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부터 한국 여권 고위인사들이 김경준을 면회했고, 서로 간 딜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테클레 지게타)
『「큰집」하고 어떤 약속을 했건, 이곳 분위기는 아니다』
(LA 구치소에 김경준과 함께 수감됐다가 국내로 강제송환된 申모씨가 김경준에게 보낸 편지)
에리카金의 미국 후견인 이동연 증언
(테클레 지게타)
『「큰집」하고 어떤 약속을 했건, 이곳 분위기는 아니다』
(LA 구치소에 김경준과 함께 수감됐다가 국내로 강제송환된 申모씨가 김경준에게 보낸 편지)
에리카金의 미국 후견인 이동연 증언
한나라당은 김경준씨가 大選(대선)을 1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국내로 송환돼 온 과정에 汎여권과 국정원이 개입했다며, 이른바 「기획입국說」을 강력하게 제기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2007년 12월14일 검찰에 김씨 입국의혹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汎여권 측은 『김씨의 입국은 김씨 스스로 선택한 길이며, 이 과정에 전혀 개입한 적이 없다』며 한나라당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김경준씨는 옵셔널 벤처스 주가를 조작하고, 이 과정에서 회사 공금 384억원을 미국으로 빼돌린 뒤, 2001년 12월 20일 부인 이보라씨와 함께 미국으로 도피했다. 한국 검찰은 2004년 4월1일 미국 정부에 김경준에 대한 범죄인 인도요청을 했다.
이 해 5월27일 김씨는 美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됐다. 美 법원은 한국 검찰의 송환요청에 대해 2005년 10월21일 김씨의 송환판결을 내렸다.
김경준씨는 미국 법원의 판결에 따라 한국 송환이 결정되자, 송환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구금이 부당하다며 美 법원에 구속적부심(한국의 「인신보호요청」 성격의 소송)을 제기했다. 美 법원은 김씨의 이 같은 소송제기에 대해 2007년 1월18일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로 인해 김경준씨는 꼼짝없이 국내로 송환될 처지에 놓였다.
그러자 김경준씨는 구속적부심 기각이 부당하다며 다시 항소를 했다. 이 항소로 인해 김씨의 국내 송환은 다시 늦어졌다. 이 항소심 결정은 2008년 7∼8월로 예정돼 있었다. 즉, 김경준씨는 최소한 항소심 결정이 내려지는 2008년 중순까지는 국내 송환을 피할 수 있었다.
김경준씨는 2007년 10월1일 돌연 美 법원에 항소포기서를 제출했다. 김씨가 스스로 「한국行」을 택한 것이다. 大選을 40여 일 앞둔 시점이었다.
한나라당은 이에 대해 『그토록 국내로 강제송환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각종 소송을 제기해 온 김경준씨가 갑자기, 그것도 大選 직전에 마음을 바꿔 스스로 「한국行」을 택할 이유가 없다』면서 『김씨가 갑자기 마음을 바꾼 것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을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른바 「기획입국說」이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기획입국說은 크게 「범여권 관련說」, 「국정원 관련說」, 「범여권과 국정원의 합작說」 세 가지다.
「범여권 관련說」은 LA 구치소에 수감 중인 외국인의 증언과 대통합신당 鄭東泳(정동영) 후보의 외곽조직인 「평화경제 포럼」 자문변호사인 L변호사의 석연치 않은 행동에서부터 시작됐다.
달러 밀반입 혐의로 체포돼 2006년 1월부터 LA 구치소에서 김경준씨와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테클레 지게타(37)씨는 「김경준씨가 국내로 송환돼 오는 과정에 한국 정부와 김씨 사이에 거래가 있었다」는 요지의 주장을 했다.
지게타씨의 이같은 주장은 지게타씨의 변호인인 데니스 장 변호사가 2007년 11월29일 지게타씨와 나눈 접견록을 통해 제기됐다.
지게타씨는 변호인 접견과정에서 『김경준이 나에게 「면회를 온 한국 정부 고위 인사들과 거래를 했다. 증언을 해주면 그 대가로 사면이나 가벼운 형량의 선고를 받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지게타씨의 이같은 주장은 그동안 의혹으로만 떠돌던 김씨의 기획입국說을 뒷받침하는 첫 증언으로 보인다.
지게타씨는 『김씨는 2007년 3월부터 한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의 면회를 받았다』고 밝혔다. 지게타씨는 『이런 면회 이후 김씨가 「일이 잘되고 있다. 한국 정부와 그들(정부 관계자들)이 특별한 거래를 제안했다. 내가 알고 있는 무언가를 증언해야 할 것 같고, 증언 대가로 사면이나 가벼운 형량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거래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지게타씨는 『김경준이 「내가 BBK의 소유주다. 李明博씨는 BBK의 소유주가 아니다. 李明博씨는 BBK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고 했다.
다음은 테클레 지게타씨와 그의 변호인 데니스 장 변호사 간 7분45초에 걸쳐 이뤄진 접견 대화록이다. 대화록의 분량이 다소 많기는 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全文을 소개한다.
김경준과 수감생활을 같이한「테클레 지게타」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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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클레 지게타氏. |
『네』
―한국과의 관련, 또는 배경이 무엇이십니까
『한국에 1980년대, 1980년대 중반부터 갔었습니다. 2000년 후부터는 자주 한국에 갔습니다.
―한국에서 사셨다고요.
『네』
―확실한 기록을 위해서 당신 이름의 철자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당신 이름의 철자는 t-e-k-l-e이고, 성 지게타는 z-i-g-e-t-t-a이죠.
『네, 제 이름은 테클레, t-e-k-l-e이고, 성은 지게타, z-i-g-e-t-t-a로 씁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제법 많은 시간을 보냈고 살기도 했다는데 맞습니까.
『네』
―어디서 사셨습니까.
『(서울)여의도에서 살았습니다. 아름다운 곳입니다』
―한국에서 무엇을 했습니까.
『저는 서울에서 프로젝트 펀딩에 관심 있는 투자자들과 함께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프로젝트 펀딩(자금조성)도 했습니다』
―알겠습니다.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하셨군요.
『예, 그렇습니다』
―그럼 지금 LA 구치소에 수감된 이유는 무엇이죠.
『2002년부터 한국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곳으로 오는 도중 3만 달러가 넘는 현금을 신고하지 않아서 (제한 금액인) 1만 달러를 초과한 금액입니다』
―그렇다면 현찰로 1만 달러가 넘는 돈을 가지고 들어오셨나요.
『제가 허용된 액수보다 정확히 3만 달러를 더 갖고 들어왔습니다. 그때는 그러한 제한 규정을 몰랐습니다. 제 가방에 현찰이 있었지요. 그런데 1만 달러 이상 반입하면서 신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은행에서 인출한 달러를 갖고 들어오는 게 범법행위인지 몰랐죠. 국민은행에서 인출했는데…』
―그래서 여기 LA 구치소에 계신 거고요.
『네, 그렇죠』
『김경준과는 LA 구치소 6층에 함께 수감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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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LA 구치소 건물. |
『제가 LA 구치소에 2006년 1월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 LA 구치소에서 만나셨군요.
『네, 2006년 1월 즈음이에요』
―이 시설 안에서 그와 어떻게 만나셨습니까.
『구치소 6층 같은 층에서 지냈습니다』
―그외 다른 장소에서도 만나셨습니까.
『네, 제가 도서관에서 서기로 일하기 때문에 1년 반 동안 적어도 일주일에 2번, 하루에 4시간씩 봤습니다』
―두 분이서 얘기를 나눴습니까.
『네, 수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사업에 관한 얘기들…, 그 밖에 여러 가지요』
―한국에 대한 얘기는.
『네, 당연히 한국에 대한 것도요. 제가 한국을 사랑하니까요. 한국에 관한 이야기, 김장 이야기…(웃음)』
―알겠습니다. 김경준씨와 이야기하시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몇 개월 동안인지.
『21개월 이상, 그가 한국에 갈 때까지요. 한국에 2007년 11월15일경에 갔으니까』
―대화 중에 김경준이 BBK와 관련된 말을 하였습니까.
『네, 그게 큰 문제였습니다. BBK, 그가 BBK의 소유자라고…』
―네, 알겠습니다. 그가 당신에게 그렇게 말했습니까.
『네, 자기가 주체, 의사결정권자라고 했습니다』
―네.
『김경준은 BBK의 소유권자라고 했습니다』
―BBK의?
『네, BBK의』
―그가 李明博씨 관련 얘기, 李明博씨가 BBK의 (실제) 소유권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까.
『네, 제가 몇 번 물어봤죠. 김경준씨 동업자가 몇 명이냐, 변호사님이 말씀하신 李明博씨가 동업자인지 아니면 실소유주냐고요. 그러니까 (김경준이) 「아니, 내가 소유주이고 李明博씨는 회사와 관계 있지 않고 그냥 그 분 이름 때문에 내가 알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것 외에 그는 자기 회사 BBK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했습니다』
『2007년 3월부터 한국 여권 고위인사들이 김경준 면회했다』
―LA 구치소에 김경준이 수감되어 있는 동안, 그를 면회 왔던 사람 중에 특별한 면회가 있었습니까.
『네, 가끔 면회가 있었고, 김경준은 그 면회를 기다렸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한국 여권 고위직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이 면회한 것 같습니다』
―몇 번의 면회요, 한 번 아니면 여러 번.
『면회가 자주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그랬죠.
『그게 아마 올해(2007년) 5월 (잠시 후)… 아니 3월이오』
―2007년 3월부터 김경준이 이런 면회를 했다는 말입니까.
『네』
―알겠습니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까.
『여권 고위직들이 김경준과 딜을 했는데, 변호사나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라고 해요』
―한국인입니까, 아니면 미국인입니까.
『한국인이오』
―한국인이라고요, 알겠습니다. 그들이 김경준씨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었나요.
『음, 그러니까 그게… 한 4월 초 즈음에 DVD를, 한국어로 되어 있는, 아니 한국에서 녹음된 DVD를 많이 주고 갔고, 그가 그것들을 듣고 시청했습니다. 그중 눈에 익은 사람들이 보이더라구요』
―그런 것들을 어떻게 보셨죠.
『왜냐하면 제가 도서관 서기이니까요. 그리고 도서관에 비치된 컴퓨터를 사용하게 해주었으니까요. (컴퓨터) 3대가 있는데, 제가 5분마다 지나가면서 책들을 정리해야 하거든요』
―알겠습니다. 그럼, 당신에게 김경준씨가 맺었다는 모종의 거래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까.
『네, 그가 그것들을 이후에… 그가 보석으로 출소하려고 노력했었거든요. 그가 일이 잘 풀리고 있고, 여권 측에서 그를 위해서 특별한 거래를 제시했다고 그랬습니다』
『김경준이 거래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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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준의 美 LA구치소 동료 지게타氏의 변호인 접견 녹취록. |
『김경준이 말하기를, 「무엇인가를 위해 내가 아는 것을 증언해야 하는데 그 증언에 대한 대가로 나는 (한국에서) 사면을 받든지 가벼운 형량을 선고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일에 대해서, 또는 누구를 상대로 증언해야 한다고요.
『제가 생각하기로 그의 사업에 관련된 어떤 것, 아마도 李明博이나 그런, 여권 쪽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큰 일이오』
―그렇군요. 그렇다면 김경준이 이 거래에 대하여 말을 했습니까.
『네』
―김경준이 이 거래를 받아들였다고요.
『네, 좋은 조건의 딜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김경준이 왜 그토록 몇 년 동안 (한국으로의 강제송환을 거부하는 재판을 진행하다가) 스스로 항소를 포기하고 한국에 들어가려 하겠습니까』
―그렇죠.
『그는 한국에 강제송환되지 않으려고 갖은 법적 노력을 다했던 사람이거든요』
―그가 떠날 때 뭐라고 하던가요? 얘기했습니까.
『저뿐만 아니라 LA 구치소에 있는 저희 층 모든 사람들이 그를 보고 있었어요. 그가 말하기를, 「승소했고 정부가 소송에서 져서, 미국 정부가 나에게 사과하고, 판사가 명령해서 美 연방 검사 측이 사과하고 법적 비용, 140만 달러에 달하는 나의 변호사 비용을 갚아 준다」고요.
그가 구치소를 나갈 때 그렇게 말했고, 우리가 「와, 대단하다. 그가 소송에서 이겼구나」 했죠』
―그 다음에는요, 어떤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그 다음날 L.A 타임스 신문이 도서관에 12부가 배달된 후, 제가 사람들에게 배달하면서 보니까 비즈니스난, 아니 1면에 김경준 뉴스가 실려 있었고, 김경준이 한국에 강제송환됐다고 나왔지요』
―네….
『그때까지 우리는 (김경준의 말만 믿고) 김경준이 강제송환되었는지 몰랐죠. 김경준이 살던 베벌리힐스에 있는 집으로 돌아간 줄로 알았어요. 그러나 사실이 아니었어요』
―그렇죠.
『김경준은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결국, 김경준은 한국으로 강제송환되었지요』
―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과의 대화 즐거웠습니다>
한나라당의 총공세
지게타씨의 증언내용이 간접적으로 알려지자, 한나라당은 당내에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고 검찰에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등 대통합신당 鄭東泳 후보 측을 겨냥한 「기획입국說」 쟁점화에 나섰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주요 당직자 회의에서 『김경준의 입국을 둘러싼 정치공작說의 정체가 쉽게 밝혀지고 있다』면서 『검찰은 김경준을 면회했다는 한국 관리가 누구인지 밝혀야 하며, 미국 연방구치소의 김경준 면회기록만 조사하면 쉽게 밝혀질 수 있다』고 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모종의 공작정치가 없었다면, 미국에 남겠다고 인신보호 청원까지 냈던 김씨가 느닷없이 大選을 앞두고 귀국하는 일은 일어날 수 없었다』면서, 『鄭東泳 후보와 김경준씨 사이에 직접 거래가 있었는지, (鄭후보가) 기획입국을 사주했는지 여부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경준씨는 최근 『지게타라는 인물을 만난 적도 없고, 따라서 그의 주장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며 지게타씨의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김경준씨 귀국과 관련, 지게타씨의 증언에 이어 「범여권 관련說」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정황이 2007년 12월13일 터져 나왔다.
이 정황은 강도상해 혐의로 미국에서 체포돼, LA 구치소에서 김경준씨와 같이 1년여 동안 수감생활을 하다 2007년 10월 중순 국내로 송환된 申모씨의 편지에서 비롯됐다.
申씨의 송환 시기는 김경준씨가 송환되기 1개월 전이었으며, 申씨는 현재 대전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申씨는 2007년 11월10일 당시 LA 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김경준씨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는 「나의 동지 경준에게」로 시작한다. 다음은 申씨가 김경준씨에게 보낸 자필 편지 全文이다.
『「큰집」하고 어떤 약속을 했건, 이곳 분위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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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교도소에 수감 중인 신○○씨가 김경준에게 보낸 자필 편지. |
난 대전에 와 있네. 이곳에 와 보니 자네와 많이 고민하고 의논했던 일들이 확실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네. 그래서 자네와 약속했던 것들도 이행하지 못했고, 또한 그 약속들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했다네.
우리는 현재보다 앞으로 살아갈 일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네. 대선은 이미 Mr. 리(李明博)가 확실시되었고, 모두가 박수칠 날만 기다리고 있지.
우리 사이는 세상 끝까지 함께 가기로 했던 동지로서,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네.
자세한 이야기는 못 하겠지만, 이곳에 오기 위하여 준비한 내용들은 다시 수위 조절을 해야 하고, 그것이 경준이를 위하는 길이고 살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네.
자네가 큰집하고 어떤 약속을 했건 이곳 분위기는 그것이 아니고 우리만 이용 당하는 것이고, 또 미친 놈 소리만 듣게 되었다네.
그러니 명심하고 형 말대로 신중하게 판단하여 가지고 나오는… (일부 잘 보이지 않음)도 불필요한 것들을 다 버리고 오길 바라네.
2007년 11월10일
대전교도소에서 신○○>
이 편지에서 여권의 기획입국說을 뒷받침하는 대목은 「이곳에 와 보니, 자네와 많이 고민하고 의논했던 일들이 확실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네. 그래서 자네와 약속했던 것들도 이행하지 못했고, 또한 그 약속들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했다네. 우리는 현재보다 앞으로 살아갈 일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네. 대선은 이미 Mr. 리(李明博)가 확실시되었고…」라는 대목이다.
이 편지내용으로 미뤄 볼 때, 申씨는 LA 구치소에 김경준씨와 같이 수감돼 있을 때 한나라당 李明博 후보를 흠집내기 위해 모종의 모의를 했음을 짐작케 한다.
「큰집」은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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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홍준표 클린정치위원장이 김경준씨 관련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
이 대목은, 김경준씨가 스스로 국내로 강제송환돼 오는 과정에 여권 측과 어떤 협의를 진행했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큰집」이 어디를 지칭하는 것인지를 밝혀 내는 것이 정치공작설을 입증하는 핵심이 될 것이다.
「범여권 관계자가 申씨 측과 접촉을 했다」는 주장이 있다. 2007년 10월26일 오후 6시경, 申씨의 동생은 만난 적이 없는 李모 변호사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李변호사는 申씨의 동생에게 『신○○씨의 동생이지요. 형 신○○의 억울한 부분을 다 알고 있다. 법률적으로 도와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 전화통화로 인해 申씨의 동생은 미국으로 도망간 형이 한국으로 강제 송환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申씨의 동생은 다음날인 10월27일에도 「신당(대통합민주신당)」이라며 전화가 걸려 왔다고 했다. 申씨 동생은 전화를 건 사람이 신당 선대위 법무팀 관계자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관계자 역시 전화로 『사건 내용을 잘 알고 있다. 무료변론을 해주겠다. 신○○를 만나서 협조해 주면 애로사항을 풀어 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범여권 측 인사들과 수차례 만났다』
2007년 10월29일에는 鄭東泳 후보의 외곽지지 모임인 「평화경제 포럼」 자문변호사라는 李모 변호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고, 역시 무료변론을 제안했다고 申씨 동생이 말했다.
申씨 동생과 동업관계인 것으로 알려진 梁모씨는 이렇게 말했다.
『李모 변호사, 鄭東泳 후보 선대위 법률팀 관계자와 서울 인터콘티넨탈 호텔 커피숍 등지에서 수차례 만났다. 그들은 무료변론과 함께 구속된 申씨의 형량을 가볍게 해주고 먹고살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梁씨의 발언내용은, 梁씨와 만나 얘기를 전해 들은 제3자가 月刊朝鮮에 전달한 것이다.
申씨의 무료 변론을 제안했던 李모 변호사와 申씨 측 간에는 실제 변론계약서를 작성하기까지 했다. 다음은 변론계약서 내용이다.
<1. 사건 수임변호사는 신○○ 강도상해 사건을 1심 판결 선고시까지 무료 변론하기로 한다.
2. 신○○의 강도상해 피의 사건 수임변호사는 사건 진행과정에서 피의자 신○○로부터 지득한 내용에 관하여 사건 업무상 필요한 경우가 아닌 한 언론에 제공 또는 공표하지 아니하고, 신○○의 신분이 언론과 공중에 노출되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3. 변호사는 의뢰인 신○○씨에게 신변상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신중하게 사건처리를 하여야 한다.
2007. 11. 6. 변호사 이○○>
申씨에 대한 무료변론을 맡은 李모 변호사는 鄭東泳 후보와 같은 전주高와 서울大 출신이다.
한나라당 洪準杓(홍준표) 클린정치위원장은 申씨가 김경준씨에게 보낸 편지와 관련, 『2007년 3월부터 10월까지 김경준에 대한 기획입국이 진행됐다고 본다』고 했다.
洪의원은 『申씨가 먼저 들어와 李明博 후보에게 생채기를 내주는 역할을 하고, 그 다음 김경준씨가 들어오기로 기획 입국을 시도했다. 申씨 편지 이외에 某 후보 측에서 김경준 측에게 써준 각서를 가지고 있으며, 이 각서에는 김경준의 기획입국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했다.
『2007년 3월 이후부터 국내 汎여권 관계자 LA 수차례 다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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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在美 LA교포 이동연 한미신용정보 회장. |
사업차 서울에 온 이동연 회장은 2007년 12월11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기자와 만나 『汎여권 고위 관계자인 L모 前 국회의원이 2007년 3월 이후 수차례 LA를 방문했으며, 이 과정에서 에리카 金 변호사 측과 접촉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연 회장은 『盧武鉉 정부의 핵심 인사인 L의원이 2007년 8월 LA를 방문했고, L의원의 방문 역시 에리카金 변호사 측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2007년 3월 이후부터 범여권 고위 인사가 LA를 수차례 방문했다』는 이동연 회장의 증언은 『2007년 3월부터 10월 사이 汎여권의 기획입국 공장이 이뤄졌다」는 한나라당 洪準杓 의원의 주장과 일치한다.
다음은 이동연 회장과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한나라당이 제기하고 있는 김경준의 기획입국說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상당한 실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2007년 3월부터 金大中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L모 인사가 수차례 LA를 다녀갔고, 現 정부의 핵심 실세로 통하는 L의원이 2007년 8월 LA를 방문했습니다. 이들의 LA 방문은 김경준의 입국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汎여권의 김경준씨 기획입국說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구체적 정황은 무엇입니까.
『LA 한인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호남 출신 H씨가 에리카金 변호사와 친분이 있는데, 이 사람이 汎여권과 에리카金 변호사 측을 연결시켜 주었다는 얘기들이 많습니다. H씨는 호남 출신으로 평소 金大中 정부 시절 고위 인사는 물론, 現 정권의 인사들과 폭 넓은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경준씨의 누나인 에리카金 변호사는 汎여권 인사들과 친분이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에리카 변호사는 LA의 교포 1.5세 중 대표적 인사입니다. 에리카金 변호사가 한때 LA 한인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내면서 국내 정치권 고위 인사들과 만날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한나라당과의 딜說, 말도 안 된다』
기자는 이동연 회장을 만난 김에 2007년 11월 초 이갑산 공선협 공동대표가 제기했던 의혹의 진위 여부에 대해 물었다. 이갑산 공동대표는 2007년 11월2일 서울 흥사단 대강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동연 회장은 李明博 후보와 에리카金·김경준 남매를 소개해 준 인물이다. 2007년 7월 LA에서 이동연 회장을 만나 양심선언 의사를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신당 金鍾律(김종률) 의원은 2007년 11월14일 이동연 회장을 통한 에리카金 남매와 李明博 후보 간 「딜(deal)說」을 주장했다.
金의원은 『김경준씨의 누나인 에리카金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무장을 했던 사람이 한나라당 측과 접촉 중이며, 양측이 「이미 얘기가 끝났다」는 제보가 있어 확인 중』이라고 했다.
―이갑산 공선협 공동대표가 제기한 이동연 회장의 「양심선언說」의 실체는 무엇인지요.
『도대체,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양심선언을 한다는 것입니까. 汎여권과 시민사회단체 사람들은 왜 입만 열면 엉터리 말을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2007년 7월 이갑산 공동대표를 LA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까.
『만난 것은 사실입니다』
―만나서 무슨 얘기를 나누었습니까.
『이갑산 대표와는 안면이 있는 사이입니다. 그가 미국에 왔다고 해서 만났죠. 특별히 나눈 얘기는 없었습니다. 그냥, 신변잡담만 하다가 헤어졌습니다』
―이동연 회장이 「양심선언을 하겠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양심선언은 무슨 양심선언입니까. 도대체 뭘 선언한다는 것입니까. 이제 한국에서 오는 사람들 만나기가 겁이 납니다』
―그렇다면, 이갑산 대표가 거짓말을 한 것가요.
『그렇죠, 이갑산 대표가 엉뚱한 말을 한 뒤, 저에게 「사과한다」는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제가 나중에라도 할 말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전화내용을 녹음해 두었습니다』
이동연 회장은 국내용 핸드폰으로 미국에 두고 온 자신의 핸드폰에 전화를 걸어 녹음한 부분을 기자에게 들려 주었다. 녹음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동연 회장님, 저 이갑산입니다. BBK 관련 기자회견에서 저는 「이동연 회장이 양심선언을 한다면, 그 자리를 만들어 줄 용의가 있다」는 뜻에서 얘기를 한 것인데, 뜻이 잘못 전달돼 회장님께 누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에리카金 변호사 사무실은 내 돈으로 얻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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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준씨의 누나인 에리카金 변호사. |
『여당 쪽 사람들은 왜 입만 벙긋하면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저는 金鍾律 의원을 한 번도 만난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왜 그런 얘기를 했는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제가 에리카金 남매를 대신해 李明博 후보 측과 딜을 했다는 것인데, 1997년 이후 저는 에리카金을 만난 본 적도 없습니다』
―金鍾律 의원은 「이회장이 에리카金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을 지냈다」고 주장했습니다.
『나 원, 참… 허무맹랑한 주장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까지는 기초조사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내가 왜 에리카金의 사무장을 합니까. 저는 사무장이 아니라 에리카金의 후견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돈으로 에리카金의 출판기념회를 열어 준 것이 아니겠습니까. 출판기념회 때 에리카金은 돈 한 푼 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金鍾律 의원은 왜 이회장께서 사무장을 지냈다고 한 것이죠.
『저도 모르죠, 그 사람이 왜 그 같은 주장을 했는지…. 에리카金이 변호사 사무실을 내려고 할 때,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 돈으로 사무실을 얻어 주었습니다. 그 사무실이 지금 에리카金이 사용하고 있는 바로 그 사무실입니다.
변호사 사무실이 넓어 한쪽 모퉁이에 저의 개인 방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저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끔 이 사무실에 들러 에리카金이 잘 하고 있는지 지켜만 보았을 뿐입니다. 변호사 사무실의 회계 등 모든 운영은 에리카金이 전적으로 맡아서 처리했고, 저는 한 번도 관여한 적이 없습니다』
이동연 회장은 이갑산 공선협 공동대표와 신당 金鍾律 의원의 주장에 대해 언급하는 과정에서 분을 삭이지 못했다.
국정원 공작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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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 |
한나라당의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鄭亨根(정형근) 의원은 『LA 총영사관에 파견된 국정원 직원이 김경준씨의 입국에 관여했다는 정보가 있다』며 『이 직원은 국정원장의 핵심 측근으로, 결국 김씨의 기획입국 책임자가 국정원장이라는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安商守(안상수) 원내대표는 『국정원의 김경준 귀국공작 개입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용납할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면서 『검찰은 한 점 의혹 없이 철저히 수사해 김경준 귀국공작의 전모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국정원의 기획입국說 관여 의혹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면서 『국정원은 BBK나 김경준씨와 관련해 어떤 정보도 수집한 적이 없고, 김씨의 입국과 무관하다』며 입국공작說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김경준씨 기획입국說과 관련해 洪準杓 한나라당 의원은 2007년 12월15일 국회 본관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실에서 기자와 만나 이렇게 밝혔다.
『김경준의 기획입국은 汎여권과 국정원의 합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이 이 부분에 대해 2007년 12월14일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기 때문에 조만간 실체가 드러날 것으로 확신한다.
검찰의 수사도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LA 구치소의 김경준 면회기록만 보면 전말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김경준과 LA 구치소에서 함께 수감돼 있던 申모씨를 조사해 보면, 汎여권의 기획입국說을 곧바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늦어도 2008년 2월 정도면 기획입국說에 대한 전반적 실체가 드러날 것으로 확신한다』
洪準杓 의원은 『2007년 7월과 9월, 그리고 10월 초순께 등 세 차례에 걸쳐 김경준 가족으로부터 「딜」(협상)을 제의받았으나, 거절했다』면서 『딜을 제의해 온 사람은 에리카金, 김경준, 김경준의 부인 이보라 씨 등 그때마다 달랐다』고 했다.
洪의원은 『세 사람이 각각 딜을 제의해 온 것으로 미뤄 볼 때 이들 서로 간에 이해가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기획입국說의 실체는 반드시 밝혀진다』
『에리카金은 자신이 변호사업을 통해 번 순수한 돈에 대해서만이라도 압류를 해제해 줄 것을 요청했고, 김씨의 부인 이보라는 스위스 은행에 예치돼 있는 1600만 달러를 자신이 차지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김경준은 사법처리를 면하게 해달라는 것이 요구의 주요 내용이었다』
어쨌든, 김경준씨의 기획입국說에 대한 실체 규명은 BBK 사건에 이어 또다시 검찰의 몫으로 넘어갔다. BBK 사건으로 인해 지난 大選기간 내내 정국의 한복판에 섰던 검찰이 大選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與野 정쟁의 사정권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김경준 기획입국說 일지(2007년)
● 1월18일: 美 LA법원 김경준 제기한 구속적부심(인신보호요청) 기각
● 1월 말 : 김경준 美 법원 구속적부심 기각에 대한 항소(2008년 7~8월께 항소심 결정 예정)
● 3월 중순: 汎여권 고위 관계자 미국 방문(美 한미신용정보 이동연 회장 주장)
● 8월: 盧武鉉 정부 핵심 측근인 某 국회의원 미국 방문
● 9월13일: 김경준, 구속적부심 항소 포기서 서명
● 10월1일: 김경준, 항소포기서 법원에 제출
● 10월 중순: LA 구치소에 김경준과 함께 수감돼 있던 申○○씨 국내 송환(대전교도소 수감)
● 11월6일: 李모 변호사, 申○○와 무료변론 계약
● 11월10일: 申○○씨 미국으로 김경준에게 편지 보냄
● 11월14일: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 김경준의 기획입국說 첫 제기
● 11월16일: 김경준 국내 송환
● 11월29일: 데니스 장 변호사, LA 구치소에서 지게타씨 접견. 한국 정부 고위자 관련 증언 녹음
● 12월7일: 한나라당, 데니스 장 변호사의 지게타씨 접견 증언록 공개
● 12월12일: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 김경준 입국에 국정원 관련 의혹 제기
● 12월13일: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 김경준 기획입국설 입증자료라며 申○○의 편지와 변론계약서 공개
● 12월14일: 한나라당, 김경준 기획입국설 검찰에 수사의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