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시점 여권 인사 중에서는 그나마 그가 적임자”
⊙ “약속대로 보복성 인사는 없는 분위기”
⊙ “현실적이면서 영민한 인물… 타협과 중용의 리더십 기대”
⊙ “대공수사권 복원 선 그었지만, 방첩활동 도외시하진 않을 것”
⊙ “이종석은 ‘자주적 동맹파’… 당분간 對美관계 집중할 것”
⊙ “국정원, 이미 오래전 행정기관화… 대북전략局에 자원 집중될 듯”
⊙ “국정원을 ‘국가 정책의 사각지대 발견하고 이를 보완하는 정책 길잡이’로 여긴 노무현 지켜본 사람”
⊙ “약속대로 보복성 인사는 없는 분위기”
⊙ “현실적이면서 영민한 인물… 타협과 중용의 리더십 기대”
⊙ “대공수사권 복원 선 그었지만, 방첩활동 도외시하진 않을 것”
⊙ “이종석은 ‘자주적 동맹파’… 당분간 對美관계 집중할 것”
⊙ “국정원, 이미 오래전 행정기관화… 대북전략局에 자원 집중될 듯”
⊙ “국정원을 ‘국가 정책의 사각지대 발견하고 이를 보완하는 정책 길잡이’로 여긴 노무현 지켜본 사람”

- 2025년 6월 19일 이종석 당시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를 경청하고 있다. 사진=조선DB
이종석 원장은 대북통(通)으로 불린다. 참여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과 통일부 장관을 역임하며 외교안보 라인의 실세(實勢)로 평가됐다. 그러나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여파로 그해 12월 통일부 장관에서 사임했다. 이후 세종연구소(수석연구위원) 등에서 학자로 활동하다 19년 만에 정부 당국자로 복귀했다.
취임 약 3주가 지난 7월 중순 현재 이 원장은 조직 분위기 파악에 분주하다고 전해진다. 국정원 관계자는 “외부 인사가 원장이나 차장으로 부임하면 한동안 조직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면서 “그러다 약 6개월이 지나면 자기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한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권에 따라 ‘사고 치지 않고 조용히 있을 만한’ 인물을 원장 자리에 앉히는 경우도 있는데, 이종석 원장은 ‘확실한 과제’를 부여받은 인물”이라고 했다.
“‘정치 9단’보다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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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정부 시절 “이종석의 생각이 곧 노무현의 생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종석은 노무현의 신임을 얻었다. 사진은 지난 2006년 2월 16일 저녁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재외 공관장 내외 초청 만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이종석 통일부 장관 내외를 맞는 모습. 사진=조선DB |
국정원에서 방첩(防諜) 업무를 담당했던 A씨는 “이데올로기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많지만, 학자 출신인 만큼 본인의 학문적 신념에 따라 움직이되 국정원을 정치적으로 활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안보 단체에서 활동 중인 그는 ‘보수 인사’로 분류되지만 “이종석 원장에게 거는 기대감도 있다”고 했다.
“지난 2003년 이라크 추가 파병 논의 당시 NSC 사무차장이던 이종석 원장은 파병 규모를 3000명 선으로 조정했다.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미국의 요구에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이 많이 따랐지만, 개인적으로 미국의 대규모 파병 요청과 국내 여론, 국방부 입장 사이에서 현실적인 조율안을 제시한 것이라 본다. 동맹을 고려하면서 국익과 국내 정서까지 고루 다루기는 쉽지 않다. 국정원 운영에서도 이 같은 타협과 중용(中庸)의 리더십을 발휘할지 주목된다.”
이종석 원장은 NSC 사무차장이던 당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무한 신임을 얻었다. “NSC의 대표자는 라종일 국가안보보좌관이지만, 실질적으로 이를 이끄는 사람은 사무차장”이라는 얘기가 파다했다. 언론에는 ‘이종석 독주 체제’라는 용어가 심심찮게 등장했다.
그 무렵 “이종석의 생각이 곧 노무현의 생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둘의 대북관(對北觀)은 일치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11월 15일 미국 LA에서 “북한이 핵(核)과 미사일을 외부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억제 수단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고 했다. 이에 앞서 그해 6월 15일에는 “남북 간에 대결과 적대 행위를 줄이고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대북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 중단은 그런 신뢰 구축의 첫걸음”이라고 했다. 남북 군사회담 합의에 따라 우리 군(軍)의 대북 확성기 방송과 전단을 중단한 직후에 한 말이다.
NSC 사무차장 시절 대내외 심리전 중단
이종석 원장이 NSC 사무차장으로 있을 당시 군의 대북 심리전은 국정원이 통제했다. 국정원이 예산을 집행했다는 얘기다. 대북 방송 중단 전후 국정원에서 심리전(心理戰) 업무를 담당했던 B씨의 전언(傳言)이다.
“그 무렵 이종석 NSC 사무차장이 국정원에 지시를 내렸다. ‘북한과의 교류 외에, 북한을 자극하는 어떤 활동도 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북한 실상을 폭로하던 심리전 업무의 전면 중단뿐만 아니라, 북한에 우호적인 면을 부각하라는 주문까지 내려왔다. 이후 김씨 일가의 실체 및 인권 문제 노출은 올스톱됐고, 북한의 풍부한 자원과 개발 여지 등 홍보성 콘텐츠만 제작됐다. 대북 라디오와 방송에도 음악만 내보냈는데, 그마저도 한국 가요나 댄스곡은 북한 청년층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됐고 클래식 음악만 송출해야 했다.”
이와 함께 국정원 주도의 ‘안보정세 교육’도 전면 중단됐다고 한다. 백령도나 동해안 등에 위치한 안보전시관에서 각 지방의 주요 인사 등을 대상으로 주 1회 진행하던 교육으로, 일반인의 안보의식 고취가 목적이었다. 대북 전단처럼 북한 주민을 동요시키는 전술이 ‘대외 심리전’이라면, 이 같은 안보교육은 적의 심리전에 맞서 국민의식을 방어하는 ‘대내 심리전’ 성격이었다. B씨는 “크게 두 축으로 구성된 심리전 활동 전반이 멈춘 셈”이라면서 “대북 공격은 차단되고, 북한의 주장과 메시지가 적극적으로 소개되면서 심리전의 방향이 완전히 역전됐던 시기”라고 했다.
“NSC 사무차장은 차관급이고 국정원장은 장관급임에도, 당시 이종석 사무차장은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어 실질적인 국정 조정력을 행사했다. 심리전에 자부심을 갖고 일하던 내부 직원들 반발도 컸지만, 정부 지시였기 때문에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 역전의 장본인이 국정원 수장(首長)으로 온 것이다.”
B씨는 “진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대북 공격 부서인 대북공작국(局)과 심리전의 힘이 거듭 빠지다 보니 국정원의 창(槍) 기능은 완전히 무력화됐다”면서 “특히 심리전 기능은 완전히 소멸 상태”라고 했다. 현재 심리전 부서는 대북 협상 중심의 대북전략국 산하에 단(團)급으로 편제돼 있다. B씨는 “이종석 체제에서 이들은 대북 교류협력 지원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했다.
“외부 인사, 원장 되면 현실 체감”
국정원장이 ‘간첩’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국정원은 본래 간첩을 잡는 기관이다. 하지만 2024년 1월 국정원의 대공(對共) 수사권이 폐지되면서 지금은 간첩 수사를 직접 할 수 없다. 그 무렵 재임 중이던 김규현 전 원장과 후임 조태용 전 원장은 수사권 복원의 필요성을 제기해 왔다. 그러나 이종석 원장은 결이 다르다.
수사권 폐지 이후 국정원은 ‘조사권’만 갖는다. 간첩 수사는 경찰이 전담하고, 국정원은 단서나 정보를 수집해 넘겨주는 역할만 한다. 문제는 이 ‘조사권’이 강제력을 갖지 않는다는 데 있다. 30년 대공 수사 경력의 하동환 전 국정원 대구지부장은 “간첩 혐의자에게 면담을 요구해도 거부하면 방법이 없고, 병원이나 호텔, 민간 건물의 CCTV 영상도 해당 기관이 응하지 않으면 확보할 수 없다”면서 “일반 사인(私人)의 지위로 내사(內査) 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피의자 미행이나 무단 촬영 등이 사생활이나 초상권 침해로 법적 다툼에 휘말릴 가능성도 커졌다”고 했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프라이버시 보호를 이유로 정보 제공을 거부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로 인해 간첩 혐의자의 위치 특정이나 행적 추적조차 어려운 상태다. 이종석 원장이 인사청문회에서 “국정원이 대공 업무 분야에서 확실하게 조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시행령 개정이 필요하다”고 한 것은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한 발언이었다.
다만 이를 두고 “제도적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국정원법에는 시행령 체계 자체가 없다”며 “조사권 보완보다 수사권 부활을 주장하는 것이 훨씬 더 국정원장다운 태도”라고 했다. 물론 입법 절차를 통해 시행령의 근거가 되는 법률을 개정하거나 신설할 수는 있다. 하동환 전 지부장은 “상위법인 법률에서 수사권이 폐지됐는데 하위법인 시행령을 통해 수사권이 전제된 내사행위의 정당성을 모색하겠다는 것 또한 비논리적 발상”이라고 했다.
이종석 원장은 수사권 복원에는 선을 그은 상태다. 인사청문회 당시 “대공 수사권의 경찰 정착에 노력하겠다”고 말하면서다. 하 전 지부장은 “경찰이 대공 수사를 전담한 지 1년 반이 지났지만 여태까지 이들이 독자적으로 간첩의 해외 접선 단서나 증거를 확보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고 했다.
“국정원 수사국(현 조사국)은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과 함께 출범해 63년에 걸쳐 국가보안법을 근거로 간첩사범을 수사하며 노하우를 축적해 왔다. 전 세계에 상주한 수사관을 통한 해외 내사 능력, 스테가노그래피(steganography) 같은 고난도(高難度) 암호통신을 직접 해독할 수 있는 과학수사 기술에 더해 조직적 연속성과 숙련도는 구조적으로 경찰이 대체하기 어렵다. 만일 수사권 복원이 어렵다면 독립수사청이라도 만들어서 국정원 수사국이나 산하 과학 부서가 자체적으로 수사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한편 국정원 한 관계자는 “이종석 원장이 방첩활동의 필요성을 도외시할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일각의 우려를 일축하기도 했다.
“외부 인사가 원장직에 앉으면 밖에서 생각하던 것과는 현실이 매우 다르다는 걸 체감한다. 개인 성향과 무관하게 정보기관 수장으로서 책무를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가령 간첩 실태를 보고받은 뒤 그 심각성을 절감하게 되는 식이다. 비근한 예로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국정원장이던 당시엔 간첩 수사의 필요성을 열심히 강조했었다. 과거 민변 회장 출신이자 국가보안법 폐지론자였던 모(某) 인사 또한 국정원장으로 부임한 뒤에는 대공 수사를 적극 독려했다.”
그는 이어 “이종석 원장이 실제로 수사권 복원의 필요성을 느끼더라도 정권의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이라 공개적으로 말하긴 어려울 것”이라면서 “그렇게 되면 원장 입장도 난처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일성의 빨치산운동’ ‘주체사상’으로 학위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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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원 의원은 이종석 원장 인사청문회에서 원장이 되더라도 정치보복은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사진은 국정원장 임명 직후인 지난 6월 26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종석 원장(왼쪽)과 박지원 의원. 사진=조선DB |
이 원장은 북한 노동당을 집중적으로 연구해 온 ‘북한 연구 1세대’로 꼽힌다. 《노동신문》 전문(全文)을 매일 빠짐없이 분석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청문회 자료에 따르면 총 13차례 방북(訪北) 이력도 있다.
성균관대 행정학과 78학번인 그는 ‘김일성의 빨치산운동’과 ‘주체사상’을 주제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논문에는 김일성 체제에 대한 긍정적 해석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석사 논문인 〈북한지도집단의 항일무장투쟁의 역사적 경험에 대한 연구〉(1989년)에서는 ‘가짜 김일성설(說)’을 반박하며, “김일성이 항일 빨치산운동이라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정당성과 정통성을 얻어 북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었다”고 썼다. 또 “군사 지도자로서의 탁월성을 보여 줬다” “공산주의자들 중 최고 지도자”라고 평했으며, 보천보전투(1937년)와 조국광복회(1936~38년) 활동에 대해서는 “역사적 의의는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고 기술했다. 당시 논문에서는 북한의 공산화 숙청 과정을 ‘사회개혁’ 또는 ‘민주개혁’으로 표현했고, 성균관대 학보 기고문에선 “통일의 제1 요건은 외세의 간섭을 배격하는 자주성 확립과 평등의 존중”이라고 주장했다.
‘내재적 비판적 접근법’
이종석 원장은 북한 연구에서 ‘내재적 비판적 접근법’을 강조해 왔다. 북한을 외부의 이념틀로 재단하지 않고 내부의 역사·사회적 맥락에 따라 해석하되 비판적 시선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안보 연구기관 관계자는 “이종석의 석사 학위 논문은 북한의 공식 역사서인 30권짜리 《조선전사》 시리즈를 사실처럼 받아들이며, 조작된 김일성의 항일 전투 기록을 그대로 기술했다”면서 “내재적 비판적 접근법은 사회과학적으로 의미 있는 분석틀이지만, 이종석은 이를 김일성 정권 정당화에 활용한 점이 문제”라고 했다.
1990년대 초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에 쓴 박사 논문 〈조선로동당의 지도사상과 구조변화에 관한 연구〉 (1993년)에서는 실제로 ‘비판’ 요소가 드러나기도 한다. 그는 “주체사상이 북한에 적용된 것을 비판적으로 연구한 결과, 실패한 것”이라고 평가하며 “주체사상은 대체로 합리적 조건 속에서 대두됐으나 발전 과정에서 무리한 보편화를 시도하다가 결정적인 굴절을 겪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 같은 내재적 비판적 접근에도 회의적 시각이 존재한다. 고(故) 강정인 서강대 교수는 논문 〈내재적 접근법에 대한 비판적 성찰〉(1997년)에서 “내재적 접근론자들은 북한 체제의 부정적 측면을 정면으로 비판하지 않고 이에 관해 침묵하거나 가볍게 지나치거나 ‘역사 필연적 산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강 교수는 특히 이종석에 대해 “기존 내재적 접근과 다른 접근을 시도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북한 체제 내지 사회에 대한 비판을 삼가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라며 “결국 북한 체제와 당국의 공식 입장을 무비판적으로 두둔하는 접근이란 의구심을 낳는다”고 했다.
‘자주적 동맹파’
그러나 정작 이 원장 스스로는 자주파임을 부정했다. 그는 인사청문회에서 “나는 자주파도 동맹파도 아닌 실익(實益)을 따라 왔다”면서 “그래서 양 진영의 비판을 모두 받아 왔다”고 했다. 내재적 비판적 접근법에 대해서는 “이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구축을 위한 실질적 전략을 제시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김씨 일가나 북한 체제를 찬양한 것이 아니라, 체제의 역사적·사회적 배경을 이해하려는 학문적 접근이었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이 같은 입장을 뒷받침하는 해석도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소장 직무대행은 이종석 원장을 ‘자주파’가 아니라 ‘자주적 동맹파’로 분류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봤다.
“이종석 원장은 동맹을 버리자는 게 아니라, 예속되지 않는 범위에서 자주성을 지키자는 입장이다. 그의 대북 시각도 단순히 유화적(宥和的)이라 보긴 어렵다. 과거 주사파(主思派)들이 ‘내재적 접근법’을 말할 때도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며 ‘내재적 비판적 접근법’을 제시했다. 또한 NSC에 있을 때 일부의 반대에도 이라크 파병을 추진한 것처럼 남북관계와 한미동맹은 함께 가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현실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의 ‘자주적 동맹파’라는 표현이 더 맞는 이유다.”
핵무장론자인 정 부소장은 “핵무장을 주장하는 이들도 대부분 자주와 동맹을 함께 가져가되, 자주가 우선돼야 한다고 본다”면서 “다만 이 원장은 남북 간 핵 균형의 필요성에는 아직 공감하지 않고 있다”고 부연했다. 그는 이어 “따라서 이 원장은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그래 온 것처럼 남북 간 핵 불균형이라는 근본 문제는 외면하면서 당분간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개선을 우선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초반에는 對美관계 우선할 듯”
한편 이 원장이 당분간 대미(對美)관계에 집중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참여정부 시절 경협기획관으로 근무하며 개성공단 활성화에 기여한 김형석 전 통일부 차관은 이종석 원장을 한마디로 “영민한 사람”이라고 했다. 자주파적 성향을 갖고 있으나, 정책 경험을 통해 현실적 제약을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본인은 자주파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내심 그런 성향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감성적으로는 자주파식 접근을 선호할 수 있으나, 이를 실제 정책으로 추진할지는 다른 문제다. 학자이면서 정책 현장 경험도 있는 만큼, 미국이나 국제환경 등 냉혹한 현실을 무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주파가 낭만에 기대어 북한의 본질을 오판하면, 국제사회 협력을 외면한 채 북한의 기만에 동시에 당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지금은 동맹과 국익 중심의 현실 외교, 강한 국방이 절실하다. 이종석 원장은 현장을 알기 때문에 일정 부분 현실 감각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따라 초반에는 북한에 대한 과감한 접근보다는 미국과의 협력 관계를 우선할 수도 있다.”
취재 과정에서 이종석 원장과 함께 평양을 두 차례 다녀왔다는 인사도 만날 수 있었다. 이 인사는 이 원장의 인간적인 면모에 주목하며 “남북관계 개선에 크게 기여할 인물”이라고 했다. 평양을 방문한 시기와 목적은 ‘오프 더 레코드’였다.
“수더분하고, 심성이 맑고, 겸손한 데다 합리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평양을 속속들이 꿰고 있었고, 아는 거라곤 북한이 전부인 사람처럼 그 분야 식견이 대단했다. 분단의 아픔을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다는 느낌도 강했다. 좋게 말하면 통일론자 혹은 자강론자고, 친북(親北)으로도 볼 여지가 있어 보였다. 국정원에서 통일까지 성사하긴 어렵겠지만, 대화를 통해 황폐화된 남북관계는 충분히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최종 목표는 남북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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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석 국정원장은 노무현 정권 시절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2006년 7월 11일 남북장관급회담 차 부산에 온 북한 권호웅 내각참사(왼쪽)와 이야기를 나누는 이종석 당시 통일부 장관. 사진=조선DB |
이에 발맞춘 조직 개편도 이뤄졌다. 국정원장 취임 나흘 후 1차장, 2차장의 인선이 잇따랐다. 국외 정보를 담당하는 1차장에는 이동수 전 해외정보국 단장이, 대북 담당인 2차장에는 김호홍 전 대북전략단장이 임명됐다. 둘 다 20~21대 대선에서 이종석 국정원장과 함께 안보전략을 구상해 온 인물로 알려졌다. 김 차장의 경우 이 원장이 NSC에 있을 당시 국정원 대북전략국에서 호흡을 맞췄던 파트너로 전해졌다. 단장은 2급인데, 1급 부서장을 건너뛰고 차장으로 직행했다.
대북전략국은 북한과의 대화·협상을 조율하는 부서다. 공식적으로 해당 업무는 통일부 소관이지만, 국정원이 물밑에서 조정 역할을 해왔다. 내부 관계자들은 이종석 체제에서 이 부서의 기능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내부 관계자는 “남북관계가 워낙 경색돼 있어 당장 성과를 내긴 어렵겠지만, 대북전략 라인에 힘이 실릴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대북공작국 출신인 C씨는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시기처럼 대북전략·협상 부서에 내부 자원이 집중되는 구조가 될 것”이라면서 “통일은 공작과 협상을 병행해야 안전하게 연착륙할 수 있는데, 이 체제에선 협상 역할에만 무게가 쏠릴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이런 방향이 고착되면 결국 통일부의 협조기관 수준으로 전락할 우려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조직 내부엔 이를 견제할 기능이 사실상 없다. 한 내부 관계자는 “국정원은 이미 오래전에 행정기관화됐다”며 “정권이 몇 차례 바뀌면서 국가 수사기관이라는 본래 기능을 잃고, 정치권의 영향력이 국정원의 권능을 압도하는 구조가 된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는 “이종석 원장의 최종 목표는 이재명(李在明) 대통령을 평양에 데려가는 것”이라면서 “이르면 금년 안에 대북 특사가 파견되고, 정상회담 추진도 본격화될 것”이라고 했다.
“이종석, 국정원 활용 잘할 것”
이 원장의 또 다른 ‘역할’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문재인(文在寅) 정권에서 해외 파트에 근무했던 D씨는 “이재명 대통령이 이종석을 국정원장에 임명한 건 남북 정상회담 같은 대북 협상 과제를 염두에 둔 인선이 분명하다”면서도 “그와 별개로 국정원 운영에서 독자적인 ‘묘(妙)’를 발휘할 수도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고 했다.
“이종석은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원 활용법’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다. 당시 노 대통령은 국정원을 단순한 정보 수집 기관이 아니라, 국가정책의 사각(死角)지대를 발견하고 이를 보완하는 정책 길잡이로 여겼다. 실제로 국정원이 산자부나 중소기업청 등 행정부처가 하기 어려운 민생경제 현장 조사를 수행하며 ‘맨투맨’ 방식으로 실태를 파악해 정부에 보고서를 올리는 역할을 맡았다. 노 대통령은 이를 높이 평가하며 국정원이 국민 생활을 체감하는 보고서를 지속적으로 올리도록 독려했다. 이 원장이 과거 이런 운영 방식을 현장에서 함께 경험한 만큼, 국정원을 실용적이고 전략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D씨는 이어 “노 대통령은 국정원을 ‘사각지대를 미리 발견해 망치로 고치는 조직’이라며 단순한 정보기관이 아니라 ‘국가의 마지막 보루’로 인식했다”면서 “그가 국정원을 정치적으로 쓰지 않겠다고 공언했고, 그대로 실천한 것처럼 이종석 원장도 그 기조를 이어 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 “대규모 인사 정비·정치보복 없을 것” 정권 교체 후 첫 국정원장이 임명되며 외부 일각에서는 ‘대규모 인사 정비’가 불가피하리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실제로 2017년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에 ‘적폐청산 TF’를 설치해 직원 수백 명을 조사했고, 이 과정에서 내부 전산망과 메인서버까지 전방위적으로 들여다봤다. 결국 전·현직 46명이 사법 처리됐다. 당시 적폐청산 대상이 된 직원 일부는 내곡동 지하실 공간으로 좌천돼 2년 가까이 창문이 벽으로 막힌 곳에서 매일같이 같은 내용의 반성문을 써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정치보복은 결단코 없을 것”이라고 거듭 밝혀 왔다. 국정원 안팎에서도 대규모 인사 정리 조짐은 아직 감지되지 않는다. 앞서 박지원 의원은 이종석 원장의 인사청문회에서 “윤석열 정권 당시 국정원 직원을 몰아내지 말라”고 당부했고, 이 원장은 “명심하겠다”고 답했다. 한 내부 관계자는 “약속대로 보복성 인사는 없는 분위기”라며 “정권 교체 가능성이 높아졌던 12·3계엄 이후 주요 보직자들은 이미 자발적으로 조직을 떠났다. 설령 정치보복 의지가 있더라도 실행할 여지가 없어진 셈”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이런 배경 덕분에 이재명 정권은 별다른 충돌 없이 원하는 인선을 마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정치보복은 없다’는 약속을 지키면서도 실익을 챙긴 셈이 됐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애초에 이재명 대통령은 실용적 접근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라며 “설령 자발적 퇴직이 없었더라도, 문재인 정부처럼 하부 직원까지 무차별적으로 건드리는 식의 적폐청산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