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넷에서 法治, 全人大 개혁 주장 나와
⊙ 《신경보》 《남방주말》 등, 《환구시보》 사설 게재하라는 黨선전부 지시 거부
⊙ 시위 후 村民자치 확대, 환경오염 보도, 톈안먼사태 관련서 출간 등 변화 움직임 보여
⊙ “중국 인민들이 아직 배를 전복시킬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파도가 높아지면
배가 스스로 전복될 수도 있다”
朴勝俊
⊙ 59세.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졸업. 고려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조선일보》 홍콩·베이징 특파원, 국제부장, 중국전문기자, 북중전략문제연구소장,
인천대 중국학연구소 겸임교수 역임.
⊙ 現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 저서: 《등소평 평전》 《중국이 재미있다》 《중국, 중국인 똑바로 보기》
《격동의 외교비록 한국과 중국 100년》.
⊙ 《신경보》 《남방주말》 등, 《환구시보》 사설 게재하라는 黨선전부 지시 거부
⊙ 시위 후 村民자치 확대, 환경오염 보도, 톈안먼사태 관련서 출간 등 변화 움직임 보여
⊙ “중국 인민들이 아직 배를 전복시킬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파도가 높아지면
배가 스스로 전복될 수도 있다”
朴勝俊
⊙ 59세.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졸업. 고려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조선일보》 홍콩·베이징 특파원, 국제부장, 중국전문기자, 북중전략문제연구소장,
인천대 중국학연구소 겸임교수 역임.
⊙ 現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 저서: 《등소평 평전》 《중국이 재미있다》 《중국, 중국인 똑바로 보기》
《격동의 외교비록 한국과 중국 100년》.
지난 3월 12일 차이나 닷컴(china.com)의 토론방 ‘중화논단(中華論壇)’에 올라온 글의 첫머리다. 필자의 닉네임은 ‘흑암의 깊은 생각(黑暗的深思)’. 글의 제목은 ‘중국의 정치 개혁, 어떻게 개혁해야 하나’. 이 글의 첫머리는 시진핑이 지난 1월 22일 당 중앙기율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에 참석해서 한 연설 가운데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 회자(膾炙)되어 유명한 말이 되어가고 있는 구절을 패러디한 것이다. 실제로 시진핑이 한 말은 이런 것이었다.
“권력 행사에 대한 제약과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권력을 바구니 안에 넣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부패를 징계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부패를 방어하는 시스템이나 부패를 보호하는 시스템이 작동해서는 안 된다. 각급 지도 간부들은 잘 기억해야 한다. 어떤 사람도 권력의 바깥에서 절대권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의 권력 행사도 반드시 인민들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인민들에 대해 책임져야 하고, 인민들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
‘흑암의 깊은 생각’
‘흑암의 깊은 생각’은 시진핑의 연설 가운데 ‘권력을 바구니 안에 넣어야 한다’는 말을 패러디해서 ‘권력을 바구니 안에 넣어야 하는데, 권력을 바구니 안에 넣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권력을 바구니 안에 넣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을 담은 것이다. ‘흑암의 깊은 생각’이라는 닉네임의 중국 네티즌의 논리는 ‘현재 중국 정치 지도자들이 행사하는 권력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다시 말해 근본적으로 정치권력에 대한 제한을 가하고, 민주화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논리이다.
“내 생각에 바구니는 바로 법치(法治)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력을 법률의 햇빛 아래에서 공개하고, 투명하게 행사해야 하며, 사회에 공평한 정의가 확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력을 법률의 햇빛 아래에서 행사하려면 무엇보다도 중국공산당이 스스로의 권한을 법률의 틀 아래에서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 ‘흑암의 깊은 생각’의 판단이다.
‘흑암의 깊은 생각’은 중국공산당이 스스로의 권한을 법률의 틀 안에서 행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덩샤오핑(鄧小平) 선생이 말한 일이 있다. 당(黨)은 당을 관리해야 한다고. 집권당은 스스로의 당무(黨務)만 잘 관리하면 되지 행정부에 대해 간섭할 필요는 없다. 당이 당무뿐만 아니라 행정부의 업무까지 간섭하는 것은 법치사회에서 빚어져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른바 당이 모든 것을 관리하는 ‘당관일절(黨管一切)’은 많은 폐단을 수반하고 있다. 당위원회가 최고 권력기구이며, 각급 당서기는 전권(專權)을 행사하고 있다.
이전에 어떤 고위 관리가 ‘성(省) 당위원회 부서기 겸 성장(省長)’이라는 직위를 아무래도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하는 말을 들은 일이 있다. 직위 이름에 성 당위원회 부서기를 성장 직위보다 앞에 쓴 이유는 성 당위원회 부서기가 성장보다도 높다는 뜻인가. 설마 성의 당위원회가 성의 행정 부문보다도 중요하다는 뜻은 아니겠지?”
‘흑암의 깊은 생각’은 인민대표대회 제도 개혁 이유에 대해서는 이런 주장을 편다.
“인민대표를 선출하는 인민들은 정작 그 인민대표를 잘 모른다. 인민대표는 자신을 뽑아준 인민들의 희망과 바람을 잘 모른다. 그런 인민대표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어떤 인민대표도 인민들에게 회의 결과를 보고하는 것을 보지 못했고, 자신의 직무를 어떻게 수행하는지 인민들은 알지 못한다.…”
‘흑암의 깊은 생각’은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털어놓는다.
“중화민족은 선량하면서도 견인불발(堅忍不拔)의 민족이다. 길고 긴 밤이 계속되고 있지만, 우리는 광명을 향해 가는 길에서 절망한 일이 없다. 잔포(殘暴)한 전제(專制) 아래에서 우리는 자유민주와 평등을 향해 가는 길을 잃은 일이 없다. 정치개혁을 추진하자. 당의 권력자들의 자각과 자발적 행동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인민들이 소리치며 행동하자.”
시진핑 시대에 터져나온 민주화의 조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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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암의 깊은 생각’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중국 네티즌은 전국인민대표대회 개혁 등 민주화를 요구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
이른바 ‘제5세대’로 불리는 시진핑(60) 당총서기가 지난해 11월 중국공산당 총서기 자리에 오른 데 이어 지난 3월 5일 개막된 전국인민대표대회 결과 국가주석에도 취임함으로써 시진핑 시대가 열렸다. 시진핑은 전임자 후진타오(胡錦濤)보다 훨씬 리버럴(liberal)해 보이고, 보다 더 인민들에게 다가가는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관영 미디어들이 전례(前例) 없이 수도 베이징(北京)의 스모그 존재와 강도를 국제적인 기준치의 수십 배에 달하는 수치를 동원해 가며 보도하는 등 언론자유도 많이 풀린 듯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이에 따라 시진핑 시대에는 중국의 정치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전을 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최근 들어 중국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더구나 앞에 인용한 것처럼 많은 중국 네티즌들은 시진핑 시대가 개막하는 과정에서 민주화에 대한 커다란 희망을 “자유민주와 평등을 향해 소리치며 나아가자”는 직설적인 목소리에 담아서 외치고 있다.
그러나 중국 내부 사정을 비교적 잘 이해하는 대표적인 외국 매체들의 시각은 일단 “시진핑을 비롯한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자발적인 정치개혁과 민주화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SNS를 통한 정치적 의견 표시가 당국의 통제 범위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면서 1980년대 한국과 필리핀에서 진행된 것 같은 민주화 요구의 폭발이 이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으나, 현재의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자발적으로 정치개혁과 민주화에 나설 가능성은 여전히 낮게 볼 수밖에 없다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시진핑, “소련공산당은 왜 무너졌나?”
중국의 민주화와 정치개혁 문제를 관심 깊게 보도해 온 《뉴욕 타임스》는 지난 2월 14일 시진핑이 지난해 12월 중국 남부 광둥(廣東)성을 방문했을 때 현지의 당 간부들에게 비공개 연설을 통해 “소련공산당을 무너지게 만든 고르바초프가 남긴 교훈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뉴욕 타임스》는 “시진핑이 ‘정치적으로 부패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이단자들이 많아지고, 군대는 충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련공산당이 무너졌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촉구했으며, 그런 촉구를 중국 내에서 가장 자본주의가 활성화된 광둥성에서 하면서 전통적인 레닌주의적 원칙론으로 되돌아갈 것을 강조했다는 점이 아이로니컬하다”고 평가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이 보도하지는 않았지만 고위 관료들 사이에 유포되고 있는 이 연설의 요약본에서 시진핑은 “왜 소련은 해체됐는가, 왜 소련공산당은 무너졌는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들의 이상(理想)이 흔들렸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시진핑은 그러면서 “고르바초프가 그 위대한 소련공산당의 해체를 선언했을 때 아무도 저항하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전(全) 세계 화교(華僑)들로부터 객관성을 인정받는 홍콩의 《아주주간》(亞洲週刊)은 3월 17일자에서 시진핑이 광둥성 방문 시 당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비공개 연설의 내용을 보다 상세하게 전했다.
“黨이 軍을 장악해야 한다”
“소련은 왜 해체되고, 소련공산당은 왜 무너졌는가. 최종적으로는 하룻밤 사이에 성(城) 위에 걸린 깃발이 바뀐 셈이다. 소련의 역사가 전면적으로 부정되고, 소련공산당의 역사가 부정됐으며, 레닌도, 스탈린도 부정됐다. 모든 것이 부정되면서 역사 허무주의에 빠졌다. 각급 당조직은 아무런 역할도 못했다.
왜 우리 중국공산당이 군을 지도하는 지위를 조금의 동요도 없이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소련의 해체에서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며, 소련 군대의 비(非)정치화, 군(軍)이 당의 지휘를 받지 않고 중립적인 군대가 된 것, 당의 무장이 해제된 것이 바로 소련공산당의 해체를 가져왔다.
당시 소련의 해체를 막아보려는 사람이 있었다고 해도, 고르바초프가 혹시 그렇게 하려고 했어도 그의 손에는 아무런 수단도 없었다. 옐친이 탱크 위에서 연설을 할 때 군대는 중립을 지켰으며, 마침내 고르바초프는 소련공산당의 해체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시진핑은 중국공산당 간부들에게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마오쩌둥(毛澤東) 사상을 견지하고, 덩샤오핑 이론과 장쩌민(江澤民) 전 총서기의 사상을 잘 견지하며, 공산당원으로서 가져야 할 최고의 이상인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과 이상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아주주간》은 전했다.
이 잡지에 의하면 시진핑은 유물(唯物)사관과 유심(唯心)사관에 대해서도 “유물사관은 세계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과학적 방법론이며, 유심사관은 세계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없는, 개인들이 임의로 세계를 해석하는 체계”라는 논리를 전개했다고 한다.
시진핑의 광둥 연설은 시진핑이 장쩌민과 후진타오를 비롯한 중국공산당 지도부로부터 총서기로 낙점을 받은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으며, 시진핑이 자연과학과 공학(工學)의 최고학부인 칭화(淸華) 대학 출신이기는 하지만 그가 다닌 학과는 인문사회학부의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사상 정치 교육 전공이었다는 점을 새삼 상기하게 만든다.
“우리는 목숨을 걸고 《남방주말》을 지킬 것”
그러나 시진핑이 이전 중국공산당 지도자들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인물인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시진핑이 처한, 시진핑의 시대가 달라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 1월 7일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는 각 성의 당위원회 선전부를 통해 전국 각 도시에서 발행되는 신문들에 당기관지 《인민일보》가 발행하는 국제문제 전문지 《환구시보》(環球時報·Global Times)의 사설을 그대로 전재(轉載)하라는 지시를 내려보냈다. 《환구시보》 사설의 내용은 이전부터 중앙정부와 당중앙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보여온 광저우(廣州)의 《남방주말》(南方週末)이라는 주간신문의 편집 태도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다음 날인 1월 8일 당중앙 선전부는 베이징에서 발행하는 《신경보》(新京報)를 비롯해서 후난(湖南)성에서 발행하는 권위지 《소상신보》(瀟湘晨報), 《남방주말》과 같은 그룹이 발행하는 《남방도시보》(南方都市報)를 비롯한 각 지방의 중요 권위지들이 선전부의 지시를 어기고 《환구시보》의 사설을 전재하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됐다.
중국에서는 전국적으로 2000종이 넘는 신문이 발행되고 있지만, 사설은 모든 신문이 똑같다. 전날 《신화통신》을 통해 일괄적으로 배포한 당기관지 《인민일보》의 사설만을 전재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은 이처럼 당기관지 《인민일보》의 사설이나, 당중앙 선전부가 지정하는 사설만 게재토록 함으로써 전국 모든 신문의 정치적 견해를 통제해 왔다. 그런 중요한 언론 통제 수단이 갑자기 먹혀들지 않게 된 것이다.
당중앙 선전부의 지시를 받은 베이징시 당위원회 선전부는 지난 2003년 창간된 이래 대부분의 신문들을 제치고 독자들의 신뢰를 받는 신문으로 자리 잡은 《신경보》 고위 책임자들을 질책했다. 《신경보》 측은 놀랍게도 다이쯔겅(戴自更) 사장과 왕웨춘(王躍春) 편집국장의 사직(辭職)으로 맞섰다. 《신경보》 기자들은 중국의 페이스북인 웨이보(微博)에 “신문사 생존 여부가 걸려 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환구시보》 사설을 전재한다”는 내용을 올렸다. 그러자 각 지방의 신문기자들은 “우리는 목숨을 걸고 《남방주말》을 지킬 것”이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신경보》와 함께 《환구시보》의 사설을 전재하지 않은 《남방주말》을 지지하는 시위를 벌였다.
“우리를 포함한 자본주의 국가들의 언론관은 언론을 입법, 행정, 사법에 이은 제4부(府)로 보아 권력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며, 정부는 언론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이 이끄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언론관은 다르다. 이른바 중국공산당의 혁명전쟁이 진행되던 시기에 마오쩌둥을 비롯한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은 “혁명이 성공하려면 총(槍杆子)과 붓(筆杆子)을 함께 쥐고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갖고 있었다. 그런 전통은 지금까지도 잘 지켜져 왔다. 중국공산당이 권력과 언론을 양손에 쥐고 있던 그런 형세가 처음으로 이번에 무너진 것이었다.
《남방주말》이 당중앙 선전부의 지시를 거부한 사태는 광둥성 당서기로 갓 부임한 중국공산당의 차기 최고지도자 후보 후춘화(胡春華)가 개입해서 일단락됐다. 해임됐던 《남방주말》 편집국장은 다른 자리로 이동하고, 편집에 대한 사전(事前) 검열은 하지 않으며, 해고됐던 기자들은 최대한 1년 이내에 모두 복직(復職)시키기로 한 것이다.
톈안먼사태 再조명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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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당국은 최근 톈안먼사태 등을 다룬 에즈라 포겔(왼쪽)의 《덩샤오핑시대》 중국어판 출간을 허용했다. |
톈안먼사태 이후 덩샤오핑을 비롯한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이 사건을 ‘폭란(暴亂)’으로 규정했다. 이 사태로 인한 사망자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은 물론 유족에 대한 적절한 사과도 없었다. 유족들은 해마다 4월 청명절(淸明節)이 되면 희생자들을 기리며 슬픔에 잠겼다. 중국공산당은 톈안먼사태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일부 공산당원이나 지식인들의 요구를 묵살해 왔다.
그런데 최근 중국공산당은 톈안먼사태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記述)하고 있는 에즈라 포겔(Ezra Vogel)의 《덩샤오핑시대》(Deng Xiaoping Era ; The Transformation of China) 중국어판 출판을 허용했다. 《아주주간》은 베이징 삼련(三聯)서점과 홍콩의 중문대학 출판부가 중국어로 번역한 포겔의 《덩샤오핑시대》는 지난 2월 말까지 56만 부가 발행됐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의하면, 시위 진압을 놓고 공산당 지도자들이 서로 다투던 부분만 제외하고는 대부분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됐다고 한다. 《아주주간》은 시진핑이 이 책에 대한 평가를 담은 보고서를 읽어본 다음 출판허가를 내렸다고 전했다.
村民 시위에 부패 黨간부 축출
시진핑 시대 개막 직전인 2011년 9월에 중국 남부 광둥성 우칸(烏坎)촌에서 발생한 시위사건의 처리도 관심을 끈다.
중국 전역에서는 지금도 하루 수백 건의 집단 시위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중국공산당 당국이 시위대의 손을 들어주고 당 간부를 축출한 것은 이 우칸촌 시위 사건이 처음이다. 사람들은 하도 많은 시위가 발생하다 보니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도 진화(進化)하고, 진압하는 중국공산당 당국도 진화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우칸촌 사건 당시 시위대는 문제의 당 간부는 비난하면서도 중국공산당과 정부는 비난하지 않았다. 중국공산당도 현지 조사 결과 해당 당 간부의 부패가 명확하다는 결론을 내린 후 해당 당 간부를 해임하고, 촌민들의 자치는 확대해 주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다.
중국의 관영 미디어들이 환경오염에 관해 비교적 솔직하게 보도하기 시작한 것도 시진핑 시대의 중요한 변화 중 하나다.
중국의 관영 매체들은 최근 들어 가장 스모그가 심각했던 지난 1월 12일 베이징시 중심부 톈안먼 광장에서 측정한 대기오염 농도는 PM2.5(particulate matter 2.5=지름이 2.5㎛ 이하의 먼지)가 1m3에 993㎍으로, 세계보건기구(WHO)의 기준치인 1m3에 25㎍의 무려 40배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이날 가시(可視)거리는 서우두(首都) 공항의 최저치 2km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것이었다. 항공기 이착륙이 한동안 금지됐고, 도심에서는 차량 추돌 사고가 곳곳에서 발생했다. 중국기상국은 인공위성으로 관측한 베이징 스모그는 베이징시를 중심으로 허베이(河北)성과 톈진(天津), 허난(河南), 후베이(湖北)성 일원에 걸친 100만km2, 즉 한반도 면적의 5배에 가까운 광범위한 지역이 스모그에 뒤덮여 있었던 것으로 측정됐다고 발표했다. 전에 없는 솔직함이었다.
환경 문제에 관한 전례 없는 솔직한 보도가 나온 후, 리커창(李克强) 신임 총리는 “이제는 공기 오염 회수를 위해 ‘유소작위(有所作爲·할 일은 하는 것)’를 해야 할 때”라고 말해 베이징 시민들의 공감을 얻었다.
‘小皇帝’들의 항의
2010년부터 빚어진 중국 내 아이폰 생산 공장인 폭스콘(Foxcon)에서 잇달아 벌어진 근로자 투신자살 사건은 중국인들의 의식구조가 세대 변화에 따라 얼마나 달라지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 사건이었다.
폭스콘의 근로자들은 대부분이 바링허우(八零後·1980년대 출생자)나 주링허우(九零後·1990년대 출생자)들로, 이들은 가난해서 아무리 낮은 임금을 주더라도 일자리만 있으면 가서 일하던 부모 세대 류링허우(六零後·1960년대 출생자)나 치링허우(七零後·1970년대 출생자)들과는 달라졌다.
바링허우나 주링허우들은 어린 시절 이른바 한 가구 한 자녀의 ‘소황제(小皇帝)’들이었으며, 대부분이 외동아들, 외동딸로 자라나 부모들로부터 한 달 수입의 20분의 1 정도 되는 가격의 햄버거도 어렵지 않게 제공받으며 자라났다. 이런 그들이 이제는 중국 최초로 근로조건이 안 맞으면 투신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써가면서까지 항의하는 젊은 근로자로 성장했다.
민주화나 정치개혁을 향한 중국사회 변화의 중요한 조건인 사회 구성원의 변화는 이미 폭스콘 사건으로 충분히 증명됐다고 할 수 있다.
이들 바링허우나 주링허우들은 북한의 전제 통치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베이징에 있는 대학에서 열린 북한 문제에 대한 학술회의에서 목격한 일이다. 북한에 대한 점진적인 변화를 방안으로 제시하는 한국 학자들에게 중국 학생 하나가 번쩍 손을 들고 일어나 이의를 제기했다. “평양에서 1년 연수를 한 경험이 있는데 그때의 경험으로 보면 조선(북한)사회는 희망이 없다. 자체적인 변화는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참석 학자들 모두 그의 의견에 놀라워했다.
중국 지식인들은 중국의 정치개혁이나 민주화에 대해 “중국 인민들이 아직 배를 전복시킬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파도가 높아지면 배가 스스로 전복될 수도 있다”고 즐겨 말하고 한다. 지금 중국은 그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루 수백 건의 ‘군체(群體·집단시위)’ 사건이 벌어지는 현 상황에서 시진핑을 핵심으로 하는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스스로 변화하고 개혁해 가는 길 이외는 없다. 그 변화와 개혁의 속도가 중국 인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 언제 천하대란(天下大亂)의 길로 접어들지 알 수 없는 것이 요즘의 중국사회라고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