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상이 20억 요구’ 김만배 목소리 文 정부 검찰은 못 듣고 尹 정부 검찰은 들었다!”
⊙ ‘대장동은 윤석열 게이트’ 주장 근거인 ‘커피’ 의혹은 가짜뉴스
⊙ 남욱 “정신없을 때 전화해 윤석열 커피 물어 생각 없이 답했더니 김씨 ‘그래 그럼 됐어’”
⊙ 남욱, 조우형과 대질 후 진술 수정… “윤석열 커피는 김만배의 일방적 주장”
⊙ “저는 윤석열 검사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대장동 대출 브로커’ 조우형)
⊙ 김만배는 왜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에게 ‘윤석열 커피’ 이야기한 뒤 남욱에게 전화해 원하는 답 유도했을까?
⊙ “영학이, 나중에 이재명 님 청와대 가면은” 김만배씨 발언, 정영학 녹취록서 빠져
⊙ ‘대장동은 윤석열 게이트’ 주장 근거인 ‘커피’ 의혹은 가짜뉴스
⊙ 남욱 “정신없을 때 전화해 윤석열 커피 물어 생각 없이 답했더니 김씨 ‘그래 그럼 됐어’”
⊙ 남욱, 조우형과 대질 후 진술 수정… “윤석열 커피는 김만배의 일방적 주장”
⊙ “저는 윤석열 검사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대장동 대출 브로커’ 조우형)
⊙ 김만배는 왜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에게 ‘윤석열 커피’ 이야기한 뒤 남욱에게 전화해 원하는 답 유도했을까?
⊙ “영학이, 나중에 이재명 님 청와대 가면은” 김만배씨 발언, 정영학 녹취록서 빠져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대장동은 윤석열 게이트’라고 주장하는 근거인 소위 ‘윤석열 커피’가 ‘가짜뉴스’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윤석열 커피’ 주장의 배후는 사실상 김만배씨였다는 것도 드러났다.
‘윤석열 커피’는 김만배씨가 2011년 박영수 변호사를 통해 당시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수사하던 윤석열 대검 중수2과장을 상대로 ‘대장동 대출 브로커’ 조우형씨 수사를 무마했다는 주장의 근간이다. 뿌리가 흔들린 만큼 김씨의 주장 자체가 성립하지 않게 된 것이다.
차근히 살펴보자.
‘윤석열 커피’ 관련 의혹은 JTBC 보도를 통해 촉발됐다. 근거는 대장동 사업에 천화동인 4호 소유주로 참여한 남욱 변호사의 검찰 진술이었다. JTBC는 2022년 2월 21일 남욱 변호사가 검찰에 진술한 내용이라며 ‘대장동 자금책’ 조모씨가 2011년 대검 중수부 조사를 받게 되자 김만배씨가 “커피 한 잔 마시고 오면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조씨가 2회 조사를 받고 나왔는데 실제로 주임 검사가 믹스커피를 타 줬다고 했고, 첫 조사와 달리 되게 잘해줬다고 말을 했다”는 남 변호사의 진술 내용도 덧붙였다. JTBC는 2011년 당시 주임 검사는 당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중수2과장)이었다고 전했다.
“尹 이야기, 김만배로부터 들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남 변호사의 관련 진술 내용을 그대로 공개한다.
○검찰 문: 김만배는 조우형의 수사를 어떻게 도와준 것인가요.
○남욱 답: 김만배는 조우형의 변호인으로 박영수 변호사를 소개시켜주었습니다. 그리고 김만배가 당시 중수부장이던 K 검사장에게 조우형이 사건에 협조할 테니 잘 좀 봐달라는 취지로 부탁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2011년 8월경 중수부장이 C로 바뀌었는데 C 중수부장에게도 같은 취지로 부탁했다고 했습니다.
○검찰 문: 김만배가 조우형으로부터 돈을 받았나요.
○남욱 답: 네, 변호사 소개비 등으로 15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검찰 문: 조우형이 실제로 검찰에 출석해서 조사를 받았나요.
○남욱 답: 네, 그렇습니다.
○검찰 문: 자세히 진술해보세요.
○남욱 답: 조우형이 2011. 2경 검찰에 처음 출석했을 때는 10시간 이상 조사를 받고 나왔고 그날 밤에 대법원 주차장에서 조우형을 만났는데 그날은 얼굴이 하얘져 가지고 사시나무 떨 듯이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첫 조사 전에 김만배에게는 부탁을 했었는데, 김만배가 아직 검찰에 이야기하지 않은 상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검찰 문: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나요.
○남욱 답: 제 기억으로는 일주일 안쪽으로 2회 조사가 있었는데, 저, 김만배, 조우형이 2회 조사 출석 전에 대법원 주차장에서 만났었습니다. 그때 김만배가 조우형에게 “오늘은 올라가면 커피 한 잔 마시고 오면 된다. 물어보는 질문에 다 협조하면 된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조우형이 검찰에 출석해서 2회(번째) 조사를 받고 나왔는데 실제로 주임검사가 조우형에게 커피를 타 줬다고 했고, 첫 조사와 달리 되게 잘해줬다고 말을 했습니다. 조우형도 당연히 수사에 협조했을 것입니다.
○검찰 문: 조우형을 처음 조사한 검사와 두 번째 조사한 검사가 달랐나요.
○남욱 답: 처음 조사한 검사와 두 번째 조사한 검사가 같은 사람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검찰 문: 처음 조사한 검사가 누구인가요.
○남욱 답: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납니다. ○형?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조우형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검찰 문: 두 번째 조사한 검사가 누구인가요.
○남욱 답: 윤석열 중수2과장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임검사가 믹스커피도 타 주었고 그날은 화기애애했다고 들었습니다.
○검찰 문: 조우형과 함께 출석한 변호인은 누구였나요.
○남욱 답: 박영수 변호사를 선임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검찰 문: 두 번째 조사한 검사가 윤석열 중수2과장이라는 것은 어떻게 알게 된 것인가요.
○남욱 답: 조우형이 두 번째 조사를 받고 나와서 주임검사가 커피를 타 줬다고 했었고, 그 사람이 윤석열 중수2과장이라는 것을 김만배로부터 들은 것 같습니다.
남욱 변호사의 진술을 요약하면 조우형에게 커피를 타 줬다는 검사가 윤석열 대통령이란 주장은 당사자인 조우형이 아닌 김만배로부터 나왔다. 남 변호사는 김씨에게 들은 말을 검찰에 진술한 것이다. 김씨는 조씨가 주임검사가 커피를 타 줬다고 하니, 윤석열 대통령이었거니 추측했을 가능성이 크다.
“당했다”
2022년 12월 13일 자정쯤 남욱 변호사의 집 앞에서 그를 만났다. 항상 모여 있던 기자들이 잠시 자리를 떠난 터였다. 커피 건에 관해 물었다. 남 변호사의 말이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김만배씨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갑자기 ‘그때 조우형 커피 타 준 게 윤석열 맞지?’라고 묻더군요. 그때 제가 경황이 없을 때였습니다. 미국 집 앞으로 기자들이 찾아오고, 한국 상황은 제가 주범인 것처럼 돼 있었고…. 그래서 별생각 없이 ‘네. 네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김만배씨가 조우형 수사에 도움을 줬다고 주장한 터라, 그의 말이 맞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죠. 김만배씨가 제 답을 듣더니 ‘그래 그럼 됐어’라고 하고 끊더군요. 귀국 후 검찰에서 묻기에 과거 김만배씨한테 들은 대로 답했는데, 언론에 보도된 후 난리가 나더군요.”
그가 말을 이었다.
“이쪽(민주당)은 맞다고 하고 저쪽(국민의힘)은 틀리다고 하니 ‘혹시 김만배씨가 나에게 거짓말을 했나’란 생각이 들더군요. 누가 커피를 타 줬는지는 조우형이 제일 잘 알 것 아닙니까. 그래서 조우형을 조사해보면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지 않겠냐고 검사님께 말씀드렸죠. 검찰이 조우형을 불러다 조사를 했는데 알고 보니, 커피 타 준 사람이 윤석열 대통령이 아니었더라고요. 미국에 있을 때 김만배씨한테 여러 번 전화가 왔었는데, 저한테 사실관계를 확인하다가 어느 순간 대응 방향을 잡기 시작한 것을 느끼고 전화를 끊었는데, 이 건은 제가 (김만배씨의) 전화를 차단하기 전에 당한 것이죠.”
김만배씨의 유도로 보일 수 있는 질문에 넘어가 ‘윤석열 커피’ 주장이 나오게 됐다는 것이다.
조우형, “윤석열 만난 적 없다”
2021년 11월 24일 검찰 조사 때 조우형(부산저축은행 브로커)은 이렇게 진술했다.
○검찰 문: 당시 대검찰청 중수부에 출석할 때 진술인이 만난 검사는 P 검사뿐인가요.
○조우형 답: 네, 그렇습니다.
○검찰 문: 당시 대검찰청 중수부에서 윤석열 중수과장을 만나거나 조사받은 적이 있는가요.
○조우형 답: 아니오. 없습니다. 저는 윤석열 검사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검찰 문: 위와 같이 진술인은 검찰 조사를 받은 후 남욱에게 그 사실을 얘기한 적이 있는가요.
○조우형 답: 그건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검찰 문: 당시 진술인은 남욱에게 ‘윤석열 중수과장이 커피를 타 주고 친절하게 조사를 해주었다’는 취지로 말한 적이 있는가요.
○조우형 답: 아니오. 없습니다. 그리고 저에 대한 조사가 완전히 끝난 후 한두 달 지나서 P 검사님이 저에게 ‘사건과 관련된 일은 아니고 간단히 물어볼 게 있으니 커피 한잔 마시러 와라’고 해서, 제가 혼자 대검 중수부에 잠시 들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검 중수부 조사실에서 P 검사님이 저에게 커피 한 잔을 주면서 부산저축은행 관계자들의 가족관계 등에 물어봤는데, 그에 대해 답변을 하고 귀가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커피라는 단어를 들으니 갑자기 위 기억이 났습니다.
○검찰 문: 김만배가 위 검찰 수사 과정에서 담당 검사와 접촉하거나 수사 진행 상황을 알아봐 주는 등 도움을 준 것이 있는가요.
○조우형 답: 아니오. 없습니다.
남욱, 조우형과 대질 후 검찰 진술서 변경
이후 검찰은 남욱 변호사를 불러 조우형씨와 대질신문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남 변호사는 진술서를 수정했다.
“윤석열 후보가 조우형에게 커피를 타 줬다는 진술은 김만배씨의 주장 때문에 나온 것이다. 조우형과의 대질을 통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는 친(親)문재인 정부 성향의 수사팀이 조사할 때다. 조씨가 거짓 진술을 하는 기미(幾微)가 보였다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윤석열 검사가 커피를 타 줬다는 이야기는 허위”라는 조씨의 진술을 사실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남욱 변호사는 “김만배씨는 모든 잘못을 나에게 떠넘기려 하고 있다”며 “내 진술의 신뢰성을 걸고넘어지는데, 이런 상황을 보면 누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으냐”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현재 김만배씨는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와 달리 아직 검찰 조사에 협조적이지 않다. 김씨가 입을 열면 ‘그분’의 실체는 명확해진다. 일각에서는 곧 김씨가 입을 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씨의 재산 은닉에 관여한 조력자들이 체포됐기 때문이다.
김만배 녹취의 진실
다시 커피 이야기로 돌아오면,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김만배씨가 남욱 변호사에게 ‘윤석열 대통령이 조우형에게 커피를 타 준 인물’이란 동의를 얻기 위해 전화를 건 시점이다. 남 변호사는 2021년 9월 19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미국에 있을 때 김씨가 전화를 걸어왔다고 했으니, 통화 시점은 이날 또는 이날 이후일 것이다.
20대 대선을 앞둔 2022년 3월 6일 ‘김만배 녹취’가 공개됐다. ‘뉴스타파’가 보도했는데, 이 녹취에 윤석열 대통령과 커피와 관련한 이야기가 나온다.
김씨는 ‘뉴스타파’와 용역 계약 관계인 신학림씨(전 언론노조 위원장)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시에 윤석열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과장, 그래서 박영수를 소개해줘 내가. 박영수가 (사건 관련) 진단을 하더니 나한테 ‘야, 그놈보고, 가서 덜덜덜덜 떨고 오니까, 커피 한 잔 마시고 오라 그래’. 윤석열이가 ‘니가 조우형이야?’” 이에 신씨는 “윤석열한테서? 윤석열이가 보냈단 말이야?”라고 한다.
두 사람이 이 대화를 한 시점은 2021년 9월 15일이다. 김만배씨와 신학림씨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난 며칠 뒤 김씨는 남욱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조우형에게 커피를 타 준 인물이 윤석열 대통령이란 자신이 원하는 답을 들은 셈이다.
남욱 변호사 측 관계자는 “녹취의 신뢰성이 의심받을 것을 우려, 남 변호사에게 유도신문을 한 것”이라며 “정말 사실을 알고 싶어 물어볼 마음이 있었다면 그런 말을 녹음하기 전에 묻는 게 상식 아닌가”라고 했다. 그는 “김씨가 자신의 말을 확인한 뒤 ‘그래 그럼 됐다’고 했다. 뭐가 됐다는 이야기인가. 자신의 공작이 성공했다는 이야기인가”라고 덧붙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통령이 돼야만 자신이 살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김씨가 윤 대통령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말이 담긴 녹음파일을 만들고, 그 녹취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남 변호사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윤석열, “전 그 사람 본 적 없다”
사실 이 김만배 녹취는 공개됐을 때부터 그 의도를 의심받아왔다. 녹음 시점이 대장동 의혹이 언론 보도를 통해 본격적으로 알려진 2021년 9월 15일인데다 녹음을 한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이 민주당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한 적이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녹취가 공개된 후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대표는 TV 토론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조우형에게 왜 커피를 타 줬나”라고 물었다.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였던 윤 대통령이 “전 그 사람 본 적 없다”고 반박하자 이 대표는 “아이고 참 희한하네”라고 했었다.
김만배씨는 미국에 있던 남욱 변호사가 그의 전화를 차단하기 전까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당시 대선 후보)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말을 바꾸도록 회유하기도 했다. 2021년 10월 12일 남 변호사는 미국 현지에서 JTBC와 화상 인터뷰를 하면서 ‘(대장동 사업에서) 명목상으로 드러나지 않는 실질 지분이 있나’라는 질문에 “이 부분의 진실은 유동규(전 성남도개공 본부장), 김만배 그들만이 알고 있을 것”이라며 “두 분이 진실을 밝혀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남씨는 이어 “(김씨가 평소에 유씨를) ‘그분’이라고 지칭한 기억은 없다”고 했다. 이에 따라 ‘그분’은 유동규씨의 윗선이라는 추측이 제기됐다.
이 인터뷰는 이재명 대표가 2021년 10월 10일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직후에 나온 것이다. 이 인터뷰가 보도된 뒤 김만배씨는 남 변호사에게 카카오톡 보이스톡으로 전화를 걸어 ‘우리는 이재명 (성남)시장과 한배를 탔는데 네가 그렇게 언론 인터뷰를 해버리면 어떡하느냐’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親文 수사팀의 침묵
김만배씨의 ‘윤석열 대통령 커피’ 발언이 사실상 거짓, 공작이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검찰은 지난 2011년 박영수 변호사를 통해 당시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수사하던 윤석열 대검 중수2과장을 상대로 ‘대장동 대출 브로커’ 조우형씨 수사를 무마했다는 김만배씨의 주장 또한 허위로 결론 내렸다. 이 결론은 친문재인 정부 성향 수사팀이 내린 것이다.
친문재인 정부 성향 수사팀은 2021년 말 ‘윤석열 커피’ 이야기는 가짜라 결론을 냈음에도 대선 기간 윤 대통령이 이런 의혹에 휩싸였을 때 침묵했다. 국민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게, 아닌 것은 아니라고 했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선에 영향을 미치란 이야기가 아니라, 뉴스타파 등 언론이 이 의혹을 제기했을 때 이는 사실이 아니란 이야기가 검찰의 공식 루트를 통해 나왔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문재인 정권 검찰이 지난해 대장동 사건을 수사하면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봐주려 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은 한두 개가 아니다. 문재인 정권의 검찰이 대장동 수사 초반부터 실무진 몇 명 선에서 꼬리 자르기를 한다는 결론부터 내려놓고, 이 대표와 관련한 혐의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은폐한 것으로 보이는 증거들이 속속 나오는 것이다.
왜 文 정부 검찰은 못 찾아냈을까?
기자의 취재에 따르면 고의성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문재인 정권 검찰이 대장동 사건의 핵심 증거로 삼았던 ‘정영학(회계사) 녹취록’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타격을 입힐 만한 내용은 삭제돼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녹취’에는 있는데, ‘녹취록’에는 담기지 않은 내용이 있다는 이야기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인 천화동인 5호 소유주 정영학 회계사는 2021년 9월 26일 검찰에 자진 출석하면서 본인이 갖고 있던 ‘녹취(녹음기 3대)’ ‘USB 1개(녹음기에 담긴 녹음파일과 같은 파일 저장)’와 ‘녹취록(녹음파일 전체를 속기) 6권’을 제출했다.
당시 소위 친문재인 성향 검찰은 정 회계사가 제출한 녹취록과는 별도로 속기사가 녹음파일을 듣고 작업해 ‘녹취서’를 만들었다. 이는 당연하다. 정영학 회계사가 자신에게 불리한 부분은 빼고 녹취록을 작성했을 수 있어서다. 검찰은 자신들이 직접 듣고 작성한 ‘녹취서’를 재판 초창기 김만배, 남욱 등 피고인들에게 복사해 줬다. 기자는 이 ‘녹취서’와 정영학 회계사가 제출한 ‘녹취록’ 일체를 입수해 분석했다.
이 두 자료에서는 김만배씨가 정 회계사에게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인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구속)이 자신에게 20억원(이 대표의 선거 자금 명목)을 요구하고 있는데, 자신이 돈이 없다고 말한 내용이 없다.
그런데 대장동 사건을 맡은 윤석열 정부 검찰은 열흘 가까이 밤을 새워가며 ‘정영학 녹음파일’을 여러 번 자세히 들어본 결과 2021년 1월 24~26일 녹취서 김만배씨가 정영학 회계사에게 “정진상이 20억원을 요구하는 데 지금 당장 돈이 없다”고 말한 것을 찾아냈다. 문재인 정부 검찰이 일부러 듣지 않으려 했거나, 실제 듣지 못했을 수 있는 내용을 윤석열 검찰은 들은 것이다.
“이재명 후보가 될 줄 알았다”
정영학 회계사는 김만배씨가 자신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정진상이 20억원을 요구하는 데 지금 당장 돈이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 내용은 상당히 중요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최측근인 정진상 전 실장,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두 사람이 구속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정 전 실장은 김만배씨가 20억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이 양반 미쳤구만”이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김만배씨가 끝내 “대선을 앞두고 현금화가 어렵다”며 돈을 주지 않자 정 전 실장, 김용 전 부원장과 ‘의형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진 유동규 전 본부장은 남욱 변호사에게 ‘20억원’을 대신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남 변호사는 “2021년 2월 즈음 유동규씨가 나를 찾아와 경선자금 20억원을 해달라고 했다. 자신이 ‘김용 전 부원장에게 위험한 돈 쓰지 말라고 했다. 남욱에게 부탁하겠다 했으니 내 얼굴을 봐서 돈을 해달라’고 말했다”고 했다.
남욱 변호사는 “20억원은 어려울 것 같지만 도와주겠다”고 유동규 전 본부장에게 말했고, 이후 본인 사업체에서 마련한 2억원과 지인에게 차용증까지 쓰고 빌린 돈 9억원 등 11억원을 준비했다.
남 변호사는 11억 중 8억4700만원을 2021년 4~8월 사이 총 4회에 걸쳐 유동규 전 본부장 등을 통해 김용 전 부원장에게 전달했다. 남 변호사는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될 줄 알았다” “대선 후보에게 20억원으로 줄을 댄다면 싸게 먹히는 거라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정진상 혐의 뒷받침하는 증거
검찰은 자금 중 2억4700만원은 전달되지 않아 김 전 부원장이 실제 받은 돈은 6억여 원이라고 보고 있다. 김 전 부원장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김용 전 부원장은 2022년 12월 7일 옥중 서신을 통해 “군사 작전하듯 체포와 구금, 조사·구속이 3일 만에 이뤄지는 데는 이재명 죽이기와 야당 파괴라는 정치 검찰의 목표가 있음을 금방 알 수 있었다”며 “검찰 정권 의도대로 당이 흔들리지 않도록 동지들과 당을 지키는 데 주력해달라”고 주장했다.
부탁한 사람, 돈을 만든 사람, 준 사람, 전달한 사람은 모두 시인하는데, 받았다는 사람만 부인하는 만큼 김 전 부원장의 주장이 얼마나 신뢰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진상 전 실장은 대장동 일당 등으로부터 뇌물 1억4000만원을 수수한 혐의와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 및 유동규 전 성남도개공 본부장과 함께 김만배씨(화천대유 대주주)에게서 428억원의 개발 이익을 약속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정 전 실장의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 중 하나가 정영학 녹취 속 숨겨져 있었던 “정진상이 20억원을 요구하는데 지금 당장 돈이 없다”는 김만배씨의 발언이라고 한다.
김만배, “이재명 님”이라고 호칭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2011년 11월 2일 곽상도 전 국회의원 재판에서 ‘대장동 의혹’의 핵심인 김만배씨가 2020년 3월 정영학 회계사(대장동 개발 사업 실질적 설계자이자 천화동인 5호 소유주)에게 “영학이, 나중에 이재명 님 청와대 가면은”이라고 말한 녹취록이 공개됐다. 이 녹취는 2020년 3월 24일에 된 것이었다. 그런데 정 회계사가 제출한 녹취록과 이와 별개로 문재인 정권 검찰이 녹음파일을 듣고 만든 ‘녹취서’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 ‘청와대 얘기’ 중략이라고만 적혀 있다.
“영학이, 나중에 이재명 님 청와대 가면은”이란 김만배씨의 발언은 굉장히 의미가 있다.
녹취록을 보면 김씨가 존대하는 인물은 많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도 ‘윤석열’이라고 한다. 특이한 존대법의 김만배씨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해서는 ‘이재명 님’이라고 했다.
대선 기간 녹취록 내용이 대부분 공개되는 상황에서 김씨의 이 발언이 알려졌다면 이 대표에게 타격이 있었을 것이다. 당시 최대 이슈는 그분의 정체였기 때문이다.⊙
‘윤석열 커피’는 김만배씨가 2011년 박영수 변호사를 통해 당시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수사하던 윤석열 대검 중수2과장을 상대로 ‘대장동 대출 브로커’ 조우형씨 수사를 무마했다는 주장의 근간이다. 뿌리가 흔들린 만큼 김씨의 주장 자체가 성립하지 않게 된 것이다.
차근히 살펴보자.
‘윤석열 커피’ 관련 의혹은 JTBC 보도를 통해 촉발됐다. 근거는 대장동 사업에 천화동인 4호 소유주로 참여한 남욱 변호사의 검찰 진술이었다. JTBC는 2022년 2월 21일 남욱 변호사가 검찰에 진술한 내용이라며 ‘대장동 자금책’ 조모씨가 2011년 대검 중수부 조사를 받게 되자 김만배씨가 “커피 한 잔 마시고 오면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조씨가 2회 조사를 받고 나왔는데 실제로 주임 검사가 믹스커피를 타 줬다고 했고, 첫 조사와 달리 되게 잘해줬다고 말을 했다”는 남 변호사의 진술 내용도 덧붙였다. JTBC는 2011년 당시 주임 검사는 당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중수2과장)이었다고 전했다.
“尹 이야기, 김만배로부터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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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욱 변호사는 2021년 조우형씨와의 대질 후 “윤석열 후보가 조우형에게 커피를 타 줬다는 진술은 김만배씨의 주장 때문에 나온 것이다. 조우형과의 대질을 통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고 진술서를 수정했다. 사진=조선DB |
○검찰 문: 김만배는 조우형의 수사를 어떻게 도와준 것인가요.
○남욱 답: 김만배는 조우형의 변호인으로 박영수 변호사를 소개시켜주었습니다. 그리고 김만배가 당시 중수부장이던 K 검사장에게 조우형이 사건에 협조할 테니 잘 좀 봐달라는 취지로 부탁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2011년 8월경 중수부장이 C로 바뀌었는데 C 중수부장에게도 같은 취지로 부탁했다고 했습니다.
○검찰 문: 김만배가 조우형으로부터 돈을 받았나요.
○남욱 답: 네, 변호사 소개비 등으로 15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검찰 문: 조우형이 실제로 검찰에 출석해서 조사를 받았나요.
○남욱 답: 네, 그렇습니다.
○검찰 문: 자세히 진술해보세요.
○남욱 답: 조우형이 2011. 2경 검찰에 처음 출석했을 때는 10시간 이상 조사를 받고 나왔고 그날 밤에 대법원 주차장에서 조우형을 만났는데 그날은 얼굴이 하얘져 가지고 사시나무 떨 듯이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첫 조사 전에 김만배에게는 부탁을 했었는데, 김만배가 아직 검찰에 이야기하지 않은 상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검찰 문: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나요.
○남욱 답: 제 기억으로는 일주일 안쪽으로 2회 조사가 있었는데, 저, 김만배, 조우형이 2회 조사 출석 전에 대법원 주차장에서 만났었습니다. 그때 김만배가 조우형에게 “오늘은 올라가면 커피 한 잔 마시고 오면 된다. 물어보는 질문에 다 협조하면 된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조우형이 검찰에 출석해서 2회(번째) 조사를 받고 나왔는데 실제로 주임검사가 조우형에게 커피를 타 줬다고 했고, 첫 조사와 달리 되게 잘해줬다고 말을 했습니다. 조우형도 당연히 수사에 협조했을 것입니다.
○검찰 문: 조우형을 처음 조사한 검사와 두 번째 조사한 검사가 달랐나요.
○남욱 답: 처음 조사한 검사와 두 번째 조사한 검사가 같은 사람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검찰 문: 처음 조사한 검사가 누구인가요.
○남욱 답: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납니다. ○형?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조우형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검찰 문: 두 번째 조사한 검사가 누구인가요.
○남욱 답: 윤석열 중수2과장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임검사가 믹스커피도 타 주었고 그날은 화기애애했다고 들었습니다.
○검찰 문: 조우형과 함께 출석한 변호인은 누구였나요.
○남욱 답: 박영수 변호사를 선임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검찰 문: 두 번째 조사한 검사가 윤석열 중수2과장이라는 것은 어떻게 알게 된 것인가요.
○남욱 답: 조우형이 두 번째 조사를 받고 나와서 주임검사가 커피를 타 줬다고 했었고, 그 사람이 윤석열 중수2과장이라는 것을 김만배로부터 들은 것 같습니다.
남욱 변호사의 진술을 요약하면 조우형에게 커피를 타 줬다는 검사가 윤석열 대통령이란 주장은 당사자인 조우형이 아닌 김만배로부터 나왔다. 남 변호사는 김씨에게 들은 말을 검찰에 진술한 것이다. 김씨는 조씨가 주임검사가 커피를 타 줬다고 하니, 윤석열 대통령이었거니 추측했을 가능성이 크다.
“당했다”
2022년 12월 13일 자정쯤 남욱 변호사의 집 앞에서 그를 만났다. 항상 모여 있던 기자들이 잠시 자리를 떠난 터였다. 커피 건에 관해 물었다. 남 변호사의 말이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김만배씨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갑자기 ‘그때 조우형 커피 타 준 게 윤석열 맞지?’라고 묻더군요. 그때 제가 경황이 없을 때였습니다. 미국 집 앞으로 기자들이 찾아오고, 한국 상황은 제가 주범인 것처럼 돼 있었고…. 그래서 별생각 없이 ‘네. 네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김만배씨가 조우형 수사에 도움을 줬다고 주장한 터라, 그의 말이 맞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죠. 김만배씨가 제 답을 듣더니 ‘그래 그럼 됐어’라고 하고 끊더군요. 귀국 후 검찰에서 묻기에 과거 김만배씨한테 들은 대로 답했는데, 언론에 보도된 후 난리가 나더군요.”
그가 말을 이었다.
“이쪽(민주당)은 맞다고 하고 저쪽(국민의힘)은 틀리다고 하니 ‘혹시 김만배씨가 나에게 거짓말을 했나’란 생각이 들더군요. 누가 커피를 타 줬는지는 조우형이 제일 잘 알 것 아닙니까. 그래서 조우형을 조사해보면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지 않겠냐고 검사님께 말씀드렸죠. 검찰이 조우형을 불러다 조사를 했는데 알고 보니, 커피 타 준 사람이 윤석열 대통령이 아니었더라고요. 미국에 있을 때 김만배씨한테 여러 번 전화가 왔었는데, 저한테 사실관계를 확인하다가 어느 순간 대응 방향을 잡기 시작한 것을 느끼고 전화를 끊었는데, 이 건은 제가 (김만배씨의) 전화를 차단하기 전에 당한 것이죠.”
김만배씨의 유도로 보일 수 있는 질문에 넘어가 ‘윤석열 커피’ 주장이 나오게 됐다는 것이다.
조우형, “윤석열 만난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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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24일 검찰 조사를 받은 조우형(부산저축은행 브로커)씨의 진술조서 일부. 사진=월간조선 |
○검찰 문: 당시 대검찰청 중수부에 출석할 때 진술인이 만난 검사는 P 검사뿐인가요.
○조우형 답: 네, 그렇습니다.
○검찰 문: 당시 대검찰청 중수부에서 윤석열 중수과장을 만나거나 조사받은 적이 있는가요.
○조우형 답: 아니오. 없습니다. 저는 윤석열 검사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검찰 문: 위와 같이 진술인은 검찰 조사를 받은 후 남욱에게 그 사실을 얘기한 적이 있는가요.
○조우형 답: 그건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검찰 문: 당시 진술인은 남욱에게 ‘윤석열 중수과장이 커피를 타 주고 친절하게 조사를 해주었다’는 취지로 말한 적이 있는가요.
○조우형 답: 아니오. 없습니다. 그리고 저에 대한 조사가 완전히 끝난 후 한두 달 지나서 P 검사님이 저에게 ‘사건과 관련된 일은 아니고 간단히 물어볼 게 있으니 커피 한잔 마시러 와라’고 해서, 제가 혼자 대검 중수부에 잠시 들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검 중수부 조사실에서 P 검사님이 저에게 커피 한 잔을 주면서 부산저축은행 관계자들의 가족관계 등에 물어봤는데, 그에 대해 답변을 하고 귀가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커피라는 단어를 들으니 갑자기 위 기억이 났습니다.
○검찰 문: 김만배가 위 검찰 수사 과정에서 담당 검사와 접촉하거나 수사 진행 상황을 알아봐 주는 등 도움을 준 것이 있는가요.
○조우형 답: 아니오.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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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욱 변호사는 소위 윤석열 커피 발언에 대해 “과거 김만배씨한테 들은 대로 답했던 것”이라고 했다. 사진은 김만배씨. 사진=조선DB |
“윤석열 후보가 조우형에게 커피를 타 줬다는 진술은 김만배씨의 주장 때문에 나온 것이다. 조우형과의 대질을 통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는 친(親)문재인 정부 성향의 수사팀이 조사할 때다. 조씨가 거짓 진술을 하는 기미(幾微)가 보였다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윤석열 검사가 커피를 타 줬다는 이야기는 허위”라는 조씨의 진술을 사실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남욱 변호사는 “김만배씨는 모든 잘못을 나에게 떠넘기려 하고 있다”며 “내 진술의 신뢰성을 걸고넘어지는데, 이런 상황을 보면 누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으냐”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현재 김만배씨는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와 달리 아직 검찰 조사에 협조적이지 않다. 김씨가 입을 열면 ‘그분’의 실체는 명확해진다. 일각에서는 곧 김씨가 입을 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씨의 재산 은닉에 관여한 조력자들이 체포됐기 때문이다.
김만배 녹취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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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는 지난 2022년 3월 6일 오후 김만배씨와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뉴스타파 전문위원)이 2021년 9월 15일 나눈 대화 녹취를 보도했다. 김씨는 신씨와의 대화 며칠 뒤 남욱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얻고 싶은 답을 유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진=유튜브 캡처 |
20대 대선을 앞둔 2022년 3월 6일 ‘김만배 녹취’가 공개됐다. ‘뉴스타파’가 보도했는데, 이 녹취에 윤석열 대통령과 커피와 관련한 이야기가 나온다.
김씨는 ‘뉴스타파’와 용역 계약 관계인 신학림씨(전 언론노조 위원장)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시에 윤석열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과장, 그래서 박영수를 소개해줘 내가. 박영수가 (사건 관련) 진단을 하더니 나한테 ‘야, 그놈보고, 가서 덜덜덜덜 떨고 오니까, 커피 한 잔 마시고 오라 그래’. 윤석열이가 ‘니가 조우형이야?’” 이에 신씨는 “윤석열한테서? 윤석열이가 보냈단 말이야?”라고 한다.
두 사람이 이 대화를 한 시점은 2021년 9월 15일이다. 김만배씨와 신학림씨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난 며칠 뒤 김씨는 남욱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조우형에게 커피를 타 준 인물이 윤석열 대통령이란 자신이 원하는 답을 들은 셈이다.
남욱 변호사 측 관계자는 “녹취의 신뢰성이 의심받을 것을 우려, 남 변호사에게 유도신문을 한 것”이라며 “정말 사실을 알고 싶어 물어볼 마음이 있었다면 그런 말을 녹음하기 전에 묻는 게 상식 아닌가”라고 했다. 그는 “김씨가 자신의 말을 확인한 뒤 ‘그래 그럼 됐다’고 했다. 뭐가 됐다는 이야기인가. 자신의 공작이 성공했다는 이야기인가”라고 덧붙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통령이 돼야만 자신이 살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김씨가 윤 대통령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말이 담긴 녹음파일을 만들고, 그 녹취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남 변호사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 김만배 녹취는 공개됐을 때부터 그 의도를 의심받아왔다. 녹음 시점이 대장동 의혹이 언론 보도를 통해 본격적으로 알려진 2021년 9월 15일인데다 녹음을 한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이 민주당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한 적이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녹취가 공개된 후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대표는 TV 토론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조우형에게 왜 커피를 타 줬나”라고 물었다.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였던 윤 대통령이 “전 그 사람 본 적 없다”고 반박하자 이 대표는 “아이고 참 희한하네”라고 했었다.
김만배씨는 미국에 있던 남욱 변호사가 그의 전화를 차단하기 전까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당시 대선 후보)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말을 바꾸도록 회유하기도 했다. 2021년 10월 12일 남 변호사는 미국 현지에서 JTBC와 화상 인터뷰를 하면서 ‘(대장동 사업에서) 명목상으로 드러나지 않는 실질 지분이 있나’라는 질문에 “이 부분의 진실은 유동규(전 성남도개공 본부장), 김만배 그들만이 알고 있을 것”이라며 “두 분이 진실을 밝혀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남씨는 이어 “(김씨가 평소에 유씨를) ‘그분’이라고 지칭한 기억은 없다”고 했다. 이에 따라 ‘그분’은 유동규씨의 윗선이라는 추측이 제기됐다.
이 인터뷰는 이재명 대표가 2021년 10월 10일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직후에 나온 것이다. 이 인터뷰가 보도된 뒤 김만배씨는 남 변호사에게 카카오톡 보이스톡으로 전화를 걸어 ‘우리는 이재명 (성남)시장과 한배를 탔는데 네가 그렇게 언론 인터뷰를 해버리면 어떡하느냐’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親文 수사팀의 침묵
김만배씨의 ‘윤석열 대통령 커피’ 발언이 사실상 거짓, 공작이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검찰은 지난 2011년 박영수 변호사를 통해 당시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수사하던 윤석열 대검 중수2과장을 상대로 ‘대장동 대출 브로커’ 조우형씨 수사를 무마했다는 김만배씨의 주장 또한 허위로 결론 내렸다. 이 결론은 친문재인 정부 성향 수사팀이 내린 것이다.
친문재인 정부 성향 수사팀은 2021년 말 ‘윤석열 커피’ 이야기는 가짜라 결론을 냈음에도 대선 기간 윤 대통령이 이런 의혹에 휩싸였을 때 침묵했다. 국민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게, 아닌 것은 아니라고 했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선에 영향을 미치란 이야기가 아니라, 뉴스타파 등 언론이 이 의혹을 제기했을 때 이는 사실이 아니란 이야기가 검찰의 공식 루트를 통해 나왔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문재인 정권 검찰이 지난해 대장동 사건을 수사하면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봐주려 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은 한두 개가 아니다. 문재인 정권의 검찰이 대장동 수사 초반부터 실무진 몇 명 선에서 꼬리 자르기를 한다는 결론부터 내려놓고, 이 대표와 관련한 혐의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은폐한 것으로 보이는 증거들이 속속 나오는 것이다.
왜 文 정부 검찰은 못 찾아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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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상이 20억 요구’ 김만배 목소리를 문재인 정부 검찰은 못 듣고 윤석열 정부 검찰은 들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정진상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실 정책조정실장. 사진=뉴시스 |
‘녹취’에는 있는데, ‘녹취록’에는 담기지 않은 내용이 있다는 이야기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인 천화동인 5호 소유주 정영학 회계사는 2021년 9월 26일 검찰에 자진 출석하면서 본인이 갖고 있던 ‘녹취(녹음기 3대)’ ‘USB 1개(녹음기에 담긴 녹음파일과 같은 파일 저장)’와 ‘녹취록(녹음파일 전체를 속기) 6권’을 제출했다.
당시 소위 친문재인 성향 검찰은 정 회계사가 제출한 녹취록과는 별도로 속기사가 녹음파일을 듣고 작업해 ‘녹취서’를 만들었다. 이는 당연하다. 정영학 회계사가 자신에게 불리한 부분은 빼고 녹취록을 작성했을 수 있어서다. 검찰은 자신들이 직접 듣고 작성한 ‘녹취서’를 재판 초창기 김만배, 남욱 등 피고인들에게 복사해 줬다. 기자는 이 ‘녹취서’와 정영학 회계사가 제출한 ‘녹취록’ 일체를 입수해 분석했다.
이 두 자료에서는 김만배씨가 정 회계사에게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인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구속)이 자신에게 20억원(이 대표의 선거 자금 명목)을 요구하고 있는데, 자신이 돈이 없다고 말한 내용이 없다.
그런데 대장동 사건을 맡은 윤석열 정부 검찰은 열흘 가까이 밤을 새워가며 ‘정영학 녹음파일’을 여러 번 자세히 들어본 결과 2021년 1월 24~26일 녹취서 김만배씨가 정영학 회계사에게 “정진상이 20억원을 요구하는 데 지금 당장 돈이 없다”고 말한 것을 찾아냈다. 문재인 정부 검찰이 일부러 듣지 않으려 했거나, 실제 듣지 못했을 수 있는 내용을 윤석열 검찰은 들은 것이다.
“이재명 후보가 될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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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학 녹취록’에는 공교롭게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불리할 수 있는 내용이 빠진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조선DB |
김만배씨가 끝내 “대선을 앞두고 현금화가 어렵다”며 돈을 주지 않자 정 전 실장, 김용 전 부원장과 ‘의형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진 유동규 전 본부장은 남욱 변호사에게 ‘20억원’을 대신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남 변호사는 “2021년 2월 즈음 유동규씨가 나를 찾아와 경선자금 20억원을 해달라고 했다. 자신이 ‘김용 전 부원장에게 위험한 돈 쓰지 말라고 했다. 남욱에게 부탁하겠다 했으니 내 얼굴을 봐서 돈을 해달라’고 말했다”고 했다.
남욱 변호사는 “20억원은 어려울 것 같지만 도와주겠다”고 유동규 전 본부장에게 말했고, 이후 본인 사업체에서 마련한 2억원과 지인에게 차용증까지 쓰고 빌린 돈 9억원 등 11억원을 준비했다.
남 변호사는 11억 중 8억4700만원을 2021년 4~8월 사이 총 4회에 걸쳐 유동규 전 본부장 등을 통해 김용 전 부원장에게 전달했다. 남 변호사는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될 줄 알았다” “대선 후보에게 20억원으로 줄을 댄다면 싸게 먹히는 거라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정진상 혐의 뒷받침하는 증거
검찰은 자금 중 2억4700만원은 전달되지 않아 김 전 부원장이 실제 받은 돈은 6억여 원이라고 보고 있다. 김 전 부원장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김용 전 부원장은 2022년 12월 7일 옥중 서신을 통해 “군사 작전하듯 체포와 구금, 조사·구속이 3일 만에 이뤄지는 데는 이재명 죽이기와 야당 파괴라는 정치 검찰의 목표가 있음을 금방 알 수 있었다”며 “검찰 정권 의도대로 당이 흔들리지 않도록 동지들과 당을 지키는 데 주력해달라”고 주장했다.
부탁한 사람, 돈을 만든 사람, 준 사람, 전달한 사람은 모두 시인하는데, 받았다는 사람만 부인하는 만큼 김 전 부원장의 주장이 얼마나 신뢰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진상 전 실장은 대장동 일당 등으로부터 뇌물 1억4000만원을 수수한 혐의와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 및 유동규 전 성남도개공 본부장과 함께 김만배씨(화천대유 대주주)에게서 428억원의 개발 이익을 약속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정 전 실장의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 중 하나가 정영학 녹취 속 숨겨져 있었던 “정진상이 20억원을 요구하는데 지금 당장 돈이 없다”는 김만배씨의 발언이라고 한다.
김만배, “이재명 님”이라고 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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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24일 자 정영학 녹취록. “영학이, 나중에 이재명 님 청와대 가면은”이란 김만배씨의 발언이 청와대 얘기로만 적혀 있다. 사진=월간조선 |
2011년 11월 2일 곽상도 전 국회의원 재판에서 ‘대장동 의혹’의 핵심인 김만배씨가 2020년 3월 정영학 회계사(대장동 개발 사업 실질적 설계자이자 천화동인 5호 소유주)에게 “영학이, 나중에 이재명 님 청와대 가면은”이라고 말한 녹취록이 공개됐다. 이 녹취는 2020년 3월 24일에 된 것이었다. 그런데 정 회계사가 제출한 녹취록과 이와 별개로 문재인 정권 검찰이 녹음파일을 듣고 만든 ‘녹취서’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 ‘청와대 얘기’ 중략이라고만 적혀 있다.
“영학이, 나중에 이재명 님 청와대 가면은”이란 김만배씨의 발언은 굉장히 의미가 있다.
녹취록을 보면 김씨가 존대하는 인물은 많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도 ‘윤석열’이라고 한다. 특이한 존대법의 김만배씨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해서는 ‘이재명 님’이라고 했다.
대선 기간 녹취록 내용이 대부분 공개되는 상황에서 김씨의 이 발언이 알려졌다면 이 대표에게 타격이 있었을 것이다. 당시 최대 이슈는 그분의 정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