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崔炅煥 새누리당 원내대표

“정무장관 부활에 야당도 찬성하게 될 것”

  • 글 : 김성동 월간조선 기자  ksdhan@chosun.com
  • 글 : 백승구 월간조선 기자  eaglebsk@chosun.com
  • 사진 : 서경리 月刊朝鮮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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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서실장 그만둘 때 박근혜 후보가 많이 말렸다”
⊙ “박 대통령과는 여러 경로 통해 소통하고 교감하고 있다”
⊙ “내가 박근혜 정부의 ‘최재오’라고? 이재오 선배가 웃겠다”
⊙ 내년 5월까지는 황우여 대표 체제로 갈 가능성 높다
⊙ ‘안철수 신당’ 성공? 제3의 정당이 성공한 사례 없다

崔炅煥
⊙ 58세.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
⊙ 제22회 행정고시 합격. 유럽부흥개발은행 선임연구원, 대통령 경제수석 보좌관,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17·18·19대 국회의원, 지식경제부 장관, 박근혜 대통령후보 비서실장.
원내대표실은 더웠다. 방의 주인인 새누리당 최경환(崔炅煥) 원내대표는 노타이 차림이었다. 이른 아침인데도 땀이 흘렀지만 인터뷰 내내 에어컨을 켜지 않았다. 인터뷰 당일 아침의 새누리당 원내대표실 풍경이다.
 
  아침부터 이어지는 바쁜 통화를 마치고 기자 일행은 편안한 인상의 그와 마주 앉았다. 경제 일간지 논설위원 경력을 갖고 있는 그에게 언론과 관련된 내용을 첫 질문으로 던졌다.
 
  —박근혜(朴槿惠) 정부 초기다 보니 하루에도 수십 개의 정치 현안들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데 집권 여당 원내 대표로서 요즘 우리 언론 보도가 구미에 맞습니까.
 
  최 원내대표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직접적으로 뭐라 말할 입장은 못 됩니다만, 언론 입장에서는 여전히 여야(與野) 간에 각을 세워 놓고 기사를 쓰는 듯합니다. 여야 정치인들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 무언가 결과를 내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언론에 비치는 부분은 정쟁(政爭)이 대부분입니다.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아요.”
 
  예정에 없던 질문을 이어 갔다.
 
  —경제관료로 시작해서 학자, 언론인, 장관 등 이력이 다양합니다. 어떤 게 가장 마음에 듭니까. 또 가장 자신 있는 분야는 어떤 분야입니까.
 
  “각각의 장단점이 있습니다. 일을 책임감 있게 추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관이 보람이 있고, 국가 주요 현안을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는 국회의원이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정에 없던 질문을 하나 더 던졌다.
 
  —정치에 뛰어든 것을 후회한 적은 없습니까.
 
  “정치판에 뛰어들면서 내건 제 출사표가 뭔지 아세요? ‘경제를 바꾸기 위해 정치판으로 간다’는 거였어요. IMF(국제통화기금) 직후 공직(公職)을 그만둘 무렵 ‘정치판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정치인이 되고 난 지금까지 전문성을 가진 경제관료로서, 학자로서 경제의 기본 틀을 바꾸기 위해 나름 노력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최 원내대표는 김영삼(金泳三) 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 보좌관으로 일한 적이 있다. 그때 경제수석이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인 1998년에 IMF 환란 위기의 책임을 지고 구속됐던 김인호(金仁浩)씨다. 최 원내대표는 1999년 5월 예산청 기획관리실 법무담당관을 마지막으로 관료생활을 접었다.
 
  —김인호 전 경제수석이 쓴 글 가운데 최 대표께서 관료생활을 그만둔 게 자신 때문이 아닌가 하는 회한을 적어 놓은 글도 있더군요.
 
  “행시(行試)에 합격한 후 경제기획원 등 경제부처에서 20년 가까이 일을 하는 동안 나라가 잘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휴일 없이 일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런 와중에 외환위기를 맞게 됐어요. 당시 저는 실무 과장급 공무원이었는데 제가 모셨던 분들이 옥고를 치르더군요. 그동안 일해 온 것에 대한 회의가 없지 않았지요.”
 
  —1987년 미국 위스콘신대학에 2년간 연수를 한 후 다시 2년간 휴직을 했더군요.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학자가 되기 위해서였나요.
 
  “제가 공부에 대한 욕구가 강해요. 그 무렵 우리 경제의 핵심 이슈가 개방문제였어요. 제가 국제경제학을 공부하며 이 문제에 많은 고민을 한 게 사실입니다. 개방을 했을 때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어떻게 국익을 늘려 갈 것인지 그런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했어요. 경제를 실물과 금융, 두 부문으로 나눠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처럼 규제가 강한 나라가 갑자기 문을 활짝 열었을 때 어떻게 될지 경제관료로서 관심이 많았습니다. 당시 학문적으로도 이 부분에 연구가 덜돼 있기도 했고요. 4년여간 공부한 끝에 ‘실물과 금융시장이 왜곡돼 있는 상황에서 금융부문을 열 때 심각한 혼란이 올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내용으로 박사논문을 썼고요.”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귀국해 행정부에 복귀한 최 원내대표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줬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하면서 대책 없이 금융시장을 개방했어요. 그러면서 외국자본이 수시로 드나들었지요.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온 다음 여러 사람에게 ‘왜곡된 실물시장을 먼저 정비한 다음 금융을 개방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큰 낭패를 본다’고 했습니다. 결국 IMF 외환위기를 맞게 됐지요.”
 
 
  김무성 의원과는 갈등 없다
 
2013년 6월 11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최경환 원내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정치를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오해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특별히 해결하는 비법이라도 있습니까.
 
  “세상을 살다 보면 사실이 아닌 일로 구설수에 오릅니다. 정치인으로서 이미지를 생각 안 할 수도 없는데 속상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요. 하지만 진실은 언젠가 밝혀져요. 우스갯소리로 저는 이런 말을 자주 해요. ‘쓸개를 꺼내 냉동고에 보관하고 다닌다’고 말입니다. 지난 대선(大選) 과정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요.”
 
  —작년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 비서실장을 그만둘 때도 오해의 결과였습니까.
 
  “추석 전후로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이 정체되기 시작했고, 결국 역전까지 당했습니다. 의원총회에서 난리가 났죠. ‘후보 빼고 다 바꿔라’는 말이 나왔어요. 선거가 코앞인데 눈앞이 캄캄했어요. 당대표, 원내대표, 사무총장 다 바꾸라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바꿉니까. 결국 제가 나섰지요. 후보 비서실장 자리를 내놓았지요. 그게 계기가 돼 당과 캠프 전체에 변화가 있었고, 마침 김무성(金武星) 선배님도 영입돼 선거총괄본부장을 맡으며 동력이 다시 생겼습니다.”
 
  —비서실장을 그만둔다고 할 때 박근혜 당시 후보가 말리지는 않던가요.
 
  “많이 말렸지요. 하지만 뭔가 변화가 필요한 상황에서 아무 일 없는 것처럼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어요. 당시 박 후보께서 끝까지 허락하지 않으셨는데 제가 결단을 내린 겁니다.”
 
  —작년 대선 과정에서 최대 고비는 언제, 어떤 이슈가 나왔을 때였습니까.
 
  “추석 전후로 나왔던 역사문제를 꼽지 않을 수 없네요. 정말이지 최대 고비였어요. 후보 지지율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으니까요. 다행히 당시 후보께서 현명하게 처리하면서 위기를 잘 넘겼다고 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인사청탁을 아주 싫어한다고 알려졌는데 박 대통령의 입장에서 청탁과 추천은 어떻게 갈리는 것 같습니까.
 
  “공적으로 하는 것은 추천이고, 사적인 이해관계에 기반해 추천하는 것은 청탁으로 보시는 것 같습니다.”
 
  —김무성 의원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의견이 대립된 경우도 있었다고 하던데요.
 
  “그런 적 없어요. 저는 김무성 선배와 정치적 고락을 같이해 왔습니다. 7년 전에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위해 의기투합했던 그런 사이입니다. 갈등은 전혀 없었습니다.”
 
  —10월 재·보선 이후 일각에서는 황우여 대표를 이어 친박계 좌장이라 불리는 김무성 의원 중심으로 당이 재편될 것이란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재·보선 이후 당의 흐름을 예상한다면요.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정치가 바로 내일의 상황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한 점을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0월 재·보선 이후 당이 어떻게 흘러갈지 누가 알겠습니까. 지금 당이 황우여 대표님 체제로 잘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당 재편을 얘기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에는 어느 정도 박근혜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는지요.
 
  “횟수를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고…, 여러 경로를 통해 소통하고 교감하고 있습니다.”
 
 
  황소장관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황우여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최경환 원내대표.
  그는 참 잘 준비된 정치인이었다. 질문에 미꾸라지처럼 잘 빠져나가서가 아니라 확신과 그 확신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역량을 느끼게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굳이 ‘사람’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긴 인터뷰 시간 동안 간혹 그에게서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사람 냄새를 물씬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인인가. 어쨌든 그에게서 나는 ‘사람 냄새’가 고도의 정치적 훈련의 결과일지라도 그에게는 분명히 사람을 불편하지 않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최경환. 이력이 다채롭다. 이력을 다 읽기도 숨가쁘다. 제22회 행정고시 합격, 경제기획원 근무. 공무원 생활 중 미국 위스콘신대로 유학해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편집부국장, 2002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상근경제특보, 17·18·19대 국회의원, 당 수석 정조위원장, 기획재정위 간사, 2007년 한나라당 박근혜 대선 후보 캠프 종합상황실장, 지식경제부 장관, 2012 대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비서실장, 그리고 현재는 새누리당 원내대표. 그의 이력에서 쉽게 읽어 낼 수 있는 것은 그가 경제통이라는 것,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붙는 게 그의 힘의 원천이자 한계일 수도 있는 원조(元祖) 친박(親朴)이라는 것이다.
 
  최 원내대표는 이명박(李明博) 정부 시절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500여 일간 장관을 지내는 동안 그는 17번의 해외출장을 통해 19개국을 방문했다. 대통령과 함께한 출장만도 7차례에 달한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해외출장을 간 것이다. 그는 그 장관 재임 500여 일의 시간을 “오백일간의 ‘일’요일”이라고 표현한다. 쉬는 일요일이 아니라 월, 화, 수, 목, 금, 토, 일요일 없이 일만 하는 ‘일요일’로 500여 일을 보냈다는 뜻이다.
 
  그래서 지경부 직원들이 그에게 붙여 준 별명은 ‘아무도 못말리는 황소장관’이었다고 한다. 그는 지경부 장관 재임 시절처럼 새누리당을 황소처럼 이끌어 갈 수 있을까. 관료야 지시와 통제를 통해 장관의 의지대로 끌어갈 수 있다지만, 여야 관계, 당청 관계는 차치하고라도 개개인이 독립적인 헌법기관인 국회의원 154명(6월 10일 현재 새누리당 의원 수)을 이끌고 나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원내대표 경선에서 예상보다 표차가 적었습니다. 8표 차이였는데 이런 결과를 놓고 원내 장악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도 있던데요.
 
  “원내 장악력은 경선에서 몇 표 차로 이기는가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당선 후 당을 어떻게 꾸려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얼마 안됐지만 지금까지 원내를 이끌어 가는 데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도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최대한 개별 의원님들에게 전화하거나 직접 만나서 의견을 수렴하고, 당내 소속 의원들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해 나간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주요 당직의 친박 독식 논란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친박측은 2007년 친이(親李)계를 향해 ‘당직 독식’이라고 비판했는데요, 지금 보면 당시 친이 측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일을 해 오면서 계파를 따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굳이 따지자면 저와 경선 러닝메이트였던 김기현 정책위의장도 친이계로 분류됐던 분입니다. 이외에도 원내대표단에는 과거 친이계로 분류됐던 분들이 많아요. 이제는 우리 새누리당의 화합과 미래가 중요할 뿐이지 과거는 별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최 원내대표는 지난 5월 27일 현오석(玄旿錫)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향후 5년간 신규 도로·철도 건설에 재정 투입을 제한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공약가계부를 보고하자, 내년 지방선거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또 같은 달 31일 열린 당 워크숍에서 최 원내대표는 유민봉(庾敏鳳) 국정기획수석, 이정현(李貞鉉) 당시 정무수석, 조원동(趙源東) 경제수석, 최순홍 미래전략수석 등을 앞에 두고 “국정 현안에 대해 청와대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일이 없도록 해 달라”고 주문한 일도 있다.
 
  —원박(元朴·원조 친박)이라 ‘거수기’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란 예상도 많았는데 쓴소리도 잘하는 편인가요.
 
  “제가 원내대표 경선에 나가면서 약속한 것 중의 하나가 청와대와의 ‘소통’과 ‘생산적인 쓴소리를 하는 원내대표’였습니다. 그런 약속을 한 이유는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는 청와대와 여당이 공동운명체가 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청와대와 정부가 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에는 언제든지 쓴소리를 할 것입니다.”
 
  —얼마 전 언론에 새누리당 원박과 청와대 신박(新朴)이 정책주도권 싸움을 한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제가 그런 분들(이른바 청와대 신박)과 논쟁을 할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아니다 싶으면 빨리 고쳐 나가야”
 
2013년 5월 17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불기 2557년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요식에 참석한 최 원내대표(오른쪽)와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가 조윤선 여성부 장관(맨 왼쪽)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최근 정무장관제 부활을 제안했는데요. 정무수석만으로는 청와대와 여야 간 소통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가요? 청와대에서는 정부조직법을 개정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실상 반대하고 나섰는데요.
 
  “정무장관제 부활이 좀 이른 감이 없진 않지만 무슨 일이든 ‘이게 아니다’ 싶으면 한시라도 빨리 고쳐 나가야 한다는 것이 제 소신입니다. 현재 청와대 정무수석은 대통령 모시기에도 너무 바빠서 청와대와 정치권, 특히 야당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일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정무장관제 부활에 대해서는 당내에서도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분위기이고, 청와대도 머지않아 제 뜻을 이해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민주당 전병헌(田炳憲) 원내대표는 정무장관제 부활에 대해 “자신들(여권)이 조직을 슬림화한다면서 (특임장관을) 없애 놓고 이제 다시 부활하자는 건 염치없는 소리”라고 비판했다.
 
  —정무장관제 부활에 대해서는 야당의 시선도 곱지만은 않습니다.
 
  “정무장관제 도입은 야당에 오히려 더 필요할 것입니다. 사실 청와대 정무수석과 야당 의원님들이 서로 만나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아마 정무장관제 도입이 구체적으로 추진되면 야당도 공감하고 도와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명박 정부에 몸 담았던 장관으로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평가한다면.
 
  “정말 열심히 일하셨어요. 굉장한 일도 많이 하셨고요. 2008년 하반기 들어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발생했잖아요. 곧바로 금융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때 외국 상황과 비교할 때 우리의 경제성과는 대단했습니다. 이런 부분은 제대로 평가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국내 정치에서 국민의 마음을 사는 데는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가 한 일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봐요. 이런 부분들은 우리 박근혜 정부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해요.”
 
  —정치, 경제, 외교 등 여러 분야에서 볼 때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에서 계승해야 할 것들이 있다면요.
 
  “경제정책 등 여러 측면에서 연속선상에 있다고 봐요. 그러나 경제민주화나 복지, 그리고 남북관계, 대외정책 등에서 현 정부는 다르지요.”
 
  —같은 뿌리의 당이 집권을 했지만 박근혜 정부는 노무현 정부 때 일한 사람을 쓸지언정, 이명박 정부 때 사람은 안 쓰려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철학은 최고의 전문가를 쓴다는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 때 일을 했다고 해서 훌륭한 사람을 쓰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는 거죠.”
 
  —이명박 정부의 4대강사업은 어떻게 봅니까.
 
  “당초 계획이었던 운하건설은 반대했어요. 그러나 4대강사업은 치수사업이고 재해방지사업이자 환경사업이었습니다. 그동안 강에 대한 투자가 없었으니 꼭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4대강사업이 끝난 뒤 변화된 모습을 보고 강 주변 분들은 다들 좋아합니다. 그러나 군사작전처럼 한꺼번에 4대강을 마무리하려다 보니 공사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거예요.”
 
  —이명박 정부 시절 이재오 의원을 빗대 최 원내대표를 ‘최재오’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재오 선배께서 기분 나빠 하실 것 같군요(웃음). 이재오 선배야 솔직히 이명박 대통령과 정치적 동업자 아닙니까. 저는 박근혜 대통령과 그런 관계가 아니에요. 다만 저는 곁눈질을 하지 않고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 말고는 없어요.”
 
  —지난 선거 때 박 대통령께서는 대탕평 인사(人事)를 약속했는데 현재로서는 지지부진한 것 같습니다.
 
  “국민대통합위원회를 두고 그런 말이 나오는데 제가 관여하지 않아 잘 모르겠습니다만 규모를 좀 줄이려는 것 같아요. 규모를 키운다고 해서 잘되는 것도 아니죠. 사람이 너무 많으면 회의도 제대로 안 돼요. 내실 있게 해서 운영을 해 사회적 갈등을 줄여 가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장관 재직 시절을 500일간의 ‘일’요일이라고 표현했는데 직접 만든 말입니까. 그때 황소장관이라는 별명도 얻었더군요.
 
  “장관 시절 17번의 해외출장을 통해 19개국을 방문했습니다. 일만 했지요. 황소장관이라는 말은 직원들이 붙여 준 별명인데요, 제가 경북 농촌 출신인데 투박한 이미지, 그리고 제 지역구인 청도의 소싸움 등이 종합적으로 투영돼 그렇게 불렸습니다.”
 
  —‘청도’ 하면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라는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께서 차를 타고 가시다가 사람들이 마을을 새롭게 가꾸는 걸 보고 ‘저게 바로 새마을운동이다’고 하셨대요. 전국적으로 펼쳐진 새마을운동이 결국 근대화, 산업화를 가져왔죠. 이를 기념해 지금 청도에는 기념공원이 있어요. 박 대통령께서 당시 타고 가던 기차도 기념물로 갖다 놨습니다.”
 
 
  인수위 디자이너 역할은 어불성설
 
2011년 11월 3일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열린 최경환 원내대표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최 원내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항간에는 최 원내대표가 새 정부의 국정방향·내각구성·조직개편까지 담당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디자이너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최 원내대표는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의 1등 공신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습니다. 지난해 박근혜 대선 후보 비서실장직을 사퇴하고 나서 어떤 식으로 대통령을 도왔습니까.
 
  “대선을 두 달여 남겨 놓은 당시에 몇몇 분들의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지지율은 하락하고 우리당이 상당한 위기에 봉착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불만을 잠재우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희생을 하고 책임을 져야 했죠. 그래서 제가 총대를 메고 비서실장직을 던지게 된 것입니다. 그 후로 다행히 여론이 잠잠해졌고 우리 당이 끝내 승리했습니다. 제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을 어떤 식으로 도왔느냐는 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선 승리를 위해 제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했을 뿐입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사실상 디자인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디자이너란 표현은 어불성설입니다.”
 
  —박근혜 정부 100일간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후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유력지 여론조사 결과 ‘인사’ 정책에 대해 국민들은 큰 실망감을 드러냈습니다. 김용준 총리지명자 사퇴부터 윤창중 대변인 경질에 이르기까지 잡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밀봉인사’ ‘불통’의 이미지로 고착화돼 가는 대통령의 인사정책에 대한 이견은 없는지요. 또 어떤 식으로 인사정책을 쇄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요.
 
  “인사에 있어서 ‘보안 중시’는 성격상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보안을 중시하더라도 인사 결과가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데, 현 정부가 지금까지 그렇지 못한 점은 유감입니다. 새정부 출범 후 많은 사람이 낙마하고 특히 ‘윤창중 사건’을 보면서 박 대통령도 많은 것을 느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적절한 개선이 이뤄질 거예요. 저는 여러 차례 인사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해 왔습니다. 향후 인사 추천 경로를 다양화해서 인재풀을 넓히고 인재 중에서 주변 평판을 들어서 좁혀 나가야 합니다. 이후 세밀한 검증을 통해 잘 알려지지 않은 약점이 있는지를 검증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인사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인사청문회의 실질성을 제고하겠다는 말을 했는데요.
 
  “현재 인사청문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후보자의 자질이나 능력 검증은 실종되고, 도덕성 검증이라는 명목으로 흠집내기 위주의 까발리기 식에 매몰돼 있다는 점입니다.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장에 앉기도 전에 이미 범죄자가 되고 파렴치범으로 낙인찍히게 되는 것이 현재 인사청문회 실정입니다. 언론에 제기된 많은 의혹들이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많은데도 정정보도나 사과도 없습니다. 주요 선진국 중 인사청문회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 유일한데, 미국은 200여 년 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정착시켰습니다. 현재 인사청문회 제도하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개선돼야 할 점은 개인의 명예와 사생활 보호라고 생각합니다. 인사청문회법 제14조와 제15조를 보면 개인의 명예와 사생활을 부당하게 침해할 우려가 명백한 경우 등에는 비공개가 가능하며, 후보자가 위원회에 비공개를 요구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실태는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제도적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계선 위에 핀 꽃, 창조 경제
 
지경부 장관 시절이던 2010년 6월 15일 청와대에서 최 원내대표가 타네르 이을드즈 터키 에너지부 장관을 만나 터키 시놉 지역 원전협력 협정서에 서명한 후 문서를 교환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의한 경제활성화입니다. 창조경제 구현과 갑을(甲乙) 상생의 경제민주화가 해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를 ‘경계선 위에 핀 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쉽고도 어려운 설명인데요. 경제전문가인 대표님이 설명해 주시죠.
 
  “다양한 의미가 있다는 것 자체가 창조경제의 취지라고 봐요. 박 대통령께서는 ‘경계선 위에 핀 꽃’이라 말씀하셨는데, 창의적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고 모방을 뛰어넘어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 아닌가요. 창조경제라는 ‘꽃’이 피려면 혁신과 규제철폐, 융합형 인재 등이 필요해요. 과거 산업화 시대의 중화학공업 육성 등 국가 주도형 산업육성 정책에서 전환해 개인의 창의력을 핵심가치로 삼아, 아이디어나 상상력, 산업과 산업 간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고부가가치와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것이 창조경제의 핵심 개념입니다.”
 
  —좀 전에 갑을 상생의 경제 민주화를 거론했는데 남양유업 사태 이후, ‘갑을 공방’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야당(민주당)은 ‘을(乙)을 위한 정당’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쇄신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은 하청업체, 중소기업, 각종 하도급 문제에 대해 어떠한 방식으로 접근을 시도하고 있습니까.
 
  “우리 새누리당은 경제를 살리는 경제민주화를 주장해 왔습니다. 경제를 살리자는 말이 갑과 을, 어느 한쪽을 편들자는 의미는 아닙니다. 대기업이 부도나면 협력업체들도 줄도산하게 되고, 또 협력업체들이 부실하면 제품을 공급받는 대기업도 함께 부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업체와 협력업체 모두가 상생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다만 지금까지 대기업들은 과도하게 협력업체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같은 담보를 제공해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금리에 차별이 있습니다. 이러한 점은 당연히 개선돼야 합니다.”
 
  —갑을 관계 문제가 경제민주화 논란을 증폭시키면서 기업을 더 힘들게 만든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우리 새누리당은 기업을 옥죄고 투자를 꺼리게 하는 경제민주화 입법에는 반대하고 있습니다. 갑을의 상생으로 같이 더 잘살아야지 하향평준화를 만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최근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과도한 입법화 움직임에 따라 기업들이 투자의욕을 잃고 한국을 떠나려 하고 있다는 말들을 많이 듣는데, 지구촌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는 기업들이 한국을 떠나면 떠날수록 우리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경제는 활력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갑을 관계가 또 다른 편 가르기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저는 이런 갑을 관계를 서로 대립관계나 갈등관계로 접근해서 풀려는 시도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약자는 당연히 국가가 보호해야 하지만, 사회적 강자라고 해서 지나치게 무조건적으로 희생을 강요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갑을 모두가 공존하고 상생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우리의 헌법가치와도 맞는 것입니다.”
 
 
  수도권 광역단체장 여당이 승리한 적 별로 없지만…
 
6월 임시국회 첫날인 지난 3일 국회에서 최 원내대표가 김한길 민주당대표를 찾아가 인사하고 있다.
  —10월 30일 실시되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의 판이 예상보다 작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행이지요?
 
  “지금까지의 재판진행 과정을 보면 10월 재·보선 지역이 10곳 미만이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재·보선 지역이 현재 새누리당 의원 지역구가 많고 역대 재·보선 결과가 집권당에 유리한 경우를 보기 힘들어 부담스러운 면도 있지만 결코 비관적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10월 재·보선 판이 작아지면서 대신 내년 지방선거의 무게감이 커졌는데요. 아직 시간이 좀 있기는 하지만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광역단체장 판세를 어떻게 예상합니까.
 
  “1995년 자치단체장 직선제 도입 이후 지금까지 실시된 수도권 광역단체장 선거결과를 보면 집권당이 승리한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아마 내년 지자체 선거에서도 새누리당으로서는 쉽지 않은 선거가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새누리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약속한 공약들을 차질 없이 이행하고,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성화에 전력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면 내년 지자체 선거에서도 국민들께서 우리 새누리당을 변함없이 지지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최근 홍문종(洪文鐘) 사무총장은 “현재로선 박원순 서울시장 인기를 추월할 만한 사람이 마땅치 않다”고 이야기했는데 일찌감치 사실상 패배를 인정한 것으로 들립니다. 박 시장의 대항마가 새누리당에는 없는 겁니까.
 
  “홍 총장의 말씀은 내년 지자체 선거가 그만큼 쉽지 않을 것이란 점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겁니다. 우리 새누리당에는 많은 인재가 있습니다만 지금 이 자리에서 특정 인물을 거론하기에는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김황식 전 총리나 안대희 전 대법관 같은 분들을 모셔서라도 승리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김황식 전 총리나 안대희 전 대법관 같은 분은 자질도 훌륭하시고 국민들의 사랑도 많이 받으시는 분들입니다. 그분들뿐만 아니라 우리 새누리당의 철학과 정체성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가능한 한 외연을 넓히고 많은 분들을 모셔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홍준표(洪準杓) 경남도지사의 진주의료원 폐업 강행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갖고 있습니까.
 
  “정말 안타까운 문제입니다. 이번 6월 임시국회에서 공공의료 전반에 관한 실태조사와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국정조사를 실시하기로 돼 있으니 국정조사와 더불어 실질적인 개선방안을 논의할 것입니다.”
 
  —통상임금 문제, 탈북자 북송 사건, 공공의료원 폐지 등과 같은 현안들에 대해 당 차원에서의 접근 및 활동이 미미하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지자체 및 담당기관과의 협력은커녕 따로 놀고 있다는 국민들의 정서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현안들에 대해 당 차원에서의 활동은 활발합니다.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당정 협의를 통해 필요한 주문을 해 오고 있습니다. 탈북자 북송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번에 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관련기관들의 업무추진 체제를 재정비할 것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국민들께서도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저희 새누리당의 이러한 노력들을 알아주실 겁니다.”
 
 
  지금까지 허상만 보여준 안철수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 원내대표가 4월 재·보궐 선거로 국회에 다시 입성한 김무성 의원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안철수(安哲秀) 의원이 신당을 창당할 수 있을까요.
 
  “안철수 의원이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을 설립한 점, 국회의원이 된 후 기자들이 ‘측근들이 10월 재·보선에 출마하느냐’고 묻자 ‘사람을 구하게 되면 도전할 수 있다’라고 한 점 등을 고려하면 신당 창당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언제쯤 창당할 것으로 예상하는지요.
 
  “제 생각엔 올 10월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본인의 측근들을 선거에 투입해 본 후 어느 정도 성과를 얻으면 이를 중심으로 세를 규합해서 내년 지자체 선거 전까지 신당을 창당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성공할까요.
 
  “대한민국의 정당사를 보면 제3의 정당이 성공한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안철수 의원이 독자세력화하더라도 앞으로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실패할 것으로 예상하나요.
 
  “안철수와 ‘안철수 현상’은 구분해야 합니다. ‘안철수 현상’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를 세력화하려면 안철수라는 인물이 현상에만 기댈 게 아니라 리더로서의 내공과 역량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허상만 보였지 구체적인 게 없었습니다. 험난한 길이 될 것 같습니다.”
 
  —기초단체장 정당공천 폐지에 대해 어떤 생각입니까.
 
  “그것이 정치개혁을 위한 절대 선(善)은 아니며, 유지와 폐지 모두 일장일단이 있는 제도이고 찬반여론도 팽팽합니다. 대선 공약이지만 어떤 정당만 하고, 어떤 정당은 안 하면 맞지 않습니다. 여야 합의가 전제돼야 합니다. 또 여성계 반발 등이 있어 해법을 잘 찾아야 합니다.”
 
  정당공천 폐지는 여야가 작년 대선에서 함께 공약했던 사안으로 현재 국회 정치쇄신특위에서 본격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정당공천 폐지는 위헌 소지가 커 그대로 추진하기 곤란하다”는 지적이 정치권과 학계에서 잇따라 제기돼 논란이 커지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2003년 당시 정당공천이 금지돼 있던 기초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출마자가 정당의 추천이나 지지를 표현하지 못하게 한 선거법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사실을 정치권에서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정당공천제 폐지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말은 저도 들었습니다. 국회 정치쇄신특위에서도 위헌 문제 때문에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요. 헌법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만큼 국회 정치쇄신특위에서 면밀한 검토 후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릴 것입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법 위반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서도 논란이 있은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현재 검찰에서 조사 중인 사건에 대해 여당 원내대표가 왈가왈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원 전 원장의 정치개입 여부는 검찰이나 법원에서 판단할 문제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전 정권과 차별화하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역대 정부들이 국민들로부터 가장 많은 비난을 받은 주 대상이 ‘대통령 측근 비리’와 ‘인사문제’였습니다. 이러한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박근혜 정부는 먼저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그다음으로 투명하고 공정한 인사를 통해 국민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정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능환 전 대법관의 공직 은퇴 이후 편의점 운영이 미담(美談)이 돼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최 원내대표께서도 정치를 그만둔 후 상상하는 자신의 모습이 있습니까.
 
  “아직 한창 때라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웃음) 대한민국이 지금보다 조금 더 풍요로운 국가가 되도록 뒤에서 지원하는 역할, 소외계층에 대한 봉사활동, 고향에서 조용히 낚시하는 삶, 제가 경험한 정치·경제 등을 후학에게 전하는 삶 등 꿈꾸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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