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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비상계엄군 동원한 5인방 들여다보기

“4인방(육군총장, 수방·특전·방첩) 중 방첩사령관 빼곤 다 우유부단”

글 : 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libert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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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현, 군 인사 통해 사전 계엄 준비
⊙ 계엄 일정 앞당긴 배경은 민주당 지지 예비역 將星 시국선언 때문
⊙ 어설픈 비상계엄, 왜 하필 12월 3일? 배경에는 계엄 실행 정보 유출
⊙ 2024년 후반기 장성 인사에서 49기 中將 안 나온 이유는 곽종근 특전사령관 때문?
⊙ 민주당이 신상 밝힌 요원 중 류경식당 탈북 주도한 정보요원도 있어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23분.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담화(5분 길이)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계엄 선포 직후인 10시30분경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은 화상으로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소집하고는 비상경계 및 대비 태세 강화를 지시했다. 이와 함께 서울 용산 합동참모본부 지하 벙커에는 계엄사령부가 설치됐다.
 
  11시25분.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임명됐고 2분 뒤에는 계엄사령부가 ‘포고령 제1호’를 발표했다. 박 총장은 12월 5일 국회에 출석해 “윤 대통령 담화를 보고 비상계엄 선포 사실을 알았다.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계엄사령관은 박안수’라고 해서 그때 알았다. 포고문도 작성한 바 없다”고 했다.
 
  12월 4일 오전 0시7분. 계엄군이 헬기를 타고 국회 경내로 들어왔다. 대테러 작전에 투입되는 707특수임무단이었다. 국회 본청 앞에서는 계엄군과 계엄군 국회 진입을 저지하려는 정당 관계자·보좌진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여야 의원들은 군경 통제를 뚫고 국회 본회의장으로 입장했다. 0시38분.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본청으로 들어갔다. 이어 특수전사령부(특전사) 1공수여단도 국회 경내로 진입해 본청 외곽을 둘러쌌다.
 
  0시48분. 국회는 비상계엄 선포에 대응해 본회의를 시작했고 오전 1시1분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상정해 2분 뒤 재석 190명 전원 찬성으로 가결했다. 1시14분 국회 본청에 진입했던 계엄군이 철수하기 시작했다.
 
  오전 4시20분.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해제하고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10분 뒤에는 국무회의에서 계엄 해제안을 의결했다.
 
 
  尹, 계엄 사유는 부정선거 입증
 
  6시간 동안 벌어진 계엄 소동. 계엄 선포가 정당했는지와는 별개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어설픈 계엄’이었다. 계엄군은 여론 장악·언론 통제에 필요한 방송국·언론사 대신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로 갔다. 일부에선 계엄을 주도한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을 ‘갓 임관한 소위보다 못하다’고 평가했다. 윤 대통령은 12·3 계엄 선포 당시에는 계엄 사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반국가 세력 척결, 자유 헌정 질서 수호’를 위한 결단이었다고 말했다. 계엄 사유가 추상적이었다. 계엄 선포 열흘 만인 12월 12일이 되어서야 구체적인 계엄 사유를 밝혔다.
 
  〈선관위는 헌법기관이고, 사법부 관계자들이 위원으로 있어 영장에 의한 압수수색이나 강제수사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스스로 협조하지 않으면 진상규명이 불가능합니다. 지난 24년 4월 총선을 앞두고도 문제 있는 부분에 대한 개선을 요구했지만, 제대로 개선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에 국방부 장관에게 선관위 전산 시스템을 점검하도록 지시한 것입니다.〉
 
  우리 사회 일각이 제기하는 음모론인 ‘부정선거, 개표 조작’을 밝히고자 계엄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계엄 실행 계획에는 국회의장, 여야 당대표 등을 비롯해 정치적 대립각을 세운 이들을 체포한다는 내용도 있다고 전해졌다.
 

  이번 계엄 사태를 주도한 핵심 인물은 김용현(충암고 7회) 전 국방부 장관(2024년 9월 임명), 여인형(충암고 17회) 국군방첩사령관(2023년 11월 임명)으로 알려졌다. 여 사령관은 홍장원 국정원 1차장에게 체포해야 할 정치인 명단을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윤석열(충암고 8회) 대통령과 고교 동문이다.
 
  12·3 계엄에 필요한 준비는 윤석열 정부 초대 경호처장을 지낸 김용현 전 장관이 주도했다는 분석이다. 앞서 김 전 장관은 경호처장이던 2024년 3월 경호처장 공관으로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특전사령관, 여인형 방첩사령관을 초대해 식사를 하기도 했다. 이 사실이 국방부 장관 취임 직후 공개돼 논란이 됐는데 당시 김 전 장관은 관례였다고 했다.
 
 
  김용현, “계엄은 시대착오”
 
2024년 10월 1일 국군의날 행사장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장관. 사진=뉴시스
  그는 2024년 9월 2일 국방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이렇게 밝혔다.
 
  “지금 대한민국 상황에서 과연 계엄을 한다고 하면 어떤 국민이 이를 용납하겠나. 우리 군에서도 따르겠나. 안 따를 것 같다. 솔직히 계엄 문제는 시대적으로 안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너무 우려 안 하셔도 될 것 같다.”
 
  김 전 장관은 왜 실패가 뻔한 ‘어설픈 계엄’을 기획했을까. ▲10%대 머무르는 국정 지지도 ▲거대 야당이 벌이는 입법 견제 등 불리한 정국을 뒤집고 이른바 부정선거 의혹까지 밝혀낸다면 국정 동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김 전 장관을 주변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김 전 장관은 본인이 손해 볼 행동은 하지 않는다. 용의주도하며 철두철미한 사람이다. 계엄 결과만을 두고 김 전 장관을 무모한 인물로 단순히 치부해선 안 된다. 나름의 치밀한 계산이 있었을 것”이라며 “출동하는 장병들에게 개별 실탄을 분배하지 않은 이유도 인명 살상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혈 사태가 벌어지면 본인이 나중에 책임을 져야 하지 않나. 이 역시 계산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왜 주말 새벽 2~3시가 아닌 평일 밤이었을까. 계엄에 대한 정보가 새나가고 있었기에 더는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계엄 선포 당일 오전 국회에선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을 비롯해 황인권(예비역 육군 대장) 전 제2작전사령관, 김도균(예비역 육군 중장) 전 수도방위사령관, 황기철(예비역 해군 대장) 전 해군참모총장, 김태성(예비역 육군 소장) 전 11사단장, 진호영 예비역 공군 준장 등 예비역 장성 14명이 시국선언을 했다.
 
  선언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에 반대한다는 내용과 현 시국에 대한 입장이 담겨 있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외면받고 있다. 전쟁 날까 두려운 게 아니라, 전쟁 낼까 두렵다는 국민의 목소리가 높다. 윤 대통령의 무책임한 국정 운영과 국민을 향한 폭력적 태도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수준이다.”
 
 
  민주당, 계엄 제보 수집
 
  민주당은 이번 계엄 사태를 앞두고 군 내부자로부터 계엄과 관련한 상황을 제보받아 왔다. 김민석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모교인 충암고 라인을 군 내에 동원해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앞서 2024년 11월 4일 민주당은 계엄령 선포 전 국회 사전 동의를 받는 계엄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하기도 했다.
 
  ‘군과 정치권 간 관계’를 관찰해 온 군 출신 인사는 “양측이 상대를 주시하며 정보 작전(첩보전)을 하고 있었다. 상대 모두 양측에 이른바 ‘세작’을 심어놨을 것이다. 김용현 장관 쪽에서는 더는 계엄을 늦출 수 없다고 생각해 12월 3일 밤을 계엄 시점으로 택한 듯하다. 민주당 일부 의원은 지난 4월부터 관련 정보를 수집해 왔다”고 했다.
 
  경쟁이나 대립 관계에서 첩보전은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정한 대가를 기대하면서 상대에게 정보를 넘기는 형태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상대 진영에 조력자나 정보원을 심어두는 형태다. 정쟁(政爭)에는 이 두 형태가 모두 사용된다. 경호처장 김용현과 특전·수방·방첩사령관이 비밀리에 만났다는 정보가 야당에 흘러간 점은 이상할 게 없다.
 
  계엄령 선포는 밤 10시28분에 이뤄졌다. 민주당은 12분 뒤 긴급 소집을 명령했고 계엄 선포 2시간20분 만에 본회의가 열렸다. 민주당도 사전에 대비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황상 계엄은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듯하다. 여권에선 총선 패배 이후부터 준비해 왔다는 설이 있다. 본격화한 시점은 김용현 전 장관이 취임한 9월 이후로 추정된다.
 
  김용현 전 장관은 계엄에 필요한 자기편을 어떻게 구축했을까. 김 전 장관이 밝히거나 수사로 입증하지 않는 한 이를 입증하기는 어렵지만 군 장성 인사 결과를 바탕으로 추론할 수는 있다.
 
 
  2024년 후반기 장성 인사
 
2024년 12월 4일 오전 1시경 비상계엄이 해제되자 계엄군이 철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24년 11월 25일 계엄을 일주일 앞두고 후반기 장성급 인사가 발표됐다.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한 이는 육군 52명, 해군 10명, 해병대 4명, 공군 12명이었다. 소장에서 중장으로는 해군 2명, 해병대 1명, 공군 3명이었지만 육군은 없었다.
 
  통상 육군은 1년에 8명가량을 중장으로 진급시킨다. 전반기에 4명, 후반기에 4명을 임명하는 식이다. 2024년은 육사 49기가 중장으로 진급할 수 있는 첫해였다. 2024년 전반기에는 박재열(현 7기동군단장), 서진하(3군단장), 이승오(합참 작전본부장) 소장이 중장으로 1차 진급했다. 2024년 후반기인 2차에선 4~5명을 진급시켜야 하는데 중장 진급자가 나오지 않았다.
 
  왜 2024년 후반기 장성 인사에선 중장 진급자가 나오지 않았을까. 중장으로 진급하면 1차 보직이 되는 군단장, 작전사령관 등은 임기가 통상 2년 정도다. 49기가 진급을 하면 47기를 밀어내야 한다. 47기에는 곽종근 특전사령관(2023년 11월 임명)이 있다. 김용현 전 장관 입장에선 계엄을 앞두고 특전사를 1년 이상 장악한 곽 사령관을 교체하기 쉽지 않았으리라 추정된다. 특전사령관을 교체할 경우 부대 장악에 시간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47기는 대장 계급인 지상군작전사령관을 배출했기 때문에 47기 중장이 갈 수 있는 자리는 육군참모차장, 교육사령관 자리뿐인데 이미 동기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육사 48기인 이진우 수방사령관이 인사 이동되지 않은 이유도 위와 비슷하다. 한 명이 자리를 옮기면 연쇄 이동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합참차장은 계엄사 부사령관을 맡는다. 합참차장은 2024년 4월 3차로 중장에 진급한 정진팔 중장(육사 48기). 정 차장은 육군교육사령관을 하다가 2024년 11월 30일 합참차장으로 임명됐다. 전임 합참차장은 김봉수 중장(육사 47기). 보직을 두고 선배와 맞바꾼 사례다. 정진팔 차장은 김용현 인맥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에서는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 해군인 김명수 합참의장을 건너뛰고 김용현 인맥인 정진팔 차장이 계엄사 부사령관이 돼 병력을 이동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명수 합참의장은 신원식 인맥이다.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이 합참 작전본부장을 할 때 부하였다.
 
 
  “여인형 뻬곤 다 비슷”
 
  군 출신들에게 박안수 육군참모총장, 곽종근 특전사령관, 이진우 수방사령관,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어떤 인물인지를 물었다. 공통된 답은 “여인형 빼곤 다 비슷하다”고 말했다. 여 사령관이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스타일이라면 나머지 셋은 우유부단하다는 의미였다.
 
  위 4인과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는 A씨는 “여 사령관을 제외한 3명(박안수, 곽종근, 이진우)을 데리고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지만, 쿠데타를 하려면 적어도 이 세 명은 포함시켜선 안 된다”고 말했다.
 
  박안수 육군참모총장과 근무 경험이 있는 이들은 공통적으로 “박 총장은 불합리한 명령이라도 수용하는 스타일이다. 이번 계엄 사태에 연루돼 고생하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했다.
 
  이진우 수방사령관은 3대가 군인이다. 부친은 육사 21기로 3군단장을 지낸 이규환 예비역 중장이다. 이 사령관 아들도 육사에 진학했다.
 
  곽종근 특전사령관은 2024년 12월 6일부로 직무가 정지돼 수도군단으로 발령이 났다. 곽 사령관은 이날 김병주 의원 유튜브에 출연해 “TV를 보고 계엄을 알았다”고 주장했다. 12월 10일에는 입장을 바꿔 “12월 1일 김용현 전 장관에게 비화폰으로 최종 (계엄) 임무를 받았다”며 국회와 선관위 3곳, 민주당 당사 등을 확보하고 봉쇄하라는 임무를 받았다고 밝혔다.
 
  계엄군을 이끌고 국회 본청에 들어간 김현태 707특임단장(대령)은 지난 12월 9일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김 대령은 “707부대원들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이용당한 피해자다. (부대원들을) 용서해 달라”고 했다. 이어 “국회 출동 및 창문을 깨고 들어가라는 지시도 다 내가 했다. 707부대원들이 행한 모든 잘못은 지휘관인 내가 모두 지겠다”고 했다.
 
  지난 12월 14일 민주당은 곽종근 중장과 김현태 대령을 공익 제보자 보호 대상자로 지정할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계엄 여파는 후배들이 치러야
 
  현역과 예비역은 이번 계엄 사태로 군인들 사기가 떨어지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처우 문제로 군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은데 시국 사건이라는 악재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육사 출신 소령 C씨는 “계엄 이야기를 듣고는 가슴이 철렁했다. 과거 정치군인들이 남긴 과오를 후배 군인들이 지워나가고 있었는데 또 이런 일이 반복됐다. 계엄 사태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군에 영향을 미친다. 주변에선 군대를 떠나고 싶다고 말하는 선후배도 있다. 현 상황이 안타까울 따름이다”고 했다.
 
  특전사 대위로 복무 중인 D씨는 “특전사는 사기가 바닥을 쳤다. 특전사는 유사시 가장 먼저 적진에 침투해 목숨 걸고 싸우는 부대다. 일부 선배 군인의 잘못된 판단에 대한 부당함이 특전 용사들에게 오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정보사에서 근무하는 E씨는 해외 공작 업무 부서에서 일했다. 타국에서 조국을 위해 목숨 걸고 일했다는 자부심 하나로 군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계엄 사태가 분명 잘못됐지만 가혹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공개한 정보사 요원 중에는 류경식당 탈북을 주도했던 이도 있습니다. 이번 계엄 사태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데는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리가 피땀 흘리며 쌓아온 소중한 자산을 잃어가고 있는 듯해 마음이 아픕니다. 짓는 데는 수년, 수십 년이 걸리지만 허무는 건 한순간입니다.”
 

  방첩사에 근무하는 F씨는 올해로 20년 차다.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시절부터 국군안보지원사령부(안지사), 방첩사를 모두 경험했다. F씨는 이렇게 말했다.
 
  “방첩사는 지난 정부 시절 큰 혼란을 겪었습니다. 이번에도 일부 지휘관이 일탈했을 뿐인데 부대 전체가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부대를 구성하는 대다수는 본분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손가락질을 받을 때면 서글픕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정당하지 않은 지시를 거부한 부대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평양 무인기 소란, 김용현 작품 아니야
 
  이번 계엄 사태를 두고 일각에선 지난해 10월 평양 상공을 휘저은 무인기 사건도 김용현 전 장관이 벌인 일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무인기로 북한을 자극해 도발을 유도하고 이를 바탕으로 계엄령을 선포한다는 각본이다. 취재 결과 무인기는 김 전 장관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김용현 전 장관이 모 부대 사령관을 할 때 참모장을 한 G씨는 “김용현은 절대 손해 보는 일은 안 하는 사람이다. 용의주도하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지난 12월 11일 구치소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선뜻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김 전 장관이 통수권자의 뜻을 받들어 밝히고자 했던 부정선거는 감감무소식이다. 그는 음모론에 빠져 후배들을 수렁에 밀어 넣었다. 역사는 그를 ‘실패한 한명회’라고 평가하지 않을까.
 
  계엄 사태가 벌어지기 두 달 전인 지난 10월 4일. 전쟁군사전문 독립서점 워랩(WarLab, 서울 용산)에선 학도병으로 6·25 전쟁에 참전하고 월남전을 경험한 특전사령관 출신 민병돈 장군이 강연을 했다. 1987년 6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군 병력 동원 의사를 비치자 그는 반대했고 유혈 사태를 막는 데 기여했다.
 
  한 후배 장군이 올바른 민군 관계는 무엇인지를 물었다. 계엄을 예상이라도 한 듯한 질문이었다. 민병돈 장군은 “법, 그중에서도 헌법을 따라야 한다. 윗사람 명령이라고 해도 무조건 따라서는 안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전문성 측면에서는 상급자보다 하급자가 더 전문적인 경우가 있습니다. 대통령이 군사 문제에 대해 국방부 장관이나 참모총장만큼 알기는 어렵습니다. 대통령이 잘못된 판단이나 결정을 할 때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현재는 그러지 않고 있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 즉 정치인의 말에 무조건 복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은 책임과 권한을 포기한 것입니다.”
 
 
  민병돈 장군, “헌법 따라야”
 
특전사령관을 지낸 민병돈 전 장군. 사진=조선DB
  민병돈 장군은 “이러한 원인은 자기 소신을 펴지 않고 무조건 상관에게 복종하는 군 고위층의 태도에 있다”고 했다. 하급자들은 “저게 아닌데, 저분이 왜 저러시지? 저건 틀렸는데…”라고 생각하지만, 상급자는 그대로 (권력자를)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계속된 그의 말이다.
 
  “군대를 보면 계급 구조와 지휘 체계로 인해 하급자가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런 불일치는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다가 전투나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 문제가 됩니다. 따라서 상급자는 단순히 계급이나 직책에 따른 권한만 행사할 것이 아니라 책임을 철저히 이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 하급자들이 상급자나 상부를 신뢰하지 않고 따르지 않는 겁니다.”
 
  민 장군은 “미국의 경우 우리 기준으로 봤을 때 군인답지 않고 마치 민간인처럼 보인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만 미국 군인들은 중요한 상황이 되면 자기 책임과 권한을 정확히 인지하고 충실히 이행합니다. 상급자와 의견이 맞지 않으면 바른말을 하고 안 되면 사직도 불사합니다. 실제로 카터 대통령 시절, 중동 주둔 미군 철수 문제와 관련해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미군 사령관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을 때, 사령관이 ‘안 됩니다’라고 하며 이유를 들어 반대했습니다. 대통령은 그 사령관을 참모총장으로 임명하려 했지만 철회했죠. 다른 장군들에게도 물어보았지만 모두 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군이라면 과연 그렇게 했을까?
 
  “안타깝게도 현재로서는 그럴 만한 장군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작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별은 많은데 장군이 없다’고 했죠. 이 말을 하고 나서 많은 항의가 있으리라 예상했습니다. ‘당신만 장군이냐’ ‘어떻게 후배 장군들을 이렇게 무시하느냐’는 전화가 올 것으로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한 통의 항의 전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제 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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