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시각

일본 각료들은 왜 3·11 대지진 이후 우왕좌왕할까

문서화한 보고서를 기다리는 관료들의 ‘일본식 상황파악’ 때문

  • 글 : 홍형 통일일보 논설고문·前 주일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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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수도에서 200km 내지 600km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재해의 윤곽을 파악하는 데 이처럼 시간이 걸린 것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문제, 위기관리 문화의 문제다.

⊙ 정부의 위기관리팀, 피해상황을 자위대 헬기가 아닌 NHK 텔레비전으로 파악
⊙ 비상사태에 대비한 매뉴얼에 매달리다 쓰나미에 원전이 공격받자 ‘허둥’
⊙ 민주당 정권, 포퓰리즘 정책으로 공무원 집단을 모욕하고 敵으로 돌려

洪熒
⊙ 63세. 육군사관학교 졸업(26기).
⊙ 駐日한국대사관 참사관·공사 역임. 와세다대 현대한국연구소 객원연구원.
천년에 한 번, 즉 보통 사람이 생전(生前)에 목격할 일이 없을 것 같았던 거대 지진과 대(大)쓰나미가 실제로 일어났다. 일본은 국토면적이 37만8000㎢로 지구 육지의 0.25%에 불과하나 전세계 발생 지진의 약 20%를 겪는다고 한다. 지난 3월 11일 규모 9의 지진이 ‘지진대국’을 뒤흔들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여진도 공포를 자아냈다.
 
  마치 전시에 적국의 전면 기습을 받은 것처럼 일본의 절반이 바로 마비됐다. 대규모 재해 등 긴급사태시 정보수집과 연락을 담당하는 ‘내각정보집약센터’(내각정보조사실 소속)가 바로 움직였다. 내각정보집약센터는 규모 6(대도시 지역은 규모 5)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면, 자동적으로 관련 정보를 모으며 위기상황을 관리할 관계자들에게 연락하게 된다.
 
  동일본 대지진 한 달 후에 드러난 인명피해는 사망 1만3232명, 행방불명 1만4554명, 부상 4756명(일본 경찰청이 4월 12일 19시 집계)에 달한다. 사망자와 실종자의 시신 수습이 얼마나 더 계속될지, 재해복구에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원자로의 냉각장치가 쓰나미에 파손돼 레벨 7의 원전(原電) 사고로 발전된 후쿠시마 제1원전의 원자로 4개를 안전하게 폐쇄시키는 작업은 아직도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한 채, 일본 사회는 이미 누출된 방사능과의 ‘장기 동거’를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게 됐다.
 
 
  선진국 日本의 어이없는 미숙함 느껴
 
지난 3월 13일 간 나오토 총리가 도쿄 총리 관저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미증유(未曾有)의 대지진이기는 하나,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를 비롯한 민주당 정권은 대응을 잘했어야 했다. 도쿄에서 이 재난을 보고 겪은 소감은 선진국 일본 정부의 어이없는 미숙함이며, 한마디로 천재(天災)와 인재(人災)가 겹쳤다는 느낌이었다.
 
  도쿄의 규모 5는 동북지방의 100분의 1 정도의 에너지였지만, 정교하게 짜인 수도권의 교통망과 통신을 완전 마비시키는 데 충분했다. 지진에 익숙한 일본 사회도 모두가 일상을 접고 방송에 귀를 기울이면서 안전 확보와 귀갓길을 서둘렀다. 일본 국민들에게 NHK방송은 ‘정부당국의 당부이자 지시’로 받아들여진다. 텔레비전 방송은 ‘진앙이 동북지방의 태평양 해저(海底)’라며 쓰나미 경보를 전했다. 수도권을 포함해 동일본 전체의 교통과 통신이 마비된 것을 알게 됐다. 이윽고 텔레비전은 동북지방 해안을 덮치는 쓰나미 화면을 내보냈다. 해설도 없었다.
 
  일본 정부도, 그리고 전(全)세계도 같은 장면을 보았다. 동북지방 해안지역을 거세게 침범하는 쓰나미는 화면상으로도 10m가 넘어 보였다. 땅이 물에 잠기는 것이 아니라, 물을 가로 막는 모든 것을 밀어버렸다. 센다이공항이 쓰나미에 삼켜지는 그 순간, 일본의 국가지도부는 대체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었을까.
 
  정부의 위기관리팀은 상황파악을 텔레비전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 방송이 전하는 정보에 지배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과학적으로 피해의 윤곽이라도 잡았어야 한다. 정부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 자위대(自衛隊)의 정찰기를 띄우기만 해도, 항공사진으로 지진과 쓰나미에 의한 피해범위, 특히 쓰나미가 휩쓴 지역의 이재민 규모와 인명피해의 윤곽 정도는 바로 가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쓰나미 피해지역에 50만명이 살고 있었다면, 대피가 아주 잘돼 1%만 희생됐다고 상정해도 5000명, 희생자를 10%로 상정하면 5만명이라는 피해규모의 윤곽이 떠오를 것이다. 이러한 과학적 진단이 신속히 병행되어야 초기 대책 방향과 범위를 결정할 수 있다. 병원에서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으려면 먼저 진단이 필요하지 않은가.
 
 
  고베지진의 교훈 못 살려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지난 3월 29일 도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 의원들이 질문하는 동안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겨 있다. 간 총리는 원전 상황을 묻는 의원들에게 “후쿠시마 원전 상황은 여전히 예단하기 어렵다”며“최고 경계 태세로 계속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3·11 지진 후 일본 신문을 보면 일본 당국의 초기 판단과 대응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가 있다. 지진 발생 다음 날 조간은 인명피해 언급이 없이 1000년에 한 번 발생하는 재해가 발생했다고만 보도했다. 3월 13일 조간은 사망 686명, 행방불명 641명, 부상 1426명으로 전했다. 3월 14일은 사망 3078명, 행불 1481명(이하 부상자는 생략), 3월 15일 사망 1877명, 행불 3002명, 3월 16일 사망 3373명, 행불 7558명으로 발표해 대지진 닷새 후에야 사망과 실종자를 1만명 선으로 보도했다. 사망과 실종자가 2만7000명 선으로 집계·발표되는 것은 거대 지진 발생 후 2주일이 되는 3월 25일이다. 사망자의 90% 이상이 익사(溺死) 상태, 즉 쓰나미에 의해 이미 3월 11일 오후에 사망했음에도 매일 신고·발견·수습된 숫자를 종합하다 보니 단계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도대체 자국 내에서 발생한 재난의 윤곽을 파악하는 데 왜 2주일이나 걸려야 하는가. 1995년 1월 6400여 명이 사망한 고베 대지진에서 제대로 교훈을 얻지 못했음을 뜻한다. 고베지진 때도 거대 도시가 한순간에 궤멸적 타격을 입었음에도, 한나절이 지나도록 피해의 윤곽과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한 채 현장에서 올라올 보고만을 기다리면서 귀중한 시간을 허비한 전력이 있었다. 그 결과 초기 대응에 실패해 엄청난 수의 주민이 화재로 불에 타 숨지는 어처구니없는 피해가 발생했던 것이다.
 
  거대 지진이나 쓰나미와 같은 초대형 재해의 위기관리는 현장에서 올라오는 피해보고에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 이번 지진에서도 되풀이된 ‘일본식 상황파악’, 즉 현장이 상황을 상세히 전하면 이를 종합해 문서화한 보고서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인프라 자체가 파괴된 극도의 혼란 속에서, 언론도 접근과 취재가 안되고, 상황을 종합할 담당자도 사실관계와 데이터가 없는데 무슨 보고가 가능하겠는가. 인프라가 제대로 기능하는 정상적 상황이라면 모를까, 통신·교통 등 인프라 자체가 파괴되었는데 현장상황을 누가 어떻게 파악한다는 말인가.
 
  인프라가 파괴되었거나 처음부터 없는 조건, 위험이 가득한 조건에서도 체계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조직은 군대뿐이다. 일본도 현대적 군사력이 있고, 언제든지 동원할 수 있는 정보·정찰 자산이 결코 적지 않다. 일본은 타국의 은밀한 군사동향을 감시하기 위해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정찰위성까지 보유하고 있지 않은가. 일본 정부가 수도에서 200km 내지 600km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재해의 윤곽을 파악하는 데 이처럼 시간이 걸린 것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문제, 위기관리 문화의 문제다.
 
 
  국가비상사태조차 선포하지 않다니…
 
3ㆍ11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피해 복구와 피해자 구호 작업을 위해 투입된 미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9만7000t급)에서 밥 기리어 미 해군 제독(맨 왼쪽)이 지난 4월 4일 기타자와 도시미 일본 방위상(오른쪽에서 세 번째) 등 일본 방위청 관계자와 존 루스 주일(駐日) 미국 대사(오른쪽에서 두번째) 등에게 지도를 가리키며 작업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3·11 대지진부터 2주간 지나면서 물적, 재산상 피해가 사고 원전을 빼고도 16조 엔(약 200조원) 내지 25조 엔(약 325조원) 규모라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지진 직후의 혼란과 불편 등은 차치하고, 인명피해에 더해 전력·정유·제조업 등 재산피해, 고속도로와 신칸센을 비롯한 광범한 교통·통신·생활 인프라의 파괴, 레벨 7의 심각한 원전사고가 겹친 그야말로 전쟁을 치른 것 같은 상황임이 명확해졌다. 외국인들은 일본을 탈출했다.
 
  이러한 엄청난 국가적인 대재앙 속에서 일본 정부는 놀랍게도 ‘국가긴급(비상)사태’조차 선포하지 않았다. 간 나오토 총리는 자신이 국가안보와 위기관리의 최종적 책임자이며, 법적으로 그러한 권한이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면 이런 재난은 어느 나라든 국력(國力)을 결집시켜야만 하는 사안이라는 인식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일본은 NSC(국가안전보장회의)는 없지만 내각에 ‘안전보장회의’가 있고, 대규모 재해나 소란 등 긴급사태 시의 특별조치가 가능한 경찰법 71조에 의한 ‘긴급사태 선언 및 경찰에 대한 총리의 직접지휘 권한’(동법 72조), 자위대법 76조에 의한 ‘방위출동’, 그리고 재해대책기본법 11조에 의한 ‘재해긴급사태 포고 및 긴급재해대책본부 설치’(동법 28조) 등을 통해 총리는 국가의 총력을 동원할 수 있다. 위에 규정된 권한들이야말로 천 년에 한 번 일어날 정도의 대재난에 대비해 법적으로 보장한 것이 아닌가.
 
  물론, 간 나오토 총리는 육·해·공 24만명에 달하는 자위대 가운데 10만명을 재해지역에 투입하도록 지시했다. 병력이 부족하자 방위성(防衛省)은 사상 처음으로 예비군(즉응예비자위관) 6000여 명을 소집했다. 지진 직후 40만명 이상이 대피소로 몰리고, 추위와 굶주림 속에 고립된 이재민들을 돕기 위해 전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재해지역으로 달려가고, 동맹국인 미국은 주일미군 규모의 36%에 달하는 1만8000명을 구호와 복구작업에 투입했다.
 
  모든 위기관리와 대응의 최선두에서 서야 할 간 나오토 총리는 연일 도쿄전력(東京電力)을 질책하며 후쿠시마 제1원전 복구에만 온통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이런 총리에 대해, 지진 직후 스스로 할 일을 찾아서 재해지원 행동에 나선 자원봉사자들이나 평범한 시민보다 못하다는 비난은 당연하다. 일본은 지금까지 위기 때 정부가 국민을 위해 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 시민이 일류여서 정부가 위기관리에 미숙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무책임, 무개념의 총리가 국력의 동원을 내던진 사태는 ‘인재’라고 말할 수 있다.
 
  간 나오토 총리의 상황인식은 동맹국의 오바마 대통령보다 안이하게 보였다. 미국 대통령이 일본 총리보다 대지진의 심각성을 훨씬 빨리 인식했던 게 아닌가 싶었다. 미국은 위기관리의 기본이 되는 상황을 신속히 파악하는 정보력, 정보수단을 어느 나라보다도 잘 갖추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주일미군은 물론, 한미 연합훈련에 참가 예정이던 항공모함까지 동원해 일본을 도왔다. 미국은 전폭적인 대일(對日)지원을 통해 미일동맹(美日同盟)을 경시해 온 포퓰리즘적 민주당 정권의 버릇을 가르치는 동시에, 동맹관계 관리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매뉴얼은 전제조건이 바뀌면 ‘無用之物’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은 100억엔(약 1300억원)을 쓰나미 복구를 위한 의연금으로 기부했다.
  후쿠시마 제1원전의 방사능 누출사고는 일본의 위기관리 시스템과 일본식 매뉴얼의 취약점을 잘 보여준다. 강한 해저지진이 발생하면, 연안지역은 지진파와 쓰나미에 이중으로 노출되는데, 후쿠시마 원전은 지진파에는 견뎌 냈으나 쓰나미에 당했다.
 
  원자로는 지진이 발생하자 자동적으로 제어봉이 노심(爐心)에 삽입돼 운전을 멈췄다. 문제는 원전의 입지(立地) 선정 당시에 생각하지 못했던 초대형 쓰나미였다. 사고 원전은 대비해야 할 쓰나미를 6m 미만으로 상정했는데, 이번에 닥친 쓰나미는 그 두배반인 14~15m였다고 한다. 이 쓰나미의 가공할 파괴력이 지상에 설치된 냉각용 배관과 비상발전기 등을 파괴했다. 전시(戰時)에 폭격이나 포격을 당한 것과 같다. 매뉴얼이란 통상 고장이나 장애에 대비한 것이지, 발전소 자체가 인간 혹은 자연의 공격을 받아 파괴되는 상황은 상정되지 않는다. 더욱이 일본은 평화 국가임을 강조하다 보니 전쟁과 같은 상황은 고려하기도 쉽지 않다.
 
  일본의 지진 감시와 경보 시스템은 영역(영해) 밖 해저지진까지 커버하도록 많은 투자를 통해 시스템과 매뉴얼을 만들었지만, 원래 매뉴얼이란 아무리 상세하고 자상하게 만들어도 매뉴얼의 전제조건이 바뀌면 쓸모없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일본이 필요로 하는 전력의 30%를 생산하는 도쿄전력의 위기관리 태세도 정말 실망스러웠다. 거대 기업의 권위주의와 관료주의의 폐해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듯하다. 이번 사태는 이미 재활용할 일도 없는 사고 원자로들을 무해(無害)하게 신속히 처리·처분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고, 파괴된 냉각시스템을 정상적으로 복구하는 일에 너무 집착했다. 만약 냉각시스템을 정상적으로 복구하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면 그 뒤엔 어떻게 할 것인가.
 
 
  민주당 정권, ‘코드인사’로 공무원 집단을 모욕하고 敵으로 돌려
 
일본 게센누마에서 지난 3월 12일 육상자위대원이 미처 피신하지 못한 노인을 업어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있다. 인구 7만5000명의 게센누마는 유령도시로 변했다.
  구미사회에서는 일본 당국이 공개해야 할 정보를 은폐한다는 비판을 계속 제기하고 있다. 필자가 보기엔 정보를 의도적으로 감추기보다는 공개 여부에 대한 개념이 없거나, 실은 공개를 기대하는 정보를 일본 당국도 갖고 있지 않은 경우도 있는 게 아닌가 보인다.
 
  이번 거대 지진을 겪으면서 꼭 알고 싶은 문제가 있다. 도대체 간 나오토 총리는 왜 국가의 모든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긴급사태’ 선언을 하지 않은 것일까. 순종적이고 질서 있는 국민들의 자발적 협력과 기여만으로도 난국(難局)을 극복할 수 있다고 기대한 것일까, 아니면 긴급사태(비상사태) 선언에 부담을 느껴야 할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가.
 
  일본 총리가 혹시 ‘긴급사태’를 선포할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초기 판단이 틀렸음을 깨닫고도 단지 긴급사태 선포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에 그냥 모른 척한 것은 아닐까. 만약 총리가 초기 판단이 틀렸음을 알고도 체면 때문에 수정을 주저·회피한다면 정말 심각한 일이다. 국력을 총동원해 결집시켜야 할 때 체면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재해 지역은 불편과 희생을 더 치러야 하고, 일본 국민 전체에도 불행한 일이다. 이는 한반도 유사시에 일본이 한국의 후방기지가 되는 만큼 한국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민주당 정권은 위기를 타개할 준비와 각오가 부족한 과도기적 정권이다. 민주당 정권은 국가의 역량을 동원하기는커녕 국민의 공복(公僕)인 관료집단조차 동원, 활용하지 못한다. 민주당은 2009년 총선거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고도 일본 사회의 분열과 불신을 여전히 부추기고 관료집단를 적대시해 왔다. ‘정치주도(政治主導)’를 강조하면서 헌법상 국민에 대한 봉사자인 공무원 집단에 대해 불신을 조장해 왔다.
 
  정치주도를 외치면서 미증유의 위기 중에도 코드인사를 고집하고, 재해복구 재원(財源) 확보를 위해 육아수당 등 포퓰리즘적 복지예산 삭감을 요구하는 여론에도 저항하고 있다. 민주당 정권이 공무원 집단의 성실한 보좌를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을 모욕하고 적(敵)으로 돌려온 대가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의 보수인사들, “일본 르네상스의 계기로 삼자” 운동
 
  이번 쓰나미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그들의 삶의 기억까지 휩쓸어 가 버렸다. 해안지역의 지자체(地自體) 중에는 ‘주민기본대장’까지 모든 기록이 유실된 곳도 있다. 레벨 7의 원전사고의 반경 30km 이내에 거주하던 주민들은 새로운 땅으로 이주해야 한다.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새로운 근거지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들을 위한 민간의 지원과 의연금(義捐金) 모금에 일본 사회의 유지들이 앞장섰다. 100억 엔(약 1300억원)의 사재를 의연금으로 기부한 소프트뱅크의 손 마사요시(손정의) 사장은 가장 존경하며 닮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영웅이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의 토대를 만든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다.
 
  일본 사회의 보수적 유지들은 이번 3·11 대지진을 20년 이상 침체가 지속돼 온 일본을 탈바꿈시키는 기회로, 일본 사회의 르네상스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길고 긴 재건과 복구는 3·11 대지진 이전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재건과 복구과정 자체를 일본을 업그레이드시키고 일본인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바꾸어 건강한 일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결정적인 계기로 삼자는 비전이다.
 
  천재와 인재가 겹친 상황 속에서 일본을 바꾸자는 논의를 보면서, ‘일본엔 질 수 없다’는 한국 사회에서는 이미 시작된 한반도의 긴급사태-북한의 핵미사일, 혹은 한반도의 현상 변경이라는 거대한 쓰나미를 어떻게 극복하고 활용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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