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세의 溫故知新 | 봄을 찾아 나선 길

  • 글 : 김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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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侖世
1955년생.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現 한국고전번역원) 졸업 / (주)인산가 회장, 《인산의학》 발행인, 전주대학교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월간조선》 명예기자 / 저서 《빈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네》 《자연치유에 몸을 맡겨라》 《내 안의 자연이 나를 살린다》 등
사진=게티이미지
盡日尋春不見春  芒鞋踏遍壟頭雲
  진일심춘불견춘  망혜답편롱두운
 
  歸來笑拈梅花嗅  春在枝頭已十分
  귀래소념매화후  춘재지두이십분

 
  봄을 찾아 온종일 헤매었어요
  산으로, 들로, 아지랑이 속으로
  짚신이 다 닳도록 헤매었어요
  헤매다 지쳐 절집으로 돌아오니
  문득, 코끝을 스치는 매화 향기
  아아! 나는 그만 웃어버렸지요
  뜰 앞 매화나무 가지 끝에서
  봄은 꽃으로 피어 웃고 있네요.

 
 
  이 시(詩)는 ‘온종일 봄을 찾아 헤맸으나 만나지 못했네(盡日尋春不見春)’라는 제목의 오도송(悟道頌)으로, 작자는 알 수 없다.
 
  남송(南宋)의 유학자 나대경(羅大經·1196~1242년)이 지은 《학림옥로(鶴林玉露)》(1251년 펴냄) 권 6에 ‘이름 모를 비구니(比丘尼)의 오도송’으로 실려 있고, 또 다른 자료에는 지은이에 대해 당(唐)나라 때의 비구니 ‘무진장(無盡藏)’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어떤 이는, 송나라 때의 요연(了然) 비구니의 오도송이라고 제시한 바 있다. 요연 스님의 법호(法號)는 지통(志通)이고, 태주(台州) 백련사(白蓮寺)로 출가했으며 이십 년간 천태교학(天台敎學)을 강연했다는 이야기가 《예지종기(預知終期)》라는 문헌의 기록으로 전해온다.
 
  아무튼 이 시는 중국의 당송(唐宋) 시대에 살았던 한 비구니가 오랜 수행 끝에 마침내 도를 깨닫고 그 ‘깨달음의 기쁨을 노래한 오도송’이라는 것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도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다”
 
  시기상 세상에 봄이 오는 것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전령(傳令)은 매화(梅花)다.
 
  지은이는, 어느 날 봄이 온다고 하기에 봄은 어디에서 오고 어떤 모습으로 올지 궁금한 나머지 봄을 만나보러 문밖을 나서서 온천지를 헤매고 돌아다녔으나 끝내 봄을 만나지 못하고 지친 걸음으로 돌아왔다. 한데 숨을 고르다가 문득 코끝을 스치는 짙은 매화 향기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봄이 어느새 성큼 다가와 뜰 앞 매화나무 가지 끝에서 활짝 웃고 있는 게 아닌가? 지은이의 입가에는 ‘부처님께서 꽃을 들어 보이자, 제자 가섭(迦葉)이 미소 지었다’라는 그 세기(世紀)의 ‘염화미소(拈花微笑)’가 잔잔하게 번졌다.
 
  ‘깨달음을 밖에서 구할 게 아니라 이미 내 안에 갖추어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라는 불변(不變)의 진리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오도송이라 하겠다.
 
  ‘도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다(道不遠人)’라는 말은 《중용(中庸)》 제13장에 보이는 공자(孔子) 가르침의 한 부분이다. ‘도불원인(道不遠人)이니 인지위도이원인(人之爲道而遠人)이면 불가이위도(不可以爲道)라’, 즉 “사람이 도를 닦는다고 하면서 인간의 삶과 거리가 멀다면 그것은 인류에게 더없이 소중한 진정한 도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가르침이다.
 
  우리나라 고유의 선도(仙道), 즉 풍류도(風流道)의 비조(鼻祖)로 알려진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미상) 선생은 왕명(王命)으로 지은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지리산 쌍계사 진감국사(眞鑑國師·774~850년) 비문을 통해 ‘진리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고 사람은 나라가 다르다고 해서 다르지 않다(道不遠人 人無異國)’라고 거듭 강조했다.
 
  고운 선생은 또한 속리산(俗離山)에 갔다가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이 도를 멀리하고, 산은 세상을 멀리하지 않는데 세상이 산을 멀리 하네(道不遠人人遠道 山非離俗俗離山)”라는 시를 읊었다. 여기서 ‘속리산’이란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전해온다.
 
  이 시구는 조선 중기 속리산에 주석(駐錫)했던 대곡성운(大谷成運)의 제자로 알려진 백호(白湖) 임제(林悌·1549~1587년)가 어느 해, 스승이 은거하고 있던 속리산 자락의 모현암(慕賢庵)으로 찾아왔다가 남긴 시의 한 구절이라는 설도 있다.
 
 
  대자유의 자재로운 삶
 
  어쨌든 도불원인(道不遠人)이란 말은 ‘도는 인간에게서 따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닌 만큼 도를 멀리서 찾지 말라’라는 의미를 담은 가르침이라 하겠다.
 
  ‘봄을 찾는다’라는 것은 수심수도(修心修道)를 통해 참된 자아(眞我), 즉 법신(法身)을 체득한다는 의미다. 좀 더 부연해 설명하자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제시한 바른길을 찾는다(求道)’라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심춘견춘(尋春見春), 즉 봄을 찾아 나서서 봄을 만났다는 것은 마음을 닦아 진여자성(眞如自性), 즉 내 안의 여래(如來)를 만나서 그 여래와 하나 되어 해탈(解脫) 자재(自在)의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깨달음의 노래(悟道頌)’라 하겠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끝없이 나고 죽는 일을 반복하는 윤회(輪回)의 고통에서 벗어나(解脫) 대자유의 자재로운 삶을 누리려면 윤회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된 어둠(無明)을 밝힐 등불이 필요하리라.
 

  구도자에게 있어서 오도견성(悟道見性)은, 석가모니 부처 이래 세상 사람들의 정신적 어둠을 밝히기 위해 가섭, 달마(達摩), 혜능(惠能) 등 역대 조사(祖師)들을 통해 전한 진리의 등불(法燈)을 전해 받아 제 어둠을 밝혀 오랜 세월 어둠 속을 전전한 미망(迷妄)의 삶을 끝내고 밝은 세상, 건강한 세상, 행복한 세상에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인생의 전기(轉機)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해 깨달음은, 육신의 삶을 영위하는 한 피할 수 없는 고통의 바다(苦海)에서의 항해를 끝내고 저 언덕으로 올라가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樂園)에서 즐겁고 복된 삶을 누릴 수 있는 ‘삶의 대반전’의 계기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세상 사람 대부분은 태양보다도 더 밝은 빛으로 세상에 와서 세상의 어둠을 밝혀 어둠 속에 헤매는 세상 사람들을 대명천지(大明天地)로 인도하는 성인(聖人)들의 가르침을 외면하거나 잘못 이해하여 여전히 캄캄한 어둠의 세상에서,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오도송은 세상 사람들의 어둠을 밝히는 진리의 등불이라 하겠다.
 
  ‘불의 해’인 병오(丙午)년 봄을 맞아, 어느 비구니의 오도송으로 전해진 ‘진리의 등불(法燈)’을 전해 받아 제 마음속의 등잔 심지(自燈)에 불을 붙여 제 어둠을 밝혀 밝은 사람으로 거듭나서 세상을 밝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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