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진의 할리우드 통신

〈워터 디바이너〉의 러셀 크로(Russell Crowe)

  • 글 : 박흥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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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는 사실 내 아버지의 이야기이기도 해”
⊙ “나만이 이 각본을 생명체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

朴興津
⊙ 71세. 서울대 사범대 독어교육과 졸업.
⊙ 《한국일보》 기자, 인천과 이천서 교직. 《미주한국일보》 부장·편집국장 역임.
    現 《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LA영화 비평가협회(LAFCA) 회원.
전쟁터에서 죽은 아들의 유골을 찾아나선 호주 농부의 이야기를 그린 〈워터 디바이너〉.
전쟁 액션영화이자 가족드라마인 〈워터 디바이너(The Water Diviner)〉로 감독에 데뷔하고 주연도 한 러셀 크로(51)와의 인터뷰가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호텔에서 있었다. 〈워터 디바이너〉는 1차대전 당시 터키의 갈리폴리 전투에 참전했다가 종전 후 4년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는 세 아들을 찾아 터키로 간 호주 농부 조슈아의 이야기다. ‘워터 디바이너’는 나뭇가지나 철사로 마른 땅의 지하수를 찾아내는 사람을 말한다.
 
  감정의 기복이 심해 심술첨지로 알려진 크로는 자기가 처음 감독한 영화를 위한 인터뷰여서 그런지 신이 나서 질문에 대답했다. 그는 일어서서 상소리까지 섞은 농담을 하기도 했다. 덥수룩한 수염에 살이 쪄 보이는 호남형의 크로는 굵은 음성으로 유머를 구사해 가며 답변했다.
 
  인터뷰 후 필자와 사진을 찍을 때 크로는 “나는 한국에서 정말로 훌륭하고 멋있는 경험을 했다”면서 “크게 즐겼던 나라”라며 큰 미소를 지었다. 필자가 “다시 방문하라”고 하자 그는 윙크로 대답했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폴 뉴먼 함께 섭외
 
  —영화를 찍으면서 터키의 문화와 사회에 대해 무엇을 배웠습니까.
 
  “터키는 역사가 깊은 곳으로 방문하기에 멋있는 나라입니다. 아름답고 놀라운 것이 많지요. 나는 이스탄불을 비롯해 터키의 여러 곳을 방문했는데 터키정부와 영화계가 우리를 진정으로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난 영화를 위해 터키 영화를 많이 봤는데 영화에 나오는 중요한 두 명의 터키 배우는 내가 본 영화에서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알고 보니 둘은 터키 영화의 로버트 레드포드와 폴 뉴먼이라고 하더군요. 둘을 함께 영화에 출연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들 했지만 그들과의 오랜 대화를 통해 설득했습니다.”
 
  —영화에서 당신이 기르는 개는 진짜로 당신의 것입니까.
 
  “아닙니다. 개의 이름은 브라이언인데 고도의 훈련을 받고 또 어떤 지시에도 따른다는 추천과 함께 소개받은 것입니다. 사실은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그러나 훌륭한 개였고 그동안 영화에 나온 그 어떤 개와도 다른 특성이 있는 개여서 내가 좋아했습니다.”
 
  —영화 끝 부분에 가서 당신과 당신이 묵던 콘스탄티노플 호텔의 매니저로 전쟁 미망인인 올가 쿠리렌코가 서로 미소를 주고받던데 이는 둘이 그 뒤로 함께 행복하게 살게 됐다는 것을 뜻하는지요.
 
  “그것은 추측일 뿐입니다. 둘은 영화에서 손도 안 잡고 키스도 안 합니다. 둘은 서로 슬픔을 나누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뿐으로 영화 끝에 가서 둘 간에 어떤 감정이 일어날 소지는 있으나 우린 그것이 어떤 소지인지를 결코 모릅니다. 둘의 결합 가능성에 대한 여러 가지 시나리오는 있지만 영화는 여러분이 본 대로 가능성을 열어 둔 채 끝이 나지요.”
 
  —영화에서 터키를 침공한 그리스군을 일종의 악한들로 묘사했는데 이 영화를 반그리스적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그리스군 지휘자는 무자비한 군인이긴 하나 한편으로는 연민의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따라서 나는 이 영화가 그리스를 비난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화 속 터키와 그리스 간의 충돌은 역사에 충실한 것입니다. 그것은 오토만제국 초기로까지 올라가지요. 그러나 영화는 그리스 측의 눈으로 본 얘기가 아닙니다. 영화는 어디까지나 아들들의 유골을 찾으러 터키에 간 호주 농부의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의 기준은 노동의 윤리
 
필자와 러셀 크로.
  —오토만제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요.
 
  “조금은 압니다. 이 영화는 그 제국의 융성이 아닌 해체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국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다룰 수는 없었습니다. 내가 터키여행에서 얻은 값진 경험은 터키공화국 최초의 대통령이었던 무스타파 케말이 사용했던 방에 앉았던 일입니다. 침대와 그가 피우던 담배꽁초가 담긴 재떨이가 그대로 있더군요. 터키 국민들의 그에 대한 존경심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어디서 영감을 받아 영화를 만들었는지요.
 
  “호주 영화계의 르네상스를 주도한 피터 위어, 프레드 스켑시, 브루스 베레스포드, 필립 노이스 및 질리안 암스트롱 감독 들의 작품을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자연광을 많이 썼지요. 이 영화는 비록 규모는 커 보이나 독립영화입니다. 나는 독립영화로 영화계에 데뷔했기 때문에 그에 대해선 잘 알고 있지요. 싸게 만드는 방법을 압니다.”
 
  —실제로도 영화에서처럼 아들과의 관계가 가까운지요.
 
  “부모란 아이를 가지자 마자 세상만사를 부모의 프리즘으로 보게 됩니다. 자식과의 연계는 모든 것을 초월한 것이지요.”
 
  —영화 처음에 조슈아는 손에 든 두 개의 철사로 지하수를 찾아내는데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며 정확합니까.
 
  “철사나 나뭇가지로 지하수를 찾아내는 일은 호주에서는 180년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것은 과학적인 일입니다. 호주뿐 아니라 다른 곳의 건조한 땅에서도 그 방법을 쓸 수가 있습니다.”
 
  —조슈아는 영화에서 아들들의 유골을 찾을 때도 그 방법을 쓰는데 그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영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조슈아는 아들의 일기를 참고로 유골을 찾아냅니다. 아들의 소속부대가 어디서 싸웠다는 것을 알고 전장의 그 장소를 찾아가 자신의 영적 능력을 동원해 지하수 찾는 식으로 유골을 찾습니다. 부모란 자식에 대해 영적 접근 능력을 지녔기 때문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마법이 아니라 사실적인 일입니다.”
 
  —당신은 두 아들(11세와 8세)을 어떻게 훌륭한 아들들로 키우고 있습니까.
 
  “난 직업 때문에 여행을 자주 해 다른 부모들보다 그 문제에 있어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과거와 달리 이젠 보다 많은 시간을 호주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정열적으로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매우 강하고 기본적인 일의 윤리를 저버리는 것을 가르쳐 주는 셈이지요. 우린 늘 아이들이 앞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학교를 나오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얘기를 나눕니다. 나는 그들에게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노동의 윤리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무엇을 원하며 그것에 어떻게 접근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호주에서 미국의 대작과 겨뤄 이겼다는 점에서 자랑스러워
 
  —왜 감독을 하려고 합니까.
 
  “돈이나 영예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근본적인 정열 때문입니다. 수년간 머리에 구상을 해 왔습니다. 감독을 하겠다는 것은 14년 전부터 생각해 온 것이지요. 그동안에는 도전해 볼 만한 각본을 찾지 못했습니다. 극영화 대신 난 그동안 세 편의 장편 기록영화와 30여 편의 비디오 클립을 찍었는데 이것이 나의 감독교육인 셈이지요. 이제 감독으로 나선 것은 이 영화의 각본 때문입니다. 글을 읽고 그것에 깊은 연관성을 느꼈지요. 특히 아버지가 된다는 것에 대한 의미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호주의 역사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에서 얘기한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글을 읽은 뒤 내 가슴으로부터 이 글에 대해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나만이 이 각본을 생명체로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난 여섯 살 때부터 배우 노릇을 했기 때문에 세트에서의 지식은 충분히 갖춰 그것이 감독생활에 도움이 됐습니다. 자신도 있었고 일에서 위안도 받았습니다.”
 
  —당신의 특성을 한마디로 표현해 보세요.
 
  “도전을 거부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어머니를 잘 따릅니까.
 
  “다니엘(스펜서)은 훌륭한 엄마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작정한 규칙은 영화를 찍을 때 아내와 내가 함께 여행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을 매번 다른 학교에 입학시켜야 하고 친구도 자꾸 바뀌는 바람에 아이들의 근본에 심한 변동이 일어나곤 했지요. 그러나 이젠 내가 영화를 위해 여행을 떠나면 아이들을 못 본다는 불편이 따르네요. 그러나 그것은 아이들을 위한 희생입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지금 시드니에 살고 있습니다.”
 
  —다니엘과 아직도 결혼한 상태입니까.
 
  “별거하고 있으나 아직 이혼은 안 했습니다.”
 
  —이 영화는 호주에서 이미 빅히트를 했는데 소감이 어떤지요.
 
  “기대치 않았던 일입니다. 2014년의 최고 흥행성적을 낸 호주영화입니다. 특히 미국의 대작들과 겨뤄 흥행에서 이겼다는 점이 자랑스럽습니다. 이 영화는 호주의 오스카상인 작품과 의상과 남우조연상을 받았고 5개의 호주영화비평가협회상도 받았지요. 과거 15년간 내 영화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거지발싸개 같은 녀석들이 상을 줬어요.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얘기입니다.”
 
  —당신은 아버지로부터 무엇을 배웠습니까.
 
  “워터 디바이너는 사실 내 아버지입니다. 1978년인데 지하의 깨진 수도파이프 위치를 찾아낸 사람이 내 아버지입니다. 아버진 그때 집에서 철사옷걸이를 가지고 나와 파이프가 깨진 곳을 찾아냈지요. 아버지는 내게 많은 훌륭한 일들을 가르쳐줬습니다. 그는 다방면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난 어렸을 때 밤에 몰래 아버지와 어머니가 돈을 어디서 벌어 오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얘기를 나누는 것을 들었는데 겁나는 일이었지요. 그러나 아버지는 절대로 내가 그런 문제를 알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축구화를 비롯해 언제나 내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사 줬어요. 아버지의 제일 법칙은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공급해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엄격하지 않으면서도 잘 지도를 했지요. 음성을 높인 적도 없습니다. 내가 15세 되기 전까진 내 앞에서 단 한 번도 욕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행을 자주 하는데 훌륭한 여행자인지요.
 
  “가능하면 새로운 곳의 진수를 배우려고 합니다. 새로운 곳의 문화적 유산을 볼 때면 마법에 걸리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곳을 찾는다는 것은 늘 흥분된 일이지요. 난 최근에 처음으로 한국엘 갔었는데 정말로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내가 처음 해외여행을 한 것은 27세 때였습니다. 새로운 곳의 문화를 경험하고 또 그것에 마음의 문을 연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감독 데뷔에 대한 소감은 어떤지요.
 
  “내 나이와 내 경험에서 본다면 감독은 배우보다 훨씬 더 흥미 있는 일입니다. 물론 이 감독 데뷔는 내가 그동안 배운 것들의 집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옛날과 달리 배우들이 연습 없이 단시간에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는 것이 통례인데 난 그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난 이 영화의 배우들과 2주간의 리허설을 했습니다. 그래야 배우들이 육체적 감정적 그리고 지적으로 준비가 제대로 됩니다. 따라서 준비가 작품의 좋은 성공의 열쇠라고 봅니다.”
 
  —당신은 최근 이탈리아 감독 가브리엘레 무치노가 연출한 아버지와 딸에 관한 영화에 나왔는데 언제 개봉하는지요.
 
  “무치노는 대단한 에너지를 지닌 이야기꾼입니다. 얼마 전에 영화를 봤는데 여러분들의 가슴을 찢어 줄 것입니다. 믿을 수가 없어요. 깊은 감정의 여정과도 같은 영화로 보시면 울고 말 것입니다. 매우 강렬하고 훌륭한 영화로, 독립영화여서 배급사를 찾기가 쉽지가 않아 현재 물색 중입니다. 수준 높은 영화로 아만다 사이프리드, 아론 폴 그리고 제인 폰다 등이 나옵니다. 그런데 난 폰다 가족과는 인연이 깊네요. 헨리 폰다의 아들인 피터와 그의 딸인 브리짓에 이어 이제 제인과도 영화를 찍었으니 말입니다. 제인은 정말 환상적인 사람입니다. 영화는 과테말라와 멕시코와 샌타모니카에서 찍었습니다. 기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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