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128번째 책에 저속(低速) 노화의 철학 담아… “나는 80점 인생”
⊙ “은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 준비 없이 맞으면 삶의 방향과 의미 잃어”
⊙ “저녁 6시에 먹고, 다음 날 아침 6시에 먹어. 12시간의 공복 실천”
⊙ “헬스장에 간 일 없어. 방바닥이 체육관”
⊙ 인생이란 왕환(往還)과 같아… 삶과 죽음, 떠남과 귀환이 서로 이어지는 순환
李時炯
1934년생. 경북대 의과대학 졸업. 同 의과대학원 박사, 예일대 대학원(PDF) / 경북대 의대 교수, 성균관대 의대 교수, 서울대 의대 외래교수, (사)세로토닌문화원 설립자, 건강 100세 연구소 초대 소장, CHA의과학대학교 석좌교수 역임
⊙ “은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 준비 없이 맞으면 삶의 방향과 의미 잃어”
⊙ “저녁 6시에 먹고, 다음 날 아침 6시에 먹어. 12시간의 공복 실천”
⊙ “헬스장에 간 일 없어. 방바닥이 체육관”
⊙ 인생이란 왕환(往還)과 같아… 삶과 죽음, 떠남과 귀환이 서로 이어지는 순환
李時炯
1934년생. 경북대 의과대학 졸업. 同 의과대학원 박사, 예일대 대학원(PDF) / 경북대 의대 교수, 성균관대 의대 교수, 서울대 의대 외래교수, (사)세로토닌문화원 설립자, 건강 100세 연구소 초대 소장, CHA의과학대학교 석좌교수 역임

- 사진=조준우
그는 오늘도 일한다. 글을 쓰고, 강연 준비를 하며, 최근 연구 동향을 찾는다. 그는 말한다.
“일을 멈추는 순간, 노화가 시작됩니다.”
말은 간단하지만, 이 말은 오래 발효된 ‘된장’ 문장이다. 평생 사람의 마음과 뇌를 만지고, 고치고, 설득하고, 기다려온 자의 ‘냄새나는’ 결론! 노년은 휴식의 시기가 아니다.
숨을 고르는 시간일 뿐, 일을 놓을 시간은 아니다. 일을 놓는다는 것은 삶의 빗장을 내려놓는다는 뜻이고, 주인을 잃은 삶은 서서히 빛을 잃어갈 것이다.
최근 그가 펴낸 책은 《평생 현역으로 건강하게 사는 법》(깸). 128번째 책이다. 김공필 의학저널리스트 질문에 ‘가정의학의 개척자’ 윤방부 박사와 대담한 책이다.
책상 위에는 개정 5판을 앞둔 《배짱으로 삽시다》 교정지가 놓여 있고, 곧 ‘고독’을 주제로 한 신간의 목차가 자리 잡을 것이다. 그에게 저술은 직업이 아니라 기초대사량이다. 글을 쓰지 않으면 냉기가 몸속에 차오른다.
“나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있다.”
이 한 줄이 그를 매일 새벽에 불러내는 명령문이다.
세로토닌의 나라, 小食多動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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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방부 박사와의 대담집인 《평생 현역으로 건강하게 사는 법》 |
그는 한국 사회의 우울을 세로토닌의 결핍에서 찾는다.
“우울증은 늘었고, 자살은 세계 최상위입니다. 자살은 순간입니다. 한강 다리 위에서 1초 못 견뎌 떨어집니다. 그 1초를 버티게 하는 것이 세로토닌입니다.”
의사로서 그는 그 1초를 수없이 보았다. 병실 불이 꺼진 저녁, 내일 퇴원인 환자가 그날 저녁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은, 오래된 통계처럼 반복되었다. 그 순간을 막아서는 것은 의지나 설득만이 아니다. 몸의 화학이 무너졌을 때, 말은 닿지 않는다. 삶을 지탱하는 것은 관념이 아니라 리듬임을 그는 안다.
그는 덧붙인다.
“도파민은 용감합니다. 과감하고, 새로운 시도로 질주합니다. 하지만 과도하면 추락합니다. 세로토닌은 그 질주를 조금 늦추고, 호흡을 되돌립니다. 너무 세로토닌만 믿으면 회사는 망하지 않지만, 성장하지 못하겠죠. 삶도 같습니다. 들뜸과 안정의 줄다리기를 몸이 스스로 조절할 때, 사람은 오래갑니다.”
행복은 요란하지 않고, 균형은 탁월보다 중요하다. 그는 환자에게 약을 처방하면서 동시에 일상의 규율을 처방했다. 햇볕을 쬐며 걸을 것, 일정한 시각에 자고 일어날 것, 누군가와 밥을 먹고 말을 섞을 것. 세로토닌은 사회적 호흡에서 분비된다.
그는 평생 이렇게 살았다. 소식다동(小食多動). 적게 먹고 많이 움직여라.
“저녁 6시에 먹고, 다음 날 아침 여섯 시에 먹습니다. 12시간의 공복은 위장을 비우고 마음을 비웁니다.”
한때 유행한 간헐적 단식이 아니다. 그의 방식은 새롭지 않다. 규칙은 새 가설이 아니며, 단순함은 최신 트렌드가 아니다. 오래된 일상의 리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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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련의 시절의 이시형 박사. 의사로서 출발점에 섰던 시절 모습이다. |
“묵상은 어렵지 않습니다. 조용히 앉아 들고 내는 숨을 세는 일입니다. 떠오르는 생각을 쫓지도 않고, 막지도 않습니다. 그저 떠오르는 대로 내버려 둡니다.”
그리고 걷기를 예찬하지만 무리하진 않는다.
“1만 보는 상징입니다. 6000에서 8000보면 충분합니다. 핵심은 많이보다 꾸준히입니다.”
수치는 사람을 목표로 이끌지만, 숫자는 사람을 주눅 들게 한다. 그는 숫자의 긴장 대신 리듬의 선명함을 권한다. 고르게 먹고, 고르게 걷고, 고르게 자라! 그에게 건강은 ‘살아 있다는 감각’이다. 밥이 맛있고, 조금 걸을 수 있고, 아침이 기다려지면 건강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는 것이다.
《배짱으로 삽시다》와 사랑의 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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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 출간될 《배짱으로 삽시다》의 2025년 개정판 《숙맥도 괜찮아 용기만 있다면》 표지 |
“결혼하기 싫으면 연애라도 하고, 연애도 싫으면 동거라도 해라.”
그의 단정적인 지론이 거칠게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논리는 간단하다. 행복의 무늬는 관계에서 온다. 혈연이든, 우정이든, 사랑이든, 사람과 사람이 연결될 때 옥시토신이 흐르고, 옥시토신은 세로토닌의 강을 불린다. 사람은 혼자서는 오래 견디지 못한다.
종교적 금욕을 택하는 삶에 대해 그는 존중을 표한다.
“금욕은 어려운 길입니다. 그래서 존경받는 겁니다.”
그는 도덕과 본능의 대립을 윤리적 판결로 이상화하지 않는다.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고, 금욕은 예외적인 자의 엄격한 선택이다. 그는 다수의 보통인을 위해 말한다.
“사람은 사랑으로 연결될 때 사는 맛을 압니다. 그 맛을 모른 채 사는 삶은 반쪽입니다.”
개정판 곳곳에 ‘숙맥(菽麥)’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한국인의 소심한 기질을 이야기할 때 콩과 보리를 뜻하는 숙맥이 소환된다. 그는 소심공포증으로 명명한다. MBTI 유형으로 볼 때 숙맥형 인간은 I형, 즉 내향형이다. 여성 앞에 서면 소심해지는 사람인 숙맥형 인간은 지능이 낮거나 사회생활 전반에 어두운 사람이 결코 아니다. 속으로는 절박한 갈망과 외로움을 느끼면서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오히려 직장 내에서의 업무 능력이 탁월하고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도 무난하게 잘 어울린다.
“자신이 내향형 인간, 숙맥이라 불린다면 과거의 자신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자신을 찾아야 합니다. 배짱 잃은 분들의 기를 북돋우는 호소예요.”
의미·건강·배움·관계 - 호모 헌드레드의 네 기둥
아흔을 넘으니 곁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난다. 친구도, 동료도, 배우자도, 형제도 잎처럼 흩어진다. 남은 자는 고독의 속도에 당황한다. 그는 지금 ‘고독’의 책을 쓰고 있다. 처방은 덜 화려하고 더 현실적이다.
“공유주택이 필요합니다. 문을 열면 ‘안녕~’ 하고 인사하는 구조. 복도에서 마주치고, 마당에서 말을 트는 구조로요.”
고층 아파트일수록 공간은 개인의 고립된 섬이다. 공동의 돌봄을 설계하지 않으면, 늙음은 유배가 된다. 젊은 부부는 아이 맡길 데가 없으니 낳기를 거부한다. 그는 싱가포르의 제도를 예로 든다. 가족이 한 아파트 단지 안에 살면 세금과 주거비를 줄여주는 방침. 슬리퍼만 신고도 갈 수 있는 거리에서 사는 방안. 그는 말한다.
“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전화보다 이웃의 손, 도움이 가장 빠릅니다. 정말 이제는 우리가 이웃을 잘 가꿔야 한다! 잘 가꿔야 한다!”
실버타운에 대한 그의 평가는 분명하다.
“노인끼리만 모여 있으면, 공기가 늙습니다. 젊은 사람이 섞여 있어야 합니다.”
하와이의 모범 실버타운을 예로 든다. 앞은 물결치는 와이키키, 오른쪽은 고등학교, 왼쪽은 상가, 뒤쪽은 공원. 바다와 아이들의 소리가 노인의 하루를 부축하는 구조. 좋은 도시계획은 복지로 연결된다.
영국에서 디지털·문화·미디어·체육부 산하에 ‘외로움 부서’를 따로 두고 있는 점을 보면 현대사회에서 외로움이 얼마나 큰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그는 100세의 삶을 문명이라 부른다. 호모 헌드레드. 그 문명의 지붕을 떠받치는 기둥은 네 개다. 첫째, 의미. “의미는 거창하지 않습니다. 오늘을 살아내는 이유. 내가 기꺼이 일어나려는 동기. 이게 의미입니다.”
의미가 선명하면 흔들려도 쓰러지지 않는다.
둘째, 건강. “건강은 질병의 유무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감각입니다.”
밥의 맛, 걸음을 내딛는 감각, 아침의 기대. 이 감각이 남아 있으면 질병 중에도 사람은 살아 있다.
셋째, 배움. “배움을 멈추는 순간 늙음이 시작됩니다.” 그는 배우는 일을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태도의 유지로 정의한다.
넷째, 관계. “외로움은 담배보다 위험합니다.” 함께 걷고, 함께 먹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확보하라. 세로토닌은 관계의 온기에서 솟는다. 그는 말한다.
“노년은 과거의 총합이 아닙니다. 오늘의 태도입니다.”
의미·건강·배움·관계를 잃지 않으면, 나이는 통계일 뿐이다. 그는 오늘도 후배들과 논문을 읽고, 젊은이들의 말을 듣고, 자신이 모르는 세계의 문법을 배운다. 몸은 느려지고, 이름은 잘 떠오르지 않지만, 통찰은 깊어진다. “결정성 지능은 더 단단해졌습니다. 전체의 흐름을 읽는 눈이 선명해졌습니다.” 나이가 빼앗아가는 것이 있고, 나이가 준 것이 있다. 속도는 줄고, 깊이는 늘었다. 결정성 지능(crystallized intelligence)은 언어성 지능이라고도 불리는데 경험을 통해 축적한 학습 지능을 의미한다.
| 노인의 敵, 치매와 혈관 질환 “75세 넘어 건강검진 포기” 이시형 박사는 치매를 이야기할 때, APOE4(흔히 ‘아포이포’라 부른다)라는 유전자의 이름을 꺼낸다. 한쪽 부모에게서 물려받으면 위험이 높아지고, 양쪽 모두에게서 물려받으면 더 높아진다는 설명을 덧붙이며, 한국인의 비율이 높다는 연구들을 상기한다. 약 30%에서 50%까지 올라간다. 그는 이렇게도 말한다. “예방의 확실한 길은 아직 없습니다. 그러나 머리를 쓰는 생활이 인지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그는 ‘치매’ 대신 ‘인지장애’라는 표현이 늘어나는 흐름을 이해한다. 단어 하나가 삶의 체온을 바꾸기도 한다. 오해와 낙인은 단어의 그림자에서 싹튼다. 노인의 세계에서 단어 선택은 감염처럼 빨랐다가, 상처처럼 오래 남는다. 혈압의 기준에 대해서도 유연하다. “나이가 들면 혈관 탄력이 떨어져 혈압이 상승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겁니다. 고혈압 기준은 140/90mmHg지만, 70대 이후엔 150/90mmHg도 허용 범위로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더, 혈관 얘기다. 한국인의 사망 원인 1위는 암? 모르는 소리다. 뇌혈관, 심혈관 등 혈관 질환과 혈관 질환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당뇨로 인한 사망자 수가 더 많다. “덜 짜고 덜 기름진 식사, 매일 걷는 가벼운 운동, 스트레스 조절과 충분한 수면 같은 기본 습관을 꾸준히 지키는 것이 가장 좋은 예방법입니다.” 지나친 엄격함은 노인의 삶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는 75세 이후의 과도한 검진을 경계한다. “노인을 해부(解剖)해 보면 암이나 치매의 흔적이 없는 이가 거의 없습니다. 모른 채 사는 것이 오히려 평안할 수 있습니다. 나는 75세 이후 검진을 끊었습니다.” 진단은 때로 삶의 집중력을 무너뜨린다. 치료의 실익이 없을 때, 이름 붙임은 공포의 낙인이 된다. |
가난의 자부, 공공의 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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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삼덕동 경북대병원에서. 왼쪽 끝이 이시형 박사다. |
“나는 공공사업에 썼습니다. 가난뱅이지요.”
허허, 웃는다. 공공사업이 뭔지 묻진 않았지만 그 가난은 초라하지 않다. 긴 생애의 지출이 사적 쾌락이 아니라 공공의 필요로 흘러갔다면, 가난은 품위가 된다. 지금 그는 손글씨로 하루를 정리한다. 스마트폰의 빠른 손가락보다, 펜과 종이가 마음을 더 잘 가라앉힌다. 매일 30분 걷기도 놓치지 않는다.
“그 30분 동안 계절의 체온이 바뀌는 걸 느낍니다. 살아 있다는 감각입니다.”
그는 경구처럼 내뱉는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할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낍니다. 그 맛을 모르면 인생을 반쯤 놓치고 사는 겁니다.”
직설은 낯을 붉힌다. 그러나 그는 의사다. 몸의 언어로 행복을 말하는 직업. 그는 도덕을 설교하지 않는다. 그는 욕망을 부끄러움에서 구해낸다. 옥시토신은 손을 잡을 때, 포옹할 때, 키스할 때, 그리고 잠자리에서 흐른다. 몸은 서로의 체온을 맞추며 정서를 유통한다. 금욕은 고결하지만, 다수의 인간은 금욕의 승려가 아니다. 그러니 사랑을 축소하지 말고, 몸을 죄책감으로 옥죄지 마라. 행복은 몸을 통해 마음으로 들어온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도시의 설계를 의학의 언어로 본다. 아파트의 복도가 연결을 끊으면, 주민의 세로토닌은 마른다. 이웃의 눈빛과 인사는 ‘사회적 햇빛’이다. 삶은 햇빛이 필요하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인사를 나누는 구조, 마당에서 수다를 나눌 수 있는 동선, 상가와 학교와 공원이 뒤섞인 배치. 도시의 레이아웃은 사람의 호르몬에 영향을 준다.
“좋은 도시계획은 신경전달 물질의 통행을 원활하게 합니다.”
의사의 문장이 건축 언어로 번역되는 지점. 실버타운이 젊은 사람과 섞이기를 그는 고집한다. 노년의 쓸쓸함은 설계로 줄일 수 있고, 정서의 빈곤은 도시의 리듬으로 채울 수 있다.
“은퇴 준비는 현역일 때”

정년은 한국 사회의 오래된 절벽이다. 그는 말한다. “60에서 70 사이가 가장 흔들립니다. 직장은 없고, 남은 생은 길고, 준비는 부족합니다.” 퇴직이 은퇴를 뜻하는 시절은 지났다. 그러나 제도의 언어와 개인의 감정은 여전히 간극이 깊다. 그는 미국의 퇴직 교수를 떠올렸다.
“그들의 은퇴는 화려합니다. 오랜 노동을 마감하고, 삶의 욕망을 정당하게 회복합니다.”
그 화려함의 배후에는 탄탄한 인프라가 있다. 한국은 아직 취약하다. 그래서 개인이 준비해야 한다.
“은퇴 준비는 현역일 때 시작해야 합니다. 늦어도 마흔이면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그는 일을 ‘배움의 기회’로 본다. 일이 없으면 배움이 마른다. 배움이 마르면 노화는 빠르게 다가온다.
일은 생계의 수단이 아니라, 배움의 장소다. 그는 강연을 준비하며 최신 논문을 읽고, 젊은이들의 용어를 배운다. 그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데 주저가 없다. 모른다고 말할 수 있을 때, 배움이 열린다. 그는 말한다.
“배움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배우는 사람은 늙어도 젊고, 배우지 않는 사람은 젊어도 늙었습니다.”
이 문장은 헨리 포드가 한 말과 오버랩된다. Anyone who stops learning is old, whether at twenty or eighty. Anyone who keeps learning stays young(배우기를 멈춘 사람은 스무 살이든 여든이든 늙은 것이다. 배우기를 계속하는 사람은 언제나 청춘이다).
노년의 배움은 감각을 되살리는 회춘(回春)술이다. 귀가 닫히면 눈도 닫히고 마음도 닫힌다. 열린 귀는 세로토닌을 높인다. 듣는다는 것은 연결한다는 뜻이고, 연결은 호흡을 고르게 한다.
그는 1987년 《신인간: 무서운 신세대의 정신풍속도!》를 썼고, 2022년 《신인류가 몰려온다》를 썼다. 시대의 변화를 목격했고, 예감했고, 문장으로 붙들었다. 그러나 오늘의 MZ 세대는 “전혀 다른 별종”이다. 대전의 성심당 빵집이 안정애의 ‘대전발 0시50분’에 착안해 ‘0시 파티’를 열고, 김천이 ‘김밥천국’에 힌트를 얻어 김밥축제를 하는 풍경을 흥미롭게 관찰한다.
“그들의 발상은 기발하지만, 논리의 축 위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고치려 들거나 가르칠 생각은 없다.
“우리의 옳음이 그들의 옳음은 아닙니다. 다르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대화가 시작됩니다.”
그는 세대 갈등을 도덕 문제로 올려놓지 않는다. 서로 다른 생태계가 부딪치고 스며드는 과정일 뿐이라고 말한다.
의미의 힘, 왕환(往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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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형 박사는 세월에 지치지 않고 자기만의 속도로 평생 ‘현역’을 실천해 왔다. |
“그 책이 나를 살렸습니다. 죽을 만큼 힘들어도 ‘그래도 아우슈비츠보단 낫다’고, 나는 나에게 말했습니다.”
그는 미국 예일대에서 프로이트 중심의 정신분석학을 배우다 실망했다. 비싸고, 느리고, 한국의 상담 현실과 멀었다. 병실에서 그는 프랭클의 이야기를 자주 꺼냈다. 의미는 가장 값싸고, 가장 강력한 치료제다. 그는 귀국해 프랭클의 책 두 권을 옮겼고, 훗날 한양대 교수와 의미치료학회를 만들었다. 의미치료, 즉 로고테라피(Logotherapy)는 삶의 의미를 탐색하는 것이 인간 존재의 근본적 동기라는 전제에서 비롯된다. 오스트리아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이 이를 창시했다.
“빈의 본부보다 회원이 많아졌습니다.”
의미의 언어는 국경이 없다. 굶주림과 고독은 언어를 가리지 않는다. 가장 어두운 방에서도, 한 줄의 의미는 등(燈)을 켠다.
그는 요즘 부쩍 죽음을 생각한다. 아흔을 넘기면, 사람은 유서처럼 하루를 쓴다.
“왕환(往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가고, 돌아오는 일….”
‘정토(淨土)’. 일본의 작가 이쓰키의 칼럼에서 그가 빌린 이미지다. 사람은 그곳에서 씻고, 정리하고, 다시 온다. 종교적 교리를 넘어, 그 상상은 마음을 가볍게 한다. 죽음이 종말이 아니라, 긴 여정의 중간 경유지처럼 느껴질 때, 사람은 현재를 덜 쥐어짜고 더 평화롭게 쥔다.
케냐의 마사이족 마을에서, 그는 살아 있는 자의 식탁에서 죽은 자들의 자리를 보았다.
“기억 속에 있는 사람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믿음을 목격했다. 주부는 빈 부엌을 향해 중얼거렸다.
“어머님, 한국에서 손님이 왔는데 무엇을 대접할까요.”
그러고 그녀는 혼잣말로 대답을 들었다. 죽음은 사라짐이 아니라, 기억의 방식으로 동거하는 일. 그 장면이 그의 노년을 오래 따뜻하게 했다.
나이가 들면, 이름은 잘 빠져나간다. 그는 새로 온 연구원의 이름을 열 번 물어도 섭섭해하지 말라고 미리 말한다. 단기 기억은 빠르게 흩어지고, 처리 속도는 눈에 띄게 느려진다. 그러나 그는 다른 종류의 지능이 도리어 좋아졌다고 말한다. 축적된 경험이 전체를 한눈에 묶는 능력. 요컨대 ‘결정성 지능’이다. TV의 경연 프로그램을 보며 우승자를 짚어내는 눈. 수많은 경우의 수를 배경으로 흐름을 읽는 감각. 나이는 속도를 줄이고, 대신 통찰을 준다. 삶은 이렇게 균형을 맞춘다.
인터뷰의 뒷면, 기자의 질문과 의사의 대답
여의도에서 기자와 의사는 만났다. 질문은 문장으로 넘어왔고, 대답은 삶으로 흘렀다. 기자가 물었다.
“요즘 가장 두드러진 현대인의 정신적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그는 짧게 답했다.
“우울입니다.” 또 물었다.
“왜 우리는 이렇게 힘들까요?” 그는 길게 답했다.
“균형이 무너졌습니다. 들뜸과 가라앉음 사이의 줄, 그걸 몸이 놓쳤습니다.”
질문과 대답 사이로, 그의 평생이 줄지어 지나갔다. 전쟁의 기억, 병실의 밤, 학생의 좌절, 노인의 푸념, 그리고 새벽 책상의 조용한 등불.
그는 좋아하는 음식을 묻자, 망설임이 없었다.
“대구 따로국밥이 최고입니다.”
그러고 농담을 덧붙였다.
“못 먹는 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없어 못 먹고, 안 줘서 못 먹고.”
오래 산 사람의 농담은 가벼운 웃음 뒤에 작은 슬픔을 남긴다. 뭔지 모를 뼈가 있는, 슬픔의 뉘앙스를 남긴다. 없는 것의 결핍과, 있는 것의 인색함. 삶은 그 사이를 걷는다. 국밥 한 그릇의 뜨거움으로 배를 채우듯, 그는 오늘도 글을 한 그릇 끓여낸다. 글은 그의 밥이고, 밥은 그의 글이다.
과거 그의 행로는 의사가 아니었다. 친구가 대신 대학 원서를 썼다. 6·25 전쟁 시절, 의대는 징병을 보류했다. 그는 이 우연을 운명이라 부른다.
“지금 돌이켜 보면, 친구들이 내 운명을 바꿨습니다.”
그는 말한다.
“운명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나쁜 운명이라면 비틀어야 합니다.”
운명은 우연의 얼굴로 찾아오고, 선택은 의지의 옷을 입고 맞선다. 그는 운명에 기대지 않았다. 몸을 낮추고, 일을 높였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선택은 태도의 누적이다.
그는 노화에서 자유로운 기술을 마지막 강의처럼 말한다.
“존엄한 노화는 병들지 않는 노화가 아닙니다. 누구나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불편 속에서도 스스로를 존중하고, 삶을 조율하는 능력입니다. 존엄은 의지를 잃지 않는 데서 옵니다.”
그는 큰소리를 내지 않는다. 나직한 명령문으로 노년을 가르친다. 식탁에 앉아 음식을 씹는 시간, 발뒤꿈치로 바닥을 느끼며 걷는 시간, 낙엽의 소리를 듣는 시간, 이웃과 눈을 맞추는 시간. 이 소소한 시간들이 노년의 방을 환하게 밝힌다. 그는 덧붙인다.
“당신이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귀합니다. 과거는 교훈으로 남기고, 앞으로의 날들을 더 단단하게 만드십시오. 지금부터라도 새롭게 살겠다는 결심이 있다면, 나이는 장애가 아닙니다.”
고독은 이웃의 설계로 완화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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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파카(PARKER) 만년필 |
긴 생애를 돌아보며 이렇게 적는다.
“삶은 여전히 당신 편입니다.”
이 문장은 위로의 문장이 아니라, 노동의 문장이다. 삶이 당신 편이라는 말은, 당신이 삶의 편에 서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더니 한 문장을 더 쓴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그 길이 가장 멀리 갑니다.”
아흔둘의 의사는 오늘도 새벽을 깨운다. 세로토닌은 숫자가 아니라 리듬이고, 건강은 기록이 아니라 감각이다. 사랑은 몸의 언어로 기억되고, 고독은 이웃의 설계로 완화된다. 배움은 태도이고, 일은 삶의 주도권이다. 그는 문을 닫지 않는다. 자신을 향해서도, 세상을 향해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