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15일 기준으로 앞으로 보름 정도가 윤석열 본인, 국민의힘, 보수층, 나라를 위한 마지막 결단의 골든타임
⊙ 윤 대통령, 여론 악화되었던 작년 12월 7일과 달리 상당히 강한 입장에서 하야 결단할 수 있어
⊙ 윤 대통령, 여론 악화되었던 작년 12월 7일과 달리 상당히 강한 입장에서 하야 결단할 수 있어

- 지난 2월 13일 탄핵심판 8차 변론에 출석한 윤석열 대통령. 사진=사진공동취재단
“2023년 10월에 국정원으로부터 한 세 차례에 걸쳐가지고 중앙선관위 전산 시스템에 대해서 점검한 거를 보고받았는데 정말 많이 부실하고 엉터리였습니다. 그런데 국정원에서는 (선관위가) 다 보여준 게 아니라 아주 일부만 보여주었다. 그때 보고받기로는 ‘한 5% 장비만 보여줬다’라고 했기 때문에 제가 김용현 장관한테” 군대를 투입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어서 “계엄법에 따라서 국방장관과 그 지휘를 받는 계엄사가 행정사법 사무를 관장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선관위에 들어가서 국정원에서 다 보지 못했던 선관위의 전산 시스템이 어떤 것들이 있고 어떻게 이것이 가동되고 있는지를 스크린을 하라. 그렇게 해서 계엄군이 들어간 것으로 저는 알고” 있다고 했다.
계엄군의 선관위 투입
“아까 선관위에 왜 가셨냐고 하는 문제는 제가 계엄법 7조에 따라서 행정 사법 사무를 관장하기 때문에 제가 평소에 의문을 가졌던 것을 점검하도록 시킨 것이고 계엄이 신속하게 해제됐기 때문에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과 계엄법을 위반했음을 실토한 셈이다. 헌법 제77조 3항은 〈비상계엄이 선포된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서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했고 계엄법 제7조 1항은 〈비상계엄의 선포와 동시에 계엄사령관은 계엄 지역의 모든 행정사무와 사법사무를 관장한다〉로 되어 있다. 중앙선관위는 정부기관도 사법기관도 아니고 국회처럼 독립된 헌법기관이므로 계엄군이 허가 없이 들어갈 수 없다. 문제는 으뜸 헌법 수호자여야 할 대통령이 이를 몰랐다는 점이다.
우리 헌법은 제1장 총강,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제3장 국회, 제4장 정부, 제5장 법원, 제6장 헌법재판소, 제7장 선거관리 등으로 분류, 선관위를 행정부에서 분리했다. 4·19 혁명을 부른 3·15 부정선거 같은 것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하여 박정희 정권이 개헌(改憲)으로 선거사무를 정부 기능에서 떼어내어 1963년에 출범시킨 것이 선관위다.
지난 2월 11일 헌재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심판 7차 변론 기일에는 선관위 보안 점검에 참여했던 백종욱 전 국정원 차장이 증인으로 나왔다. 윤 대통령 쪽에서 신청한 증인이었다. 국회 쪽 대리인은 “(당시) 선관위는 보안 컨설팅 수행을 위해 서버를 포함해 전산 장비 6400여 개 접근 권한을 국정원에 부여했다”며 “국정원이 6400대 중 310대(약 5%)만 선별해서 점검할 수 있었냐”고 물었다. 이에 백 전 차장은 “점검을 많이 하고자 하는 게 저희의 입장이다. 그런데 점검 기간, 인원 제한 요소가 있어서 많이 할 수는 없었다”고 답했다. 국회 쪽 대리인이 “(국정원이 서버 점검을) 310대만, 5%만 했다는 게 선관위가 나머지는 못하게 해서 그것(310대)만 한 것이냐”고 재차 물었다. 백 전 차장은 “그건 아니다. (국정원이) 열심히 해보니까 전체의 5%만 하게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쪽 대리인은 “선관위가 (점검에) 불응하고 일부만 허용했다는 건 (사실이) 아닌가?”라고 물었고, 백 전 차장은 “그렇다”고 답했다. 선관위 보안 서버 점검을 5%만 실시한 건, 선관위가 불응했기 때문이 아니라 국정원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답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군 투입 정당성 주장을 부정한 것이다.
격분 상태에서 쓴 글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 사태 이후 쏟아낸 말과 글에는 감정이 느껴진다. 지난 2월 11일 헌법재판소에 출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 소추위원단장인 정청래 법제사법위원장과 설전(舌戰)을 벌였다. 대통령은 “야권은 선제 탄핵을 주장하며 계엄 선포 전까지 무려 178회(에 걸쳐) 퇴진과 탄핵을 요구했다”며 “문명국가에서, 현대사에서 볼 수 없는 ‘줄탄핵’이 굉장히 악의적이었다”고 비판했다. “국회 예산안 기조연설을 하러 가면 아무리 미워도 박수 한 번 쳐주는 게 대화와 타협의 기본인데, 로텐더 홀에서 대통령 퇴진 시위를 하면서 의사장에 들어오지도 않아서 반쪽짜리 예산안 기조연설을 했다”며 울분을 토했다. 정 위원장도 발언권을 얻어 “탄핵과 예산, 특검은 대한민국에서 합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국회의 권한”이라고 반박했다. “권한 행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국회를 척결의 대상, 반(反)국가 집단, 범죄자 집단의 소굴로 인식했다면 이것이 과연 경고성이었을까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며 “정말 경고성이었다면 헌법에서 보장하지 않는 엄연한 헌법 파괴 행위, 국회에 군대를 보내지 말았어야 한다”고 맞섰다.
윤석열 대통령이 격분 상태에서 쓴 것으로 보이는 게 지난 1월 15일 공개한 “국민께 드리는 글”이다.
〈어떤 정치 세력이라도 유권자의 눈치를 보게 되어 있어, 무도한 패악을 계속하기 어렵지만 선거 조작으로 언제든 국회 의석을 계획한 대로 차지할 수 있다든가 행정권을 접수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면 못 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우리나라 선거에서 부정선거의 증거는 너무나 많습니다.〉
윤 대통령은 현재의 국회를, 지난해 4월의 부정선거로 당선된 의원들이 점거한 불법기관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고백이었다. 음모론자들의 주장을 수용, 수검표 단계를 하나 더 도입, 완벽하게 치러진 총선이라 기존 음모론자들도 입을 닫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부정의 증거가 “너무나 많다”고 발끈한 이가 대통령이었고 이에 따라 비상계엄령을 폈다는 이야기이다. 윤 대통령은 탄핵심판장에 나와선 “증거가 많다”는 주장을 철회하고 “의혹이 있어 선관위를 점검하려고 했다”는 취지로 돌변한다. 법률가에게 증거와 의혹 사이는 유죄와 무죄의 차이, 때론 삶과 죽음의 차이를 의미하는데도 너무나 큰 문제에 대해서 너무나 큰 태도 변화를 보인 것이다.
납득하기 어려운 부정선거 주장
권력자가 충동적으로 결정하는 정책이나 말과 글은 현실과 사실에서 벗어남으로 큰 사고를 치게 된다. 의과대학 증원 2000명 밀어붙이기가 부른 의료대란, 그리고 비상계엄이 부른 국가 위기가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국민께 드리는 글’은 계엄 사태 전후 대통령의 정신 상태를 잘 보여준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선관위의 엉터리 시스템도 다 드러났습니다. 특정인을 지목해서 부정선거를 처벌할 증거가 부족하다 하여, 부정선거를 음모론으로 일축할 수 없습니다. 칼에 찔려 사망한 시신(屍身)이 다수 발견됐는데, 살인범을 특정하지 못했다 하여 살인사건이 없었고 정상적인 자연사라고 우길 수 없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법치국가라면 수사기관에 적극 수사 의뢰하고 모두 협력하여 범인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은행장이 기자들 앞에서 “한국 금융기관이 발표하는 통계는 다 엉터리다”라고 선언, 경제 위기를 일으키는 식의 자해(自害)였다. ‘칼에 찔려 사망한 시신’이란 괴기한 비유는 아마도 ‘부정선거로 당선된 국회의원’을 상징하는 듯하다.
지난해 총선에서 부정선거로 낙선한 국민의힘 후보들이 먼저 들고일어나야 할 터인데 한 사람도 없다. 부정선거 음모론의 가장 큰 논리적 약점은 부정선거 피해자라는 국민의힘 낙선자들 중 민경욱 한 사람만 빼고는 다 조용히 있는 현상이다.
김용현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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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0월 1일 국군의날 행사장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국방장관. 사진=뉴시스 |
국회 측 대리인: 증인의 검찰 진술을 보면 초반에는 증인도 피청구인(윤석열)에게 계엄 선포 같은 비상조치는 만류하는 취지로 진술을 하셨던 것 같아요.
김용현: 예?
국회 측: 피청구인 대통령이 비상조치 이런 얘기를 하면 초기에는 증인도 그걸 조금 기다리시라 만류하는 취지로 진술을 하셨던 것 같더라고요.
김용현: 예.
국회 측: 맞습니까?
김용현: 그거는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평소에 대통령께서 하루 24시간을 거의 국가, 국민, 민생 생각만 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상황이 좀 안 좋고 정치 상황이 어려우면 약간 감정적으로 기복이 올라가시는 경우도 있고 이러다 보면 그런 말씀이 있을 수도 있는데 또 그다음 날 되면 전혀 어떤 이상 없이 임무 수행을 하시고 전혀 내색 없이 정상적으로 임무를 수행하시기 때문에 그런 대통령님의 생각을 저희들이 보면 처음 듣는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오랫동안 겪으면서 대통령의 그런 생각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을 합니다.
국회 측: 그런데 결국 증인도 뭐 말리는 걸 포기하고 피청구인 계엄 선포에 동의를 하셨을 거 아니에요. 동의를 하셨으니까 이렇게 됐을 것 아닙니까?
김용현: 항상 존중해 왔습니다.
윤석열 측 변호인은 헌재 신문에서 김용현 당시 장관이 계엄 투입 병력을 최소 2만에서 최다 6만으로 건의했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최소한으로 하라고 하니 “그렇게 되면 이게 계엄입니까”라고 반발했다는 비화도 소개했다. 지난해 봄 회식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군 동원 의도를 밝혔을 때 신원식 당시 국방장관은 “절대로 안 됩니다. 역사와 국민과 국군이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는 요지로 반대했다고 헌재에서 증언했다. 신 당시 장관이 김용현 당시 경호처장에게도 대통령을 잘 모시라고 충고했더니 수긍하더라고 했다. 이런 신원식 장관을 안보실장으로 빼고 그 자리에 충직한 김용현을 임명, 계엄령을 준비하면서부터 두 사람의 비극이 시작된 셈이다.
‘STOP THE ST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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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지지 집회에 참석한 부정선거론자들은 ‘Stop the steal’이라는 구호를 사용하고 있다. 사진=조선DB |
윤석열 계엄사태의 위태로운 현상 하나는 대통령이 확산시킨 부정선거 음모론이 반중(反中) 선동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국민께 드리는 글’을 보자.
〈디지털 시스템과 가짜 투표지 투입 등으로 이루어지는 부정선거 시스템은 한 국가의 경험 없는 정치 세력이 혼자 독자적으로 시도하고 추진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잘못하다가 적발되면 정치 세력이 붕괴될 수 있습니다. 혼자서는 엄두도 내기 어려운 일입니다. 기껏해야 금품 살포, 이권 거래, 여론 조작 등일 것입니다. 하지만 투개표 부정과 여론조사 조작을 연결시키는 부정선거 시스템은, 이를 시도하고 추진하려는 정치 세력의 국제적 연대와 협력이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지난 2월 11일 윤석열 대통령 측이 탄핵심판 변론 기일에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을 상대로 중국의 선거 개입 등 부정선거 음모론에 기초한 질문을 이어갔으나 성과를 얻지 못했다. 윤 대통령 측은 중국과 연계된 국제조직이 국내 선거에 개입해 부정선거를 저질렀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그래서 비상계엄이 불가피했다는 주장을 펴려고 한 듯하나 현직 안보실장은 말려들지 않았다. 윤석열 측 변호인은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 중 중국인 비율이 약 37%라는 통계를 언급하며 “중국이라면 한국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선거 개입을 시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라고 질문했으나, 신 실장은 “가정을 전제로 한 질문은 외교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답변하지 않겠다”고 했다.
신 실장에게 “(중국 기업인) 텐센트가 JTBC에 1000억원을 투자한 것을 아느냐” “중국 정부의 영향을 크게 받는 기업이 투자하면 우리나라 미디어나 언론사 등이 심리전, 여론전에 활용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정부 당국이나 국민은 경계심을 갖고 지켜봐야 하지 않나” “문재인 정부가 초기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서 원전 산업에서 철수하고 태양광 산업이 부상했다. 결국 태양광 패널 수출로 큰돈 번 건 중국 기업이지 않으냐” 등의 질문을 이어갔다. 이에 신 실장은 “정확히 아는 바가 없다”라거나 “개인적 판단을 말하지 않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한국 보수의 원점 이승만의 민주주의
한국 보수는 지금 음모론에 넘어간 사람들과 맨 정신을 가진 이들로 분열되었다. 보수 재건의 길을 찾으려면 보수의 원점 이승만(李承晩)을 역사 속에서 불러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연설에서 민주주의는 참을성이 있어야 유지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연설은 한국 보수의 한 기준점이 될 만하다.
“민주주의를 전적으로 믿어야 될 것입니다. 우리 국민 중에 혹은 독재제도가 아니면 이 어려운 시기에 나갈 길이 없을 줄로 생각하며, 또 혹은 공산분자의 파괴적 운동에 중대한 문제를 해결할 만한 지혜와 능력이 없다는 관찰로 독재권이 아니면 방식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으니, 이것을 우리가 다 큰 유감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민주제도가 어렵기도 하고 또한 더러는 더디기도 한 것이지만 의(義)로운 것이 종말에는 악(惡)을 이기는 이치를 우리는 믿어야 할 것입니다. 민주제도는 세계 우방들이 다 믿는 바요 우리 친우들이 전제정치와 싸웠고 또 싸우는 중입니다. 세계의 안목이 우리를 들여다보며 역사의 거울이 우리에게 비추어 보이는 이때에 우리가 민주주의를 채용하기로 삼십 년 전부터 결정하고 실행하여 온 것을 또 간단없이 실천해야 될 것입니다. 이 제도로 성립된 정부만이 인민(人民)의 자유를 보장하는 정부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도 결국 한국의 민주주의를 전진시켰느냐 후퇴시켰느냐로 심판받을 것이다.
1950년 6·25 동란에 부산으로 피란하였던 이승만 대통령은 9·28 서울 수복으로 그의 관저인 경무대로 되돌아왔다. 그때에 몇몇 신문이 서울에서 복간되었다. 그해 10월 중순의 일이다. 국군과 유엔군은 38선을 넘어 평양을 점령하고 승승장구 압록강을 향해 진격하여 국토 통일의 부푼 꿈이 막 실현되려던 무렵이었다. 전국은 비상계엄령하에 있었으므로 국방부 정훈국 관장하에 신문 검열제가 엄격하게 실시되고 있었다. 국방장관의 담화문이 동일 지면에 들어갔는데 《동아일보》는 관례대로 대통령의 것을 5단 표제 머리기사로 하고 장관의 것을 4단 표제 중앙 부위에 둔 조판대장(臺帳)을 떠서 검열을 받으러 갔다. 한데 당무자는 장관의 것을 ‘톱’으로 하여 대통령의 것과 바꾸라고 하였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으니 신문사는 판을 고쳤다.
戰時에도 언론 검열 폐지
다음 날 예정된 이승만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경무대 관저에서 있었는데 이것은 서울 수복 후 최초로 열리는 것이었다. 《동아일보》 최흥조(崔興朝) 기자의 회고에 따르면 이 대통령이 먼저 반가운 어조로 회포를 푸는 말로 시작한 기자회견은 까다로운 형식을 빼고 흥겨운 대담 식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화제가 다 끝났다고 생각될 즈음에 최 기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산까지 피란을 갔다가 돌아오는 이 처절한 전쟁을 하는 동안에 신문을 만드는 저희도 애국심에 불타고 있습니다. 공산당을 이롭게 하고 우리나라를 해치는 보도를 할 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국방부 정훈국이 모든 신문에 대해서 검열을 실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한 사람의 대위가 앉아서 마음대로 대한민국의 언론을 좌우하는 결과가 됩니다. 이래가지고서는 저희들이 좋은 신문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순간 이승만 대통령은 안면근(顔面筋) 경련으로 두 볼이 실룩거리는가 싶더니 엄숙한 어조로 분연히 선언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공산당과 전쟁을 하고 있는 까닭은 민주주의를 하기 위해서야. 민주주의 국가에서 신문을 검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는 옆에 앉은 공보처장 김활란(金活蘭) 여사를 돌아보더니 말을 계속했다.
“국방부의 정훈국장이라는 사람이 누구요? 국방장관에게 훈령하여 즉시 신문 검열을 중지하도록 해요.”
이는 공산당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민주주의의 가치를 포기, 공산당을 닮을 수 없다는 위대한 선언이었다.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지 마라”
1946년 2월에 작성된 조지 F. 케난(당시 駐蘇 미국 대사관 대리대사)의 ‘긴 전문(Long telegram)’은, 2차 세계대전 때 러시아를 도운 미국에 스탈린이 공격적으로 나오는 데 당황한 미국 지도부의 이해를 돕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하여 쓴 글이다. 이후 대소(對蘇) 전략의 지침이 되었다. 소련과의 대결선언인 트루먼 독트린, 서구(西歐) 부흥 계획인 마셜 플랜 수립에 영향을 주었다. 케난의 문서는 외교관이 아니라 역사학도가 쓴 것처럼 파격적이다. 고급 수필의 문학성도 느껴진다. ‘긴 전문’이란 말은 외교 전문답지 않게 길었다는 뜻이다(5000단어가 넘는다). 읽어보면 머리에 남는 대목이 많은데 특히 마지막 문장이다.
〈소련 공산주의와 싸우는 데 있어서 우리에게 드리워질 가장 큰 위험은 우리가, 우리가 싸우는 적과 같아지는 것을 허용하는 일이다.〉
니체가 한 말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지 마라”와 같은 맥락이다. 선동좌파와 싸우다가 선동우파가 되고 광우병 선동을 욕하다가 부정선거 음모론자가 되어 도덕적 우위(優位)를 잃어버리는 것을 미리 경고한 사람들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 중인 1952년엔 최대 규모의 선거(대통령 및 지방선거)를 실시하도록 했다. 그해 4월엔 1만7000명 이상의 시·읍·면 의회 의원을 뽑는 지방선거, 8월엔 최초의 대통령 직접선거가 있었다. 민주주의를 시작한 지 4년밖에 안 되는 나라가 전시에도 언론 검열을 하지 않고 선거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승만은 민주주의는 반드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성장하므로 실수를 참고 기다려줄 줄 알아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는 전쟁 중 화폐개혁 때도 개인 예금 동결에 반대했었다. 민주주의는 실수를 견디는 제도로 알려져 있는데 이번에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이승만의 下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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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했을 때, 시민들은 그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사진=조선DB |
〈나는 해방 후 본국에 들어와서 우리 여러 애국애족하는 동포들과 더불어 잘 지내왔으니 이제는 세상을 떠나도 한이 없으나, 나는 무엇이든지 국민이 원하는 것만 알면 민의(民意)를 따라서 하고자 하는 것이며 또 그렇게 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보고를 들으면 사랑하는 우리 청소년 학도들을 위시하여 우리 애국애족하는 동포들이 내게 몇 가지 결심을 요구하고 있다 하니 여기에 대해서 내가 아래 말하는 바를 할 것이며, 한 가지 내가 부탁하고자 하는 바는 이북에서 우리를 침략하려고 공산당이 호시탐탐 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말도록 힘써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첫째는 국민이 원하면 대통령직을 사임할 것이며,
둘째는 지난번 정·부통령 선거에 많은 부정이 있었다고 하니 선거를 다시 하도록 지시하였고,
셋째는 선거로 인연한 모든 불미스러운 것을 없애게 하기 위해서 이미 이기붕 의장이 공직에서 완전히 물러가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넷째는 내가 이미 합의를 준 것이지만 만일 국민이 원하면 내각책임제 개헌을 할 것이다.
이상은 이번 사태를 당해서 내가 굳게 결심한 바이니 나의 이 뜻을 사랑하는 모든 동포들이 양해해 주어서 이제부터는 다 각각 자기들의 맡은 바를 행해 나가며 다시 질서를 회복시키도록 모든 사람이 다 힘써주기를 내가 사랑하는 남녀 애국동포들에게 간곡히 부탁하는 바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라이벌인 민주당의 조병옥(趙炳玉) 후보가 미국에서 치료 중 급사(急死)함으로써 당선이 사실상 확정되어 있었는데 자유당이 부통령에 자유당 이기붕 후보를 무리하게 당선시키려고 경찰을 앞세워 부정선거를 저질렀다. 시위대는 재선거를 주장하고 이승만 퇴진은 외치지 않았었다. 부정선거임을 뒤늦게 안 이승만 대통령이 정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이다. 선거 당시 내무부 장관 최인규는 5·16 뒤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부정선거는 사형감이다. 그렇다면 공정한 선거에 불복, 부정선거로 몰고, 국민들의 주권적 결단을 거부하는 윤석열은? 공정해야 할 선거를 부정선거로 만드는 것과 공정한 선거를 부정선거로 만드는 것의 차이는?
전격 하야
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 12월 7일, 계엄 선포 4일 뒤, 대(對)국민담화를 발표했다. “많이 놀라셨을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면서 “이번 계엄 선포와 관련하여 법적,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습니다. 저의 임기를 포함하여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습니다”고 약속했다. 머지않아 그가 하야 일정을 발표할 것이란 전망을 낳게 했지만 지금은 결사항전의 태세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오는 3월로 예상되는 가운데 다시 윤석열 하야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으로선 여론이 악화되었던 작년 12월 7일과 달리 지금은 상당히 강한 입장에서 햐야를 결단할 수 있다. 그와 국민의힘 지지율이 상당히 올라갔고, 헌재에서 탄핵이 기각되어 현직에 복귀할 것이란 희망적 전망도 지지층에선 나온다.
그렇지만 세계가 지켜본 비상계엄 선포가 헌법 위반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어 탄핵이 인용될 가능성이 높고, 여론도 윤 대통령에겐 불리하다. 동아시아연구원-한국리서치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비상계엄이 ‘잘못되었다’가 73%, ‘잘했다’가 21%이다. 탄핵 찬성이 65%, 반대가 23%다. 보수층의 44%도 계엄 선포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유동적 상황에서 만약 윤석열 대통령이 헌재 결정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하야성명을 발표하면 정치판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다.
1. 국민통합과 법치수호를 위하여 희생하는 모습으로 비쳐 인기가 폭발하고 특히 국힘당에 대한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다. ‘국민 계몽령’이란 막말도 순정으로 인정받을지 모른다.
2. 이재명 대표에 대한 압박은 최대치에 이를 것이다. 3월 중에 나올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도 그에게 1심처럼 당선 무효 형량이 선고되면 출마 포기 압박이 거셀 것이다.
3. 헌재의 탄핵 결정을 둘러싼 국론(國論) 분열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다.
4. 동정적 여론이 법원에 영향을 끼쳐 진행 중인 윤석열 관련 내란죄 혐의 재판을 불구속으로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5. 자유 진영 후보 단일화의 계기가 되고 그 후보가 대선(大選)에서 이긴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유죄선고를 받았을 때 사면해 줄 가능성이 높아진다.
6. 그는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할 것이다.
7. 다만 자신이 확산시킨 부정선거 음모론을 결자해지(結者解之)할 수 있는가가 남는다. 그가 키운 1000만이 넘는 음모론자들을 방치하면 좀비화, 야수화하여 공동체의 삶을 황폐화시킬 것이다. 윤석열이 안고 퇴장해야 한다.
8. 국회법 134조 2항은 탄핵소추 중인 공무원은 사퇴할 수 없게 되어 있는데 대통령에겐 적용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판례가 없으므로 헌재가 결정할 사안이다.
골든타임 놓치지 말아야
전격 하야는 정치적으로 죽어서 구국(救國)의 영웅이 되는 길인데, 문제는 타이밍이다. 누가 봐도 파면 결정이 나올 것이란 전망이 굳어지기 전에 약간의 기각 가능성이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기를 놓치면 효과가 줄어든다. 윤석열 대통령도 탄핵이 기각되어 현직으로 돌아온다고 한들 정상적인 집무는 불가능할 것임을 잘 알 것이다. 2월 15일 기준으로 앞으로 보름 정도가 윤석열 본인, 국민의힘, 보수층, 그리고 나라를 위한 마지막 결단의 골든타임이다.
참고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의 타이밍을 놓쳤다면 군부 쿠데타로 제거되고 감옥에 갔을 것이다. 1980년 8월 최규하(崔圭夏) 대통령이 하야하지 않았더라면 이미 실권(實權)을 잡은 전두환(全斗煥) 그룹에 의하여 그해 가을 밀려났을 것이다. 1974년 8월 닉슨 미국 대통령이 하야하지 않았더라면 역사상 처음으로 상원에서 탄핵되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