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고 배달 많은 곳은 강남과 분당 아파트. ‘초호화 단독주택’은 별로 안 찾아
⊙ ‘귀중한’ 것 아닌 ‘소중한’ 것을 보관하는 일종의 가구 개념으로 변하는 중
⊙ 불경기에 오히려 호황 누리는 ‘이색상품’
⊙ 게임장 ‘바다이야기’ 성업 때와 ‘5만원권 발행’ 때 금고매출 급증
⊙ 사과박스 크기의 금고에 1만원권 지폐는 5억, 5만원권은 25억원 정도 들어가
⊙ ‘귀중한’ 것 아닌 ‘소중한’ 것을 보관하는 일종의 가구 개념으로 변하는 중
⊙ 불경기에 오히려 호황 누리는 ‘이색상품’
⊙ 게임장 ‘바다이야기’ 성업 때와 ‘5만원권 발행’ 때 금고매출 급증
⊙ 사과박스 크기의 금고에 1만원권 지폐는 5억, 5만원권은 25억원 정도 들어가

- 지난 7일 일본 이와테(岩手)현 오후나토(大船渡) 경찰서에서 경찰관들이 3ㆍ11 대지진ㆍ쓰나미로 떠내려온 금고를 수거해 진흙 등을 닦아내고 있다. 일본에서는 노인을 비롯한 상당수 사람들이 돈을 금융기관에 예금하지 않고 집안에 쌓아두고 있다.
최근 한 마케팅 업체가 조사한 한국의 가정용 금고 보급률은 1%라고 한다. 노령층의 ‘장롱예금’이 많은 일본이나 총기를 보관하는 ‘건가드’를 가정에 두는 일이 일반적인 미국 등 ‘금고문화’가 발달한 나라에 비하면 매우 작은 수치다.
우리 국민 중에는 유명 재계인사의 개인금고에 관심을 갖는 이가 많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금고와 관련된 소문도 많다. 떠도는 소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국내 한 대기업 회장의 금고다. 이 금고는 엄밀히 말하면 방 전체를 금고로 만든 ‘금고실’이라고 한다.
이 금고실은 해외에 주문해 특수제작한 것이다. 벽에 해당하는 금고판을 만들어 들여와 조립하는 방식으로 설치했다고 한다.
금고업체 관계자 김모씨는 “이 대기업 회장은 보안을 위해 금고제작을 한 업체에 맡기지 않고 여러 업체에서 나눠 제작·조립했기 때문에 그 금고실에 대한 정확한 스펙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금고실이 있다는 사실만은 공공연한 비밀로 떠돈다”고 말했다.
물론 올해 초 전북 김제의 마늘밭에 5만원권으로만 100억원이 넘는 돈이 묻혀 있었던 것을 보면 금고에 대한 신뢰도 사람에 따라 다른 듯하다.
한국 금고 보급률은 1%
우리 국민들은 금고는 부자들만 갖고 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금고업계 관계자들은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르게 금고를 사는 사람이 꼭 부자들만은 아니다”고 입을 모은다. 한 금고 전문 인터넷 쇼핑몰 관계자의 말이다.
“금고 고객층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기는 힘들지만 금고 배달을 가장 자주 가는 곳은 강남과 분당의 아파트입니다. ‘부자동네’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반대로 흔히 생각하는 ‘초호화 단독주택’에서는 금고를 별로 안 사 가요. 오히려 요새는 중산층에 금고 수요가 늘어 가고 있는 추세죠.”
금고제작 업체인 선일금고 백승민 상무는 중산층의 수요가 늘어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금고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어요. 전자금융이 발달하다 보니까 이제 금고가 돈을 보관한다기보다 등기, 보험증서 같은 문서나 일기, 사진, 배냇저고리, 태아 초음파사진, 심지어 성인용품 등 ‘귀중한’ 것이 아닌 ‘소중한’ 것을 보관하는 일종의 가구 개념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부자들만 가지고 있는 현금뭉치가 아니라 중산층도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보관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그쪽의 수요가 늘어나는 것입니다.”
은행 신뢰도가 떨어지면 금고가 많이 팔린다?
금고업계는 최근 ‘저축은행 사태’와 ‘농협해킹 사건’으로 인해 퍼진 금융권에 대한 불안에 새로운 기대를 갖고 있다. “은행 신뢰도가 떨어지면 금고매출이 오른다”는 속설 때문이다. 금리가 낮아지거나 경기가 불안해 은행 신뢰도가 낮아지면 은행에 돈을 맡기기보다는 현금 보유를 선호하기 때문에 그것을 보관하기 위한 금고매출이 일시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금고는 불경기에 오히려 호황을 누리는 ‘이색상품’인 셈이다.
실제로 2009년 세계 경제위기 당시 미국에서는 금고매출이 급상승했다는 보고가 있다. 올해 3월 17일 코트라 미(美) 실리콘밸리센터가 공개한 <미국 시장현황 보고서>는 이 시기 뉴욕 소재 금고 판매업자의 판매량이 20~40% 증가했으며 최대 금고업체인 센트리세이프의 판매량은 전년에 비해 50%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텍사스주의 금고 제조업체 밸류세이프도 전년대비 60%의 매출신장을 기록했다. 미 금융계 관계자들은 이 현상을 이 시기 미국 대형 은행이 정부의 천문학적 보조금을 받고도 회생할 기미가 없자 현금을 집에 보관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의 대다수 금고업계 관계자들은 ‘저축은행 사태’와 ‘농협해킹 사건’으로 인한 효과를 아직까지는 느낄 수 없다는 견해다. 백승민 상무는 “경기가 나빠지면 금고매출이 올라간다는 말이 어느 정도는 맞지만 금융권의 유동성이나 금고시장 자체가 큰 미국만큼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 전체 금고시장에서 사무용 금고의 비중이 가정용 금고에 비해 높은 것도 한 원인이다. 금고업체 관계자들에 따르면 사무용 금고와 가정용 금고의 비중은 7 대 3 정도다. 때문에 한국에서 금고매출이 급증했던 시기는 가정용 금고보다는 사무용 금고와 밀접한 관계를 가져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벤처기업’과 ‘캐피털금융’이다. IMF시기 정부의 지원을 받고 벤처기업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새 사무실에 필요한 사무용 금고가 필요했던 것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캐피털금융 바람이 불면서 현금·문서 보관용 금고의 매출이 증가했다.
경제흐름과는 별개로 금고매출에 영향을 미쳤던 사례로는 ‘바다이야기’와 ‘5만원권 발행’이 있다. 금고 유통업자 김모씨는 “2006년 바다이야기가 한창 유행일 때, 게임장이 계속 새로 생겼을 뿐 아니라 그곳에선 현금용 금고, 구슬용 금고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당시에는 중고 금고도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고 말했다. 2009년 5만원권 발행 시기에도 금고업자가 기대하지 못한 특수(特需)였다. 5만원권이 발행되면서 고액의 현금을 보관하기 쉬워지자 이른바 ‘현금부자’들이 5만원권으로 현금의 부피를 줄이고 집안의 금고에 안전하게 보관하고자 했던 것이다. 10kg 사과박스 크기의 금고(가로·세로·깊이가 외부는 50×51×58cm, 내부는 36×37×31cm)에 1만원권 지폐는 5억, 5만원권은 25억원 정도가 들어간다. 2011년 3월 한국은행은 5만원권이 시중에 20조2076억원, 4억215만장이 돌고 있다고 밝혔지만, 실제로 시중에는 그 많은 5만원권이 보이지 않아 결국 5만원권이 어느 금고에서 잠자고 있는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최근에는 가정용 금고의 비중이 조금씩 오르면서 이사철에 금고 수요가 늘어나게 되자 부동산 경기까지 금고 수요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큰 고락(苦樂)이 없을 것 같은 금고시장도 사실은 한국사회의 이슈에 따라 생사의 기로를 오가는 셈이다.
▣ ‘30억원’짜리 금고
현재 세계에서 제일 비싼 금고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칼 라거팰트(Lagerfald)의 시계금고다. 100억원대에 달하는 시계와 귀금속을 보관하고 있고, 금고 자체의 가격만 30억원이다. 금고에는 ‘나르키소스’라는 이름까지 붙여졌다. 금고를 위한 금고가 필요할 지경이다.이 금고는 특허 받은 강철판으로 제작됐다. 이와 함께 최첨단 전자 잠금장치, GPS 송신기를 부착해 보안을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시계를 꺼내 볼 수 있는 받침대, 드라이버, 돋보기 등 편의기능과 송아지가죽, 악어가죽, 이집트산 돛 천, 깃털 라이닝 등의 소재로 럭셔리함을 더했다. 이 금고는 부품부터 마무리까지 수공으로 제작하는 독일의 되틀링(Dottling)사에서 제작했다. 이 회사는 패리스 힐튼의 신발금고를 제작하기도 했다. |
금고의 메카, 을지로 4가에서 인터넷으로
서울시 을지로 4가는 금고 판매지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다른 곳에서 찾기 어려운 금고 판매점이 유독 밀집해 있다. 20년간 금고유통업을 해 온 김모씨는 “을지로에 인테리어·가구점이 밀집하면서 일종의 ‘원스톱 쇼핑’을 노린 금고 판매점이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있다”며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한때는 한국 금고유통의 80%를 이 지역에서 소화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2000년대 들어 금고판매의 대부분은 인터넷 쇼핑으로 넘어가고 있다. 금고 특성상 규격과 기능 확인만 한다면 직접 찾아다니며 살 필요가 없고, 직접 구매한다 해도 들고 가는 것이 힘들어 배달을 필요로 하는 것은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현재는 기존의 금고 소매상과 판매점도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한 판매를 병행하고 있는 추세다.
금고 배달원이나 A/S 전문가들은 때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겪기도 한다. 간혹 금고에 ‘비밀’을 ‘은밀히’ 보관하길 원한 고객의 독특한 요구를 들어줘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김씨의 말이다.
“여러 고객이 있습니다. 집을 짓는 기초공사 중에 금고를 사서 지반에 반쯤 묻어 버리는 고객도 있고, 창고 문보다 큰 금고를 사서 넣어 둔 뒤 작은 문으로 고쳐 달아 금고가 나갈 수 없게 하는 사람도 있었죠. 장롱 뒤쪽 벽에 비밀공간을 만들어 금고를 보관하는 사람도 있어요. 밤에 은밀히 배달해 달라는 사람도 많고, 다니다 보면 정·재계 유력인사나 유명인의 집에도 가고 금고 내부를 보기도 하지만, 그 이상은 고객 프라이버시 때문에 말하긴 곤란하고….”
못 여는 금고는 없다.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가 중요할 뿐
![]() |
| 독일 되틀링사에서 제작한 금고. |
“가끔 경찰에서 금고털이 수사협조 의뢰를 하기도 하는데, 털린 금고만 보면 금고털이가 고수인지 하수인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하수는 금고의 잠금장치를 공격합니다. 잠금장치 쪽을 공격해 금고가 부서지면 오히려 영구적으로 열지 못하도록 내부구조가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모르는 거죠. 고수들은 금고 뒤를 공격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한 금고업계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엄밀히 말해 오랜 시간을 두고 큰 힘으로 부순다면 세상에 열지 못하는 금고는 없다”고 한다. 단지 얼마나 오래 그것을 버티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절도를 방지하는 능력, ‘방도(防盜)기능’ 등급은 시간으로 측정된다. 전문가에게 금고의 설계와 기능 전반을 알려준 뒤 개봉까지의 시간을 재고, 그에 따라 등급과 가격이 매겨지는 것이다. 미국의 UL과 유럽의 SP가 방도기능 국제공인마크로 유명한데, UL 시험의 경우 5분 이상을 버티면 합격이다. 하지만 이 5분은 금고의 ‘약점과 스펙’을 전부 파악한 전문가의 시간이며, 일반인의 경우 수 시간이 걸려도 공략이 어렵다.
이밖에도 중요한 금고의 기능은 내화(耐火)기능이다. 고온에서도 현금이나 문서 등의 내용물이 타지 않고 버틸 수 있어야 좋은 금고다. 내화기능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1시간 이상 1800℃의 불속에 둔 뒤 내용물로 넣어 두었던 신문 등을 꺼내 읽을 수 있는지를 본다. 이 내화기능을 위해 들어가는 ‘내화재’는 시간이 가면서 서서히 증발되기 때문에, 금고제작 업체는 금고의 화학적 수명이 10~15년이라고 말한다.
한국, 세계 내화금고 시장 1위
일반적으로 사무용 금고는 문서보관이 많기 때문에 방도기능보다는 내화기능에 초점을 맞춘 금고다. 주로 70cm~ 1m 크기의 30만~50만원대 제품이 많이 팔린다. 가정용 금고는 사무용 금고에 비해 방도기능이 비교적 높다. 방도금고는 문이나 빗장 등이 훨씬 두껍고 잠금장치가 복잡해 따기 어렵다. 더불어 최근 기존의 칙칙하고 투박한 디자인에서 벗어나 와인냉장고 같은 모양의 ‘인테리어 금고’가 유행하면서 가격은 오히려 큰 사무용 금고보다 비싼 100만~200만원대다.
금고의 잠금장치 종류도 다양하다. 현재 가장 많이 쓰이는 잠금장치는 전자버튼식이다. 기존 다이얼식은 다소 불편하고, 지문인식·홍채인식 잠금장치는 가격이 비싸 수요가 많지 않다. 디자인을 중시하는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외부가 깔끔한 터치버튼식 금고도 매출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최근엔 금고에도 융·복합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금고의 개폐내역을 휴대폰 문자로 알려주거나 GPS 송신기를 탑재해 금고의 위치를 전송하는 기능, 금고 내부에 비디오카메라가 설치돼 실시간으로 영상데이터를 보관하는 기술이 개발돼 상용화되고 있다.
종류와 기능이 워낙 천차만별이다 보니 금고 구매시 가장 중요한 것은 ‘맞춤구매’다. 선일금고 백승민 상무는 “금고의 목적, 내용물, 규격, 가격, 기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제품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시장에서 유명한 금고 선진국은 스웨덴, 독일, 일본, 미국 등이다. 유럽의 제조업체는 뛰어난 기술력과 품질, 일본은 방도기능이 특화된 고가의 강력금고로 유명하다. 미국은 기술보다는 ‘시장’ 자체가 크고 발전한 편이다. 한국 역시 1960~70년대부터 해외에서 금고 기술을 들여와 현재는 선일금고, 범일금고, 부일금고, 디프로매트 등의 금고제조 업체가 세계 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아 미국과 동남아 등지에 금고를 수출하고 있다. 특히 내화기술이 뛰어난 한국 금고업계는 세계 내화금고 시장 점유율 34.8%로 이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다.⊙

현재 세계에서 제일 비싼 금고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칼 라거팰트(Lagerfald)의 시계금고다. 100억원대에 달하는 시계와 귀금속을 보관하고 있고, 금고 자체의 가격만 30억원이다. 금고에는 ‘나르키소스’라는 이름까지 붙여졌다. 금고를 위한 금고가 필요할 지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