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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센(零戰) 열풍과 군사기술 강국 일본의 부활

  • 글 :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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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하라 등, ‘終戰’ 대신 앙심 어린 ‘敗戰’이라는 말 사용
⊙ 가미카제 특공대 다룬 소설 《영원의 제로》, 10년째 인기
⊙ 제로센 만들었던 미쓰비시중공업, 첨단전투기 ‘心神’ 생산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해군의 ‘제로센’ 전투기(위)와 최신예 전투기 ‘心神’.
8월 15일은 광복절(光復節)이다. 일본인들은 종전(終戰)기념일이라 부른다. 2015년은 광복절, 즉 종전기념일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양국(兩國)에서는 갖가지 기념행사를 열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종전기념일을 맞아 최근 일본에서 나타나고 있는, 8월 15일을 둘러싼 논쟁이다. 종전이 아니라 패전(敗戰)이라 불러야 한다는 논의가 곳곳에서 일고 있다. 피비린내 나던 ‘전쟁이 끝났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다. ‘전쟁에 졌다’는 사실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세상에 전쟁에 진 것을 기념하자는 국민이 있을까? 승전(勝戰)기념일은 들어 봐도 패전기념일은 없다. ‘전쟁에 진 패자(敗者)’라는 의미에서 패전이란 말을 스스로 떠벌리고 다닌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듯하다. 예를 들어 보자. ‘배운 것도 없고, 뼈대도 없고 돈도 없는…’ 하는 식으로 자신을 낮추어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겸손해서 그런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정반대가 더 많다. ‘크게 성공해서 그동안 내 위에 군림하던 인간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겠다’는 자세이다. 좋게 말하면 절치부심(切齒腐心)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모나고 비뚤어진 성격에 불과하다.
 
  종전이란 말 대신에 패전이란 말을 사용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다음에 두고 보자…’는 자세는 내셔널리즘에 충만한 캐릭터라 해석할 수 있다. 좋은 예가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하시모토 도루(橋本徹) 같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억울하게 전쟁에 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의미에서 중립적 단어인 종전이란 말을 혐오한다. 이들은 ‘하룻밤 만에 10만명을 불에 태워 숨지게 한 도쿄(東京) 공습, 히로시마(廣島)·나가사키(長崎) 원폭(原爆)으로 인한 수십만의 피해자들을 결코 잊지 말라’는 의미에서 패전이란 말을 사용한다.
 
 
  해상자위대, 2차 대전 전사자 유해송환 나서
 
  일본의 우향우(右向右)는 기정사실화한 상식이다. 종전기념일이 패전기념일로 언제 바뀔지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공식적으로 명칭을 바꾸기 전에 일본사회는 이미 ‘종전’이 아닌 ‘패전’이란 시각에서 8·15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최근 전해진 두 가지 ‘귀국(歸國)’ 소식은 좋은 증거이다. 타임슬립(Time Slip)형 뉴스로, 둘 다 일본사회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첫 번째 귀국 뉴스는 10월 24일 도쿄만(灣)에 도착한 137구의 유골(遺骨)이다. 남태평양 솔로몬제도(諸島) 과달카날(Guadalcanal) 섬에서 발견된 구(舊)일본군의 시신이다. 참고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 사망자는 240만명에 달한다. 이 중 미(未)발굴·미귀국 사망자는 113만명에 이른다.
 
  사실 해외전선에서 숨진 일본군 유해의 본국송환은 어제오늘의 뉴스가 아니다. 국가만이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도 꾸준히 진행돼 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만든 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구 일본군 유해발굴과 관련된, 실화(實話)에 기초한 영화이다.
 
  이번 137구의 유골송환과 관련해 주목되는 점은, 유골을 일본에 귀국시킨 주체(主體)가 해상자위대(海上自衛隊)라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이런 행사에 군이 나서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일본에서는 다르다.
 
  일본 자위대는 명목상으로는 구 일본군과의 ‘절연(絶緣)’을 기반으로 한 군대이다. 침략전쟁을 일삼았던 구 일본군을 죄악시하면서 국내 방어에만 전념하는 군대라는 의미에서 이름도 ‘자위대’라고 붙인 것이다. 이 때문에 그동안 자위대는 적어도 겉으로는 구 일본군과 직접 연결되는 그 어떤 행동도 기피해 왔다. 그 금기(禁忌)가 이번에 깨진 것이다. 앞으로는 유해운송만이 아니라, 자위대가 직접 유해발굴에 참여할 것이 뻔하다. 유골의 신원이 밝혀지면, 전사자의 유가족을 군부대에 초대해, 엄숙한 의식(儀式)도 치를 것이다. 그 같은 극적인 상황을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인은 현재 아무도 없다. 종전이 아니라, 패전이란 말이 상식화할 수 있는 터전이 되는 셈이다.
 
 
  ‘날 수 있는 제로센’
 
  귀국과 관련된 두 번째 타임 슬립형 기사는, 11월 6일 보도된 제로센(ゼロ戰)이다. ‘제로센’은 레이센(零戰)이라고도 불리는 전투기로, 정확히는 영식함상전투기(零式艦上戰鬪機)를 지칭한다.
 
  이 전투기는 태평양전쟁의 출발점이 된 1941년 12월 8일의 진주만 공격과, 전쟁 말기 가미카제(神風) 자살공격기로 유명하다. 한국에서도 일부 보도됐지만, 일본에서는 이와 관련해 ‘날 수 있는 제로센(飛べる零戰)’이란 제목으로 크게 보도됐다. 현재 전(全) 세계에 남아 있는 제로센은 전부 30기 정도이다. 이 가운데 창공을 날 수 있는 제로센은 5기이다. 전부 미국에 있으며, 일본에는 하나도 없다.
 
  미국에 있던 5기의 제로센 중 하나가 ‘마침내’ 일본에 돌아온 것이다. 원래 이 비행기는 파푸아뉴기니에서 발견된 것으로 미국인이 소장하고 있었다. 그것을 러시아 무기상을 통해 제로센 부품을 구입해 비행 가능한 ‘작품’으로 만든 것이다. ‘날 수 있는 제로센’은 귀국 즉시 전시회에 들어간다. 2015년 종전기념일 70주년을 맞아 전국을 순회하면서 모습을 보일 전망이다. 이 비행기는 실제 비행에도 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제로센 귀국뉴스는 전 일본을 흥분시키고 있다. 인터넷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제로센 도착과 더불어 관련 얘기들로 떠들썩하다. 전쟁 당시의 영상과 함께, 전 세계 전시관에 배치된 30여 기의 제로센을 전부 일본으로 불러들이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과달카날섬에서 발굴된 일본군 유해송환과 제로센 귀국은 거의 비슷한 시점에 일어났다. 일본의 내셔널리스트들이 패전의 굴욕과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재료로 적극 활용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둘은 일본의 미래라는 측면에서 볼 때 ‘활용가치’가 전혀 다르다. 유해송환은 어제의 비극에 대한 오늘의 의식이라 볼 수 있다. 제로센은 비극이 아니라 오히려 70년 전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어제의 화려한 무용담(武勇談)의 주인공으로 부활한 것이다.
 
 
  신칸센은 제로센의 化身
 
1964년 개통한 고속철도 신칸센은 제로센을 만들었던 기술진이 만들었다.
  제로센에 대한 관심은 일본이 고도성장기에 들어간 19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다. 이유는 탄환열차, 즉 신칸센(新幹線)에 있다. 도쿄올림픽에 맞춰 당시 일본국철(國鐵)은 도카이도 신칸센(東海道新幹線)을 개통했다. 시속 200km로, 당시로서는 세계 최고 속도를 자랑했다.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찾은 것이 신칸센이다.
 
  기술적으로 볼 때 신칸센은 제로센을 땅에 옮겨 놓은 것에 비유된다. 제로센 기술이 그대로 신칸센에 응용된 것이다. 제로센에서 일했던 기술자들이 신칸센 개발에 투입됐다. 따라서 신칸센은 제로센의 화신(化身)이다.
 
  제로센에 대한 일본인의 남다른 관심은 인터넷상의 숫자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유튜브에 들어가 키워드로 ‘제로센’을 쳐 보자. 무려 26만8000건의 영상이 등장한다. 영어로 ‘Zero-Sen’을 넣어도 7만6800건이 등장한다. 태평양전쟁 당시 제로센의 활약에서부터 비디오 게임기로 나온 제로센에 이르기까지, 영상으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제로센’이란 키워드를 일본 아마존 닷컴(amazon.co.jp)에 넣어 보자. 책만으로 한정해 검색하면 6480건이다. 범위를 전체로 넓혀 검색하면 1만852건이 나온다.
 
  워싱턴 싱크탱크에서 공부 중인 일본인 친구에게, 왜 일본인들이 제로센에 집착하는지 물어봤다. 한국에 특파원으로 나간 적이 있는, 한국어에도 능숙한 일본인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그거, 한국의 거북선이라 보면 됩니다. 한국인들 거북선 얘기에 환호하고 자부심을 갖지요? 일본인에게 제로센은 거북선에 해당됩니다. 다른 것들도 예로 들 수는 있겠지만, 태평양전쟁 초 전투에서 미국과 연합국 전투기를 제압한 제로센이야말로 일본의 자존심이자 자랑에 해당됩니다.”
 
 
  《영원의 제로》 열풍
 
  올해 7월 개봉된 영화 <명량>은 역대 대한민국 영화 가운데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웠다. 대략 1500만에 육박하는, 한국인 4명 가운데 한 명이 본 영화다. <명량>이 한국인에게 어필될 수 있었던 것은 영화의 작품성이나 배우의 열연 때문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일본의 우경화와 한일 간의 갈등, 갈수록 불안해지는 동아시아 정세에 대해 우려하고 있던 국민들의 마음이 그렇게 나타난 것이다.
 
  공교롭게도 제로센 붐이 본격화한 것도 비슷한 시기이다. 무려 450만 부가 팔려 나간 소설 《영원의 제로(永遠の0)》가 출발점이다. 방송작가 출신인 햐쿠타 나오키(百田尙樹)가 2006년 8월 출간한 책으로 일본 소설 역사상 최고 판매부수를 기록한 작품이다. 2010년부터는 만화가 등장해 역시 베스트셀러가 됐고, 2013년 영화로 만들어져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영화의 주연을 맡았던 1980년생 오카다 준이치(岡田准一)는 방영 후 곧바로 대스타로 떠올랐다. NHK도 타큐멘터리 형식으로 《영원의 제로》를 소재로 한 얘기를 2부작으로 방영했다.
 
  《영원의 제로》는 내년에는 도쿄TV 개국 50주년 기념드라마로 만들어져 전파를 탈 예정이다. TV방영 소식이 전해진 순간부터 일본 미디어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결국 2006년부터 시작된 제로센 열풍이 10년째인 내년까지 이어지는 셈이다. 제로센의 귀국은 바로 이 같은 열풍 선상에서 이뤄진 결과라 볼 수 있다.
 
  필자는 2013년 《월간조선》 3월호에 기고한 글을 통해 일본 우경화의 특징 중 하나로 엔터테인먼트, 즉 흥행에 관한 부분을 강조한 적이 있다. 이시하라,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같은 우(右)의 대표주자들이 대중을 환호하게 만드는 엔터테이너라는 점을 설명했었다. 이들은 한국에서 일상화한, 정치적 슬로건을 남발하는 투사형·이념형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다. 이들은 먼저 사람들을 무대에 끌어모아 관심과 지지를 얻어 낸 뒤 우향우로 나아가는 글래디에이터 정치가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 당시, 야당과 반대파들은 고이즈미의 정치를 ‘극장정치(劇場政治)’라고 비판했다. 사람들이 흥미를 끌 만한 이슈를 앞세워 끌어들여 세를 모은 뒤, 정책이란 이름으로 상대방을 압도하면서 정통성을 굳히는 것이 고이즈미식 정치였다. 예를 들어 우정성(郵政省)내 낙하산 관료를 공격하거나, 어느 날 갑자기 북한으로 가서 김정일을 만나는 식으로 관심을 끈 뒤 자신이 생각을 실현해 나가는 정치이다. 유권자들은 정치적 메시지를 들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스타를 만나러 가는 기분으로 고이즈미의 연설장으로 갔다.
 
  10년째로 접어들고 있는 제로센 열풍은 일본이 갖는 엔터테인먼트 정치의 성격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엔터테이너로서의 내셔널리즘, 내셔널리즘으로서의 엔터테인먼트가 제로센이다.
 
  그러나 주목할 부분이 하나 있다. 내셔널리즘 정치의 주체에 관한 부분이다. 고이즈미와 이시하라가 개개인의 인기나 카리스마를 통해 발전해 나가는 데 비해, 21세기 제로센은 개인이 아닌 흥행성 작품 시리즈를 통해 세를 몰아가고 있다. 정치가와 같은 개인을 넘어서, 동시다발적인 작품 시리즈를 통한 흥행이다. 굳이 구분하자면, 개인과 집단이라는 틀로 나눠질 수 있다.
 
  이시하라의 경우 아주 예외적이지만, 사실 개인을 기초로 한 우향우 엔터테인먼트는 그렇게 오래가질 못한다. 극장정치의 고이즈미도 지난번 도쿄도(東京都)지사 선거에서 별다른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 전역을 뒤흔들었던 하시모토 도루도 급추락했다.
 
  이에 반해 소설이나 영화를 기초로 한 집단적 차원의 흥행성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길게 갈 가능성이 많다. 장기적인 차원의 우향우가 되는 셈이다. 개개인이 범하기 쉬운 실수나 판단착오가 없기 때문이다. 조직 차원에서의 흥행은 한 번 성공할 경우, 롱런할 가능성이 많다. 무려 48명이 한꺼번에 나와 춤추고 노래하는 아이돌 그룹 AKB48은 일본 대도시 전역에 지부(支部)를 만든 상태이다. 영원하지는 않겠지만, 상당한 기간 일본 연예계를 석권(席捲)할 아이돌이 AKB48이다.
 
 
  제로센의 고향 나고야
 
  제로센은 1937년 4월 첫 생산 이후 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1945년 8월까지 전부 1만430기가 생산됐다. 한 달 평균 100대 정도 생산한 셈이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미국의 비행기 생산능력은 한 달 평균 1000여 대에 달했다.
 
  제로센은 원래 중·일전쟁(中日戰爭) 때문에 만들어졌다. 일본군은 중국군을 공격하기 위해 장거리 폭격을 시도했다. 이를 위해서는 폭격기를 호위할 전투기들이 필요했다. 하지만 당시 일본 전투기는 순항거리가 짧아 폭격기를 효과적으로 호위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폭격기의 피해가 늘어나자 일본 해군은 긴 순항거리와 빠른 속도, 무장능력을 강화한 비행기를 필요로 하게 됐다.
 
  도쿄대학 우주항공연구소에서 가르치던 비행기 설계전문가 호리코시 지로(堀越二郞)가 신형 전투기 개발을 진두지휘했다. 그 결과 순항거리 3500km, 순간 최고속도 시속(時速) 533km을 자랑하는 제로센이 탄생했다. 무장능력과 공격용 화기도 당대(當代) 어떤 비행기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파괴적이고 다양했다. 제로센은 장거리 폭격기와 전투기의 장점만을 합친 비행기였다.
 
  제로센을 제작한 곳은 미쓰비시(三菱)중공업이 있는 나고야(名古屋)이다. 앞서 살펴본 신칸센을 만든 곳도 나고야다. 도요타(豊田)자동차 본사도 나고야에 있다. 빠른 속도와 높은 에너지 효율성을 기초로 한 일본의 현대 테크놀로지는 70년 전 개발된 제로센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로센과 태평양전쟁
 
  진주만 기습 당시 출격한 제로센은 전부 749기였다. 이 가운데 미귀환기는 29기이다. 미군의 반격으로 격추된 비행기도 있지만, 대부분은 작전 수행 후 성공리에 날아오다가 바다에 추락했다. 미군 전투기를 비롯해 당시 전투기의 일반적인 순항거리를 기준으로 보면 진주만은 일본 항공기의 공격권 밖에 있었다. 일본 해군은 진주만까지의 항속거리를 면밀하게 계산하고 기습을 감행했지만, 무리하게 연료를 소비한 비행기들은 귀환하지 못했다.
 
  미군은 상상 밖의 거리에서 공격해 온 제로센의 위력에 깜짝 놀랐다. 진주만 공격은 긴 항속거리를 자랑하는 전투기 등장이란 점에서 인류 전사(戰史)의 새로운 장(章)을 열었다.
 
  제로센은 동남아시아 전선에도 투입되어, 개전(開戰) 한 달 만에 동남아시아 전역의 제공권(制空權)을 장악했다. 제공권이 넘어간 상태에서 지상군 싸움의 결과는 뻔하다. 영국군 수만 명이 한꺼번에 포로로 잡혔다. 당시 일본군이 장악한 동남아시아 전선(戰線)을 보면 제로센의 순항거리, 제공권과 일치한다.
 
  하지만 제로센의 전성시대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42년 6월, 미군은 자국(自國) 영토인 알류산 열도(列島) 내 ‘더치 하버(Dutch Harbor)’에 불시착한 제로센을 발견했다. 이 비행기를 샅샅이 해부한 미군은 ‘신비의 전투기’ 제로센의 장점과 단점을 모조리 파악했다. 이어 미국은 제로센을 모방한 대응 전투기 개발에 나섰다. 1942년 12월에 등장한 미 육군 전투기 키드 38라이트닝(록히드사 제작), 미 해군의 F4U 찬스워터(Chance Vought), F6F 헬케트 등이 그것이다.
 
  제로센은 이들의 등장과 함께 순식간에 빛을 잃었다. 개량형을 만들어 단점을 보완해 나갔지만, 10배가 넘는 미군의 전투기들을 당해 낼 수는 없었다. 1942년 6월 5일 미드웨이 해전(海戰)을 시작으로 일본 해군은 제해권과 제공권을 차례로 상실했다. 제로센 몰락과 함께 일본은 패전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자신과의 대화’에 충실한 소설
 
450만 부가 팔린 소설 《영원의 제로》(왼쪽)는 2013년 영화로도 만들어져 공전의 히트를 했다.
  450만 부 팔려간 공전의 베스트셀러 《영원의 제로》는 전쟁 말기 가미카제 자살공격기로 변신한 제로센에 관한 얘기를 담고 있다. 할아버지의 궤적을 추적하던 손자는 할아버지가 가미카제 특공대원으로 출격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할아버지의 흔적을 하나하나 더듬어 가던 손자가 죽은 할아버지와 정신적으로 교감하게 된다는 것이 소설의 주요 내용이다.
 
  《영원의 제로》는 일본문화가 그러하듯, 조용하면서도 조금씩 가슴속을 파고드는 ‘슬로 터치(Slow Touching)’형 소설이다. ‘반자이(萬歲)’를 외치며 일본도(日本刀)를 치켜들고 적진으로 돌격해 들어가는 이야기가 아니다. 너무도 약하고 소시민적이며,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던 평범한 젊은이가 왜 무시무시한 가미카제에 타지 않으면 안됐는지, 왜 자살특공대에 나서기를 희망했는지를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일본인들이 흔히 말하는 ‘자신과의 대화(自分探し)’에 충실한 작품이다.
 
  노력하고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은 일본인의 미덕(美德)이자 장점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러하듯 그 같은 장점을 엉뚱한 곳으로 연결해 스스로의 무덤을 판 나라가 일본이다.
 
  제로센 열풍의 출발지인 《영원의 제로》는 스토리 자체로서는 너무도 아름답다. 곧고 바르게 살려는 나약한 청년의 몸부림이 소설 구석구석에 묻어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볼 때 가미카제는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행위인 동시에, 일본군이 마지막으로 자행한 광적(狂的)인 발악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소설 《영원의 제로》는 ‘패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이를 가는 일본인들에게는 최적의 교과서이다.
 
  전쟁 당시 가미카제 참전 여부는 ‘공기’를 통해 결정된 상태이다. 말만 안할 뿐 반대할 수 없다. 고래고래 고함을 치면서 성전(聖戰)을 부르짖지만, 출격 전날 밤에는 어머니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비행장에 모인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의 얼굴은 눈물로 퉁퉁 부어 있었다. 모두가 살고 싶고, 가족들을 위해서도 살아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 그들이 희망이었다. 그러나 소설 《영원의 제로》는 그 같은 얘기를 지나가는 소문처럼 가볍게 다룬다. 스스로 판단해 결정한, 본인과 가족 나아가 일본과 천황을 위해 꽃잎처럼 사라진 것이 가미카제라고 미화한다. 더불어 가미카제가 탄 제로센이 얼마나 위대한 전투기였던가에 관한 얘기가 반복 또 반복된다.
 
 
  ‘선진기술 실증기’ 心神
 
  현재 한국은 차세대 전투기 사업을 진행 중이다. KFX 또는 보라매사 업이라 불리는 프로젝트로 2021년까지 8조원을 투입해 한국형 전투기 180여 대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 한국에서 벌어지는 방위산업만큼 불투명한 것도 없다. 빈정대는 것이 아니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고 예산도 들쑥날쑥이다.
 
  그 같은 ‘한심한’ 상황도 내년 1월을 기점으로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일본의 최신예 비행기 ‘신신(心神)’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미 부분적으로 시험비행에 들어간 이 비행기는 스텔스 기능을 가진 최신 테크놀로지의 결정판이다.
 
  공식적으로 ‘신신’은 전투기가 아니다. ‘선진기술 실증기(先進技術實證機)’라는 희한한 프로젝트하에 탄생된 연구기(硏究機)다. 따라서 미사일 등 무기 탑재에 관한 부분은 일단 ‘신신’의 연구 대상 밖이다.
 
  하지만 트랙터에 두껑을 덮고 외벽을 강철로 두껍게 만든 뒤, 포(砲)를 달면 탱크가 된다. 연구기 ‘신신’에다가 동맹국인 미국의 위성항법장치(GPS) 시스템을 기초로 미사일을 장착하면 최신예 전투기가 되는 것이다.
 
  첨단 비행기가 그러하듯 제작과정 전부가 베일에 싸여 있다. 속도와 기능에 관한 갖가지 추측이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아무도 모른다.
 
  흥미로운 것은 비행기 타이틀인 ‘신신’이다. ‘신신’은 제로센의 마지막 모습인 가미카제(神風)의 ‘신(神)’을 연상케 하는 이름이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가미카제를 생각하는 비행기’로 풀이할 수도 있다. 일본의 많은 이들은 “신신은 ‘제로센의 21세기의 버전’에 해당된다” “제로센을 만들 당시의 정신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비행기”라고 공언한다. ‘신신’을 제작하는 곳도 제로센을 만들었던 미쓰비시중공업이다. ‘신신’은 일본이 1945년 8월 15일 이후 처음으로 만들어 낸 전투기이기도 하다. 지난 10월 9일에는 전후(戰後) 처음으로 재생산한 미쓰비시중공업의 초고속 여객기도 등장했다.
 
 
  거북선과 제로센
 
  제로센이 한국의 거북선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필자는 너무도 초보적인 의문을 하나 가졌다. 20세기 역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제로센은 ‘기능과 성능’이란 면에서 객관적 검증이 가능하다.
 
  안타깝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지만, 거북선은 과연 어떤 함선(艦船)인지 무척 궁금했다. 거북선을 깎아내리자는 것이 아니라, 진짜 거북선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을 뿐이다. 영화 <명량>에 나오는 식의 모습이라면, 그 무거운 배를 빠른 속도로 나아가게 만드는 동력(動力)의 근거가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입에서 불이 나오는 거북선도 봤는데, 과연 어떤 식의 기술이 활용됐을지 알고 싶다.
 
  ‘팩트로 움직이는 제로센과 전설(傳說)과 신화(神話)로 움직이는 거북선’, ‘1만여 명의 조종사를 통한 집단으로서의 제로센과 이순신 장군 등 주변 몇몇 사람들을 통한 거북선’ 같은 비교가 머릿속에 자꾸 떠오른다.
 
  거북선과 제로센을 비교하자는 것이 아니다. 양국의 자존심과 자랑거리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방식이 너무도 다르다는 의미이다. 제로센 열풍은 정신 나간 우익들의 ‘일시적인’ 한풀이에 그치지 않는다. 거북선과 제로센을 대하는 한일 간의 큰 인식차를 한층 더 크게 벌려 줄 ‘패전의 증거’라는 점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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