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4~5시까지 역사·진화론·우주 관련 책 탐독하는 개그맨 이윤석,
과학을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는 인포테이너가 꿈
⊙ “진보는 되기 쉽다. 남을 비판하는 건 쉽지 않나.
우리 사회는 정의감과 개인적인 울화가 구분이 잘 안되는 것 같다”
李胤錫
⊙ 43세.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중앙대 언론학 박사.
⊙ 1993년 MBC 개그콘테스트에서 금상 받으며 개그맨 데뷔. 〈오늘은 좋은 날〉
〈일요일 일요일밤에-대단한 도전〉 〈남자의 자격〉 등 출연.
현재 〈역사저널 그날〉 〈썰전〉 〈복면가왕〉 등 출연 중.
⊙ 경기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서울예술전문학교 학부장 역임. 《웃음의 과학》 펴냄.
과학을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는 인포테이너가 꿈
⊙ “진보는 되기 쉽다. 남을 비판하는 건 쉽지 않나.
우리 사회는 정의감과 개인적인 울화가 구분이 잘 안되는 것 같다”
李胤錫
⊙ 43세.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중앙대 언론학 박사.
⊙ 1993년 MBC 개그콘테스트에서 금상 받으며 개그맨 데뷔. 〈오늘은 좋은 날〉
〈일요일 일요일밤에-대단한 도전〉 〈남자의 자격〉 등 출연.
현재 〈역사저널 그날〉 〈썰전〉 〈복면가왕〉 등 출연 중.
⊙ 경기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서울예술전문학교 학부장 역임. 《웃음의 과학》 펴냄.

- 이윤석의 서가는 본 중 드물게 소설책이 거의 없는 서가였다. 인문과학이나 자연과학 서적으로 채워져 있었다.
독서량 가장 많은 연예인
이윤석이 쓴 책 《웃음의 과학》을 읽으며 문득 든 생각도 ‘그렇게 깊은 뜻이’였다. 웃음에 그렇게 깊은 의미가 있다니. 연예인이 썼다고 해서 왠지 만만하게 생각하며 펴든 책이 첫장부터 심상치 않았다. ‘이 책을 읽는 친애하는 독자들이여, 모든 정념을 떨쳐 버리시오. / 눈물보다는 웃음에 관하여 쓰는 편이 나은 법이라오. 웃음이 인간의 본성일지니’라는, 프랑수와 라블레의 풍자소설 《가르강튀아-팡타그뤼엘》에서 빌려온 구절로 대신한 발문부터 본문 곳곳에 등장하는 참고서적의 다양함은 이윤석이라는 개그맨을 다시 보게 했다.
책 많이 읽는 연예인으로 추천은 받았지만 이윤석을 인터뷰하기 전,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 방송사 PD와 방송 작가들에게 전화를 돌려 봤다. “연예인 중 가장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대번에 “이윤석”이라고 했다. 한때 대학교수도 역임했던 박사 개그맨이자, 〈역사저널 그날〉 〈썰전〉 등 지식과 분석이 필요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 중이라 후광 효과를 누리고 있는 건 아닐까, 자문하며 서울 은평뉴타운에 있는 그의 집에 들어섰다.
새로 이사온 지 한 달가량 됐다는 그의 아파트는 상당히 깔끔했다. 소파나 텔레비전 등 기본적인 가구 외에는 별다른 장식품 없이 심플하게 꾸민 집이었다. “사진 촬영을 한다니 집사람이 집을 지나치게 깨끗하게 치워 놨다”고 투덜대며 이윤석은 뒤통수를 긁적댔다.
문간에 있는 그의 서재에 들어섰다. 가운데에는 널찍한 책상과 의자가 놓여있다. 책상 위에는 컴퓨터 모니터 두 대와 몇 권의 책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양쪽 벽은 책장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책의 종류가 몇 가지 분야에 편중되어 있다. 리처드 도킨스의 진화론 관련 책부터 《우주의 구조》 같은 우주 관련 책까지 인문과학 분야의 책이 대부분이었다. “소설이나 에세이 같은 책이 별로 안 보인다”고 하자, “소설을 별로 안 좋아한다”고 했다.
“소설은 잘 안 읽게 되더라고요. 진리나 진실에 집착하는 증세가 있는 것 같아요. 만들어 놓은 가짜 얘기를 보면 조급증이 나요. 사람들이 꿰어 맞춘 느낌이 있잖아요. 세상에 아부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역사를 돌아보면, 매끈하게 모든 게 완벽하게 진행되지 않잖아요. 군데군데 구멍이 많고, 이유를 모르는 부분이 많지요. 소설은 틈이 없이 모든 게 착착 진행되죠. 현실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잖아요.”
—예전에도 소설을 잘 안 읽었나요.
“대학교 때도 쇼펜하우어, 니체 이런 책밖에 안 읽었어요. 학교 다닐 때 제 별명이 ‘슬픈 윤발이’였어요. 제가 영웅본색(배우 주윤발이 출연한 영화) 흉내를 내고 다녔거든요. 술 한잔 마시면 웃긴데, 평소에는 침울하고 고개 푹 숙이고 다닌다고 붙은 별명이었어요. 항상 죽음에 대해서 고민하기도 했고요.”
—염세주의 철학을 담은 책의 영향을 많이 받았나 봐요.
“그런 편이에요. 전반적으로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책을 꼽자면, 딱 한 권만 말하기는 어렵고 리처드 도킨스류의 책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최재천, 장대익 이런 분들이 쓰신 책도 많이 읽었고요. 진화론에 관한 분야이지요. 저의 주요 관심사가 항상 그런 부분이었어요. 실용적인 인간이 못 되고 추상적으로 뜬구름 잡는 성향이 있어서 그런지 종교 같은 분야에 관심이 많았어요. 죽음을 매일 생각했어요.
종교를 갖고 있는 분들을 보면 부러웠어요. 저도 믿고는 싶은데 믿어지진 않고 괴로워요. ‘아 영원한 생명이 보장된다니, 저들은 얼마나 인생이 밝을까. 나도 믿고 싶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믿어지지가 않아요. 고민하던 차에 진화론을 읽었어요. 내가 더 행복할 수도 있겠구나, 이게 더 진리에 가까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믿으면 모든 게 해결되리라 하는데, 믿어지지가 않으니까. 진화론은 그래도 납득이 가는 얘기를 하잖아요. 저에게는 더 감동적이기도 해요. 우연히 생명이 이어져 나에게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에….”
“지어낸 가짜 얘기엔 조급증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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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뷔 동기 서경석과 콤비로 활동하던 시기의 이윤석. |
“네. 《웃음의 과학》은 개그맨들한테는 반응이 별로 안좋았어요. 억지로 읽고 난 후에 욕하더라고요. 이런 책 왜 쓰냐고. 다음 책을 또 쓸 생각이 있긴 해요. 과학 이론이나 과학적인 지식을 쉽게 소개하는 책에 관심이 있어요. 제의를 받기도 했고요. 그런데 책을 쓰는 게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쓰는 동안엔 다른 책을 못 읽어요. 사실 저는 쓰는 것보다 읽는 게 더 재미있어요. 읽을 책이 너무 많아서 책을 쓸 시간이 없어요. 책을 쓰니까 좋은 점은 쓰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거예요. 독서에 대한 강박증이 있어요. 일종의 활자중독이지요.”
—연예인은 생활이 불규칙할 것 같은데, 언제 주로 책을 읽나요.
“틈날 때면 항상 책을 읽는다고 보면 되죠. 책을 동시에 6권 정도 돌려 읽어요. 이거 읽다가 좀 지루해지면 다른 책 보다가 다시 돌아오는 식으로요. 사실 생각은 프로그램 하러 가서 대기실에서도 읽고 싶은데, 그게 무례한 거더라고요. 대기실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건, 나는 여기 집중하고 있으니까 방해하지 마라, 그런 의미니까요. 책을 가져갈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안 가져가요. 이동할 때나, 미장원에서 머리할 때 이럴 때는 읽지요.”
—연예인들 중에도 책을 즐겨 읽는 분이 많지 않나요.
“연예인들이 회원인 독서토론회를 만들고 싶었는데 책 취향이 다들 저랑 달라요. 책 좋아하는 연예인 중 반은 문학이나 시 읽는 사람, 나머지 절반은 성경 읽는 분이에요. 진화론, 우주, 물리학, 역사, 두뇌, 이런 분야에 관심있는 연예인 거의 못 봤어요. 굳이 찾자면 전유성 선생님 정도 계시네요. 김구라씨 같은 경우는 방송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책을 즐겨 읽어요. ‘실용적 독서’를 하시는 거죠.”
새벽 4시까지 독서

최근 장동민이나 유세윤처럼 개그맨들이 구설에 휘말리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구설에 그치지 않고 경찰서를 들락날락한 이들도 있다. 이윤석은 데뷔 후 지금까지 22년간 스캔들에 한 번도 휘말리지 않았다. 자기관리에 철저하다고 해야 할까. 완벽주의적인 성향은 책상 위에서도 엿보였다. 군데군데 줄이 그어져 있는, 열심히 읽고 있는 프린트물이 있어 살펴보니, 〈역사저널 그날〉 녹화를 위한 참고자료들이었다.
—프로그램 준비에 상당한 공을 들이네요.
“주위 사람들이 놀라는 게 제가 프로그램 2개 하면서 집에서 안 나온다는 거예요. 다른 사람은 오늘 가서 촬영하면 오늘 끝, 이런데 저는 한 프로에 이틀이나 길면 3일까지도 품을 들여야 해요. 이경규씨, 유재석씨, 신동엽씨, 이런 분들은 타고난 개그맨이라 그날 가서 그날 해결이 되는데 저는 미리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 스타일이에요.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재기발랄하게 웃기는 것도 재밌지요. 그런데 저는 뭔가 굳건한 토대를 놓고 거기에 대해 분석하고 토론하고 약간 비틀어서 농담하는 게 좋아요. 일반적이지는 않은 스타일이지요. 거의 즉흥적인 게 강하잖아요. 저는 애드립을 해도 탄탄한 토대 위에서 하는 게 더 잘 맞아요.”
—〈역사저널 그날〉 같은 교양 프로그램이 잘 맞겠네요.
“제가 교양 프로그램 쪽으로 가면 빵빵 터트려요. 거기 가면 천재 소리 듣는데, 예능 가면 이런 말을 주로 들어요. ‘길을 좀 잘못 든 것 같다. 방송은 너랑 안 맞는 것 같다’ 그랬는데 그건 아니고 예능이 안 맞는 것 같아요. 엘리트주의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방송에서 허무한 얘기를 많이 하면 신이 안나요. 누가 누구랑 사귄다더라, 이런 얘기요. 수지랑 이민호가 사귀는 게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 신도 안 나고 거기에 무슨 얘기를 보태고 싶지도 않아요.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데 왜 사람들이 그런 뉴스를 찾아볼까, 그런 생각도 가끔 해요.”
—프로그램 준비를 꼼꼼히 하려면 잠도 줄여야 할 텐데요.
“보통 일찍 자면 새벽 4시, 늦게 자면 7시나 8시에 잠들어요. 그때까지 책을 읽어요. 물론 늦게 일어나지요. 제 방송은 거의 오후 3시 이후에 있어요. 제일 행복할 때가 새벽 4시쯤 침대에 누워서 스탠드를 켜고 잠들 때까지 책 읽을 때예요. 평소 6시간쯤 자는데 한 달에 한두 번 몰아서 18시간씩 자요. 건강에 좋은 습관은 아니지요. 그래서 집사람이 한 번씩 억지로 저를 데리고 나가서 개 끌고 다니듯이 산책시켜요. 제 아내가 한의사잖아요. 아내는 제 자신보다 더 자세히 제 몸을 관찰해요. 키, 몸무게, 대소변의 색깔, 머리에 새치가 얼마나 나왔나, 오늘은 뭘 먹었나, 이런 걸 매일 체크해요. 손톱 발톱도 다 깎아 주고. 결혼해서 6년 넘게 하루도 안 빼먹고 한약을 먹고 있어요. 그 힘으로 방송하고 책 읽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만큼의 에너지는 딱 돼요. 결혼 전에는 설사약, 무좀약, 류머티즘약, 안약, 가래약, 용각산, 수면제 이런 걸 달고 살았어요. 이제는 일절 안 먹어요. 아내 덕분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얼마를 버는지, 통장엔 얼마가 있는지 이런 것도 잘 몰라요. 제가 스스로 뭔가 하는 건 책 사는 것밖에 없어요.”
—책은 주로 어디서 사나요.
“예전에 MBC에서 방송을 많이 할 때는 거기 구내서점에서 즐겨 구입했어요. 요즘엔 인터넷 서점에서 사지요. 인터넷서점 VVIP예요. 보통 하루에 1권가량 사는 것 같으니까, 1년에는 300권 정도죠. 주로 저자와 목차를 보고 고르죠. 읽던 책에 참고문헌으로 나오는 책을 고르기도 하고요. 어머님 댁에 3000권, 저희 집에 1500권가량 있어요.”
교통사고로 5급 장애 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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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석은 같은 책을 읽을 때마다 서로 다른 색깔의 색연필로 줄을 긋고, 관심이 가는 내용은 주제별로 컴퓨터에 파일 형태로 정리해 놓는 등 체계적으로 독서를 하는 독서광이다. |
“무명기간을 겪지 않기는 했지요. 개그맨 자체도 우연히 됐어요. 대학 졸업하기 전에 생각을 했어요. 마지막으로 신나게 놀아 보자, 방송국 구경이 최고 아니냐. 그냥은 안 들여보내 주니까 개그맨 오디션을 보자, 그러고 오디션에 갔는데 덜컥 붙어 버린 거예요. 서경석이란 친구가 나랑 비슷한 생각으로 시험을 봤더라고요. 방송사 관계자들이 이렇게 생각했대요. ‘서울대 출신이랑 연대 출신이네? 얘네 둘을 붙여 놓자.’”
서경석과 콤비를 이뤄 인기를 얻은 그는 서경석이 입대한 이후 ‘허리케인 블루’라는 코너로 서경석 없는 이윤석도 웃길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한참 잘나가던 때 사고를 만났다. 1997년의 일이었다.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 공개방송을 하러 강원도로 가던 길이었어요. 눈길에 미끄러져서 차가 절벽에 박혔어요. 저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거든요. 안전벨트를 안 하고 있었어요. 차가 부딪칠 때 버티려고 손잡이를 잡고 있던 왼쪽 팔이 말 그대로 분해가 됐어요. 복합골절이라고 하더라고요. 뼈와 살을 이식했죠. 그 후에 장애 5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때 같이 탔던 다른 일행들은 다 멀쩡했고요.
치료 때문에 방송도 다 그만두고 반년 동안 쉬면서 개그맨을 계속할까 말까 고민했습니다. 한의사 공부를 해 볼까, 고시 공부를 해 볼까. 그런데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돌아가는 게 약간 자존심이 상하더라고요. 그렇게 여기까지 왔어요. 굴곡이 많았던 건 아니지만 영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거죠.
개그맨 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회의가 생길 때도 많아요. 예를 들면, 예능 프로그램을 하면서 쓸데없는 거짓말해야 할 때가 그래요. 게임에 이기면 음식을 먹을 수 있어요. 전 별로 먹고 싶지도 않은데 먹고 싶은 척해야 해요. 누가 잘생겼나 순위 뽑는데, 별로 이기고 싶지 않은데 ‘내가 너한테 지다니’ 이러면서 작위적으로 아쉬워해야 하는 순간도 있지요. 그런데 내 본래의 성향대로만 갔으면 내가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요.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곳에 머물면서 소통한 게 어쩌면 나에게는 치유였겠구나 라는 생각도 하고요. 그런 면에서 개그맨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해요.
개그맨이 안 됐다면, 잘되면 학교 선생님이나 ‘과학계의 이외수’ 같은 존재, 못 되면 폐인이 됐을 것 같아요. 왜 개똥철학 하는 사람 있잖아요. 혼자 술마시면서 ‘왜 세상은 날 알아주지 않아’ 이러는 사람이 됐을 거예요.”
—더 이상 정통 개그는 안하고 있는데, 현재 모습에 만족합니까.
“제가 20대에 개그맨 생활을 할 때는 40대의 제가 이런 개그맨이 될 줄 몰랐어요. 유재석, 신동엽, 이런 개그맨들이 부러운 건, 예능 프로그램을 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인생의 보람을 찾는다는 거예요. 저는 그렇지 않았어요. 이게 내 인생의 전부인가, 끝인가, 더 없나 하는 회의를 느끼곤 했어요. 50대 개그맨 선배님들 중에 공허하다, 이런 얘기를 하는 분들이 계세요.
무슨 얘긴가 하면, 관찰 카메라로 촬영하는 프로그램처럼 찍히면서 사적인 모습을 세상에 남김없이 노출해야 하는 프로그램이 많잖아요. 관찰 카메라 프로그램은 진정성이 중시되는 프로그램이지만, 내용은 결국 돈을 받고 프로그램 의도에 맞춰서 움직이는 것이거든요. 어쩔 수 없이 스스로를 꾸며야 해요. 그것도 그 나름대로 재밌고 즐거울 수 있겠지요. 그런데 ‘진짜 나’와 ‘카메라 속의 나’ 사이의 괴리가 커지는 느낌은 지울 수 없어요.
예능에 나가서 저의 굴욕 사진을 같이 보면서 같이 웃어야 하는데 저는 항상 겉도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아이와 부모가 함께 나오는 프로그램도 많잖아요. 그런 프로그램도 그래요. 어느 연예인이 아이랑 그렇게 매일 놀러갈 수 있겠어요. 말은 이렇게 해도 제 자신도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이 들어오면 하겠지요. 돈이 꾸준히 들어오는 프로그램이고 시청자가 제일 좋아하는 장르니까요.”
—한때 MBC는 코미디의 명가였습니다. 2000년대 들어 부진한 이유는 뭘까요.
“한 번의 타이밍을 놓쳐서 그렇게 된 것 같아요. MBC 코미디는 콩트의 성격이 짙었잖아요. 개그 프로그램의 유행이 바뀌기 시작할 때 한 번 주춤했지요. 그때 인기 있는 개그맨들은 다른 방송사 개그 프로그램으로 옮겨가고 MBC엔 신인들만 남게 됐잖아요. 시청자 입장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모르는 사람들만 나오니까 더 안 보게 되지요. 빈익빈 부익부처럼 개그맨들은 〈개그콘서트〉로만 몰리고, 남아 있는 인재들도 의욕이 떨어지고 기도 죽어서 아이디어 회의도 발랄하게 안 되고요.”
“잘난 사람 잘났다고 인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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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이 들기 전 스탠드 조명 아래 책을 읽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이윤석은 말했다. |
“저런 사람은 어떻게 살아 왔는지, 스스로를 어떻게 표현하는지 궁금했어요.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도 전집째 있어요. 저는 그 책도 좋아하고, 진중권씨가 쓴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도 좋아해요. 회색주의자인가 봐요. 투표를 못하겠어요. 그런 생각을 해요. ‘저 후보자가 내세운 정책을 내가 얼마나 안다고 투표를 할 수 있나, 나는 잘 모르는데. 내 일 하기도 힘든데 저 사람 일자리까지 내가 왜 찾아 줘야 하나.’ 누군가를 지지할 만큼 그 사람을 믿을 수도 없어요. 저처럼 정치를 잘 모르는 사람이 괜히 한 표를 행사하면 폐 끼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투표하고 인증샷 찍어 SNS에 올리는 연예인들 보면, ‘자신감도 넘치고 책임감이 투철하구나, 부럽다’ 하는 생각을 해요.”
—세상에 대해 냉소적이네요.
“저의 사상적인 스펙트럼은 좀 특이하다고 생각해요. 저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기 힘들어요. 저는 정치적으로는 보수 성향의 사람이에요. 그런데 진화론 얘기를 하면 진보에 속해요.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초경험적인 것의 존재나 본질은 인식 불가능하다고 하는 철학상의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 출처=두산백과)예요. 윤회 이런 건 절대 안 믿어요. 진화론을 숭상하면서 정치적으로는 보수 성향인 사람들을 만나기가 힘들어요. 한 번도 못 만난 것 같아요. 아마 복거일 작가 정도 아닐까요.
사실, 연예인들은 정치와 관련된 얘기를 약간이라도 잘못하면 큰일 나요. 인기 떨어지고 공격 받고. 저도 어디 가서 저의 정치적 성향을 이야기하기가 꺼려져요. 당장은 욕을 안 먹어도 방송에서 실수하거나 하면 ‘그럴 줄 알았다’는 글이 올라오거든요.”
—특정 연예인이 일베 사이트에서 활동을 하느니 안 하느니 논쟁도 많지요.
“정치적 지향점을 잣대로 판단하고 비판하는 게 제일 쉽잖아요. 저의 기본적인 생각은 이래요. 인생은 원래 자기가 알아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국방, 안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가족, 경제 이런 거 중요하게 여겨요. 다윈주의자로서, 사람은 날 때부터 다르고 그걸 억지로 평준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무상급식 문제도 그래요. 아무리 누가 무상급식 안 받는지 가려 주려 해도 애들은 다 알아요. 그런 걸 가리는 데 초점을 두지 말자는 거예요. 잘나고 돈 많은 사람들이 잘사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싫어요. 인정해 주되 그 사람들이 더 사회에 기여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평준화라는 이름으로 한풀이하는 것 아닐까요. 우리 사회에서는 정의감과 개인적인 울화가 잘 구분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진보가 제일 되기 쉬운 것 아닌가요? 상대가 옳지 않다고 비판하는 건 쉬워요. 게다가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지 않을 때 비판하는 건 더 쉬워요. 하지만 자신이 막상 직접 메인스트림 안으로 들어가면 그렇게 못하잖아요.
얼마 전에도 KBS 기자 중 한 명이 일베 활동을 했다고 논란이 되었지요. 예를 들면, 이런 사안에 대해서도 제 생각은, 일베건 뭐건 자격조건이 돼서 시험에 합격했다면 일단 기회를 줘야 하지 않느냐는 거예요. 다만 후에 잘못을 저지른다면 철저히 책임을 물어야겠지요.
과학 쉽게 설명해 주는 인포테이너가 꿈
인터넷에서는 연예인 누구는 진보고 누구는 보수고 하면서 구분을 짓지만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끼리 사상을 가지고 편가르기를 하거나 하지는 않아요. TV에서만 그렇게 보이는 거지. 저도 김제동씨나 허지웅씨 이런 분들과 친해요. 정치적으로는 다른 입장이지만 문화적인 취향이 잘 맞거든요.”
—음악을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메탈 음악 중에서도 헤비메탈, 데스메탈을 좋아해요. 주다스 프리스트, 메가데스, 메탈리카 같은 유죠. 한때는 그런 음악에 거의 미쳐 있었어요. 보수 지지자들 중에 헤비메탈 듣는 사람이 있겠어요? 그러니 누구랑 한 팀이 될 수 있겠어요?”
—서경석씨 같은 동료 연예인들과도 사상적인 얘기를 나누나요.
“경석이는 책이랑 술, 뜬구름 잡는 얘기 별로 안 좋아해요. 축구, 골프, 탁구, 테니스 좋아해요. 서로 좋아하고 친하지만 잘 안 만나요. 같이 할 수 있는 게 없거든요. 저는 골프를 안 쳐요. 골프에 대한 아무런 불만은 없어요. 대학 초년생 때 혼자 결심했어요. ‘내가 지금 결심한 게 옳건 그르건 인생에서 이거 하나만 지켜 보자. 사람이 나이 들면 변한다고 하는데 나는 골프를 치지 말아 보자. 한번 이 신념을 지켜 보자.’
대학에 들어가니 데모하는 데 선배들이 자꾸 끌고 나가고 세미나를 해요. 이미 커리큘럼을 정해 놓고 이 책 아니고 다른 책은 읽을 필요 없다고 하는 거예요. 나는 다른 책도 읽어 보고 싶은데. 헤비메탈을 좋아한다니까 미국의 쓰레기문화를 좋아한다고 뭐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생각했어요. ‘당신들이랑 나 중에 누가 먼저 변하는지 보자.’ 지금 그분들 다 미국 유학 다녀와서 골프 치러 다니고 그래요. 저는 좀 우습게 지금까지 골프 한 번 안 치러 나가고 그렇게 살고 있어요. 결심도 결심이지만, 골프 치면 책 볼 시간이 없어요. 그 시간에 책 읽어야 하거든요.”
—앞으로 어떤 개그맨이 되고 싶나요.
“칼 세이건의 책을 좋아해요. 칼 세이건은 과학자로 출발해 대중들에게 과학을 쉽게 설명해 주는 사람이 됐잖아요. 저는 반대로 방송인에서 과학자 쪽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인포테이너라고 할 수 있겠죠. 어른을 위한 재미있는 과학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게 꿈이에요. 이를테면 〈과학저널 그날〉 이런 식의 프로그램이에요.
미국에서는 목사랑 과학자랑 창조론, 진화론을 주제로 논쟁이 붙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그런 건 못 하나 봐요. 《종교전쟁》이라는 책 보면 지면으로는 가능한데 방송으로는 시도가 안 이뤄지네요. 텔레비전에서 정치인들, 평론가들 말싸움 이런 것 보고 있으면 허무해요. 죽음 이후에는 아무 것도 없는 거냐, 아니면 영생인 거냐 이런 게 중요한 문제 아닌가요.
일본의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를 좋아해요. 이분한테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분처럼 고양이 빌딩 만들어서 서재로 삼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이 분이 암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암’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어요. 암에 관한 최신 조류를 섭렵한 후, 냉정한 문투로 기술했어요. 헛된 희망을 주지 않아요. ‘암의 종류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획일적인 어떤 치료법이 있을 수 없다. 헛된 희망을 갖지 말고 죽음을 준비해라’ 이런 식이죠. 저의 아버지, 할아버지 다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그 책을 보고 위안을 많이 받았어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었던 게 아니었구나’ 하고.
이 얘기를 몇 번 했더니 출연 섭외가 들어왔어요. ‘이 밥이 날 살렸다’ 이런 기획의 프로그램이었어요. 이걸 먹으니까 낫더라, 저게 좋더라는 식이죠. 우리나라는 아직 진실을 말하는 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아요. 거짓이라도 희망을 주고 꿈을 주고 위로를 줘야지 왜 굳이 상처를 주면서 진실을 얘기하냐 이런 분위기예요. 진실을 얘기하되 유쾌한 방식으로 얘기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욕심을 낸다면 일주일 내내 제가 진행하면서 월요일은 생물학, 화요일은 과학사, 수요일은 우주, 이런 식으로 하면 좋겠어요. 텔레비전에서 안 된다면 라디오에서라도요. 최대한 어깨에 힘을 빼고 발랄하게 약간의 정보와 많은 재미를 주고 싶어요. 그게 꿈이에요.”
“죽은 뒤 이름 남겨서 뭐하나”
—사람들에게 어떤 개그맨으로 기억에 남고 싶나요. 나중에 죽은 후에라도요.
“쟤, 아직도 하고 있어? 크게 뜬 적도 없는데 참 오래 한다. 그러고 보니 이윤석이 제일 오래됐네. 불꽃놀이, 폭죽놀이 다 필요없구먼. 촛불 심지처럼 천천히 타들어 가는 게 낫구먼. 이런 얘기 듣고 싶어요.
죽음이라. 죽고 난 뒤에 이름 남기는 게 제일 허무하다고 생각해요. 죽고 나서 이름을 남기기 위해 오늘을 이렇게 살아야 된다, 이런 거 없어요. 이름 남겨서 뭐하나요. 오늘을 재밌게 살아야지.
시간을 초월한 영원한 가치, 이런 걸 부정하는 건 아니에요. 저는 부모님이 저를 만들어 주신 게 정말 고마워요. 제가 만약 돌이었으면 놀라고, 아프고, 기쁜 걸 못 느꼈을 거 잖아요. 하늘을 올려봐요. 나를 만든 저 우주를 내가 다시 보면서 신기해하고 있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신기하고 기뻐요. 전 영혼을 믿지 않지만, 제가 죽어서 어딜 가든 저를 이뤘던 물질은 이 우주 안에 있을 거예요. 다른 몸의 일부로 들어가겠지요.”
그가 왜 웃음에 관한 책을 썼는지 알수 있을 것 같았다. 타인을 웃겨야 하는 개그맨이 얼마큼 세상에 냉소적일 수 있을까. 밤마다 홀로 지면을 거닐며 그 한계를 건드려 보고 있는 그가, 그만의 방법으로 자신의 업(業)에 바치는 ‘오마주(Hommage)’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니 이윤석은 ‘국민 약골’이라는 천막 속에 그만의 철옹성을 감춰 두고 매일 다듬고 두드리고 나사를 조이고 있었다. 스무 해남짓이라는 동안 많은 사람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면서도,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었던 그가 문득 부러워졌다.⊙
![]() 우주의 구조 브라이언 그린/승산 “물리학이나 우주에 관한 책은 많지만 이 책처럼 한 권으로 집대성한 책은 흔치 않아요. 5번 정도 읽었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우주라는 게 참으로 신비로운 존재라는 걸 알게 해 준 책입니다.” 로마인이야기 시오노 나나미/한길사 “일단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책이라서 좋습니다. 카이사르처럼 저랑 정반대되는 인간형에 대한 동경 같은 것도 있어요. 부러워요. 저처럼 쓸데없는 고민 안 하고 세상을 정복하고 이성과 연애를 하는 게 멋있어요. 제가 이경규 형을 좋아하는 이유도 아마 저와 많이 달라서일 거예요. 시간만 나면 제주도 가서 낚시하고, 방송 끝나고 영화사 가서 시나리오 쓰고, 다음 날에는 치킨 사업 하러 가고, 라면 회사 가서 라면 개발하고, 술마시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이 부러워요.” 성격 한나 홈스/교보문고 “‘우리의 기본적인 모든 성향이나 자질은 타고나는 것이기 때문에 크게 바꾸기 어렵다. 갖고 있는 것 중에 좋은 걸 키울 생각을 해야지, 잘못된 것 없애기는 상당히 어렵다. 태어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네 성격 안에는 너를 살게 하는 힘이 반드시 있다.’ 이런 내용의 책이에요.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마이클 셔머/바다출판사 “어머니나 장모님이 점을 치고 사주 보는 걸 좋아하셔요. 저는 단 한 번도 점이나 사주를 본 적이 없어요. 왜 사람들이 그런 걸 좋아하는지 엿볼 수 있었던 책이에요.” 미학오디세이 진중권/휴머니스트 “대중들에게 생소했던 ‘미학’이라는 분야를 쉽게 엿볼 수 있게 해 준 책이에요. 미학의 기초 지식과 함께 철학사와 예술사를 함께 엮어 놓았지요. 예술작품에 이렇게 접근할 수 있구나, 알 수 있게 해 준 책입니다.” ![]() 주인과 심부름꾼 이안 맥길트리스트/뮤진트리 “기본적으로 과학책인데 철학, 심리학, 미학을 들어 뇌에 대해 쓴 책이에요. 읽으면서 지적 충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과학자들은 과학만 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 책의 저자는 모르는 게 없어요. 통섭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 실험실 빌라야누르라마찬드란·샌드라 블레이크스리/바다출판사 “너무너무 재미있는 책이에요. 1권만 추천하자면 항상 이 책을 꼽습니다. 흥미로운 내용들이 가득해요. 예를 들면, 이런 얘기가 나와요. 남자들이 자동차 운전 할 때 거칠어지는 이유가 있대요. 운전을 하다 보면 자동차 자체가 자신의 몸인 것처럼 뇌가 착각을 한다는 거예요. 차끼리 약간 스치기만 해도 자신의 몸이 다친 것처럼 느낀다는 거죠.”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을유문화사 “제가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 중 한 명입니다. 다윈주의 진화론과 자연선택 이론을 기반으로 세상을 바라보지요.” 빈서판: 인간은 본성을 타고 나는가 스티븐 핑커/사이언스북스 “성격 등 내면의 많은 조건이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인정하면서 보완점을 찾아가야 한다는 시사점을 준 책입니다.”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 짐 홀트/21세기북스 “세상은 왜 무가 아니라 유인가, 이런 문제야말로 탐구해 볼 만한, 탐구해야 할 중요한 화두라고 생각해요. 저는 아직도 혼란스러워요. 이런 책을 읽으면서 고민을 이어나가는 것이겠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