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쿠데타 일으켜서 이렇게 나라를 뒤집어 놓는다든지 국가권력으로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나치 전범(戰犯) 처리하듯이 영원히 살아 있는 한 형사 처벌하고….”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12월 3일 12·3계엄 1주년 기념 담화에서 한 말입니다. 국제질서가 근본적으로 뒤흔들리는 엄혹한 시기에 정치적 갈등을 정치적으로 풀지 못하고 시대착오적인 계엄령을 펴는 바람에 대한민국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잘못을 두둔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나치 전범’ 운운한 부분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2·3 계엄 이후 진행되어 온 일들을 보면 나치가 집권하기 전후에 벌어진 일들과 무척이나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1. 기존 체제에 대한 저항자
나치나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이나, 기존 체제에 대한 뿌리 깊은 저항자였다는 점에서 흡사합니다.
나치는 출범 초부터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에 대한 적대감을 공공연히 표출했습니다. 히틀러는 쿠데타로 바이마르 공화국을 전복하려 한 적이 있습니다. 국회 다수당이 된 후에도 심지어 공산당과 손을 잡고 정부를 불신임해 무너뜨리기도 했습니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의 주류를 이루는 정치인들은 이른바 586 전대협 세대 정치인들입니다. 흔히 말하는 ‘주사파(主思派)’였고, 그 생각을 바꾸었다고 밝힌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주체사상이라는 게 뭡니까? 김일성식 공산주의 사상이고, 대한민국을 전복하겠다는 사상이었습니다.
2. 위기 상황 이용해 집권
나치는 히틀러가 총리로 임명된 직후인 1933년 2월 27일 일어난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을 빌미로 독재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비상조치를 발동하고, 공산당을 비롯한 반대 세력을 탄압하는 한편, 입법권을 국회로부터 행정부로 넘겨받는 수권법(授權法)까지 제정했습니다.
민주당은 12·3계엄이 발생하자 이를 바로 ‘내란’으로 규정짓고, 국회 다수당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계엄 해제, 대통령 탄핵, 특검법 등을 밀어붙이면서 집권 가도를 질주했습니다.
물론 나치가 이용했던 국회 방화사건의 경우 덜떨어진 네덜란드인(人) 공산주의자를 이용한 자작극(自作劇)이었고, 12·3계엄은 윤석열 정권의 자충수라는 점에서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위기 상황을 집권에 이용했다는 점에서는 유사합니다.
3. 공무원 조직 장악
나치는 집권 집후인 1933년 4월 ‘직업공무원제 회복법’을 제정했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정치적 바람을 탔던 직업공무원 제도를 바로세운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그 실질은 비(非)아리아인(유대인)과 ‘이전의 정치활동으로 인해 국가를 전적으로 지지할 것으로 보장할 수 없는 공무원’, 즉 나치의 정치적 반대자들을 공직에서 배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떠난 자리를 나치 지지자들로 채운 것은 물론입니다.
이재명 정부는 ‘내란 척결’을 내세워 ‘헌법존중 정부혁신 TF’라는 것을 만들어 공직 사회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계엄 선포에서 병력 철수까지 6시간 남짓했던 계엄과 상관이 있을 수 없는 공정거래위원회, 보건복지부 같은 부서에서도 내란 가담자를 고발하라고 종용하는 것은 결국 정치적 반대자들을 색출해 추방하겠다는 것 아닐까요?
4. 특별재판소를 통한 사법부 독립 무력화
나치는 집권 직후 ‘사법부 조율’이라는 명목으로 사법부 장악에 나섰습니다. 국회방화사건에서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판결이 일부 나오자, 나치는 정치적 반대자들을 신속하고 가혹하게 처벌하기 위해 특별재판소를 만들었습니다. 1934년 히틀러의 정적(政敵)들을 숙청한 ‘장검(長劍)의 밤’ 사건 이후에는 반역죄·간첩죄·안보범죄를 전담하는 인민재판소가 설치됐습니다. 인민재판소는 아예 기존 사법부 체계 바깥에 두었으며, 나치당원이나 친위대 장교가 재판관이 되기도 했습니다. 판사들은 법률이 아닌 ‘건전한 민족감정’에 따를 것을 강요당했습니다.
민주당 정권은 ‘사법개혁’이라는 명목으로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사법행정위원회를 설치하며, 대법관 수를 현행 14명에서 26명으로 늘리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또 헌법재판소에 ‘재판소원(訴願)’도 허용하겠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위헌 논란에도 불구하고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관련 법안을 2025년이 가기 전에 처리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그에 대해 이른바 진보 법관들이 주도하고 있는 전국법관회의마저 비판적 견해를 내놓자 “국민 눈높이와 동떨어진 결정”이라고 반박했습니다.
5. 군부 길들이기
나치 집권 초기부터 독일 군부는 군비 확장과 팽창주의를 내건 나치 정권에 순응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히틀러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군부를 완전히 손에 넣기 위해 1938년 친위대와 게슈타포는 일련의 스캔들을 조작, 유포해 블롬베르크 국방장관, 프리치 육군 총사령관 등을 실각시켰습니다. 카이텔 등 ‘예스맨’들이 그 빈자리를 메꾸었습니다.
이재명 정권은 12·3계엄에 가담한 장성들은 물론 당시의 대장급 장성들, 합참 근무 장성들을 전원 물갈이했습니다. 군 고위직 인사에서는 육군·육사 출신이 배제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장성 진급 심사에서는 ‘12·3계엄이 내란이냐 아니냐’를 묻기도 했다고 합니다.
6. 언론 장악
나치는 1933년 10월 4일 ‘제국언론법’을 공포했습니다. 이 법은 언론 편집 책임자에게 “어떤 식으로든 공중을 호도할 수 있는 뉴스, … 또는 독일의 명예와 존엄을 해치는 뉴스를 신문에 싣지 않을 것”을 명령했습니다. 유서 깊은 신문들이 폐간되었습니다. 신문사 경영자나 편집인이 나치에게 고분고분한 사람들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언론 통제의 정점에는 괴벨스가 이끄는 국민계몽선전부가 있었습니다.
이재명 정권은 ‘언론 개혁’을 내걸고 있습니다.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을 변경하고, 이사 추천 권한을 언론 단체 및 시민사회에 부여하는 방송 3법 개정안, ‘가짜 뉴스’ 근절을 내세운 언론중재법 및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등을 통과시켰습니다.
민주주의의 후퇴 경계해야
생각나는 것만 정리했는데도 이 정도네요. 물론 나치는 했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나치는 집권 후 반대 정당들을 차례로 해산하고, 1933년 7월 ‘정당 결성에 관한 법률’을 통해 나치를 유일 정당으로 선언했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 즉 민주당 의원들의 의결로 정당 해산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 대통령이 내란 또는 외환죄로 파면되거나 형이 확정될 경우에 소속 정당이 자동으로 해산 심판을 받도록 하는 정당법 개정안 등을 내놓고 야당인 국민의힘을 위헌 정당으로 해산하겠다고 압박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나치 체제는 1930년대 독일 국내외 환경의 산물로 오늘날 그런 일이 그렇게 쉽게 되풀이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헝가리나 튀르키예 같은 나라들이 비(非)자유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 체제로 후퇴하는 걸 보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 체제가 후퇴할 가능성은 아무리 경계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1955년 창당된 민주당을 자신들의 뿌리라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당시 민주당을 대표했던 해공 신익희(海公 申翼熙)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건국의 원훈(元勳)이었습니다. 그가 조병옥·장면·윤보선 선생 등과 함께 이끌었던 민주당은 반공 자유민주주의를 신조로 하는 대한민국의 ‘충성스런 야당(loyal opposition)’이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해공 민주당’의 맥을 잇는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정당의 길을 걸을 것인지, 아니면 그에 역행하는 길을 걸을 것인지,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