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콩할매귀신’ 이후 한국의 自生 怪談 나오지 않아”
⊙ 요괴물 탄생시키지 못하고, 포켓몬스터, 어벤져스, 해리 포터의 소비만 하는 한국
⊙ 일제시대 일본인이 삽화로 그린 뿔 달린 도깨비가 지금도 이어져… ‘토착 왜구’ 외치면서 빼앗긴 이미지 되찾아오지 않는 현실
⊙ ‘怪力亂神을 말하지 않은’ 공자에서 자유로운 일본, 요괴 산업 발달해
⊙ 미야자키 하야오, 민속학 연구 참조해 〈이웃집 토토로〉 〈모노노케 히메〉 〈붉은 돼지〉 등 만들어
魯成煥
1955년생. 계명대 일본어과 졸업, 오사카대학 문학박사 / 前 일본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객원연구원, 울산대 일본어일본학과 교수 / 《일본 속의 한국》 《한일왕권신화》 《술과 밥》 《젓가락 사이로 본 일본문화》 등 저술
⊙ 요괴물 탄생시키지 못하고, 포켓몬스터, 어벤져스, 해리 포터의 소비만 하는 한국
⊙ 일제시대 일본인이 삽화로 그린 뿔 달린 도깨비가 지금도 이어져… ‘토착 왜구’ 외치면서 빼앗긴 이미지 되찾아오지 않는 현실
⊙ ‘怪力亂神을 말하지 않은’ 공자에서 자유로운 일본, 요괴 산업 발달해
⊙ 미야자키 하야오, 민속학 연구 참조해 〈이웃집 토토로〉 〈모노노케 히메〉 〈붉은 돼지〉 등 만들어
魯成煥
1955년생. 계명대 일본어과 졸업, 오사카대학 문학박사 / 前 일본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객원연구원, 울산대 일본어일본학과 교수 / 《일본 속의 한국》 《한일왕권신화》 《술과 밥》 《젓가락 사이로 본 일본문화》 등 저술
홍콩할매귀신 怪談
1980년대 후반 유행했던 ‘홍콩할매귀신’ 이야기다. 당시 ‘초등학교’를 다녔던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어린이들 사이에 크게 유행했다. 사회적 문제로 언론에 보도까지 됐을 정도다. 홍콩할매는 왜 하필 홍콩에 가고 있었던 걸까. 아시아나항공이 아니라 대한항공을 탄 이유는 또 뭘까. 지난 9월 6일 경남 양산 통도사 서운암에서 노성환(魯成煥·66) 울산대 일본어일본학과 교수를 만났다.
노 교수는 요괴(妖怪)와 괴담(怪談)을 연구했다. 노 교수는 홍콩할매귀신이 한국 아이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자생(自生) 괴담(怪談)’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사실상 현재까지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마지막 괴담이다. 이후 유행한 ‘빨간마스크’는 일본에서 건너왔다.
― 할머니는 왜 홍콩으로 떠났을까요.
“1988년부터 해외여행이 자유화가 됐습니다. 부모님들을 ‘효도관광’ 보내드리는 게 유행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때 홍콩에서 제작한 ‘강시(僵屍) 영화’가 한창 유행했어요. 그런 게 겹친 겁니다.”
― 왜 대한항공을 탔을까요. 아시아나항공이 막 생겼을 땐데 말이죠.
“1980년대 들어 대한항공이 세 차례나 추락했어요. 1983년엔 사할린 근해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에 피격됐어요. 1987년엔 공중에서 폭파됐죠. 북한 공작원 김현희의 테러였어요. 1989년엔 리비아에서 추락했어요. 탑승객 72명이 사망한 사고였어요. 큰 사고가 세 번이나 일어나니 각인이 된 거예요.”
― 아이들이 지어낸 얘기지만 나름 당시 사회상을 담고 있네요.
“그렇죠. 또 홍콩할매귀신은 아이들을 공격합니다. 그 당시에 유괴와 납치, 실종 사건이 많이 일어났어요. 1980년엔 이윤상 군이 납치됐는데, 전 국민이 지켜봤어요. 전두환 대통령이 특별담화까지 발표했으니까요. ‘대통령 취임식 전까지만 이 군을 돌려보내면 죄과에 관대한 조치를 취하겠다’고요. 화성연쇄살인 사건도 1980년대에 일어나지요.”
귀신은 경계에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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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켓몬스터는 귀여운 모습으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사진=《마이니치신문》 |
“당시 연약한 할머니로 위장해 사람을 납치하는 사건이 일어났었습니다. 할머니가 짐을 들어달라고 해서 젊은이가 들어주면 승합차에 태워 납치하는 식이죠. 그런 사건들에 주목해 노파가 공포의 대상이 된 겁니다. 이론적으로 보면 좀 맞지 않아요. 당시엔 특수한 상황이었어요. 귀신은 경계에 존재합니다.”
― 그게 무슨 말인가요.
“귀신은 인간인 듯하지만 인간이 아닌 경계 부분에 존재합니다. 나이도 경계 부분의 애매한 나이여야 해요.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나이가 제일 무서워요. 그래서 여고생 귀신이 무서운 겁니다. 대학생 귀신만 돼도 안 무서워요. 귀신이 등장하는 것도 자정이에요. 오늘도 아니고 내일도 아닌 경계에 있는 시간이지요.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황혼 녘도 마찬가지고요.”
― 할머니는 여고생이 아니잖아요.
“그해만은 할매가 공포의 대상이 된 겁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잘 보기 힘든 사례예요. 연약한 할매가 공포의 대상이 됐던 시기와 맞물린 거죠. 또 하나 특징은 할매가 밤에 혼자 있는 아이들을 공격한다는 겁니다. 무리 지어 있을 땐 공격하지 않아요.”
근대와 함께 들어온 괴담
― 왜 그럴까요.
“그 시기에 맞벌이 부부가 많이 늘어났어요. 지금은 일반화됐지만, 당시 집에 혼자 남겨진 아이들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이 괴담을 통해 호소를 한 겁니다. 혼자 있으면 외롭고 무섭다고요. 사회현상이 아이들을 통해 나타난 겁니다.”
― 당시 한국 사회가 홍콩할매에서 그런 호소를 읽어냈나요.
“그러지 못했죠. 1991년에 〈영구와 땡칠이 4탄 홍콩할매〉가 개봉해요. 공포의 대상에서 웃음거리가 된 거죠. 아이들의 신화적 상상력을 일회성으로 상업화한 겁니다. 아이들이 새로운 걸 찾아낸 게 ‘빨간마스크’예요. 일본의 ‘구치사케온나(입 찢어진 여자)’가 한국에 넘어왔는데 아이들이 새로운 이름을 붙인 겁니다.”
―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괴담도 있었잖아요.
“그건 일제시대에 들어왔습니다. 일본에 이미 있던 괴담이에요. 일본인 학생들이 조선에도 있었으니 금방 정보가 교환됐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달걀귀신이라는 화장실 귀신이 있었습니다. 학교 화장실에 문이 안 열리는 칸이 있으면, 그 안에 달걀처럼 얼굴이 매끈하고 눈코입이 없는 귀신이 있고, ‘걀걀걀’ 거린다고 했어요. 이것도 상당히 일본적인 이야기입니다. 근대화된 ‘학교’가 일본을 통해 들어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입시지옥과 〈여고괴담〉
― 왜 학교에 얽힌 괴담이나 도시전설이 많을까요.
“대학생만 돼도 도시전설이 사라져요. 어른이 되면 납득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안 말려 들어가요. 초등학생이나 중·고등학생까지 괴담을 만들어냅니다. 또 학교는, 집은 집인데 특이한 집이에요. 집은 저녁이 되면 가족이 다들 돌아오는 공간이잖아요. 낮엔 비어 있고요. 그런데 학교는 반대예요. 밤엔 텅 비어 있는 공간이지요. 그런데 마을의 중심에 있잖아요. 아이들에게는 생활의 중심이기도 하고요.”
― 그래서 상상력의 무대가 되는군요.
“밤에 학교에서 여러 사건이 일어난다고 상상을 하는 거죠. 우리나라는 입시 문제가 있어서 1등과 2등이 다투는 이야기들이 나와요. 다른 나라에선 안 보이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의 사회문제를 대변하는 거죠. 학교와 함께 군대도 괴담의 무대가 종종 됩니다.”
― 왜 군대지요.
“군대에선 늘 죽음과 접하지요. 게다가 막사에서 여러 사건이 벌어지잖아요.”
그러고 보면, 누군가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보면 그를 깊숙이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사회도 마찬가지일 터다. 세기말이었던 1998년부터 한국에선 영화 〈여고괴담〉 시리즈가 인기를 끌었다. 이미 청소년들 사이에 존재했던 각종 학교 괴담의 조각들을 모아 발전시킨 영화였다. 노 교수의 설명이다.
“괴담을 통해 아이들은 처절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호소했어요. 홍콩할매귀신 이야기를 통해 혼자가 되는 공포를 말했고, 〈여고괴담〉을 통해 입시지옥을 그렸어요. 아이들은 끊임없이 절규했지만 해결해주지 못한 겁니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납량특집으로, 영화로, 드라마로 아이들의 공포를 즐긴 겁니다.”
노 교수는 일본 유학 시절, 처음엔 신화(神話)를 연구했다. 박사 논문 주제도 한국과 일본의 왕권(王權) 신화 비교 연구였다.
― 왜 요괴(妖怪)에 관심을 갖게 됐나요.
“제 지도교수가 일본 요괴 연구의 1인자였어요. 고마쓰 가즈히코(小松和彦) 교수입니다. 일본 요괴학(妖怪學)을 세운 사람이에요. 그 사람을 빼놓고는 일본 요괴학을 논할 수 없어요. 제가 그분 지도로 처음 박사학위를 받은 제자였어요. 신화를 연구했어요. 신화도 결국 귀신 이야기 아닙니까. 일본 교토에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라는 곳이 있습니다.”
― 어떤 곳인가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根康弘) 총리 시절 설립됐어요. ‘일본의 스승’이라 불린 철학자 우메하라 다케시(梅原猛)가 주도해 만들었지요. 우리나라엔 그런 기관이 없어요. ‘교수 중의 교수’라고 할까요? 대학교수들 중에 엘리트를 뽑아 만든 연구소입니다. 어느 대학의 교수를 이곳으로 오라고 지명하면 총장도 보내야 해요.”
― 거기서 뭘 합니까.
“연구만 하면 됩니다. 수업? 안 해도 돼요.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파트너로 함께 연구할 해외 연구자를 초청해야 해요. 그 외국인 연구자는 일본 국립대학 교수에 준하는 대우를 받습니다. 사택과 연구실도 받아요. 저는 1년씩 두 차례 초청받았어요. 2년간 머무르며 연구한 게 요괴예요. 이어령 교수도 그곳에 있다가 문화부 장관에 취임하는 바람에 도중에 귀국했지요.”
― 그곳에선 다들 어떤 연구를 하나요.
“요괴, 역사, 민속학, 문학 등등 일본 문화를 연구하는 거죠. 거기에서 연구를 못 하면 바보예요. 일본인 교수가 스물몇 명, 여기에 외국인 교수가 서른 명가량 있는데, 연구를 지원해주는 직원이 100여 명이에요. 도서관에 가서 어떤 자료가 필요하다고 하면, 사서가 구입을 해서라도 준비해줘요.”
― 강의도 없고, 연구하긴 최적이네요.
“그런데 조건이 있어요. 논문을 한 편 써야 하고, 1년에 한 차례 일본 시민들에게 강의를 해야 해요. 그곳에 있으면 전 세계 일본 연구가들이 다 오고 갑니다. 자연스럽게 국제 네트워크가 생기죠. 그곳에서 일본 문화를 연구했던 학자들이 미국에 가도, 캐나다에 가도, 중국에 가도 있어요. 고마쓰 선생은 일본 요괴학을 만들었지만, 일본인에 의한 일본 연구잖아요. 해외에서 바라보는 일본 연구를 하라고 저를 부른 거죠.”
통제 가능하면 神
― 신(神)과 요괴는 뭐가 다릅니까.
“민속학에선 이렇게 봅니다. 인간이 제일 공포스러울 때가 언제일까. 자기가 이해와 통제를 못 할 때입니다. 신은 통제했다고 봅니다. 신은 사당에 가둬놓잖아요. ‘여기에 모셔줄게, 나오지 마시오, 나오고 싶으면 우리가 날짜를 정해주겠소.’ 부처님, 예수님 다 그렇게 가둬놨어요. 그런데 요괴는 통제가 안 됩니다.”
― 갑자기 나타나서 놀라게 하죠.
“질병도 설명이 안 되면 요괴로 봅니다. 일본 고대(古代)에 원인 모를 질병이 막 돌아요. 그러면 그 병이 해외에서 들어왔다고 설명하는데, 그때 신라를 이용해요. 그래서 일본에 신라 요괴 이야기가 퍼집니다.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일본 뇌염’이란 식으로 질병 앞에 타국(他國)의 이름을 붙이기도 하잖아요.”
― 요괴가 그렇게 탄생하는군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현상을 만났어요. 이걸 누가 일으킬까,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면 그게 요괴가 돼요. 그걸 그리게 하면 각각 다른 요괴로 개별화됩니다. 인간을 요괴화한다면 인간을 기준으로 결핍과 잉여를 적용합니다. 눈이 세 개거나, 얼굴이 없거나 하는 식이지요.”
― 요괴도 종류를 나눌 수 있나요.
“동물이 오래 살면 동물계 요괴, 오래되고 낡은 도구는 도구 요괴가 되지요. 괴수계와 인간계도 있고, 나무나 돌 같은 자연계도 있고요. 이걸 통틀어 일본에선 요괴라 하고 한국에선 도깨비라 불렀어요.”
일본에선 요괴가 항상 인기
― 일본에서 요괴의 위치는 어떻습니까.
“일본에선 항상 요괴가 붐(boom)입니다. 상품화하는 일련의 그룹들이 있어요. 요괴에 관련된 상품이 엄청나게 개발되어 있어요. 포켓몬스터도 요괴잖아요. 반다이라는 회사가 도산(倒産) 위기에 처했다가 요괴 덕분에 부활했어요. ‘요괴워치’를 만든 회사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 온갖 인형, 피겨까지 엄청난 사업이 됐지요.”
― 일본에선 왜 요괴가 인기가 있을까요.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봅니다. 첫째, 일본엔 유교(儒敎)가 침투하지 못했어요. 공자(孔子)가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믿지 말라’고 했거든요. 우리나라에선 되도록 귀신 그림을 안 그려요. 이야기가 있어도 그림은 안 그려요. 일본에선 모든 물건에 영혼이 있다고 생각해요. 하다못해 이를테면 빗자루라도 쓰면 쓸수록 영혼이 거기에 밴다고 생각하는 거죠.”
― 요괴가 그렇게 탄생하는 건가요.
“그렇죠. 모든 것에 영혼이 있다고 하면 버려질 때 원한을 품게 되겠죠? 주인을 위해 평생 봉사했는데, 쓸모없다고 버리니까요. 도구의 영혼이 귀신이 되면 어떤 모습일까? 빗자루에 귀도 그리고 입도 그려서 표현해 ‘도구 요괴’를 그리는 식이에요. 일본인들은 요괴 그림을 많이 남겼어요.”
“통일신라 시기에 이미 일본에선 만화 나와”
― 그게 혹시 일본의 만화산업 발달과 연관이 있나요.
“당연하죠. 우리의 통일신라 시기에 이미 일본에선 만화가 나왔어요. 동물과 도구를 표현해 만화를 그려요. 에도 시대에 이미 요괴를 전문으로 그리는 화가가 있었어요. 도리야마 세키엔(鳥山石燕)이라는 화가였죠. 요괴 그림을 보고 즐기는 서민들이 그때 이미 많았어요. 두루마리로 많이 제작됐지요. 여기에서 요괴 문화가 나온 거예요.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에요.”
― 한국과 중국은 어땠나요.
“그런 그림은 안 그렸어요. 중국은 거슬러 올라가면 《산해경(山海經)》 정도는 있지만, 유교가 뿌리내린 후엔 안 나옵니다.”
― 유교의 영향이 크네요.
“대만은 좀 다릅니다. 대만은 주로 중국의 남쪽 사람들이 가서 정착했는데, 비교적 유교의 영향을 적게 받았거나 도교의 영향이 강했던 것 같아요. 대만에서는 도교(道敎)에서 요괴상을 만들어요. 죽은 사람을 신격화(神格化)하거든요. 우리는 죽은 사람을 신격화하는 문화가 별로 없어요.”
― 무속(巫俗)에선 있잖아요. 김유신 장군신이나 명성황후 신 같은 식으로요.
“공개된 시중으로 확 나오진 못하잖아요. 그래도 그림을 그리고 상을 붙여놓죠. 그게 요괴를 탄생시킬 수 있는 기본 소양은 되는 거죠. 확 나오느냐 안 나오느냐는 별개의 문제고요.”
요괴 연구논문 읽은 만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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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의 애니메이션을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사진=조선DB |
―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감독이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군요.
“미야자키 하야오는 단순한 애니메이션 감독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인맥엔 민속학자들이 쫙 포진해 있어요. 민속학자들이 내는 연구논문을 빠짐없이 챙기고, 연구회에도 직접 참가해 정보를 얻습니다. 그런 다음에 실제로 현장에 가서 살아요. 그 마을을 스케치해 애니메이션의 배경으로 삼습니다.”
― 만화를 만드는 데 민속학이 동원되나요.
“미야자키 하야오 팀이 있어요. 팀원이 연구회에 참석해 연구자들이 어떤 연구를 하고 어떻게 이론화하는지 경향을 쫙 파악한 다음 작품 기획에 들어가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세요. 어떤 동굴이나 집에 들어가니 또 하나의 세계가 확 펼쳐지는 거예요. 거기서 벌어지는 이야기, 마지막엔 현실로 빠져나오잖아요. 현실과 비현실. 그런 게 일본 민속학에서 다루는 요괴 설화에 흔히 등장합니다. 그런 틀로 영화를 만든 거죠.”
― 〈이웃집 토토로〉도 비슷할까요.
“이야기에 패턴이 있어요. 신사(神社)에 갔다가 다른 세계로 건너가거나 이계(異界)의 존재를 만나죠. 이계를 우리나라에선 유토피아라고 해요. 무릉도원, 청학동…. 그 이야기를 패턴화한 게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에요.”
― 그러니 서사 구조가 튼튼하군요.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에 초청받아 가서 보니, 대학교수도 있지만, 소설가, 만화가, 출판사 직원도 와 있어요. 어떻게 상품화해서 유통을 할까 그곳에서 함께 연구하는 거예요. 미야자키 하야오 팀도 와 있더군요. 같이 연구하는 거예요.”
― 장기간 여러 편의 수작(秀作)을 낸 비결이네요.
“한국과 일본이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그겁니다. 일본은 민속학을 비롯해 온갖 학문의 교수들, 제작자, 유통업자, 만화가, 소설가 이런 사람들이 함께 일해요. 우리나라는 혼자 만들더라고요. 개인플레이예요. ‘아, 우리나라에선 일회성 히트작은 나와도 연속해서는 여간해선 못 나오겠구나’ 싶더라고요.”
외국 요괴 소비만 하는 한국
― 그러고 보니 한국은 드라마류는 강한 것 같은데 요괴물로는 크게 인기를 끈 게 없네요.
“〈어벤져스〉 〈마블〉 시리즈도 요괴물이거든요.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도 마찬가지죠. 이런 것들이 인기를 끌면 그에 비례해 아이들의 상상력이 빈약해져요. 외국에서 강력한 자본으로 만들어진 요괴를 즐기는 것으로 끝나버립니다.”
― 소비만 하지 창조를 못 하게 되는군요.
“굉장히 큰 문제예요. 일본은 미야자키 하야오를 내세워서 세계로 나가고 있어요. 우리는 외국에서 만든 요괴 문화에 종속이 되고 있는 셈이죠. 아이들이 즐기는 것들을 어른들이 보호하고 키워줄 필요가 있어요. 그나마 성공한 콘텐츠가 뽀로로예요. 처음부터 기획을 잘 해서 성공한 경우예요. 둘리는 성공했지만 길게 끌고 나가지 못했어요. 전 세계 아이들이 즐기려면 요괴가 귀여워져야 해요. 포켓몬스터처럼요. 그건 작가나 기획자들이 하는 거지, 아이들이 만들 수 없거든요.”
― 지금은 덜하지만 전엔 만화를 공부에 방해되는 책쯤으로 여겼지요.
“제가 학교 다닐 땐 만화를 보면 맞았어요. 일본은 어른이 돼도 만화를 보거든요. 만화는 이미지잖아요. 한번 뺏기면 못 찾습니다. 도깨비의 이미지를 우리는 이미 빼앗겼어요.”
일본에 점령당한 도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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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한국의 국정교과서에 실렸던 도깨비 그림. 일본의 오니 형상이다. |
“전통적으로 우리의 도깨비는 의미가 넓어요. 뿔 달리고 호랑이 가죽 두르고 방망이 들고 이것만 도깨비인 게 아니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현상 자체를 도깨비라고도 해요. 요괴의 총칭일 수도 있고요. ‘도깨비 시장’ ‘도깨비 도로’ 이런 말을 지금도 쓰잖아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표현하는 거죠.”
― 뿔 달리고 방망이 든 도깨비는 그럼 어디서 나온 건가요.
“일본 사람이 만들어놓은 이미지예요. 일제시대에 동화책 삽화로 그려진 모습이에요. 조선총독부가 낸 교과서 중 초기 교과서에는 우리나라 도깨비에 뿔이 거의 없어요. 후에 뿔 달린 삽화가 퍼진 거죠. 형상화된 이미지를 일단 봐버리면 다른 이미지는 떠올리기 힘들어요.”
―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만화가가 도깨비 하면 딱 떠오르고 처녀귀신 하면 딱 떠오르도록 한국적인 도깨비를 그려주면 돼요. 그러면 아이들이 그걸 받아들일 겁니다. 지금은 도깨비니, 해리 포터니, 우리 아이들의 신화적 상상력이 외국에 종속되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 일본은 국가가 나서서 연구센터를 세워 상상력의 토양을 일궈왔군요.
“고마쓰 가즈히코 교수가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소장을 두 번인가 역임했어요. 그분이 있을 때 연구센터가 엄청난 자료와 요괴 그림을 모아뒀어요.”
일본에서 요괴가 인기 있고 요괴 산업이 발달한 두 번째 이유는 뭘까. 노 교수는 ‘음(陰)의 문화’를 즐기는 일본적 특성을 들었다.
“인간의 문화엔 양(陽)의 문화와 음의 문화가 있습니다. 대개의 문화 연구는 밝게 드러난 부분 위주로 연구해요.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있고 감추고 싶은 게 있잖아요. 개인도 그렇고 마을, 확대해보면 민족이나 사회도 같아요. 없을 순 없지만 피하고 싶은 게 어둠의 문화죠. 죽음이 뭘까. 귀신은 있을까. 천당과 지옥은 무엇일까. 그런 것에 대해 인간은 늘 고민하죠. 이성적인 과학자면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어둠의 문화를 즐기는 이들이 있어요.”
― 영화를 봐도 호러물을 즐기는 식인가요.
“그렇죠. 옛날 같으면 영상이 없으니 귀신 그림을 그려놓고 보는 거죠.”
― 귀신 그림을 감상하며 즐긴다고요?
“심지어 일본의 어느 절에선 처녀귀신 그림을 그려놓고 1년에 한 차례 공개해요. 그럼 그걸 보려고 줄을 서요. 우리로선 이해가 안 가죠. 어둠의 문화를 즐기는 소비계층이 일본엔 존재해요.”
유럽도 어둠의 문화 즐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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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신의 사랑을 위하여(for the love of god)〉. 사진=조선DB |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에서 요괴 그림을 굉장히 많이 모았어요. 신기한 건 유럽에서 요괴 전시회를 하면 소위 대박이 나요. 가는 데마다 히트를 쳐요. 해골이 덮쳐오는 형상의 우키요에(浮世畵)에 서양인들은 감탄을 해요. 아시아에서 요괴 그림을 전시하면 별로예요. 관심이 별로 없어요. 어둠의 문화를 피하려는 경향이 있는 탓이에요. 우리나라는 특히 약한 것 같아요. 요괴 그림이라고 하면 고작해야 사찰에 있는 〈지옥도(地獄圖)〉 정도예요. 우리나라에서 민간의 화가가 귀신을 그렸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보지도 못했어요. 춘화(春畫)는 있는데 귀신 그림은 없어요.”
그러고 보니 서양엔 해골이나 동물의 사체(死體)를 창작 도구로 쓰는 등 죽음을 전면에 드러내는 문화가 실제로 있다. 데미안 허스트의 〈신의 사랑을 위하여(For the Love of God)〉는 실제 해골에 다이아몬드를 둘렀다. 940억원에 팔렸다. 해골을 트레이드마크로 쓰는 패션 브랜드도 여럿이다. 우리나라에선 ‘원효대사 해골바가지’ 우화(寓話)처럼 철저히 현세(現世)에 교훈을 주는 소도구로 이용된다.
― 중국으로부터 유교를 받아들였다고 해도 여전히 민간에선 무속이라든가 토착 신앙이 존재했잖아요.
“토착 문화는 여전히 존재했어요. 이런 식이에요. 유교 사회에선 자식 없이 죽은 사람을 모실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제사를 지내줄 자손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상황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유교에서 해결이 안 되니 불교나 무속으로 가는 거예요.”
― 영혼결혼식 같은 건가요.
“그렇죠. 영혼결혼이라는 건 굉장히 중요한 사례입니다. 일본에선 민속학이나 인류학 하는 사람들이 국가에 이론 제공을 많이 했어요. 전쟁이 일어나면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보내야 하잖아요. 죽은 영혼을 어떻게 달랠 겁니까. 국가적인 큰 문제였어요.”
― 이슬람 급진 세력들이 남성들에게 ‘지하드에서 싸우다 죽으면 70여 명의 미녀(美女)를 상으로 받는다’고 세뇌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군요.
“비슷하죠. 자신들의 민속사상으로 뒷받침하는 겁니다. 일본의 경우엔 이렇게 달랬어요. ‘네가 죽더라도 가족과 헤어지는 게 아니다. 뒷산에 머무르며 늘 가족과 교류할 수 있다.’ 민속학자 야나기타 구니오가 《선조 이야기》란 책에 쓴 대로예요. ‘조상이 되면 가족 곁을 떠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선 불가능하죠.”
‘귀신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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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사카이미나토(境港)역 주변엔 다양한 요괴 그림과 설치물들이 있다. 사진=조선DB |
“귀신의 날, 서양에선 핼러윈 데이라고 하죠. 동아시아권에서는 음력 7월 15일 전후 한 달이 1년에 1번 귀신이 돌아오는 기간이에요.”
― 귀신이 어떻게 돌아오나요.
“지옥문을 열어준다고 해요. 귀신에게 한 달 고향 방문 휴가를 주는 거죠. 우리나라는 유교가 강하잖아요. 그래서 이런 문화가 약한데 아직까지 있긴 있어요. 불교에 우란분절(盂蘭盆節)로 남아 있죠. 흔히 백중(百中・百衆)이라고 하는 날이에요. 우리나라에선 아니지만 대만이나 일본처럼 불교가 탄압을 안 받은 나라에서는 엄청 성대하게 보내는 기간이에요. 대만에선 음력 7월 한 달이 귀신절(鬼神節)이에요. 그 기간엔 결혼식도 안 하고 해로운 건 절대 안 해요.”
― 한 달이나 된다고요?
“집집마다 귀신들이 돌아온다고 장식을 해놔요. 일본은 3일 동안 해요. 우리나라 귀신이 제일 불쌍해요. 절에 불러서 점심만 먹여서 보내요. 집에도 안 불러요.
원래 불교의 문화는 아니에요. 이란에서 출발한 민간신앙이 불교와 합해진 겁니다. 스님들의 하안거(夏安居)가 대략 그 시기에 끝나요. 그러면 여러 음식을 대접하는 문화가 있어요. 우리나라에선 없어졌지만 다른 불교 국가엔 남아 있어요. 스님이 석 달간 도(道)를 닦았잖아요. 도력(道力)이 가장 강할 때니 소원을 그때 빌면 이뤄진다는 거죠. 이런저런 이유로 이란에서 출발한 민간신앙을 불교가 수용한 거예요.”
어둠을 싫어하는 한국
―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에서는 한국 문화도 연구하나요.
“살펴보지요. 요괴팀의 고민은 ‘한국과 중국엔 왜 요괴 그림이 없나, 요괴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나’였어요. 기본적으로 우리는 어두운 걸 싫어하는 것 같아요. 드라마도 해피엔딩을 좋아해요. 일본은 어둡게 끝나는 경우가 많아요.”
― 생각해보니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도 특별히 해피엔딩으로 끝내거나 하지 않는 것 같네요.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식으로 끝나지요. 한국은 어두운 걸 싫어하고 밝은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장례식을 보면, 한국과 일본은 극명히 다릅니다. 우리는 장례를 치를 때 죽은 시신을 안 보려 해요. 슬퍼서 울지만 막상 시신을 보거나, 만지거나 그러진 않아요. 못 보게 가리거나 싸거나 묶어요. 우리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굉장히 큰 거 같아요.”
― 일본은 다른가요.
“시신을 묶지 않아요. 얼굴을 보면서 작별 인사를 하고 시신을 만지기도 해요. 우리는 무덤이 마을에서 멀리 있어요. 집안이나 마을에 무덤을 두지 않아요. 일본은 마을 한복판에도 무덤이 있어요. 집집마다 불단이 있고, 불단에 위패가 모셔져 있어요. 우리는 아니죠. 주거공간에서 죽음의 문화는 배제하려 해요.”
― 한국에선 유골을 간직하는 문화도 없죠.
“일본은 화장(火葬)한 다음 유골을 불단(佛壇)에 넣어놔요. 제가 조사한 지역에서는 목뼈를 넣어뒀어요. 우리는 납골당(納骨堂)이라고 하면서 뼈조차도 멀리 두려고 하지요. 사랑했던,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면 가까이 둬야 하는 거 아닌가요? 죽음과 어둠을 멀리하려는 경향이 너무 강한 거예요.”
― 중국은 어떤가요.
“중국은 우리보단 덜해요. 도교 때문에요. 오늘날 중국은 사회주의 때문에 전통이 거의 깨졌어요. 전통문화를 알기 위해 대만에 갔어요. 대만은 3층 집이라면 꼭대기에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 있더군요. 무덤도, 도교사원도 마을 가까이에 있고요.”
천황제라는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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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성환 교수는 일본의 역사서 《고사기》를 완역했다. |
― 일본에는 여러 신화가 이어져 오고 있지요.
“일본 역사의 3대 수수께끼가 있어요. 천황제가 존속했다는 것, 내시(환관)가 없었다는 것, 과거제도가 없었다는 것, 세 가지예요. 내시와 과거제가 없는 건 설명이 됐어요. 일본은 내시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과거제가 없었던 건 세습을 중시하기 때문이에요.”
― 천황은 만세일계(萬世日系)로 내려오고 있다고 일본인들은 주장하죠.
“그건 설명이 안 돼요. 천황이 고대부터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잖아요. 우리나라는 중간중간에 왕조와 나라가 바뀌었어요. 천황이 동시에 두 사람 존재한 적은 있어요. 나중에 통폐합하죠. 천황가의 역사가 바로 신화에서 시작해요. 천황이 존재하는 한 일본의 신화와 신도(神道)는 없어질 수 없어요.”
― 그러고 보니 전 세계의 군주 중에 일본 천황 같은 가문은 없군요. 우리나라로 치면 단군왕검 집안이 계속 한반도를 통치하고 있는 식이니까요.
“인류학자들이 천황제에 대해 몇 년간 심포지엄을 하면서 연구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내린 결론이 천황과 가장 닮아 있는 게 달라이 라마라는 거예요. 속세(俗世)와 신성(神聖)의 권력을 양손에 지고 계속 대를 이어 태어나잖아요. 종교적인 사제(司祭)이면서도, 세속적 권력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에요. 일본 천황은 다른 나라의 국왕이랑은 다르다는 겁니다.”
― 천황은 인간과 신의 중간에 걸쳐 있는 존재네요.
“신이죠. 성(姓)이 없잖아요. 주소도 없어요. 독특한 존재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모든 권력을 다 잡았지만 천황은 되지 못했어요. 핏줄과 함께 영원히 내려가는 거니까요.”
권력자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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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년 9월 27일 히로히토(裕仁) 쇼와 천황(昭和天皇)과 더글러스 맥아더 당시 연합군최고사령부(GHQ) 총사령관이 함께한 기념 사진. |
“신화 중에서도 가장 주요한 신화는 국가 신화, 왕권 신화예요. 천황을 신화 속 살아 있는 주인공으로 두려고 하니, 나중엔 여러 작업이 필요해져요. 구중궁궐에 귀신처럼 살던 메이지(明治) 천황을 대중에 공개하잖아요. 국민들이 천황을 잘 몰랐어요. 그래서 천황의 초상이 필요해졌어요. 초상 사진을 누가 찍느냐가 문제가 됐어요. 신성(神聖)의 문제거든요. 그래서 서양인이 동원된 겁니다.”
― 서양인은 일본인이 아니니 천황의 신하도 아니군요.
“일본인 카메라맨이 천황에게 이렇게 서시오 저렇게 서시오 하면 안 되잖아요. 처음에는 전통의상을 입혀서 전신사진을 찍었어요. 권위가 안 서요. 그러니 다음엔 군복을 입혔어요. 메이지 천황이 키가 좀 작아요. 그래서 그다음엔 상반신을 잘라서 촬영해요. 수염과 눈썹을 강하게 강조하고 옆엔 칼도 차게 해요. 마치 독일 황제처럼 보이게 하는 거죠. 권력자의 초상화라는 건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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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을 방문한 연합군 극동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과 이승만 대통령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일본 사람들이 지금까지 굴욕으로 여기는 사진이에요. 맥아더 장군이 체격도 더 크고 당당하거든요. 패전 후 그 사진을 세계에 유포하면 천황의 권위는 무너지잖아요. 일본도 사진을 이용했어요. 영친왕(英親王) 뒤에 이토 히로부미가 보호자처럼 서 있는 사진을 공개하는 식이었지요.”
6·25전쟁 후 맥아더 장군과 이승만 대통령이 함께 찍은 사진은 좀 다르다. 사진 속에서 이 대통령은 맥아더 장군과 마주 서서 장군의 등을 두드리며 환히 웃거나, 장군과 나란히 앉아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의도한 건진 모르겠지만, 천황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흥미로운 대조(對照)다.
정치에 휘둘리는 한국 학계
― 한국도 요괴와 신화를 기관의 지원 아래 체계적으로 연구하면 좋겠네요.
“우리나라는 정권에 상관없이 꾸준히 연구를 할 수 있는 풍토가 부족해요. 정치가 사회를 너무 장악하고 있어서 일본처럼 하긴 힘들 것 같아요. 게다가 우리나라는 대중문화보다 고급문화에 관심이 많아요. 지배자와 지식인의 문화, 상류계층의 문화에 중점을 둬요. 서민문화나 대중문화에는 아직도 관심이 없어요. 몇 년 전까지도 요괴는 학문의 대상이 아니라는 시각이 강했어요.”
― 학계가 현실보다 오히려 뒤처져 있네요.
“요괴, 귀신, 만화 같은 건 지금까지 우리 국문학이나 사학, 철학, 인문학에서 소외됐어요. 민속학에서 조금 다뤄왔는데 지금 민속학도 없어지고 있거든요. 중앙대에 민속학과가 있었는데 없어졌어요. 민속을 전공해도 활동할 곳이 없어요. 요괴를 전공했다고 하면 우리나라 사학계에서 누가 대우를 해줄까요. 일본은 요괴 전공한 친구들이 다들 대학에서 자리를 잡았어요.”
― 우리나라는 일본에 비해 학문 주제의 다양성이 떨어지는군요.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도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함께 다뤄요. 센터에서 만화를 연구한 교수 중엔 대학원도 안 다닌 경우도 있어요. 우리는 만화학과라도 나와야 그나마 대우를 해주지요.”
― 일본 학계는 실용성을 중시하나요.
“좀 자유로운 것 같아요. 우리는 한 개의 국립대와 몇 개의 사립대가 모든 걸 독점하고 학계를 식민지화했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아요. 제가 오사카대학에서 유학할 때 보니, 고등학생들이 고마쓰 가즈히코 교수의 책을 읽고 지원해서 들어오는 거예요. 우리는 아니잖아요. 서울대 갈 성적이면 서울대 가야 되잖아요.”
― 요괴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일부러 교수를 찾아 입학하는 거군요.
“제가 일본에서 하숙을 했어요. 하숙집 주인 조카가 같은 전공으로 교토대와 도쿄대에 동시에 합격했어요. 그런데 교토대를 가더라고요. 어떤 집안은 도쿄대 갈 실력이 돼도 대대로 관서학원대학에 진학합니다. 가풍과 맞다는 거예요. 우리는 당연히 서울대에 가겠죠? 우리는 하나의 전공이 서울대부터 제주대까지 커리큘럼이 다 비슷할 겁니다. 왜 그래야 하나요? 학교별로 특색이 있어야지요.”
― 일본에선 학교보다는 어떤 연구를 하는 교수가 있는지가 중요하군요.
“고마쓰 가즈히코 교수도 후임으로 요괴학 전공자를 뽑았어요. 일본은 연구가 축적됩니다. 식민지 시대에 일본의 학자들이 조선에 와서 철저히 조사를 해요. 전쟁이 끝난 후 이들 중 일부가 도쿄대 인류학과로 갑니다. 거기에서 조선 연구를 계속해요.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어요. 도쿄대에 한국학과가 없다 해도 이미 인류학 팀엔 한국에 대한 연구가 쌓여왔단 겁니다. 한 연구실에서 대를 이어 한국을 연구하고 있어요.”
한국의 현재, 과거 알려주는 일본
― 우리는 일제시대 일본이 연구해놓은 조선에 관한 자료에도 크게 주목을 안 하는 것 같아요. 이번 정권 들어서는 ‘토착 왜구’라는 말도 유행했지요.
“당연히 일제시대 자료들을 봐야 해요. 그 당시엔 남북이 갈라져 있지 않았잖아요? 지금은 반쪽짜리 민속학이에요. 북한은 방문도 못 하잖아요. 우리는 조선 시대부터 지금까지 일본을 무시했어요. 김대중 대통령은 포용력이라도 있었지요. 일본 대중문화를 과감히 수용했잖아요. 그때보다 지금은 더 퇴보한 거죠.”
― 일본을 왜 알아야 하죠.
“이웃이잖아요. 우리와 일본은 굉장히 닮아 있어요. 비교하면서 우리를 더 잘 알 수 있어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흔적이 일본에 많이 남아 있어요. 우리의 현재도, 과거도 일본을 연구하면 더 잘 알게 되는 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