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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직업

윤성희 공인 이탈리아 미술품 복원사

“미술품과 인간관계 복원의 공통점은 상대의 속도를 이해하고 기다려주기”

글 : 추명희  작가  vinos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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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원은 작업이 아니라 수술
⊙ 작품 위에 켜켜이 쌓인 때나 녹도 역사적 함축물로 여겨
⊙ “보통 70% 이상 훼손되면 복원사가 똑같이 복구하지 않는 것이 원칙”
⊙ 2003년 개봉한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보고 34세의 나이에 이탈리아行 결심
⊙ “의학 수술은 AI 로봇 수술이 가능하지만 복원 작업은 힘들 것”

윤성희
동국대 철학과 중퇴, 로마 투샤(Tuscia)대 문화재 복원과학과 학사, 우르비노 복원통합대학원 석사 과정, 피렌체 국립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피렌체 CER 복원학교 회화복원과, 피렌체 가이드 학교 졸업 / 이탈리아 공인 가이드로서 로마 바티칸 박물관,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베네치아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도슨트 10년 활동. 現 이다 아트 스쿠올라 미술 강의 대표, 갤러리아·신세계 백화점 문화센터 및 아트키 대표강사, 유튜브 채널 ‘피렌체 이다’ 운영, 미술잡지 《BIZART》 미술 칼럼 연재
  바야흐로 미술의 시대가 도래했다. 세상사 모든 일이 수축되고 폐쇄되었던 코로나19 펜데믹(Pendemic·세계적 대유행) 시대에도 시장을 키우며 활발하게 생동하는 미술계를 보면 그 이유가 자못 궁금하다. 수많은 예술 분야 중에 왜 유독 미술일까. 다른 예술과는 달리 물리적 형태가 있어 오롯이 소유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에 부합되기 때문일까?
 
  미술의 본고장 이탈리아에서 14년 동안 그림 복원(復元)과 미술사학을 공부한 윤성희(49)씨는 피렌체 밤하늘 아래서 미술관을 바라보며 깨달았다고 한다. “외로운 인간에게 신(神)이 준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 바로 미술”이라는 것을. 그는 로마와 피렌체의 복원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우르비노 복원통합대학원에 진학했으며 피렌체 국립대학원에서 미술사학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피렌체의 복원 공방(工房) 두 곳에서 회화 전문 복원사로 일했고 로마 바티칸 미술관,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등에서 미술 전문 문화해설사로 활동했다. 2021년 말 한국으로 돌아와 《인간을 탐구하는 미술관》이라는 저서를 내고 현재는 미술사 강의를 하고 있다.
 
  “그동안 사람들이 유럽여행을 가서 명화를 직접 감상한 경험들이 쌓이면서 미술품을 즐기는 문화의 토양이 쌓인 것 같아요. 거기다 K-팝의 영향이나 경제적 성장으로 예술을 즐기는 즐거움이 더욱 커진 것이죠. 특히 이건희 컬렉션 공개 전후로 해서 컬렉션과 컬렉터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고 그 여파로 국내에서도 미술품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것 같아요.”
 
 
  22년 걸린 〈최후의 만찬〉 복원 작업
 
  그림은 빛과 산소 때문에 세월이 지날수록 색이 바래고 미생물에 의해 썩기도 한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노화(老化) 과정을 겪는 것인데 간혹 불의의 사고나 재해로 손상되기도 한다. 미술품 복원사는 오랜 시간 속에 낡고 훼손된 작품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살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한국에서는 낯설지만 미술의 본고장 유럽에서는 매우 익숙하고도 중요한 전문직이다. 유럽에는 국가는 물론 지역마다 복원 연구소가 있고 복원사들이 활동하는 공방도 많다. 우리나라는 인터넷 검색창에 ‘복원’을 치면 자동차 복원이나 컴퓨터 복원 관련 정보가 뜨지만 유럽에서는 미술품 복원 공방이나 주요 작업에 관한 정보들이 뜨는 것이 현실이다.
 

  유럽에서도 이탈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복원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탈리아는 도시와 작품을 포함해 무려 56개에 달하는 세계 최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을 가진 데다 세계 최고 문화재 복원 기관을 보유하고 있다.
 
  미술품 복원은 작품의 크기와 상관없이 최소 3개월 이상에서 최대 8년, 혹은 그 이상도 소요되는 지난한 작업이다. 복원 역사에서 가장 긴 시간이 소요된 작품은 그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다. 손상 정도가 심해 1652년 무렵엔 수도원의 수사(修士)들이 그림 아랫부분을 헐어 출입구를 만들어버릴 정도였다. 〈최후의 만찬〉이 그려진 방은 프랑스 혁명기에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연합군의 폭격을 맞기까지 했다. 우리가 보는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건 1977년부터 무려 22년간 진행된 대대적인 복원 작업 덕분이다.
 
 
  1700년대부터 전문 복원사 등장
 
피렌체 콘타필리(Contafili) 복원 연구소에서.
  윤씨는 이탈리아의 복원 기술이 독보적인 것은 ‘장인 정신’과 ‘과학 기술’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과학 기술은 오래전부터 축적해온 복원 데이터의 결과물이고 이를 더욱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장인 정신이라는 것이다. 장인 정신은 복원사들이 작품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온다고 덧붙인다.
 
  “대학원생 시절, 한 미술품 복원에 참여했을 때였어요. 복원이 다 끝나지 않았는데 교수님께서 작품을 창고에 가져다 놓으라고 하셨어요. 다음 작업을 해야 하는데 왜 그런 지시를 하는지 의아했지요. 그때 ‘지금까지 작업으로 작품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으니 당분간 쉬게 해줘야 한다’는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작품을 그냥 물건으로 취급하는 게 아니라 인간을 대하듯이 하는데요, 복원을 ‘작업’이라고 하지 않고 ‘수술’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사실 미술품 복원은 단순히 훼손되기 전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다. 작가가 표현하려 했던 메시지는 물론 역사성까지 회복시키는 일이다. 1550년에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하던 예술가들의 전기 《미술가 열전》을 펴내면서 미술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1511~1574년).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이자 우피치궁 설계 등을 맡았던 건축가였던 그는 “작품을 모르는 사람이 수정하는 것보다 위대한 예술가가 만든 것을 반쯤 손상된 상태로 두는 것이 더 낫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이탈리아 복원의 정신이 기인한다. 1500년대부터 시작된 이탈리아 복원의 역사는 처음엔 화가들이 그 역할을 하다가 1700년대부터서야 전문화된 복원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복원의 아버지라 불리는 체사레 브란디(Cesare Brandi· 1906~1988년)는 “복원이란 미술작품의 물리적 형태를 미학적·역사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되살리는 방법”이라고 정의하며 “다만 재료의 복원만 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를 중심으로 정립된 이탈리아 복원의 3대 원칙은 “첫째, 원작(原作)과 복원 부분이 쉽게 구별되게 복원하라, 둘째 작품 이미지만 복원하라, 셋째 쉽게 제거되게 복원하라”이다.
 
 
  ‘녹의 전쟁’
 
피렌체 콘타필리(Contafili)에서 1700년대 중반 작품 복원 작업 모습.
  윤씨는 그의 저서에서 복원의 대원칙을 ‘사랑을 훼손시키지 말 것’이라고 표현했다.
 
  “미술품 복원은 과학적인 것입니다. 기술이 중요하지요. 사랑을 훼손시키지 말라는 것은 문학적인 표현일 뿐, 작품의 원형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 절대 기본원칙입니다.”
 
  윤씨는 복원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재료에 대한 이해와 보존 처리라고 설명한다. 복원업계에는 ‘녹의 전쟁’이라는 말이 있는데 작품 위에 켜켜이 쌓인 때나 녹을 제거할 것인가,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다. 녹을 역사적 함축물로 보는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복원 작업은 본래의 색을 덮고 있는 때나 녹을 세밀하게 잘 걷어내는 것이 첫 번째 관건입니다. 그런 다음 그림 위에 칠해져 있는 니스를 그림 색깔이 같이 녹지 않게 제거하고 작품의 천이 오래되었으면 뒷부분에 보존 처리를 해서 천이 강화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기본이지요.”
 
  보존 처리의 역사는 1900년대 이후에 화학제품들이 발달하면서 나온 것이다. 그전까지는 그림층만 잘 정리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캔버스든 벽화든 지지대가 온전해야 그림이 오래 보존될 수 있는 법. 보통 플렉시톨 같은 화학제품을 쓰는데 그것이 천의 성분을 강화시켜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처리된 1900년대 이후의 작품들은 아무래도 천이 덜 삭았다.
 
  “복원 작업은 재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고미술은 피렌체나 베네치아 쪽에서 하고 현대미술은 토리노 지방의 공방에서 합니다. 1700~1800년대 인상파까지는 주로 캔버스 천에다 유화물감으로 했기 때문에 고전 미술 쪽에서 복원하고 이후의 작품은 다 현대미술로 들어가는데요, 현대미술부터 종이와 유화 아크릴 등 재료가 섞이고 기법도 다양해지죠. 합성섬유가 들어간 재료냐 천연재료로 만들어졌느냐 또 얼마나 시간이 많이 지났느냐에 따라 작업 방식이 달라집니다.”
 
 
  1966년 피렌체 대홍수로 복원의 중요성 부각
 
  1966년에 피렌체에서 대홍수가 발생했다. 시내를 관통하는 아르노강이 범람하면서 시내를 덮친 탓에 30여 명이 넘는 인명피해가 났는데 이때 피렌체 시내의 박물관과 왕궁, 성당 등에 전시·보관돼 있던 수천 점의 문화재가 소실되거나 손상됐다. 대홍수 이전까지는 위대한 예술작품과 공생(共生)하는 것에 너무 익숙한 탓에 걸작들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피렌체 사람들은 비로소 문화예술 작품을 보호해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갖게 됐다. 당시 넘쳐나는 복원 작업으로 복원사가 일곱 배 정도 더 필요해졌고 복원사가 아닌 수공예 장인들까지도 복원사로 투입되는 일이 벌어졌다. 상황이 이러니 제대로 된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밖에. 숙련되지 않은 복원사들이 작업을 하면서 작품을 망치는 경우가 다발했다.
 
  “그 당시에 역사적으로 너무 중요한 작품들이 훼손되면서 이것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지 논의가 되기 시작했어요. 당시 로마 국립복원연구소 소장이었던 체사레 브란디. 그분이 복원의 원칙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이탈리아 복원법이 만들어졌습니다.”
 
  대표적으로 피렌체 성당 안에 있던 치마부에(Cimabue)의 〈나무 십자가〉가 3분의 2가 훼손되었는데 복원사가 이것을 그대로 다시 그릴 것이냐 아니면 어떤 방식으로 메꿀 것이냐를 두고 논쟁이 시작됐다. 1200년대 후반의 작가인 치마부에는 르네상스 미술의 선구자 조토(Giotto)의 스승이자 피렌체 화파의 시조. 그의 〈나무 십자가〉 작품은 이탈리아 미술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Gallerie Degli Uffizi)에 들어가면 첫 번째 방에 조토와 치마부에가 전시되어 있다.
 
  “보통 70% 이상의 훼손이 있을 경우는 복원사가 똑같이 복구하지 않는 것을 복원법의 원칙으로 합니다. 왜냐면 이럴 경우는 원작이 어디까지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게 더 작품 본래 가치에 부합한다고 보기 때문이죠. 복원을 하게 될 경우 세부적인 원칙까지 정했는데요, 그냥 하얗게 놔두면 그림 자체를 해치기 때문에 두 가지 방식으로 메꾸는 기법을 제시했습니다. 일단은 원작의 진품성을 해치지 않는 게 중요하고 그다음에 복원사가 메꾼 부분은 원작과 다르다는 것을 반드시 가시적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죠. 예전에는 복원사들이 원작처럼 붓으로 칠을 했는데 이때부터는 붓칠을 하지 않도록 바뀌었습니다.”
 
 
  담비털로 만든 1호 붓 사용
 
피렌체 체르(CER) 복원 기술학교에서.
  이탈리아 복원사들은 무조건 담비털로 만든 1호 붓을 쓴다. 가장 가는 붓으로 빗금식으로 채워야 하기 때문. 빗금의 방향은 작품의 붓질 방향 결에 따라서 하고 색은 원작보다 한 톤 다운된 색으로 채워야 한다. 원작은 수백 년이 지난 것인데 똑같은 색으로 칠하면 멀리서 봤을 때 너무 공격적인 느낌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원사는 색에 대한 감각을 타고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복원이 혹시나 잘못됐을 때를 대비해 제거가 용이해야 해요. 예전에는 유화(油畵)는 유화로 템페라는 템페라로 복원했는데 지금은 제거가 용이한 수채화 물감을 씁니다. 수채화 물감을 쓰고 그 위에다 니스를 칠하면 유화나 템페라와 비슷한 느낌이 되니까요. 진품성이 훼손되지 않으면서 복원사의 손길이 닿은 부분을 구분이 되게끔 복원하는 것이 대원칙입니다. 이렇게 복원된 작품들은 멀리서 보면 복원된 것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구분이 되지요.”
 
  유화가 탄생하기 전까지 고대, 중세 서양미술의 기본 재료는 ‘템페라 물감’이었다. 라틴어의 ‘temperare(안료와 매체의 혼합)’를 어원으로 하는 템페라는 달걀노른자, 벌꿀 등을 용매제로 사용하여 색채 가루인 안료와 섞어 만든 물감 혹은 그것으로 그린 그림을 칭한다. 15세기에 들어서 얀 반 에이크 형제가 용매제로 기름을 사용하는 발전된 기법을 선보이면서 오늘날의 유화용 그림물감이 개발되었다.
 
 
  〈냉정과 열정 사이〉
 
  그는 2007년 서른네 살의 나이에 늦깎이로 이탈리아 유학을 떠났다. 당시는 물론 지금도 국내에서는 생소한 미술품 복원사를 꿈꾸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사실 어려서부터 그의 꿈은 화가였다. 미학(美學)을 공부하고 싶어 대학의 철학과에 들어갔지만 자신이 생각했던 미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4학년 때 중퇴를 하고 독일 유학을 준비했다고 한다. 유학을 준비하며 평범하게 살던 그는 우연히 보게 된 영화 한 편으로 다시 전환점을 맞이했다.
 
  “복원사는 죽어가기 시작한 생명을 다시 되살리는,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2003년 개봉한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피렌체에서 유화 복원사로 일하는 남자 주인공의 한 대사가 그의 인생을 바꿨다. 그는 이 대사를 듣고 지금껏 자신이 찾아 헤매던 일이 바로 미술품 복원임을 계시처럼 깨달았다고 한다.
 
  그렇게 이탈리아어 공부를 시작했고 2007년 이탈리아 피렌체로 떠났다. 도착 후 6개월 동안은 어학원에 다녔고 이후 피렌체 사립 복원학교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3년 이후로도 피렌체 관광 가이드 학교 1년, 로마 투샤대학교 복원학과에서 3년 반을 공부했고 우르비노 국립복원통합대학원에 들어갔다가 피렌체 대학원 미술사학과로 옮겨 3년 반을 공부했다. 우르비노 국립복원통합대학원은 국가공인복원사가 되는 학과로 열 명가량의 소수 인원만을 뽑는 까다로운 시험이었다. 윤씨는 유일한 외국인이었고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이후에 진학한 피렌체 대학원 역시 수업이 전통방식이어서 상당히 까다로운 학교로 알려져 있다. 현재 한국인으로서 피렌체 대학원 미술사 석사 학위자는 로마의 이탈리아 주재 한국대사관의 직원 한 명과 윤씨 두 명뿐. 이탈리아 복원학사와 미술사학 석사 학위를 동시에 가진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손기술보다 화학적 원리 이해가 더 중요”
 
피렌체 스테파노 스카르펠리(Stefano Scarpelli) 복원 연구소에서 작업하는 모습.
  “복원학과를 졸업하고 두 군데 공방을 다녔어요. 한국 사람들은 손기술이 좋고 집중력이 있으니까 선생님들이 일을 믿고 맡기는 편이죠. 한 공방에 보통 다섯 명에서 여덟 명까지 복원사들이 있는데 작품이 들어올 때마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죠. 한 번은 보티첼리와 동시대 화가의 것으로 루브르에 전시될 정도로 귀한 작품이 들어왔는데 이 작품을 선생님이 하다가 중간에 저에게 맡겨주셨어요. 그때 정말로 인정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반적으로 복원사가 프로가 되려면 10년 이상 경력을 쌓아야 한다. 윤씨가 복원사로서 프로가 됐다고 느낀 순간은 공교롭게도 작업을 할 때가 아니라 화학을 이해했을 때였다.
 
  “복원에서는 손기술보다 화학적 원리를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피렌체에는 복원 관련 서적 전문점이 따로 있거든요. 거기서 복원 화학책들을 봤을 때는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몰랐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해하게 되면서 내가 복원 화학에 접근을 하고 있구나 하고 느낀 적이 있는데, 그제야 내가 정말 복원사가 되었구나 속으로 뿌듯했던 기억이 있어요.”
 
  이탈리아 복원사들은 대부분 졸업 후 공방에 들어가 경력을 쌓고 5~10년 경력이 쌓이면 그때 독립해서 본인의 공방을 차린다. 우리로 치면 도제(徒弟)식이랄까. 경력이 쌓이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열정페이’로 일해야 한다.
 
  “처음 공방에 들어갔을 때 보통 월급이 350유로 정도였어요. 아예 월급을 안 주는 곳도 있고요. 그래도 저는 기술이 좋아서 700유로 정도 받았는데 그 정도 보수를 받아서는 생활이 어려워요. 당시 방세가 300유로였거든요.”
 
  이탈리아에서 복원사들은 집에서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니면 아르바이트나 부업을 하면서 복원사로 활동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복원사 지망자 많아
 
1600년대 바로크 작품 그림층을 복원 중인 윤성희 복원사.
  “그때 피렌체 국립복원연구소 교수가 라파엘로 작품을 만지는 분이었는데 그분 월급이 한 달에 우리 돈으로 500만원 정도. 우피치 미술관 관장 연봉도 1억이 안 되더라고요. 복원 공방들은 다 운영이 어려운 편이에요. 교회 같은 데서 의뢰가 들어오면 작업을 하고 돈을 바로 주지도 않고 심지어 돈을 못 받는 경우도 많죠. 게다가 복원협회 소속이 아닌 경우 대부분 계약직이랍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에는 복원사 지망생이 많았다. 대학 졸업하고 공인복원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나중에 인맥과 경력을 쌓아 자기 공방을 차릴 수 있고 평생 직업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 무엇보다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가난하고 고독하게 보낸 날들이 숱하게 많았지만 미술관에 들어서면 현실을 잊을 만큼 그림이 주는 행복이 컸어요. 자전거를 타고 산타 크로체 광장의 단테 석상을 지나 피렌체 시내에서 10km 떨어진 복원 학교에 들어설 때면 마치 수백 년의 시간을 거슬러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지요.”
 
  하지만 복원통합대학원 졸업을 앞뒀을 때 그의 나이는 어느덧 40대 중반이었다. 복원사로서 삶을 지속하기엔 미래가 너무 불투명했기에 복원학과에서 미술사학과로 옮겨 석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뮌헨과 베를린,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로마, 피렌체 전 세계 다섯 곳에만 있는 미술사 전문 도서관이란 곳이 있어요. 연구자들을 지원하는 전문 도서관으로, 일반인들은 들어갈 수 없죠. 미술사학자들의 오랜 시간과 노력이 담긴 책들을 보면서 작품의 의미, 작품에 담긴 역사 등 좋은 내용이 학계를 떠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어요. 이 내용을 조금이라도 대중에게 소개해줄 수 있다면, 사람과 미술 사이에 있는 장벽을 조금이라도 낮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의 겨드랑이 털까지 섬세하게 그려져 있어
 
피렌체 체르(CER) 복원 기술학교 학생들과 함께.
  복원사 시절 그가 작업한 작품들은 주로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들이었다. 르네상스 시대는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원근법이나 데생이 중시되는 기술적인 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인간과 자연을 새롭게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이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1400년대 피렌체 출신 조각가 루카 델라 로비아(Luca Della Robbia)의 나무 십자가 작품.
 
  “나무로 조각하고 그 위에 여러 층의 석고를 입히고 색칠을 한 작품인데요, 무려 여섯 개 층에 각각 색을 입혔어요. 예수의 살 색깔을 나타낸 표면을 긁어내면서 보니까 10마이크론 정도의 두께에 그 사이사이 색이 다 달랐죠. 살색을 표현하기 위해 우리 눈에 보이는 색은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내부까지도 다른 방식으로 채색을 한 것을 보니 작품을 만들 때 이것을 실제로 예수의 몸이라고 생각하고 섬세하게 작업한 것 같았어요. 또 매달린 예수의 몸통에서 팔과 다리를 분리할 수 있게 돼 있었는데 복원을 위해 팔을 분리했더니 겨드랑이 털이 굉장히 섬세하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섬세하게 그린 장인 정신에 감탄하면서 연신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위대한 작품은 긴 세월의 파고(波高)를 이겨낸 끝에 형언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풍긴다는 얘기가 있다. 그 역시 복원 작업을 하면서 실제로 작품의 아우라에 압도당한 적이 있었을까.
 
  “당연하죠. 화가들이 가지고 있는 그림 속의 색깔들은 실제 우리가 보는 색보다 한 톤 다운되어 있는데 자연 속에서 몇백 년 자라난 나무가 가지고 있는 그런 묵직한 색감이 그대로 살아 있어요. 검은색 하나만 해도 여섯 종류 이상인데. 다양한 색깔들이 어우러져 자연에서 온 신비한 채색을 만들어냅니다.”
 

  르네상스 시대 가장 유명한 화가는 두말할 것 없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예술을 넘어 인류 역사에서 가장 르네상스적인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는 누구일까.
 
  “이탈리아는 지방색이 강해서 지역마다 다를 거예요. 가령 베네치아 같은 경우는 티치아노(Tiziano)에게 열광하지요. 피렌체와 로마에서는 아마 미켈란젤로가 아닐까요. 매일 지나가면서 거리에서 그의 조각상을 보기 때문이죠. 그다음엔 라파엘로. 라파엘로는 그야말로 색채의 마술사니까요.”
 
 
  “복원 작업 하면서 인내 배워”
 
피렌체 콘타필리(Contafili) 복원 연구소에서.
  현대미술계에서는 위작(僞作)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해외에서는 최근까지도 바스키아 위작 논란이 있고, 국내도 천경자 위작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고전 미술품의 경우엔 위작 여부 검증이 쉽다. 탄소연대측정법으로 재료들의 시간 연대를 다 확인할 수 있기 때문. 그리고 복원사와 미술사학자의 작가의 그림체나 붓질 방향 같은 것의 분석을 통해 쉽게 검증이 가능하다.
 
  “의학 수술은 AI 로봇 수술이 가능하지만 복원 작업 같은 경우는 힘들 거예요. 아무리 섬세하고 정교해도 인간의 손길을 구현할 수는 없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작품 완성 과정이 처음부터 끝까지 균일할 수 없고 부분마다 서로 달라요. 인간이 만든 작품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대처가 있는 것 같아요.”
 
  문득 인생을 하나의 작품으로 놓고 봤을 때, 인간관계에서 상처 나고 훼손된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 작품의 복원과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이탈리아에서 복원 작업을 하면서 인내를 배웠어요. 당장 보이는 결과는 없지만 내가 혼자 욕심으로 빨리 가면 안 된다. 이 작품을 이해하면서 천천히 가야 한다. 이것을 만약 인간관계에 대입해본다면, 상대방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속도를 얼마나 기다려주고 맞춰줬는가를 먼저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작품에 적응하듯이 작품도 나에게 적응하도록 시간을 주어야 하거든요. 작품처럼 우리의 관계도 복원하려면 상대방이 나에게 적응하는 것을 기다려줘야 하지 않을까요.”
 
 
  “중요한 것은 마음”
 
  이탈리아 사람들은 관광과 예술문화유산으로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영화나 음악, 춤까지 대중문화예술계에서는 이미 세계를 제패하다시피 휩쓸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도 앞으로 이탈리아처럼 유산들을 잘 관리하고 복원하면 세계적인 예술문화유산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저도 처음엔 이탈리아 사람들이 조상 잘 만나서 편하게 호의호식(好衣好食)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들 속에 들어가서 미술품 복원이라는 작업을 오랫동안 함께하다 보니 예술에 대한 그들의 사랑은 물론 그것을 지키고 살려 나가려는 노력과 희생이 크다는 것을 알았어요. 우리도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해 그만큼의 사랑과 정성을 기울인다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복원이 과학과 밀접한데 우리나라는 기술력이 워낙 좋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마음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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