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세의 溫故知新 | 달은 뭇별들과 밝음을 다투지 않는다

  • 글 : 김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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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侖世
1955년생.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現 한국고전번역원) 졸업 / (주)인산가 회장, 《인산의학》 발행인, 전주대학교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월간조선》 명예기자 / 저서 《빈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네》 《자연치유에 몸을 맡겨라》 《내 안의 자연이 나를 살린다》 등
사진=게티이미지
雲斂千峯靜  江空夜氣淸  孤懸惟一照  悵望却多情
  운렴천봉정  강공야기청  고현유일조  창망각다정
 
  天上無圓缺  人間有晦明  寧從高樹隱  莫許衆星爭
  천상무원결  인간유회명  영종고수은  막허중성쟁

 
  구름 걷히니 일천 봉우리 드러나고
  텅 빈 강, 밤기운이 맑구나
  외로이 뜬 둥근달, 환하게 비추는데
  하염없이 바라보니 문득 다정하여라
  달은 이지러지거나 둥글어지지 않지만
  인간에게는 그믐달, 보름달로 보이나니
  차라리 높은 나무 뒤로 자취를 감출망정
  뭇별들과 밝음을 다투지는 아니하리.

 
 
  조선 중기의 유학자이자 도학(道學)의 태두로 알려진 구봉(龜峯) 송익필(宋翼弼·1534~1599년) 선생의 ‘달을 바라보며 읊다(對月吟)’라는 제목의 시이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라는 등의 많은 노래가 말해주듯 세상의 수많은 묵객(墨客)이 달을 노래했으나 육안(肉眼)으로 보이는 달을 보고 달을 찬미했을 뿐 구봉 선생처럼 탁월한 혜안(慧眼)과 깊은 통찰력으로 달의 실상(實相)과 그 깊은 의미에 대해 읊은 이는 역사상 찾아보기 어렵다.
 
  구봉 선생의 이 시는 세상의 묵객 중 유일무이하게 달의 실상을 마치 천문학자가 천체 관측기기로 관찰이라도 한 듯이 여실(如實)하게 보고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달의 의미와 가치를 아름다운 언어로 그림을 그리듯 표현한 시다.
 

  어두운 밤하늘을 밝히는 것은 무수히 많은 별이 아니라 하늘 한복판에 떠 있는 하나의 둥글고 밝은 달이다. 어둠을 밝히며 둥근달이 솟아오르면 밤하늘의 별들은 빛을 잃고 존재감이 약화하기 마련인데, 이것은 마치 시방삼세(十方三世)를 거울 들여다보듯 환히 관조하는, 태양처럼 밝은 존재인 대각자(大覺者) 성인(聖人)의 출현과 같은 것이리라.
 
  석가모니 부처와 예수 그리스도, 관음불(觀音佛), 노자(老子)와 공자(孔子) 등 세상에 다녀간 성인들께서 전한 경전(經典) 속에는 인류의 무명(無明)을 밝히는 ‘빛의 언어’가 가득하다.
 
 
  구봉, 제자들에게 스스로 깨달을 것을 강조
 
  구봉 선생은 어둠을 밝히며 솟아오르는 밝은 달에 자신을 빗대 밝은 달의 등장으로 인해 달 뒤편으로 물러서는 뭇별과 결코 밝음을 다투지 않고 차라리 높은 나무 뒤로 숨겠다고 다짐한다. 실제로 구봉 선생은 조선 중기에 태어나 당시의 경직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서얼(庶孼) 신분 탓에 제대로 된 벼슬길로 나아가 정치적 이상(理想)을 펴지 못하고 초야에 파묻혀 야인(野人)으로 평생을 보낸 비운(悲運)의 주인공이다.
 
  구봉 선생은 시와 문장에 모두 뛰어나 이산해(李山海)·최경창(崔慶昌)·백광훈(白光勳)·최립(崔岦)·이순인(李純仁)·윤탁연(尹卓然)·하응림(河應臨) 등과 함께 선조 임금 시절 8대 문장가 중 한 사람으로 문명(文名)을 날렸다.
 
  그는 서얼 출신인 데다 아버지 송사련(宋祀連)의 죄로 인해 과거를 볼 수 없었다. 출셋길이 막히게 되자 그는 과거를 단념하고 경기도 고양(高陽) 구봉산 밑에서 학문을 닦으며 후진을 양성했다. 그의 문하에서 김장생(金長生)·김집(金集)·정엽(鄭曄)·서성(徐渻)·정홍명(鄭弘溟)·강찬(姜澯)·김반(金槃)·허우(許雨)·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윤증(尹拯) 등이 배출됐다.
 
  구봉 선생은 유생(儒生)과 문인들에게 정답을 가르쳐주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깨달을 것을 강조했다. 배우고자 찾아온 유생들에게 자상하게 설명해 주는 법이 없었으며, 스스로 정신을 집중해 다시 읽고 생각해 보도록 했다. 지식을 습득하는 데 있어 사색을 중요시하되, 연구자 스스로 노력하도록 강조한 것은 선생에게만 의지하는 주입식 교육이 자칫 학생들의 창의성을 저해할 수 있는 폐단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자와 맹자, 사서육경(四書六經), 주자(朱子), 태극설(太極說) 등을 강의함에 있어서도 무조건 수용해 옳다고 하기 전에 왜 옳은가에 대해 참학(參學)하는 유생이나 문인들 스스로 생각하게 했다.
 
  구봉 선생은 스승 없이 독학(獨學)으로 공부했으나 성리학을 깊이 연구해 이에 통달했는데 율곡 선생이 그를 평하기를 “성리학을 논할 만한 자는 오직 송익필 형제뿐”이라고 할 정도였다.
 
 
  “노년에도 독서에 힘써…”
 
  《조선왕조실록》 선조 19년 기록은 “송익필은 비록 송사련의 아들이나, 노년(老年)에도 독서에 힘써 학문이 깊고 경서(經書)에 밝았으며 언행이 바르고 곧아 아비의 허물을 덮을 만하였다. 이리하여 이이(李珥), 성혼(成渾)도 모두 존경하는 친구로 여겨… 이이가 서얼의 임용을 허가하자고 주장한 의도는 다만 훌륭한 인물을 구하여 임금을 보필하자는 것일 뿐, 개인적으로 송익필에게 사심(私心)을 둔 것은 아니었는데도 사람들은 대부분 이이의 과실로 돌린다”라고 평했다.
 

  구봉 선생은 시에 있어서는 이백(李白)을 표준으로 했고, 문장에 있어서는 좌구명(左丘明)과 사마천(司馬遷)을 위주로 했다. 비록 고관대작(高官大爵)이라도 한 번 친구로 사귀면 자(字)로 부르고 관직의 직함으로 부르지 않았다. 저서로는 《구봉집(龜峯集)》이 전한다.
 
  조선조의 대현(大賢)으로 손꼽히는 구봉 선생의 ‘달을 바라보며 읊다’라는 시구(詩句) 가운데 ‘하늘에서는 달이 이지러지거나 둥글어지지 않지만 인간 세상에서 볼 때에는 이지러져 그믐달이 되었다가 둥글어져 보름달로 빛을 발한다’라는 구절은 혜안으로만 볼 수 있는 달의 참모습이요, 세상 사람들의 ‘마음의 어둠’을 밝혀주는, 우주의 등불로서의 달을 노래한 훌륭한 법문(法門)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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