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대중문화 속으로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로 본 70년대생들

2차 베이비붐 세대, X 세대, 낀대, 마처 세대, 영포티, 진보대학생

  • 글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글자 크기 조정
  • 스크랩
  • 본문 음성 듣기
  • 글자 크기 조정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 IMF 사태의 직격탄 맞고, 국가·기업의 보호받기를 희구… 좌파 정당 지지, 반기업 정서
⊙ “90년대 학번,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주의 세대의 등장을 알린 ‘낀낀 세대’”(김호기 연세대 교수)
⊙ 소설·웹툰 본 사람들은 인물에 대한 통찰은 사라지고 중장년을 위한 자기 연민 콘텐츠에 가까워졌다고 비판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2025년 11월 30일 방영을 마친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이하 〈김부장 이야기〉)〉는 사실 높은 시청률을 보인 드라마는 아니다. 10월 25일 1회 방송이 전국 시청률 2.9%(닐슨코리아 기준), 가장 높은 시청률을 보인 11월 30일 마지막 12회 방송도 7.6%에 그쳤다. 1회 대비 3배 가까이 시청률이 올랐으니 꾸준히 화제가 되었다는 점은 알 수 있지만, 종합편성채널 드라마라는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딱히 성공작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당장 2025년에 시작해 방영을 마친 6편의 JTBC 토일 드라마 중에서도 〈김부장 이야기〉는 최고 시청률 기준으로 꼴찌다.
 
  JTBC와 동시 송출(送出)된 OTT 넷플릭스에선 그나마 나은 성적이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성과까진 또 아니다. 10월 셋째 주 넷플릭스 TV쇼 부문 한국 차트에 3위로 첫 등장, 입소문을 타고 10월 넷째 주와 11월 첫째 주에 1위를 차지했지만 이후 도로 내려가 3~4위를 오가는 상황. 동 시기 〈태풍상사〉나 〈모범택시〉 시즌3 등 여타 TV 드라마들이 등장해 인기가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상업적으로는 ‘그럭저럭 성공한 드라마’
 
  종합해 보면 ‘그럭저럭 성공한 드라마’ 정도가 냉정한 상업적 평가다. 그러나 〈김부장 이야기〉는 이와 관계없이 2025년 국내 언론미디어에서 가장 많은 분석을 쏟아낸 TV 드라마 중 하나이자 나름 진지한 사회적 화두까지 끌어내는 수준의 파급력을 보여준 드라마이기도 하다. 2025년 한국 TV 드라마 시장에서 상반기 화제성 고점(高點)이 〈폭싹 속았수다〉라면 하반기는 〈김부장 이야기〉라는 평가가 나오는 정도다.
 
  드라마 종영 바로 다음 날인 12월 1일 하루 동안만 해도 포털사이트 네이버 뉴스에 게시된 〈김부장 이야기〉 관련 기사 수는 114건에 달했다. 종영 직후 하루 동안만도 이 정도인데 6주에 걸친 방영 기간엔 과연 어느 수준이었을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어찌 됐든 12월 1일 자 기사만 살펴봐도 〈“직장은 진짜 소중한 곳”… ‘김부장’ 원작자의 조언〉(《조선일보》), 〈“김부장 그동안 수고했어, 정말 애썼어”〉(미디어오늘) 등 드라마 자체에 대한 논평과 관계자 인터뷰 기사들도 있었지만, 〈저성과자 해고 시 ‘업무수행능력 부족’이 객관적으로 입증돼야〉(중소기업뉴스), 〈당신도 ‘김부장’처럼 자존심만 붙들고 살고 있나요?〉(오마이뉴스), 〈[ICT광장] 정보통신분야의 ‘김부장 이야기’〉(정보통신신문) 등 〈김부장 이야기〉를 통해 개개인의 생(生)철학적 현주소를 확인하거나 각 분야 현실을 되짚고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점들을 드러내는 기사들도 적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는 종영으로부터 일주일 넘게 지난,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나아가 〈[머니 컨설팅] 부동산에 묶인 자산, ‘김부장’의 불안〉(《동아일보》), 〈제네릭 약가인하, 예고된 매출 공백… 제약계 “‘김부장’ 양산” 우려〉(메디파나뉴스) 등에 이르러선 향후 ‘김부장’이 명예퇴직을 앞둔 4050 직장인 자체를 가리키는 대명사처럼 쓰일 전망까지 내보인다.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일본 개인 투자자들을 가리키는 ‘와타나베 부인’처럼 경제·사회적으로 장기간 통용(通用)될 비공식 용어가 될 수 있으리라는 의견이다. 단 한 편의 TV 드라마, 그것도 그리 대단치 않은 상업적 성과를 거둔 드라마가 일으키는 파급효과치곤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인 셈이다.
 
 
  원작과 다른 캐릭터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는 원래 소설과 웹툰으로 만들어졌다.
세간의 화제 중심 〈김부장 이야기〉는 어떤 드라마일까. 현재까지 약 40만 부가 팔려나간 송희구 작가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바탕으로, 국내 굴지의 통신 대기업에 다니는 1972년생 25년 차 부장 김낙수(류승룡 분)의 사연을 다룬다. 서울에 집을 소유하고 대기업에 다니며 단란한 가정을 꾸린 김부장은 언뜻 현대 한국 사회에서 ‘모든 것’을 다 가진 인물처럼 여겨진다. 아닌 게 아니라 김부장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다 임원 승진을 앞두고 지방 발령 통보를 받으며 이것이 사실상 명예퇴직 수순이란 걸 직감한다. 이후는 단박에 추락해 버린 김부장이 ‘서울’ ‘자가’ ‘대기업’이라는 기존 성공의 기준에 회의를 느끼고 진정한 행복은 무엇이며 남은 인생은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다시 생각해 보게끔 하는 일련의 과정을 그린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사실 〈김부장 이야기〉는 TV 방영이 시작된 직후엔 오히려 시청자 반응이 좋지 않았다는 점이다. 주로 〈김부장 이야기〉 원작 소설이나 이를 바탕으로 한 웹툰의 기존 팬들에 의해 비판이 일기 시작했다. 사실상 원작 훼손에 가깝게 본래 메시지들이 바뀌고 어떤 의미에선 전혀 다른 콘텐츠를 하나 따로 만들어내는 수준이었다는 것. 물론 원작 팬들의 불만을 제외하곤 이런 이유만으로 드라마판 자체가 비판받아야 할 이유는 없지만, 문제는 원작 쪽 메시지가 더 원숙하고 균형 잡힌 인간관과 인생관을 선보였다는 점이다.
 
  일례로, 원작의 김부장 캐릭터가 가진 자연인으로서 가장 큰 문제는 앞선 ‘성공의 기준’ 고집뿐 아니라 인생관과 세계관 자체가 극도로 편협(偏狹)하고 완고(頑固)한 인간형이라는 점이다. 세상은 다양한 개성의 사람들이 다양한 인생관을 갖고 다양하게 인생을 펼쳐나가는 곳이기에 사회가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다는 전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이 걸어온 길, 자신이 옳다고 믿어온 인생 노선만을 ‘정답’으로서 인정하려는 50대 중년의 면면을 담았다.
 
 
  본방보다 OTT에서 인기
 
  그러나 드라마로 재등장한 〈김부장 이야기〉는 상당 부분 ‘세대론’에 입각한 하소연에 가깝다는 평가다. 새로운 시대에 대응하기엔 역량이 떨어지는 고(高)연차 대기업 부장이 아직 준비되지 않은 채 기업에서 쫓겨나 사회 한복판으로 내몰린다는 2020년대 중장년층 담론에 더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원작에선 김부장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한 그 아내와 아들도 드라마에선 그저 김부장과 똑같이 준비되지 않은 채 내몰려 숱한 시행착오를 겪는 이들로 등장할 뿐이다. 인물에 대한 통찰(洞察)은 사라지고 일종의 사회 풍자물이자 현대사회 인생 괴담(怪談), 또는 중장년을 위한 자기 연민 콘텐츠에 가까워졌다는 뒷말이 이래서 나온다.
 
  그런데 드라마화된 〈김부장 이야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바로 ‘그렇기에’ 이토록 큰 화제를 모으며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의견이다. 4050 중장년층 직장인들의 공포와 불안, 그리고 자기 연민을 한껏 반영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기에 유독 4050 세대에서 폭발적인 인기와 화제성을 얻어낸 콘텐츠라는 것이다. 이 같은 논리는 드라마에 대한 각종 지표를 통해서도 여실히 확인된다.
 
  일단 JTBC의 본방 시청률 차원에선 사실상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았는데도 OTT 넷플릭스에선 한층 나은 결과라는 점부터 들어볼 만하다. 소위 ‘본방 사수(死守)’가 가능한 중장년층 주부들이나 1020 학생들에게서 인기를 얻었다면 본방 시청률도 높았겠지만, 그쪽은 떨어지고 소비자가 편한 시간에 스트리밍해 볼 수 있는 OTT에서 인기를 끌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일상을 본방에 맞출 수 없는 직장인들에게서 반응이 온 결과라 해석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김부장들’
 
  한편, K–콘텐츠 경쟁력 분석 기관 굿데이코퍼레이션의 펀덱스(FUNdex) 조사에서도 〈김부장 이야기〉는 한 번도 화제성 순위 1위를 차지해 본 적 없고, 종영 일주일이 지난 현시점엔 10위권 내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다. 해당 화제성 순위는 온라인 커뮤니티 및 소셜미디어(SNS) 등에서 콘텐츠가 언급되는 정도 등을 조사해 빅데이터를 꾸려 수치화시킨 순위인데, 이런 인터넷 공간에서의 언급량은 10~30대 젊은 층이 좌지우지하는 경향이 있어 중장년층에 주로 인기 있는 콘텐츠는 높은 순위를 기록하기 어렵다.
 
  이렇게 시청률 측면에서나 펀덱스 조사 순위 차원에서 모두 그리 대단치 않은데 유독 언론미디어 보도량만큼은 어마어마하다는 점 역시 중장년층, 그중에서도 직장인들에게 유독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일지 모른다.
 
  각 언론사에서 기사 소재 선정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부장급 기자들 자체가 일종의 ‘또 다른 김부장’들이기에 이들에게 강하게 어필되는 콘텐츠 선택이 두드러지게 반영된 경향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또 종합일간지나 지상파 방송 뉴스의 경우 그를 소비하는 핵심층 역시 중장년층[2025년 한국갤럽 ‘미디어·콘텐츠·SNS 이용률 조사’ 종이신문 구독률 1위는 50대(12%)]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종합일간지나 지상파 방송 뉴스가 가장 큰 파이의 소비층에 관심을 불러일으킬 소재를 취사 선택하는 과정에서 〈김부장 이야기〉가 과잉 반영된 것이라 생각해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김부장 이야기〉를 설명하는 데 있어선 그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4050 중장년층, 특히 ‘김부장’ 캐릭터의 ‘1972년생’ ‘53세’ 범주에 해당하는 특정 세대론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들은 과연 어떤 세대이기에 이토록 극심한 공포와 불안, 자기 연민 속에서 드라마 속 김부장과 함께 울고 웃으며 캐릭터에 과몰입해 그 ‘제2의 인생’까지 절절히 응원하면서 일종의 문화 현상을 일으키게 됐느냐는 것이다.
 
  1972년생은 한국에서 인구학적으로 ‘2차 베이비붐 세대’에 해당한다.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출생아 수가 한 해에 90만 명을 넘겼던 1955년생부터 1974년생까지를 포괄하지만, 세대론 차원에선 너무 긴 20년 기간일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이들 내에서조차 서로 사뭇 다른 면모들을 지녀 이를 다시 나눴다. 통계청 기준으로는 1차[전기(前期)] 베이비붐 세대를 1955~63년생, 1.5차[중기(中期)] 베이비붐 세대를 1964~1967년생, 그리고 2차[후기(後期)] 베이비붐 세대를 1968~74년생으로 구분하고 있다.
 
 
  X 세대
 
취업 무렵 IMF 사태를 겪은 ‘김부장 세대’는 국가나 기업의 보호에 의존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한편 사회·문화적인 측면을 강조해 바라보면 또 다르게 분류되기도 한다. 1955~59년생은 산업화 세대, 1960~69년생 86 세대, 1970~74년생은 X 세대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세대로 분류된다. 애초에 1990년대 초중반 X 세대 개념을 한국에 널리 퍼뜨린 광고대행사 동방기획의 보고서부터가 1993년 당시 20대 초반 인구가 전체 인구의 10%를 넘어서고 경제 발전으로 이들의 가처분 소득이 이전 세대들과는 차이를 둬야 할 정도로 높아진 점을 세대 특화의 주된 근거로 삼았다.
 
  2차 베이비붐 세대, X 세대는 이른바 ‘87항쟁’을 겪어본 이들이 아니다. 최루탄 냄새를 맡으며 중·고등학교에 등하교해 본 경험만 있다. 이들이 성인이 되고 그중 일부가 대학에 진학했을 땐 오히려 대학가에선 ‘탈(脫)정치’ 무드가 일었다. 정치가 사라진 청년 문화의 공간은 1990년대 ‘대중문화 빅뱅’을 타고 등장한 다양한 대중문화 담론들로 대신 채워졌다. 한편, 이들은 ‘IMF 외환위기 세대’이기도 했다. 이들이 취업 전선에 나설 무렵 이들 상당수는 1997년 외환위기의 직격타를 맞아 대기업 등의 취업에 상당한 고초(苦楚)를 겪었다. 그러면서 극도로 안정된 삶을 추구해 빚어진 ‘공무원 열풍’도 함께 시작됐다. 또 있다. 이들은 주요 대학의 정시 모집 원서 접수 마지막 날이면 으레 최종 입시 경쟁률을 기록한 표가 지상파 방송 뉴스에 특보처럼 방송되던 ‘수험 전쟁’ 시절 중·고등학교 사춘기를 맞았다. 3시간만 자고 공부하면 대학에 붙고 4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3당(當)4락(落)’과 같은 말이 일종의 현대 격언처럼 나돌던 시절 사춘기를 겪은 이들이란 말이다. 그러니 그 뒤 성인이 되고 겪은 일대 취업 불황과 맞물려 이들의 인생관은 한껏 편협하고 완고해질 수밖에 없었다. 명문대학 입학→대기업 취직→극도로 안정된 삶이라는 일직선 코스밖에 달리 생각할 겨를이 없었으니 드라마 속 ‘김부장’처럼 답답한 모습이 될 수밖에 없다.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어찌 됐든 저 ‘대중문화 빅뱅’을 함께 겪은 이들로서 그 시절 사회·문화적 다양성을 추구하던 패기와 치열한 상상력이 어떻게 경제 불황이라는 조건 하나로 송두리째 휘발돼 버린 걸까 말이다.
 
 
  안전 욕구
 
  이에 대해선 미국의 사례에 견줘 살펴보면 된다. 흔히 한국의 X 세대는 시대적 환경 측면에서 1960년대 후반 ‘68운동’을 일으킨 미국의 68 세대와 유사하다고 일컬어진다. 일단 68 세대도 1950~73년 ‘자본주의 황금기’ 동안 자라나 그 끝자락 즈음에 성인이 된 세대다. IMF 외환위기 직전까지 고도성장기 혜택을 톡톡히 받고 자라난 X 세대와 같다. 또 X 세대처럼 68 세대도 한층 여유로워진 경제 상황을 바탕으로 사회 생존 논리 습득보다는 사회·문화적 자유의 쟁취 등을 부르짖으며 수많은 신(新)좌파 어젠다들을 성립시키고 키워낸 세대다. 표현의 자유, 성(性)해방, 생태주의, 소수자 권리 등의 어젠다가 이때 폭발해 미국 사회에 자리 잡았다.
 
  그런데 이들 68 세대에게도 역시 기묘한 구석, 어찌 보면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면면이 존재한다. 미국의 대표적 포스트모더니즘 작가이자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됐던 토머스 핀천은 68 세대 후일담을 다룬 1990년 소설 《바인랜드》에서 이들 내면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브록 본드의 비범함은 60년대 좌파의 활동들 속에서 질서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미처 의식하지 못한 질서에 대한 욕망을 간파했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에서 모든 부모들에 맞서는 청년 세대의 혁명을 선포하고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그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동안, 브록은 국가라는 이름의 확대가족 속에 영원히 어린아이로, 안전하게 남기만을 바라는, 만약 그 자신도 느껴봤더라면 가끔은 감동적이었을, 숨겨진 욕구를 보았다.”
 
 
  예정된 Z 세대와의 충돌
 
  어쩌면 이것이 68 세대–X 세대의 본질이었을 수 있다. ‘사실은’ 고도성장기 동안 빚어진 풍요의 과실을 따 먹기만 하던 세대였고, 그 연약한 기반만큼이나 외환위기로 인해 사뭇 달라진 환경 속에서 오히려 국가나 기업 같은 ‘큰 품’에 자신을 맡기고 안전하게 보호받기를 희구하던 세대일지 모른다는 얘기다. 이후 등장한 밀레니얼 세대, Z 세대 등의 국가와 기업에 대한 감각과 이들의 그것은 서로 판이(判異)할 수밖에 없다.
 
  국가의 보호를 요구하는 이들의 감성은 자연스럽게 ‘큰 정부’ 지향 좌파 정당에 몰표를 던지는 4050 현상을 낳았고, 기업에 턱없는 수준의 보호를 요구하는 태도는 곧 냉엄한 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다분히 반(反)기업적인 사고관으로 옮아간다. 국가 또는 나를 고용한 기업 등에 냉소적인 태도를 견지(堅持)하는 밀레니얼·Z 세대와의 충돌은 이미 예정돼 있었던 셈이다. 명문대를 나왔으면서도 대기업 취직보다는 스타트업 기업에 합류하길 원하는 드라마 속 김부장 아들과 김부장 간 충돌처럼 말이다.
 
  이처럼 복잡한 멘털리티의 2차 베이비붐 세대, X 세대의 현주소는 사실 대중문화계에서 이번에 처음 다뤄진 게 아니다. 전혀 다른 이름의 세대 명칭을 통해 6~7년 전부터 이미 한창 거론되며 다뤄지고 있었다. 바로 ‘낀대’ 얘기다. 서로 현격히 다른 모습을 보이는 86 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의 사이에 ‘끼인 세대’라는 의미다. 그 양쪽 경향이 한데 얽혀 내면적으로 혼란스러운 한편, 어느 쪽 세계관과 가치관에도 온전히 적응하지 못하는 특성을 보인다. 《머니투데이》 2019년 8월 29일 자 기사 〈‘노오력’ 하면 된다 믿는 40대, ‘꼰대’ 아닌 ‘낀대’?〉를 보자.
 
 
  ‘꼰대’ 아닌 ‘낀대’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 수가 없다〉.

  〈직장 내 불공정 대우에 대한 대응 방식에서도 세대적 차이가 드러났다. 1970년대생은 ‘더욱 충성’ ‘참고 지냄’ ‘공식적 이의제기’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상황을 돌파하려는 의지를 보여 ‘생존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1990년대생은 비슷한 패턴을 보이면서도 ‘더욱 충성’ 응답은 현저하게 낮았다. 특히 1980년대생까지는 ‘공식적 이의제기’가 ‘건성 근무’보다 높았으나 1990년대생부터 ‘건성 근무’가 ‘공식적 이의제기’를 역전해 회피 경향이 다소 높았다. 이 같은 대목에서 1970년대생은 ‘낀 세대’로서의 특성이 드러나는 것으로 파악됐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90년대 학번 세대는 선배 세대의 도덕과 이념주의 성향에서 벗어난,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주의 세대의 등장을 알린 ‘낀낀 세대’”라며 “‘외환위기’로 인한 ‘시장적 개인주의’와 ‘감성적 개인주의’가 결합해 복합적 내면을 구성해 왔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이들 ‘낀대’를 다룬 대중문화 콘텐츠도 이미 2020년 등장했다. 유튜브 채널 ‘컾’에서 공개된, 제목부터가 〈낀대: 끼인 세대〉인 8부작 웹드라마다. 〈낀대: 끼인 세대〉는 “라떼(나때)는 말이야~”를 수없이 뇌까리는 ‘꼰대’ 86 세대 부장과 칼퇴(칼같이 정시 퇴근)는 당연하고 할 말도 다 하고 보는 밀레니얼 세대 신입사원 사이에 끼인 어느 광고회사 과장 사연을 담고 있다. 상사에겐 밀레니얼과 별 다를 바 없는 ‘제멋대로’로 비치고, 신입사원에겐 그저 ‘젊은 꼰대’로 보일 뿐인 ‘낀대’ 과장. 86 세대와 밀레니얼 세대 어느 쪽 입장도 일정 부분 이해가 가기는 하지만, 또 어느 쪽이든 온전히 동의해 맞장구쳐 줄 순 없는 세대의 고충을 다뤘다.
 
  이런 2017~2020년의 ‘낀대’가 이후 6~7년 동안 부장이 되고 50대 초중반에 이르러 이제 명예퇴직을 요구받는 상황을 다룬 콘텐츠가 바로 〈김부장 이야기〉인 셈이다. 여전히 서로 다른 가치관들 사이에서 똑같이 갈팡질팡하지만, 이제 그런 갈등의 시절도 점차 마무리되고 직장 생활은 끝나간다. 20여 년 동안 계속 혼란만 겪다가 그나마 몸을 피했던 안전장치마저 사라지게 되는 시점. 이러니 〈김부장 이야기〉에 이르러선 〈낀대: 끼인 세대〉 정도 갈등과 번민에 그치지 않고, 강한 자기 연민을 띄워 올릴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원작 소설과 그 드라마판의 차이 등 여러 가지가 사뭇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그런데 그러고 보면 이들 ‘김부장’ 세대–2차 베이비붐 세대–X 세대–낀대 사연은 요즘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꽤 빈번하게 다뤄진다. 〈김부장 이야기〉와 〈낀대: 끼인 세대〉뿐이 아니다. 당장 2025년 9월 개봉해 한국영화 불황 속에서도 293만 관객을 모으며 미국 아카데미상 한국 출품작으로도 선정된 박찬욱 감독의 〈어쩔 수가 없다〉가 있다.
 
  〈어쩔 수가 없다〉 주인공 역시 공교롭게도 ‘김부장’과 같은 ‘25년’ 동안 제지회사에서 일하며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삶을 누려왔지만 돌연 해고 통보를 받고 50대 재취업을 시도하다 급박한 심정 속에 살인에까지 이른다. 같은 해 8월부터 KBS2 TV에서 방영 중인 주말드라마 〈화려한 날들〉에도 원단회사에서 33년 동안 근무하다 정년퇴직했지만 현실적 문제로 재취업에 나선 가장이 등장한다. 드라마는 그를 ‘마처 세대’라 칭한다. 부모를 봉양(奉養)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扶養)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를 가리키는 말이란다.
 
 
  ‘영포티 신드롬’
 
  그런데 왜 대중문화계가 지금 시점에 이르러 이들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는 걸까. 어쩌면 근래 뜨거운 감자가 된 ‘영포티 신드롬’ 탓일 수도 있다. 어찌 됐든 2024~25년은 ‘영포티 신드롬’만큼 국내에서 사회·문화적으로 치열한 논박(論駁)을 끌어낸 이슈가 없다시피 한 정도였으니 말이다. 〈김부장 이야기〉를 ‘영포티 신드롬’과 함께 놓고 바라본 문화평론가 정덕현의 《시사저널》 2025년 12월 6일 자 칼럼 〈우리 시대 ‘김부장’들은 과연 행복한가〉의 한 대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부장의 이런 모습은 오늘날 젊은 세대가 ‘영포티’라고 부르며 바라보는 중년 세대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과 맞닿아 있다. 영포티는 본래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답습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으려 했던 40대를 지칭했던 말이다. 하지만 이 단어는 젊은 감성과 문화를 억지로 흉내 내는 중년을 조롱하는 표현으로도 쓰이고 있다. 영포티라는 말에 대한 이중적인 시선이 말해주듯, 우리 사회가 중년을 바라보는 관점은 극단적으로 갈려 있다.〉
 

  생각해 보면 ‘영포티’ 이전에 각종 정치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이들을 ‘진보대학생’이라 부르며 비슷한 특성들을 꼬집은 바 있다.
 
  이렇게 이들 ‘김부장’에겐 별칭이 또 하나 붙는다. 2차 베이비붐 세대, X 세대, 낀대, 마처 세대, 영포티, 진보대학생…. 지금껏 이렇게 많은 세대 명칭을 가진 세대가 또 있었을까. 혹 그 복잡하면서도 이율배반적이고 모순으로 그득 찬 면면 탓에, 이런 복합성만큼이나 어느 한 시대가 저물고 다음 시대로 넘어가는 중간 기점으로서의 위치가 워낙 뚜렷한 탓에 대중문화계에서도 이들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반복적으로 다루고 있는 건 아닐까. 이들을 다루는 대중문화 콘텐츠에, 어쩌면 전(全) 세대 중 거의 유일하게 맹렬히 반응하며 잠시나마 공감과 위안을 얻고 다시 혼란스러울 삶을 이어나가야 하는 현실 속 ‘김부장’들….
 
 
  ‘김 전 부장’들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
 
  드라마 속 김부장은 결국 서울을 떠나 경기도 월셋집으로 거처를 옮기고 대기업도 그만두면서 전(前) 직장 동료와 세차장 사업을 시작한다. 드라마의 긴 원제인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에서 ‘서울’과 ‘자가’가 빠지고 ‘대기업’과 ‘부장’도 빠지면서 결국 자연인 김낙수만이 남는다.
 
  현실 속 2차 베이비붐 세대–X 세대–낀대–마처 세대–영포티–진보대학생들도 결국은 이렇게 이름 석 자만이 남을 것이다. 그리고 이 거대한 인구집단이 향후 이름 석 자로서 선택하는 삶의 방향에 따라 한국 사회 전체의 풍경도 계속 바뀌어갈 것이다. 현재 〈김부장 이야기〉가 일으키고 있는 가지각색 수많은 현상이 사뭇 육중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 스크랩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