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

“DJ, 이념 중시하지 않고, 평생 법치·삼권분립 추구”

  • 글 : 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sjk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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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세에 박사과정 입학, 95세인 현재 박사 논문 준비 중
⊙ 하루 2시간 이상 운동하며 체력관리, 골프 70타 기록
⊙ “DJ는 사형선고도 받아들여… 입법 권력이 사법부 침해해선 안 돼”
⊙ “민주주의 핵심 가치는 삼권분립, 민주당은 지나치게 강하게 나가고 있다”
⊙ “이재명 대통령은 일찌감치 꾸준하게 미래를 준비해 온 정치인”
⊙ “이재명, 후보 시절 중도보수 정당을 얘기한 건 DJ의 노선과 다르지 않아”
⊙ “여당 대표는 정권이 성공할 수 있도록, 대통령을 뒷받침하는 정치 해야”

權魯甲
1930년생. 동국대 졸업, 한국외대 대학원 영문학 석사 / 김대중 국회의원 비서관, 민주화추진협회 발기인, 평민당 총재비서실장, 제13·14·15대 국회의원, 민주당 최고위원·부총재, 새정치국민회의 총재비서실장,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역임. 現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민주화추진협의회(창립 시 김대중·김영삼 공동의장) 공동이사장, 김대중재단 이사장
사진=조준우
95세에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골프 70타를 기록한다. 기상 직후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국내외 신문을 모두 읽는다. 매일 헬스클럽에서 2시간 이상 운동을 하고 저녁 식사 후엔 아령 200회와 팔굽혀펴기 100회를 한다. 권노갑(權魯甲) 김대중재단 이사장의 일상이다.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그의 근황은 언뜻 믿기 어려웠지만 인터뷰를 약속한 날 국회 헌정회 건물에서 권 이사장을 만나는 순간 단박에 이해가 됐다. 90대로 보이지 않는 큰 키와 매끈한 피부, 꼿꼿한 자세로 기자를 맞은 권 이사장은 2시간이 넘는 인터뷰 시간 내내 자세에 한 치 흐트러짐이 없었다.
 
 
  ‘DJ 정치’에 관한 박사 학위 논문 준비 중
 
권노갑 이사장이 2025년 6월 24일 샷 이글을 치고 골프장 측으로부터 기념 증서를 받고 있다. 사진=권노갑 이사장 측
  권 이사장은 83세에 한국외대 영문학 석사 학위를 받아 국내 최고령 석사를 기록했고, 2년 전인 2023년 같은 과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석사 논문의 제목은 〈존 F 케네디의 연설문에 나타난 정치사상 연구〉였으며 박사 논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와 관련한 내용이다.
 
  ― 대학원 박사과정 재학 중이라고요.
 
  “현재 박사과정 수료는 마쳤고, 졸업시험과 논문을 준비 중입니다.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논문 제출 전에 박사종합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영어·일어·영문학사·영미시(詩)·영미소설·영미극(劇) 등 6개 과목 시험을 모두 치릅니다. 내년이면 이 시험들을 마치고 영문(英文) 논문까지 완성해 박사 학위를 정식으로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 박사에 도전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그간 학교에서도, 주변에서도 ‘영원한 DJ 비서실장’인 제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주제로 논문을 써서 세계에 알리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많이들 해왔습니다. 그래서 박사과정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제 연구가 세계 정치학자들이 김대중 대통령을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특히 그의 인권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평화와 통합의 정신을 학문적으로 조명하고 싶습니다.”
 
  ― 작년에 제정된 ‘김대중상’과도 연관이 있겠군요.
 
  “2024년 9월, 세계정치학회(IPSA)는 노벨의 이름을 딴 노벨상처럼 ‘김대중상(金大中賞·Kim Dae-jung Prize)’을 제정했습니다. 이 상은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주의, 인권, 평화에 대한 기여를 기리고, 그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마련된 세계적인 학술상입니다. ‘김대중상’은 세계정치학회가 2년마다 개최하는 총회에서 시상하며, 민주주의 발전, 인권 증진, 평화와 화합, 통합의 가치를 실천한 정치 지도자나 학자, 연구자에게 수여됩니다.”
 
지난 7월 1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1회 김대중상 시상식. 사진=뉴시스
  올해 서울총회에서 초대 수상자가 배출됐는데, 그 주인공은 캐나다 맥길대 T. V. 폴(T.V. Paul) 교수다. 그는 국제 안보와 평화질서 연구에 기여한 공로로 선정됐다.
 
  ― 젊은 사람도 하기 힘든 게 박사과정인데, 체력이나 기억력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기억력은 젊은 사람에게 지지 않아요. 체력은 물론이고. 매일 스포츠센터에 가서 자전거와 역기 등 2시간 정도 운동을 해요. 그리고 집에 와서도 저녁에 TV 보면서 아령 200개, 팔굽혀펴기 100개는 하고. 식습관도 체력관리의 일부입니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흑염소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먹어요. 고기를 먹어야 근육이 생기거든. 고기 먹고 운동하며 근육을 꾸준히 만들어야 해요.”
 
 
  10대 시절 올림픽 목표로 했던 운동선수
 
  권 이사장의 기억력과 체력 이야기에 ‘그게 가능한가’ 싶었지만 그의 10대 시절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해가 갔다. 그는 어린 시절 다양한 운동을 섭렵했고 올림픽 출전까지 노렸던 만능 운동선수였다. 일제 치하였던 초등학생 시절 야구를 좋아했고, 농구, 유도, 육상 등 두루 잘했다고 한다. 목포상업학교에 진학해서는 권투선수로도 활동했다. 그는 80여 년 전의 이야기를 이름 하나 잊는 일 없이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 집이 잘사는 편이어서 어머니가 야구글러브, 공, 배트 같은 걸 다 사줬거든요. 그땐 도시락도 못 싸 오는 애들이 적지 않았는데 나는 맨날 잘 먹고 운동을 하니까 키도 크고 힘도 좋아졌지요.
 
  상업학교에 진학했을 땐 이창섭 교장선생님이 복싱을 하라며 지원을 해주기 시작했어요. ‘너는 올림픽 나갈 인재’라고 이런저런 후원을 다 해주고 전국 시합과 훈련에도 참여할 수 있게 도우셨지요. 심지어 내가 원정 시합을 위해 기차를 타러 갈 때면 역 앞에 학교 밴드부를 동원해서 응원을 해줄 정도였습니다. 이런 응원을 받아본 건 제가 유일할 겁니다. 1948년 제14회 런던올림픽 선발전까지 갔는데 아쉽게 떨어졌어요. 그때 성균관대 학생이었던 한수안에게 졌지요. 그는 올림픽에 나가 동메달을 수상했습니다.”
 
  ― 그 시절에도 한국 복싱 선수들이 올림픽에 출전했군요.
 
  “한국 복싱 선수가 처음으로 올림픽에 간 거였고, (한수안이) 동메달을 땄어요.”
 

  ― 그때 운동선수의 길로 갔다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았겠네요.
 
  “운동선수가 됐을 수도 있고, 공부하고는 담을 쌓고 있었으니까. 사실 그 교장선생님 아니었으면 퇴학당했을지도 모르고 건달이 됐을지도 모르지요. 결국 올림픽 출전 실패 후 정신 차리고 공부해서 대학에 간 겁니다. 상업학교에서 대학 가는 학생은 3분의 1밖에 안 됐지요. 그런데 어머니는 제가 대학에 가길 바라셨고 지원을 해주셔서 서울(동국대)로 왔습니다.”
 
  ― 그런데 6·25가 일어났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 전쟁이 발발해 부산으로 내려가 유엔군에 들어갔지요. 통역관으로 3년간 일을 하다 보니 영어를 잘하게 됐고, 서울 수복 후 미국계 무역회사에 취직을 했지요. 그런데 어머니께서 연로하셔서 목포로 다시 내려가 목포여고 영어 교사로 근무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
 
  그가 영어 교사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계기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권 이사장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인연의 시작과 그 후 정치 활동은 세간에 잘 알려져 있긴 하지만 그에게 직접 듣는 옛이야기는 훨씬 생생하게 다가왔다.
 
  ― 김대중 전 대통령(1924년생)과는 북교초등학교, 목포상고 선후배 사이죠.
 
  “당시엔 (목포상고가) 목포상업학교였는데 5년제여서 같이 학교를 다녔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언제나 공부 1등이었고 특별하게 똑똑한 학생이었습니다. 또 공부는 물론 운동, 마라톤과 일본 스모도 잘하고 외모도 잘생긴데다 인성도 훌륭해서 후배들이 모두 선망하는 대상이었어요. 그런데 정치판에서는 선거에서 계속 떨어지는 겁니다.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더라고요. 이렇게 모든 덕목을 갖춘 사람이 선거에서 실패하는 것은 옆에서 제대로 돕는 사람이 없어서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1961년 강원도 인제 민의원 보궐 선거 때 교직을 내려놓고 도우러 갔어요.”
 
  권 이사장이 선거운동에 나서면서 김 대통령은 처음으로 승리를 쟁취했다. 김 대통령은 1954년, 1959년, 1960년 민의원 선거에서 거듭 낙선했고 1961년 5월 민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돼 초선 의원이 됐다. 그러나 기쁨은 며칠도 못 갔다.
 
  “5월 13일에 당선증을 받았는데 사흘 만에 5·16이 일어났어요. 국회를 해산하고 정치인들을 구속했는데 형수님(고 차용애 여사)이 그 전 해 돌아가셔서 옥바라지도 내가 했지요. 감옥에서 나와서도 정치 규제에 걸려 활동도 못 하고…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겠습니까. 그러다 이희호 여사와 결혼하면서 다시 힘을 얻게 됐어요. 여사가 아니었으면 정치 활동을 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겁니다. 그때 이화 선후배들, 그러니까 장상(전 이화여대 총장), 박영숙(전 평민당 부총재), 신낙균(전 민주당 의원·문화관광부 장관) 등등이 다 반대했는데 여사는 ‘너희는 모르지만 나는 김대중을 안다, 앞으로 얼마나 큰 인물이 될지 봐라’라고 했어요.”
 
  ― 두 분이 결혼 후 부부 이름을 나란히 쓴 문패를 걸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1962년 그땐 대한민국 어디에도 여성 이름 문패가 없었어요. 그때부터 여성 인권을 존중하고 강조한 겁니다. 또 1971년에는 여성을 비례대표 1번으로 공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태영 변호사를 추천했지요. 그땐 당 지도부의 반대로 실패했지만 결국 1988년 13대 총선에서 평민당 비례 1번을 여성(박영숙)으로 공천했습니다.”
 
  여성이 공식적으로 비례대표 1번을 차지하게 된 것은 17대 총선(2004년)부터인데, 수십 년은 앞서나간 셈이다.
 
 
  “민주당은 김대중 덕에 존속돼 온 정당”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9월 19일 국회에서 창당 7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더불어민주당은 1955년 9월 18일 신익희·장면 등이 창당한 민주당을 뿌리로 삼고 있으며, 이는 지난 2015년 9월 더불어민주당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이 ‘민주당계 정당’의 뿌리를 1955년 민주당으로 규정한 데 따른 것이다. 권 이사장은 현재 더불어민주당이 대한민국 제1의 진보 정당으로 자리 잡고 평화적 정권 교체를 통해 네 차례나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김대중 대통령 덕분이라고 말했다.
 
  “사실 민주당이 지금까지 무난하게 이어져 내려온 게 아닙니다. 4·19 때 정권을 잡았지만 구파와 신파가 싸우면서 혼란이 확산됐고 결국 당이 사실상 깨져버렸어요. 그러니 군부 세력이 그 틈을 타 5·16을 일으키면서 민주당은 거의 소멸됐었지요. 박정희 정권에서는 민주당이 4개로 쪼개졌습니다. 이합집산을 하다가 결국 ‘김대중당’인 평화민주당과 ‘김영삼당’인 통일민주당만 남게 된 거죠. 그런데 ‘김영삼당’은 3당 합당을 하면서 군부 세력 쪽으로 가버렸잖아요. 대한민국의 정통 야당은 평민당뿐이었던 겁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수십 년 동안 다섯 번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6년간 옥고를 치르고 망명, 연금, 감시의 고통을 견디면서 오직 국민과 역사를 믿고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헌신했기 때문에 결국 40여 년 만에 수평적·민주적·평화적 정권 교체를 할 수 있었어요.”
 
  ― 지금의 거대 여당 더불어민주당이 존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이 김 전 대통령이라는 거죠?
 
  “당연하죠. 지금 민주당 사람들은 민주당이 어떤 정당인지 제대로 알아야 돼요. 김대중 대통령이 온갖 탄압을 당하면서 목숨을 건 희생과 헌신으로 이뤄낸 당이란 말입니다. 다들 그저 여당, 제1당이라는 사실에만 정신이 팔려서 공천만 받고 싶어 하는데, 정당의 뿌리를 먼저 알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DJ, 박정희기념사업회 만들고, 전두환 사면”
 
  ― ‘김대중 정신’을 정의한다면요?
 
  “김대중 정신은 민주주의, 인권, 평화, 통일 4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김대중 민주당의 기본 가치는 중도개혁 정당이며, 노선은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당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평생 법치, 삼권분립, 의회민주주의의 풀뿌리 참여 민주주의(지방자치)를 추구했어요.”
 
  ― 지금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와 국회를 장악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정당이죠.
 
  “민주당의 기본 가치는 민주주의이며, 그 민주주의를 김대중 대통령과 우리 동교동계가 국민과 함께 오랜 투쟁을 통해 이뤄낸 겁니다. 나 역시 민주화운동을 하다 여러 차례 투옥됐고, 온갖 고문을 당했지만 민주주의를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은 좌파라는 등 이념을 이유로 보수 기득권으로부터 공격도 많이 당했는데요.
 
  “집권 세력이 좌경 세력으로 몰아붙인 거죠. 전쟁 후 힘들어하는 국민에게 반감을 주려고 한 것 아닙니까. 정치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돼서 강원도에서 선거를 치를 때 상대편에서 지독하게 빨갱이라는 프레임을 씌웠어요. 김대중 대통령은 이념을 중시하는 사람이 절대 아니에요.”
 
  ― 그렇게 시달렸는데도 대통령이 된 후에는 통합과 포용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나를 납치하고 가두고 죽이려 했던 사람들을 어떻게 포용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대통령이 되자마자 박정희기념사업회를 만들고 박근혜씨를 불러 회의도 많이 했습니다. 솔직히 나도 교통사고 때 같이 다치고 해서 감정이 좋을 리가 없는데 대통령이 ‘자네와 내가 제일 많이 박해를 받았으니 우리가 이 일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전두환씨의 경우 사면복권도 시켜줬죠. 청와대에서 전직 대통령들과 여러 번 만났어요.”
 
 
  “DJ, 이회창 총재와도 8번이나 만나 대화”
 
권노갑 이사장(오른쪽)은 김대중 전 대통령(가운데)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린다. 사진=조선DB
  ― 여야 영수회담도 많이 했지요.
 
  “야당과 만나서 얘기를 듣는 기회를 자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역대 대통령 중 야당 대표와 여러 번 만난 사람이 있습니까. 이회창 총재와 여덟 번이나 만나 대화하고 타협하는 정치를 했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처럼 야당을 무시하고 독주한 대통령은 어떻게 됐습니까. 사이가 좋지 않더라도 야당 대표인 이재명 대표를 만났어야죠.”
 
  ― 윤 전 대통령의 패착이 대화 단절일까요.
 
  “정치를 안 해본 사람이 정치를 하면 그런 일이 일어나요. 국민을 위해 정치를 하려면 정치인들이 서로 만나 이야기하고 돕고 그래야 하는데 사람 잡아넣는 게 일인 검사가 정치를 한 거잖아요. 산전수전 다 겪고 온갖 수난과 어려움을 헤쳐나간 인물이어야 국민의 마음을 이해하고 큰 정치인이 되는 겁니다.”
 
  그가 말하는 ‘큰 정치인’은 어떤 의미일까.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인 권 이사장은 언론 등을 통해 일부 민주당 정치인에 대해 쓴소리도 서슴지 않고 있다. 그의 후배 정치인들에 대한 시선이 궁금했다.
 
  ― 지금 정치권에 큰 정치인이 될 만한 괜찮은 인물이 있나요.
 
  “내가 발탁한 사람들이 이미 활발하게 활약을 하고 있어요. 내가 사람을 잘 본다고 김대중 대통령이 인정했는데, 13대 총선부터 16대까지 신인 발탁과 공천은 사실상 다 했습니다. 지금 민주당에서 돋보이는 정치인들은 거의 다 내가 발탁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 예를 들면요.
 
  “김민석 총리, 정세균 전 총리, 정동영 장관, 천정배 전 장관, 신기남 전 의원, 추미애 전 대표, 임종석 전 의원, 우상호 정무수석, 우원식 국회의장, 송영길 전 대표, 이인영 전 장관, 이낙연 전 총리, 전병헌 전 원내대표 등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특히 김민석 총리는 김대중 대통령께서 큰 인물이 될 것이라 판단하고, 28세의 젊은 나이임에도 직접 발탁했습니다. 제14대 총선에서 영등포 지역구에 공천해 당선됐고 이후 김대중 대통령께서 당 총재를 겸임하실 당시에는 총재 비서실장으로 중용하셨죠.”
 
  ― 86 세대를 대거 발탁했고, 다들 국무총리, 당대표, 장관, 국회의장 등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네요.
 
  “큰 정치인이 될 거라고 생각해 발탁했으니까요. 민주화에 앞장선 훌륭한 젊은이들이 민주당에 계속 들어오고 그들이 성장해 나가는 것을 보며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 언급한 분들이 민주당의 본류(本流)처럼 보이는데, 정작 정권 교체의 주인공은 뒤늦게 민주당에 합류한 이재명 대통령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점이 조금 아쉽긴 해요. 앞서 언급한 사람들 중에서 대통령이 나오길 바란 건 사실입니다.”
 
 
  “이재명, 시장 때부터 큰 그림 그려”
 
  ― 민주당에 동교동계, 친노, 친문 등 다양한 계파가 존재해 왔음에도 이재명 대통령이 당을 장악하고 대권을 차지하게 된 요인은 무엇일까요.
 
  “일찌감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준비하고 내놓은 정치인이기 때문이죠. 앞에서 언급한 내가 발탁했던 인물들은 똑똑하고 말도 잘하고 일도 잘하지만 그런 준비성과 끈질김은 부족했어요. 김대중 대통령은 1950~60년대부터 수십 년 후의 미래를 준비했어요. 경제성장은 물론 과학 기술, 문화, 사회복지, 환경, 노동 등 당시 우리 사회에서는 개념조차 찾기 어려웠던 가치를 추구하며 미래 청사진을 내놓으려 노력했습니다.”
 
  ― 이 대통령이 다른 정치인들에 비해 특출나게 미래를 준비해 왔다고 봅니까.
 
  “86 세대 잘나가는 정치인들과 비교하면 정치 경력이나 스펙 등이 열세인 건 사실이잖아요. 이런 상황에서도 스스로 노력을 해 지방선거에서 성남시장 공천을 받아냈고요. 시장이 되면서는 국정 전반에 걸쳐 공부를 엄청나게 한 걸로 알고 있어요. 보통 기초단체장이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잖아요. 하지만 이 대통령은 그때부터 큰 정치 그림을 그렸습니다. 예를 들면 시장 시절, 임동원 통일부 장관과 이종석 국정원장에게 연락을 해서 만나고 싶다, 배우고 싶다고 했다는 거예요. 장관 입장에선 광역단체장도 아닌 기초단체장이 그러니 놀랐겠지요. 하지만 만나보니 적극적인 자세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데 그 태도 등이 긍정적으로 다가왔다고 하더군요.”
 
  ― 그때부터 이 대통령은 대권을 노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권도 세 번 도전해서 성공했지요. 성남시장 시절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왔을 때부터 돋보였던 것 같아요. 그땐 문재인 후보가 대세이긴 했지만 이재명 후보가 토론도 잘하고 비전이 보여서 눈여겨보게 됐습니다. 이 대통령은 원래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해오기도 했고, 대통령 후보 경선을 세 번 치르면서 국정에 대한 계획이 축적된 것 같기도 해요. 꾸준히 끈질기게 준비해 온 사람이 결국 승리한다는 걸 보여줬죠.”
 
 
  “이재명, 오해 일으킬 발언 자제해야”
 
지난 2023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 참석해 이재명 당대표의 안내를 받고 있는 권노갑 이사장. 사진=조선DB
  ― 정치인으로서의 이 대통령을 높이 평가한다는 거죠? 비록 ‘내가 키운 정치인’은 아니지만요.
 
  “그렇죠. 볼수록 다시 보게 되고,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해요. 국정 운영도 지금까지는 잘하고 있지요. 대선 후보 시절 중도보수 정당을 얘기한 건 DJ의 노선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집권 기간에 지역감정을 타파, 민주당을 전국 정당화하려고 애를 썼는데, 지금 민주당이 국민의힘보다 훨씬 전국 정당에 가까운 건 이런 노력의 결과라고 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추구했던 민생 위주 국정, 남북 관계 개선 등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면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럭비공 같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협상도 잘하고 있고요. 점수로 매기면 90점을 줄 수 있습니다.”
 
  ― 이 대통령의 케이스를 참고로 후배 정치인들에게 조언을 한다면요.
 
  “큰 꿈을 갖고 지금보다 도약할 준비를 계속 했으면 좋겠어요. 대통령 할 능력이 되는 정치인은 많은데 노력을 안 하는 것 같습니다. 국회의원만 다섯 번, 여섯 번 하면 뭐 합니까. 국민을 위해 더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죠. 또 적극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남의 얘기를 많이 들으려고 노력하는 점도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에게서 배울 점입니다.”
 
  ― 이재명 대통령에게서 단점은 보이지 않나요.
 
  “대체로 잘하고 있지만 오해를 일으킬 정치적 발언은 자제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통령은 민주당 출신이지만 일단 당선되면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라는 입장에서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 다 조심해야 합니다.”
 
 
  “정청래, 자세 낮추고 대통령 성공 도와야”
 
권노갑 이사장은 9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창당 70주년 기념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입당성명서를 정청래 대표에게 전달했다. 사진=뉴시스
  ― 요즘 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과 손발이 착착 맞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정청래 대표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개혁적이고 행동적인 정치인이라 기대가 크죠. 내란 청산 등 민주주의를 파괴한 행위에 대해 단호하고 철저하게 처벌하고, 검찰개혁을 비롯한 개혁 입법도 잘 처리해 나가고 있다고 봅니다.”
 
  ― 그런데 이른바 ‘명(이재명)-청(정청래)’ 갈등이라고, 실용주의적인 이 대통령과 강하게 입법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정 대표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아 보입니다.
 
  “무엇보다 여당 대표는 정권이 성공할 수 있도록, 대통령을 뒷받침하는 정치를 해야 합니다. 어찌 보면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자리가 여당 대표예요. 여당 대표가 자기 정치를 하면 대통령과 충돌하게 되고, 국민 모두가 불행하게 됩니다. 과거 국민의힘 정권이 왜 몰락했나요.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싸워서 그랬던 것 아닙니까?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가 대립했고,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가 대립했죠. 대통령을 도와 정권을 안정시키고 일을 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여당의 본분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죠. 당과 대통령 간에 불협화음이 있으면 국민이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 정청래 대표가 이재명 대통령과 대립해선 안 된다는 거죠?
 
  “정 대표가 정면으로 대립각을 세운다거나 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엇박자나 긴장이 있다는 식의 언론 보도가 계속 나오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청래 대표는 조금 더 자세를 낮추고 이재명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도와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항상 하신 말씀이 ‘정치는 국민의 손을 잡고, 국민보다 반발짝 앞서 가야 한다’는 거였어요.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 해도 국민이 납득하지 않는데 지나치게 앞장서 가면 실패한다는 뜻이죠. 지금 내란 청산과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외면할 수는 없지만 성공하려면 너무 빠르지 않게 ‘반발짝 앞서나간다’는 자세를 민주당이 갖길 바랍니다.”
 
  ― 사법개혁 등에 대해 민주당이 유독 강하게 나가고 있습니다.
 
  “너무 강한 것 아닌가라는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물론 조희대 대법원장이 대선을 코앞에 두고 이재명 후보 사건을 파기환송한 건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1997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의 압력으로 검찰이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 의혹을 수사했다면 정치적 갈등으로 나라가 어떻게 됐겠습니까. 그때 수사를 하지 않았기에 평화적 정권 교체가 이뤄질 수 있었고,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경제 발전 하고 우리나라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었던 겁니다. 검찰이든 사법부든 법적 잣대로 국민의 판단을 제어하려 해선 안 되지요.”
 
 
  “민주주의 핵심 가치인 삼권분립 존중 필요”
 

  ― ‘선출 권력이 우위’라는 민주당 일각의 주장에 동의하는 건가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는 삼권분립입니다.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입법·행정·사법부가 서로를 견제하도록 해야 합니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불의하고 부정한 것이지요. 선출 권력 우위론은 삼권분립을 부정하고 국회가 사법부를 제어하고 재판에 개입하려 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어요. 그런 오해를 받으면 안 되죠.”
 
  ― 입법 권력이 사법부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민주당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의 뜻을 생각해야 합니다. DJ는 1980년 내란 음모 혐의로 신군부가 만든 계엄 군사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얼토당토않은 판결이지만 DJ는 최후진술에서 ‘나는 죽더라도 민주주의가 회복되면 다시는 정치 보복이 이 땅에서 행해지지 않도록 해달라, 이런 비극이 나로서 끝났으면 한다’고 말했어요. 정치인의 이런 자세가 국민 지지를 더 굳건하게 하는 겁니다. 사법부가 핍박했다고 해서 똑같이 사법부를 핍박하려는 모습을 보이면 지지 기반을 확산시키기 어렵다는 점을 민주당은 신중하게 생각했으면 합니다.”
 
  ― 민주당이 강성 지지자들, 이른바 ‘개딸’과 유튜버들에게 휘둘린다는 지적도 있지요.
 
  “개딸의 실체는 내가 잘 모르겠지만, 정치인은 온 국민을 보고 함께 가야지 특정 세력과 같이 가는 게 아니에요. 자기들에게 유리한 얘기만 하는 매체에만 귀 기울여서는 결국 실패합니다. 내가 속한 정당이 어디든 보수 성향 신문도 보고 진보 성향 신문도 봐야죠. 나는 집에서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영자신문 다 구독하고 사무실에 나와서는 모든 일간지를 다 읽어요. 그래야 민심을 알 수 있잖아요. 예를 들어 이번 국감 중 최민희 과방위원장의 행태에 대해 모든 매체가 한목소리로 비판을 하고 있어요. 언론인을 국감장에서 쫓아내다니 정말 듣도 보도 못 한 일입니다. 내가 현역 의원이었으면 그 의원을 찾아가서 타이르고 설득했을 거예요.”
 
 
  “경고나 조언하는 사람이 없다”
 
최근 대한노인회 상임고문으로 위촉된 권노갑 이사장이 8월 26일 서울 중구 부영태평빌딩에서 열린 고문위촉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뭐라고 타이를 겁니까.
 
  “일단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인정해야 한다고 하고, 의도적으로 싸우려 들면 우리 당을 위해서라도 이러면 안 된다고 해야죠. 지금은 당내에 이런 말할 사람이 없다는 게 안타까워요. 예전엔 이런 일이 있으면 김대중 대통령이 저를 불러 그 의원을 찾아가서 설득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국회에서 말도 안 되는 행태를 보여도 경고나 조언을 하는 사람은 없고 일부 지지자들이 응원하니까 자기가 잘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모든 언론이 비판을 하면 본인이 스스로 문제가 있는지 생각을 해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 정치인도, 당도 자정(自淨) 능력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원래 자정이란 힘들어요. 누군가 직언을 해줘야 합니다. 선배 의원이라면 이런 일도 해야 하는데 하는 사람이 없어요. 당에 해를 입히고 있는데 내 일 아니라고 모른 척하면 됩니까.”
 
  ― 지금의 국회는 1990~2000년대와는 많이 달라진 분위기입니다. 여야 간 교류도 거의 없고 협의의 원칙은 사라지고 다수결 우선주의와 숫자 싸움만이 벌어지고 있고요.
 
  “의회민주주의의 기본은 여야가 논의하고 타협하고 협력해서 법을 만들어가는 겁니다. 13대, 14대, 15대, 16대 국회에서는 4당 체제였는데도 지금보다 훨씬 많은 건수의 법안이 통과됐습니다. 법사위는 늘 토론의 장이었고 각 당의 원내총무(현재 원내대표)들은 수시로 모여 원활하게 합의점을 찾았어요. 그때 국회와 비교하면 지금은 TV 보기 낯 뜨거울 정도입니다. 정치 원로로서 너무 안타깝고 부끄러워 국민 앞에 낯을 들 수가 없어요. 우리가 민주화운동을 한 것은 이런 정치, 이런 국회를 만들려고 한 게 아닙니다. 여야가 삿대질하고 욕설하는 것은 물론 상대에게 인사도 안 할 정도로 동반자로 생각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는데 국민의 마음이 편안하겠어요? 나는 민주당이 잘되도록 조언도 하고 당 행사에도 적극 참여하면서 중요한 시기마다 내 나름의 충언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범여권 대권 주자 많다”
 
  ― 민주당의 앞날이 걱정됩니까.
 
  “그렇지는 않아요. 이재명 대통령이 잘하고 있고, 민주당에는 차기 대권을 기대할 수 있는 후보가 많아요. 우수한 인물이 야당에 비해 훨씬 많습니다.”
 
  ― 누굴 대권 주자로 생각하는지요.
 
  “여권 전체로 보면 김민석 총리, 김동연 경기지사, 김경수 전 경남지사, 김관영 전북지사, 이광재 전 강원지사, 정청래 대표, 박찬대 전 원내대표, 송영길 전 대표, 박용진 전 의원,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등등 많지요.”
 

  ― 그중 누가, 또는 어떤 사람이 주도권을 잡게 될까요.
 
  “거듭 얘기하지만 야망이 있는 정치인이라면 꾸준히 공부하고 미래 비전을 준비하고 연구하고 제시해야죠. 국내 정치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문명의 변화와 세계적인 동향과 국제정세에 관심을 갖고 준비해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60~70년대에도 외국을 방문하면서 각국 지도자들을 만나 배울 건 배우고 알릴 건 알리는 활동을 했고, 내외 문제를 연구하기 위한 개인연구소도 만들었어요. 당시는 당내에 정책연구소조차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김대중 의원이 직접 국내 문제와 국제 문제를 함께 연구하는 ‘내외문제연구소’를 설립해 운영했지요. 말 그대로 국내와 국외를 아우르는 폭넓은 정책 연구의 토대를 마련한 겁니다. 이 연구소가 훗날 민주당이 정책 정당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됐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이 정도로 국제적인 활동을 하는 정치인이 있습니까.”
 
  ― 차기 대선도 중요하지만, 당장 내년 6월에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습니다. 이재명 정부와 여당에 대한 중간평가가 되겠지요. 민주당이 유리할 것으로 봅니까.
 
  “어느 쪽이 유리한 상황이든 선거는 최선을 다해 치러야지요. 지방선거에서 좋은 결과가 나와야 이재명 정부가 성공할 수 있으니 나 역시 적극적으로 전국 유세에 나설 계획입니다. 특히 경기도와 호남을 중심으로 후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어요.”
 
 
  “100세 시대, 건강하고 베푸는 삶 중요”
 
제공=파카(PARKER) 만년필
  따라서 내년 봄엔 만 96세 정치인의 현장 유세 모습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권 이사장은 김대중재단 활동 외에도 각종 행사에 참석하고 한국 정치와 국회에 대해 쓴소리를 하는 등 꾸준히 정치적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사회적 활동을 해야 한다”며 100세 시대에 지켜야 할 점에 대해 얘기했다.
 
  “우리 동년배들이 지켜야 할 점은 세 가지입니다. 건강을 잘 챙겨야 하고, 남에게 베풀어야 하고, 마지막까지 사회적 활동을 하는 겁니다. 내가 건강해야 자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사회적으로도 후대에 피해를 주지 않아요.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은 물론 베풀기도 해야 합니다. 젊었을 때 열심히 일해 돈을 벌었으면 나이 들면 사회에 베풀어야죠. 그래야 후대들이 본받고 또 그 후대들에게 베풀게 됩니다.”
 
  권 이사장은 원로의 경륜과 지혜가 이 사회에 필요하고 원로들이 역할과 활동을 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직장에서 은퇴했다는 건 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각 분야에서 쌓아온 경험과 경륜은 소중한 자산이고, 나이 많은 사람은 그에 맞는 사회적 역할이 있어요. 노장청(老壯靑)이 조화를 이뤄야 좋은 사회, 행복한 사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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