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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연구

고려대 106년의 자화상

“이명박입니다. 고려대 합격하셨죠? 꼭 고려대로 와 주세요”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글 : 민경옥  월간조선 인턴기자  paran05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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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만 고려대는 아닌지, 고려대라는 이름 안에서 안주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김정배 고려중앙재단 이사장)
⊙ 고려대는 순박·우직하며 實直하다는 통설. 연세대는 기독교적 애타심과 봉사·희생·글로벌화를 중시
⊙ 고려대 교우회의 인맥 29만명(2010). 매년 정액의 교우회비 납부 교우가 1만8890여 명(2007).
    이들이 내는 회비 총액은 17억7000만원
2010년 5월 5일 열린 고려대 개교 105주년 기념식 모습.
  “문화는 드러내는 것보다 감추는 것이 훨씬 더 많으며, 더구나 묘한 것은 그 문화에 속한 사람들이 감춰진 바를 가장 모른다는 점이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의 말이다. 기자는 29만명으로 추정되는 ‘고려대 교우 집단’의 기질과 사고를 들여다보며 고려대 동문들은 스스로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에 관심을 가졌다. 정치권의 ‘지도자 사모(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처럼 유독 고려대 학연(學緣)의 집단의식에 내재된 끈적끈적한 저류(低流)는 매우 독특하다.
 
  외부인들은 그들을 ‘고려대 마피아’ ‘패거리 조폭 문화’로 폄훼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어떤 식으로든 뭉쳐야 산다”는 집단의식을 몹시 부러워한다. 하지만 고려대 교우 스스로 왜 유별나게 뭉치는지, 왜 ‘깡다구’ 면에서 다른 대학 출신과 차이가 있는지, 깊이 있는 탐구를 하지 않았다.
 
  고려대 경제학과 김균(金均) 교수는 “고려대 사람들이 대체로 공유하는 기질을 대충 뭉뚱그려 ‘고대 정신’이라 부르지만, 고대 정신이 무엇인가를 물으면 어느 누구도 명쾌하게 정의내리지 못한다”고 말한다. 마치 자전거타기 방식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라는 얘기다.
 
  이기수(李基秀) 고려대 총장은 2010년 2학기부터 고려대 정신과 역사를 가르친다는 취지에서 ‘고려대 학(學·Korea University Studies)’이란 과목을 개설토록 지시했다. 이를 두고 ‘고려대 정신’을 알고자 하는 자기탐색의 과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자기를 알아 가는 과정은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 첩경이다.
 
  다만 ‘고려대 정신’을 무조건 칭찬하고 내부 고발자를 부정하며 엘리트주의적 집단사고에 매몰된다면 미래는 어둡다. 그렇게 되면 어느 순간 ‘골목대장’으로 전락할지 모른다. 스스로는 카타르시스를 느낄지 몰라도 물이 고이면 썩기 마련이다.
 
  기자는 고려대 출신이 아니다. 아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고려대 기질을 캐묻기에 자유로웠다. 다만 취재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았다. 취재 중 만난 고려대 출신들은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을 배출한 대학이라는 자부심, 여기다 천신일(千信一) 고려대 교우회장의 구속에 실망하는, 복잡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한 얼굴에 희로애락의 표정이 모두 담겼다는 표현이 옳을지 모른다. 고려대 교우회 측에 취재를 요청하니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자유 정의 진리는 고려대의 3대 정신이다. 그 정신이 고려대생의 지사적, 투사적 저항정신을 길렀다. 고려대생이 1980년 5월 3일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하며 시위를 하는 모습.
 
  유유상종이 아니라 상종유유
 
1917년 보성전문학교의 상과 수업 모습.
  지난 1월 4일 오후 6시 교우회관 지하 1층 대강당에서 고려대 교우회 주최 신년교례회가 열렸다. 30분 전부터 적지 않은 교우들이 덕담을 나누며 서성이고 있었다. 당초 예상인원은 200여 명. 나름 출세한 이들끼리의 관례행사로 기획됐으나 400명이 넘는 교우가 모였다. 공식행사는 6시부터 30분 동안 진행됐다.
 
  교우회에서 준비한 2010년 교우회 활동 영상이 상영됐고 양경자(梁慶子·법학 60) 여자교우회장, 정세균(丁世均·법학 71) 전 민주당 대표, 김영배(金永培·정외 86) 서울 성북구청장이 축하떡을 잘랐다. 또 80학번 동기회(회장 최상주·경제 80)에서 1억원을 모아 교우회에 전달했다. 신년교례회는 금세 떠들썩한 자리로 변했다.
 
  고려대 교우회 송정호(宋正鎬·법학 61) 수석부회장은 “지난해에는 교우회에 어려운 사건이 있었음에도 더 많은 교우들이 장학금을 쾌척하는 등 끊임없는 관심과 도움을 주셔서 무사히 성장 발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개인 명의로 기부되는 장학금과 불우이웃 돕기가 활발했으며 어느 대학 장학재단보다 많은 기부가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이기수 총장이 등장했다. 그는 2월 말 정년퇴임과 함께 총장직에서 물러난다. 이 총장은 “총장으로 재직했던 지난 3년1개월간 하고 싶었던 모든 일을 다 해 내지는 못했으나, 많은 일을 해 낼 수 있었다. 마음의 고향이고 저를 있게 했으며 키워 준 고려대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총장 임기가 10개월 가량 남았지만 2월 정년이 되는 때에 맞춰 물러난다. 이 총장의 결심은 그의 스승 차락훈(車洛勳) 전 총장의 ‘아름다운 은퇴’에서 배운 것이다. 차 전 총장은 당시 임기가 4년이었으나 65세 정년이 되던 1977년 총장 재임 2년 만에 깨끗이 물러났다.
 
  김정배(金貞培) 고려중앙재단 이사장은 “이 총장의 후임 총장이 자연대에서 나왔는데 자연대 출신 총장은 처음”이라며 “현재 고려대의 취약점을 진단하면 자연계 발전이 절실한 시기여서 전 고려대 가족이, 특히 교수들이 심기일전해서 대학 발전을 위해 고심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인사말 끝에 의미심장한 말을 툭 던졌다.
 
  “이름만 고려대는 아닌지, 고려대라는 이름 안에서 안주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고 생각해 봐야 할 때입니다. 재단도 고려대의 더 큰 발전을 위해 심기일전하겠습니다.”
 
  “이름만 고려대인지, 고려대라는 이름에 안주하는 것은 아닌지”라는 대목을 곰곰이 되짚어 보자. 데이비드 베레비의 저서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은 유유상종(類類相從)에 대한 상식을 뒤엎는다. 베레비는 “인간은 서로 비슷한 사람들과 한패가 되는 게 아니라, 한패가 되고 나서 비슷하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서로 비슷한 사람들이 고려대에 모이는 것이 아니라 고려대에 와서 비슷해진다는 얘기다. 유유면 상종이 아니라 상종이 유유라는 것이다. 마치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듯이’ 고려대라는 거대한 집단 속에 자신을 억지로 밀어 넣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다.
 
 
  이명박·김승유의 전화
 
고려대생의 ‘4·18의거’ 모습. 고려대생 3000여 명이 “진정한 민주이념 쟁취를 위해 봉화를 높이 들자”는 선언문을 낭독하고 국회의사당까지 진출했다.
  고려대 동문들의 모교 사랑이 비난받아야 할 이유가 될까. 그건 정말 비정상인가.
 
  끼리끼리 뭉친 고려대 교우집단은 자생적인 상부상조 망(網)으로 발전해 왔다. 1907년 한국 대학 최초의 동창회로 출발한 교우회는 이미 1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마치 ‘눈덩이 굴리기 효과(snowballing)’를 떠올리게 한다. 조그만 눈덩이를 한 번 굴렸을 때는 별로 커지지 않지만 굴릴수록 커지게 마련이다.
 
  교우로 연결된 망에는 자원(資源)이 동원되고 배분된다. ‘우리’ 안에서는 관용과 신뢰, 상호부조가 뜨끈뜨끈하게 존재한다.
 
  4년 전의 일이다. 2007년 수능 결과, 고려대 경영학과의 입학성적이 크게 뛰었다. 요즘도 그렇지만 그때도 연세대와 고려대 인기학과의 경우 서울대와 중복합격자가 많았다. 수험생들은 일단 서울대를 선호한다. 그러나 이변이 생겼다.
 
  그해 서울대 복수합격자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고려대 선배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후보였던 이명박 대통령이 나섰다. 이 대통령은 고려대 경영 61학번이다. 그러나 자칫 정치적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하겠다”고 고집했다. 고려대 경영대학에서 알려준 전화번호로 직접 수험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설득에는 하나금융 김승유(金勝猷) 회장이 힘을 더했다. 두 사람은 고려대 경영학과 61학번 동기다. 기라성 같은 선배를 동원한 것은 고려대 장하성(張夏成) 경영대학장의 아이디어라고 한다.
 
고려대 경영학과 61학번인 이명박 대통령의 대학시절. 뒷줄 맨 왼쪽이 이 대통령이다.
 
  고려대 경영의 입학성적 크게 올라
 
1980년 9월 18일 제1회 고려대 교우의 날 모습. 현재 고려대 교우는 29만명으로 추정된다.
  당시 실무를 맡았던 고려대 모 교수의 설명을 토대로 재구성해 보면 다음과 같다.
 
  “여보세요. 저 이명박입니다.”
 
  “네? 누구라고요?”
 
  “이명박 (전) 서울시장입니다. 이번에 고려대 경영대학에 합격하셨죠? 축하드립니다. 저와 동문이 돼 기쁩니다. 꼭 고려대로 와 주세요. 그럼, 부모님 좀 바꿔 주시겠어요?”
 
  이 전 시장은 수험생 부모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버님. 저 ○○군의 선배 이명박입니다. ○○군이 저와 동문이 되게 도와주십시오.”
 
  그 결과, 서울대 장학생으로 합격했던 권모 양 등 10여 명의 최상위권 수험생이 고려대 경영학과로 발길을 돌렸다.
 
  고려대 경영대 관계자는 “‘혹시나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고 판단되면 안 해 주셔도 상관없다’고 했는데도 당시 이명박 후보는 ‘내가 고려대 덕분에 큰 사람인데 당연히 해야죠’라며 흔쾌히 승낙, 우리가 오히려 놀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대한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한 제재형(諸宰馨·정치 53)씨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흥미로운 기억을 들려줬다.
 
  “제가 고려대 ≪교우회보≫ 편집국장으로 있던 1983년에 이 대통령이 경기도 평택의 임야 33만578㎡(10만평)를 고려대에 기증한 일이 있었어요. 교우회보에 그 얘기를 기사화했는데 이 대통령이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 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할 수 없이 기사를 빼고 신문을 다시 찍었습니다. 지난해 이 대통령이 재산 기부한 일이 있지요? 전 그분이 어려운 사람을 위해 재산을 내놓은 정신을 높이 사고 싶어요.”
 
  어쨌든 이 대통령의 전화 덕분인지 그해 고려대 경영의 입학생 성적이 크게 올랐다. 당시 일간지들은 입시학원의 자료를 토대로 ‘고려대 경영이 서울대보다 높다’는 기사를 썼다. 자신감이 배가된 고려대는 이듬해 신입생을 모집하며 “당연히 고대 경영이 서울대보다 좋아요!”라는 신문광고를 내보냈다. ‘연세경영 NO.1’이라는 광고로 전통적으로 상경계열이 강하다는 점을 강조한 연세대는 불쾌감을 드러냈다. 서울대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자극받은 연세대가 반격에 나섰다. 2008년 입시에서 연세대 송자(宋梓) 전 총장, 삼성증권 배호원(裵昊元) 사장 등 성공한 동문들이 최우수 합격자의 이탈을 막으려 수화기를 들었다.
 
 
 
SKY(서울대·고·연대) 3색 깃발

 
  이기수 총장은 지난해 9월 6일 ‘고려대 학’ 첫 강의에서 “연세대와 이화여대는 기독교 교리전파 수단으로 만든 대학, 서울대는 일본이 침략의 방편으로 만든 관립대학”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려대는 민족적인 성원과 교육구국(救國) 의지에서 출발했기에 그들과는 다른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눌린 자를 쳐들기에, 굽힌 것 펴기에, 쓰리로다 뿌리로다 이 힘과 이 생명…>
 
  고려대 전신(前身)인 보성전문학교의 교가에 나오는 구절이다.
 
 
  고대 3대 이념, ‘자유·정의·진리’
 
‘2008 정기 연고전’에서 고려대 학생들이 응원가를 열창하며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고·연대는 학교의 탄생과 기질이 서로 다르다.
  고대 경제인회 김명하(金明河·경제 58) 회장은 “고려대인이라면 ‘자유·정의·진리’라는 3대 이념을 결코 잊지 못한다. 국적은 바꿔도 학적은 바꿀 수 없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다.
 
  “고려대의 교호(校號·입실렌티 체이홉 카시코시 코시코 칼마시케시케시 고려대학!)는 1920년대 만들어졌어요. 교호에는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웠던 사상가 네 명의 이름이 담겼죠. 오스만 투르크에 저항했던 입실렌티, 러시아의 극작가 안톤 체호프, 폴란드 최초의 독립운동가 코시치우슈코, 그리고 카를 마르크스입니다. 보성전문 때부터 전해져온 이 교호를 통해 고려대의 3대 이념인 자유·정의·진리를 확인할 수 있어요.”
 
  고려대 문과대 교우회 김국현(金國顯·사학 74) 사무국장은 “4·19의거에 앞서 4·18의거를 이끌었던 저항정신이 고려대 정신의 바탕”이라며 “개인적으로 ‘사회에서 궂은일에는 항상 고려대가 앞장선다’는 이미지를 가질 수 있는 전통과 정신을 이어 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고려대생의 4·18의거를 촉발시킨 ‘4·18 선언문’을 작성한 이가 통일원(現 통일부) 통일연수원장을 역임한 박찬세(朴贊世·법학 55)씨다. 당시 그는 《고대신보》(고대신문 前身)의 편집국장이었다.
 
  “4월 18일 고려대생 3000여 명이 스크럼을 짜고 ‘자유·정의·진리를 드높이자’며 플래카드를 선두로 교문을 나와 태평로에 있던 국회의사당을 향해 달렸습니다. 우리는 ‘기성세대는 자성하라, 마산사건의 책임자를 처단하라’고 요구했어요. 독재와 불의에 항거하는 고려대의 정신을 드러냈습니다. 저는 《고대신보》 사설을 통해 ‘낡은 사회에 신선한 피를 수혈하라’, ‘우리는 행동성이 결여된 기형적 지식인을 거부한다’며 신입생과 졸업생의 동참을 호소하기도 했어요.”
 
  그런 ‘태생적 전통’ 때문인지 몰라도 SKY라고 부르는 서울대·고려대·연세대는 마치 프랑스의 3색 깃발처럼 서로 다르다는 말을 많이 한다.
 
  과거 고려대 출신들은 스스로 집단의식을 강화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절박함이 있었다고 한다. 서울대가 관악골로 이전하기 전, 안암동을 마주보는 종암동에 서울대 상대와 사범대가 위치하고 있었다. 서울대와 고려대가 ‘동네 주도권’(?)을 쥐려고 다툼이 심했다고 한다.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 김대호(金大號·경제 77) 교수의 말이다.
 
 
 
우직·순박 vs 개성·절제

 
  “종암동과 안암동을 사이에 두고 서울대 상대와 고려대 상대 학생들끼리 다툼이 많았어요. 마치 한국과 일본이 자존심을 걸고 싸우는 것처럼 기세싸움이 대단했어요. 이명박 대통령과 동기인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도 길 양쪽에 서서 어느 대학에 갈까 고민했다고 해요. 고연전(高延戰)에다 서울대와 경쟁하며 고려대가 더 단합이 잘된 측면도 있어요.”
 
  흔히들 서울대 하면 자기중심적 이미지를 떠올린다. ‘나밖에 없다’라는 선민(選民)의식 같은 것이 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다른 대학 출신들보다 폐쇄적이다. 서울대 출신들은 연·고대에 비해 동창의식이 적은 것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면 서울대 출신들은 직장이나 공공기관에서 후배가 선배를 찾아보거나 또 자기 스스로 서울대 동문이라는 것을 밝히는 경우가 아주 드물다. 자기 과에 대한 애착 정도다.
 
  반면 고려대는 전통적 측면이 순박·우직하며 실직(實直·성실하고 정직)하다는 통설이 있다. ‘외로워 못살겠다’는 것처럼 서로에 집착하려 든다.
 
  MBC 부국장을 역임한 NSC미디어 이강식(李康植·사회 71) 대표는 “촌놈기질·순박·의리·우직 같은 단어가 고려대생에게 어울린다. 고려대생끼리 한번 연을 맺으면 ‘형님, 동생’으로 평생 간다”며 “70년대 음험하던 시절, 위수령과 10월 유신(維新), 긴급조치의 시련을 이겨내며 만들어진 정신이 고려대 정신”이라고 했다.
 
  연세대는 기독교 재단이라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서구사회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개인능력을 강조하는 자본주의와 맞물려 ‘연고(緣故)주의’를 무너뜨렸다. 그래서인지 연세대생은 멋과 낭만을 부릴 줄 알았고 그 바탕에서 자유와 개성, 절제와 금욕의 학풍이 있다.
 
  속설이지만, 서울대는 관리(官吏) 집안 자식, 고려대는 노동자·농민의 자식이 많았다고 한다. 덧붙여 연세대는 중산층 이상 자식들이 많이 진학했다고 한다. 그래서 연세대는 전통적으로 상대와 의대가 강하다. ‘연상고법(연대는 상대, 고대는 법대)’이란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 고려대 ‘11학번’ 미스코리아 정소라
 
   2010 미스코리아 진 정소라(19) 양이 고려대 ‘11학번’ 새내기가 됐다. 당초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학에 진학할 예정이었으나 진로를 수정, 대입 수능을 치지 않고 입학사정관 전형을 통해 올해 고려대에 합격했다.
 
  정 양은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후 상하이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5개 국어에 능통하며 외교관이 꿈이다. 그녀는 신세대답게 자신의 홈페이지에 ‘고대합격~ㅎㅎ 11학번 고고씽’이라고 적었다.
 
  정 양의 아버지는 ‘상공회의소’ 성격인 중국 상하이 한국상회 연합회 회장인 정한영(丁漢榮·56·사진 왼쪽)씨다. 정 회장은 1977년 MBC 탤런트 공채 9기로 길용우, 신신애씨와 동기라고 한다.
 
  정 회장은 “소라에게 《탈무드》를 인생의 지침서로 삼게 하려고, 초등학교 시절 10번을 소리내어 읽게 하고, 읽을 때마다 아빠의 사인을 받게 했다”며 “딸의 잠재력을 인정해준 고려대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기수 총장은 “꿈을 이루는 미래인, 소통하는 세계인, 남을 배려하는 지도자로 커 달라”며 “고려대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껴 진선미(眞善美)의 꽃을 피워라”고 덕담을 건넸다.
 
  정소라 양은 “가고 싶었던 대학에 오게 돼 기쁘고 감사하다”며 “고려대에서 열심히 공부해 한국의 미를 세계에 알리고 외교관의 꿈도 이루겠다”고 말했다.
 
  해병대 장교에 고려대 출신이 많아
 
  고려대와 연세대의 이미지 차이는 병원과 ‘판박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세브란스 병원은 신촌과 강남에 위치한다. 고려대 병원은 구로와 성북구에 있다. 심지어 병원을 찾는 환자들도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로 나뉘어 대학 이미지와 비슷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혹자는 세브란스와 고대병원의 영안실 역시 두 대학 분위기와 닮았다고들 한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고려대는 지방에서 상경한 유학파가 많았다. 인생 ‘한방’을 위해 고등고시에 목을 맨다. 법대와 정경대의 합격선이 셀 수밖에 없다.
 
  여기서 잠깐. 2000년부터 2009년까지 10년간 사법고시 합격자를 살펴보니 서울대(3347명) 다음으로 고려대(1658명)가 많다. 연세대는 1068명이다.
 
  이번에는 고려대 정외과 출신들의 정계진출 여부를 살펴보자. 고려대 정외과는 10대 국회에서 17대 국회까지 총 88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단일 학과로는 가장 많은 국회의원을 배출했다고 한다.
 
  유재은(兪在恩·사학 72)씨는 “과거엔 고려대에 지방출신 학생이 많았다. 다양한 지방색과 민족정신이 결합돼 고대의 끈끈한 교우정신을 형성했다. 어찌 보면 다소 촌스러운 이미지다. 좋게 보면 민족적 색채가 강한 것이 바로 고려대의 색깔”이라고 했다.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100원이 생기면 서울대생은 책을 사보고, 고려대생은 막걸리를 사먹고, 연세대생은 구두를 닦는다.’ 고려대는 모여 술판을 벌이는 커뮤니티, 연세대는 멋을 내는 프라이버시를 중시한다는 의미다.
 
  이런 말도 있다. ‘서울대생은 모과, 연세대는 양파, 고려대는 딸기와 같다’고들 한다. 서울대생은 겉으로 보나 까놓고 보나 딱딱하고 맛이 없다. 공부만 하는 ‘샌님’ 같다. 연세대생은 껍질을 까도 까도 속이 안 보인다. 고려대생은 껍질을 깔 필요도 없이 그냥 와락 씹으면 된다. 이 비유는 고려대만 좋게 표현한 것으로 봐서 아무래도 고려대생이 자작(自作)했을 가능성이 높다.
 
  (주)월간조선사 이사를 역임한 김석규(金石圭·신방 71)씨는 연·고대의 차이를 이렇게 정리했다.
 
  “고려대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는 유일한 민족·민립의 지도자 양성기구였어요. 그래서 민족정신이라는 시대적 요구가 고려대 교수와 학생들에게 특별히 더 부하됐고, 학생들의 지사적 또는 투사적 저항기질을 배태시킨 것 같습니다. 반면 연세대는 세련되고 도회적이며 개방된 서구의 가치를 중시하는 쪽으로 다가갔다고 봐요. 고려대와 대별되지요. 서구의 가치 중에 특히 기독교적 애타심과 봉사·희생·글로벌화를 중시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면에서 연·고대는 맞수이지요.”
 
  김석규 전 이사는 해병대 장교로 복무, ‘고려대 교우회’와 함께 ‘나라는 망해도 살아남는다’는 세칭 대한민국 3대 결속력 단체 중 2곳을 체험했다.
 
  “거칠게 표현해 해병대 장교 중에 고려대 출신이 10명 중 7~8명이고, 서울대 출신이 1~2명, 연세대 출신 장교는 아주 드물었어요. 그만큼 고려대 출신들이 많았습니다. 고려대와 해병대가 교감하는 정서가 비슷하다고 할까요? 두 곳을 상징하는 색깔도 진홍색입니다. ‘시뻘건’ 정열이지요.
 
  한겨울 팬티 입고 구보하고, 꽁꽁 언 강 속에 뛰어드는 고통체험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고려대 정신이 있어 가능했어요.”
 
 
  고대와 연대의 ‘술 노래’
 
  고려대에는 ‘막걸리 찬가’를 부르고 ‘사발식’이란 이상한(?) 전통도 있다. 신입생 환영회 때 큰 양푼(혹은 냉면그릇이나 플라스틱 바가지)에다 막걸리를 가득 채우고 단숨에 마시게 하는 음주 전통이다. 어윤대 총장 시절, “‘막걸리대학교’를 ‘글로벌대학교’로 바꾸겠다”며 공식 행사에서 막걸리를 없앴다. 대신 프랑스산 와인을 마시도록 했었다. 그러나 이기수 총장이 들어서고 다시 과거로 돌아갔다. 이 총장은 고려대를 국제화시키려 외국인 교수들을 데려오며 ‘사발식’ 전통에 따라 신고식을 치르게 했다. 예상외로 외국인 교수들의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 사그라드는 고려대 막걸리집
 
   “예전에는 신학기에 동문회나 동아리 회식 예약으로 달력이 꽉 찼었어.”
 
  22년 째 ‘풍년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상수(金相洙)·고춘자(高春子)씨 부부의 말이다. ‘풍년집’은 고려대 정문 앞 제기로에 있는 막걸리집. 원래 풍년집이 위치한 골목은 1970~80년대만 해도 막걸리집들이 즐비한 막걸리 골목이었다. 지금은 그 자리에 원룸이 들어서고, 막걸리집은 ‘풍년집’, ‘나그네파전’, ‘고모집’ 3곳만이 남았다.
 
  고씨는 “요즘 학생들은 맥주 먹으니까 (막걸리집에는) 잘 안 와. 이쪽은 (상권이) 죽었어”라고 했다. 실제로 2004년 4월 《고대신문》이 조사한 ‘즐겨 찾는 술의 종류’에 대한 질문에서 맥주가 43.5%로 가장 높았으며, 40.5%는 소주, 막걸리는 4.5%에 그쳤다.
 
  원래 두 사람은 40대까지 경상도에서 농사를 짓다가 자식들 공부를 위해 상경, 지금의 가게를 얻었다. 김씨의 회고다.
 
  “시험 때도 와서 먹고 시험 보러 가고, 수업 중에 먹으러 오는 학생도 있었어요. 막걸리 먹으면서 자리에서 크게 노래를 합창하고, 앞마당에서 어깨동무하고 응원하면 시끌시끌했지.”
 
  많은 학생이 찾다 보니 외상도 잦았다. 당시 학생들의 학과와 학번이 빼곡히 적힌 외상장부가 공책으로 5권이나 됐다. 어려운 시대였기에 술값 대신 학생증을 맡기는 학생들도 있었다. 부부는 당시 학생들이 맡긴 학생증을 보여주면서, 못 받은 외상값이면 건물 한 채는 샀을 거라고 웃었다.
 
  물론 지금도 잊지 않고 이곳을 찾는 단골손님들도 있다. 개그맨 박지선(교육 03)씨, KBS ‘미수다’에 출연했던 따루 살미넨(33·핀란드)은 ‘풍년집’의 대표 단골이다(따루는 1998년에 고려대에 교환학생으로 왔었다). 그 외에도 가족단위 손님과 ‘7080’직장인, 고려대 교수도 종종 들른단다.
 
  하지만 세월이 변하면서 고대생의 막걸리 사랑도 변하는 모양이다. 요즘은 고대생들의 발길이 뜸하다고 부부는 말했다.
 
  다시 등장한 ‘사발식’ 전통
 
  고려대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막걸리 찬가’라는 게 있다. 이 노래는 조지훈 작사, 이흥렬 작곡의 응원가를 개사(改詞)한 것이다.
 
  <마실까 말까 마실까 말까 에라 모르겠다 마시자 / 마셔도 고대답게 막걸리를 마셔라 맥주는 싱거우니 신촌골로 돌려라 / 부어라 마셔라 막걸리 취하도록 너도 먹고 나도 먹고 다같이 마시자 / 고려대학교 막걸리대학교 아~/ 막걸리를 마셔도 고대답게 마셔라. 만주땅은 우리땅 태평양도 양보 못한다.>
 
  여기서 ‘맥주’와 ‘신촌골’은 연세대를 의미한다. 막걸리 찬가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려지지 않는다. 구전(口傳)으로 전수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60년대 초에 졸업한 50년대 학번들에게 물어보니 학창시절 듣지 못했다고 한다. 70년대 학번 때는 그 노래를 들었다는 증언이 있는 것으로 보아 60년대 중·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안효질(安孝秩·법학 83) 교수의 회고다.
 
  “대학 정문 앞쪽에 막걸리집들이 있었어요. 당시엔 맥주집은 거의 없었습니다. ‘고모집’이라는 막걸리집에 친구들과 자주 갔었습니다. 사발식은 지금처럼 냉면그릇에 했지만 강권하진 않았어요. 막걸리 찬가도 있었는데, 축제 때는 잔디밭에 모여 술을 마시기도 했어요. 지방 학생 중에는 형편이 넉넉지 않은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월초나 말에 고향에서 생활비를 받아 방값이랑 밥값을 내고 남은 돈으로 전부 술값에다 쓰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또 입주(入住) 과외를 하거나 막노동을 해서 학비를 버는 친구도 있었고요. 식비나 술값 대신 식당에 시계나 학생증을 맡겼다가 돈이 생기면 찾아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술노래는 아니지만 연고전을 할 때 꼭 부르는 고려대 노래가 있다.
 
  <맥주는 싱거우니 신촌골로 돌려라 / 털털하기로 소문난 고대 / 깔끔하기로 소문난 연대 / 잘난 척 대왕 서울대>
 
  ‘맥주는 싱거우니 신촌골로 돌려라’라는 표현이 ‘막걸리 찬가’와 중복돼 있다.
 
  그렇다면, 연세대 학생들이 부르는 ‘권주가’는 없었을까? 있다. 요즘엔 모르겠지만 과거 연세대생 역시 술자리에서 부르던 노래가 있었다고 한다. 찬송가(영광 영광 할렐루야)를 개사한 것인데 재미있다. 비속어가 담겨 있으나 악의는 없다.
 
  <관악골에 자리잡은 서울대학은 총장이 쪼다라서 교수도 쪼다, 교수가 쪼다라서 학생도 쪼다, 모두 다 쪼다, 쪼다 학교래~ / 안암골에 자리잡은 고려대학은 총장이 술꾼이라 교수도 술꾼, 교수가 술꾼이라 학생도 술꾼, 모두 다 술꾼, 술꾼 학교래~ / 신촌골에 자리잡은 연세대학은 총장이 제비라서 교수도 제비, 교수가 제비라서 학생도 제비, 모두 다 제비, 제비 학교래~ // 영광 영광 연세대학(후렴)>
 
  서울대를 ‘제 구실 못하는 좀 어리석은 사람’(쪼다)으로 칭한다. 공부벌레, 샌님을 빗댄 말이다. 고려대 총장, 교수, 학생 모두를 술꾼으로 묘사한다. 연세대는 스스로 살랑거리는 제비라 부른다.
 
  70~80년대만 해도 연고전은 ‘장안의 명물’로 TV에서 중계방송을 할 정도였다. 연고전이 처음 시작할 때는 연희전문과 보성전문을 따서 ‘연보전’이라 불렀다. 이후에는 연세대가 주최하면 ‘고연전’, 고려대가 주최하면 ‘연고전’으로 불렀다. 언론에서는 그냥 고려대가 이기면 ‘고연전’으로 쓰고, 연세대가 이기면 ‘연고전’이라고 썼다고 한다.
 
지난 1월 4일 열린 고려대 교우회 신년교례회 모습. 이날 80학번 동기회에서 1억원을 모아 교우회에 전달했다.
 
  마피아의 힘
 
  박찬세(법학 55)씨는 고려대 동문의 덕을 본 기억이 있다. 통일원 통일연수원장에 재직하던 1986년 12월 무렵, 서울 성북구에 연수원 청사를 지을 때의 일이다. 1만6878평의 땅을 이북출신의 성공한 금융인(고성일)으로부터 기증받아 연수원을 지으려는데 정부 예산이 빠듯했다고 한다. 이대로 가다간 공사 착수도 못할 판이었다.
 
  박 원장은 고심 끝에 고려대에서 동문수학한 이기택(李基澤·상대 57·現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씨를 찾아갔다. 고려대 재학 시절 박 원장은 《고대신보》 편집국장, 이기택씨는 고려대 학생위원장이었다. 두 사람은 4·18 의거를 두고 머리를 맞대던 사이였지만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었다. 그의 말이다.
 
  “이기택씨가 당시 통일민주당 원내총무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여야가 서로 갈등하던 시절이었어요. 야당이 반대하면 여당이 어쩌지 못할 만큼 힘이 대단했어요. 제가 ‘통일연수원을 지으려는데 돈이 없다. 도와 달라’고 부탁했어요. 이 총무 반응이 명쾌했어요. ‘여부가 있겠느냐. 그것도 통일을 위한 교육기관인데 여야가 따로 없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통일교육원을 짓게 된 겁니다. 넓은 의미에서 고려대 덕을 본 셈이지요.”
 
  그해 10억원의 돈이 통일연수원 계좌로 ‘안전하게’ 입금됐고, 해마다 예산이 배정돼 1991년 3월 건물이 완공됐다.
 
 
  “제가 승진하는 것은 학교가 좋아서…
 
고려대 최초의 학생증과 당시 새로 제작된 모표와 교모(1946).
  이런 일도 있다. 고려대 출신 기자에게 들은 얘기다. 중앙부처에 수십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고위직(국장급)에 오른 사람이 있었다. 고려대 출신이었다. 경쟁이 치열해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하느냐에 부처의 관심이 고조됐다. 당시 차관과 기획실장이 고려대 출신이었다.
 
  고려대 출신 간부들과 고려대 출신 출입기자들이 따로 모여 축하 회식자리를 마련했다. 그는 “제가 이번에 승진을 한 것은 다 학교를 잘 나왔기 때문”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농반진반(弄半眞半)이지만 그의 승진에 학연도 영향을 미쳤지 않았을까. 그는 진도를 더 나갔다.
 
  “제 자식이 연세대에 진학하겠다는 것 제가 만류했어요. 사회생활 하려면 고려대를 나와야 한다고 했어요. 동문들이 병풍처럼 싸고 있다고 했지요. 안 그렇습니까.”
 
  ‘간 큰’ 인사를 하자, 박장대소하는 소리와 함께 요란한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고 한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이대희(李大熙·법학 83) 교수는 전형적인 ‘고대 맨’이다. 참석하는 고려대 관련 교우모임만 4개다. ‘고려대 법학과 83학번 모임’, ‘멘도타클럽(미국 위스콘신 대학 출신 고려대 재직 교수 모임)’, ‘고려대 법학과 출신 고교 선후배 모임’, ‘고려대 출신 고교 모임’ 등이다.
 
  이 교수는 “사회에서 업무상 대학 후배를 만날 경우, 예컨대 회의가 끝난 후 상대가 고려대를 졸업한 후배임을 밝히고 술자리를 갖게 되면 반드시 선배인 제가 항상 술값을 낸다”고 했다. 또 “후배가 일정한 조직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타대학 출신이라면 하지 않았을 조언을 했고, 타대학 출신보다는 좀 더 애정을 가지고 지켜봤다”고 고백했다.
 
  “타대학 출신들이 고려대에 가지는 부정적인 시선을 크게 상관하진 않아요. 오히려 그런 부정적 시선은 타교 출신들이, 자신들이 가지지 못하는, 가질 수 없는 것을 부러워하거나 시샘하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고려대 출신 간의 ‘노골적인’ 유대감을 드러내지 않도록 하면서 계속 유지하면 좋겠습니다. 애교심을 가지되 우리 대학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 같아요. 사실 서울대 출신이라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능력과 상관없이 요직을 차지하는 경우도 많고, 고려대 출신에 대해서도 그런 생각을 갖는 이가 있겠지요. 능력을 우선 키워야 합니다.”
 
  고려대 교우회는 고려대가 배출한 졸업생이 2007년 기준으로 26만3000명에 이른다고 한다(2010년 현재 29만명 추산).
 
 
  고려대 패밀리, 부럽고 꼴사납고…
 
  고려대 인권환(印權煥·국문 56) 명예교수는 ‘고려대 정신과 전통론’을 소개하며 이렇게 지적했다.
 
  “매년 정액의 교우회비를 납부하는 교우가 1만8890여 명(2007)이고, 이들이 내는 회비의 총액은 17억7000만원에 이릅니다. 여기서 사망 또는 행불, 그리고 노령 은퇴자들을 감안한대도 각종 특별기부금을 제외한 한 해 회비만으로 거액이며 이는 국내 대학 중 최고 액수입니다. 무엇보다도 모교와 아무 연관을 맺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한 해 2만명에 이르는 교우가 회비를 송금하고 있다는 사실은 고려대 사회에서만 볼 수 있는 전통적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우회 산하에는 총 138개 지부가 있고 이 중 국내에 76개, 세계 각국에 62개가 퍼져 있다. 인권환 교수에 따르면, 국외의 경우 항상 가족단위로 모여 친선을 도모하고 기부금을 보내며, 학교 인사들이 해당지를 방문할 때 성대한 자리를 마련해 환대한다고 한다. 교우들의 모교 방문행사도 빼놓을 수 없다. 1986년에 1956년 학번들의 입학 30주년 기념으로 시작된 모교 방문행사는 매년 행해지고 있다.
 
  월간 ≪사람과 山≫ 편집위원인 현동욱(玄東旭·생물 64)씨는 현재 고대 64학번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회원은 약 1100여 명 된다. 1년에 정기적인 모임을 2번 가진다. 학창 시절, 대학 산악부 서클에 참여했다.
 
  “당시에 모든 학생이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여서 선배들이 돈으로 큰 도움을 주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하지만 선배들이 술자리 이후에 집이 먼 후배나 잠자리가 마땅치 않은 후배에게 자신의 자취방을 슬며시 내주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런 소소한 배려가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끈끈함으로 남아 교우회 활동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연세대 경영학과 88학번인 중견기업 김모 과장은 기자와 만나 이렇게 토로했다.
 
  “호남향우회가 전라도 지역민의 ‘생존전략’, 해병대전우회는 동시대 젊은이의 ‘고통체험’ 때문에 패밀리로 불린다면, 고려대 교우회는 왜 ‘그들만의 리그’가 존재하는지 솔직히 불가사의합니다. 몇 달 전 우리 회사에 경력직원이 새로 입사했어요. 그 분야에 능력이 출중한 분이어서 경쟁회사에서 스카우트됐지요. 입사 당일, 점심시간이 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특정대학 출신들이 우루루 집결하는 겁니다. 솔직히 부러웠습니다. 이튿날 점심·저녁 때도, 무슨 회식이 그리 많은지, 그 다음날에도 마찬가지였어요. 그 경력직원은 지금, 마치 입사 10년차처럼 잘 지냅니다. 여기서 잘~ 지낸다는 말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어요. 물론 능력이 있으니까 그렇겠지만 ‘입사 연착륙’을 도운 이는 고려대 동문들이었어요. 간부에서 후배들까지 그 직원에게 깍듯하게 대하는 모습이 부럽고 꼴사납고…. 만약 그 직원이 제 승진에 걸림돌이 된다면? 생각만 해도 오싹합니다.”
 
  김 과장은 향후 고려대MBA 진학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다만 고려대 대학원을 나왔다고 해서 직장 내 고대 동문 커뮤니티에 끼워줄지는 의문이다.
 
 
  고려대 ‘CC 1호’ 제재형·권영순
 
제재형(정치 53)씨와 권영순(영문 53)씨는 최초의 고려대 부부교우다. 고대 출신 부부 답게 4형제를 기르며 ‘연대의식’을 기르도록 가르쳤다고 한다.
  《한국일보》 기자 출신인 제재형(정치 53)씨와 권영순(權英順·영문 53)씨는 최초의 고려대 부부교우다. ‘CC(캠퍼스 커플) 1호’로 《고대신문》과 《교우회보》에 나란히 실렸으니 공인된 ‘인증 샷’을 갖고 있는 셈이다. 권영순씨는 고대여자교우회 회장을 10년 역임했으며 여성장학생을 위한 ‘석란 장학재단’을 최초로 만든 사람이다.
 
  “우리는 고대 출신 부부라서 아이들 가르칠 때도 연대의식을 가지도록 가르쳤어요. 나는 아들이 4명인데 상벌을 항상 똑같이 줬지. 한 명이 잘못하면 모든 형제가 같이 벌을 받고, 한 명이 잘하면 모든 형제가 같이 상을 받게 했어. 예를 들어 둘째가 잘못하면 형이 잘못 가르쳤기 때문에 같이 벌을 받고, 동생들은 나쁜 것을 본받지 않게 같이 벌을 받게한 거지. 형이 100점 받아 오면 동생들도 같이 상을 받으면서 ‘형 덕에 내가 상을 받는구나. 나도 열심히 해서 형에게 기쁨을 줘야지’라고 생각하게 하는 거야. 형제는 운명공동체니까.”
 
  그러나 정작 제씨의 네 형제 모두 서울대를 나왔다. 현재 장남(제성호)은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차남(제원호)은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3남(제강호)은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4남(제민호)은 이수화학 대표다. 그는 “고려대에 미안하다”고 웃었다.
 
  제씨가 입학할 1953년 당시 고려대는 대구에 있었다. 6·25전쟁으로 대학도 피란 가 있던 시절이었다. 서울대, 연세대가 더 남쪽인 부산에 ‘정박’한 것과 대비된다. 제씨의 말이다.
 
  “53년 입학해서 57년 졸업할 때까지 여학생이 전체 100명 안팎이었습니다. 그래서 1960년대에는 여학생을 늘려야 한다고 해서 특별전형으로 대거 선발한 적도 있어요. 1950년대에는 전쟁 때문에 책상이 없어 합판에 구멍을 2개 뚫고 고무줄을 끼워 목에 걸고 책상 대용으로 시험보던 시절이었습니다. 57년 졸업 당시에는 눈비가 섞여 내렸는데, 학사모도 없이 나무 간이의자에 앉아 졸업식을 거행했어요. 당시에는 석사들에게만 학사모를 제공했어요.”
 
 
  ‘백수지왕, 억강부약’
 
  제씨는 1959년 고대 교우회 상임이사를 맡기 시작해서 47년간을 유지, ‘고려대의 산 증인’이라는 칭호를 받는다.
 
  “예전에는 학교 정문 앞에 호박밭이 있었는데 그 옆에 있는 판자로 된 가게에 가서 친구들과 막걸리를 하나 시켜 나눠 먹으며 허기를 달랬지요. 막걸리를 시키면 선지국을 조금 줬는데 그것으로 한끼 허기를 달래곤 했어요.”
 
  그의 계속된 말이다.
 
  “고대는 다닐 때보다 졸업하고 나서 힘이 강한 거야. 다른 어느 대학보다 뭉치는 힘이 강하거든요. 고대의 뭉침은 학풍입니다. 호랑이 정신이 고려대 정신인데, 호랑이는 백수지왕(百獸之王)이고, 굶주려도 풀을 뜯어 먹지 않고 억강부약(抑强扶弱·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도움)하지. 그래서 권력자에게 저항하고 약하고 어려운 사람에게는 편이 되어서 북돋아주는 것이 고대 정신이지.”
 
 
  고려대 교우회가 가야 할 길
 
  한국사회가 산업화를 이루면서 적어도 산업화 초기에는 연줄이 긍정적인 효과를 낸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경제성장을 채찍질하기 위해서는 손발이 맞아야 한다. 다시 말해 충성도가 높아야 일의 능률이 오른다. 연줄 안에서 이뤄진 거래는 계약서가 필요 없다. 믿고 맡기면 일사천리다.
 
  연줄 중에서도 한국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학연이다. 과거 경기고, 서울고, 경복고, 경북고, 부산고, 경남고, 대전고, 광주일고, 전주고 등과 같은 고교 동문이 큰 학연집단으로 통했지만 70년대 후반 ‘뺑뺑이 세대’로 접어들어서는 고교동문 파워가 꺾였다.
 
  대신 일류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능력의 차이, 즉 수학능력시험 점수의 차이가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대학의 학연은 20대의 불같은 황금기를 동시 체험한다는 점에서 연대의식으로 발전한다. 재학 당시엔 몰라도 졸업 후에 배가(倍加)된다. 하지만 졸업 후 맺어지는 연대의식 속에는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유·무형의 ‘이득’이 돌아올 것이란 전제가 깔려 있지 않을까.
 
  물론 동문끼리 돈을 모아 장학금을 마련하거나 봉사활동을 하는 상호부조의 학연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런 사적 영역이 공적 영역으로까지 이어지면 곤란하다. 예를 들어 연고, 연줄에 얽매여 공적 자원을 배분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명박 정부 초기 인사가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출신) 논란에 빠진 것을 떠올려 보라. 대통령의 출신대학이 어디냐에 따라 권력서열이 통째로 바뀌는 일은 대학의 불행이자 국가의 불행이다. 연줄주의가 공적 영역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순수한 연줄주의는 사라지고 만다.
 
  연세대 김용학(金用學) 교수는 <한국사회의 학연>이란 논문을 통해 “연줄주의에 포함된 집단의 구성원은 ‘일반화된 교환(generalized exchange)’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일반화된 교환’이란 A가 B에게 베풀면 B로부터 돌려받을 것을 기대하는 기브앤드테이크(give-and-take)식 호혜적 교환이 아니다. A가 B에게 무언가를 베풀면 B뿐만이 아니라 집단의 제3자로부터 보상이 돌아올 것을 기대하는 것을 뜻한다. 철저한 이익을 바탕에 깐 ‘닫힌 연결망 집단’에서 이뤄지는 거래다.
 
  다시 말해, 동문의 청탁을 들어주는 것은 그 동문에게서 직접 보상받을 것을 기대하는 것도 있지만 자신이 동문집단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집단 구성원이란 것을 알려, 자신도 향후 제3의 동문에게 청탁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깔고 있다.
 
 
  “저마다 꿍꿍이속이 있어 만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같은 부류의 모임에 친목을 위한 만남은 없다. 저마다 꿍꿍이속이 있어서 만난다”고 갈파했다. 끼리끼리 무언가를 챙기려 기를 쓰고 만난다는 얘기다.
 
  고려대 교우의 파워가 교우집단의 이익에만 쏠린다면 ‘마피아 집단’과 다를 게 없다. 그 파워가 ‘선한 영향력’이 되어 제3의 이웃과 사회를 위해 헌신할 때 우리 사회에서 환영받을 수 있다. 그런 환대는 결국 누구에게 돌아갈까. 고려대 자신에게 돌려진다.
 
  고려대 교우회 원로인 제재형씨의 말이다.
 
  “고려대 교우는 약속한 것을 손해 보더라도 지켜 가야 합니다. 미국 달러에는 ‘우리는 신을 믿는다(In God we trust)’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미국 달러는 세계 어디에 가도 통합니다. 그런 신뢰사회를 고려대 출신이 만들어야 합니다.
 
  또 사회에 덕을 끼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고려대 정신은 ‘자유·정의·진리’지만 저는 우선 ‘머리에 든 사람, 수양이 된 사람, 사회에서 난 사람이 되자’고 강조하고 싶어요. ‘고려대 나온 사람들은 인격이 됐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소탐대실(小貪大失)하지 말고 이소성대(以小成大·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해 큰 일을 이룸)해야 합니다.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말고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피를 흘려서라도 해내는 정신, 억강부약의 고대 정신을 이어가야 합니다. 물론 고려대 정신도 시대변화에 맞게 재편하고 새롭게 적용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법고창신(法古創新·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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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기식    (2011-02-04) 찬성 : 314   반대 : 381
“이명박입니다. 고려대 합격하셨죠? 꼭 고려대로 와 주세요” 라? 현직대통령이 모교선전을? 이명박씨가 소망교회만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아닌 것과 같이 고려대학만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아닐진대, 위와같은 선전은 어쩐지 졸렬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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