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특검 조사 후 사망한 정희철 씨가 일하던 양평에 가 보니…

주민들, 이구동성으로 “참 착한 사람… 언론이 억울함 풀어 달라”

  • 글 : 고기정 월간조선 기자  yamko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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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월면에 내리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끝없는 추모 현수막
⊙ “돈 받을 위치 아니었고, 그럴 배짱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 “마을 사람 대부분이 ‘강압 수사 때문에 사람이 죽었구나’ 생각”
⊙ “경비원에게도 허리 굽혀 인사하는 사람”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에 전 면장 정희철씨를 추모하는 현수막이 줄지어 걸려 있다.
“그분은 절대 사리 분별 못 하고 돈을 밝힐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장담합니다. 출세를 위해 아부하고 그런 사람도 아니었어요. 그냥 얼굴 까맣고 키 크고, 성격이 어수룩해서 쉰 살 넘도록 장가도 못 간 착한 공무원이었습니다.”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丹月面)에서 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한 공인중개사의 말이다. 그는 기자에게 “정희철 면장님은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며 “언론이 그의 억울함을 꼭 밝혀 달라”고 말했다.
 
  정희철(57) 단월면장은 ‘김건희 특검’의 소환 조사를 받은 뒤 10월 10일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는 10월 3일 특검 조사를 마치고 귀가한 후, “수사관의 강압에 전혀 기억에도 없는 진술을 했다” “지속적인 무시와 모멸감을 느꼈다” “모른다고 하면 다그치고, 사실을 말하면 거짓이라고 했다” “군수와 국회의원을 지목하라고 했다”는 내용의 메모를 남겼다. 메모에는 ‘수모’ ‘멸시’ ‘강압’ ‘무시’ ‘강요’나 유사한 표현이 18차례나 반복됐다.
 
  특검은 김건희 여사 가족회사인 ESI&D가 2011~16년 사이 추진한 개발사업과 관련해, 기한 내 사업을 완료하지 못했음에도 양평군이 개발부담금을 부과하지 않도록 도왔다는 의혹으로 정씨를 불러 조사를 진행했다. 이른바 ‘공흥지구 특혜 의혹’이다. 당시 정씨는 양평군청 주민지원과(課) 지가(地價)관리팀장으로, 개발부담금 행정을 담당했었다. 이미 2021년 같은 의혹으로 수사를 받았지만, 수원지검 여주지청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특검팀은 “조사는 강압적인 분위기가 아니었으며, 회유할 필요도 없었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끝이 보이지 않는 현수막 행렬
 
  10월 13일 아침, 기자는 고인이 면장으로 근무했던 단월면을 찾았다. 인구 약 3900명의 작은 시골 마을인 단월면엔 하루 종일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추모 현수막 행렬이었다. ‘고(故) 정희철 면장님의 명복을 빕니다’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힘이 되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면장님 감사합니다~ 단월 사랑 잊지 않겠습니다’ 등, 검은 배경에 흰 글씨로 적힌 문구들이 도로변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었다.
 
  기자는 무작정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문을 열고 들어가 고인에 대해 물었다. 마을 주민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모든 이름은 익명 처리했다. 중개사 A씨는 기다렸다는 듯 고인 이야기를 꺼냈다.
 
  “이미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던 일을 특검이 왜 다시 끄집어내 강압적으로 조사했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분 편을 드는 게 아니라, 설사 잘못이 있다 해도 일개 공무원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돈을 받을 위치도 아니었고, 그런 배짱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마을 사람 대부분이 소식을 듣고 ‘강압 수사 때문에 사람이 죽었구나’ 하고 말했어요.”
 

  ― 마을 주민과 고인은 가까운 사이였나 봅니다.
 
  “그럼요. 그분은 늘 마을 곳곳을 돌며 부족한 게 없는지 살폈어요. 성격이 워낙 붙임성 있고, 사람 챙기기를 좋아했습니다. 면사무소 여직원들이 많았는데, 동료들도 세심히 챙기고 마을 주민들과도 허물없이 어울렸죠. ‘면장님 덕분에 동네 분위기가 좋아졌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 평가가 참 좋네요.
 
  “단월면에서 그분 얘기를 꺼내 보세요. 누구나 ‘참 착한 사람’이었다고 기억할 겁니다. 이제 다시 보지 못하지만….”
 
 
  “꼭 억울함 풀어 달라”
 
10월 14일 오전 9시, ‘김건희 특검’ 수사를 받은 뒤 극단적 선택을 한 故 정희철 前 면장을 위한 노제(路祭)가 열렸다. 사진=단월면 주민 제공
  A씨는 단월면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꼭 그분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고인의 죽음이 알려진 뒤 많은 기자들이 단월면을 찾았지만, 정작 이들의 목소리가 기사로 실린 적은 아직 없었다고 했다.
 
  기자는 면사무소 앞 조그만 중식당으로 향했다. 세월의 흔적이 묻은 주방에서 “면장님에 대해 물으러 왔다”고 말하자, 가게 사장 B씨가 한달음에 달려 나왔다. 고인이 면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이곳을 자주 찾았다고 했다. 점심시간이면 두세 명의 동료와 함께 식당을 찾아 식사하며 즐겁게 웃던 모습이 아직도 아른거린다고 했다.
 
  “주방에 있다 보면 이야기가 다 들리거든요. 테이블에 둘러앉아 식사하면서 즐겁게 웃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해요.”
 
  ― 동료들을 잘 챙겼던 모양이네요.
 
  “그럼요. 일도 정말 꼼꼼히 했습니다. 낙엽 떨어지는 계절이면 직접 나와 환경 미화에 신경을 썼어요. 식당에도 자주 들러 사람들 안부를 챙기고, 허물없이 지냈죠.”
 
  ― 고인 사망 이후 마을 분위기는 어떤가요?
 
  “안 좋죠. 모두 축 처져 있죠. 열심히 일하던 사람이 그렇게 갔으니 다들 마음이 무겁습니다.”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C씨도 고인을 기억했다. 그는 고인의 고향 후배이기도 하다.
 
  “시골 면장은 으레 ‘약주 한잔하고 일을 미루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그분은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일을 워낙 잘해서 평가가 좋았습니다.”
 
 
  “이건 옳게 된 나라가 아니지요”
 
정희철 전 면장은 경로당 유지·보수를 위해 힘썼다고 한다. 그가 어르신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놓고 간 금전수 화분과 최신형 냉장고 및 수납장, 새로 교체된 변기(왼쪽부터).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기자가 왔다는 소문이 돌자, 한 노인이 “노인정에 가보라”고 귀띔했다. 그가 면장으로 있던 3년 동안 특히 노인정에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것이다.
 
  노인정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커다란 금전수 화분이었다. 정 전 면장이 선물한 것이라고 했다. 금전수의 꽃말은 ‘빛나는 미래’.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는 이 화분을 선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추석 연휴가 끝난 직후였다.
 
  노인정 안에는 고인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최신형 냉장고와 서랍장, 새로 교체된 변기까지, 모두 정 전 면장이 노인정을 위해 힘쓴 결과물이자 배려였다고 한다.
 
  ― 고인이 노인정을 자주 방문했나요?
 
  “자주 왔어요. 수시로 들러서 노인들 건강은 어떤지, 불편한 건 없는지 살피곤 했죠. 그렇게 열심히 하던 사람이었는데…. 참 안타깝게 됐습니다.”
 
  ― 다른 분들도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하더군요.
 
  “얼마나 억울했겠어요. 평생 연금 받고 조용히 살 수도 있었는데,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선택을 했겠습니까. 특검도 너무했죠. 추석 전날에 불러다 조사하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 많이 속상하시겠습니다.
 
  “그럼요. 동네 전체가 침울합니다. 내일(10월 14일) 오전 9시에 노제(路祭)를 지낸다고 마을 단체 채팅방에 올라왔어요. 다들 참석할 겁니다. 저는 8시 반부터 가있으려 합니다. 그렇게 노인들을 살뜰히 챙긴 사람이 없었거든요.”
 
  ― 고인에 대해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 있나요.
 
  “하나 있죠. 제가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어느 날 어머니 앞으로 꽃다발이 온 겁니다. 보낸 사람이 면장님이었어요. 어르신들 생신에 맞춰 직접 꽃다발을 보냈습니다. 그걸 보고 정말 감동했죠. 그렇게 하는 면장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아마 단월면엔 그 사람 하나뿐이었을 겁니다.”
 
  ― 그랬군요.
 
  “저희 어머니뿐만 아니라 마을에 있는 많은 노인분들이 면장님이 선물하는 꽃다발을 받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착한 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했겠습니까. 경찰이 심지어는 유족들에게 유서도 보여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이건 옳게 된 나라가 아니지요.”
 

  이 외에도 기자가 고인에 대해 물으면 마을 사람들 모두 “참 착한 사람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를 회상하며 눈물을 보이는 주민까지 있었다.
 
  면사무소 앞 전광판에는 ‘故 정희철 면장님의 명복을 빕니다. 공무원 모두가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떠있었다. 다만 단월면사무소에서는 “죄송하다”며 답변을 피했다. 어쩔 수 없이 입을 닫아야 하는 공무원들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고인이 생전 살았던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단월면에서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아마 그는 이 도로를 3년간 수도 없이 오고갔을 것이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소장은 기자를 반갑게 맞으며 “할 이야기가 많다”고 했다.
 
  “추석 전날, 면장님이 ‘늦어서 죄송하다’며 선물을 주고 갔어요. 각종 생활용품들이 들어 있는 박스였습니다. 제가 그날 순찰을 돌고 있었는데, 선물을 두고 간다며 전화를 걸었습니다.”
 
  소장은 곧장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 고인과 나눈 그날의 기록을 보여 줬다. 1분 남짓한 통화 기록이 한 사람의 핸드폰에 기록되어 있었다. 소장은 “그날 얼굴을 보고 감사하다고 말하지 못한 것이 한(恨)이 된다”고 했다.
 
  ― 고인은 평소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아주 점잖고 겸손했어요. 얼굴이 까맣고 말랐는데, 항상 웃고 다녔죠. 구설수 한번 없었고, 경비원들에게도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언론이 그의 억울함을 꼭 밝혀 달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10월 13일 오전 경기남부경찰청의 의뢰에 따라 정 전 면장의 사인(死因)을 확인하기 위한 부검을 진행했다. 부검에서 나온 1차 소견은 ‘타살 등 범죄 혐의점이 없다’는 것이었다. 최종 감정서가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또한 경찰은 그의 사망을 둘러싸고 제기될 수 있는 의혹을 사전에 모두 확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기 양평경찰서는 같은 날 국과수에 그가 남긴 유서에 대한 필적 감정을 의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전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검 수사 절차의 위법을 국감에서 반드시 밝혀내겠다”며 “고인에 대한 강제 부검을 즉시 중단하고, 고인의 유서와 조사 과정 전체의 폐쇄회로(CC)TV를 즉시 국민 앞에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이미 세상을 등졌다. 이 사건으로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피해자도,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도 모두 공직자들이지만,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대통령은 10월 15일 현재까지 유감 표명 한마디 없는 상황이다. 1980년대 이른바 군사정권 시절에도 사람이 죽었으면 책임을 물었다.
 
  기자가 단월면에서 만난 주민들은 한목소리로 “언론이 그의 억울함을 꼭 밝혀 달라”고 했다. 그의 메모에는 한이 서려 있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유서에 수사관의 이름까지 적었을까. 한을 풀어 달라는 의미일 것이다.⊙
 
알립니다
 
  《월간조선》은 양평군 단월면장 고(故) 정희철씨의 이름을 공개합니다.
 
  한국기자협회의 자살예방 보도준칙에 따라 주요 언론은 실명을 밝히지 않았지만, 일부 매체가 이미 실명을 보도했으며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역시 공개석상에서 고인의 이름을 언급하며 명복을 빌었습니다.
 
  특검의 강압 수사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공적 사안의 투명한 전달을 위해 실명을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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