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泰植 영화평론가
1957년 서울 출생. 서강大 영문과 및 同 대학원 종교학과 졸업. 독일 괴팅겐 대학 신학부 박사. 저서 「영화는 세상의 암호」, 「나자렛 예수」, 「종교의 세계」, 「성서를 읽는 11가지 방법」 등.
1957년 서울 출생. 서강大 영문과 및 同 대학원 종교학과 졸업. 독일 괴팅겐 대학 신학부 박사. 저서 「영화는 세상의 암호」, 「나자렛 예수」, 「종교의 세계」, 「성서를 읽는 11가지 방법」 등.
그녀는 밤이면 거울 앞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한다. 마치 거울 뒤편에서 아버지가 하소연을 듣고 있기나 한듯이….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매일 밤 찾아와 딸에게 노래를 가르쳐 주고 다정한 이야기도 해주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크리스틴은 아버지의 영혼이 그녀를 도와준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의 이름은 「오페라의 유령」.
영화 「오페라의 유령」(조엘 슈마허 감독, 뮤지컬, 미국, 2004, 143분)은 한국에서 가장 먼저 개봉되었다. 한국 상영 첫 주 만에 50만 명의 관객을 넘어섰으며, 지난해 12월 172만 명의 관객을 끌어들여 흥행 1위에 올라섰다.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개봉되었다는 것은 한국의 반응이 세계적 흥행의 판단 기준이 된다는 뜻일까?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분명 기분 좋은 일이다.
200년 전의 프랑스 파리 시민에게 「무대예술의 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면 단연 오페라를 꼽았을 것이다. 당대 최고의 음악가와 오케스트라가 작곡과 연주를 맡고, 정상급 가수들이 등장해 멋진 목소리를 뽐내고, 재미있는 이야기 전개에 화려한 무대장치 등…. 오페라는 종합 무대예술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다른 한편 오페라는 엄청난 투자를 동반하는 분야여서 돈 많은 귀족과 황실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밀로스 포만 감독이 만든 영화 「아마데우스」(1984)를 보면 그런 상황이 잘 그려져 있다.
오페라에 엄청난 제작비가 들었기 때문에 18세기경에는 가벼운 소재를 다루고 규모를 축소한 「오페레타(작은 오페라)」 형식이 등장했다. 17세기경에는 작품의 줄거리는 내레이터가 낭송하고 가수들의 독창·중창·합창이 어우러지는 형식, 즉 연기와 배경과 의상이 없는 「오라토리오」가 등장했는데, 이 역시 오페라의 축소판으로, 경비를 줄여 보려는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다.
미국에서는 19세기 들어 춤과 대중음악 형식을 가미해 오페레타를 미국식으로 응용한 뮤지컬이 자리를 잡았다. 처음에는 주로 희극적인 소재를 다루어 「뮤지컬 코미디」로 불렸다가, 소재가 다양해지면서 비극을 다룬 「뮤지컬 트레저디」, 환상적인 소재를 다룬 「뮤지컬 판타지」, 그리고 연극적인 요소가 강한 「뮤지컬 플레이」가 등장했다.
귀족과 황실이 쇠퇴해 가면서 유럽에서는 오페라 형식이 점점 축소되어 간 반면 막강한 자금력과 실험정신을 가진 미국에서는 오페라가 새로운 모습으로 再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뮤지컬 장르는 20세기에 들어 발전을 거듭했고 뉴욕의 브로드웨이 거리는 세계 뮤지컬의 중심지로 발돋움했다. 1927년의 「쇼보트」를 시작으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왕과 나」(1951), 「사운드 오브 뮤직」(1959),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57), 「지붕 위의 바이올린」(1964) 등이 모두 브로드웨이에서 대표적으로 성공한 작품들이다.
뮤지컬이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은 것은 1970년대 들어서다. 이전의 뮤지컬은 노래와 가벼운 춤 위주였고, 무대 사용률도 고작 10~20% 정도에 불과했다. 말하자면 그저 평면적인 극장무대를 사용하는 데 그쳤던 것이다.
1970년대 이후로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록(Rock)적인 요소가 듬뿍 가미되면서 음악은 더욱 화려해졌고, 무대 사용의 폭도 넓어져 평균 70%를 넘어섰다고 한다. 무대 위에 프랑스 혁명 시절의 바리케이드(「레미제라블」)가 설치되고, 코끼리(모형)가 객석을 통과해 걸어 들어오고(「라이언 킹」), 운하가 흐르고(「오페라의 유령」), 헬리콥터가 날아들(「미스 사이공」) 정도다.
그렇게 웅장한 볼거리가 제공된 탓에 뮤지컬의 인기는 급상승했고, 세계 각국에서 공연 요청이 쇄도했다. 그래서 요즘은 하나의 뮤지컬이 성공했다 싶으면 아예 유럽 팀과 아시아 팀을 따로 만들어 세계 순회공연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 수준은 런던과 뉴욕 현지의 무대와 동일하다. 오늘날 어떤 뉴요커가 『무대예술의 꽃은 뮤지컬이다』 해도 현대인들은 아마 놀라지 않을 것이다.
뮤지컬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요즘 들어 오페라에도 대형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비근한 예로 2003년에 장예모가 총감독을 맡았던 푸치니의 「투란도트」가 서울 올림픽경기장에서 선을 보였고, 지난해에는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베르디의 「아이다」가 공연되었다. 공연 당시에 중국의 紫禁城(자금성) 세트가 지어졌고, 실제 코끼리가 걸어 나오는 장관이 연출된 바 있다. 최근 들어 뮤지컬과 오페라가 경쟁관계에 들어간 셈이다.
사람에 따라 견해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세계 4大 뮤지컬로 꼽히는 작품은 「오페라의 유령」, 「캣츠」, 「레미제라블」, 그리고 「미스 사이공」이다. 그중에서 앞쪽 두 작품의 음악을 만든 사람이 그 유명한 영국의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이다. 특히, 「오페라의 유령」은 이전 뮤지컬의 모든 기록을 갈아 치운 바 있어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1986년 런던의 허 머제스티스 극장에서 초연된 이래 「오페라의 유령」은 단 하루도 빠짐없이 공연되고 있다. 지금까지 3억 달러 이상의 돈을 벌어들였다. 아름다운 음색의 사라 브라이트만이 세계적인 가수로 부각된 것도 바로 이 뮤지컬을 통해서였다.
영국에서 2개 부문의 로렌스 올리비에賞, 이브닝 스탠다드 어워드賞 수상 및 미국에서 7개 부문의 토니賞(최우수 작품賞 포함), 7개 부문의 드라마 데스크 어워드, 3개 부문의 아우터 서클 크리틱스 어워드를 수상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세계 각국에서 이 뮤지컬이 쉴 틈 없이 공연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에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필자는 독일 유학 시절, 유럽순회 팀의 공연을 본 적이 있다. 비교적 작은 무대의 극장이었지만 분위기를 살려내는 데 손색없었다. 어떤 무대에도 작품을 올릴 수 있는, 고도로 숙련된 단계에 도달한 무대 기술자들과 출연진들과 연출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페라의 유령」의 줄거리를 살펴보자.
1860년대의 파리 「오페라 하우스」, 막 지어진 오페라 극장이다. 그런데 건물이 워낙 크고 내부가 복잡해 처음 가는 사람은 자칫하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그곳에 유령이 산다. 물론 진짜 유령은 아니고 어릴 때부터 극장에 숨어 사는 남자이다. 유령은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고 노래도 기가 막히게 잘한다.
그런데 왜 숨어 사냐고? 바로 그 부분이 이야기를 재미나게 만든다. 얼굴에 흉측하고 커다란 상처가 있어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유령은 흰 가면을 쓰고 극장 여기저기에 불쑥 나타나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유령이 사는 오페라 하우스에 애송이 여가수 크리스틴이 있다. 유명한 가수였던 아버지 덕분에 재능은 있지만, 워낙 가난해서 재능을 살려 줄 좋은 선생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러니 그저 무대 뒤편에서 합창이나 하는 신세에 불과했다.
유령은 불쌍한 크리스틴에게 남 몰래 음악을 가르쳤고 우연한 기회에 크리스틴은 자신의 노래를 선보인다. 이것이 대단한 반응을 불러일으켜 그녀는 일약 프리마돈나로 부각된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크리스틴을 어릴 적부터 알고 있던 라울 백작이 등장해 그녀가 사랑에 빠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가장 불쌍하게 된 존재는 유령이었다. 유령 역시 크리스틴을 몰래 가르치면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야기가 삼각관계로 바뀌고, 유령은 크리스틴을 사랑하면서도 다른 한편 미워하며 고통스러워한다. 유령은 오페라 극장 구석구석을 잘 알기에 라울과 크리스틴이 어디에서 만나든지 그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다. 그때마다 유령은 질투심이 일었다. 크리스틴과 라울에 대한 유령의 복수가 시작된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노래도 훌륭하지만 화려하고 변화무쌍한 무대의 변신이 압권이다. 파리의 지하 수로를 따라 배를 타고 가는 장면과 궁전 같은 유령의 아지트, 거대한 오페라 무대의 재현, 대형화재 등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관객의 혼을 쏙 빼놓아 도대체 세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지경으로 몰아넣는다.
그런 중에 관객의 가슴속에 유령에 대한 연민의 정이 싹트게 된다. 재능은 있지만 얼굴의 상처 때문에 언제나 어둠 속에서 있어야 하고, 마침내 사랑하던 여인마저 빼앗기고 마는 유령. 그의 절망과 고통은 어느덧 관객에게 전이되고 그를 통해 어디엔가 꼭꼭 숨어 있던 일그러진 자아를 발견하고 만다. 「유령의 서러운 사연은 곧 나의 이야기가 아니던가」 연출가의 재능이 그렇게 발휘되었다.
영화 「배트맨 포에버」(1995)에서 고담市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연출해 냈던 조엘 슈마허 감독이 2004년에 「오페라의 유령」을 영화로 만들었다. 특히,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직접 음악을 맡고 제작에 참여했기에 같은 제목으로 만들어졌던 이전 영화들과는 차별성이 있다. 말하자면, 음울한 분위기 전문가가 감독을 맡고 뮤지컬의 원 작곡자가 직접 참여해 만든 작품이니 그만큼 믿음직하다는 뜻이다.「오페라의 유령」은 1911년 프랑스 작가 가스통 르루가 쓴 同名의 추리소설이 있었다. 이 소설을 바탕으로 1925년 론 체니가 영화로 만들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뒤로 1943년에 다시 한 번 영화로 만들어졌다. 1986년에는 뮤지컬로 무대에 올려졌다. 1990년(TV용)과 1998년에 또다시 영화로 만들어졌다. 홍콩영화 「夜半歌聲(야반가성·우인태 감독, 1995)」은 「오페라의 유령」의 홍콩판이라고 할 수 있다.
뮤지컬을 영화로 옮길 때는 상당한 위험 부담이 따른다. 배우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기계음으로 바꾸면서 현장감이 뚝 떨어지고, 눈으로 직접 보았던 장면들을 카메라의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기에 어쩔 수 없이 시각의 제한을 받는다. 따라서 이미 무대 뮤지컬을 감상한 관객들은 영화에서 약점을 찾게 마련인 것이다.
독일에서 「오페라의 유령」을 뮤지컬로 본 적이 있는 필자의 눈에도 한 가지 중대한 약점이 발견됐다. 감독이 영화를 너무 스토리에 치중해서 만들어 뮤지컬에 깔려 있는 복선들을 세심하게 소화해 내지 못한 아쉬움이다.
예를 들어, 크리스틴이 주역을 맡기까지의 과정을 지나치게 단순화했고, 유령과 라울 사이에서 방황하던 그녀의 고민을 심도 있게 담아 내지 못했다. 필자는 그 부분이 특히 재미있었는데….
무대 뮤지컬에서는 동시에 여러 가지 정황을 연출할 수 있는 반면, 영화는 한 시퀀스에 한 가지 이야기만 담아 낸다. 감독이 이런저런 내용을 다 제쳐두고 유독 삼각관계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영화의 특성상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조엘 슈마허 감독은 세 시간 넘는 뮤지컬을 143분으로 줄여야 하는 부담감을 비교적 잘 극복했다. 크리스틴 역을 맡은 에미 로섬(영화 「미스틱 리버」 출연)과 유령 역의 제라드 버틀러(영화 「드라큘라 2000」 출연)의 연기와 노래는 수준급이었다.
고색창연한 파리 오페라 하우스의 분위기도 멋지게 재현했으며, 의상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특히, 가면무도회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제작비가 무려 1억 달러에 육박했다고 한다.
영화에서 관객이 만끽할 점을 한두 가지 지적하겠다. 우선 멋진 음악을 들으며 귀에 즐거움을 주고, 파리 오페라 하우스의 화려한 무대와 장식을 눈으로 감상하며 기쁨을 만끽해야 한다.
그리고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배트맨」을 만든 사람이라는 사실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배트맨」이 활약했던 고담市의 그 웅장하고 음울한 분위기를 떠올리면, 도시 어디에선가 금방 무슨 일인가 일어날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든다. 똑같은 분위기를 「오페라의 유령」에서도 맛볼 수 있다.
영화는 오페라 하우스의 물품들을 경매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감독은 이 부분을 음습한 톤의 흑백 화면으로 처리했다. 유령을 연상시키는 여러 물품들이 팔려 나가다가 화재로 불탄 대형 샹들리에가 경매에 부쳐진다. 이때 샹들리에가 공중으로 끌려 올라간다. 샹들리에를 따라 영화가 천연색으로 바뀌면서, 동시에 그 유명한 서곡이 웅장하게 연주된다. 그로부터 두 시간여 동안 시간은 관객 앞에서 정지하고 만다.
「오페라의 유령」은 2005년 골든 글로브 영화제에서 작품상·여우주연상·음악상 등 3개 부분에 수상후보로 지명을 받은 상태이다. 골든 글로브에서 좋은 결과가 있으면 2005년 아카데미 작품상도 노려볼 만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