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정경숙 후배’가 보는 ‘다카이치의 일본’

야당 당수 노다도 다카이치를 ‘시대정신’으로 받아들여

  • 글 : 유민호 퍼시픽21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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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당 당수 노다, 지각한 다카이치를 정경숙 면접시험 보게 해줘
⊙ 노다 아버지는 군인, 다카이치 어머니는 경찰관이어서 서로 통하는 점 있어
⊙ ‘허리 엄청 낮추고, 늘 웃음으로 대하는 소탈한 사람’(정치 초년병 시절의 다카이치를 찾아갔던 정경숙 출신들)
⊙ 일본인들, 류머티즘으로 힘든데도 최선을 다해 유세하는 다카이치의 ‘맑고 밝은 마음’에 열광
⊙ 야당 중도개혁연합, ‘중도’라는 회색 단어 사용한 것도 패인 중 하나
⊙ 다카이치, SNS 통해 젊은이에게 다가가 희망 던져
⊙ 내각관방 강화, 국가정보국 신설로 ‘전후 일본병’ 고쳐나갈 것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 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現 워싱턴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총선 압승 후인 2월 9일 다카이치 사나에(가운데) 일본 총리는 도쿄 자민당 본부에서 향후 정책 방향을 논의하기 위한 임시 임원회를 주재했다. 사진=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X 캡처
“길을 찾거나 아니면 만들 것이다(Aut viam inveniam aut faciam).”
 
  기원전 2세기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이 남긴 말이다. 코끼리를 타고 알프스를 넘어서, 로마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갔던 인물이 한니발이다. 2000여 년 뒤 프랑스의 나폴레옹도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공격에 나섰다. 나폴레옹이 한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말은 없다”는 말의 원조(元祖)는 한니발이다.
 
  2026년 2월 9일 오후 4시. 도쿄 자유민주당(자민당) 당사에서 중앙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총선 압승 이후 첫 번째 자민당 중진(重鎭)회의다. 이 회의를 보도한 사진을 자세히 보니 벽에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를 비롯한 역대 총리들의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사진 가운데에는 보름달을 배경으로 한 에도(江戶) 시대 장수가 보였다. 중무장 차림에다 활과 함께 몸을 낮추고 있었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는 장수 그림 바로 아래 앉아 있었다. 좌우로 익숙한 얼굴의 일본 정치 핵심 10여 명이 앉아 있었다.
 
  무거운 공기와 함께 긴장과 비장함이 입체적으로 느껴졌다. 총선 압승을 축하하는 웃음이나 넘치는 자신감 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 곧 전장(戰場)에 나서는 장수의 ‘마지막 결기’가 느껴졌다. 사진 속에서 정면을 응시하는 다카이치는 1억2000만 명의 일본 국민 전체를 향해 ‘길을 찾거나 아니면 만들 것이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엄동설한의 전격전
 
다카이치 총리의 갑작스러운 의회 해산과 총선 실시는 ‘명분 없는 엄동설한 선거’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사진=신화/연합뉴스

  1월 23일 중의원(衆議院·하원) 해산, 1월 27일 선거 공시(公示), 2월 8일 총선…. 진주만 기습에 비길 만한 숨 가쁜 정치 일정이었다. 법정 선거운동은 불과 12일, 중의원 해산 이후부터 쳐도 16일 만에 치러진 전격전(電擊戰). 결과는 자민당이 중의원 435석의 3분의 2가 넘는 316석을 차지하는 압승이었다. 일본유신회 당선자 36명까지 합치면 전부 352명. 연립여당 의원으로 중의원의 4분의 3을 차지했다.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구(舊) 아베파 출신 당선자 15명도 조만간 ‘다카이치의 자민당’으로 복귀할 것이다. 그러면 여당의 의석은 367석에 달하게 된다. 20세기 이후 역대 일본 선거사를 통틀어 ‘최단 기간 최대 성공’이다. 다카이치 리더십의 결과이자 공적이다.
 
  ‘좋은 일은 서둘러라(善は急げ)’는 일본 속담이 있다. 옳다고 생각되는 일이나 좋은 결과가 예상되는 일은 눈치 보거나 망설이지 말고 즉시 실행하라는 뜻이다.
 
  신년 국회 해산과 총선 일정은 다카이치 ‘1인 결정’으로 이뤄졌다. 최측근 참모 네 명만 알고 있었을 뿐, 자민당 중진은 물론 야당과 미디어도 전혀 예상치 못한 기습 총선이었다.
 
 
  ‘직관과 결단의 정치가’ 다카이치
 
  선거 일정이 공표되자, 리버럴 올드 미디어는 다카이치에 대한 공격을 퍼부었다. ‘아소 다로(麻生太郞)를 비롯한 자민당 중진도 모른 채 결정된 불통 다카이치의 독단’이라면서 자민당 내부 분열도 유도했다. ‘총선 명분 미비, 유권자를 무시한 한겨울 선거’라면서 여성 총리를 맹비난했다. 다카이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비전 제시는 국가 지도자의 기본 조건 중 하나다. ‘좋으냐 나쁘냐’의 문제는 비전에 기초한, 지도자의 직관적 선택에서 출발한다. 필자는 다카이치를 직관과 결단의 정치가로 평가한다. 남성 중심의 일본 정치 무대에서 보면, 다카이치는 한순간 훅 불면 날아갈 것만 같은 ‘칼날 위에 선 여성 정치가’다. 직관과 결단력은 다카이치의 생존력의 출발점이다. 그는 총선을 통한 여당 재결집이 일본 미래에 ‘좋다’고 직관적으로 판단한 순간 곧바로 국회를 해산했다.
 
  다카이치는 총선을 총리 재신임 선거, ‘의석 과반수 집권 여당’으로 만들기 위한 선거라고 강조했다. 그에게 과반수 의석은 ‘강하고 풍요로운 일본’을 빨리 만들기 위한 기본 요소였다.
 
  그는 공명당과 결별한 뒤, 일본유신회와 손을 잡고 집권 여당으로서의 길을 찾아보려 했다. 하지만 그걸로는 ‘강하고 풍요로운 일본’이라는 그의 꿈을 실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당이 약한 상태에서, 사사건건 야당의 반대에 부딪힐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다카이치가 새로 만들어낸 길이 그가 단독 결정한 국회 해산과 총선이었다. 결과는 압승이었다. 자민당 중앙위원회 사진은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펼쳐진 다카이치의 직관과 결기의 압축판이라고 볼 수 있다.
 
 
  ‘정경숙의 마돈나’
 
  “다카이치에 대한 국민 지지율이 왜 그토록 높은가?”
 
  “다카이치가 총선에서 압승한 비결은 무엇인가?”
 
  “다카이치의 어떤 정책이 국민에게 어필했는가?”
 
  총선 후 필자가 거의 매일 듣는 질문들이다. 아마 필자라면 ‘인간 다카이치’를 잘 알 것이라 생각해서 던지는 질문들일 것이다. 다카이치는 필자가 공부한 마쓰시타 정경숙(松下政經塾) 10년 선배다.
 

  1993년 중의원 선거에서 정경숙 출신 15명이 중의원에 당선됐다. 정경숙 5기생 다카이치는 당시 최연소 32세 여성 정치가로 당선, 도쿄 나카타초(永田町·일본 국회의사당이 있는 곳. 한국의 ‘여의도’)에 진출했다.
 
  필자는 그 1년 뒤인 1994년 15기생으로 정경숙에 입숙했다. 당시 다카이치는 이미 ‘구름 속 존재’였다. 정경숙 최초의 여성 정치인이었을 뿐 아니라, 미국 의회 스태프 경험자였다. 게다가 일본에서 최고 인기 직종인 TV 진행자와 평론가로도 활약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사실 다카이치의 미국 의회 체험담은 필자가 미국 워싱턴으로 향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한 세대 앞서 시대를 살아간 파이오니아 인생이라고 할까? 다카이치는 남성에게도 어려운, 여성으로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만 걸어간 ‘정경숙의 마돈나’였다.
 
  필자가 정경숙에서 공부할 당시, 동기생이나 선후배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국회에 있는 ‘정경숙의 마돈나’ 사무실을 자주 방문했다. 다카이치의 사무실을 다녀온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었다. ‘허리를 엄청 낮추고, 늘 웃음으로 대하는 소탈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정치보다 음식이나 역사 얘기를 나누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는 얘기도 많았다.
 
 
  최선을 다하는 ‘맑고 밝은 마음’
 
다카이치 총리는 건강이 안 좋은데도 최선을 다하는 유세로 국민의 마음을 얻었다. 사진은 2월 2일 나가노에서의 유세 모습. 사진=교도/로이터/연합뉴스

  왜 일본 국민은 다카이치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는가? 이에 대한 답변은 ‘다카이치 캐릭터’ 하나로 집약할 수 있다. 세상을 떠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에 대한 기억, 보수주의적 정책·정치도 다카이치의 중요한 기반이다. 그러나 자민당 압승의 가장 큰 이유는, ‘인간 다카이치’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옛날에 정경숙 사람들이 말했던 것처럼, 따뜻한 말과 사려 깊은 행동 하나하나가 오늘날의 다카이치를 만든 것이다.
 
  다카이치는 류머티즘성 관절염을 앓고 있다. 볼펜 하나 들 수 없을 정도로 손가락, 손목, 어깨가 약해져 있는 상태다. 다카이치는 이번 총선 유세 중 마이크 없이 약한 육성으로 연설을 하면서, 두 손을 입에 모아 “미안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목소리를 높이면서 눈물이 맺히는 느낌도 들었다.
 
  꾀병이나 동정표를 의식한 퍼포먼스로 보는 사람도 적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본인이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현재 다카이치는 진통제를 먹어가면서 류머티즘을 견뎌내고 있다. 얼굴을 자세히 보면 거의 뼈만 남은 상태다. 진통제가 안 듣는 시간도 있었다. 그렇다고 지원 유세를 중단할 수는 없었다.
 
  일본인만큼 자세히 따지는 국민도 드물다. 일본인 대부분은 다카이치의 육성 연설을 쇼가 아니라 진정성과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해석한다. 특히 1020 세대는 다카이치의 육성 연설을 대하면서 90% 가까운 지지율로 응원했다.
 
  정경숙에서는 ‘정치 출발점=수나오나 고코로(素直な心)’라고 가르친다. 퍼포먼스, 꼼수, 사익(私益)이 아닌, ‘맑고 밝은 마음’이 정치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신문·방송에서 말하는, ‘소비세를 없앤다, 낮춘다’는 식의 얘기 이전의 인간으로서의 기본자세를 말한다. ‘착한 미소’에다 최선을 다하는 ‘맑고 밝은 마음’에 대한 국민적 반응이 ‘다카이치 1강(强) 체제’로 나타났다고 확신한다.
 
 
  ‘기회주의적 합당’
 
노다 요시히코 입헌민주당 대표(오른쪽)와 사이토 데쓰오 공명당 대표는 중도개혁연합이라는 이름으로 합당했으나, 총선에서 참패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자민당 압승의 반대는 야당 괴멸이다. 다카이치에 대항한 제1야당은 중도개혁연합이다. 총선 직전 입헌민주당과 공명당이 급하게 합당해 탄생한 뉴브랜드 정당이다. 입헌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와 공명당의 사이토 데쓰오(齋藤鐵夫)가 공동대표로 자민당에 맞섰다. 하지만 결과는 지역구에서 7석, 비례대표에서 42석, 총 49석을 얻는 데 그쳤다. 종전의 169석에서 120석이나 잃은 대참사다.
 
  아무리 다카이치 열풍이 불었다고 해도, 명색이 제1야당이 중의원 435석 중 10% 정도에 불과한 의석밖에 얻지 못했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망하려 작정을 해도 불가능한, 사실상 ‘야당 멸망’ 상태까지 간 이유는 무엇일까? 다카이치라는 외부 변수(變數)가 아닌, 야당 내부 차원에서의 패인(敗因)을 살펴보자.
 
  가장 큰 이유는 중도개혁연합이란 당명(黨名)에 대한 낮은 인지도다. 다카이치의 기습 총선 때문에 당명조차 제대로 알릴 수 없었던 시간적 한계가 야당의 최대 패인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중도’라는 어정쩡한 단어가 유권자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는 분석도 있다. 야당 이름이 뭔지도 모르는데, 그나마 ‘중도’라는 회색 단어를 쓴 결과가 ‘야당 멸망’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인터넷 여론을 보면, 애초부터 입헌민주당과 공명당이 물과 기름 관계였던 것도 선거 결과에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헌법 개정 문제만 해도, 과거 입헌민주당은 전수방어(專守防禦)를 위한 개헌에 찬성한 반면, 공명당은 평화주의를 앞세워 지극히 신중한 자세로 일관해 왔다. 이렇게 정치적 입장이 다른 두 정당의 ‘기회주의적 합당’이 국민의 마음이 멀어진 원인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핵심을 놓친 분석들이다. 핵심은 야당의 국가안보관 결여다.
 
  중국의 센카쿠(尖閣) 열도 불법 침입은 2025년 총 357일에 이르렀다. 태풍이나 바람이 강한 날 외에는 매일 자기 집 드나들 듯 침입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중국 서해 침탈 상황 자체를 숨기지만, 일본 정부는 하루도 빠짐없이 침입 여부를 발표한다. 일본인 대부분이 중국의 침입을 불안해하고 불쾌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야당은 다카이치를 ‘강경파’라고 몰아붙이면서 중국과의 타협을 요구해 왔다. 국민이 이를 좋게 볼 리가 없다. 다카이치에게 ‘대만 유사시 참전’ 문제를 따졌던 야당 중진은 이번 선거에서 떨어졌다. 미국이 그러하듯, 글로벌 시대의 이념이던 ‘모두 함께 평화’는 이미 과거사로 변하고 있다. 말하기도 듣기도 좋은 ‘중도’가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 하는 양자택일(兩者擇一)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야당은 이 같은 불안과 의문에 대한 답을 전부 회피했다. 이러한 결과가 ‘야당 붕괴’를 넘어서는 ‘야당 멸망’이다.
 
 
  ‘흙수저’ 노다
 
  필자의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야당인 노다 요시히코 당수는 총선 전부터 ‘다카이치 정치’를 시대정신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다는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기보다는 상대의 생각에 동의하면서 전의(戰意)를 상실했다고나 할까? 이런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는 마쓰시타 정경숙으로 연결된 ‘연(縁)’에서 시작한다. 노다는 마쓰시타 정경숙 1기생이다. 필자 역시 이런저런 자리에서 만난 적이 있지만, 선이 굵고 신뢰가 가는 인물이다.
 
  운명이자 필연일지 모르겠지만, 1기 노다와 5기 다카이치는 단순한 선후배 이상의 ‘특별한 인연’으로 맺어졌다. 언젠가 영화로 만들어질 법한 스토리인데, 출발점은 두 사람이 가진 흙수저 배경이다.
 
  노다의 아버지는 일본 최강인 육상자위대 낙하산 부대 자위관(군인)이었다. 한국으로 치자면 육군특수전사령부 상사(上士)급 직업군인이다.
 
  노다의 지역구는 도쿄 근처 지바(千葉)다. 그는 1987년 정계 입문 후 39년간 지바에 기반을 둔 정치가로 활동해 왔다. 지바는 자위대 낙하산 부대가 있는 곳으로, 노다는 자위대 관사에서 자랐다. 이런 ‘흙수저’ 집안 배경과 성장 스토리는 노다에게는 큰 정치적 자산이었다.
 
  노다는 정경숙 설립자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가 생전에 가장 아꼈던 정경숙 학생이었다. 고노스케의 남다른 기대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노다는 2011년 9월, 정경숙 출신 제1호 총리가 된다. 고노스케는 정경숙 설립 당시 “나중에 졸업생 가운데 문부(文部)대신 하나 나오면 성공한 것”이라 말했다.
 
 
  군인 아버지, 경찰관 어머니
 
마쓰시타 정경숙 개숙 20주년 기념사진. 졸업생의 약 70%가 이 자리에 참석했다. 둘째 열 오른쪽에서 여섯 번째가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 뒤에서 네 번째 열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필자.

  다카이치의 아버지는 가전제품 영업사원이었지만, 어머니는 경찰관이었다. 경찰과 군인은 국가·사회 안전(안보)을 책임지는 공적(公的) 직업이다. 나보다 남을 생각하는 자세를 필요로 하는 위험한 직업이다. 노다와 다카이치는 정경숙에서 만나는 순간 뭔가 서로 통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노다는 군인 아버지를, 다카이치는 경찰관 어머니를 자랑스럽게 ‘자주’ 언급한다. 노다가 군인 가족의 장남, 다카이치가 경찰관 가족의 장녀로 성장했다는 점도 닮았다.
 
  두 사람 사이 직접적인 ‘연’은 다카이치의 정경숙 지원 2차 면접에서 시작됐다. 장소는 치가사키(茅ヶ崎) 정경숙 강당. 2차 면접은 정경숙 이사와 교육 담당자, 그리고 선배가 행한다. 필자도 1995년 16기 면접에 참가한 적이 있지만, 수많은 질문을 통해 지원자들의 능력과 성향을 분석한다.
 
  놀랍게도, 면접 당일 다카이치는 지각을 했다. 일본 어디에서나 그렇듯이, 정경숙에서도 시간 엄수가 기본이다. 지각을 한 다카이치는 면접에서 탈락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당시 면접에 참여한 정경숙 선배가 “지각생 한 명쯤 있는 것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가 바로 노다였다. 다른 사람들도 그의 말에 동의해 준 덕분에, 다카이치는 면접을 볼 수 있었다.
 
  필자는 만약 다카이치가 1984년 2차 면접에서 탈락해 정경숙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일본의 첫 여성 총리가 되기는커녕, 정치 입문도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왜 노다는 지각을 한 다카이치를 관대하게 대해줬을까? 2차 면접에 참가해 봤던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아마 면접 자료에 있는 ‘경찰관 어머니와 집안 장녀’라는 부분이 노다 눈에 들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2차 면접관은 참고 자료를 통해 지원자의 배경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다는 자기와 처지가 비슷한 ‘흙수저’인 다카이치를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으로 면접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노다의 ‘꾀꼬리 아가씨’
 
  두 사람의 직접적인 ‘연’은 이후 1987년 노다가 지바 지방의원에 입후보했을 때 한층 더 깊어진다. 30세의 노다가 출마할 당시 정경숙 4년생이던 26세의 다카이치가 선거 지원 도우미로 나섰기 때문이다.
 
  면접 당시 진 빚을 갚는다는 의미였을지는 모르겠지만, 다카이치는 작은 차를 타고 다니며 후보자 지지를 부탁하는, 이른바 ‘우구이스조(鶯孃)’ 역할에 자원했다. 우구이스조는 ‘꾀꼬리 아가씨’라는 의미로, 밝고 맑은 목소리로 반복해서 “노다 요시히코 후보,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외치는 젊은 여성 도우미다. 일본 정치에서는 우구이스조 선택을 얼마나 잘하는지에 따라 당락(當落)이 결정된다고 한다. 필자의 정경숙 동기생인 여대교수가 있는데, 그의 평생 자랑거리가 자신이 정경숙 선후배가 원하는 ‘우구이스조 영순위’라는 사실이다. 자기가 꾀꼬리 아가씨로 나서면 ‘100% 당선’이라고 자랑한다.
 
  다카이치도 이번 총선에서뿐 아니라 전부터도 ‘복덩어리 행운 도우미’로 꼽혀왔다. 39년 전 노다의 지방의원 당선 당시 1등 공신이 바로 이번 총선에서 그의 정적(政敵)이 된 다카이치다.
 
 
  방송 토론에서 다카이치와 싸우지 않은 노다
 
  앞서 필자는 노다 스스로 총선 전부터 ‘다카이치 정치=시대정신’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쁘게 말하면, ‘야당 붕괴’의 근본 원인이 노다에게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필자는 ‘역사적·시대적 순리’에 따르는 노다의 성숙한 세계관이 결과적으로 ‘야당 붕괴’, 다시 말해 자민당 압승이라는 결과를 낳았다고 본다. 총선 기간 중 방송 토론을 보면, 야당 대표 노다에게서는 ‘싸우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자민당의 경제 정책은 비판했지만, ‘강한 일본’을 부르짖는 후배 다카이치와의 정면 대결은 피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적대감에 기초한 호전적 공격은 하지 않았고, 오히려 다카이치의 ‘강한 일본’에 동조하는 듯한 모습도 드러냈다. 결론적으로 노다는 일본의 ‘공기’ 속에 떠도는 ‘변한 시대와 세대’, 그리고 전후(戰後) 81년간 이어져온 ‘평화주의의 종언(終焉)’을 누구보다도 먼저 체감(體感)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위협이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불확실성은 다카이치만이 아닌, 노다를 포함한 일본인 모두가 절감하는 현실이다. 이는 야당 당수로서 이슈화하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일본의 공기를 보면, 중국과 화해하고 트럼프에 맞서라고 주문하기 어렵다.
 
  깊은 ‘연’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노다는 그 누구보다도 다카이치를 잘 알고 있다. 나라를 사랑하는 방법만 다를 뿐, 다카이치를 ‘평생 친구이자 동업 정치가’로 대한다. 너무 속속들이 알기 때문에 다카이치에 대한 ‘닥치고 반대’가 어렵다. 야당 당수로서는 영점(零點)이다. 그러나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그는 일본 열도에 공기로 정착된 ‘시대정신’에 순응한 셈이다.
 
 
  리버럴 올드 미디어에 대한 불신 폭발
 
  ‘리버럴 올드 미디어’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것도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특징 중 하나다. ‘올드 미디어’란 기존의 초대형 전국망 신문·방송을 말한다. 필자가 보기에 미국에서나 보던 전국망 리버럴 올드 미디어에 대한 반감과 분노가 일본 열도에서도 폭발했다. 리버럴 올드 미디어의 반(反)트럼프 보도와 논조가 계속될수록 트럼프 인기가 올라갔던 것처럼, 다카이치에 대한 비난과 반대가 커질수록 다카이치 지지율도 올라간다.
 
  ‘리버럴 올드 미디어’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다카이치 정치와 캐릭터는 과연 어떤 방법으로 국민들에게 전달될까? 뉴미디어, 즉 인터넷을 통한 유튜브, X(옛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킹 플랫폼을 통해서다. 오늘날 TV를 통해 정보를 취득하는 일본인은 20%대 이하다. 한국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일본에서도 리버럴 올드 미디어는 ‘보수=악=꼰대’로 보면서 편견에 찬 왜곡·중상을 서슴지 않는다. ‘아베=다카이치=극우=악’이란 것이 기존 올드 미디어의 공식이다. 처음에는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몇 번 대하다 보면 의문을 갖게 된다. 특히 소통이 활발한 10대와 2030 세대가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뉴미디어는 이 같은 세대들이 ‘편견·왜곡·중상’에서 벗어나는 탈출구다. 뉴미디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엉터리 리버럴 올드 미디어를 피하려는 과정에서 유튜브, X, 페이스북이 핵심 정보원(情報源)으로 활용된다.
 
  다카이치는 이 같은 현실을 보면서 일본판 유튜브인 니코니코(ニコニコ, www.nicovideo.jp)를 이용한 선거운동에 주목했다. 기존 TV 프로그램은 멀리하면서도, 고등학생과 함께하는 니코니코 토론 방송에는 나갔다. 18세가 되어 투표권을 가지게 되는 고등학생에게 자유·직접 선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어떤 화장품을 쓰느냐?’는 여고생의 물음에 “한국화장품을 즐겨 쓴다”는 대답도 했다. 10대 고교생 입장에서 보면 심각한 얼굴의 ‘꼰대 총리’가 아니라, 순박한 옆집 아줌마로 느껴졌을 만한 모습이다.
 
  다카이치는 총선 압승 직후에도 올드 미디어가 아닌, 니코니코부터 찾아 22세기를 맞이할 젊은이에게 ‘잘살고 강한 일본’을 만들자는 메시지를 전했다.
 
  필자가 보기에, 2026년 신년 초 뉴미디어 속에서의 일본은 희망 그 자체다. 10대는 물론 2030 세대 대부분이 일본의 미래를 환호와 박수로 맞이하고 있다. 걱정·불안이 뒤섞인 리버럴 올드 미디어와 달리, 밝은 내일에 대한 확신과 일본인으로서의 자긍심이 뉴미디어에서는 넘쳐난다. 이를 두고 ‘포퓰리즘에 혼을 판, 국뽕 민족주의’라고 무시하는 사람도 있을 듯하다. 필자의 판단은 정반대다. 비전을 가진 지도자 단 한 명만으로도 나라 전체, 특히 청년들의 미래관이 180도 달라질 수 있다. 이게 정치가 해야 할 가장 큰 역할이다.
 
 
  ‘빨리, 빨리’
 
  글을 쓰는 도중에 자민당 압승 후 처음 열린 각료회의에 대한 속보가 떴다. 앞에서 언급한 자민당 중앙위원회 회의와 비슷한 ‘비장한’ 풍경이었다. 다카이치에 대한 각료들의 충성심과 존경심이 화면에서도 느껴졌다. 다카이치는 각료회의에서 한시라도 빨리 ‘정책 실현과 실천’에 나서라고 주문했다. 다카이치 정책의 특징이지만, ‘빨리 빨리’가 강조된다. 돌다리를 두드리다 돌다리 자체를 아예 가루로 만드는 것이 일본이다. 다카이치의 입버릇이기도 하지만, ‘도전 없이는 미래도 없다’는 말이 있다. 기다리는 것이 아닌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자세다. 이미 잊힌 추억으로 변해가고 있지만, ‘빨리 빨리’ ‘하면 된다’는 오늘의 한국을 만들어낸 개발연대(開發年代) 한국인의 특징이자 장점이었다.
 
  ‘빨리 빨리’ 시대의 다카이치 정책을 관찰할 때 주목해야 할 부처는 총리 직속 기관인 내각관방(內閣官房·Cabinet Secretariat)이다. 한국 청와대나 미국 백악관에 해당되는 기관이다.
 
  내각관방에서 관리·경비를 제외한 정책 기획·입안·조정에 참여하는 정책 스태프와 사무국 요원은 약 1500명이다. 20세기에는 300명에 불과했지만, 아베 집권 기간 중 총리 중심 정치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5배나 늘어났다. 스태프가 500명 정도인 한국 청와대에 비하면 엄청나게 방대한 것이고, 2000명 규모인 미국 백악관에 비교해도 크게 뒤처지지 않는 규모다.
 
 
  국가정보국(NIA) 신설
 
  다카이치는 ‘국가정보국(NIA)’ 신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국가정보국을 통해 500명 정도의 스태프를 내각관방에 충원할 예정이다. 한국에서는 국가정보원을 시작으로 정보기관을 감축, 폐기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다.
 
  국가정보국은 미국의 CIA와 FBI를 합친 것 같은 기관이다. 중국·북한 등에 대한 해외 정보 수집 기관인 동시에, 사이버 공격·테러·외국인 범죄에 대응하는 총본부가 될 것이다.
 
  국가정보국 신설과 함께 ‘2000명 체제’로 확장될 내각관방은 총리 직속의 ‘상명하복(上命下服) 일사불란(一絲不亂)’ 조직이 될 것이다.
 
  그동안 명확한 위계(位階) 질서가 없는 ‘부처 평등’이 일본 정부 조직의 모습이었다. 이는 태평양 전쟁에서 패한 후, 하나의 조직에 힘을 실어줄 경우에 또다시 1930년대식 일방통행 정치가 나올 것으로 보고, 분산·분리·평등을 원칙으로 조직을 운영해 왔기 때문이다.
 

  20세기 말에는 그렇게 해도 큰 문제가 없었지만, 중국이 안보 위협으로 대두하고, 트럼프2.0 시대의 불안정·불확실이 심화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분산·분리·평등 조직은 조정·결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구체적 정책이 만들어진다 해도 행동화하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아베 전 총리는 위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내각관방을 확장하려 노력했다. 다카이치는 거기에 더해 국가적 차원의 정보 수집·분석·평가를 공언한다. 경찰이나 법원의 허락 없이 내각관방 내 국가정보국이 개인 도청이나 정보 수집을 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필자는 북한의 일본 납치자 문제에 관여한 적이 있다. 일본인 납치 희생자의 대표적 존재인 ‘메구미(惠み)’로 추정되는 평양 거주 여성과 관련된 정보를 찾아냈는데, 똑같은 이름이 겹치면서 주소와 혈액형도 함께 나왔다. 누군지 정확히 알아내기 위해 당시 일본 외무성 고위 관료와 만나 메구미의 혈액형이 뭔지 물어봤다. 외무성 간부는 모른다고 답했다. 개인 정보이기 때문에 정부가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 스파이라는 것을 뻔히 알아도 추적해 수사할 법적 장치가 없는 나라가 일본이다. 다카이치는 이 같은 ‘전후 일본병(日本病)’을 확실히 고치겠다는 공약으로 자민당 압승을 이끌어냈다.
 
  국가정보국은 경제 안보를 책임지는 ‘호위무사’로 활용될 것이다. 수출 제재나 무역 보복도 앞으로 가능해진다는 의미다. 내각관방이 부처 중심 논리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경제 제재를 발동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희토류(稀土類) 제재에 맞서 대중(對中) 경제 제재도 내각관방의 지시 하나로 추진될 수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METI)은 특정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일본 기업들을 ‘글로벌 니치 톱(Global Niche Top) 100선’으로 선정·관리하고 있다. 이들 기업 중 상당수가 글로벌 점유율 7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니치 톱 100선 밖 기업까지 포함할 경우, 대략 400개 정도의 일본 최첨단 소재·부품 기업이 글로벌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마음만 먹으면 중국 첨단 산업 전체를 정지시킬 능력을 가진 나라가 일본이다. 첨단기기 소재나 재료와 관련한 ‘메이드 인 재팬’ 상품의 대중국 수출 규제는, 곧 보게 될 ‘강한 일본’의 또 다른 얼굴이 될 것이다.
 
 
  일본발 변화의 최초 시험장은 한반도
 
총선 기간 중 홋카이도 오타루에 ‘일본 열도를, 강하고 풍요롭게’라는 다카이치의 선거구호를 담은 광고판이 서 있다. 사진=교도/로이터/연합뉴스

  다카이치가 압승한 이후의 일본 정치가 몰고 올 변화는 어떤 것이 있을까? 특히 한국 입장에서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일본이 요동치면 제일 먼저 영향을 받는 곳이 한반도다. 물론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과 정반대인 ‘우물 안 세계관’에 사로잡힌 나라라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일본은 위기가 닥치면 국민과 정치가 하나로 결집해 앞으로 나아간다. 섬나라 일본의 대변혁은 열도 바깥, 즉 바다를 넘어선 공간으로 확장될 것이다. ‘요동=대변혁=일본 밖 진출’은 상식이다. 그러나 정작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눈앞에 한반도가 가로막고 있다.
 
  일본은 대만과의 적극 교류를 통해 중국 견제에 나서고 있다. 한국은 대만 죽이기를 통해 중국 환심 사기에 바쁘다. 일본은 중국산 태양광 에너지 제품을 거부하고 원자력 개발에 적극적이다. 반면 한국은 태양력에 이어 풍력까지 중국산에 기대면서 기존의 원자력 발전소까지 폐기할 기세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위기 시의 일본과 한반도의 대응 자세는 180도 정반대다.
 
  2026년 보수 다카이치 정권과 실용·중립·중재 외교를 외치는 한국의 좌파 정권은 관계가 어떻게 될까? 국가 간에는 서로 좋은 관계라도 문제가 생기는데, 좌우 다른 길을 가는 한 양국 간 충돌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정반대의 길을 가는 한일
 
  자민당이 압승한 일본을 ‘극우(極右)’ ‘군국주의’라고 반대하고 비난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그게 통할지는 다른 문제다. 20세기에는 서울에서 나오는 반대·비난이 일본에서 종종 통했다. 일본 내에 전쟁과 식민 지배를 반성·참회하는 정치가·지식인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전혀 다르다. 한국의 비난·반대를 받아줄 일본 내 정치가·지식인은 99% 사라졌다.
 
  글로벌 정치 위상으로 볼 때도, 한국은 아직 역부족이다. 상대가 미국이든 중국이든, 일본의 주장이 한국보다 훨씬 잘 먹혀든다. 활용 가능한 카드를 발굴해 적극 대응하지 않을 경우,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도태(淘汰)될 수 있다. 중재·실용 외교는 입이 아니라, 구체적이고도 실질적인 힘에서 시작된다.
 
  일본에서 대본영(大本營)이 부활해 한반도를 군사적으로 노린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러나 총칼이 아닌, 외교·경제·정보로 무장한 ‘21세기형 민간 대본영’을 통한 한반도 공략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트럼프 2.0’ 시대의 등장에 이어, ‘다카이치 1강 시대’가 열리면서 일본의 ‘시대 변화·세대 변화’가 곧 구체화될 것이다. 2026년 한국 상황을 보면, 길을 찾는 사람도 길을 만드는 사람도 극히 드물다. 지쳐서 포기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일본 중의원 임기는 4년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다카이치 1강’ ‘자민당 1강’ 시대는 최소한 2030년 2월까지 이어질 것이다. 한국과 정반대의 길을 가는, 급변하는 일본을 장장 1400여 일간 상대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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