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사기》 읽기 ⑬

《사기》 속 최고의 유세객 소진(蘇秦)과 장의(張儀)

책사는 주군을 섬기지만, 유세객은 주군과 거래

  • 글 :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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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급 책략가는 자기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내지만, 유세객은 상황을 잘 읽어 내는 데 그칠 뿐
⊙ 소진, 연(燕)·조(趙)·한(韓)·위(魏)·제(濟)·초(楚)를 설득해 진(秦)에 맞서게 하는 합종책(合從策) 구사
⊙ 장의, 진(秦)나라 편에 서 6국의 합종책을 해체하고 연횡책(連橫策) 실현
⊙ 사마천 “소진과 장의는 나라를 기울게 하고 위험하게 만든 사내들[傾危之士]”

이한우
1961년생. 고려대 영문학과 졸업, 同 대학원 철학과 석사, 한국외국어대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 《조선일보》 문화부장, 단국대 인문아카데미 주임교수 역임
소진
책사(策士)와 유세객(遊說客)은 무엇보다 주군(主君)을 대하는 태도에서 큰 차이가 난다. 책사는 주군을 섬기지만, 유세객은 주군과 거래한다. 예를 들면 한(漢)나라 유방(劉邦)의 책사 장량(張良)은 유방을 섬기며 모책(謀策)을 내었지만 거래하지 않았다. 군신(君臣) 관계에 조금도 의심을 품게 하지 않았다. 반면에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는 덕망을 갖춘 주군을 골라 섬기려 하지 않고 당시의 정세 분석을 기반으로 거래를 시도했다. 물론 두 사람이 얻고자 한 것은 권세였다. 따라서 이 두 사람에게 인의(仁義)나 법치(法治)와 같은 비전이나 가치는 눈을 씻고 찾아보려야 찾을 수가 없다. 오직 승패와 주도권 장악이 있을 뿐이다. 어쩌면 그래서 소진과 장의는 더욱 현대적인 모습을 가진 인물들인지 모른다.
 
 
  소진·장의의 스승 귀곡자
 
 
귀곡자
《사기》의 두 사람 열전을 보면 모두 귀곡자(鬼谷子)라는 인물에게 학문을 배운 것으로 되어 있다. 귀곡자는 누구인가? 이 사람을 아는 것이 소진과 장의 두 사람의 특이한 행적을 이해하는 첫 번째 실마리가 된다. 먼저 간략한 정보를 보자.
 
  전국(戰國)시대 제(齊)나라 사람으로 영천(潁川)과 양성(陽城)의 귀곡 지방에 은둔해서 귀곡자 또는 귀곡선생이라 불렸다. 진(秦)나라와 초(楚)나라, 연(燕)나라, 조(趙)나라 등 7국이 천하의 패권(覇權)을 다투던 시대에 권모술수의 외교책을 우자(優者)의 도리라고 주장한 종횡가(縱橫家)이며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도 그의 제자였다고 한다.
 
  천지간의 현상은 천지를 생성하는 도(道)에 의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일정한 법칙에 지배된다고 보았으며,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동정 변화를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저서 《귀곡자》 한 권이 전해진다. 물론 이 책을 본인이 지었을 가능성은 희박하고 후대의 누군가가 정리 편집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중 핵심이 췌마(揣摩)이다. 췌(揣)란 상대의 본심을 헤아려 측량하는 것이고 마(摩)는 상대의 마음을 문질러 어루만져서 나의 뜻대로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권(權), 즉 상대의 말과 형세를 저울질하는 것이 나오고 이어서 모(謀), 즉 저울질한 결과를 바탕으로 꾀를 내어 책략을 세우는 것이다. 끝으로 결(決)이 나오는데 말 그대로 책략을 결단하여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소진과 장의의 유세 논리를 짚어 보면 여기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소진의 꿈은 부귀영화
 
  소진은 동주(東周) 낙양(雒陽) 사람이다. 동쪽으로 가서 제(齊)나라에서 스승을 섬겼고 또 귀곡선생에게 배웠다.
 
  고향을 떠나 여러 해를 떠돌았으나 큰 곤란만 겪다가 돌아왔다. 형제, 형수, 누이, 아내, 첩이 모두 그를 은근히 비웃으며 말했다.
 
  “주나라 사람의 풍속이란 농사일을 위주로 하고 상공업에 힘을 써서 10분의 2에 해당하는 이익을 올리는 것이 기본 의무이다. (그런데) 지금 너는 근본을 내버리고 입과 혀를 놀리는 것을 일삼았으니 곤궁에 빠진 것은 실로 마땅하지 않은가?”
 
  오직 입과 혀를 놀리는 것을 일삼았다는 말은 깊이 있는 사상이 아니라 세 치 혀로 출세하려는 소진을 정면으로 꾸짖은 것이다. 그러나 부귀영화를 향한 소진의 꿈은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소진은 마침내 방문을 잠그고 틀어박혀 책을 꺼내 훑어보다가 이렇게 말한다.
 
  “무릇 장부가 머리를 처박고 책을 읽는다 한들 그것으로 존귀함과 영예[尊榮]를 얻을 수 없다면 아무리 많이 읽는다 한들 실로 무슨 쓸모가 있는가?”
 

  이때 말하는 책이란 대개 제자백가(諸子百家), 그중에서도 유가(儒家)의 경전을 말한다. 이에 《주서(周書)》 〈음부(陰符)〉를 찾아내서 엎드려 그것을 읽었다. 이는 병가(兵家) 계통의 책이다. 1년 뒤에 췌마술(揣摩術)을 깨우치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라면 지금 시대 군주들에게 유세할 수 있겠다.”
 
  주나라 현왕(顯王)을 찾아가 유세하려고 했다. 그러나 현왕의 좌우 신하들은 모두 평소 소진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모두 다 그를 얕잡아보고 믿지 않았다.
 
  이에 소진은 본국 주나라를 떠나 천하 유세에 나선다. 첫 방문국은 진(秦)나라였다. 성과는 없었다. 그러나 〈소진 열전〉이 전하는 이 장면은 그 후 소진이 다른 나라에 가서도 행하는 유세의 전형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잘 음미할 필요가 있다.
 
  〈마침내 서쪽으로 가서 진나라에 이르렀다. (때마침) 진나라 효공(孝公)이 졸(卒)했다. (새로 임금이 된) 혜왕(惠王)에게 유세하여 말했다.
 
  “진나라는 사방이 요새지로 된 나라로 산들에 둘러싸이고 위수(渭水)가 띠처럼 이어졌으며 동쪽에는 함곡관과 황하(黃河)가 있고 서쪽에는 한중(漢中)이 있으며 남쪽에는 파(巴)와 촉(蜀)이 있고 북쪽에는 대마(代馬)( 註-【색은(索隱)】 살펴보건대 대군(代郡) 마읍(馬邑)을 말하는 것이다. 대군과 더불어 오랑캐 말의 이로움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가 있으니 이곳은 하늘이 내린 보고(註-【색은】 정현(鄭玄)이 말했다. “부(府)란 좋은 물건들을 쌓아 두는 곳간이다. 이곳을 높여 마치 하늘이 귀중한 물건들을 보관해 둔 하늘의 곳간이라고 말한 것이다”)입니다. 진나라에는 장부와 백성들이 많으니 병법을 가르치신다면 천하를 병탄하고 칭제(稱帝)하며 다스릴 수 있을 것입니다.”
 
  진나라 왕이 말했다.
 
  “(새도) 털과 깃이 다 자라기 전까지는 높이 날 수가 없다. 다스림의 이치(문리)가 밝아지기 전까지는 다른 나라를 병합해서는 안 된다.”
 
  (이때는) 바야흐로 상앙(商鞅·?~기원전 338년)을 죽이고 유세객[辯士]들을 싫어했기 때문에 (소진의 말을) 쓰지 않았다.〉

 
 
  책략가와 유세객
 
 
장의
소진은 일단 한 나라의 군주를 찾아가면 지형과 부국의 형세를 논한 다음에 군주의 마음을 설득한다. 그러나 이때처럼 군주가 스스로 나라의 방향을 잘 잡아 쥐고 있으면 소진의 유세 방식은 먹히지 않는다. 어쩌면 소진의 췌마술이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때 진나라 상황이 소진의 유세를 용납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일급 책략가와 유세객의 또 하나 차이는 상황과 관련해서이다. 일급 책략가는 자기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내는 데 반하여 유세객은 당시 상황을 잘 읽어 내는 데 그칠 뿐이다. 즉 유세객은 상황을 만들어 내는 사람은 아니라는 뜻이다.
 
  상앙만 하더라도 엄격히 말하면 법가를 바탕으로 한 책략가이지 소진이나 장의와 같은 떠돌이 유세객이 아니다. 그는 위(魏)나라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 진(秦)나라로 가서 부국강병 계책을 세워 대대적인 개혁 정책을 추진하여 훗날 진나라 제국이 탄생하는 밑바탕을 다진 사람이다. 오히려 관중(管仲)에 가까운 인물이라 할 것이다.
 
  진나라에서 혜왕의 마음을 얻지 못한 소진은 동쪽으로 조(趙)나라에 갔다. 조나라 숙후(肅侯)는 동생 성(成)을 재상(혹은 상국)으로 삼아 봉양군(奉陽君) 칭호를 내렸는데 봉양군은 소진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유세객은 바로 재상의 자리를 위협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합종책의 문이 열리다
 
  조나라를 떠난 소진은 연나라로 가서 1년여를 떠돈 후에 드디어 문후(文侯)를 만나 볼 수 있었다. 문후는 서쪽의 조나라와 남쪽의 제나라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던 터라 소진의 형세론에 따른 겁박이 쉽게 먹혀들었다. 먼저 소진은 연나라는 조나라와 합종(合從)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유세하였다.
 
  〈“지금 조나라가 연나라를 친다면 호령을 낸 지 열흘도 채 못 되어 수십만 군사가 동원(東垣·조나라 읍)에 군진을 펼칠 것입니다. 호타하와 역수를 건넌 지 나흘이나 닷새도 못 되어 연나라 국도(國都)에 도달합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진나라가 연나라를 치면 1000리 밖에서 싸우게 되고 조나라가 연나라를 치면 100리 안에서 싸운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왕께서는) 무릇 100리 밖의 적은 걱정하지 않으면서 1000리 밖의 적을 중요시하신다면 이보다 그릇된 계책은 없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바라건대 대왕께서는 조나라와 합종하소서[從親]! 천하가 하나 된다면 연나라에는 반드시 근심거리가 없을 것입니다.”
 
  문후가 말했다.
 
  “그대 말이 옳다만 그러나 내 나라는 작아서 서쪽에서는 강성한 조나라가 핍박하고 남쪽으로는 제나라와 가깝다. 제나라와 조나라는 둘 다 강대국이므로 그대가 반드시 합종을 통해 연나라를 안정시킬 수만 있다면 과인은 온 나라를 들어 그대를 따르겠다.”〉

 
 
  “닭 부리가 될지언정 소꼬리는 되지 말라”
 
  드디어 날개를 단 소진은 조나라로 간다. 마침 소진을 꺼리던 봉양군은 이미 죽었기 때문에 곧바로 조나라 숙후에게 유세하였다. 그 핵심은 이 말이다.
 
  “진나라가 천하에 방해물로 여기는 나라로 조나라만 한 나라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진나라가 감히 군사를 동원해 조나라를 치지 않는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한(韓)나라와 위(魏)나라가 그 후방을 도모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한나라와 위나라는 조나라의 남쪽 장벽인 셈입니다.”
 
  조나라로 하여금 한나라 및 위나라와 합종해야 한다는 말이다. 조나라 숙후도 그 말을 따르겠다며 많은 선물을 내려주고 진나라를 제외한 육국의 합종을 부탁하였다.
 
  다음 행선지는 분명하다. 소진은 먼저 한나라 선혜왕(宣惠王)을 찾아가 같은 방식으로 유세하였다. 여기에는 췌마술을 발휘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신이 듣건대 속담에 ‘차라리 닭 부리가 될지언정 소꼬리는 되지 말라(寧爲鷄口 無爲牛後)’고 했는데 이제 서쪽을 향해 투항해 진나라를 신하로서 섬기는 것이 소꼬리와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무릇 대왕의 뛰어남에다가 막강한 한나라의 군대를 갖고 있으면서 소꼬리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는 것은 신이 남몰래 대왕을 위해 부끄럽게 여깁니다.”
 
  이에 한나라 임금은 발끈하며 안색이 바뀌고 팔을 걷어붙이고 눈을 부라리며 칼을 만지작거리면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탄식하듯 말했다.
 
  “과인이 비록 불초하나 반드시 진나라를 섬기지 않을 것이다. 지금 당신은 조나라 임금의 가르침을 알려 나를 일깨웠다. 나는 삼가 사직을 받들어 그대 계책을 따르겠노라.”
 
  이어서 위나라 양왕(襄王)을 찾았다. 일사천리였다. 그리고 소진은 동쪽으로 가서 제나라 선왕(宣王)을 만나 유세하였다. 선왕도 소진의 뜻을 따르겠다고 말했다. 남은 것은 남쪽의 강대한 초(楚)나라 하나뿐이었다. 가서 위왕(威王)을 만나 유세하였다. 역시 형세론이다.
 
  “진나라가 장애물로 여기는 나라 중에 초나라만 한 나라가 없습니다. 초나라가 강해지면 진나라는 약해질 것이고 진나라가 강해지면 초나라는 약해질 것이기 때문에 이 두 세력은 양립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대왕을 위해 계책을 생각해 보건대 여섯 나라가 합종으로 서로 화친해 진나라를 고립시키는 것보다 더 좋은 계책은 없습니다.”
 
 
  소진, 6국의 재상을 겸하다
 
  여기에 육국의 패권을 쥐고 싶은 위왕의 마음을 췌마하여 이렇게 덧붙였다.
 
  “대왕께서 진실로 신의 의견을 들어주신다면 신은 산동의 나라들이 대왕께 사계절의 공물을 바치고 대왕의 밝은 조칙을 받들도록 하며 그들의 사직과 종묘를 대왕께 맡기고 병사를 훈련시키고 무기를 만들어 대왕께서 그들을 부리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대왕께서 진실로 신의 어리석은 계책[愚計]을 제대로 쓰시게 되면 한나라, 위나라, 제나라, 연나라, 조나라의 기묘한 음악과 미인들이 반드시 대왕의 후궁에 가득 차고 연과 대(代)에서 나는 낙타와 좋은 말들이 반드시 대왕의 마구간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합종이 이루어지면 초나라가 왕(王)이 되고, 연횡(連橫)이 이루어지면 진나라가 제(帝)가 됩니다.”
 
  위왕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해서 여섯 나라가 합종책을 취해 힘을 모았고 소진은 합종 동맹의 수장[從約長]이 됐고 여섯 나라 재상을 겸하였다. 이는 임금을 능가하는 권세였다. 이때 소진의 위엄에 대한 사마천의 묘사이다.
 
  〈북쪽으로 조왕에게 보고하러 가다가 마침내 낙양을 지나게 되었는데 따르는 마차와 짐을 실은 각종 수레들을 비롯해 제후들마다 소진을 모실 사자들을 가득 보내 주어 전송하는 자들이 너무 많아서 사람들은 왕의 행차에 견줄 정도였다.
 
  주나라 현왕은 이를 듣고서 겁이 나 (소진이 지나가는) 도로를 청소하고 교외까지 사람을 보내 위로했다.
 
  소진의 형제, 처, 형수는 곁눈질로 볼 뿐 감히 고개를 들어 바로 보지 못하고 엎드려 식사 시중을 들었다. 소진이 웃으면서 형수에게 말했다.
 
  “전에는 거만하시더니 지금은 어찌 이리 공손하십니까?”
 
  형수는 뱀처럼 몸을 굽혀 바닥을 기면서 얼굴을 땅에 대고 사죄하며 말했다.
 
  “계자(季子·소진의 자)께서 지위가 높고 돈이 많은 것을 본 때문이지요.”
 
  소진은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이 한 사람 몸이 부귀해지니 친척들이 두려워하고 가난하고 빈천할 때는 업신여기는데 하물며 남들이야 어떻겠는가! 만일 나에게 낙양성 근처에 밭 두 이랑만 있었던들 내가 어찌 육국 재상의 인장을 찰 수 있었겠는가?”
 
  이에 천금을 풀어 종족과 붕우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합종책의 빛과 그림자
 
  소진의 합종책은 큰 위력을 발휘하였다. 적어도 그로부터 15년 동안 진나라는 동쪽을 넘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겨우 연결해 놓은 합종책은 오래갈 수 없었다. 진나라의 외교 공세도 만만치 않았고 제나라가 조나라와 연나라를 공격하면서 합종책은 깨지려 하고 있었다. 이에 다시 소진이 제나라를 찾아가고 연나라를 방문하여 틈을 메우려 했지만 연왕은 그를 냉대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소진은 제나라로 찾아갔다. 거기서 객경(客卿)으로 대우를 받으며 말년을 보낼 셈이었지만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제나라 대부들 중에 소진과 총애를 다투는 자가 많아지자 그중 누군가가 사람을 시켜 소진을 찔렀으나 죽이지 못하고 깊은 부상을 입히고서 달아났다.
 
  제나라 왕이 사람을 시켜 소진을 찌른 자객을 찾게 했으나 찾아내지 못했다. 소진이 장차 죽음을 앞두고 마침내 제나라 왕에게 일러 말했다.
 
  “신이 죽으면 신을 거열형(車裂刑)에 처해 저잣거리에서 조리를 돌리시고 ‘소진이 연나라를 위해 제나라에서 난을 일으켰다’라고 말하십시오. 이렇게 하면 신을 죽이려던 자를 반드시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그 말대로 했더니 소진을 죽이려 했던 자가 과연 자수했고 제나라 왕은 그자를 잡아 가두고는 주살했다. 소진은 죽는 순간까지도 자기를 죽인 자를 찾아내는 방법을 제나라 왕에게 일깨워 주었던 것이다.
 
  그의 죽음과 더불어 합종책도 수명을 마쳐 가고 있었다. 그 자리를 동문수학했던 장의의 연횡책이 메워 갔다. 사마천은 소진에 대해 애정을 갖고서 이렇게 평하였다.
 
  “소진에 대해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은 서로 다른 것이 많은데 이는 서로 다른 시대 때 일들 중에서 소진과 비슷한 일들은 모두 소진에게 갖다 붙인 때문이다. 무릇 소진이 여염집에서 일어나 여섯 나라를 연결해 합종을 맺게 한 것은 그의 지혜가 남보다 뛰어났음을 보여 준다. 나는 그래서 그가 행한 일들을 시간 순서에 따라 기록하여 그 혼자 악명을 덮어쓰지 않도록 하였다.”
 
  사마천의 시각 또한 매우 현대적임을 확인할 수 있다.
 
  장의는 위(魏)나라 사람이다. 애초에 일찍이 소진과 함께 귀곡선생을 섬기면서 술(術·종횡술)을 배웠는데 소진은 스스로 장의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겼다.
 
  장의는 이미 학업을 마치자 제후들에게 유세했다. 일찍이 초나라 재상을 따라서 술을 마시다가 얼마 후에 초나라 재상이 벽옥(璧玉)을 잃어버린 일이 있었는데 재상 문하에서는 장의를 의심하여 말했다.
 
  “의(儀)는 가난하고 이렇다 할 행실이 없으니 분명 이 사람이 재상의 벽옥을 훔쳤을 것입니다.”
 
  함께 장의를 붙잡아 수백 대 매질을 가했으나 자복하지 않자 그를 풀어 주었다. 그 아내가 말했다.
 
  “아이고! 당신이 책 읽어 유세하지 않았더라면 어찌 이런 욕을 당했겠소?”
 
  장의가 그 아내에게 말했다.
 
  “내 혀가 아직 그대로 있는지 없는지 봐주시오!”
 
  그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혀는 그대로 있네요.”
 
  장의가 말했다.
 
  “그럼 됐소.”
 
 
  소진, 장의를 진나라로 보내다
 
  소진은 이미 조나라 왕에게 유세하여 서로 합종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그러나 진나라가 제후들을 공격해 약속이 깨져 뒤에 서로 등을 돌리게 될 것을 두려워했다. 소진은 아무리 생각해도 진나라에서 기용될 만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아 마침내 사람을 시켜 슬쩍 장의에게 권유해 말했다.
 
  “그대는 처음에 소진과 잘 지냈건만 지금 소진은 이미 요직을 맡고 있소. 그대는 어째서 그를 찾아가 그대가 원하는 것을 부탁하지 않는 것이오?”
 
  장의는 이에 조나라로 가서 이름을 말하고 소진을 만날 것을 청했다. 소진은 마침내 문지기에게 일러 그를 들여보내지 말고 또 떠나가지도 못하게 하면서 며칠을 보냈다. 얼마 후에 소진을 만나 볼 수 있었는데 소진은 장의를 당(堂) 아래에 앉게 하고 하인이나 첩들이 먹는 음식을 내려 주었다. 그리고는 꼬치꼬치 짚어 가며 그를 꾸짖어 말했다.
 
  “자네같이 재능을 가진 자가 스스로를 이렇게 곤경과 치욕스러운 지경에 이르게 하다니! 내 어찌 임금에게 말을 하여 그대를 부귀하게 만들 수 없겠는가? 하지만 그대는 거두어 쓰기에는 부족한 사람인 것 같네!”
 
  장의의 부탁을 거절하고는 떠나보냈다. 장의가 이곳에 올 때는 스스로 옛 친구의 도움을 받으리라 여겼는데 도리어 모욕을 당하자 화가 나서 생각하기를, 섬길 만한 제후국은 없지만 오직 진나라라면 조나라를 힘들게 할 수 있으리라 여겨 마침내 드디어 진나라로 들어갔다.
 
 
  소진, 몰래 장의를 돕다
 
  소진은 얼마 뒤에 그의 사인(舍人)에게 고하여 말했다.
 
  “장의는 천하의 유능한 인재이니 아마 나는 그만 못할 것이다. 지금은 내가 운이 좋아 먼저 등용된 것일 뿐이고 진나라 실권(實權)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장의뿐일 것이다. 하지만 가난하여 누군가를 매개로 해서 벼슬길에 나아갈 수가 없다. 나는 그가 작은 이익에 안주하여 큰 뜻을 이루지 못할까 걱정이 되어 그를 불러서 모욕을 주어 그의 뜻을 격발시킨 것이다. 자네는 나를 대신해서 은밀하게 그를 보살피도록 하라!”
 
  마침내 조나라 왕에게 말을 해서 돈과 폐백과 수레와 말을 제공받아 사람을 시켜 몰래 장의를 뒤따르게 한 다음 그와 함께 먹고 자면서 차츰 그와 가까워지면 수레와 말과 돈을 주어 장의가 쓰려고 하는 것은 바로바로 제공해 주되 소진이 했다는 말은 하지 못하게 했다.
 
  장의는 드디어 진나라 혜왕을 알현할 수 있었다. 혜왕은 그를 객경으로 삼고 함께 제후를 치는 일을 모의했다. 이제 혜왕도 날개를 펼칠 때가 되었다고 여길 때 마침 장의가 찾아온 것이다.
 
  소진의 사인이 마침내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려 했다. 장의가 말했다.
 
  “그대 덕에 좋은 자리를 얻게 되어 이제 막 그 은덕을 갚으려는데 무엇 때문에 떠나려 하는 건가?”
 

  사인이 말했다.
 
  “신은 선생을 알지 못하고 선생을 알아주는 분은 곧 소군(蘇君)이십니다. 소군께서는 진나라가 조나라를 칠 경우 합종의 맹약이 깨질까 걱정하시면서 선생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능히 진나라 실권을 잡을 사람이 없다고 여기시어 일부러 선생을 화나게 자극한 다음에 신으로 하여금 몰래 선생께서 필요로 하는 것들을 대주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소군의 계모(計謀)입니다. 그런데 지금 선생께서 이미 기용되셨으니 저는 돌아가 이를 알리고자 합니다.”
 
  장의가 말했다.
 
  “아! 이는 나의 유세술에 있는 것인데도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으니 내가 소군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오. 내가 또 이제 막 기용되었으니 어찌 조나라를 도모할 수 있겠소? 나를 대신해 소군에게 감사하다고 전해 주시오. 소군이 살아 있는 한 이 장의가 감히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또 소군이 있는 한 이 장의가 감히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훗날) 장의가 이미 진나라 재상이 되자 초나라 재상에게 격문을 지어 알렸다.
 
  “애초에 내가 너와 술을 마셨을 때 나는 벽옥을 훔치지 않았는데 너는 나를 매질하였다. 너는 네 나라를 잘 지켜라. 내가 반대로 장차 네 성을 훔칠 것이다!”
 
 
  장의, 초나라와 제나라를 갈라놓다
 
  이미 진나라 객경을 거쳐 재상이 된 장의는 소진의 유세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이때 장의의 모습은 유세객보다는 책사에 가깝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제나라와 초나라를 갈라 놓은 작업이었다.
 
  〈진나라가 제나라를 치려 하자 제나라와 초나라가 합종을 통해 화친했다. 이에 장의는 초나라에 가서 상황을 살피려 했다. 초나라 회왕(懷王)은 장의가 온다는 말을 듣고서 최상급 객사를 비워 놓고 몸소 그를 안내하고서 말했다.
 
  “이곳은 외지고 누추한 나라인데 그대는 무엇으로 가르침을 주려 하는가?”
 
  장의가 초왕에게 유세해 말했다.
 
  “대왕께서 진심으로 신의 말씀을 듣고서 관문을 닫고 제나라와 맺은 맹약을 끊으신다면 신은 상(商)과 오(於) 땅 600리를 초나라에 바치고 진나라 여자를 대왕을 위해 청소나 하는[箕帚 ·기추] 첩이 되게 할 것이며 진나라와 초나라는 서로 며느리를 맞이하고 딸을 시집보내는 사이가 되어 영원히 형제 나라가 되게 하겠습니다. 북쪽으로 제나라를 약화시키고 서쪽으로 진나라를 이롭게 하는 계책 중에 이보다 좋은 것은 없습니다.”
 
  초나라 왕은 크게 기뻐하며 이를 받아들였다. 여러 신하들도 모두 축하했으나 진진(陳軫)만 홀로 조의를 표했다. 초나라 왕이 화를 내며 말했다.
 
  “과인이 군대를 일으키지 않고서도 600리 땅을 얻게 되어 여러 신하들이 모두 축하를 올리는데 그대 홀로 조의를 표하니 어째서인가?”
 
  진진이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신이 살펴보건대 상 땅과 오 땅은 얻을 수 없고 제나라와 진나라는 연합할 것입니다. 제나라와 진나라가 연합하면 반드시 근심이 닥칠 것입니다.”
 
  초나라 왕이 말했다.
 
  “무슨 근거가 있는가?”
 
  진진이 대답해 말했다.
 
  “저 진나라가 초나라를 중시하는 까닭은 제나라와 사이가 좋기 때문입니다. 지금 관문을 닫고 제나라와 맹약을 끊으면 초나라는 고립됩니다. 진나라가 뭐하러 고립된 나라를 탐내어 상과 오 땅 600리를 준다는 말입니까? 장의는 진나라로 돌아가면 반드시 왕을 배반할 것이니 이는 북쪽으로 제나라와 친교를 끊고 서쪽으로 진나라로부터 걱정거리를 불러오는 일이므로 진나라와 제나라가 반드시 함께 쳐들어올 것입니다. 왕을 위해 가장 좋은 계책은 몰래 제나라와 함께하면서도 겉으로는 제나라와 관계를 끊는 척하고 장의에게 사람을 딸려 보내는 것입니다. 정말로 우리에게 땅을 주면 그때 가서 제나라와 관계를 끊어도 늦지 않습니다. 또 땅을 주지 않으면 은밀히 제나라와 연합하여 계책을 짜면 됩니다.”
 
  초나라 왕이 말했다.
 
  “바라건대 진자(陳子)는 입 닥치고 더 이상 말하지 말고 과인이 땅을 얻는 것이나 기다려라!”
 
  마침내 재상 인장을 장의에게 주고 그에게 두터운 선물도 주었다. 이에 드디어 관문을 닫고 제나라와 맹약을 깨고서 장군 한 명을 장의에게 딸려 보냈다.〉

 
  땅 600리를 준다는 것은 장의의 속임수였음이 드러난다. 이에 분노한 초나라가 진나라를 쳤으나 초나라는 대패했다. 이때 장의는 초나라로 찾아가 세 치 혀로 오히려 초나라 왕의 환심을 사는 데 성공한다.
 
  이어 한나라, 제나라, 조나라, 연나라를 차례로 방문하여 유세를 펼치는데 그 방식은 소진에 비해 훨씬 단조롭다. 다르게 표현하면 논리가 명쾌하다. 진나라와 연횡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득실(得失)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지금 조나라는 진나라의 군현(郡縣)이나 마찬가지여서 감히 함부로 군사를 일으켜 공벌(攻伐)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왕께서 진나라를 섬기면 진나라 왕은 반드시 기뻐할 것이고 조나라는 감히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니 이렇게 되면 서쪽으로 강한 진나라의 원조가 있고 남쪽으로 제나라와 조나라로 인한 걱정거리가 없어집니다. 이 때문에 바라건대 대왕께서는 이 점을 깊이 생각하셔야 할 것입니다.”
 
  제나라와 조나라를 두려워하는 연왕의 마음을 정확히 파고든 것이다.
 
 
  “나라를 기울게 한 사내들”
 
  합종은 사라지고 연횡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장의는 그후 위나라에서 재상이 되기도 하였다. 소진의 비극적 죽음과 달리 장의는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났다. 사마천은 장의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평하였다.
 
  “삼진[三晉·춘추 진(晉)나라가 해체된 후 들어선 조(趙)·위(魏)·한(韓)나라]에는 권모술수와 임기응변[權變]에 정통한 유세객들이 많았다. 저 합종과 연횡을 말하여 진나라를 강하게 만든 자들은 대체로 다 삼진 사람들이다. 저 장의가 일을 행한 것은 소진보다 더 심했는데도 세상 사람들이 소진을 더 미워하는 것은 그가 먼저 죽었기 때문에 장의가 그의 단점을 부풀리고 들추어 내어 자기 주장을 떠받쳐 연횡의 도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두 사람은 참으로 나라를 기울게 하고 위험하게 만든 사내들[傾危之士·경위지사]이었도다!”
 
  장량이나 관중 같은 책사는 사직지신(社稷之臣)이었지만 소진과 장의는 기껏해야 경위지사였다는 사마천의 평가가 통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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