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록

독일은 統一 과정에서 지방행정체계를 어떻게 통합했나?

“오래된 길을 가느니 새로운 길에서 휘청거리는 게 낫다”

  • 글 : 카이 아부샤트 독일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州 의원  
글자 크기 조정
  • 스크랩
  • 본문 음성 듣기
  • 글자 크기 조정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통일 전 98개의 동서독 도시 자매결연이 이뤄졌다. 통일이 진행되면서 그 숫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해 1990년 10월에는 854개에 이르렀다. 자매결연을 통해 統一 독일 내에는 소통의 공간이 구축됐고, 이 과정에서 동독 지방자치 재건의 토대가 마련됐다

⊙ 독일 국민, 自治에 대한 의식·욕구 매우 강해… 이 傳統이 동서독 행정통합에 큰 역할
⊙ 東西獨 자치단체들의 협력이 통합 초석 마련. 자매결연 맺고 음악·문화행사·스포츠대회 열어
⊙ 통합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새로운 법·제도 마련과 함께 탁월한 창의력과 순간 대응능력

카이 아부샤트
⊙ 45세. 포르타 베스트팔리카市 부시장 역임.

[편집자 주]
한국지방행정연구원(원장 李勝鍾) 개원(開院) 30주년을 기념해 지난 9월 17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통일대비 지방행정체계 구축을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역할과 과제’라는 주제로 국제세미나가 열렸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과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한국사무소 대표 라스 안드레 리히터)이 이번 행사를 공동으로 주최했다. 통일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남북 간 지역통합의 문제점을 사전에 파악하고, 통일에 성공한 독일·베트남 등 해외 사례에서도 좋은 해결방안을 찾고자 세미나를 기획했다. 이승종 원장은 개회사에서 “통일시대에 효과적으로 남북통합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 조직의 통합에 대한 준비가 중요하다”며 “지방행정구역, 지방행정계층, 기관구성, 지방공무원 역량, 지방재정, 주민교육에 관한 세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래의 글은 발제자로 나선 카이 아부샤트(Kai ABRUSZAT) 독일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州) 의원이 발표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독일이 통일 전후로 지방행정체계 통합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알 수 있다.
카이 아부샤트 독일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州 의원.
분단된 두 체제가 통일을 달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그래서 독일 통일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통일을 위한 준비안(案)이나 기본 방향을 미리 마련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큰 틀에서 통일을 논의하는 것 자체도 큰 도움이 된다.
 
  동독과 서독이 통일 후, 시(市)와 게마인데(Gemeinde·독일 지방자치의 조직적 기본단위)의 행정 구조를 어떻게 일원화하고, 또 어떻게 동독을 재건(再建)했는지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독일에서 지방조직체계 통합은 전체 통일 과정 중 매우 핵심적인 사안 중 하나였다. 이 과정에서 서독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독일의 지자체 형태
 
  통일 과정에서 지자체의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일의 다단계적 국가체제에 대해 먼저 알 필요가 있다.
 
  독일은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를 갖고 있는 연방주의 국가이다. 형식적으로 두 개로 구분할 수가 있는데, 연방(聯邦) 단위와 주(州) 단위가 바로 그것이다. 연방 단위에서는 연방정부, 연방의회 등이 국가 전체를 총괄한다. 주 단위에서는 16개 주(도시이면서 州인 Stadtstaaten 포함)가 주 고유의 사안을 담당한다. 제가 속해 있는 인구 1800만의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도 그중 하나이다.
 
  이처럼 두 단계로 구분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세 번째 단계라 할 수 있는 게마인데를 빼놓고 독일의 행정체계를 논의할 수는 없다. 게마인데는 공법상 법인(法人)이다. 지자체의 법적 근거는 독일기본법 28조 2항이라 할 수 있다. 이 법에 따라 지자체의 자치권이 헌법상 보장된다. 법조문에는 “게마인데는 법률 내에서, 자기 책임하에, 지역의 사안을 다룰 권한이 보장되어 있다”고 돼 있다.
 
  게마인데가 주민들을 위해 스스로 행동하는 자치단체로 인식하는 데 매우 필수적인 요소가 바로 자치권이다. 독일에는 ‘보충성의 원칙’이라는 개념이 있다. 하부 단위에서 스스로 조정·해결할 수 있는 사안을 상위 행정 단위에서 해결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을 근거로, 독일의 모든 지자체는 예컨대 극장이나 박물관을 운영할 것인지, 건축계획에서 어떤 지역을 제외시킬 것인지 등 경제개발 정책을 스스로 수립한다. 이 모든 결정은 지자체 스스로 행하고, 중앙정부의 영향·개입으로부터 보호받는다.
 
  독일 지자체는 규모가 매우 작다. 독일 전체 인구가 8000여만 명인데, 이들은 1만1000여 개의 게마인데에 살고 있다. 인구 300여 명의 작은 게마인데는 일반 규모의 자치행정을 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상위 지자체가 소규모 게마인데의 현안(懸案)을 묶어 해결하기도 한다.
 
 
  통일 전 동독, 지방자치제 全無
 
동서독 지방자치단체 자매결연이 통일 후 동서독 지방행정 통합에 큰 역할을 했다. 1989년 11월 동독인들이 베를린 장벽을 넘으려 하자 서독 주민들이 손을 뻗어 도와주고 있다.
  독일은 지난 1970년대에 행정개편을 통해 지자체 조직을 개선한 바 있다. 그러나 여전히 지자체 규모 면에서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100만 인구의 대(大)도시 쾰른은 광범위한 결정권한을 갖고 있지만, 주민 수 5000여 명의 작은 게마인데는 그렇지 못하다.
 
  독일 역사를 보면, 게마인데의 규모와 관계없이 자치에 대한 의식과 욕구가 강하게 깔려 있다. 이러한 전통이 냉전 후 동서독 통합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통일 전 동독에는 지방자치란 말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이 분단되면서, 동독 정부가 소위 ‘민주적 중앙집권체제’를 위해 지방자치 개념을 없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시·읍·면과 같은 지방행정 단위는 국가행정의 최하부기관으로 강등됐고, 지역의 고유성을 잃어버렸다. 유치원, 체육시설, 문화시설, 직업학교, 소방서 등 서독에서는 자치단체 고유 영역에 속하는 분야를, 동독에서는 국영기업이 맡았다. 이들 기관은 사회주의통일당(SED)의 간섭을 받거나 강력한 영향하에 있었다. 동독에는 주를 대신해 14개의 ‘구역(Bezirk)’이 있었다. 물론 자치권을 갖지 못했으며, 국가행정의 중간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구역은 사회주의통일당 세력이 이끄는 중앙정부의 통치를 받았다.
 
  독일 통일은 동독이 서구화된 서독에 ‘가입(beitreten)’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현명하게도 1949년 헌법을 기초한 서독 법학자들은 하나의 특별 조항을 마련해 뒀다. 서독과 동독이 통일 시 동독이 서독의 법적, 행정적 시스템을 완전하게 받아들인다는 내용의 조항을 둔 것이다. 실제로 동독의 중앙집권적 통치원칙은 민주적, 연방적 구조를 가지고 있던 서독의 그것과 전혀 호환될 수 없었다. 또 동독 체제에는 법치주의와 사회복지국가(Sozialstaatlichkeit) 원칙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반도 전무했다. 결국 전수(Transfer)를 통한 변환(Transformation)이라는 형식의 통일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는 지방자치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동독에는 지방자치 구조도 전무하고, 주민들로부터 선출된 지역 정치인도, 오늘날 의미에서 볼 때 법치주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는 지방행정기구도 없었다. 사실상 모든 것을 새로 만들어야 했다. 지방헌법(Kommunalverfassung)을 통해 동독 지방자치의 재건을 위한 법적 토대를 만들었다.
 
 
  동서독 지자체 간 자매결연이 통일의 물꼬
 
독일 국민 8000여만 명은 1만1000개의 게마인데(獨 행정 기본단위)에 거주하고 있다. 독일 사람들은 자치 의식이 매우 강하다.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 소속 라팅엔시의 주민들.
  동독에서의 지방행정체제 개편 작업은 거의 ‘탐험’을 떠나는 작업과 같았다. 통일 직전 서독의 고위 정치가들도 이렇게 빠른 통일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동서독 모두, 깔끔하게 준비된 통일계획방안이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통일 작업 과정에서 구체적인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창의력(Kreativität)과 즉석으로 대응해 나가는 임기응변식 능력이 절실했다.
 
  독일 통일에서 초석이 된 것은 동서독 간 교류였다. 통일 전 소위 동독-서독 도시 간 파트너십(獨獨자매결연)이 교류의 근거가 됐다. 독독 자매결연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서독이 과거 적군(敵軍)이었던 프랑스나 영국의 도시들과 맺었던 자매결연 프로그램을 모델로 했다. 동서독 자매결연의 1차 목표는 지방 단위에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화해하겠다는 것이었다.
 
  서로 다른 두 도시의 주민들이 음악, 문화행사, 스포츠대회 등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상향식(Bottom-Up) 접근법은 이른바 ‘지자체 외교’라 할 수 있다. 자매결연을 통한 이러한 인간 대(對) 인간의 교류는 여러 영역에서 심층적인 협력을 가능하게 했고, 마침내 ‘접근·교류(Annährung)를 통한 변화’를 가져왔다.
 
  당시의 동독 정부는 자매결연을 통해 서독과의 접촉빈도가 높아지면 그들의 내적 구조가 붕괴·와해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독 지도자들은 이웃(neighbor)으로서 관계를 개선시켜 보겠다는 서독 측의 평화적 노력을 완전히 차단할 수가 없었다. 여기에는 동독의 정치권이 국제사회로부터 외교적 노력을 인정받으려는 의도도 깔려 있었다.
 
  이런 동서독 간 서로의 필요에 의해 1986년 서독의 살루이스와 동독의 아이젠휴텐슈타트 사이에 첫 공식 자매결연이 이뤄졌다. 그 뒤 한자동맹(Hansa同盟·13~17세기 독일 북쪽의 여러 도시 사이의 무역동맹) 도시인 브레멘과 로스톡, 부퍼탈과 슈베린 등 몇몇 도시의 협력사업이 뒤를 이었다. 1989년 11월까지 총 98개의 동서독 도시 자매결연이 이뤄졌고, 이후 통일이 진행되면서 그 숫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해 1990년 10월에는 그 수가 854개에 이르렀다. 자매결연을 통해 통일 독일 내에는 공통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공간이 구축됐고, 자연스럽게 동독의 지방자치 재건을 위한 토대도 마련됐다.
 
 
  수많은 난관 뚫은 동독 再建사업
 
  통일 후 재건 작업은 여러 측면에서 어려웠다. 우선, 구 동독 지자체는 짧은 시간 내에 완전히 새로운 업무를 이행해야 했다. 지자체 고유 업무를 수행할 능력이 상당히 뒤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또한 새로운 법적 토대 위에서 지자체 사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현실적 어려움도 있었다. 지자체가 국가 최하위에 위치한 실행기구가 아니라 다양한 권리와 목소리를 가진 주민을 위한 자주적인 서비스 제공자의 역할도 해야 했다. 중앙정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데에만 익숙해 있던 동독 지방공무원들에게는 너무나 커다란 도전이었다.
 
  지방자치에 대한 권한은 권리이면서 의무였다. 주민등록사무소(Meldewesen·우리의 동사무소) 설치, 주민복지, 청소년 사무, 상하수도 완비, 공공안전 등은 미룰 수 없는 업무였다. 주민들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기본업무(Daseinsvorsorge)는 하루라도 멈춰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동독 경제의 재건을 위해, 그리고 서독 기업의 동독 지역 이전·진출을 위해 동독 내 지방행정과 지방 인프라도 새로 마련해야 했다. 토지개발 계획, 건축 플랜, 경제지원, 도로건설, 대중교통시설 구비 등 지자체가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기업들이 요구하는 전문 직업기술 습득을 위한 직업학교도 만들어야 했다. 동독 주민들의 복지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모든 것을 새롭게 구축해야 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문제에 봉착했다. 동독 시절 중앙정부에 조력했던 행정공무원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결국 동독 시절 중앙정부에 깊게 연루되어 있던 인물은 배제했다. 동독 시스템하에서 조력자 정도로 활동했던 직원들에 대해서는 신분을 그대로 유지토록 했다. 그들은 지역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그만큼 활용가치가 있었다.
 
  중요한 점은 동독 지역의 행정구조 재건 작업에 서독 출신 지방공무원들을 빠짐없이 배치했다는 사실이다. 통일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이러한 변화들은 서독의 지방공무원들에게 승진의 기회로 작용했다. 서독의 어느 작은 조직의 장(長)이었던 공무원이 보다 큰 규모의 동독 지자체 행정책임자로 승진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요컨대 통일 과정에서 동독 지역의 지자체는 서독 게마인데와 지자체협의회의 경험, 지원에 의존했다. 동독 지자체는 ‘눈높이에 맞춘 재건 사업’을 수행해 나갔던 것이다. 독독 자매결연을 통해 쌓아온 네트워크나 커뮤니케이션(대화·소통) 경험은 재건 작업 수행에 큰 도움이 됐다.
 
 
  서독 지자체의 公共원조
 
  구체적으로 동독 지역의 지방행정구조 재건에서 큰 도움을 준 것은 ‘신연방주 지방행정 재건 조력’이라는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지방자치단체협의회였다. 서독의 여러 지자체와 전국협의회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이 기관은 지자체들의 원조능력과 가능성을 점검하고, 원조업무를 조정할 뿐 아니라 행정 재건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연방정부와 연방주에 직접 요구하기도 했다.
 
  지방자치단체협의회는 동독 지역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상담센터를 설립하고, 일원화된 정보제공 토대를 마련해 주고, 서독 연구기관 출신의 교육인력을 파견하는 일을 했다. 정수시설 건설계획, 건설업체의 물적 기부(Sachspenden) 연결, 문화재 보존에 대한 전문지식 전수, 상하수도 노하우 전수, 마을금고 설치 지원 등 실생활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일들을 했던 것이다. 지방자치단체협의회는 비효율적인 동독의 지역개편 작업도 수행했다.
 
  연방주 차원에서도 동독 지자체의 재건을 위한 다양한 지원이 이뤄졌다. 예를 들어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는 동독 브란덴부르크주의 ‘게마인데 재정에 관한 법률’ 초안은 물론 지방 규칙들을 마련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독 지자체에 적용하던 법규정을 그대로 전수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동독의 신(新)연방주들은 서독의 법규정을 해당 지역에 맞게 수정·발전시켰다.
 
  통일 독일의 지방행정 재건 사업은 육안으로 항로를 잡아가며 ‘새롭게 항로를 개척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대탐험’이었다. 연방과 주 차원의 법적(normgebende), 재정적인 지원이 있었지만 동서독 지역의 지자체들 간 교류와 전국 단위의 지자체협의회의 기여가 없었다면 빠른 성과를 낼 수 없었다.
 
 
  統一은 수많은 걸림돌을 걷어내는 일
 
  요컨대 성공적 지방행정구조 개편을 위한 첫 번째 요인은 통일 전 자매결연사업을 통해 만들어놓은 커뮤니케이션 채널(소통의 공간)이었다. ‘작은 발걸음 하나 하나로 가까워져 간다’는 원칙이 통일 완수라는 민족적 과제를 수월하게 해줬던 것이다.
 
  남한과 북한 사이의 교류 과정에서도 이러한 독일의 예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나의 독일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특히 지방행정 분야에서는 말 그대로 수많은 ‘걸림돌’을 걷어내는 지난(至難)한 작업이 있었다. 통일 한국을 위해 독일의 경험을 유명한 작가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길 위에 놓인 돌로도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수 있다”(괴테). “오래된 길 위를 밟아가느니 새로운 길 위에서 휘청거리는 게 낫다”(요헨 마리스).⊙
  • 스크랩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