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산책

우리 민족은 왜 白衣民族이 되었나?

  • 글 : 김정현 역사저술가  
글자 크기 조정
  • 스크랩
  • 본문 음성 듣기
  • 글자 크기 조정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 중국 史書에 신라시대부터 흰옷 즐겨 입었다는 기록… 염색기술 발달 못한 탓
⊙ 고려·조선시대에는 五行사상에 근거해 흰옷 금지하고 청색 옷 권장했으나 잘 실천되지 않아
⊙ 이수광, “明宗 이후 여러 國喪이 있어서 그대로 素服을 입게 되어 그만 풍속이 됐다”

金丁鉉
⊙ 78세. 한양대 사학과 졸업.
⊙ 저서: 《흥하는 성씨 사라진 성씨》 《우리 겨레 성씨 이야기》 《상상 밖의 한국사》.
구한말 관아에서의 ‘원님 재판’ 모습. 몇몇 관리를 제외하면 모두가 흰옷 차림이다.
우리 민족을 흔히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고 한다. 우리 선대가 흰옷을 입는 것을 좋아한 데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고려와 조선시대 역사를 보면 과연 그것이 맞는 얘기인가 하는 의문이 있다. 조정에서 흰옷을 입는 것을 금하려 노력한 기록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조선 세종·성종 때의 학자 서거정(徐居正)이 지은 《필원잡기(筆苑雜記)》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고려 충렬왕(忠烈王) 원년에 태사국(太史局, 천문·기상·풍수지리를 담당하는 관청)에서 아뢰기를 “동방은 오행(五行) 가운데 목(木)의 위치여서 푸른 색깔을 숭상하여야 하며, 흰 것은 오행 중에 금(金)의 색깔인데 지금 나라 사람들이 흰 모시 옷으로 웃옷을 많이 입으니 이것은 목이 금에 눌리는 형상입니다. 흰색의 옷을 입는 걸 금할 것을 주청합니다” 하니 왕은 그 말을 좇았다.〉
 
  신라 말기의 승려로 풍수지리에 능했던 도선국사(道詵國師)도 이와 비슷한 말을 남겼다.
 
  〈동방은 목(木)에 속한다. 그래서 푸른 것을 숭상하여야 한다. 그런데 흰 것을 숭상하니 마치 금이 목을 이기는 형국이니 좋은 일은 아닌 것이다.〉
 
  도선국사는 《도선비기(道詵秘記)》로 유명하였다. 왕건이 고려 건국의 태조가 될 것이라 예언하였다 하여 고려시대 내내 정치·사회 전반에 걸쳐 그 영향력이 컸다. 앞에서 본 태사국의 건의도 도선의 영향을 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服色尙素
 
고구려 무용총 벽화. 흰옷이 아니라 채색옷을 입고 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옛 중국 사람들은 “고려인들은 흰옷을 입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고려인이 그랬다면 그 이전 신라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고려는 신라의 습속을 많이 따랐기 때문이다. 중국의 사서(史書)인 《북사(北史)》와 《수서(隋書)》에도 신라인이 흰색 의복을 좋아한다는 기록이 있다. 다만 중국 사서에는 ‘백의’라는 표현 대신 ‘복색상소(服色尙素)’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옷 색깔이 항상 무색(素)이다”라는 뜻이다. ‘무색’은 곧 ‘흰색’을 의미한다.
 
  신라는 뽕나무와 삼을 많이 심었다. 누에에서 얻은 실로 명주를, 삼에서 실을 뽑아 삼베를 생산하였다. 당시 신라에서는 염색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다. 명주나 삼베의 원래 색상, 즉 흰색으로 옷을 해 입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염색기술이 발달했던 중국인들이 보기에 신라인들의 옷은 ‘소복(素服)’이었을 것이다. 명주와 삼베는 목면포(木綿布)처럼 흰색은 아니었다. 특히 삼베는 약간 누런 빛깔을 띠고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흰옷이나 담색 옷을 입은 군인들이 있었다. 이런 옷은 쉽게 때가 묻고 더러워졌다. 이 때문에 짙은 황색이나 회색, 검은색 등 색깔 있는 옷을 입도록 했다. 그때는 이미 신라시대에 비해 염색기술이 발달했던 것이다.
 
  한반도에 무명 피륙이 등장하게 된 것은 고려 공민왕 때 문익점(文益漸)이 원(元)나라에 사신으로 가 목화씨를 가져오면서부터였다. 목면의 원단은 표백을 하지 않아도 명주와 삼베보다 하얀색을 띠었다. 여기서 백의(白衣)란 말이 나온 게 아닌가 싶다. 이전에는 중국 사서에서처럼 소복이라는 표현이 보인다.
 
  고려 공민왕 때 우필흥(于必興)은 임금에게 이렇게 간언했다.
 
  〈우리나라는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서 끝나는데 그 형세가 수근(水根)과 목간(木幹)의 땅으로 검은색을 부모로 하고 푸른색은 제 몸으로 하였으니 토(土)에 순응하면 번창하고 토를 반대로 하면 재난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문무백관(文武百官)을 흑의청립(黑衣靑笠·검은 옷에 푸른 삿갓)으로 하게 하고 승려의 옷은 흑건대관(黑巾大冠·검은 두건과 머리에 쓰는 큰 관)으로 하며 여복(女服)은 검은 비단으로 몸에 걸치게 하고 산에는 소나무를 심어 무성하게 하며 모든 그릇은 놋쇠, 구리, 토기(土器)를 사용케 하여 풍토에 순응토록 하소서.〉
 
  여기서 보이는 ‘수근’과 ‘목간’이라는 말은 ‘땅을 두고 말할 때 물은 뿌리가 되고 나무는 줄기가 된다’는 의미이다.
 
 
  흰옷 입고 科擧場 들어오는 것 금지
 
  고려의 충렬왕 때나 공민왕 때 조정 신하들이 흰옷을 입는 것을 금하였고 백성들도 이에 따르도록 하였다. 이 때문에 고려에서는 검은 옷을 많이 입었다.
 
  조선에 들어와서도 태조 때부터 흰옷 착복을 금하는 금지령이 있었다. 영조 때에는 왕명(王命)으로 유생(儒生)들이 담색(淡色) 옷을 입고 과거(科擧) 시험장에 들어오는 것을 금지했다. 담색은 ‘진하지 않은 색깔’을 말하는데, 흰색에 가까운 것이다. 유생들뿐 아니라 위로는 대신(大臣)에서부터 문무관(文武官), 사대부(士大夫), 서민들 할 것 없이 푸른 색깔의 옷을 입도록 했다. 영조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번 흰옷을 입는 것을 금할 때 누가 말하기를 기자(箕子)가 흰옷을 입었으므로 흰옷은 우리나라의 풍속이라 하였다. 후세 사람들이 기자의 교훈 같은 건 실천하지 않으면서 단지 그런 옷만 입으려고 하니 참으로 한심하다 할 것이다.〉
 
  영조에 앞서 현종(1659~1674), 숙종(1674~1720) 때도 흰옷을 입는 것을 금하는 어명(御命)이 있었는데 잘 지켜지지 않았다. 그때 조선에서는 이미 목화로 짠 하얀 무명이 많이 통용되고 있었고, 잿물로 표백하는 기술도 있었다. 따라서 백성들은 무명 흰옷을 많이 입었다.
 
  조선 선조 때 이수광(李光)의 《지봉유설(芝峰類說)》은 당시 흰옷을 많이 입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동방 사람들이 비록 흰옷을 입길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나라에서 금지하는 제도가 있기 때문에 선조조(宣祖朝)에서는 이 흰옷에 대한 금란(禁亂)이 있었다. 선비들 가운데서는 백의 금지에서 무지한 자들은 출입할 때 홍의직령(紅衣直領·붉은 빛깔의 웃옷으로 무관들이 주로 입었다)을 입었다. 명종(明宗) 을축년(乙丑年·1565년) 이후로 여러 국상(國喪)이 있어서 그대로 소복(素服·흰옷)을 입게 되어 그만 풍속으로 이루어져 지금은 홍의직령이 전혀 없고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소복을 입으니 중국 사람들이 이를 보고 비웃었다.〉
 
 
  曺植 “素服은 亡國의 조짐”
 
대한제국 시기 독립관 앞에서 찍은 ‘협동측량조합소 제2회 졸업식’ 기념사진. 색깔 있는 옷이나 양복 차림의 사람들이 보인다.
  조선시대에 조정에서 흰옷 착용을 금지한 것은 중국의 습속을 따르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종래부터 관복(官服)은 중국식인데, 흰옷을 입는 평민들의 습속은 중국과 다른 것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긴 것이다.
 
  명종 때에는 사헌부(司憲府)에서 평상시 흰옷을 입은 사람들을 단속했다. 선비들에게는 겉옷을 모두 복숭아 색깔로 물들여서 입도록 하였다.
 
  이렇듯 흰옷 착용을 금지한 것은 흰옷이 상복(喪服)으로 평상시의 복장으로는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남명 조식(南溟曺植)은 임금에게 올린 상소에서 “음악은 슬프고 옷은 소복이니 망국(亡國)의 징조입니다”라고 했다. ‘흰옷, 즉 소복은 오로지 상복으로만 입는 옷’이라는 인식이 엿보인다. 조선에서는 왕이 승하하면 백성들은 모두 소복을 입었다. 우리의 전래 설화를 보면 여자 귀신은 꼭 소복 차림이다. 붉은 옷이나 검은 옷을 입은 여자 귀신은 없다.
 
  흰옷을 많이 입은 것을 두고 스스로를 ‘백의민족’이라고 칭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 근대 이후일 것이다. ‘백의민족’을 자칭해 온 우리 민족과 달리 중국의 종족들은 검은 옷을 많이 입었다.
 
  중국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를 보면 부여(扶餘)에서 흰옷을 즐겨 입었다는 기록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 신라에서도 흰옷을 즐겨 입었다는 중국 측 기록도 있다. 반면에 중국 역사서에 고구려나 백제인이 흰옷을 즐겨 입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抗日의 표현으로 여겨지기도
 
  고대(古代)사회에서 흰색은 광명(光明)을 의미하였다. 태양을 숭상하는 원시(原始)사회에서는 흰빛을 신성시하여 제천의식(祭天儀式)이 있을 때 필히 흰옷을 입고 제(祭)를 올렸다.
 
  갑오경장(甲午更張) 직후인 조선 고종 32년(1895)에 공사복(公私服) 개정(改正)이 있었다. 이때 흰옷은 쉽게 더러워지고 세탁에도 불편하다는 이유로 관(官)과 민(民)이 모두 검은색 옷을 입도록 권장하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러한 명령은 잘 이행되지 않았다. 1906년도에도 법령으로 흰옷 착용을 금지시켰다. 일제(日帝)도 위생상의 이유를 들어 흰옷을 입지 말도록 강권했다. 때문에 흰옷을 입은 것은 오히려 일제에 대한 무언(無言)의 항거로 여겨졌다.
 
  이렇듯 흰옷을 입는 것을 금지하는 명령이 되풀이되었음에도 그것이 잘 지켜지지 않은 것을 보면 우리 민족을 ‘백의민족’이라고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 스크랩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