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든 책 한 권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 임지현

‘민족몽’에서 벗어나게 해준 책

  •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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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연·역사·언어 등 원초적 요소보다는 ‘하나의 공동체에서 함께 살려는 의지’가 중요
흔히 말하는 386 세대(90년대 기준으로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나, ‘국적(國籍) 있는 교육’을 받으면서 학교를 다녔다. 아, 하나 더 있다.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는 한국의 사정에 맞지 않는다며 ‘한국적 민주주의’도 교육받았다. 그 시절 교육받은 내용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민족주의’였다. 이 스위치를 왼쪽으로 돌리기만 하면, 전근대성(前近代性)과 배타성, ‘1인 숭배’가 가미된 ‘K–민족주의’를 만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주체사상’이었다.
 
  그 시절 내가 대학을 다니면서 실족(失足)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어려서부터 책, 특히 역사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록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역사책을 통해 나는 역사란 인간의 의지와 욕망, 경험, 우연(偶然)이 얽혀 이루어지는 것이며, 인간의 이성(理性)으로 디자인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이런 내게 인류가 걷게 될 예정된 미래를 제시하는 마르크스주의는 그리 믿음이 가지 않았다.
 
 
  ‘민족’을 보는 새로운 시각과 만나다
 
  하지만 민족주의에 대한 관심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중·고교 시절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를 읽은 이래, 어린 마음에 강대국 사이에서 이 작은 나라가 살아남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강대국으로 우뚝 선 후,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조금 지나치다고 할지라도 민족주의라는 ‘불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도 고구려·발해 관련 학술 세미나 등을 열심히 쫓아다녔다.
 
  이런 와중 나의 뜨겁던 생각에 종지부를 찍은 책을 만났다. 임지현 교수의 《민족주의는 반역이다》(1999년)라는, 무척이나 자극적인 제목의 책이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민족’을 ‘일정한 지역에서 오랜 세월 동안 공동생활을 하면서 언어와 문화상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 집단’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민족주의는 반역이다》는 이런 상식에 도전하는 책이었다. 이 책은 민족을 보는 두 가지 다른 관점을 소개했다. 하나는 ‘인종적 공동체의 영속성에 주목하면서 민족주의가 종족·조상·종교·영토라는 원초적(原初的) 유대(紐帶)에 기초해 있다’고 보는 ‘원초론’이다. 원초론은 언어, 공통의 문화유산, 종교, 관습 등과 같은 객관적 기준을 민족의 기초로 강조하는 ‘문화민족(Kulturnation)’ 개념 내지 ‘객관주의 민족이론’과 연결된다. 이에 대비되는 것이 ‘민족주의란 결코 영원한 실체가 아니며, 근대화와 도시화라는 특정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발현한 이데올로기’라고 보는 ‘도구론’이다. 도구론은 ‘국가민족(Staatsnation)’이라는 개념으로 이어진다. 이는 ‘민족공동체에 기꺼이 자신을 귀속(歸屬)시키고자 하는 민족 성원의 주관적 의지가 민족을 만든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이를 ‘주관주의 민족이론’이라고도 한다.
 
  도구론–국가민족–주관주의적 민족 개념은 시민혁명을 통해 근대국민국가 건설에 성공했던 영미(英美)나 프랑스에서, 원초론–문화민족–객관주의적 민족 개념은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던 독일이나 러시아 등 중·동부 유럽 국가에서 주로 나타났다. 후자(後者)는 시민혁명을 경험하지 않고 국가 주도의 근대화 노선을 택했던 일본으로 전해졌다. 일제(日帝)의 침략으로 ‘정치공동체’로서의 ‘국민국가’를 건설할 기회를 놓쳐버린 한국도 문화공동체·혈연공동체로서의 ‘민족’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유령과의 싸움
 
  이 책을 통해 도구론–국가민족–주관주의적 민족 개념을 접했을 때 받았던 지적(知的) 충격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오랫동안 나를 사로잡고 있었던 ‘민족몽(民族夢)’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와 함께 내가 이 나라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
 
  사실 원초론–문화민족–객관주의적 민족 개념에서 말하는 것처럼 혈연, 공통의 문화유산, 언어와 같은 요소들이 민족공동체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라면, (통일이 되지 않은 것만 빼면) 민족공동체의 내용물은 이미 완비되어 있는 셈이다. 거기에 우리가 더 추가할 것은 없다. ‘우리 민족끼리’만 목놓아 외치면 된다. 그러는 사이에 김씨 왕조의 잔인한 폭정이나 북한 동포의 고통, ‘김씨 조선’이 대한민국의 주적(主敵)이라는 사실에는 눈을 감게 된다.
 

  반면에 도구론–국가민족–주관주의적 민족 개념에 의할 경우,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를 구성하는 내용물에 끊임없이 관심을 갖게 된다. 민족은 공동체에 대한 귀속 의식, ‘우리’라는 의식 없이는 존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라는 공동체를 차별 없고 자유롭고 정의로운 나라, 공동체 구성원들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나라,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건강한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 이 대목에서 민족주의는 공화주의와 만나게 된다.
 
  《민족주의는 반역이다》를 만난 이후, 더 많은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 공부하면서 ‘국수주의자’를 자처하던 나는 생각이 바뀌었다. 지금 나의 이념적 좌표를 말한다면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자’쯤 된다고 할까?
 
  내가 《월간조선》에서 오늘날까지 기자 생활을 하면서 ‘우리 민족끼리’라는 유령과 싸우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正體性)을 분명히 하는 기사를 쓰기 위해 나름 분투해 올 수 있었던 것도 《민족주의는 반역이다》를 통해 ‘민족몽’에서 벗어난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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