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젊음의 對話 - 釜慶大에 유학 온 일본인 대학생들과 속을 터 놓다

『과거 부모들 사이야 어떻든 우리는 친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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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 胡 英 서울여대 일어일문학과 3년
젊은이끼리는 마음이 통했다
 
 
  月刊朝鮮으로부터 부산 부경대에 유학 온 일본인 학생들을 만나 며칠 같이 생활하면서 그들의 학교생활, 일상사, 한국및 한국인에 대한 감상 등에 대해 글을 써 볼 생각이 없느냐는 청탁을 받고 선뜻 응했다. 일본어를 전공하는 나로서 일본 학생들과 대화를 나눠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기회라고 생각했고, 같은 젊은이로서 그들의 속내를 엿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그날 저녁부터 잠이 오지 않았다.
 
  괜히 욕심부려서 능력도 안 되는 일을 덜컥 맡겠다고 나선 게 아닐까. 고민은 커져만 갔다.
 
  그런데 그게 모두 杞憂(기우)였다. 「젊음」은 세계 만방에 통하는 공통언어일까. 막상 그들을 만나보니 언어의 장벽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다. 처음엔 서먹서먹했지만, 젊음은 서로의 마음을 쉽게 열어줬고, 그 열린 마음을 통해 우리는 친구 사이처럼 변해갔다.
 
  釜慶大 국제교류센터 張龍哲(장용철·29)씨의 소개로 처음 만난 학생들은 국제지역학부 코지마 나기사(小島渚ㆍ나가사키현 쓰시마高ㆍ19), 정치언론학과群(군) 오이타테 마이코(追立麻衣子ㆍ후쿠오카 여학원ㆍ21), 일어일문학부 타니자키 치타에(谷崎知多惠ㆍ가마쿠라여대 부속高ㆍ47)씨였다. 모두 여학생들.
 
  코지마와 오이타테는 아직 어려서인지 처음엔 낯설어 해서 말을 걸기가 힘들었다. 그에 비해 타니자키씨는 첫 대면부터 아주머니 특유의 넉넉함으로 나이가 어린 나를 챙겨줄 정도였다. 釜慶大에 입학하기 전, 고려大 어학당에서 1년을 수학했다는 그녀는 한국어도 상당히 잘했다.
 
  코지마는 쓰시마(對馬)고등학교 출신. 고교생으로 한국의 대학교에 입학한 최초의 인물이어서 한국 뿐 아니라 일본의 매스컴에도 많이 시달렸다고 한다. 그녀가 계속 웃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이것이 일본인들의 다테마에(建前ㆍ겉모습)라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하다 보니 그것은 그녀의 천성이었다. 일본에 관해 상당히 잘 알고 있고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하다니…. 나 스스로에 대해 놀랐다.
 
  오이타테는 여성스러운 외모에 새침해 보였지만, 농담도 잘하고 애교도 많은 활발한 스타일이었다.
 
 
  『가족보다 애인, 친구가 더 보고 싶다』
 
 
  한국어 강좌를 그들과 함께 듣기로 했다. 釜慶大에서는 각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을 위해 일주일에 두 번 한국어 강좌를 열고 있었다. 오이타테와 코지마는 중급반이었고, 타니자키씨는 고급반이었다. 대부분의 일본인 학생들이 중급반을 듣고 있다고 해서 중급반에 들어가서 청강을 하게 되었다.
 
  교실에는 일본 학생 여덟 명, 베트남 학생 두 명, 미국 학생 한 명이 수업을 듣기 위해 와 있었다. 중급반인데도 불구하고 수업 수준이 꽤 높았다. 테이프로 들려주는 회화의 속도가 일상대화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로 빨랐고, 나도 모르는 단어가 튀어 나와서 깜짝 놀랐다. 학생들은 진지하게 수업에 임했다. 사가縣(현) 출신이라는 국문ㆍ역사학과群 남학생 마츠오 다케시(松尾硏ㆍ사가현 키시마商高ㆍ22)는 한국에 온 지 한 달밖에 안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손가락으로 계속 단어를 따라 쓰는 등 열심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갈비 집으로 향했다. 일어일문학부 마쓰나카 쯔요시(松永强志ㆍ히가시후쿠오카高ㆍ24), 정치ㆍ언론학과群 우에키 히로후미(植木洋文ㆍ닛신칸高ㆍ22), 경영학부 하시구찌 히데요(橋口秀之ㆍ야시로히가시高ㆍ20), 국제통상학부 야마우치 마코토(山內誠ㆍ후쿠오카大부속 오오호리高ㆍ21), 키리타니 야스키(桐谷康樹ㆍ쓰시마高ㆍ18), 식품생명공학부 혼타 카케시(本田武司ㆍ후쿠오카大부속 오오호리高ㆍ24) 등이 동행했다.
 
  이들은 한국 남자아이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소주를 꿀꺽꿀꺽 잘도 마셨고, 갈비도 맛있다며 잘 먹었다. 한국 음식은 무엇을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갈비, 비빔밥, 삼계탕 등 거의 맵지 않은 음식들이었다.
 
  그들과의 대화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가족이 절실하게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서 『왜 안 보고 싶냐』니까 『어차피 자주 만날 수 있으니까』란다. 단지 어머니의 음식은 그립단다. 반면에 『애인과 친구들은 보고 싶다』고 했다. 아직은 친구가 좋은 나이인가 보다.
 
 
  PC방에서 인터넷과 한국을 배운다
 
 
  식사가 끝난 후, 일본 여학생들은 허리까지 숙여 『잘 먹었다』고 인사했다.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하겠지만, 일본은 더치 페이가 기본적으로 발달한 나라다. 심한 경우는 10엔 단위까지도 가르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한턱 문화」인 우리네와는 다르다.
 
  すみません(스미마센ㆍ실례합니다, 미안합니다), どうぞ(도조ㆍ부디, 모쪼록), どうも(도모ㆍ고맙습니다)의 세 가지 말만 알아도 한 달 간 일본 생활이 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일본은 겸양의 문화가 지배하는 나라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한끼를 얻어먹더라도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런 모습이 귀엽기도 했고 일본인답기도 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여학생들은 어딜 가도 일본인인 것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일본 젊은 여자들이 많이 입는 골덴 미니스커트에 스파츠라고 하는 쫄바지같은 것을 겹쳐 입고 색깔이나 디자인이 귀여운 양말에 스니커즈를 신고 있었다. 남학생들은 말만 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학생들과 다른 점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었지만, 눈썹을 정리했다든가 어딘지 모르게 조심스러워 하는 태도 등 사소한 데서 그들이 일본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식당을 나와 PC방으로 향했다. 일본에는 PC방이라는 것이 없고 대신 인터넷 카페 같은 것이 있다고 한다. 커피숍에 컴퓨터가 비치돼 있어서 커피도 마시고 인터넷도 이용할 수도 있기는 한데, 한 시간에 500엔(약 5000원) 정도로 비싸서 자주 가지 못한다고 했다. 일본은 우리나라만큼 인터넷 보급률이 높지 않다. 인터넷이라는 것의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한국에 와서 친구들의 e-메일도 확인하고 온라인 게임도 즐기는 등 점점 우리나라 문화에 익숙해져 가는 것처럼 보였다.
 
  釜慶大 국제교류센터 金完敏(김완민·경영大 교수) 소장의 말이다.
 
  『일본 학생들과 우리나라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언어문제만 빼고는 말이죠. 어린 학생들이라서인지 언어를 빨리 배우고 있어요. 1년 정도 한국어를 공부하고 나면 전공 학과가 나눠지는 2학년 때부터는 강의를 소화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좋아하는 한국 탤런트는 원빈
 
 
  오후에는 기숙사 안으로 들어갔다.
 
  학생들 중에는 대마도에서 있었던 釜慶大의 입시 설명회를 직접 들은 사람도 있었고, 신문과 TV에서 봤다는 사람도 있었다. 학교에 대한 얘기라든가 한국에서의 생활 등 많이 받았을 법한 질문에 대충 대답을 하길래 텍스트적인 질문은 끝내고, 남자이야길 꺼냈다. 그때부터 쉽게 말문이 터지기 시작했다.
 
  『어떤 스타일의 남자가 좋으냐』고 물었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 방영됐던 韓日 합작드라마 「프렌즈」를 보면서 원빈한테 반했다고 했다. 『멋있어, 최고예요』를 연발하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나는 어느새 취재를 하는 입장에서 그들과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이로 돌아가 원빈이 얼마나 멋있는 남자인지 한참을 얘기했다.
 
  자연히 한국 남자들은 어떤 것 같냐는 질문이 나왔다. 일본 남자보다 자상하고 말도 잘 해준단다. 단지 「어떻게 한 번 잘해볼까」 하는 그런 집적거림은 싫다나? 그래서 『예쁜 여자한테만 그러는 것』이라고 말해줬더니 고개를 숙여 『고맙다』고 한다. 일본 남자들은 말도 없고 무뚝뚝하며 여자를 배려할 줄 모른다고 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였지만, 그들 눈에 그렇게 비친다니 신기했다.
 
  그동안 궁금했던 그들의 패션에 대해 물어봤다. 무엇보다 그네들과 우리가 가장 달라 보이는 게 옷차림이니까. 한국 사람들은 밝은 색깔을 좋아하는 것 같다면서 여자나 남자나 머리를 밝은 색으로 염색을 하고 밝은 원색 옷을 입는 것이 일본과 다른 점이라고 했다.
 
  『솔직히 말해도 되나?』
 
  내가 『무조건 솔직히 말하라』고 하자, 쿡쿡 웃으면서 조심스레 답했다.
 
  『솔직히 좀 이상해요. 얼굴은 괜찮은데 옷이 너무 촌스럽다든지. 진짜 멋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서울에 가면 좀 멋장이들이 있으려나?』
 
  한국 사람들에 대한 솔직한 평이다. 생각한 대로다. 표면적으로 가장 이질감을 느끼는 부분은 옷차림이나 머리모양, 화장법 등이라고 한다.
 
  『일본 여자들은 다 기본적으로 투명한 화장을 좋아해요. 안한 듯 하지만, 알고 보면 했거든요. 그런데 한국 여자들은 안한 사람은 아예 안 하고, 하는 사람은 너무 진하게 해요. 역시 화장에서도 원색의 밝은 색깔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역시 문화의 차이일 것이다. 그들도 알고 있겠지. 자신들도 「일본스러운」 옷차림의 그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한국과 일본은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니까요』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한 학생의 말 한마디에 주위가 조용해졌다. 즉각, 反語法(반어법)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과 일본 어느 쪽에서 먼저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일까.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점도 너무 많은 두 나라. 어떻게 보면 서양이나 동양의 그 어느 나라보다 가까운 나라일 터인데(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왜 관계가 좋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비약이 심한 것인지 모르지만 문득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가 생각났다. 일본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부모들의 사이야 어떻든 친구가 되고 싶다는 생각만 들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일본 가수라든가, 소설, 만화, 영화, 게임 등의 얘기를 해주었더니 모두 박장대소했다. 어리둥절해서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자기들보다 내가 더 잘 알기 때문이란다. 하긴 아무리 자기 나라 얘기라도 관심이 없으면 모를 수밖에 없겠지.
 
  대부분 월드컵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을 두고 독도가 어쨌네, 교과서 내용이 조작되었네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아무 의미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역사적으로 좋지 않은 일을 많이 한 것은 사실이다. 미안한 일이지만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일본 젊은이들에게나 나에게는 그런 과거의 행위가 뼈에 사무치게 와 닿는 일은 아니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교육을 잘못 받은 탓일까. 내 나이 또래에게는 『일본인은 모두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색한 일 일것만 같다.
 
 
  『피곤해 보인다』며 다정한 친구처럼 걱정
 
 
  한국 전통 식당에 가서 불고기 전골과 삼계탕 등으로 저녁을 먹었다. 일본인들은 밥 먹기 전에 누가 있든 없든 『잘 먹겠습니다』와 먹은 후에 『잘 먹었습니다』를 외친다. 혼자 있을 때도 그렇게 한다니, 기도같기도 하다. 한국 식당 특유의 상다리가 부러질 듯한 차림에 나는 놀랐지만, 그들은 오히려 익숙한 듯 『うまい, おいしい!(우마이, 오이시이ㆍ맛있다)』를 연발했다. 양이 엄청나게 많았지만, 後食으로 나오는 떡과 매실차까지 남김없이 다 먹었다.
 
  누가 일본인은 식사량이 적다고 했던가. 내가 보기엔 그들은 거의 우리와 다름없는 식사량을 가지고 있었다.
 
  다음날 교문 앞에서 만난 그들은 나를 보자마자, 『피곤해 보인다』며 가까운 친구 대하듯 내 팔짱을 꼈다. 뭔가 찡한 기분이었다. 인터뷰를 하러 온 기자를 대한다기보다는 피곤해 하는 친구를 걱정하는 그런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커피숍에 들어가서 친구들과 수다떨듯이 얘기를 나누었다.
 
  잘 웃는, 귀여운 코지마는 한국어를 아직 잘 못해서 한국어 습득이 가장 큰 과제라고 했다. 한국어는 문법도 비슷하고 한자도 있어서 영어나 독어 등 전혀 다른 나라말을 배우는 것보다 쉽지만 발음이 어렵다고 했다. 달, 딸, 탈의 발음 차이라든가, 코피, 커피, 카피를 예로 들면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애교 많은 오이타테는 커피를 내밀면서 코의 피를 의미하는 『코피 드세요』라고 장난을 쳐 우리들을 한바탕 웃겼다.
 
  그녀는 경상도 사람들이 맞장구 칠 때 자주 쓰는 『맞나』와 고맙다의 방언인 『고맙데이』를 진짜 경상도 사람처럼 리얼하게 구사해서 우리를 놀라게 했다.
 
  아버지가 서울에서 일하고 있어 한국에는 어렸을 때부터 자주 와봤다는 사키는 할아버지가 줬다는 500원짜리 우리나라 지폐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나도 본 적이 없는 500원짜리 지폐에는 충무공 李舜臣 장군이 그려져 있었다. 李舜臣 장군이 그녀의 지갑에서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했다. 사키는 李舜臣 장군과 일본의 관계를 알고 있는 것일까.
 
 
  외국인이라는 생각 들지 않아
 
 
  그때 마침, 스피커에서 가수 보아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일본 내에서 최초로 오리콘 차트(일본의 공식적인 음반판매량을 나타내는 차트)에서 1위를 해서 화제가 되고 있던 그녀를 아느냐고 물었다. 코지마는 『음반도 있다』면서 『노래를 잘하고,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초의 한국 여자 솔로가수라서 많은 관심이 쏠린 이유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웃고 떠드는 사이에 어느덧 나에게 주어진 시간인 2박3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뭔가 기억에 남는 선물을 주고 싶어서 생각한 끝에 부산의 한 음식점에서 직접 만든 맛있는 「오뎅」을 선물로 주었다. 오뎅이라는 음식은 본래 일본이 원산지겠지만, 부산 오뎅이 유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몇 개를 먹어 보았는데 서울에서 먹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그들의 마음에 들까 조마조마했는데 깔끔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본인의 이미지와는 전혀 달리 그 자리에서 봉지를 열어 맛을 보았다. 그러면서 『너무너무 맛있다』, 『고맙다』는 인사를 그치지 않았다.
 
  우리는 길거리에서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거짓말 안 하고 인사만 열 번을 넘게 했다. 중간 고사가 끝나면 서울에 올라올 예정이 있다고 하길래 오면 꼭 연락하라고 당부했다.
 
  나 한 사람이 한국을 대표한다는 거창한 뜻은 없다. 첫 날에나 그랬지, 두 번째 날부터는 그 아이들이 특별히 외국인이구나 하는 생각은 거의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부산이라는 곳에 익숙하지 않은 同志」라는 입장이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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