가 없는 자본주의」가 실현되어 전문 경영자와 종업원 사이에 경제적·사회적 거리가 거의 소멸하여 종업원 중심의 다원적 기업 개념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下에 생겨난 종업원 중시의 기업에서 『종업원을 해고하는 것은 사장의 최대 죄악이다』는 말이 당연히 나오게 된 것이다.
종업원 복지를 회사가 책임지는 시스템
종업원을 중시하는 일본의 장기고용 제도는 일본 경제가 고도 성장을 구가한 1980년대 이전에는 종업원의 근로 의욕을 자극하여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산업구조가 자본집약화되고 생산 방식이 자동화되면서 장기고용 제도는 더 이상 일본 경제의 강점이 못 되었다.
더구나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 경쟁 체제下에서는 지금까지 종업원에게 제공되었던 고용의 안정성이 기업에게는 고용의 경직성으로 다가와 기업의 경기 대응력을 약화시키고 나아가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어 버렸다.
일본의 장기고용 제도는 종업원의 복지를 국가가 아닌 기업에서 책임지는 방식으로 발전되었다. 회사 社宅 제공, 社內 연수를 통한 자기 개발, 빈번한 직장 회식, 사원 여행 등의 문화가 장기고용 제도의 부산물인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기업 복지제도는 한때 서구에서 국가 재정이 사회보장 부담 과중으로 인해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을 때 그 해결책으로 연구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시대가 바뀜에 따라 일본에서도 대기업이나 경제 단체가 이제는 株主 중시 기업 형태로의 변화를 수용하는 경향이 강해졌으며, 고용제도도 명예퇴직제의 도입 등 신축적인 고용제도가 점차 확산되어 가는 추세에 있다. 法制도 이를 수용하거나 권장하는 방향으로 개정할 것이 검토되고 있다.
다음으로 지적되는 일본 경제의 한계는 非효율적인 관료 집단과 이들로부터 생성된 非효율적인 규제의 존재이다. 정부에 의한 각종 규제 역시 일본의 우수한 관료 집단이 일본의 고도 성장을 이끌고 있다고 자부하던 그 시절에는 유효한 정책수단이라고 자타가 인정했던 것이다. 일본에서의 규제 제도는 한국에서와 같은 각종 경쟁 제한적인 규제, 예컨대 신규 참여 제한, 독과점 규제 등에 더하여 동업자 단체를 통한 경쟁 제한의 폐해가 특히 심한 편이다.
일본의 기업들은 동업자 단체를 만든 목적이 共生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이 목적에 충실한 모습이다. 일본인들은 서로 협조(일본 발음으로 쿄오쵸오)하는 데는 뛰어나지만 서로 경쟁(쿄오소오)하는 데는 우리나라에 비해 뒤떨어진다. 한국에도 각종 직종별 조합 등이 있어서 집단의 이익을 유지·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일본의 경우에 비하면 그렇게 심한 편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오히려 경쟁이 과열되어 문제시되고 있지 않은가.
일본에서 대형 민간 공사나 공공 공사에 있어서 동업자 간 순서에 입각한 談合(담합)은 오래 전부터의 전통이고, 이를 통한 부패의 사슬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국에서도 정부의 방침을 전달하는 대상으로서 동업자 단체를 활용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강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와 재벌이 직접 상대하는 관행이 정착되어 있다. 全經聯 회장이나 상공회의소 회장이 업계를 대표해서 정부에 건의하는 사례가 있기는 해도 정부의 중요한 정책은 정부와 개별 재벌간의 경로로 전달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방식이다. 개별 기업 또는 재벌이 정부에 요청할 사안도 협조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이 모든 것이 업계 단체의 대표를 통해 이루어진다.
일본의 관료 조직은 이제 더 이상 엘리트 조직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힘은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뿌리 깊고 강력하다. 2001년 초에 정부 조직이 대장성 개편을 핵심으로 하여 대대적으로 개편되었지만 공무원 수는 한 명도 줄어들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일단 줄였다가 다시 늘렸다는 점에서는 다소의 차이가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마찬가지라 하겠다. 최근에 있은 다나카 외상의 경질도 외무성 관료의 조직적인 개혁 저항에 고이즈미 수상이 관료의 손을 들어 준 것이라는 평가가 大勢다.
정부의 각종 특수법인을 개혁하자는 논의가 활발하지만 당초의 개혁 의지가 관철될지는 미지수다. 일본에서도 각 분야에서 규제를 폐지하자는 의견이 긍정적으로 논의되고 있으나 그 실행을 준비 기간,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3년 또는 5년 후로 계획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2년 내에 결딴을 내려는 우리나라와는 판이한 모습이다.
저축 많이 하니 소비가 줄어
일본 경제의 세 번째 한계는 국민의 높은 저축성향이다. 투자 수요가 왕성한 고도 성장기에는 국민의 높은 저축 성향이 투자 財源을 뒷받침했지만 오늘날과 같은 불황기에는 오히려 경제의 역동성을 해치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저축 성향이 높다는 것은 소비가 부진한 면과 높은 저축을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투자 수요가 미약한 면을 반영한다. 결국 일본에서 저축 성향이 높다는 것은 경기가 부진하고 그 회복 전망도 어둡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인 것이다.
소비와 투자(최근 일본에서는 특히 非제조업 투자) 수요의 부진은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이는 다시 경제 불안을 초래하여 소비와 투자 부진을 불러온다. 거시경제 지표를 통해 일본 경제를 보면 수출과 제조업 설비투자가 제로 성장이나마 일본 경제를 견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민간 소비는 극히 부진한 상태다. 1990년대 초반에만 해도 연간 3~5%씩 증가하던 민간 소비가 1990년대 후반에는 0~1%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와 같이 민간 소비가 부진한 데는 우선 장래 소득·직장에 대한 불안감, 고령화 사회의 진전에 따른 사회보장 부담 증가 및 급부금 감소 대비, 주택 등 자산가치 하락 대비 등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와 같은 소비 행태를 보면 당분간 일본 경제의 회복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소비가 부진한 당연한 결과로 일본 사람들은 저축을 즐긴다. 일본 사람들의 높은 저축 성향이 개인 금융자산의 축적으로 나타났다. 장기간 지속된 불황에도 불구하고 일본 국민들이 심각한 동요 없이 버티어 나가는 것은 1400조 엔에 달하는 개인 금융자산의 힘이라 할 것이다.
일본 금융의 낙후성과 부실 채권 과다도 일본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중요한 장애물이다. 한국에서도 경험했지만 부실 채권을 과다 보유한 금융기관은 신용 경색(credit crunch) 상태에 빠져 금융 본연의 기능을 마비시키게 된다.
작년 고이즈미 내각이 들어선 이후 금융 기관의 부실 채권을 정리하기 위해 많은 논의를 했지만 전국 은행 전체로 36조엔(2001년 9월 말 기준이나 시장에서는 이보다 훨씬 거액일 것이라고 추정), 총 대출금의 7%를 상회하는 부실 채권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금융기관과의 거래를 중단해야 하는 기업이 속출할 것이다.
때문에 이것이 고용이나 경기에 미칠 치명적인 영향을 고려하면 부실 채권을 과감하게 정리하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부실 채권을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이 발달되어 있지 않다는 점, 또 은행이 채권 대손 처리에 따른 손실을 감당할 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 등으로 인해 앞으로 2∼3년 간에 걸쳐 실시될 부실 채권 정리가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세계 제1의 경쟁력 가진 수출상품
마지막으로 지적할 수 있는 일본 경제의 한계는 경제에 활력이 모자란다는 점이다. 소비자와 기업은 장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소비와 투자를 기피하고 있다. 일부 IT(Information Technology:정보기술) 산업과 수출 산업의 투자 외에는 증가 항목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형국인 것이다.
일본 경제에 활력이 모자라게 된 데는 앞에 열거한 일본 경제의 문제점, 장기고용제와 정부 규제의 과다에 따른 高비용 구조, 경제 불안과 고령화 사회의 진전에 따른 높은 저축 성향(소비 부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일본인들의 지나친 조심성, 모험심 부족 등도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반면에 일본 경제의 강점이라면 역시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수출 상품이다. 일본이 경공업 부문에서는 미국은 물론, 한국, 중국에도 경쟁력에서 열세에 있지만 일본의 수출을 주도하고 있는 자동자, 전자기계, 공작기계, 철강 등은 세계 제1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게이오(慶應)大 교수를 거쳐 지금 고이즈미 내각에서 경제재정담당상을 맡고 있는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가 쓴 「일본기업의 저력」이란 책에는 일본을 이끄는 세계적인 5大 기업으로 자동차의 도요타 자동차, 전기제품의 마쓰시타 전기, 정보통신의 NTT, 간장메이커 키코만, 그리고 다이이치강교은행과 일본흥업은행, 후지은행의 세 은행이 2000년에 통합되어 발족한 미즈호 금융그룹을 들고 있다.
이들의 특징을 보면 시대를 앞서서 경영을 혁신하거나 제품을 개발하여 경쟁을 헤쳐 나갔다는 것이다. 여기에 몇몇 기업을 추가한다면 同種 업종의 적자 행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흑자를 기록한 소니와 캐논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끊임없이 신제품을 개발하여 세계 시장의 수요를 리드해 감으로써 흑자를 지속해 온 기업이다. 이들은 세계를 상대로 수요의 흐름을 읽어 내고 여기에 일본인과 일본 문화의 고유한 장점을 상품 개발에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들 기업은 오늘날 장기 불황 속에 헤매고 있는 일본 경제를 먹여 살리는 효자 기업이다.
풍부한 자본 축적과 한국의 11배 규모 內需 시장
한국과 비교해 본 일본의 강점은 무엇보다도 앞에서 본 산업기술 개발력이 되겠지만 장기간 축적된 자본 스톡이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풍부하다는 점도 일본 경제를 받쳐 주는 기둥의 하나로 빼 놓을 수 없다. 제조업의 기술 개발도 결국 이런 축적된 자본이 있어야 가능하다.
일본에 처음 오는 한국 사람이 예상했던 것보다 볼 만한 것이 많다고 하는 것은 바로 어디든지 철도가 연결되어 있고 어디든지 문화시설이나 관광시설이 정비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앞의 표에서 보다시피 일본의 철도 총 연장은 2만7222km로 우리나라의 약 7.7배나 된다.
일본의 넓은 시장 규모는 일본 경제의 중요한 잠재력이다. 지금은 불황기라 넓은 내수시장이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한국의 11배가 넘는 규모의 일본 內需 시장이 일단 탄력을 받으면 무서운 저력을 발휘할 것이다. 일본에서 그렇게 많은 도서가 발행되는 것도 서적 출판 시장이 한국보다는 11배 이상 크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의 근면성, 정직성도 일본 경제를 받쳐 주는 중요한 힘이다. 요즘은 일거리가 줄어들어 일본 사람의 근면성을 발휘할 기회가 적어졌지만 일본 사람들은 생리적으로 한시도 한가하게 소일하는 법이 없다. 한가할 때는 책을 보든지 하다 못해 마당을 쓸든지, 방바닥이라도 닦는 것이 일본인이다.
그들의 정확성도 알아 주어야 한다. 가게에서 물건을 주문하든지 수리를 맡겼을 때 그들은 틀림없이 정해진 날짜에 끝냈다는 연락을 해 준다. 우리나라의 경우 무리하게 손님이 원하는 날짜에 약속을 하지만 실제로 그 날짜가 지켜지리라 기대하기 힘든 것이 보통이다. 그들은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하는 것이다.
일본의 파출소 앞을 지나가다 보면 반드시 경관 한 명이 바깥을 내다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분명 모든 파출소는 적어도 경관 한 명이 바깥을 경계하도록 규정에 정해져 있으리라. 그러나 지금까지 이 규정을 지키는 파출소가 몇 군데나 있을까? 그들은 지킬 수 있는 규정을 만들고 정해진 규정은 폐지하기까지는 반드시 지키는 것이다.
일본 경제 성공의 조건
일본 사람들은 조심성이 지나쳐 리스크 투자를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 투자가 적은 것도 이들의 조심성이 한 원인이다. 그러나 그들의 투자 행태를 보면 경기가 회복되기 전에 투자를 늘린다. 우리나라의 투자는 경기가 한창 과열일 때, 시설 부족감을 느낄 때에야 투자를 늘린다. 그러나 일본의 기업들은 경기회복이 가시화되면 곧 투자를 늘린다. 시야가 우리보다는 길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匠人 정신도 일본 경제를 받쳐 주는 힘이다. 오늘날 세계에 일본의 산업기술력을 자랑하게 된 것도 결국은 이들의 뿌리 깊은 匠人 우대 전통이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는 관계의 사회이며 집단의 사회이다. 사회의 어떤 사람도 어떤 조직의 일원이 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 것이 일본 사회다. 따라서 이들은 신용을 중시한다. 신용이 없으면 물건을 사기도 팔기도 어렵다. 가격이 싸다고 이 가게 저 가게 옮기는 것은 일본의 전통에 어긋난다.
대신 오래 된 고객은 애프터 서비스나 품질에 대해서는 확실한 보장을 받을 수 있으며, 혹시 그 물건이 귀하게 될 때는 우선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대우를 받는다. 건물 임대차 계약에서도 오래된 고객과 신규 고객은 분명 임대료에서 차별된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심각한 분쟁거리가 되겠지만 일본에서 이를 문제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본 경제가 선진국과 開途國의 기대대로 21세기에 살아 남아 세계 경제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이 과제들을 해결해야 일본 경제는 성공할 수 있다. 이들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일본 경제의 저력이 발휘될 수 없다.
각 분야에서의 개혁을 통해 일본 사회에 깊숙이 뻗쳐 있는 高비용 구조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일본 경제가 미래에의 비전을 가지고 과거의 역동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고이즈미 내각이 개혁의 방향을 바로잡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고이즈미 개혁의 첫째 부문은 정부 개혁이다. 지금까지는 정부 개혁의 범위가 중앙 정부의 지출 억제, 적자 감축, 그리고 공기업 개혁에 한정되고 있는 듯하지만 언젠가는 중앙 정부의 간소화에까지 개혁의 범위를 확대해야 진정한 정부 개혁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구체적으로 나타난 고이즈미의 공공 부문 개혁 방안은 중앙 정부보다는 공기업 개혁에 집중되어 있다. 郵政 업무 민영화와 특수 법인 통폐합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이들도 시급한 개혁 과제임에 틀림없지만 정부에 의해 주도되는 각종 규제를 좀더 과감하게 해제함으로써 정부의 역할을 再정립하고 조직을 간소화하는 데까지 개혁의 바람이 불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기업을 개혁해야 한다. 기업 개혁은 우리나라처럼 정부가 밀어붙이기 어려운 분야이지만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경쟁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각종 규제를 해제하면서 시장 규율이 이를 대신할 수 있도록 제도를 再정비해야 할 것이다. 고용의 신축성도 提高되어야 한다.
일본의 교육도 개혁되어야 한다. 경쟁체제가 강화되어야 하고 공부하는 대학을 만들어야 한다. 일본에서는 사회가 요구하는 지식을 대학에서 배우기보다는 기업에서 배우는 체제이다. 대학생들은 아직도 공부보다는 낭만을 추구하고 있는 듯하다. 학생은 물론 교수 사회에서도 경쟁체제가 도입되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기업의 비용, 나아가 사회의 비용을 줄이는 진정한 개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혁 과제들이 성공한다면 일본 사회에는 경쟁의 효율성이 자리잡을 수 있으며 그렇게 되어야만 소비자의 심리도 안정되어 경제는 정상적인 회복 궤도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개혁에 실패한다면 그들의 그 흔한 엄살대로 일본 열도는 정말 침몰할지도 모른다.
일본은 새 지도자를 기다린다
일본은 한국에게는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이다. 우리와 다른 점이 없어 보이면서도 많은 부분이 다르다. 그 일본이 이제는 변화의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여러 가지 개혁 과제를 안고 그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종신고용제의 전통도 약해지고, 한국에서 성행했던 명예퇴직 제도도 도입되고 있다. 관록과 경륜으로 경영하던 구세대를 대신해서 실력 있는 젊은 경영자가 등장하고 있다. 값싼 수입품의 인기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10년 불황을 통해서 경쟁력이 약한 기업들이 도태되고 있다. 우리보다 변화의 속도는 느리지만 일본은 분명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한번 한다면 철저히 하는 전통이 있다.
이들은 오랫동안 뿌리 깊었던 음력 과세를 명치유신 이래 과감하게 양력 과세로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음력으로 쇠던 삼월 삼짇날(히나마츠리), 칠월 백중(中元), 팔월 추석(오봉)까지도 양력으로 쇠고 있으니 그 철저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이 과거에 지도자를 제대로 만나, 그것이 옳은 방향이 아니라 하더라도 큰 힘을 발휘했듯이 오늘의 일본도 이제 지도자를 待望하고 있다. 그 지도자가 나타나면 일본은 분명 새로운 힘으로 세계 무대에 등장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