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3월 11일 히틀러는 오스트리아를 침공, 합병했습니다. 히틀러가 다음 먹잇감으로 삼은 나라는 체코슬로바키아(이하 체코)였습니다.
히틀러는 체코 침략의 첫걸음으로 체코 내 수데텐란트(이하 수데텐)에 살고 있는 독일계 주민들을 선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란이 커지자 체코 정부는 타협할 뜻을 밝혔지만, 히틀러는 수데텐독일당에 “체코 정부가 수락할 수 없는 요구를 하라”고 주문했습니다.
1938년 5월 20일, 독일과 체코 접경 지역에 독일군이 집결하면서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장에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체코인들은 침략에 맞서겠다는 결의를 다졌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 ‘체코제 기관총’을 기억할 정도로 체코는 무기 및 기계 산업이 발달한 나라였습니다. 동원 가능한 병력도 70만 명에 달했습니다. 게다가 체코와 독일 국경 지역에는 산악지대가 자리하고 있어 천혜의 방어선이 되어 주었습니다. 체코의 동맹국인 프랑스, 프랑스의 동맹국인 영국도 처음에는 체코를 지지하는 듯했습니다.
뮌헨협정
하지만 막상 위기가 고조되면서 국민들이 방공호(防空壕)를 파고, 공습 및 화학전 대비 훈련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영국과 프랑스는 발을 빼기 시작했습니다. 9월 15일 히틀러의 별장인 베르히테스가르텐으로 달려간 체임벌린은 “자결권(自決權)에 근거하는 수데텐 지역의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히틀러에게 굴복했습니다. 9월 19일 영국과 프랑스가 체코 정부에 수데텐 할양을 강요하자, 체코 정부는 양국의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체코는 “머지않아 독일의 완전한 지배 아래 놓일 것”이라며 거부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굴복한 이후에도 구체적인 조건을 놓고 한동안 히틀러와의 밀고 당기기가 이어졌습니다. 이에 따라 다시 긴장이 고조됐습니다. 그러자 히틀러는 자신의 제안이 “체코의 존립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며 “체코의 나머지 부분을 공식 보장할 의향이 있다”고 체임벌린을 달랬습니다. 체임벌린은 히틀러의 사탕발림에 넘어갔습니다. 1938년 9월 27일 체임벌린은 대국민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먼 나라의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들 간의 다툼 때문에 여기서… 우리가 방공호를 파야 한다니 이 얼마나 끔찍하고 황당하고 믿기 힘든 일입니까!”
당시 뮌헨협상 과정을 지켜보았던 미국 특파원 윌리엄 샤일러는 《제3제국의 흥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유화책을 펴기로 작정한 영국 및 프랑스의 정치인들과 외교관들을 속이기란 얼마나 쉬웠겠는가?”
결국 9월 30일 히틀러와 체임벌린, 에두아르 달라디에 프랑스 총리, 그리고 이탈리아의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는 수데텐을 독일에 넘겨주는 ‘뮌헨협정’에 서명했습니다.
수데텐을 빼앗기면서 체코는 석탄의 66%, 화학제품의 86%, 철강과 전력(電力)의 70%를 상실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에드바르트 베네시 대통령이 사임하고 에밀 하하 대통령이 이끄는 나치에 종속된 준(準)파시스트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수데텐 할양과 함께 체코의 민주주의도 끝장난 것이지요.
뮌헨회담 후 귀국한 체임벌린 총리는 환호하는 영국 국민들 앞에서 히틀러가 서명한 문서를 흔들면서 “이것이 우리 시대의 평화”라고 자랑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것이 헛소리였다는 걸 잘 압니다. 이듬해 3월 히틀러는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 체코(보헤미아-모라비아)는 독일의 보호령으로 삼고, 슬로바키아에는 나치의 괴뢰 국가를 세웠습니다. 이어 그해 9월에는 폴란드를 침공,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습니다. ‘뮌헨협정’은 전쟁을 고작 1년 늦추었을 뿐입니다.
트루먼의 결단
워싱턴DC의 한국전 참전 기념비에 새겨진 문구는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우리 조국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나라와 만난 적 없는 국민을 지키라는 부름에 응답했던 아들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 말에 담긴 정신은 “저 먼 나라의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들 간의 다툼 때문에” 운운했던 체임벌린의 말에 담긴 정신과는 정반대입니다. 해리 S.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딘 애치슨 국무장관으로부터 북한의 남침 소식을 전해 듣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딘!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개자식들을 막아야 합니다!(Dean! We have got to stop those Sons of bitches no matter what!)”
체임벌린의 말에 담긴 정신이 지배적이었을 때, 약소국 체코는 강포한 이웃 나라의 먹이가 됐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얻은 교훈 때문에 한국전 기념비의 정신이 지배적이 되었을 때, 세계인들이 그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는 ‘사우스 코리아’는 멸망 직전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자유와 번영을 누리고 있는 것은 이 덕분입니다.
75년 전 한국은 ‘공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경우 우리가 도움을 받으려면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 ‘비용’에는 일차적으로 우리의 국력에 상응하는 국방비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감당하는 것이 포함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알지 못하는 나라와 만난 적 없는 국민을 지키라’는 국제적인 요구가 있을 때에 기꺼이 응답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그런 사태가 벌어졌을 때에 우리의 몫을 다하겠다는 결의를 평소에 피력해 두어야만 합니다. 그런 노력을 게을리하면, 유사시에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워싱턴DC의 한국전 참전 기념비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습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
한국, ‘신애치슨 라인’에서 배제되나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국가지도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적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체임벌린과 흡사한 소릴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걸 ‘실용외교’라고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보통 국민들의 속마음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지금 대한민국은 우리의 자유와 생존을 위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려는 자세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필리핀 해상에서 실시된 8개국 연합해상훈련에 한국은 불참했습니다. 미국, 일본, 호주, 필리핀은 물론, 스페인과 노르웨이까지 참여한 훈련인데 말이죠.
이러다 보니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대한민국은 동맹으로 믿을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트럼프 라인’ 혹은 ‘신(新)애치슨 라인’에서 한국이 배제될 것이라거나, 인도·태평양판 나토를 만들 경우 한국은 빠질 것이라는 얘기가 솔솔 나오고 있습니다. 주일미군사령부는 대장급 합동사령부로 격상시키면서 주한미군사령부는 3성급 장군이 지휘하는 부대로 격하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재명 정부가 한국이 주한미군 역할 재조정이나 방위비 분담금 인상에 성의를 보이지 않을 경우 기분 상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과 야합해서 종전(終戰)선언을 하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 후 대한민국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국내 정치나 경제는 한때 어려워지더라도 나라가 존재하는 한, 다시 각성하면 어떻게든 바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외교안보상의 선택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번 잘못되면, 세계를 뒤흔드는 대전쟁이나 소련·동구 붕괴 같은 지각 변동이 일어나기 전에는 바로잡을 수 없습니다. 한미동맹을 만들어낸 이승만 대통령은 늘 “다시는 종의 멍에를 지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한미동맹이 와해되면 우리는 다시 종의 멍에를 지고 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아널드 토인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역사는 전략적 실수를 하는 민족에게 다시 기회를 주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