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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이치의 총선 압승과 한국 정치에 주는 의미

“다카이치는 자민당이면서도 자민당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인물”

  • 글 : 이정현 월간조선 기자  john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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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이라는 신선함과 보수적 결단력이 승리의 원동력
⊙ “일본은 아직 할 수 있다”는 메시지 반복적으로 던져
⊙ “자민당, 강경 보수부터 리버럴까지 공존하는 유연성이 장기 집권의 원동력”(고미 요지 전 《도쿄신문》 논설위원)
⊙ “논리가 아니라 프레임이 이긴 선거… 결국 인기투표로 흘러”(배윤 게이오대 선임연구원)
⊙ “주류 언론이 다카이치를 비판하면 비판할수록 오히려 역효과”
⊙ “젊은 층, 기존 정치 세력의 책임 범주에 다카이치 포함시키지 않아”(서태교 코리아포커스 편집장)
⊙ “트럼프와 고이즈미의 절묘한 결합… 짧고 단순한 문장, 반복되는 슬로건이 핵심”(배윤)
⊙ ‘일본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불안감 정면으로 건드려
지난 2월 8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도쿄 자민당 당사에서 중의원 선거에서 당선된후보들의 이름에 장미꽃 핀을 꽂으며 활짝 웃고 있는 모습. 사진=AP·뉴시스
2026년 2월 8일 일요일 밤, 일본 도쿄 나가타초에 위치한 자민당 본부는 그야말로 유례없는 열기로 달아올랐다. 개표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대형 현황판은 자민당 후보들의 승리를 상징하는 붉은색 장미꽃들로 빼곡히 덮여 나갔다.
 
  일본 총선(중의원 선거) 316석 확보. 전체 465석 중 단독으로 개헌선인 3분의 2(310석)를 넘는 의석을 휩쓴 자민당은 연정 파트너인 일본유신회(36석)와 손잡고 개헌 발의가 가능해졌다. 장내에 거대한 “자민당의 귀환”이라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비자금 스캔들의 악취가 진동하고 통일교 유착 논란이라는 거센 파도가 들이치던 당시, 자민당이라는 거대 함선은 가라앉기 직전의 난파선과 다름없었다.
 
  이 절망적인 침몰 위기를 단숨에 반전시킨 주인공은 ‘여성 선장’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였다. 전통적인 파벌 정치와 남성 중심의 정치 문법이 무너진 자리에서 탄생한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는 위기 속에 방황하던 보수층과 변화를 갈망하는 젊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동시에 낚아챘다.
 
  고미 요지 《도쿄신문》 전 논설위원은 이번 선거를 두고 “자민당이 잘해서 이겼다기보다, 다카이치라는 개인의 부상(浮上)과 야권의 혼란이 맞물린 결과”라고 분석했다. 그가 꼽은 다카이치 승리의 출발점은 단연 ‘상징성’이었다.
 
  “가장 큰 요인은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상징성이었습니다. 예상보다 그 효과가 컸습니다. 강한 이미지를 가진 인물이었기 때문에 ‘일본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됐습니다.”
 
  이 상징은 단순한 성별(性別) 교체에 머물지 않았다. 다카이치는 선거의 성격을 ‘선택의 문제’로 바꿔 놓았다. 고미 요지 전 논설위원은 “선거 메시지가 매우 단순했다. ‘나, 다카이치를 선택하는 선거’라는 구호였다”고 설명했다. 특히 20~30대 젊은 층에서는 “기존의 남성 정치인보다 여성 지도자가 낫지 않겠느냐는 인식이 실제로 작동했다”고 진단했다.
 
 
  단순함을 ‘콘텐츠’로 전환
 
  배윤 게이오대 선임연구원의 진단은 단순하다. 그는 이번 선거를 “논리가 아니라 프레임이 이긴 선거”라고 규정했다.
 
  “선거 구도가 굉장히 단순했어요. 과거 고이즈미 전 총리가 ‘우정(郵政) 민영화냐, 아니냐’라는 이분법으로 정권을 재창출했던 것과 비슷한 구조입니다. 선택지를 줄이면 논쟁은 사라지고, 결국 인기투표로 흘러갑니다.”
 
  실제로 이번 선거는 정책의 우열을 가리는 장이라기보다, 누가 더 눈에 띄느냐를 겨루는 무대에 가까웠다. 배 연구원은 “물가나 소비세 인하 공약은 대부분 정당이 큰 차이가 없었다. 게다가 선거 기간은 짧았고 날씨도 추웠다. 이런 조건에서는 복잡한 설명보다 단순한 메시지를 던진 쪽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카이치는 바로 그 단순함을 ‘콘텐츠’로 전환했다. 여성 정치인, 비주류 이미지, 강한 리더라는 요소가 미디어 환경 속에서 결합해 하나의 브랜드로 작동했다. SNS에서 ‘다카이치 사나에’는 더 이상 정책을 설명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소비되고 공유되는 ‘캐릭터’에 가까웠다. 배 연구원은 “엑스(X·구 트위터)에 꾸준히 메시지를 올리며 존재감을 유지했고, 그 효과가 특히 젊은 세대에서 강하게 나타났다”며 “‘여성’이라는 상징성과 ‘끊임없는 노출’이 결합하면서 MZ세대가 반응했다”고 분석했다.
 
 
  전통 언론의 영향력 약화
 
  야권이 뚜렷한 대안(代案)을 제시하지 못한 점도 결정적이었다. 배 연구원은 “입헌민주당과 공명당이 합당해 ‘중도’를 표방했지만 준비가 부족했다”며 “공명당의 정책을 일부 수용하는 과정에서 리버럴 색채는 옅어졌고, 선거 내내 이 당이 무엇을 하려는지 일반 유권자도 잘 알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결국 ‘대안 부재’가 표심을 한쪽으로 몰아넣었다. 배 연구원은 “유권자들이 다카이치를 적극적으로 좋아해서라기보다, 다른 선택지가 보이지 않아 그쪽으로 쏠린 측면이 크다”며 이번 선거 결과를 “인기투표의 부산물”로 평가했다. 이미지와 프레임이 정책의 빈자리를 메운 선거였다는 것이다. “(다카이치가) 인기다, 인기다”라는 말이 반복되었고, 그 자체가 투표로 이어졌다.
 
  “주류 언론뿐 아니라 리버럴 지식인들이 다카이치를 강하게 비판할수록, 젊은 층에서는 오히려 반발 심리가 커졌습니다. ‘왜 우리가 지지하는 후보를 공격하느냐’는 정서가 형성된 거죠.”
 

  비판이 거셀수록 지지층은 오히려 결속했고, SNS 공간에서는 ‘공격받는 후보’라는 서사가 빠르게 확산됐다. 고미 요지는 “리버럴 지식인들의 비판이 거듭될수록 젊은 층에서는 ‘우리 편을 지켜야 한다’는 감정이 강화됐다”며, 그 결과 실제 득표가 주요 언론의 사전 예측치를 크게 웃돌았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선거는 SNS 정치의 실질적 영향력이 수치로 확인된 선거였다.
 
  고미 요지는 여기에 여론조사 보도의 효과도 지적했다. 일본은 선거 직전까지 조사 결과를 공표한다.
 
  “언론이 ‘자민당 과반 확실’ ‘3분의 2 가능’ 같은 전망을 계속 내놓으니, 유권자들 사이에 ‘그럼 나도 거기에 표를 던지자’는 심리가 생깁니다. ‘인기’라는 단어가 반복되면서, 그 말 자체가 현실이 된 것이죠.”
 
 
  국민들의 불안 정면으로 건드려
 
  현재 일본 사회 전반에는 위기감이 깊게 퍼져 있다. 장기 침체, 저성장, 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문제 앞에서 책임의 상당 부분은 집권당인 자민당에 돌아간다. 다카이치 역시 오랜 기간 자민당에서 정치를 해 온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이 그를 선택한 것은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집권 초만 해도 단명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다카이치가 장기 집권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오승희 국립외교원 교수는 일본 사회 전반에 깔린 위기의식을 짚었다. “이대로 가면 일본은 망할 수밖에 없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꾸지 않으면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고 그는 진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다카이치가 “일본을 바꾸겠다” “일본은 아직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던지며 유권자의 불안을 정면으로 건드렸다는 것이다. 오 교수는 “구체적인 정책 완성도보다도, 미래를 향해 무엇인가를 시도하겠다는 의지와 방향성을 전면에 내세운 점이 주효했다”고 평가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현장을 취재해 온 재일 교포 3세 서태교 코리아 포커스 편집장은 일본 사회의 심리를 짚는다. 그는 “일본이 예전 같지 않고 분명히 몰락하고 있다는 자각은 널리 공유돼 있지만, 그 책임을 곧바로 자민당 전체에만 돌리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젊은 유권자들의 인식이다. “젊은 층은 기존 정치 세력의 책임 범주에 다카이치를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카이치는 ‘오래된 체제의 일부’가 아니라, 그 체제와 일정한 거리를 둔 인물로 인식됐다는 설명이다. 서 편집장은 “젊은 유권자들은 다카이치를 ‘아직 책임을 묻지 않아도 되는 사람’, 다시 말해 기대를 걸어 볼 수 있는 존재로 본다”고 전했다.
 
 
  야권의 존재감 상실
 
다카이치 총리 고향 나라현에서 판매 중인 ‘다카이치 기념품’. 사진=AP·뉴시스

  그 배경에는 정책보다 강하게 작동한 ‘이미지’가 있다. 서 편집장은 다카이치 인기의 핵심 요인으로 ‘첫 여성 총리라는 상징성’ ‘서민적인 말투’ ‘웃는 표정’을 꼽았다.
 
  “약간 가식적으로 보일 수 있는 웃음이라 해도, 기존 정치인들에게서는 보기 어려웠던 장면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미지 자체가 굉장히 좋게 작동했어요.”
 
  정치적 메시지보다 인상이 먼저 각인된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이번 선거는 필연적으로 정책 경쟁이 되기 어려웠다. 서 편집장은 “결국 이번 선거는 정책 대결이라기보다, ‘자민당이면서도 자민당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인물’을 선택하는 인기투표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다카이치 승리의 핵심 동력은 ‘여성’이라는 외피와 ‘강경 보수’라는 내면이 만들어 낸 독특한 결합이었다. 고미 요지 전 논설위원은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상징성이 예상보다 훨씬 크게 작동했다”며 “강한 이미지를 가진 인물이었기 때문에 ‘일본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여성이라는 신선함과 보수적 결단력이 겹치면서, 기존 정치 문법과는 다른 인상이 유권자들에게 각인됐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또 하나 두드러진 장면은 야권의 존재감 상실이었다. 이번 결과는 자민당의 정책 경쟁력이나 조직력이 압도적이었다기보다, 야권의 공백이 만들어 낸 반사이익의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선거 직전 입헌민주당과 공명당이 급하게 손을 잡아 출범시킨 중도개혁 성향의 신당은 기대와 달리 유권자들에게 혼란만 안겼다. 대안 세력으로서 메시지는 흐릿했고, 결집 효과도 만들어 내지 못했다. 급조된 합당이 유권자에게 새로운 비전이나 감동을 제시하지 못했고, 선거 국면 내내 “이 당은 무엇을 하려는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일본 언론 안에서는 “보수의 승리라기보다는 중도개혁 세력의 자멸”이라는 평가가 제기됐다. 고미 요지 전 논설위원은 “이번 결과는 다카이치 개인의 인기가 부각된 것이지, 일본 사회 전체가 급격히 우경화(右傾化)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오히려 중도개혁 세력이 스스로 지지층을 실망시킨 측면이 더 크다”고 선을 그었다.
 
  또 자민당은 온건파 이시바에서 강경파 다카이치로 무게중심을 옮기며, 외형상 패배나 분열 없이 사실상의 ‘당내 정권 교체’를 이뤄 냈다. 고미 전 위원은 “자민당은 내부 스펙트럼이 매우 넓어, 강경 보수부터 비교적 온건한 노선까지 공존한다”며 “당 안에서 권력 교체가 가능하다는 점이 장기 집권의 원동력”이라고 짚었다.
 
  야권이 분열과 혼선 속에서 방향을 잃는 동안, 자민당은 내부 조정과 인물 교체를 통해 변신했다. 이번 선거는 일본 정치에서 왜 자민당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제2의 아베’라는 기대 자극
 
지난 2월 7일 도쿄에서 선거 지원 유세 중인 다카이치 총리. 사진=AP·뉴시스

  다카이치가 오래 정치권에 몸담아 온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에서 ‘새 얼굴’처럼 인식된 배경에는 외교 이슈, 특히 중국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고미 요지 전 논설위원은 일본 내 ‘위기감’이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총리 취임 초기에 중국에 대해 ‘강하게 나오면 일본도 강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식의 발언을 했습니다. 비판도 적지 않았지만, 일본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던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는 매우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특히 여성 정치인이 이런 직설적이고 강경한 어조를 사용했다는 점은 ‘제2의 아베’라는 기대를 자극했다. 남성 정치인들이 주로 맡아 왔던 대중국 강경 담론을 여성이 전면에 나서 구사하면서, 기존 보수층에게 신선함과 결단력이라는 이미지를 동시에 안겨 준 것이다. 다만 고미 전 위원은 “중국 관광객 감소나 전략 자원 수출 제한 등 일본이 실제로 입은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외교 관료 출신들 사이에서는 “중국과의 정면 충돌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신중론이 여전히 강하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중국에 강경할수록 SNS에서 인기가 올라가는 구조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만약 전쟁이 나면 일본은 진다’는 불안
 
  배윤 연구원 역시 같은 맥락에서 다카이치의 대중국 전략을 ‘정책보다 이미지가 앞선 선택’으로 본다.
 
  “중국·대만 관련 발언은 분명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외교·경제적 이익보다는 이미지 효과가 더 컸다고 봐야 합니다. 관광객 감소나 자원 수급 문제 같은 부작용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배 연구원은 이 같은 강경 노선의 배경으로 일본 사회에 축적된 ‘보이지 않는 위협감’을 지목했다.
 
  “중국이 실제로 일본을 공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걸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 사회에는 ‘만약 전쟁이 나면 일본은 진다’는 막연한 불안이 깔려 있고, 그 정서가 강경 담론을 떠받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장 경제적 문제도 생겼다. 서태교 편집장은 “중국에 대한 강경 노선이 선거에서는 분명히 표에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그 이면에 따르는 실제 비용을 강조했다. 그는 “니혼슈(일본 사케)가 올해 1월부터 중국으로 들어가지 못하면서 관련 업계에 손실이 발생했고, 주요 관광지에서는 중국 관광객 감소가 체감될 정도”라고 말했다. 곧바로 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일본 사회의 반응은 단순하지 않다. 서 편집장은 “‘중국 관광객이 안 와서 오히려 좋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관광업 종사자들은 매출 감소를 호소하지만,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는 ‘복잡하고 시끄럽고 무질서했다’는 기억이 더 강하게 남아 있다는 설명이다. 붐비는 거리와 ‘관광 공해’의 피로감이 누적되면서, 경제적 손실과 생활의 불편함을 저울질하는 기준이 사람마다 달라졌다는 것이다.
 
 
  ‘저금리 유지, 소비세 인하’ 공약은 부담
 
  문제는 경제다. 다카이치 총리가 선거 과정에서 전면에 내세운 ‘저금리 유지’와 ‘소비세 인하’ 공약은 유권자들에게는 직관적이고 강력한 메시지였지만, 집권 이후에는 곧바로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있다. 고미 요지는 현재 일본 경제를 이렇게 진단한다.
 
  “일본은 이미 금리 정상화를 논의하는 단계에 들어섰고, 장기금리는 실제로 오르고 있습니다. 소비세를 낮추면 재정 적자가 커질 수밖에 없는데, 그에 대한 재원 대책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감세(減稅) 정책을 병행할 경우 재정 부담 확대는 불가피하다. 다카이치가 제시한 ‘2년간 식품 소비세 0%’ 공약은 선거 국면에서는 생활비 부담을 직접 겨냥한 매력적인 카드였다. 그러나 집권 이후 이 공약은 곧바로 실현 가능성 논란에 휩싸였다. 고미 전 위원은 “소비세를 낮추면 재정 적자가 불가피한데, 이를 어떻게 메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며 “선거가 끝난 뒤 다카이치 총리는 소비세 문제를 거의 언급하지 않고, ‘야당과 논의하겠다’며 톤을 한층 낮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 정책의 큰 방향은 아베노믹스의 연장선에 가깝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배윤 연구원은 이를 두고 “저금리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것은 결국 아베노믹스를 답습하겠다는 의미”라고 짚었다. “저금리로 기업이 돈을 빌려 투자하면 경제가 살아난다는 논리였지만, 일본 기업들은 이미 구조조정 국면에 들어섰습니다. 고용은 줄고, 투자는 최소화한 채 내부 유보만 쌓이는 구조가 굳어졌습니다. 이 상태에서 저금리를 계속 끌고가면 일본 경제는 버티기 어렵습니다.”
 
  배 연구원은 이런 상황을 ‘마보로시(幻)’, 즉 환상에 가깝다고 표현했다. 겉으로는 주가와 일부 산업 지표가 회복되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고용 불안과 임금 정체, 산업 경쟁력 약화라는 구조적 문제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자민당, 전통적인 시장주의 보수 아니다”
 
지난 1월 14일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일본 나라현의 대표 문화유적지인 호류지에서 열린 친교 행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압승 직후부터 일본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제 다카이치 총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이에 대해 고미 요지 전 논설위원은 신중한 선을 그었다.
 
  “다카이치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승리 직후 기자회견에서도 상당히 절제된 태도를 보였습니다.”
 
  실제로 선거가 끝난 뒤 일본 주요 신문들의 사설을 살펴보면 분위기는 단순한 환호와는 거리가 있다. 보수 성향 언론을 포함해 “민주주의를 잊지 말라” “혼자서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성 메시지가 잇따랐다.
 
  한국에서는 이번 선거를 두고 ‘일본의 보수화’가 한층 심화됐다는 해석이 적지 않지만, 배윤 연구원의 설명은 다르다.
 
  “자민당의 전투적이고 이념적인 보수는 이미 오래전에 빠져나갔습니다. 지금의 자민당은 전통적인 시장주의 보수도 아닙니다. 아베노믹스나 다카이치의 노선은 ‘국가 주도 자본주의’에 ‘신자유주의적 고용 구조’가 결합된 형태입니다. 기업은 살리되, 사람은 자르는 구조죠.”
 
  다카이치의 정치 스타일에 대한 평가도 흥미롭다. 배 연구원은 이를 “트럼프와 고이즈미의 절묘한 결합”이라고 표현한다.
 
  “짧고 단순한 문장, 반복되는 슬로건이 핵심입니다. 고이즈미가 만든 ‘극장형 정치’와 아베가 강화한 ‘여론 영합형 정치’가 합쳐진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연출된 부지런함’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새벽에 관료를 불러 회의를 했다는 소식이 흘러나오면, 실제 성과와 무관하게 ‘열심히 일하는 총리’ 이미지가 만들어집니다. 행동 자체가 메시지가 되는 정치입니다.”
 
  고미 요지 전 논설위원은 마지막으로 한국 보수 진영이 일본 사례에서 읽어야 할 지점을 다시 강조했다.
 
  “자민당의 가장 큰 특징은 내부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는 점입니다. 강경 보수부터 리버럴까지 공존하고, 당 내부에서 사실상의 정권 교체가 이뤄집니다. 그 유연성이 장기 집권의 원동력입니다.”
 
 
  “개헌은 시간문제”
 
  향후 일본 개헌 문제는 ‘단기적으로는 어렵지만,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많다. 오승희 교수는 “시점을 어느 때로 보느냐가 핵심”이라고 전제한 뒤 “아베 이후 기시다, 이시바도 모두 개헌을 얘기해 왔고 자민당은 긴 호흡으로 진행해 왔다”고 말했다. 다카이치 체제는 그동안 금기에 가까웠던 평화헌법 개헌 논의를 더 ‘공개적으로’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고, 안보 강화라는 기본 인식이 뒷받침된다는 것이다. “과거엔 평화헌법을 건드리는 게 금기였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거부감은 낮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카이치의 압승은 ‘강한 리더’를 향한 일본 사회의 갈망을 보여 주는 동시에, 그 기대가 얼마나 불안정한 토대 위에 놓여 있는지도 드러낸다. 선거에서 통했던 단순한 메시지와 상징 정치가 집권이라는 복잡한 현실을 얼마나 버텨 낼 수 있을지, 향후 1년은 다카이치 개인의 정치적 역량을 넘어 일본 민주주의가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한계를 시험하는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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