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진의 할리우드 통신

〈운전교습〉의 벤 킹슬리(Ben Kingsley)

  • 글 : 박흥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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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기는 실제 삶으로부터 자양분을 공급받아”
⊙ “돈과 명성은 친절하고 현명하게 써야 하는 것”

朴興津
⊙ 71세. 서울대 사범대 독어교육과 졸업.
⊙ 《한국일보》 기자, 인천과 이천서 교직. 《미주한국일보》 부장·편집국장 역임.
    現 《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LA영화 비평가협회(LAFCA) 회원.
벤 킹슬리의 소품 코미디 드라마 〈운전교습〉.
소품 코미디 드라마 〈운전교습(Learning to Drive)〉에서 인도계 미국인 선생 다완으로 나오는 벤 킹슬리(71)와의 인터뷰가 8월 24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호텔에서 있었다. 영화에서 ‘다완’은 남편에게서 버림받은 맨해튼의 중년 부인 웬디(패트리샤 클락슨)에게 운전을 가르쳐 주는 시크교도 역할을 맡았다.
 
  민둥머리에 악센트가 있는 굵은 음성의 킹슬리는 나이보다 젊어 보였는데, 인터뷰에 만반의 준비라도 하고 나온 듯이 모든 질문에 즉각적으로 매우 진지하게 대답했다. 날카로운 눈매를 한 그는 에너지로 가득 찼는데 유머와 함께 강한 설득력을 구사하면서 마치 선생이 강의를 하듯이 물음에 답했다.
 
  ‘간디’로 오스카 주연상을 탄 킹슬리는 영국 왕실로부터 작위를 받은 뒤로 자기를 “서(sir)”라고 불러 줄 것을 요구, 오만한 사람이라고 여겼었는데 이날은 매우 겸손해 호감이 갔다. 값진 인터뷰였다.
 
  —영화에서 시크교도로 나오는데 그 종교에 대해 잘 아십니까.
 
  “누군가의 존경을 받는 사람의 역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좋습니다. 나의 연기는 내게 시크교에 대해 가르쳐 준 사람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마다 세트에서 매우 긴 터번을 침착하게 내 머리에 감아 주면서 나와 아주 부드러운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내가 간디 역을 했을 때도 난 시크교도인 사람의 경호를 받았지요. 매우 과묵한 사람으로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날 보호해 줄 사람이었습니다. 매우 겸손하고 물질에 대한 욕망이 없었어요.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다완이 인도에서 온갖 차별과 학대를 받았으면서도 악의를 품지 않은 이유도 이들처럼 마음의 관대에서 온 것입니다.”
 
  —당신과 자동차와의 관계는 어떤지요.
 
  “아주 좋아요. 난 영국의 시골에 살기 때문에 스틱십 자동차를 탑니다. 그런데 난 점차 상품화하면서 점점 더 운전을 안 하게 되는군요. 운전사가 날 태우고 다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나 집에 있을 땐 큰 랜드로버 디펜더를 운전합니다. 그걸 타고 시골길을 운전하는 것은 아주 즐거워요. 시골이긴 하나 매우 분주한 농촌이어서 좁은 길에서 다른 차에 양보를 할 줄 아는 미덕이 필요합니다.”
 
  —이 영화는 관계와 사랑의 얘기인데 당신의 삶은 당신에게 그것들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주었습니까.
 
  “배우로서 관계에 대해 배운 것은 상상이 아닌 실제와 상대하라는 것입니다. 내 상대 역과 환상의 인물로서가 아니라 실제 인물로서 관계를 맺자는 것이지요. 배우들은 자주 상대와 환상적인 관계를 맺곤 하지요. 연기는 내게 항상 진짜로 거기에 있는 진짜 사람과 함께하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시인 릴케는 이런 말을 했지요. ‘사랑은 두 사람이 서로 만나고 인사하고 반기는 것이다.’ 이 영화도 바로 그런 내용입니다. 아주 감동적이요 우스운 결과가 있는….”
 
 
  “남녀는 서서히 이해하는 과정에서 영근다”
 
  —당신의 다음 영화는 무엇인지요.
 
  “〈콜라이드〉로, 난 갱스터 역입니다. 마약 거래자로 아주 멋있고 다채롭고 또 흥분되는 역입니다. 아주 즐겼어요. 독일의 콜론이 무대로 이번에는 운전을 안 하고 트레일러에서 9명의 창녀와 함께 죽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왜 운전을 하려고 하겠나요.”
 
  —개인으로서의 삶과 배우로서의 생애를 되돌아볼 때 무언가 고치고 싶은 것이라도 있는지요.
 
  “과거로 돌아가 무언가를 고친다는 것은 끔찍한 결과를 자져오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일어난 일들 때문에 내가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지요. 과거를 고친다면 난 이 자리에 있지 못할 것임은 사실입니다. 과거에 실망스런 감독들과 일도 했고 또 옳지 못한 이유로 관계도 맺어 봤지만 과거를 고친다는 것은 내게 있어 거짓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게 있어 매일은 다르고 또 멋있는 도전입니다. 난 다섯 살 때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는데 그렇게 한 것이 참 기쁩니다.”
 
  —그때 얘기를 해 주세요.
 
  “다섯 살 때 〈네버 테이크 노 포 언 앤서(Never Take No For An Answer)〉라는 영화를 봤는데 나와 체구가 아주 닮은 고아가 주인공이었어요. 그래서 스크린의 그 아이와 정신적인 관계를 맺게 됐지요. 영화가 정말 감동적이었는데 그때는 사실 내가 배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난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인 줄도 몰랐어요. 그러나 그때 영화가 끝난 뒤 극장을 나와 걸으면서 영화 촬영진이 날 뒤따라오며 내가 하는 일들을 다 찍는다고 상상하며 즐겼지요. 어린 시절 이렇게 아름다운 상상 속에 살았는데 10대 후반에 연기 직업을 얻으면서 그것이 현실이 됐습니다. 난 연극학교에 다닌 적이 없어요. 막바로 배우가 됐지요.”
 
  —다양한 역을 연기했는데 그중 어느 인물이 가장 하기 힘들었습니까.
 
  “난 늘 나와 내가 맡은 인물을 가로지르는 직선을 찾아내기 때문에 해내기가 굉장히 힘든 역이 없었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가장 막중한 책임을 느낀 것은 〈쉰들러 리스트〉의 유대인 역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역은 책임감만큼이나 기쁨도 컸습니다. 연기를 할 때면 매일 보상과 함께 기쁨을 누리기에 아무리 힘들어도 힘든 줄을 모른다고 할 수 있지요. 특히 〈쉰들러 리스트〉 때는 훌륭한 스티븐 스필버그와 일한다는 기쁨이 컸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무엇입니까.
 
  “그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보다 많은 영화를 더 봐야 하겠지만 지금 당장 머리에 떠오르는 영화는 빔 벤더스 감독의 〈욕망의 날개(Wings of Desire)〉입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분리 그리고 천사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 관한 아름다운 시적 영화지요.”
 
  —다완은 웬디에게 중매결혼이 연애결혼보다 오래 간다고 말하는데 당신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난 몇 번 결혼을 했지만 한 번도 중매결혼은 아니었습니다. 영화에서 웬디는 여동생이 주선한 데이트 상대와 그날 밤으로 섹스를 하고 그 관계도 끝나지만 다완은 중매결혼을 하고도 선뜻 침대에 들지를 않습니다. 두 남녀의 관계는 서서히 알고 이해하고 또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더 아름답게 영글게 된다고 봅니다.”
 
 
  “여행할 때마다 현지 주방장에게 요리 배워”
 
필자와 벤 킹슬리.
  —다완처럼 인내심이 있는 좋은 선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나는 미국과 유럽과 영국의 대학에서 매스터 클래스를 지도한 경험이 있지요. 영문학과 연극을 가르쳤는데 연극반 학생들에게서 배운 점은 그들이 자기가 하는 일에 매우 야심적이요 정력적이며 또 열광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난 그들의 연기를 보고 비판하지를 않았습니다. 단지 ‘잘했습니다. 자, 이제 다음 단계로 갑시다’라고 말했지요. 가르친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남의 말에 경청한다는 것이라고도 하겠습니다.”
 
  —나이가 훨씬 어린 아름다운 브라질 여인을 아내(31세 연하의 배우 다니엘라 바르보사 데 카르네이로)로 두었고 3남1녀가 있는 아버지로서 계속해 많은 작품에 출연하고 있는데 도대체 그 에너지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아내 때문에 에너지를 잃지요. 세트에 도착하면 매일이 다릅니다. 나는 얘기꾼인 셈인데 그 일이 내게는 매우 스릴 있고 흥분되며 또 만족스럽습니다. 자기가 맡은 일을 충실히 하면서 젊게 느끼면 돼요. 내가 맡아 하는 한 인물을 수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흥분되는 일입니다. 난 늘 사람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인물을 창조하기를 원합니다.”
 
  —영화출연과 가정생활과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는지요.
 
  “우리 가족은 시골에서 단순한 삶을 살면서 자신들을 살찌웁니다. 정원을 가꾸고 음식을 만들고 하는 상냥한 가정생활을 우리는 사랑하고 즐깁니다. 난 연기가 실제 삶으로부터 자양분을 공급 받는다고 믿습니다. 장을 보는 것을 비롯해 일상의 여러 가지 일들이 내게 연기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사는 작은 마을의 주민들과는 어떻게 지내는지요.
 
  “그 관계는 아주 아름답습니다. 한 번은 마을 공회당을 위한 자금이 필요한 경우가 있었는데, 그래서 난 자금 마련을 위해 공회당에 촛불을 잔뜩 켜 놓고 D.H. 로렌스를 비롯한 작가들의 시와 편지들을 낭독했지요. 정말로 아름다운 일이었는데 수천 파운드를 거뒀지요. 마을 교회를 위해서도 같은 일을 했어요. 근면한 사람들이 사는 아름다운 마을에 사는 것에 대한 제 갚음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린 아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난 지금 바로 이웃과 함께 포도원을 운영하는데, 아직 맛은 못 봤지만 올해 안에 포도주도 양조해 낼 것입니다.”
 
  —요리를 즐긴다고 했는데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별미라도 만들 줄 아는 비법을 배웠는지요.
 
  “TV시리즈 ‘투트’(Tut)를 찍기 위해 모로코에 갔는데 아내와 함께 묵은 호텔 식당의 여자 요리사로부터 온갖 모로코산 양념과 조미료에 관해 배웠습니다. 집에서 가끔 그것들을 이용해 요리를 합니다. 난 일 때문에 여행을 자주 하는데 세계 각국의 주방장으로부터 각기 서로 다른 맛에 대해 배우곤 합니다. 난 즉흥적인 것과 실험과 요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배운 것들을 이용해 요리하는 일이 아주 재미있어요. 난 또 매년 요리책들도 선물로 받아 부엌에 잔뜩 쌓아 놓고는 있으나 하나도 보진 않았습니다. 책 보고 하는 것보다는 경험과 기억으로 하는 것이 더 좋아요.”
 
  —당신은 무슨 차로 운전을 배웠습니까.
 
  “작은 오스틴이라는 차입니다. 미니보단 조금 큽니다.”
 
 
  “명성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돈과 명성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것은 친절하고 현명하게 써야 하는 것이지요. 명성의 특혜 중 하나는 내가 여러분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젊은 배우들이 읽고 ‘옳구나, 그 말이 맞아’라고 동의하도록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명성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데 난 언제나 그것을 이용해 젊은 배우들의 귀감이 되고자 노력합니다. 배우로서 성공하기란 정말로 힘들기 때문에 노력하는 젊은이들을 가급적 도와주고 싶어요. 돈으로 말하자면 난 일가 친척이 너무 많아 그들을 보살피는 데 씁니다.”
 
  —큰 역과 작은 역을 막론하고 다 잘해 내는데 그 비결은 무엇입니까.
 
  “스펜서 트레이시가 이런 말을 했지요. ‘한 장면을 찍을 때 상대방이 멋있게 보이도록 노력하라.’ 그 말이야말로 훌륭한 연기철학의 한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상대방을 보기 좋게 함으로써 나의 연기도 향상되는 것으로, 연기란 항상 쌍방통행이라고 봅니다. 이 영화에서도 패트리샤와 나는 이 가르침을 따라 했습니다. 상호작용이 좋은 배합을 이루도록 노력했지요. 이 영화가 드라마이자 코미디로서 보기 좋은 것도 거기서 연유합니다. 영화 장면을 사실처럼 연기하면 되는 것이지요.”
 
  —배우로서 대뜸 정상에서 시작했는데 그 자리를 지키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간디’를 말하는가 본데 난 이미 그 전에 15년간 무대에서 연기를 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27편 작품 중 17편에 나왔지요. 그 같은 경험이 내게 스태미나를 주고 또 얘기꾼으로서의 기쁨도 줍니다. 그러나 사실 ‘간디’가 아니었더라면 난 지금 이 자리에 있지 않을 거예요. 정말로 아름다운 기회였습니다.”
 
  —다완은 터번을 쓴 데다가 피부색 때문에 ‘오사마’라고 조롱을 당했는데 당신도 실제로 인종차별을 당해 본 적이 있는지요.
 
  “내가 인종차별에 관해 배운 가장 중요한 계기는 유대인 인종차별 반대운동의 태두라 할 수 있는 사이먼 비젠탈의 기관을 위해 영화를 만들면서였습니다. 그때 난 소위 개화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행할 수 있는 끔찍한 만행에 대해 배우면서 치를 떨었습니다. 그런 행위가 더 없게 하려면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월과 함께 스스로가 보다 현명해졌다고 생각합니까.
 
  “그랬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입니다. 연기란 것은 남의 말을 경청하고 상대를 믿으며 또 외교적인 일이기도 해서 난 그 같은 경험을 통해 내 삶이 상당히 풍족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서로 다른 문화의 만남에 관한 얘기인데 그런 만남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어떤지요.
 
  “영화가 얘기하고자 하는 점은 한 사람이 자기와 다른 문화에 관해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기 가족이나 문화의 테두리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이 같은 사실을 깨닫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영화를 통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다음에 택시를 탔을 때 머리에 터번을 두른 운전사를 보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할 수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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