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슬의 ‘건강의 지평선’ ⑬ 제인스빌이 ‘한국 보수’에 주는 교훈

붕괴한 산업 생태계 살리는 실용적인 해법 제시해야

  • 글 : 박한슬 의료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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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락한 공업도시 제인스빌, 노조·민주당 지지 지역에서 트럼프 지지 지역으로 변모
⊙ 트럼프의 약값 강제 인하 정책은 구매력 상실한 노동 계급을 위한 정치적 구휼
⊙ 한국, ‘영남 대(對) 호남’ 대신 ‘수도권 대 소멸하는 지방 제조업 도시’ 구도 형성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 사건 관련자들, 지방대 출신이 유의미하게 많아
⊙ 보수 성향 자영업자도 “민생지원금 덕분에 경기가 조금 풀린 듯해”

박한슬
1991년생. 차의과학대 약학과 졸업, 연세대 통계·데이터사이언스 석사 / 《중앙일보》 《주간조선》 칼럼니스트, 서울시 청년정책자문단 / 저서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 《숫자 한국》 외 다수
2020년 대선 당시 트럼프에게 환호하는 위스콘신주 제인스빌 유권자들. 사진=AP/뉴시스
기나긴 트럼프 2기 행정부와의 관세 협상이 매조지고, 양국의 협상 내용을 담은 팩트 시트도 발표됐다. 우려했던 관세는 대폭 누그러졌고, 외환(外換)보유고에 대한 우려를 불러왔던 대미(對美) 투자도 10년간 분할 납입하는 방식으로 여파를 최소화했다. 게다가 원자력 잠수함까지 받아왔으니, 아쉬운 점은 있더라도 오랜 혈맹국으로서 체면치레는 한 수준은 된다고 봐야 할 테다. 이 과정을 겪으며 분명해진 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전통적인 공화당 노선과는 완전히 선을 그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단 점이다.
 
  미국 공화당은 자유시장경제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정부의 시장 개입을 죄악시해 왔다. 기업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규제를 철폐하며, 감세를 통해 낙수(落水)효과와 경제적 승수(乘數)효과를 누리자는 게 공화당의 근간 이념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런 자유무역의 토대를 허물고 동맹국에 막대한 관세를 물리는 건 물론 개별 기업의 팔을 비틀어 미국 내 투자와 제조업 복귀까지 요청했다. 이념적 선명성이나 관행에 얽매이는 대신 자체적인 길을 모색하겠다는 수정주의적인 통치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행보다. 그런데 이게 대외(對外) 행보에만 한정된 것일까.
 
 
  약가 인하, ‘러스트 벨트’ 노동자 위한 정책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 중인 강력한 약가(藥價) 인하 정책은 전통적 보수주의의 궤도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제약사의 가격 결정권(pricing power)을 직접적으로 공격하고, 행정명령을 통해 약가를 강제로 끌어내리겠다는 건 과거 보수주의자들이 비판하던 사회주의적 통제에 가깝다. ‘비즈니스 친화’를 표방하는 공화당 정부가 왜 시장 가격에 이토록 거칠게 개입하는 것일까. 이런 현상을 단순히 트럼프라는 인물의 돌출 행동이나 표를 얻기 위한 일회성 포퓰리즘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표면적으로는 의료 정책의 탈을 쓰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미국 제조업의 붕괴와 중산층의 몰락이라는 거대한 구조적 지각변동이 자리하고 있어서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약가 인하 정책은 보건 의료의 관점이 아니라, 구매력을 상실한 노동 계급을 위한 정치적 구휼(救恤)의 관점에서 해석해야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더는 미국식 의료 제도에서 본인과 가족의 의료비를 분담하기 어려워진 ‘러스트 벨트(Rust Belt)’의 분노한 백인 노동자들에게 즉각 눈에 보이는 혜택을 주겠다는 접근이란 얘기다. 이런 상황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선 미국의 의료보험 제도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식 의료보험의 민낯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이라는 전 국민 의료보험 체계를 통해 고용 상태와 무관하게 의료 접근권을 보장한다.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도입하고,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이 기틀을 마련한 보수의 오랜 유산이다. 하지만 미국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국가가 운영하는 단일 건강보험이 아닌 복수(複數)의 보험사가 운영하는 ‘직장 기반 의료보험(employer-sponsored insurance)’이 주류를 이루는 사회다. 휴대전화 사용을 위해 SK텔레콤이나 KT, LG텔레콤 같은 여러 통신사 중 하나를 골라 가입하듯, 여러 민영 보험사가 제공하는 다양한 의료보험 중 하나를 직장에서 제공하는 식이다. 이러니 미국에서 직장에 다닌다는 건, 단순히 소득을 얻는 것을 넘어, 생존을 위한 안전망을 획득한다는 의미와 동의어가 된다. 오죽하면 의료보험 때문에 이직(離職)을 꺼리는 문화도 있을까.
 

  이 상황을 거꾸로 뒤집어보자. 의료보험이 보편적인 권리가 아니라 기업 재직자에게만 제공되는 선별적인 복지라면, 실직(失職)은 단순한 소득의 상실이 아니라, 의료 접근권의 즉각적인 박탈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물론 미국에도 공공 의료 안전망이 있긴 하다. 저소득층을 위한 ‘메디케이드(Medicaid)’와 65세 이상 노년층을 위한 ‘메디케어(Medicare)’ 같은 제도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달리 쉽게 수령하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가령 실직했지만 소득이 조금이라도 있다거나, 부양가족이 있거나, 아직 65세가 되지 않은 중장년층은 두 개의 공공 의료보험 중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각(死角)지대에 방치된다. 또한 메디케이드의 경우 수급 자격 심사가 주(州)마다 상이하고 까다로워, 갑작스럽게 일자리를 잃은 중산층 노동자가 즉각적으로 공적 보험 체계에 편입되기가 어렵다.
 
  결국 미국 노동자 입장에서 18세부터 65세까지의 기간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간이다. 직장에 다니는 동안은 회사가 보험료의 상당 부분을 부담하지만, 은퇴하거나 해고되는 순간 월(月) 수천 달러에 달하는 민간 보험료를 온전히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 의료나 제약 기술이 세계에서 가장 잘 발달한 나라라도, 아픈 환자가 이용할 수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이렇게 의료 사각지대에 들어가는 인구가 전체의 15~20%를 차지하다 보니 미국 사회 내에서도 꾸준히 문제 제기가 있었고, 여기에 처음으로 공적 개입을 천명한 게 오바마 행정부다.
 
 
  ‘오바마 케어(ACA)’의 등장
 
오바마 대통령은 2010년 3월 23일 미국형 공공의료보험인 오바마 케어에 서명했다. 사진=AP/뉴시스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2010년 ‘환자보호 및 적정진료법’인 소위 오바마 케어(ACA)를 도입했다. 오바마 케어의 핵심은 ‘강제 가입(mandate)’과 ‘보조금 지원(subsidy)’이다.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여 건강한 사람들도 보험료를 내게 함으로써 충분한 양의 재원을 마련, 이를 통해 저소득층의 보험료를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강제로 건강보험료를 걷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아무런 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하는 간접적인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민영 보험사들이 낮은 보험료에 반발하자 보험료는 계속 오르기 시작했고, 오바마 퇴임 이후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출범하자 ‘미가입 벌금’ 규정까지 폐지되며, 오바마 케어는 더욱 약체화됐다. 건강한 사람은 보험료가 아까워 가입하지 않고, 몸이 아픈 사람들만 공보험에 몰리면서 공보험 비용이 늘어나는 일종의 역선택이 발생해서다.
 
  하지만 더 치명적인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미국 민간 보험 특유의 ‘네트워크(network)’ 시스템이다. 한국과 달리 미국의 보험은 가입된 상품에 따라 진료가 가능한 병원이 엄격히 제한된다. 통신사가 제공하는 제휴 할인이 포인트 제휴 할인 가맹점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특정 보험사와 가맹 계약을 맺지 않은 병원에선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식이다. 전 국민 건강보험 하나면 전국 어느 병원을 가든 진료가 가능한 우리나라와 달리 ‘보험증’에 명시된 가맹 병원을 찾아 예약하고, 그곳에서 진료를 받아야 보험이 적용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바마 케어를 통해 가입하는 저가(低價) 보험은 네트워크가 일반 의료보험보다 좁다. 보험증은 있지만, 정작 그 보험을 받아주는 의사를 쉽게 찾을 수 없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유령 네트워크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의 탐사 보도는 이러한 ‘유령 네트워크(ghost networks)’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서류상으로는 수십 명의 전문의가 네트워크에 포함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전화를 걸어보면 메디케이드나 오바마 케어 환자를 받지 않거나, 이미 타(他) 지역으로 이동했거나, 심지어 몇 년 전부터 폐업 또는 근무지 변경으로 해당 지역에서 진료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더라는 것이다. 예컨대 웨스트버지니아주의 경우 목록상으로 존재하는 안과 전문의가 수십 명임에도 실제로 저소득층 환자를 단 한 명도 보지 않은 의사가 절반에 달했다는 식이다. 다른 주의 경우 잠시간 비대면 진료를 했던 의사들이 해당 지역의 상근 전문의로 둔갑해 방치된 사례도 적지 않았다. 유령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닌 셈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몰락한 중산층에게 오바마 케어는 제대로 된 효용감을 주지 못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도입 당시엔 사회주의적이라는 비난까지 받으며 출발했지만, 제대로 된 구조개혁 없이 좌파적인 보조금 정책만 남발한 결과다. 이에 저소득층까지 내려가지 못한 중산층에게 열패감마저 불러일으키는 오바마 케어의 실패를 극복하고자,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겠다는 게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직접 약가 인하 정책이다.
 
 
  미국의 약가 구조
 
미국의 약가 구조.

  미국은 특이하게도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해서도 약가가 무척 높게 책정된 기형적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주된 이유는 처방약 급여 관리업체(PBM)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기관이라 생소한 이들이 많겠지만, 본질은 ‘정산(精算) 대행사’다. 보험 진료를 보면 약국에선 환자와 보험사 양쪽에서 돈을 받는다. 그런데 전국 약국에서 보험사와 서류를 주고받기가 불편하니, 정산 대행사인 PBM이 중간에 끼어서 그 역할을 대신해 주는 구조다. 그런데 여기서 합법적인 ‘리베이트’가 관여하게 된다.
 
  그림과 함께 간단하게 100달러짜리 약이 처방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본인부담금 비율이 20%라면, 환자는 보험약가의 20%를 본인부담금으로 내기 때문에 약국 카운터에서 실제로 20달러를 지불한다. 약국은 남은 80달러를 PBM에 청구하고, PBM은 먼저 약국에 80달러를 지급한 뒤, 보험사에 다시 80달러를 청구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명목 약가 100달러가 그대로 작동하는 정상적 구조처럼 보인다.
 
  하지만 진짜 핵심은 다음 단계다. 제약사는 PBM과의 비공개 계약에 따라 50달러를 리베이트로 준다. PBM은 이 50달러 중 45달러를 보험사에 넘기고, 나머지 5달러를 자기 몫으로 챙긴다. 결과적으로 보험사가 실제로 부담한 금액은 80달러가 아니라 35달러가 되고, PBM은 리베이트 차액 5달러를 수익으로 얻는다. 이러면 표면적으로는 100달러가 오간 것처럼 보여도 순비용은 55달러다. 환자는 20달러를 냈으니 전체 순비용 55달러 중 36%를 내는 셈이 되어, 약관상 본인부담률보다 실질 부담이 훨씬 커진다. 쉽게 말해 약값이 오르면 오를수록 환자 돈을 이해관계자들이 나눠 먹기 좋은 구조가 된다는 얘기다.
 
  이래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복잡한 의약품 유통 구조, 특히 PBM을 콕 집어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제약사와 보험사 사이에서 리베이트를 챙기며 약가를 부풀리는 중간 단계를 쳐내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 행정부가 꺼내 든 또 다른 카드는 ‘최혜국 대우(Most Favored Nation·MFN)’ 모델이다. 미국 내 약가를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가격 수준에 연동하는 최혜국 수준으로 책정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글로벌 제약사가 미국 시장에서 누려온 독점적 가격 결정권을 박탈하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자유무역을 옹호하던 공화당 대통령이 다른 나라의 가격 통제 정책을 수입하여 자국 기업을 압박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지난 바이든 정부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공공 의료보험(메디케어, 메디케이드)의 ‘약가 협상’ 제도를 폐기하지 않고, 오히려 확대 계승하기까지 했다. 가격 인하 압박이 바이든 정부에선 어느 정도 필수 의약품에만 집중됐다면, 트럼프 정부에선 비만치료제같이 미국인들의 수요가 높은 의약품 전반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이런 일련의 조치들은 자국 기업의 팔을 비틀어서라도 유권자의 지갑을 지키겠다는 일종의 ‘내수용 보호무역’이다. 이념적 정합성보다는 유권자의 즉각적인 효능감을 중시하는 트럼프식 실용주의의 극치다. 그런데 대체 왜 이 시점에 약가 인하와 같은 민감한 문제를 건드리는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혹자는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트럼프의 과감한 지원 정책 덕에 백신 개발에 이르게 성공했음에도 그를 지지하지 않은 제약업계에 대한 복수라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나 실질은 더 서글프다. 미국 몰락 중산층의 삶이 생각보다 더 나빠졌기 때문이다.
 
 
  《제인스빌 이야기》
 
 
에이미 골드스타인의 르포 《제인스빌이야기》.
《워싱턴포스트》 기자이자 퓰리처상 수상자인 에이미 골드스타인(Amy Goldstein)은 위스콘신주의 소도시 제인스빌(Janesville)에 대한 르포르타주 《제인스빌 이야기》를 써서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2008년 제너럴모터스(GM) 공장이 폐쇄된 이후 무너져 내린 미국 중산층의 삶을 아플 정도로 생생하게 보여줘서다. 제인스빌은 GM 공장 폐쇄 전까지 미국 중산층의 번영을 상징하는 도시였다. 전통적 러스트 벨트 지역도 아니었고, 고졸 학력으로도 성실히 일하면 내 집을 마련하고, 가족과 휴가를 즐기며, 자녀를 대학에 보낼 수 있는 삶이 보장되던 곳이었다. 그러나 공장이 문을 닫자, 도시는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제조업 일자리의 붕괴는 단순히 소득 감소에 그치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듯, 미국에서 직장의 상실은 곧 사회 안전망의 붕괴를 의미한다. 책은 이런 몰락한 중산층의 현실을 생생하게 소개한다. 재직 중엔 기쁜 마음으로 연말에 불우이웃을 위한 음식 나눔을 했던 가정이 해고 이후엔 음식 나눔의 대상이 되는 경험, 학교 내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이들을 위한 ‘나눔 벽장’을 설치해 운영해야 하는 현실, 재교육 과정을 밟아 교도관으로 채용되지만 결국 직무 스트레스 등으로 자살하는 여성 등, 생활이 전반적으로 몰락하는 경험이 끝없이 이어진다. 오죽하면 지역 전통 행사인 노동절 기념 거리 행진에서 “우리가 왜 중국인들이랑 같은 돈을 받으며 살아야 하느냐”라는 지역 주민의 절규가 쏟아질까.
 
 
  민주당 텃밭에서 트럼프 지지 지역으로
 
  상황이 이러니 의료 서비스 역시 제대로 제공되기 어렵다. 제인스빌의 해고된 노동자들은 당장 아픈 아이를 병원에 데려갈 수 없게 되었고, 자신이 복용하던 만성질환 약 또한 끊어야 했다. 이들에게 복잡한 서류 절차가 필요한 오바마 케어의 보조금이나 메디케이드 같은 저소득층 의료보험은 너무나 멀고 추상적인 구원이었다.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인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는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국내의 오해와 달리 MAGA들은 인종차별주의자나 광신적인 이념 집단이 아니다. 평생을 성실히 일했으나 공장 폐쇄와 함께 중산층에서 탈락하고, 병원비조차 감당할 수 없게 된 순수한 노동자들이다. 과거의 평범한 미국 중산층들이다.
 
  제인스빌은 오랫동안 강력한 전미 자동차 노조(UAW)가 자리 잡고 활동한 미국 민주당의 텃밭 같은 곳이었다. 오바마를 두 차례 밀어주고, 2016년 대선에서도 트럼프의 상대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뽑은 민주당 골수 지역이었지만, 2020년부터는 트럼프 우위 지역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민주당이 ‘재교육’이나 ‘복지 시스템’ 같은 한가한 소리를 할 때, 트럼프는 “너희의 일자리를 뺏어간 중국에 관세를 때리고, 너희의 고혈을 빠는 제약사의 약값을 깎겠다”라고 외쳐서다. 민주당 텃밭에서 트럼프가 바이든, 해리슨을 10%p 차로 이긴 게 우연인가.
 
 
  거제와 군산, 우리나라의 제인스빌
 
2025년 10월 텅 빈 폐허가 되어버린 군산의 옛 GM자동차 출고장. 사진=조선DB

  제인스빌의 비극을 남의 나라 이야기로 치부할 수 있을까. 불행히도 우리나라엔 이미 제인스빌이 있다. 2018년 전북 군산의 한국GM 공장 폐쇄 사태가 가장 유사한 예다. 당시 군산 경제는 GM 공장 하나에 의존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의존도가 높았다. 공장이 문을 닫자, 협력업체들이 줄도산했고, 식당과 원룸촌이 초토화됐다. 한국GM 공장 존치를 두고 군산과 부평이 경쟁했지만,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을 정치적 텃밭으로 여기면서도, 정작 부평 쪽에 힘을 실어줬다. 노동운동가 출신이자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낼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이 컸던 홍영표 전 의원(인천 부평을) 때문이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던 이유다.
 
  경남대 양승훈 교수가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에서 밝힌 경남 거제의 조선업 붕괴 역시 같은 맥락이다. 한때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던 거제는 조선업 불황과 구조 조정의 여파로 지역 경제가 파탄 났다.
 
  나의 고향인 대구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 ‘섬유 도시’로 불리던 섬유 산업의 중심지였던 대구는 2000년대 초반 이미 제조업 오프쇼어링(off-shoring)의 파도를 맞고 쇠락의 길을 걸었다.
 
  우리는 미국이 수십 년에 걸쳐 겪은 러스트 벨트의 형성을 압축적으로 경험하는 중이다. 첨단 제조업은 어느 정도 버티겠지만, 이미 중소 공장은 중국이나 동남아로 이전한 지 오래다. 조귀동 민 정치컨설팅 전략실장이 《전라디언의 굴레》에서 치밀하게 논증했듯, 지방의 제조업과 수도권의 연구개발·전략 분업은 깨졌다. 수도권의 성장이 지방의 일자리를 늘리는 자연스러운 선순환(善循環)은 더 이상 없다.
 
  결과적으로 이런 경향이 지속된다면, 국내의 정치 지형 역시 전통적인 ‘영남 대(對) 호남’의 구도에서 벗어나게 될 수밖에 없다. ‘수도권 대 소멸하는 지방 제조업 도시’라는 새 전선이 이미 자리를 잡기 시작해서다.
 
 
  범죄 조직으로 흘러들어 간 지방대 출신들
 
  이미 조짐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최근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보이스피싱 및 투자 리딩방 사기 조직 검거 소식이다. 기사를 잘 살펴보면, 검거된 조직원 중 지방 거점 국립대나 지방 사립대 출신 청년들의 비율이 유의미하게 높다는 사실이 관찰된다. 아예 어느 지역 대학에선 학과 선후배들이 통째로 범죄 조직에 가담했다 적발되기도 했다. 도덕적 해이(解弛)나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기엔 그 수가 너무 많다.
 

  산업 기반이 무너진 지방 도시 청년들에겐 애초에 선택지가 많지 않다. 과거 보편적인 형태의 일자리가 소멸한 곳에서, 아르바이트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청년들에게 범죄 조직이 제시하는 ‘월 500만원 보장’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일 수밖에 없다. 잘못된 선택을 감싸자는 게 아니라, 번듯한 일자리가 대안으로 존재할 때의 윤리 감각과는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단 얘기다. 제인스빌 주민들이 절망에 빠져 자살하거나, 러스트 벨트 지역의 백인들이 마약에 찌드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미 중앙대 마강래 교수는 10년 전 《지방도시 살생부》를 통해 이러한 처참한 현실을 짚었었다. 본격적인 지방 슬럼화가 시작된다면 그때는 개입하기에도 늦다.
 
 
  한국 보수, 트럼프를 잘 봐야
 
  트럼프는 관세 폭탄이라는 거친 수단을 휘두르면서도, 대내적으로는 노동자들의 지갑을 지켜주는 확실한 효능감을 제공함으로써 지지 기반을 확장하고 있다. 과거 민주당의 텃밭이었던 러스트 벨트가 공화당의 아성으로 변모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새로이 몰락 도시가 된 제인스빌이 명징한 대표 사례다.
 
  한국의 보수 세력 역시 이 지점을 뼈아프게 직시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수호나 한미동맹 강화 같은 거대 담론도 중요하지만, 당장 공장이 문을 닫고 일자리가 사라져 가는 지방 도시의 유권자들에게 어떤 효능감을 줄 것인지를 고민해 본 이들이 있나? 건전 재정을 외치며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만으로는 캄보디아로 떠나는 청년들을, 절망에 빠진 군산과 거제의 가장들을 위로할 수 없다. 선명한 이념투쟁보다 중요한 건 실리적 해법이다.
 
  최근 자영업을 하는 보수 성향 지인(知人)을 만났는데 안타까운 얘기를 들었다. 본인도 망국적(亡國的) 포퓰리즘이라 비난했던 ‘민생지원금’ 덕분에 계엄 이후 꽉 막혔던 경기가 조금이나마 풀린 것 같다는 것이었다. 투표권을 얻고부터 내리 보수 후보만 찍어온 이조차도 이런 얘길 하는 게 현실이다.
 
  미국 민주당은 원론적 이념만 되뇌다 결국 노조 중심지이던 제인스빌마저 잃었다. 제인스빌의 공장이 멈췄을 때 어떤 비극이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그 분노가 어떻게 정치 지형을 뒤엎었는지를 제대로 복기(復棋)하지 못한 후과(後果)다.
 
  산업 생태계(生態系)가 붕괴된 곳에 다시 피를 돌게 할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해법을 내놓지 못한다면, 당연하게 생각하는 보수 텃밭인 영남도 잃어버릴 수 있다. 반대로 산업이 몰락한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을 해법을 찾아내면, 보수에 있어 난공불락(難攻不落)처럼 여겨지던 군산 같은 호남 도시도 보수에 지지를 보낼 수도 있다. 한국 보수 세력이 트럼프의 대내 정책에서 진정으로 살펴야 할 부분은 그의 과격한 언행이 아니라 실리적인 태도다. 그의 언행만 좇지 않고, 정책적 고민을 하는 진짜 ‘한국판 트럼프’가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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