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자원 매입업자 곽씨, 2016년 5~6월 4차례 ‘박 전 대장과의 대구·부산 모임’ 숙식비 대납
⊙ 곽씨 “10년 동안 친형제같이 지낸 사이, ‘계모임’처럼 가족끼리 만나 밥 먹은 게 향응인가”
⊙ 당시 박 전 대장은 제2작전사령관, 곽씨는 예하부대인 5군지사와 불용품 매각 계약 진행
⊙ 법원 “제2작전사 예하부대와 이해관계 가진 곽씨로부터 숙식비 대납 받은 건 뇌물수수”
⊙ 곽씨 “전자입찰 통한 5군지사 불용품 매각 계약은 군수사가 관할, 제2작전사와는 무관”
⊙ 곽씨 “10년 동안 친형제같이 지낸 사이, ‘계모임’처럼 가족끼리 만나 밥 먹은 게 향응인가”
⊙ 당시 박 전 대장은 제2작전사령관, 곽씨는 예하부대인 5군지사와 불용품 매각 계약 진행
⊙ 법원 “제2작전사 예하부대와 이해관계 가진 곽씨로부터 숙식비 대납 받은 건 뇌물수수”
⊙ 곽씨 “전자입찰 통한 5군지사 불용품 매각 계약은 군수사가 관할, 제2작전사와는 무관”
‘공관병 갑질 논란’에 휘말렸던 박찬주(60) 전 육군 대장이 뇌물수수 혐의로 1심 재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수원지방법원 형사11부(이준철 부장판사)는 지난 9월 14일 지인에게서 향응을 받은 혐의 등으로 박 전 대장에게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벌금 400만원과 추징금 184만1600원을 선고했다.
박 전 대장은 작년 8월 공관병에게 가혹 행위와 부당한 지시를 했다는 혐의로 군 검찰에서 조사받았지만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아 불기소 처분됐다. 군 검찰은 대신 뇌물수수,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작년 9월 박 전 대장을 구속기소했다. 지인에게서 총 20회에 걸쳐 숙식비 등 760여만원의 향응을 받았고, 돈을 빌려주고선 고율(高率)의 이자를 받았다는 혐의였다. 부하 장교의 보직 변경 청탁을 들어줬다고도 했다.
군 검찰로부터 사건을 인계받아 공소유지를 한 검찰은 박 전 대장에 대해 징역 5년에 벌금 1억원을 구형했다. 법원은 이 중 ‘김영란법 위반’(부정청탁)과 ‘향응 4차례’(뇌물수수)만 유죄로 판단했다.
법원은 향응 부분과 관련, 박 대장이 제2작전사령부(이하 ‘제2작전사’) 사령관으로 재직하던 2016년 5~6월 폐자원 매입업자인 지인 곽재한(52)씨로부터 숙식비 184만1600원을 뇌물로 받았다고 판단했다. 당시 곽씨가 제2작전사 예하부대인 제5군수지원사령부(이하 ‘5군지사’) 사업을 수주했기 때문이었다.
1심 판결문에 따르면 “(박 전 대장은) 제2작전사령관으로서 직할 및 예하부대의 불용품 매각과 관련, 법령에 정해진 직무권한을 가진 피고인”이라며 “제2작전사의 예하부대인 5군지사와 불용품 매각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이해관계를 가지게 된 직무 대상자인 곽재한으로부터 숙박비 등을 대납 받은 것은 향응 등의 뇌물을 수수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박 전 대장 측은 1심 판결에 불복, 항소를 준비 중이다.
기자는 곽씨의 제보로 지난 10월 1일 서울 모처에서 그를 인터뷰했다. 박 전 대장에게 향응을 제공한 당사자가 된 곽씨는 기자와 만나 “1심 판결에 억울한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4차례 만남은 향응 아닌 평범한 가족 모임”
― 법원이 박 전 대장에게 제공했다고 인정한 ‘184만원어치 향응’이 어떤 겁니까.
“제가 당시 제2작전사령관이었던 박 전 대장이랑 2016년 5월부터 같은 해 6월까지 4차례 밥을 먹고 여행을 다녔어요. 3번은 밥을 먹고 1번은 부산 여행을 갔습니다. 저는 5월 전에도 (박 전 대장과) 밥을 먹었고, 6월 이후에도 먹었어요. 군 검찰 기소 내용을 보면 (같이) 밥 먹고 여행 다닌 게 어마어마해요. (제가 대납한) 비용도 (20차례에 걸쳐 총) 760만원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법원은 딱 4차례만 인정했어요. 제가 5군지사와 계약을 체결할 무렵이었죠.”
군 검찰이 작성한 ‘범죄 일람표’에 따르면, 곽씨 측과 박 전 대장 측은 2016년 5월 13일부터 2016년 6월 28일까지 총 4차례에 걸쳐 부산의 호텔, 대구의 한정식집 등에서 식사와 숙박을 함께 했다. 박 전 대장이 곽씨에게서 받았다고 인정된 향응 액수는 각 65만3400원, 32만5000원, 77만4400원, 8만8800원으로 총 ‘184만1600원’이다.
― 왜 함께 밥을 먹고 여행을 갔습니까.
“만약에 제가 (5군지사와 계약하던) 딱 그 기간에만 박 전 대장과 만남을 가졌다면 오해의 소지가 있겠죠. 저와 찬주 형은요, 10년 동안 만난 사이예요. 밥도 자주 먹고 여름에 경포대 해수욕장 피서도 가고 그렇게 지냈어요. 친형제처럼 인연을 이어 왔어요. 가족끼리도 친해요. 찬주 형도 아들 둘, 저도 아들 둘이었어요. 당시도 우리는 지난 수년 동안 해 왔던 것처럼, 가족이 함께 만나서 식사도 하고 여행도 다닌 것뿐이에요.”
― 지인들끼리의 평범한 ‘가족 모임’이었다는 겁니까.
“이 자리가 ‘검은 자리’, 특정한 대가를 위한 향응 자리였다면 찬주 형과 단둘이 만났겠죠. 쉽게 얘기해서, 은밀한 자리에서 제가 술도 먹고 촌지도 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 자리에는 찬주 형 내외와 저희 부부, 전속부관과 그 부인들, 운전관도 있었어요. 우리 아들이 있던 때도 있었고요. 속칭 ‘계모임’처럼 만나서 밥도 먹고 여행도 다녔는데 그걸 향응이라고 할 수 있나요.”
― 박 전 대장 부부는 제쳐두고라도, 그의 부관 내외와 운전관까지 대접한 이유가 뭡니까.
“사령관 옆에 24시간 붙어 있는 사람이 누굽니까. 부관·운전관 아닙니까. 나머지는 참모 부인들인데, 그건 우리 애들 엄마가 친분이 있으니까 부른 거고요. (박 전 대장과 만날 때면 당연히) 그 참모들과도 밥을 먹어야죠. 처음 찬주 형을 만났을 때, 그의 직업은 군인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군인이었고요. 같이 어울렸던 사람들도 당연히 군인입니다. 10년간 서로를 알아 왔으면, 꼭 우리 네 사람만 밥을 먹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아들 쾌유 기도해 준 찬주 형… 저녁 몇 번 산 게 보답”
― 해당 모임의 숙식비를 왜 본인이 대납했습니까.
“나는 사업하는 사람이고, 여기는 박봉에 시달리는 군인이잖아요. 솔직한 얘기로 밥을 한 번 사더라도 사업하는 사람이 사야죠. 군인이 밥을 사나요. 인지상정 아닙니까.”
― 전부 유죄로 인정되지는 않았지만, 검찰은 총 20차례에 걸쳐 760만원어치의 향응을 제공했다고 봤습니다. 매번 숙식비를 제공한 것도 ‘인지상정’으로 볼 수 있나요.
“사업을 하다 보면 돈이 필요할 때가 있어요. 찬주 형이 3000만원씩 빌려주고 갚고 그랬어요. 그분도 자기 돈이 없으면 친척들과 은행에서 빌려 오기도 했을 거예요. 제가 늦게 갚을 때면 죄송해서 ‘이자를 더 많이 드리겠다’고 해도 절대 안 받아요. 찬주 형이 ‘이걸로 이자놀이하면 우리 사이 오래 못 간다’고 했어요. (기자 註: 검찰은 박 전 대장이 곽씨에게 총 2억2000만원을 빌려주고 5000만원을 이자로 받기로 약속한 것을 수뢰 혐의로 봤으나 법원은 이를 무죄로 판단했다. 곽씨는 이자 내용도 본인이 구두로 제안한 것일 뿐, 박 전 대장은 실제 받은 적도 없고 요구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때마다 제가 보답할 수 있는 게 뭡니까. 만날 때 저녁 사고 여행 경비 더 내는 거잖아요.”
― 자주 만나더라도 경비를 각자 계산, 속칭 ‘더치페이’로 하면 문제될 게 없지 않습니까.
“저만 밥값을 냈겠습니까. 그러면 이가 갈려서 못 만납니다. 어떻게 10년 관계를 유지합니까. 어떤 때는 찬주 형이 낼 때도 있었고, 참모가 먼저 지불해 저와 형이 야단친 적도 있었습니다. 형수(박 전 대장의 부인)가 부산·제주도로 여행가거나 밥 먹으러 가면 30만~100만원을 쥐여주기도 했어요. ‘삼촌만 돈을 내면 우리 부담스러워서 못 만난다’면서 여행 경비랑 밥값에 보태라고 한 거예요.”
― 박 전 대장을 처음 어떻게 만났습니까.
“제가 처음 찬주 형을 만날 때가 2008년입니다. 당시 저는 유통회사 직원이었고 찬주 형은 이상희 국방부장관 군사보좌관으로 계급은 준장이었어요. 제 아버지가 육사(陸士) 11기생이셨는데 2007년 일본에서 여행하시다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동기분들이 장례를 도와주셨고 격려와 위로도 많이 해 주셔서 제가 이듬해 연말모임을 후원했어요. 그 11기생 모임에 이상희 장관님 대신 박찬주 군사보좌관이 인사를 왔어요. 그때 11기생 동기분들이 ‘인사해라, 오늘 이 자리를 만든 곽○○ 아들이다. 아버지를 대신해서 송년회를 마련했다’고 찬주 형에게 소개해 줬어요. 저랑 찬주 형이 8살 차이인데, 저를 참 대견하게 생각해 주더라고요. 그때부터 부부 동반으로 자주 만났죠.”
― 박 전 대장과 인연이 깊어진 계기가 있습니까.
“2012년 제 둘째 아들이 중학생일 때 사경을 헤맸어요. 몸이 말라서 뼈만 남고 머리가 계속 아프다고 했어요.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갔는데 병원에서도 불치병이라고 했어요. 의사들이 ‘오늘 밤이 고비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어요. 목사님이나 부모형제보다는 찬주 형이 먼저 떠오르더라고요. 둘째가 군인이 꿈이었거든요. 그때 찬주 형이 합참으로 가서 서울에 있었는데, 군복을 입은 채로 와 줬어요. 무릎을 꿇고 병상에 있는 둘째에게 통성으로 안수기도를 해 줬어요. 병실이 눈물바다가 된 거죠. 그러다가 둘째가 며칠 뒤 ‘배가 고프다’면서 20일 만에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퇴원했어요. 지금은 건강을 찾아서 해병대에 있어요. 둘째가 눈물 쏟으며 하던 말이 생각나요. ‘생명의 은인, 큰아버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분’이라고요. 둘째 방에 가면요, 찬주 형 프로필로 도배를 해 놨어요. 우리 관계가 그런 관계입니다.”
“5군지사 불용품 매각, 전자입찰 통한 공정한 계약”
판결문에 따르면, 곽씨는 2012년 11월 8일 고철 수집 및 판매를 영업으로 하는 ‘리노셋’을 설립했다. 리노셋은 주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서 공매하는 불용품 입찰에 참가, 낙찰을 받으면 다른 업체에 이를 재매각하는 영업을 해 왔다. 리노셋은 2016년 4월경 5군지사의 불용품 매각 입찰 4건에 입찰서를 제출, 그 중 3건을 낙찰 받아 같은 해 5월 10일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박 전 대장이 5군지사를 지휘하는 제2작전사의 사령관으로 재직했기 때문에, 예하부대와 사업을 체결한 업체 대표에게 숙식비를 제공받은 것은 ‘부적절한 향응’이라고 본 셈이다.
― 당시 제2작전사의 예하부대인 5군지사와 군 불용품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오래 알고 지내던 박 전 대장이 제2작전사령관으로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던 거 아닙니까.
“찬주 형은 제가 한국철도공사 협력업체로서 사업을 한다는 정도만 알았지, 불용품 사업을 한다는 건 2017년에서야 알게 됐습니다. 입찰 과정도 ‘온비드’(한국자산관리공사의 전자입찰 시스템)를 통한 최고가 낙찰 방식이므로, 사령관이 아니라 대통령을 안다고 해도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 계약 과정이 공정했다는 근거는 뭡니까.
“옛날에는 사령관이 ‘야, 그거 수의계약해 줘라’ 이러면 일선 부대장이 꼼짝 못했죠. 그때는 가능했을지 몰라요. 지금은요,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자산관리공사 아니면 매각을 못합니다. 어느 누구도 관여 못해요. 간단히 말해서 제가 100원을 쓰고, 기자님이 101원을 쓰면 기자님이 낙찰 받는 거예요. 또 제가 5군지사하고만 계약했다면 문제가 있죠. 그런데 저는 그 전이나 그 후에도, 육군 말고도 공군·해군·해병 (불용품 매각) 입찰에 다 참여했습니다. 시청·군청·구청에 한국철도공사·한국철도시설공단 심지어 학교 불용품까지 입찰에 다 참여했어요. 입찰은 누구나, 어디든 할 수 있는 거예요.”
― 군 불용품 매각 절차는 어떻게 진행됩니까.
“일단 물건을 가져가려면 포클레인과 차량이 필요합니다. 군부대에 장비·인원 사항을 전부 신고합니다. 보안신고에서 적합 판정이 나면 부대 안 계량소에서 기무·감찰·헌병 입회하에 공차(물건 싣기 전의 빈 차량) 무게를 잽니다. 다시 고철을 싣고 총 중량을 재고, 공차 무게를 빼서 실(實)중량을 파악합니다. 굳이 편의 제공이라고 하면 고철을 더 주는 건데, 이 (엄격한) 시스템에서 누구를 안다고 더 주고 덜 줄 수 있겠습니까.”
“불용품 매각 사업은 제2작전사 아닌 군수사 관할”
판결문에 따르면, 법원은 불용품 처리와 관련된 육군규정 등을 유죄 판결의 근거로 삼았다. 법원이 판결문에 명시한 ‘육군규정 453 재산처리규정’ 일부분은 다음과 같다.
〈제22조(불용결정 승인권한) ① 사용불가, 사용불능 장비 및 장비도태 기준에 따라 폐처리 대상 품목은 다음 각 호의 승인권자의 승인 후 처리한다.
3. 국방부장관 승인품목 이외의 그 밖의 장비 중 야전정비 종결장비는 야전군(작전)사령관이, 창 정비 종결장비는 군수사령관이 승인 후 처리한다.
제23조(불용품 운영 및 확인감독 체제) ③ 야전군(작전) 사령관은 불용군수품, 폐품, 생활 폐물자의 분류 및 저장실태를 주기적으로 확인 감독하여야 하며, 부조리 예방 및 부정유출 방지를 위한 헌병, 감찰, 기무부대 요원의 입회와 불시점검을 지속적으로 강화한다.〉
법원은 군 관계자들의 증언도 유죄 판결 근거로 삼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제2작전사 군수참모는 “군수지원사령부는 각 야전사령부 예하에 설치돼 있으므로 야전군사령관의 지휘나 감독을 받고, 야전군사령관은 지휘관으로서 전 분야에 대한 지휘 책임과 권한이 있다”고 진술했다. 육군 군수사령부의 한 관계자는 “5군지사는 제2작전사령부 예하에서 지휘를 받는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반면 곽씨 주장에 따르면, 5군지사(제5군수지원사령부 및 예하 제51·52·53군수지원단)와의 불용품 매각 관련 계약기간은 2016년 5월에서 12월까지였다. 이후 5군지사는 육군 군수사령부 지시에 따라 불용품 단가 상승, 불용품 부족 등의 사유로 리노셋에 수정계약을 제안했다. 곽씨는 단가 변경에 동의하지 않는 조건 등으로 3건의 계약기간을 그해 10월 초순(‘불용품 부족’ 사유였던 제53군지단의 경우 그해 6월 말)까지 조정하고 사업을 마무리지었다.
곽씨는 ‘수정계약을 지시한 측이 육군 군수사령부였다’는 사실을 근거로, 5군지사는 군의 지휘체계상으로만 제2작전사의 예하부대일 뿐 불용품 매각 사업과 관련해서는 군수사의 통제를 받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본인이 당시 제2작전사령관이었던 박 전 대장에게 제공한 ‘숙식비 184만원’의 대가성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말이다.
“온비드로 낙찰이 되면 5군지사 불용품 매각의 모든 권한은 군수사에 있기 때문에 제2작전사와는 무관합니다. 제가 당시 수정계약 건 때문에 공문 보내온 곳을 보니까 역시 군수사더라고요. 제2작전사령관은 5군지사 같은 예하부대 불용품의 저장·보관 상태만 감독할 뿐입니다. 사령관이 군수참모·군수처장에게 위임을 해서 화재나 도난이 발생하지 않게 관리하는 정도, 거기까집니다.”
박 전 대장 측이 법정에서 한 주장도 곽씨의 말을 뒷받침한다. 박 전 대장 변호인 측은 법정에서 “피고인(박 전 대장)이 5군지사에 지시할 수 있는 부분은 전투와 작전에 관한 사항”이라며 “군수물자의 구입, 재고 통제, 계약, 매각, 불용품의 처리는 피고인의 지시 사항이 아니다. 5군지사의 상급기관인 군수사령부, 육군본부의 지휘를 받아 군지사(군수지원사령부)에서 처리하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제2작전사령관(4성장군)이 군수사령관(3성장군)보다 계급은 높지만, 실제로는 군수사령관에게 물자의 보급 권한이 있기 때문에 속칭 ‘갑의 위치’다”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군지사 등 병참 분야에서 일한 전직 군 관계자는 “군지사는 군수사에서 내려보낸 불용품 처리 지침에 따라 (매각 계약) 절차를 진행한다”며 “지휘계통상 군사령관의 지휘권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군사령관이 (군 불용품 문제와 관련 군수사령관에게) ‘이걸 봐줘라’ 얘기할 수 있을 정도의 위치에 있지 않다. 정상적인 생각이라면 군사령관, 그런 거 개입 안 한다”고 말했다.
“제2작전사 불용품도 아닌데, ‘밥 먹지 말자’고 해야 하나”
― 실제 박 전 대장의 영향력이 없었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본인이 예하부대 관련 사업을 진행하는데 ‘계약기간만이라도 박 전 대장과 접촉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까.
“저도 5군지사가 제2작전사의 예하부대란 걸 이번에 알았습니다. ‘내가 만약 이를 사전에 알았다면 5군지사에 입찰을 하지 말았어야 했나’ ‘10년 동안 찬주 형과 가깝게 지내 오면서 그 계약기간 동안에는 밥을 먹지 말고 여행도 가지 말았어야 했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저는 낙찰 받으면 계약대로 진행하면 됩니다. 저 부대가 어느 곳의 예하부대인지 알 필요가 있겠습니까. 제2작전사 불용품도 아니고 예하부대 불용품인데, ‘형님, 형님의 예하부대에 입찰 참여했으니까 그거(계약) 끝날 때까지 밥 먹으면 안 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는 건가요.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봐도 ‘어불성설’이라고 할 겁니다.”
― 법원은 뇌물수수 혐의에 더해, 박 전 대장이 부하 장교의 보직 변경 청탁을 들어줬다며 ‘김영란법’ 위반으로 판단했습니다.
“저야 그 부분은 잘 모르죠. 다만 보직 변경을 청한 장교 아버지가 6·25 참전용사로 국가유공자인데 한쪽 폐가 없어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고 들었어요. 어머니도 간병을 하다가 대퇴골이 부러져서 거동을 못하신대요. (그래서 박 전 대장이) ‘군 생활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부모님 곁에 가서 남은 기간 잘 보내라’고 부하의 고충을 들어준 거 아닙니까.”
앞서 박 전 대장 측 변호인 역시 법정에서 “○○○(해당 부하 장교)의 경우 부모님의 거동이 불편했기에 고향에 가서 근무하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군 생활을 그만두려고 하는 입장이었다”며 “그래서 급히 알고 있던 피고인에게 문자를 보내 자신의 인사 문제에 대한 고충을 제기한 것이다. 피고인도 ○○○의 개인적 사정을 알고 있어서 문자메시지(보직 변경 요청 관련)를 그대로 인사참모에게 전달, 고충 처리를 하도록 한 것이지 인사 청탁을 받아 처리한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박 전 대장, 자학하며 폐인처럼 생활”
― 박 전 대장의 ‘전역 및 신분 처리’ 문제와 관련, “편법으로 군인 신분을 유지시켰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찬주 형이 본래는 제2작전사령관이 끝나는 작년 8월 8일 민간인 신분이 됐습니다. 그런데 육사정책연구관으로 발령을 내 전역을 보류시키고, 현역 대장 신분으로 군 검찰 수사를 받도록 한 거 아닙니까. 찬주 형이 당시 ‘현역 대장 복장으로 군법회의에 나가는 건 계급과 제복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괴로워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대법원에 신분 확인을 요청했고, 그해 12월 중순에 ‘제2작전사령관직에서 내려올 때 이미 민간인 신분이 된 게 맞다’고 판결이 난 겁니다. 더 기막힌 건 판결 직후 국군경리단(국군재정관리단)에서 ‘8월부터 12월까지 민간인이었으니까 봉급을 줄 수 없다’고 봉급을 회수해 갔습니다. (민간인이니까) 봉급은 못 주지만, 검찰권을 행사해 군 영창에 집어넣을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나요.”
― 법원 판단에 따르면 본인은 박 전 대장에게 뇌물을 준 사람이 됐는데, 처분을 받았습니까.
“이 사람들이 무슨 생각으로 조사하고 기소했는지 모르겠지만, 뇌물이라고 하는 거는 준 사람 받은 사람 똑같이 처벌해야 합니다. 저는 입건 자체를 안 했어요. 이런 얘기가 보도됨으로써 내가 불이익을 당할지 모르겠지만, 하고 싶은 얘기는 하겠다는 거예요. 받은 사람이 유죄면 준 사람도 유죄 아닙니까.”
― 박 전 대장은 지난 1월 구속 상태에서 보석으로 석방됐습니다. 최근에 만난 적이 있습니까.
“찬주 형이 보고 싶어도 1년 동안 못 만났어요. 나는 괜찮지만 (박 전 대장에게) 어떤 꼬투리를 더 잡을까 걱정이 되니까요. 보면 안아 주고 싶고, ‘형 정말 미안해’라고 말하고 싶죠. 어디 좋은 데 가서 밤새도록 목 놓아 울고 싶기도 해요. 지금 애들 엄마끼리는 연락해서 안부를 물어보면, 집에서 두문불출하고 거의 폐인처럼 생활한다고 해요. 자기 자신을 너무 학대하고 있대요. 아주 가끔 나가시면 산에 가서 계시다가 내려오고….”
― 박 전 대장이 작년 8월 군 검찰에 출석하기 전날, 청와대로부터 “사복이 아닌 육군 대장 정복(正服)을 입고 출석하라”는 전화를 받았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군의 위신을 추락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던 거죠. 이런 말을 들어본 적 있습니까.
“….”⊙
박 전 대장은 작년 8월 공관병에게 가혹 행위와 부당한 지시를 했다는 혐의로 군 검찰에서 조사받았지만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아 불기소 처분됐다. 군 검찰은 대신 뇌물수수,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작년 9월 박 전 대장을 구속기소했다. 지인에게서 총 20회에 걸쳐 숙식비 등 760여만원의 향응을 받았고, 돈을 빌려주고선 고율(高率)의 이자를 받았다는 혐의였다. 부하 장교의 보직 변경 청탁을 들어줬다고도 했다.
군 검찰로부터 사건을 인계받아 공소유지를 한 검찰은 박 전 대장에 대해 징역 5년에 벌금 1억원을 구형했다. 법원은 이 중 ‘김영란법 위반’(부정청탁)과 ‘향응 4차례’(뇌물수수)만 유죄로 판단했다.
법원은 향응 부분과 관련, 박 대장이 제2작전사령부(이하 ‘제2작전사’) 사령관으로 재직하던 2016년 5~6월 폐자원 매입업자인 지인 곽재한(52)씨로부터 숙식비 184만1600원을 뇌물로 받았다고 판단했다. 당시 곽씨가 제2작전사 예하부대인 제5군수지원사령부(이하 ‘5군지사’) 사업을 수주했기 때문이었다.
1심 판결문에 따르면 “(박 전 대장은) 제2작전사령관으로서 직할 및 예하부대의 불용품 매각과 관련, 법령에 정해진 직무권한을 가진 피고인”이라며 “제2작전사의 예하부대인 5군지사와 불용품 매각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이해관계를 가지게 된 직무 대상자인 곽재한으로부터 숙박비 등을 대납 받은 것은 향응 등의 뇌물을 수수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박 전 대장 측은 1심 판결에 불복, 항소를 준비 중이다.
기자는 곽씨의 제보로 지난 10월 1일 서울 모처에서 그를 인터뷰했다. 박 전 대장에게 향응을 제공한 당사자가 된 곽씨는 기자와 만나 “1심 판결에 억울한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4차례 만남은 향응 아닌 평범한 가족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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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주 전 육군 대장은 작년 8월 공관병에게 가혹 행위와 부당한 지시를 했다는 혐의로 군 검찰에서 조사받았지만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아 불기소 처분됐다. 군 검찰은 대신 뇌물수수,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작년 9월 박 전 대장을 구속기소했다. 사진=조선DB |
“제가 당시 제2작전사령관이었던 박 전 대장이랑 2016년 5월부터 같은 해 6월까지 4차례 밥을 먹고 여행을 다녔어요. 3번은 밥을 먹고 1번은 부산 여행을 갔습니다. 저는 5월 전에도 (박 전 대장과) 밥을 먹었고, 6월 이후에도 먹었어요. 군 검찰 기소 내용을 보면 (같이) 밥 먹고 여행 다닌 게 어마어마해요. (제가 대납한) 비용도 (20차례에 걸쳐 총) 760만원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법원은 딱 4차례만 인정했어요. 제가 5군지사와 계약을 체결할 무렵이었죠.”
군 검찰이 작성한 ‘범죄 일람표’에 따르면, 곽씨 측과 박 전 대장 측은 2016년 5월 13일부터 2016년 6월 28일까지 총 4차례에 걸쳐 부산의 호텔, 대구의 한정식집 등에서 식사와 숙박을 함께 했다. 박 전 대장이 곽씨에게서 받았다고 인정된 향응 액수는 각 65만3400원, 32만5000원, 77만4400원, 8만8800원으로 총 ‘184만1600원’이다.
― 왜 함께 밥을 먹고 여행을 갔습니까.
“만약에 제가 (5군지사와 계약하던) 딱 그 기간에만 박 전 대장과 만남을 가졌다면 오해의 소지가 있겠죠. 저와 찬주 형은요, 10년 동안 만난 사이예요. 밥도 자주 먹고 여름에 경포대 해수욕장 피서도 가고 그렇게 지냈어요. 친형제처럼 인연을 이어 왔어요. 가족끼리도 친해요. 찬주 형도 아들 둘, 저도 아들 둘이었어요. 당시도 우리는 지난 수년 동안 해 왔던 것처럼, 가족이 함께 만나서 식사도 하고 여행도 다닌 것뿐이에요.”
― 지인들끼리의 평범한 ‘가족 모임’이었다는 겁니까.
“이 자리가 ‘검은 자리’, 특정한 대가를 위한 향응 자리였다면 찬주 형과 단둘이 만났겠죠. 쉽게 얘기해서, 은밀한 자리에서 제가 술도 먹고 촌지도 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 자리에는 찬주 형 내외와 저희 부부, 전속부관과 그 부인들, 운전관도 있었어요. 우리 아들이 있던 때도 있었고요. 속칭 ‘계모임’처럼 만나서 밥도 먹고 여행도 다녔는데 그걸 향응이라고 할 수 있나요.”
― 박 전 대장 부부는 제쳐두고라도, 그의 부관 내외와 운전관까지 대접한 이유가 뭡니까.
“사령관 옆에 24시간 붙어 있는 사람이 누굽니까. 부관·운전관 아닙니까. 나머지는 참모 부인들인데, 그건 우리 애들 엄마가 친분이 있으니까 부른 거고요. (박 전 대장과 만날 때면 당연히) 그 참모들과도 밥을 먹어야죠. 처음 찬주 형을 만났을 때, 그의 직업은 군인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군인이었고요. 같이 어울렸던 사람들도 당연히 군인입니다. 10년간 서로를 알아 왔으면, 꼭 우리 네 사람만 밥을 먹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아들 쾌유 기도해 준 찬주 형… 저녁 몇 번 산 게 보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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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주 전 육군 대장의 공관병이었던 제보자가 작년 8월 4일 오전 언론에 박 전 대장 측의 갑질 문제와 관련, 제보하게 된 심경을 밝히고 있다. 곽재한씨는 기자에게 건넨 진술서에서 “가끔 형(박 전 대장) 만나러 가 보면 공관병들과 농담도 주고받고 굉장히 편안하게 해 준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공관병들도 사령관님을 무척 따른다”고 주장했다. 사진=뉴시스 |
“나는 사업하는 사람이고, 여기는 박봉에 시달리는 군인이잖아요. 솔직한 얘기로 밥을 한 번 사더라도 사업하는 사람이 사야죠. 군인이 밥을 사나요. 인지상정 아닙니까.”
― 전부 유죄로 인정되지는 않았지만, 검찰은 총 20차례에 걸쳐 760만원어치의 향응을 제공했다고 봤습니다. 매번 숙식비를 제공한 것도 ‘인지상정’으로 볼 수 있나요.
“사업을 하다 보면 돈이 필요할 때가 있어요. 찬주 형이 3000만원씩 빌려주고 갚고 그랬어요. 그분도 자기 돈이 없으면 친척들과 은행에서 빌려 오기도 했을 거예요. 제가 늦게 갚을 때면 죄송해서 ‘이자를 더 많이 드리겠다’고 해도 절대 안 받아요. 찬주 형이 ‘이걸로 이자놀이하면 우리 사이 오래 못 간다’고 했어요. (기자 註: 검찰은 박 전 대장이 곽씨에게 총 2억2000만원을 빌려주고 5000만원을 이자로 받기로 약속한 것을 수뢰 혐의로 봤으나 법원은 이를 무죄로 판단했다. 곽씨는 이자 내용도 본인이 구두로 제안한 것일 뿐, 박 전 대장은 실제 받은 적도 없고 요구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때마다 제가 보답할 수 있는 게 뭡니까. 만날 때 저녁 사고 여행 경비 더 내는 거잖아요.”
― 자주 만나더라도 경비를 각자 계산, 속칭 ‘더치페이’로 하면 문제될 게 없지 않습니까.
“저만 밥값을 냈겠습니까. 그러면 이가 갈려서 못 만납니다. 어떻게 10년 관계를 유지합니까. 어떤 때는 찬주 형이 낼 때도 있었고, 참모가 먼저 지불해 저와 형이 야단친 적도 있었습니다. 형수(박 전 대장의 부인)가 부산·제주도로 여행가거나 밥 먹으러 가면 30만~100만원을 쥐여주기도 했어요. ‘삼촌만 돈을 내면 우리 부담스러워서 못 만난다’면서 여행 경비랑 밥값에 보태라고 한 거예요.”
― 박 전 대장을 처음 어떻게 만났습니까.
“제가 처음 찬주 형을 만날 때가 2008년입니다. 당시 저는 유통회사 직원이었고 찬주 형은 이상희 국방부장관 군사보좌관으로 계급은 준장이었어요. 제 아버지가 육사(陸士) 11기생이셨는데 2007년 일본에서 여행하시다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동기분들이 장례를 도와주셨고 격려와 위로도 많이 해 주셔서 제가 이듬해 연말모임을 후원했어요. 그 11기생 모임에 이상희 장관님 대신 박찬주 군사보좌관이 인사를 왔어요. 그때 11기생 동기분들이 ‘인사해라, 오늘 이 자리를 만든 곽○○ 아들이다. 아버지를 대신해서 송년회를 마련했다’고 찬주 형에게 소개해 줬어요. 저랑 찬주 형이 8살 차이인데, 저를 참 대견하게 생각해 주더라고요. 그때부터 부부 동반으로 자주 만났죠.”
― 박 전 대장과 인연이 깊어진 계기가 있습니까.
“2012년 제 둘째 아들이 중학생일 때 사경을 헤맸어요. 몸이 말라서 뼈만 남고 머리가 계속 아프다고 했어요.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갔는데 병원에서도 불치병이라고 했어요. 의사들이 ‘오늘 밤이 고비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어요. 목사님이나 부모형제보다는 찬주 형이 먼저 떠오르더라고요. 둘째가 군인이 꿈이었거든요. 그때 찬주 형이 합참으로 가서 서울에 있었는데, 군복을 입은 채로 와 줬어요. 무릎을 꿇고 병상에 있는 둘째에게 통성으로 안수기도를 해 줬어요. 병실이 눈물바다가 된 거죠. 그러다가 둘째가 며칠 뒤 ‘배가 고프다’면서 20일 만에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퇴원했어요. 지금은 건강을 찾아서 해병대에 있어요. 둘째가 눈물 쏟으며 하던 말이 생각나요. ‘생명의 은인, 큰아버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분’이라고요. 둘째 방에 가면요, 찬주 형 프로필로 도배를 해 놨어요. 우리 관계가 그런 관계입니다.”
“5군지사 불용품 매각, 전자입찰 통한 공정한 계약”
판결문에 따르면, 곽씨는 2012년 11월 8일 고철 수집 및 판매를 영업으로 하는 ‘리노셋’을 설립했다. 리노셋은 주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서 공매하는 불용품 입찰에 참가, 낙찰을 받으면 다른 업체에 이를 재매각하는 영업을 해 왔다. 리노셋은 2016년 4월경 5군지사의 불용품 매각 입찰 4건에 입찰서를 제출, 그 중 3건을 낙찰 받아 같은 해 5월 10일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박 전 대장이 5군지사를 지휘하는 제2작전사의 사령관으로 재직했기 때문에, 예하부대와 사업을 체결한 업체 대표에게 숙식비를 제공받은 것은 ‘부적절한 향응’이라고 본 셈이다.
― 당시 제2작전사의 예하부대인 5군지사와 군 불용품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오래 알고 지내던 박 전 대장이 제2작전사령관으로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던 거 아닙니까.
“찬주 형은 제가 한국철도공사 협력업체로서 사업을 한다는 정도만 알았지, 불용품 사업을 한다는 건 2017년에서야 알게 됐습니다. 입찰 과정도 ‘온비드’(한국자산관리공사의 전자입찰 시스템)를 통한 최고가 낙찰 방식이므로, 사령관이 아니라 대통령을 안다고 해도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 계약 과정이 공정했다는 근거는 뭡니까.
“옛날에는 사령관이 ‘야, 그거 수의계약해 줘라’ 이러면 일선 부대장이 꼼짝 못했죠. 그때는 가능했을지 몰라요. 지금은요,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자산관리공사 아니면 매각을 못합니다. 어느 누구도 관여 못해요. 간단히 말해서 제가 100원을 쓰고, 기자님이 101원을 쓰면 기자님이 낙찰 받는 거예요. 또 제가 5군지사하고만 계약했다면 문제가 있죠. 그런데 저는 그 전이나 그 후에도, 육군 말고도 공군·해군·해병 (불용품 매각) 입찰에 다 참여했습니다. 시청·군청·구청에 한국철도공사·한국철도시설공단 심지어 학교 불용품까지 입찰에 다 참여했어요. 입찰은 누구나, 어디든 할 수 있는 거예요.”
― 군 불용품 매각 절차는 어떻게 진행됩니까.
“일단 물건을 가져가려면 포클레인과 차량이 필요합니다. 군부대에 장비·인원 사항을 전부 신고합니다. 보안신고에서 적합 판정이 나면 부대 안 계량소에서 기무·감찰·헌병 입회하에 공차(물건 싣기 전의 빈 차량) 무게를 잽니다. 다시 고철을 싣고 총 중량을 재고, 공차 무게를 빼서 실(實)중량을 파악합니다. 굳이 편의 제공이라고 하면 고철을 더 주는 건데, 이 (엄격한) 시스템에서 누구를 안다고 더 주고 덜 줄 수 있겠습니까.”
판결문에 따르면, 법원은 불용품 처리와 관련된 육군규정 등을 유죄 판결의 근거로 삼았다. 법원이 판결문에 명시한 ‘육군규정 453 재산처리규정’ 일부분은 다음과 같다.
〈제22조(불용결정 승인권한) ① 사용불가, 사용불능 장비 및 장비도태 기준에 따라 폐처리 대상 품목은 다음 각 호의 승인권자의 승인 후 처리한다.
3. 국방부장관 승인품목 이외의 그 밖의 장비 중 야전정비 종결장비는 야전군(작전)사령관이, 창 정비 종결장비는 군수사령관이 승인 후 처리한다.
제23조(불용품 운영 및 확인감독 체제) ③ 야전군(작전) 사령관은 불용군수품, 폐품, 생활 폐물자의 분류 및 저장실태를 주기적으로 확인 감독하여야 하며, 부조리 예방 및 부정유출 방지를 위한 헌병, 감찰, 기무부대 요원의 입회와 불시점검을 지속적으로 강화한다.〉
법원은 군 관계자들의 증언도 유죄 판결 근거로 삼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제2작전사 군수참모는 “군수지원사령부는 각 야전사령부 예하에 설치돼 있으므로 야전군사령관의 지휘나 감독을 받고, 야전군사령관은 지휘관으로서 전 분야에 대한 지휘 책임과 권한이 있다”고 진술했다. 육군 군수사령부의 한 관계자는 “5군지사는 제2작전사령부 예하에서 지휘를 받는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반면 곽씨 주장에 따르면, 5군지사(제5군수지원사령부 및 예하 제51·52·53군수지원단)와의 불용품 매각 관련 계약기간은 2016년 5월에서 12월까지였다. 이후 5군지사는 육군 군수사령부 지시에 따라 불용품 단가 상승, 불용품 부족 등의 사유로 리노셋에 수정계약을 제안했다. 곽씨는 단가 변경에 동의하지 않는 조건 등으로 3건의 계약기간을 그해 10월 초순(‘불용품 부족’ 사유였던 제53군지단의 경우 그해 6월 말)까지 조정하고 사업을 마무리지었다.
곽씨는 ‘수정계약을 지시한 측이 육군 군수사령부였다’는 사실을 근거로, 5군지사는 군의 지휘체계상으로만 제2작전사의 예하부대일 뿐 불용품 매각 사업과 관련해서는 군수사의 통제를 받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본인이 당시 제2작전사령관이었던 박 전 대장에게 제공한 ‘숙식비 184만원’의 대가성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말이다.
“온비드로 낙찰이 되면 5군지사 불용품 매각의 모든 권한은 군수사에 있기 때문에 제2작전사와는 무관합니다. 제가 당시 수정계약 건 때문에 공문 보내온 곳을 보니까 역시 군수사더라고요. 제2작전사령관은 5군지사 같은 예하부대 불용품의 저장·보관 상태만 감독할 뿐입니다. 사령관이 군수참모·군수처장에게 위임을 해서 화재나 도난이 발생하지 않게 관리하는 정도, 거기까집니다.”
박 전 대장 측이 법정에서 한 주장도 곽씨의 말을 뒷받침한다. 박 전 대장 변호인 측은 법정에서 “피고인(박 전 대장)이 5군지사에 지시할 수 있는 부분은 전투와 작전에 관한 사항”이라며 “군수물자의 구입, 재고 통제, 계약, 매각, 불용품의 처리는 피고인의 지시 사항이 아니다. 5군지사의 상급기관인 군수사령부, 육군본부의 지휘를 받아 군지사(군수지원사령부)에서 처리하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제2작전사령관(4성장군)이 군수사령관(3성장군)보다 계급은 높지만, 실제로는 군수사령관에게 물자의 보급 권한이 있기 때문에 속칭 ‘갑의 위치’다”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군지사 등 병참 분야에서 일한 전직 군 관계자는 “군지사는 군수사에서 내려보낸 불용품 처리 지침에 따라 (매각 계약) 절차를 진행한다”며 “지휘계통상 군사령관의 지휘권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군사령관이 (군 불용품 문제와 관련 군수사령관에게) ‘이걸 봐줘라’ 얘기할 수 있을 정도의 위치에 있지 않다. 정상적인 생각이라면 군사령관, 그런 거 개입 안 한다”고 말했다.
“제2작전사 불용품도 아닌데, ‘밥 먹지 말자’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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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주 전 육군 대장이 작년 9월 21일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되어 서울 국방부 검찰단을 나서고 있다. 곽재한씨는 “찬주 형은 제가 한국철도공사 협력업체로서 사업을 한다는 정도만 알았지, 불용품 사업을 한다는 건 2017년에서야 알게 됐다”며 “(군 불용품) 입찰 과정도 ‘온비드’(한국자산관리공사의 전자입찰 시스템)를 통한 최고가 낙찰 방식이므로, 사령관이 아니라 대통령을 안다고 해도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사진=뉴시스 |
“저도 5군지사가 제2작전사의 예하부대란 걸 이번에 알았습니다. ‘내가 만약 이를 사전에 알았다면 5군지사에 입찰을 하지 말았어야 했나’ ‘10년 동안 찬주 형과 가깝게 지내 오면서 그 계약기간 동안에는 밥을 먹지 말고 여행도 가지 말았어야 했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저는 낙찰 받으면 계약대로 진행하면 됩니다. 저 부대가 어느 곳의 예하부대인지 알 필요가 있겠습니까. 제2작전사 불용품도 아니고 예하부대 불용품인데, ‘형님, 형님의 예하부대에 입찰 참여했으니까 그거(계약) 끝날 때까지 밥 먹으면 안 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는 건가요.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봐도 ‘어불성설’이라고 할 겁니다.”
― 법원은 뇌물수수 혐의에 더해, 박 전 대장이 부하 장교의 보직 변경 청탁을 들어줬다며 ‘김영란법’ 위반으로 판단했습니다.
“저야 그 부분은 잘 모르죠. 다만 보직 변경을 청한 장교 아버지가 6·25 참전용사로 국가유공자인데 한쪽 폐가 없어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고 들었어요. 어머니도 간병을 하다가 대퇴골이 부러져서 거동을 못하신대요. (그래서 박 전 대장이) ‘군 생활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부모님 곁에 가서 남은 기간 잘 보내라’고 부하의 고충을 들어준 거 아닙니까.”
앞서 박 전 대장 측 변호인 역시 법정에서 “○○○(해당 부하 장교)의 경우 부모님의 거동이 불편했기에 고향에 가서 근무하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군 생활을 그만두려고 하는 입장이었다”며 “그래서 급히 알고 있던 피고인에게 문자를 보내 자신의 인사 문제에 대한 고충을 제기한 것이다. 피고인도 ○○○의 개인적 사정을 알고 있어서 문자메시지(보직 변경 요청 관련)를 그대로 인사참모에게 전달, 고충 처리를 하도록 한 것이지 인사 청탁을 받아 처리한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 박 전 대장의 ‘전역 및 신분 처리’ 문제와 관련, “편법으로 군인 신분을 유지시켰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찬주 형이 본래는 제2작전사령관이 끝나는 작년 8월 8일 민간인 신분이 됐습니다. 그런데 육사정책연구관으로 발령을 내 전역을 보류시키고, 현역 대장 신분으로 군 검찰 수사를 받도록 한 거 아닙니까. 찬주 형이 당시 ‘현역 대장 복장으로 군법회의에 나가는 건 계급과 제복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괴로워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대법원에 신분 확인을 요청했고, 그해 12월 중순에 ‘제2작전사령관직에서 내려올 때 이미 민간인 신분이 된 게 맞다’고 판결이 난 겁니다. 더 기막힌 건 판결 직후 국군경리단(국군재정관리단)에서 ‘8월부터 12월까지 민간인이었으니까 봉급을 줄 수 없다’고 봉급을 회수해 갔습니다. (민간인이니까) 봉급은 못 주지만, 검찰권을 행사해 군 영창에 집어넣을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나요.”
― 법원 판단에 따르면 본인은 박 전 대장에게 뇌물을 준 사람이 됐는데, 처분을 받았습니까.
“이 사람들이 무슨 생각으로 조사하고 기소했는지 모르겠지만, 뇌물이라고 하는 거는 준 사람 받은 사람 똑같이 처벌해야 합니다. 저는 입건 자체를 안 했어요. 이런 얘기가 보도됨으로써 내가 불이익을 당할지 모르겠지만, 하고 싶은 얘기는 하겠다는 거예요. 받은 사람이 유죄면 준 사람도 유죄 아닙니까.”
― 박 전 대장은 지난 1월 구속 상태에서 보석으로 석방됐습니다. 최근에 만난 적이 있습니까.
“찬주 형이 보고 싶어도 1년 동안 못 만났어요. 나는 괜찮지만 (박 전 대장에게) 어떤 꼬투리를 더 잡을까 걱정이 되니까요. 보면 안아 주고 싶고, ‘형 정말 미안해’라고 말하고 싶죠. 어디 좋은 데 가서 밤새도록 목 놓아 울고 싶기도 해요. 지금 애들 엄마끼리는 연락해서 안부를 물어보면, 집에서 두문불출하고 거의 폐인처럼 생활한다고 해요. 자기 자신을 너무 학대하고 있대요. 아주 가끔 나가시면 산에 가서 계시다가 내려오고….”
― 박 전 대장이 작년 8월 군 검찰에 출석하기 전날, 청와대로부터 “사복이 아닌 육군 대장 정복(正服)을 입고 출석하라”는 전화를 받았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군의 위신을 추락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던 거죠. 이런 말을 들어본 적 있습니까.
“….”⊙
“군인 박찬주는 기갑전의 대가, 인간 박찬주는 따뜻한 아버지” 곽씨는 본인이 연루된 뇌물사건 외에 현재 수원지검에서 수사를 진행 중인 박 전 대장의 ‘공관병 갑질 사건’ 혐의도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곽씨는 “내가 10년간 지켜봐 온 인간 박찬주는 따뜻한 형과 아버지 같은 사람이었고, 군인 박찬주는 감히 맥아더 장군에 비교할 만큼 참된 군인으로 선비·학자처럼 결백했다”며 “공관병에게 갑질을 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먼 훗날 역사가 말해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기자에게 전한 진술서 일부분이다. 〈찬주 형은 참 따뜻한 분입니다. 자상하고 배려심이 많은 분으로 소문 나 있습니다. 부하들에게도 반말하지 않고 존중합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교회에서 장로까지 맡고 있습니다. 술은 냄새조차 못 맡으시는 분이에요. 군인으로선 기갑전의 대가입니다. 군 역사상 최초로 기갑병과 출신으로 대장을 단 겁니다. 육사 37기를 대표해 유일하게 독일 육사로 유학 가서 우등으로 졸업하셨습니다. 독일 총리가 공관으로 초청해 위로해 주고 상까지 내렸습니다. 찬주 형이 사드 배치 총사령관으로 미8군사령관과 함께 성주 현장에 자주 나갔는데, 정부가 바뀌면서 차질을 빚지 않을까 걱정 많이 했습니다. 사드에 애착이 많았어요. 사드 배치되면 북한의 1차 미사일 공격을 막아내고 대대적인 보복을 가할 수 있기 때문에, 찬주 형도 ‘북한이 함부로 모험할 수 없는 억제력을 갖게 된다’고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가끔 형 만나러 가 보면 공관병들과 농담도 주고받고 굉장히 편안하게 해 준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공관병들도 사령관님을 무척 따르고요. 형수님도 좋은 분이세요. 어쩌다 저희 부부와 밖에서 식사 후 공관에 들어갈 때, 항상 ‘○○○○, ○○○’(치킨·햄버거 가게)에 들러서 공관병들에게 줄 음식을 사 가지고 갔습니다. 돼지갈비 먹을 때면 밥 드시면서 한쪽에서 고기를 구워요. 도시락에 싸 가지고 공관병에게 갖다 줍니다. 제가 공관 정원에서 바비큐 한 번 얻어먹는 게 소원이었는데 한 번도 그러질 못했어요. ‘공관병들 힘들게 하지 말고 나가서 먹자’고 했어요. 어느 공관병이 생일일 때는 공관 식구들(전속부관, 운전관, 공관장, 공관병 3명, 가끔 헌병 경호팀) 다 함께 밖에 가서 생일파티를 하고, 공관병이 휴가갈 때는 여비와 부모님 갖다 드릴 선물까지 챙겨 준다고 들었어요. 제 아들도 군대 가서 고생하고 있을 때인데 부럽더라고요. (갑질 의혹이 언론에 불거질 당시) TV 보면서 ‘아, 이거 꿈이지. 꿈이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상상할 수 없는 내용들이 나왔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