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 친구들, “서방 언론 믿지 마!” vs “정부 통제 언론 믿지 마!”
⊙ 《NYT》 등, 국외에서는 ‘서방 언론’, 국내에서는 ‘주류 언론’이라고 비난받아
⊙ 이란 사태, 시리아 내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대해 서구 언론과는 다른 내러티브 확산
⊙ 스티브 배넌 등 문화좌파적인 미국 내 주류 언론보다 러시아 언론 더 신뢰
⊙ 냉전 시대 이후 서구 언론에 대한 신뢰, 미국·이라크 전쟁 등 거치면서 무너져
⊙ 스마트폰, AI의 등장은 ‘탈진실의 시대’ 촉진
임명묵
1994년생.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졸업 / 現 서울대 대학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재학 중. 《조선일보》 칼럼니스트 / 저서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 《K를 생각한다》
⊙ 《NYT》 등, 국외에서는 ‘서방 언론’, 국내에서는 ‘주류 언론’이라고 비난받아
⊙ 이란 사태, 시리아 내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대해 서구 언론과는 다른 내러티브 확산
⊙ 스티브 배넌 등 문화좌파적인 미국 내 주류 언론보다 러시아 언론 더 신뢰
⊙ 냉전 시대 이후 서구 언론에 대한 신뢰, 미국·이라크 전쟁 등 거치면서 무너져
⊙ 스마트폰, AI의 등장은 ‘탈진실의 시대’ 촉진
임명묵
1994년생.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졸업 / 現 서울대 대학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재학 중. 《조선일보》 칼럼니스트 / 저서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 《K를 생각한다》

- 지난 2월 1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는 이란 정부를 지지하는 시위대가 반미·반이스라엘 집회를 열었다. 사진=AP/뉴시스
2024년에 이란에 체류하며 많은 친구를 사귄 필자 역시, 이란 각지의 친구들에게 안전을 물어봤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다. 필자는 시위의 이정표였던 1월 8일 이래로 거의 3주 만에 정부가 인터넷 차단을 완화한 뒤에야 그들과 대화를 다시 나눌 수 있었다.
시위와 정부의 유혈 진압을 바라보는 필자의 이란 친구들의 시각은 서로 달랐다. 물론 인터넷 감시 우려 때문이기도 했다. 많은 이는 정부의 잔혹한 진압을 규탄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친(親)정부 성향의 친구들은 다른 서사(敍事)를 갖고 있었다. ‘무장 폭도가 테러 행위를 했고, 경찰을 공격하자 준(準)전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게 그들의 요지였다. 그러면서 필자에게 꼭 이 말을 덧붙였다. “서방 언론을 믿지 마!” 물론, 반정부 성향의 친구들은 다른 말을 했다. “정부가 통제하는 언론을 믿지 마!”
‘내러티브 전쟁’
실제 이란의 상황은 언론과 결부된 ‘내러티브 전쟁’이 되었다. 물론 한국에서도 정치 성향에 따른 언론 불신은 매우 심하다. 좌파는 엘리트의 불의(不義)를 비호한다고 ‘우파 언론’을 비난하고, 우파는 진영에 따라 선택적 분노와 침묵을 보인다고 ‘좌파 언론’을 비난한다. 게다가 전통적인 ‘레거시 미디어’의 중심성이 해체되고 온라인 대안(代案) 미디어가 발전하면서, ‘기성(旣成) 언론 전체가 사기’라는 주장도 이제는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는 한국의 얘기고, 이란에서 정치적으로 분열된 언론 환경은 심각하게 문제가 된다. 그 이유는 이란의 위기가 국제적인 사안이라는 데 있다. 이란은 중동(中東)에서 오랜 기간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항하며 지정학적(地政學的) 충돌을 빚어온 역사가 있다. 이란 문제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는 서방에서는 이슬람 공화국 체제하의 인권 탄압, 부패, 국외 친이란 무장 단체 지원을 일관되게 비판해 왔으며, 이에 대한 많은 탐사 보도가 쓰였다.
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을 제국주의라고 비난하는 좌파 진영, 혹은 역시 미국과 대립하는 중국, 러시아 등에서는 이란 정부의 입장을 비호한다. 이슬람 공화국 정부를 향한 미국의 오랜 압박, 미국 행정부를 향한 이스라엘 로비가 이란의 국내 인권 탄압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이며, 이란은 외부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방어하기 위해 주권을 행사할 뿐이라는 논리가 그것이다.
복수의 진실이 경쟁하는 시대
지난 1월 초중반, 미국과 유럽 각국에서는 이란 정부의 강경한 시위 진압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1월 11일 독일 베를린에서의 시위 모습. 사진=AP/뉴시스실제 1월 시위와 유혈 진압에 대해서도 서사는 완벽하게 둘로 갈렸다. 특히 X(구 트위터), 유튜브, 페이스북 등 온라인 미디어 공간이 그러했다. 《뉴욕타임스》, BBC, 《가디언》과 같은 저명한 영어권 미디어, 《이란인터내셔널》과 같은 재외 이란계 언론은 잔혹한 시위 진압을 격렬하게 규탄하며 궁지에 몰린 이란 정부가 끔찍한 ‘발악’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대로 이란국영방송국은 시위대가 폭동을 일으켰고, 모사드 간첩이나 쿠르드 분리주의 단체 등이 내부에서 암약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이란 정부의 공식 입장은 이란 정부와 연계가 있다는 의혹이 있는 주요 SNS 계정으로, 또 러시아의 준(準)국영언론인 RT와 같은 비서방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었다.
이렇게 서로 합의가 되지 않는, 정치적으로 반목하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난립하자 진실이 무엇인지는 빠르게 온라인 공간의 소음에 묻혔다. 결국 1월 말이 되었을 때 상황은 중동에 항공모함을 파견한 미국과 미군기지를 향해 미사일을 겨누는 이란이 대치 속에서 협상을 모색하는 전통적인 구도로 돌아왔다.
그러나 복수(複數)의 ‘진실’이 동시에 경쟁하고, 이 결과 관찰자들이 사건의 실체를 포착하지 못하는 현상은 이번 이란 사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가까운 사례만 보아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양측의 서사는 극단적으로 대립했다.
이러한 대립은 이제 미디어 시대 정치적 갈등의 일반적인 풍경이 되었고, ‘내러티브 전쟁’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이 과정에서 저널리즘이 정치와 권력을 넘어 진실을 추구하고 여론에 정의를 촉구한다는 ‘신화(神話)’는 점차 힘을 잃었고, 언론은 특정 권력에 복무할 뿐이며 반대편은 ‘가짜뉴스’만을 생산하는 세력이라는 인식이 전 세계에 공기처럼 퍼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시대를 맞게 되었을까.
“메인함을 기억하라!”
메인호가 의문의 침몰을 하자 미국의 옐로 저널들은 선정 보도를 하며 국민을 스페인과의 전쟁으로 몰고 갔다.대중 언론은 19세기 서양에서 산업화와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상인, 부르주아를 시작으로 글을 읽을 수 있는 인구가 계속 확대되고 있었고, 사람들은 여가 시간을 보내고 주변인과 토론할 공통의 주제를 찾는 목적으로 신문을 읽었다. 신문을 읽는 독자층이 넓어지면서 언론은 거대한 자본으로 발전했다.
한편 언론을 통해 더 넓은 세계의 존재, 정치의 실제 역학을 알게 된 사람들은 민주정치에 참여하는 시민이자 국가에 충성하는 국민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20세기에는 노동자 계층까지 납세와 군 의무 복무에 참여하면서 진정한 대중 사회가 열렸고, 이들은 여론과 선거를 통해서 정부를 압박할 능력을 확보했다. 달리 말하면, 국가가 특정 정책을 추진하고자 할 때 여론을 설득하는 전례 없는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는 뜻이다.
특히 막대한 재정과 병력 사용을 필요로 하는 전쟁과 같은 막중한 결정을 할 때 여론을 통해 정당성을 획득하는 기술은 점차 중요해졌다. 1898년 2월 15일 미국과 스페인이 쿠바를 놓고 벌인 미서전쟁(美西戰爭)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쿠바 아바나 항에 파견된 미국 전함 메인함이 침몰되고 승조원 261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있었다. 당시 언론은 스페인의 소행일 가능성을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이에 미국 여론은 “메인함을 기억하라!”는 구호와 함께 격앙되며 전쟁이 개시되었다.
사실 메인함 침몰의 진상은 끝내 확정되지 않았지만, 전쟁의 결과는 분명했다. 미국은 승리를 통해 필리핀과 푸에르토리코 등 스페인의 해외 영토를 차지하며 제국적 팽창의 길로 들어섰다. 이 사건은 이후 언론 보도와 국가 권력이 어떻게 상호 작용하며 전쟁의 정당성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준 사례로 반복적으로 소환되어 왔다.
자꾸 뒤집히는 진실
한편 강대국들은 자국 언론을 통해 서사를 생산하며 ‘진실’을 둘러싼 경쟁을 벌였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은 신문·라디오·영화 같은 대중매체를 동원해 자신들이 영미 제국주의와 소련 공산주의로부터 위협받는 ‘피해자’라는 이미지를 강조하며 선전을 전개했다. 반면 소련은 《프라우》와 같은 기관지를 통해 영미 자본가들이 파시스트와 결탁해 자신들을 포위하고 있다고 주장하다가, 1939년 독일과 불가침(不可侵)조약을 체결한 뒤에는 독일에 대한 비난의 강도를 조절했다. 이후 1941년 독일의 침공과 전황(戰況)의 변화 속에서 미국과의 협력과 ‘연합국의 대의(大義)’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다시 논조를 전환했다. 연합국 역시 히틀러와 싸우기 위해 소련과 손잡을 수밖에 없었기에, 과거 ‘적색 괴물’로 묘사하던 스탈린을 카리스마적 전시 지도자로 재구성해 그렸다.
이처럼 권력이 대중매체를 통해 여론을 조직하는 과정에서 ‘진실’이 쉽게 매몰되는 광경은 도덕적 냉소(冷笑)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조지 오웰은 《1984》에서 ‘삼대 초강대국’이 각자의 선전 매체를 바탕으로 여론을 조작하는 사회를 그리며 이러한 시대상을 포착하고 냉전(冷戰)을 내다보았다.
냉전 시대의 언론 전쟁
하지만 영미권과 프랑스, 서독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서방 언론’은 냉전 시대에 상대적으로 더 진실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공산당의 엄격한 이념 통제 아래 국가가 취재와 보도의 범위를 강하게 제한했던 동구권과 달리, 서방 언론에는 제도적으로 언론의 자유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다원성이 보장된 서방 사회에서는 경쟁하는 복수의 언론이 각자 독립적인 논조를 형성했고, 좌우 지식인들 사이의 논쟁 역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물론 특정 국면에서는 공산권 언론이 진실을 말하고 서방 언론이 이를 외면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다원적(多元的) 보도 환경 속에서 비판과 검증이 가능하다는 점은 매체 소비자들에게 압도적인 차이로 인식되었다. 특히 미국·베트남 전쟁 과정에서 미군의 민간인 학살, CIA의 비밀 작전을 목숨을 걸고 탐사 보도해 반전(反戰) 여론을 촉발한 기자들, 혹은 리처드 닉슨의 스캔들을 폭로한 기자들의 존재는, 미국이 소련과 같은 ‘전체주의’ 사회가 아니라 권력 비판이 가능한 저널리즘의 사회라는 믿음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소련 시민들 사이에서는 “《프라우다》(진실)에는 이즈베스치야(뉴스)가 없고, 《이즈베스치야》(뉴스)에는 프라우다(진실)가 없다”는 냉소적인 농담이 널리 퍼지기도 했다. 많은 이가 단파 라디오를 통해 BBC나 미국의 소리 같은 서방 언론을 접하며, 이를 상대적으로 더 객관적인 정보 창구로 인식했다. 이러한 관영 언론에 대한 불신과 서방 언론을 향한 신뢰는 소련 해체로 이어지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또한 탈(脫)식민화로 세계 각지에서 신생 독립국이 등장하며 ‘국제 여론’의 지지를 얻는 게 중요해진 상황에서, 서방 언론에 부여된 신뢰는 미국의 또 다른 소프트파워를 형성했다.
1990년대의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 시기에, 미국은 미디어 영역에서도 패권(覇權)의 정점에 올랐다. TV 시대에 언론은 더욱 생생한 자료를 대중에게 전달했다. 전 세계로 파견된 특파원들은 분쟁 지역을 오가며 귀중한 현장 취재를 수행했고, 반군(反軍) 지도자를 인터뷰했으며, 때로는 정보기구와 협력해 반미(反美) 국가 내부의 사정을 보도하기도 했다.
CNN 대 알자지라
서구 언론을 대표하는 CNN과 그에 대한 대안 언론으로 등장한 알자지라.이러한 보도는 미국 시민들뿐 아니라 위성통신과 인터넷, 세계 각지의 언론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었고, 이 결과 이와 같은 언론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 국가들은 많은 국제 뉴스를 서방 언론 네트워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걸프 전쟁 당시 CNN의 실시간 보도는 미국의 군사력과 그 대의를 전파하는 언론의 힘이 결합한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미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 역시 존재했지만, 이러한 비판조차도 서방 언론의 장 안에서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미국이 소련, 독일, 일본과 진실 공방을 벌이던 시대는 가고 무국적(無國籍)의 ‘글로벌 언론’이 보편적인 공론장을 열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1세기에는 지구적 차원에서 의제를 설정하고 서사를 만들어 온 서방 언론 자체가 하나의 ‘권력’이라는 반발이 힘을 얻게 된다. 2003년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살상무기(WMD)를 은닉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이라크를 침공했다.
미국·이라크 전쟁은 그야말로 참사였다. 미군의 폭격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고, 이라크인들이 게릴라전에 나서 적지 않은 미군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추산이 어려울 정도의 천문학적 전비가 소모되었다.
그러나 전쟁의 핵심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더구나 전쟁 직전 침공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보도되었던, 망명 이라크인들이 제기한 사담 후세인 정권의 각종 악행(惡行) 중 상당 부분이 선정성을 노린 허위 정보였음이 뒤늦게 드러났다. 이로 인해 미국 안팎에서는 언론이 객관성과 진실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제국의 전략과 이익에 복무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게 제기되었다.
‘비서구(非西歐)의 목소리’를 내세운 대안 미디어의 도전도 이 시기에 본격화되었다. 주인공은 카타르의 후원을 받는 알자지라 방송이었다. 카타르는 막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아랍 세계에서 소프트파워를 확보하겠다는 대전략 아래, 알자지라를 통해 중동 전역에 촘촘한 취재·보도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아랍어와 영어 방송을 병행했다.
알자지라가 출범 당시 BBC 아랍 서비스 인력을 대거 영입한 점을 고려하면 목표는 분명했다. 서방 언론의 취재·보도 방법을 활용하되 ‘아랍의 목소리’를 표방함으로써, 카타르의 외교적 입지를 공고히 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실제로 알자지라는 미국·이라크 전쟁 이전부터 아랍 권위주의 정권의 부패와 인권 탄압을 고발하는 보도로 중동 내에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었다. 미국·이라크 전쟁은 알자지라의 명성을 세계적 차원으로 확대시켰다. 알자지라는 이라크 현장에서 미군 폭격의 참혹함을 전하고, 전쟁 명분의 허구성을 짚는 보도를 연속적으로 내보냈다.
알자지라의 부상(浮上)은 1990년대에 공고해 보이던 ‘서방 언론의 객관성’이라는 명성이 서방식 저널리즘 문법을 차용(借用)한 대안 언론에 의해 충분히 도전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알자지라 모델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아라비야, 튀르키예의 TRT, 러시아의 RT 등 인접국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탈진실의 시대’
우크라이나를 나치로 모는 유튜브 영상물. 사진=유튜브 캡처한편 2010년대에 들어 기술 발전이 가속화되면서, 주류 언론이 정보와 서사를 독점하던 구조는 사실상 붕괴됐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누구나 영상을 촬영하고, 공유하며, 자신의 주장을 온라인에 게시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디어 소비자들은 기성 언론의 편집을 거친 보도보다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원한다며 인터넷 기반의 대안 미디어를 찾아 나섰다.
이러한 변화는 초기에는 ‘미디어의 민주화’로 긍정적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곧 정보의 홍수 속에서 소비자들이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선택적으로 접하며 기존의 신념을 강화하는 반향실(反響室) 효과가 나타났고, 여론의 공통 기반이 해체되며 시민들이 수많은 집단으로 분절되는 ‘필터 버블’ 현상도 두드러졌다.
이 결과 진실이 무엇인지조차 합의하기 어려운 이른바 ‘탈진실(脫眞實) 시대’가 도래했다. 미디어의 파편화는 미국·이라크 전쟁 이후 흔들린 서방 언론의 신뢰, 그리고 각국 정부의 입장을 반영하는 언론 생태계와 결합되며, 국제정치의 영역에서도 탈진실을 확산시켰다.
2013년 격화된 시리아 내전과 2014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돈바스 전쟁은 현대적 형태의 ‘내러티브 전쟁’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사건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시리아와 우크라이나에서는 시민들이 직접 촬영한 영상이 X, 페이스북, 유튜브에 업로드되었고, 곧 영어 자막이 덧붙여져 빠르게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서방 언론이 제시한 메시지는 비교적 분명했다. 시리아에서는 아사드의 바트당 독재 정권이 시민들의 저항을 잔혹하게 진압하고 있었고, 우크라이나에서는 러시아가 주권 국가를 위협하며 분리주의 세력을 후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SNS와 비서방 언론을 통해 유통된 서사는 정반대였다. 아사드 정부는 세속주의(世俗主義)를 수호하기 위해 ‘이슬람 테러리스트’와 싸우고 있었으며, 우크라이나의 유로마이단은 시민 혁명이 아니라 극우(極右) 신나치 세력에 의한 쿠데타라는 주장이었다.
‘주류 언론’에 대한 반발
가짜뉴스와 사실,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정보의 홍수 속에서, 여기에 지정학적 이해관계까지 결합하자 평범한 개인이 무엇이 진실인지 끝까지 가려내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사람들은 각자의 알고리듬이 제공하는 정보 흐름 속에서 기존의 편견을 재생산했다. 이 결과 1990년대에 형성되었던 ‘글로벌 공론장’은 사실상 해체되었다.
게다가 언론에 대한 신뢰는 서방 내부에서도 이미 위기에 처하고 있었다. 2010년대에 접어들며 미국과 유럽에서는 기성 엘리트가 대중을 소외시켜 왔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이는 포퓰리즘 정서와 결합해 강력한 정치동력으로 발전했다.
비서방 국가들이 《뉴욕타임스》, CNN, 《가디언》, BBC를 통칭해 ‘서방 언론’이라 불렀다면, 포퓰리즘 세력은 이들을 ‘주류 언론(MSM)’이라 지칭했다. 주류 언론의 문화 엘리트가 정치·경제 권력 엘리트와 결탁해 진실을 가리고 대중을 조종하고 있다는 반발도 거세게 제기되었다.
특히 포퓰리즘 우파 진영에서는 주류 언론이 지나치게 좌편향되었다는 불만이 집중적으로 분출되었다. 이러한 인식 역시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다. 주류 언론이 다문화주의나 페미니즘 등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PC)’으로 불리는 문화적 자유주의 의제에 비교적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이에 문제를 제기하는 문화적 보수주의자들의 목소리는 ‘무지하다’거나 ‘차별적’이라는 낙인을 찍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류 언론의 문화좌파적 논조에 모욕감을 느낀 포퓰리즘 우파가 대안 언론을 만들고 독자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이들은 SNS와 유튜브를 중심으로 자신들만의 미디어 생태계를 형성하며, 고유한 포퓰리즘 우파 서사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혐오 표현을 이유로 한 플랫폼 규제에 반발해 일부는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대안 매체를 육성하기도 했는데, 스티브 배넌이 주도적으로 관여한 브라이트바트는 이러한 흐름을 대표하는 사례였다.
스티브 배넌의 경우
트럼프의 책사 스티브 배넌. 사진=AP/연합뉴스한편 미국과 서유럽의 대안 우파 진영 내부에서는 ‘주류 언론’의 문화좌파적 논조를 받아들이느니, 차라리 ‘더 우파적인’ 비서방 언론을 신뢰하는 편이 낫다는 주장도 점차 힘을 얻었다.
러시아의 친(親)푸틴 성향 사상가 알렉산드르 두긴과 교류하는 것으로 알려진 스티브 배넌은 이러한 흐름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이들은 RT와 스푸트니크로 대표되는 러시아의 준관영 언론 보도를 공유하며, 오히려 그곳에 진실이 담겨 있다고 서방의 온라인 공간에 확산시켰다. 미국 언론이 보도한 러시아의 부패 관련 뉴스가 러시아의 반정부 성향 시민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듯이, 미국의 문화좌파를 비판하는 러시아 언론의 논설 역시 미국 내 포퓰리즘 진영에서 충분한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미국 민주당은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과정에 러시아 정부의 해외 미디어 공작, 특히 인공지능을 활용한 온라인 봇(bot) 활동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이른바 ‘러시아게이트’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를 명확히 입증할 결정적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물론 탈진실의 동학(動學)은 다시 작동하여, 미국 사회는 ‘러시아게이트’를 둘러싸고 믿는 이들과 믿지 않는 이들로 빠르게 양분되었다.
망가진 ‘지구촌 공론장’
이후 사태의 전개는 이미 우리가 보고 있는 바와 같다.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2026년 이란 위기, 그리고 최근 추가로 공개된 ‘엡스타인 파일’에 이르기까지, 각국의 언론은 저마다 편집한 서사를 유통하고 있다. 명문대 교수부터 인터넷 방송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배경의 ‘온라인 논객’들은 X와 유튜브 같은 플랫폼에 모여, 자신들의 말을 신뢰하는 팔로워들에게 각자의 ‘분석’을 제공한다.
이러한 서사들은 때로 서로 충돌한다. 인공지능 번역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온라인 공간에서 언어 장벽이 사실상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새천년 초기에 기대되었던 ‘지구촌 공론장’을 형성하기는커녕, 오히려 경쟁하는 서사들 사이의 봉합 불가능한 차이만을 증폭시키고 있다.
오늘날 글로벌 공론장에 가장 근접한 공간으로 여겨지는 X를 들여다보면, ‘인도계 봇’ ‘러시아 트롤’ ‘서방 언론 추종자’를 서로 낙인찍으며 비난하는 목소리가 넘쳐나는 풍경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미디어 환경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간명하다.
첫째, ‘탈진실의 시대’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는 점이다. 1990년대처럼 객관성의 신화가 자연스럽게 작동하던 미디어 환경은 이미 막을 내렸다. ‘내러티브 전쟁’의 시대에는 어떤 사안이든 서로 경합하는 수많은 서사를 비교·분석하고, 그 속에서 사실과 이해관계를 가려내는 고도의 해석 능력이 요구된다. 알고리듬이 지배하는 환경 속에서 특정한 의도를 지닌 보도에 무비판적으로 휘둘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방 언론’을 그대로 복사해 소비하는 태도도, 그 반작용으로 ‘대안 언론’만이 진실을 담고 있다고 믿는 태도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상식과 지성에 기반한 독립적 사고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진 시점이다.
‘한국의 목소리’는 어디에?
둘째, ‘내러티브 전쟁’의 시대에 한국의 내러티브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알자지라의 사례 이후 RT, TRT, SCMP와 같은 후발주자들이 보여주었듯, 이미 각국은 CNN, BBC, 《르몽드》 《도이체벨레》와는 별도의 미디어 플랫폼을 구축해 자국의 서사를 글로벌 공론장에 확산시키는 전략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서사들의 영향을 일상적으로 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한국만의 관점과 서사가 세계 무대에서 작동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극심한 언론 불신 속에서 국내 정치조차 외신 보도가 더 객관적일 것이라 여기는 인식이 이를 방증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반서방 진영에서 존재감을 확대하는 북한, 대만 통일을 국가적 목표로 내세우는 중국, 그리고 이미 글로벌 공론장에서 강력한 발언권을 지닌 일본 사이에서 한국의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의 목소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극심한 정치적 분열을 넘어, 좌우가 최소한의 국익(國益)에 대한 공통분모를 형성하고 그 바탕 위에서 글로벌 공론장에서 작동할 수 있는 한국의 ‘내러티브 전략’과 미디어 플랫폼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