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지진 특집

강진에 속수무책 한국 건축물

전국 680만 건축물 중 내진설계 적용된 곳은 2.4%뿐

  • 글 : 김정우 월간조선 기자  hgu@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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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 규모 6.5 지진 발생하면 7726명 사망, 10만7524명 부상, 10만4011명 이재민 발생
    (소방방재청 시뮬레이션)
⊙ 전국 초·중·고교 54%가 지진발생 시 대규모 피해 예상(교과부 全數 조사 결과)
⊙ 일부 건축사들, 내진설계 관련 서류 허위작성, 공란 제출… 담당 행정부서는 검토 없이 허가
⊙ “내진설계를 건물 층수로 제한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 전체 건축물에 대한 내진설계 도입해야”
    (朴大海 의원)
서울 중구 지진(규모 6.5) 발생 시 전국 건축물 피해 예측 분포(소방방재청).
지난 3월 11일 발생한 일본 대(大)지진과 같은 재앙이 한국에 닥친다면 어떻게 될까. 지진 전문가들은 ‘지진안전지대’인 한반도에서 규모 7 이상의 강진(强震)이 발생할 가능성이 없다고 한다. 실제 지진관측이 시작된 후 한국에서 지진발생으로 인해 인명피해가 발생한 기록도 없다. 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재난대비 시스템을 자랑하는 인접국의 막대한 피해상황을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편치 못하다.
 
  한나라당 박대해(朴大海) 의원이 최근 공개한 소방방재청 방재연구소의 시뮬레이션 분석에 따르면, 서울 중구에서 규모 6.5의 지진이 발생할 경우 7726명이 사망하고 10만7524명이 부상할 것으로 예측됐다. 건축물은 6481동이 붕괴, 2만1101동이 비(非)붕괴 전파(全破), 4만 동이 반파(半破)될 것으로 예상됐다. 부분손실은 51만7269동으로, 10만2011명의 이재민이 발생할 것으로 분석됐다.
 
  지진 규모 6.5는 한반도 지진 역사와 지질학적 특성을 고려해 산출한 최대 예상 규모다. 일본의 경우 2008년 6~7월 이와테(岩手)현과 니가타(新潟)현에서 발생한 두 차례 지진이 규모 7.2와 6.8을 기록했지만, 27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했을 뿐이다. 지진 규모에 비해 한국이 일본보다 피해가 큰 이유는 내진설계 때문이다.
 
  박 의원은 “일본 고베(神戶) 지진과 대만 지진 사례를 분석해 보면, 3층 이하 저층건물은 땅이 흔들리는 주기와 거의 유사하게 흔들리기 때문에 건물이 폭삭 주저앉을 가능성이 고층건물에 비해 훨씬 크다”며 “우리나라도 지진피해에 대응하기 위해 공공시설에 대한 긴급 안전진단을 실시하고, 저층건물에 대한 내진설계 강화대책을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5년 고베 지진 당시 붕괴한 건물 4만9000여 동 중 3층 이하 건물이 94%를 차지했고, 1999년 대만 지진의 경우 완파된 건물(468동)의 70% 이상(331동)이 3층 이하 건물이었다.
 


 
  학교 건물 85%, 지진에 무방비
 
  현재 한국의 내진설계 대상 건축물 기준은 ‘높이가 3층 이상이거나 연면적 1000㎡ 이상일 경우’에 한한다. 박 의원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내진설계 대상을 건물 층수로 제한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한다. 미국, 일본, 유럽은 물론 중국도 내진설계 대상을 모든 건축물로 규정하고 있다.
 
  한국의 현행 규정을 따르면, 전체 건축물 680여 동 중 100만여 동만이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 이 가운데 내진설계를 적용한 건축물은 16.3%다. 전체 건축물을 기준으로 하면 2.4%에 불과하다.
 
  소방방재청과 박대해 의원에 따르면, 2008년 말 기준 내진설계 대상 건축물은 101만152동으로, 이 중 16만4321동만이 내진설계를 적용했고, 83.7%인 84만5831동은 미적용됐다. 건축물 외에 학교, 병원, 도로, 철도, 공항 등 시설물의 경우 전체 6만7920동(개소) 중 절반인 3만3960동(개소)만이 내진설계가 적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공항, 고속철도, 원자로 관계시설, 화력·수력 설비, 다목적댐 등은 모두 100% 내진 적용이 됐지만, 병원, 공항, 터널, 철도 등 시설은 여전히 일부가 미적용된 상태다. 내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주요 시설물은 도시철도(77.6%), 수문(0%), 매립시설(11.1%), 하수종말처리시설(23.3%), 지방도 교량(36.5%), 지방도 터널(53.6%), 항만(25.5%) 등이다.
 
  시설물 중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된 곳은 학교다. 전체 1만1293개 초·중·고교의 내진설계 대상 건물 1만8329동 중 13.2%인 2417동만이 내진설계를 적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학교 건물 중 85% 이상이 지진에 무방비 상태인 셈이다.
 
  한나라당 박영아(朴英娥) 의원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건물들에 대한 교과부의 지진피해 예상 조사결과 내진설계 비적용 건물의 54.5%인 8486동이 대규모 피해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중규모 피해는 3064동(19.6%), 소규모 피해는 2939동(18.8%), 경미한 피해는 1075동(6.9%) 순이다.
 
  박 의원은 “학교시설은 학생들의 안전뿐 아니라 비상시에는 재난대피 장소로 사용되기 때문에 안전확보가 확실해야 하는 시설”이라며 “정부는 지금이라도 시급히 관련 예산을 최우선적으로 확보해 학생과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왼쪽부터 박대해, 박영아, 김기현 의원.
 
  내진설계 전문가 협력 건물은 0.6%
 
  우리나라 건축법은 1988년부터 내진설계를 의무화했다. 당시 6층 이상 또는 총 면적 1만㎡ 이상 건축물에 한정됐던 대상은 1995년 5층 이상으로 넓혀졌고, 2005년부터 시행된 현행 건축법은 3층 이상 또는 연면적 1000㎡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1988년 이전에 지어지거나 2층 이하인 건물은 내진설계와 관련이 없는 셈이다. 현재 우리나라 전체 건축물 중 80% 이상이 이 범위에 속한다.
 
  내진설계가 적용된 건물도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내진설계 전문가인 건축구조기술사 대신 건축사가 내진안전 책임을 지게 규정한 법 때문이다.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구조기술사회)는 “현행 건축법이 내진설계의 주체를 명확하게 하지 않아 내진설계 비전문가인 건축사만이 내진설계를 할 수 있다”며 “건축법의 전면적인 개정 또는 새로운 건축안전법의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건축구조기술사회 이문곤 회장은 “실제 내진설계된 건축물이 2.3%인데다 전문가에 의해 설계가 수행된 건물은 사실상 0.6%인 4만여 동에 불과하다”며 “강진이 발생할 경우 소방방재청 등 관계기관의 시뮬레이션 결과보다 더 큰 피해가 예상된다”고 했다.
 
  현재 건축법은 내진설계 적용대상 건물 중 6층 이상의 건물만 건축구조기술사가 내진설계 확인을 하게 돼 있다. 5층 이하 건물은 건축사가 안전성을 확인한다. 구조기술사는 설계단계에는 참여하지만, 감리에서는 배제된다. 외국의 경우 층수나 규모에 관계없이 모든 건물의 내진확인을 구조기술사가 수행한다고 한다.
 
  한나라당 김기현(金起炫) 의원이 지난해 국정조사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구조기술사가 아닌 건축사나 기타 전문가가 내진설계를 확인한 건축물 중 상당수가 부적합 판정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지역 5개 구 건축물 1283개를 조사한 결과, 건축사가 확인한 911동 중 구조안전 적합성을 통과한 곳은 175건으로 80.7%가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구조기술사가 확인한 341건은 모두 적합 판정을 받아 부적합률이 0%로 조사됐다.
 
  부적합 사유 중 86%는 ‘구조안전확인서 허위작성’이다. 건물 연면적과 층수가 다른 복수의 건물의 확인서에 동일한 수치와 내용의 내진설계 결과를 적어 놓는 식이다. 한 건축사가 여러 곳의 내진설계를 시행하면서 정확한 조사 없이 임의로 작성한 사례다.
 

 
  건축구조기술사 인감 도용한 건축사
 
  10.3%는 구조안전확인서에 내용을 기재하지 않아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임의로 작성한 것도 큰 문제인데, 이들은 내진설계 부분을 아예 공란으로 제출해 허가를 받아냈다. 한 건축사의 경우 빈 확인서에 건축구조기술사의 인감을 도용한 사례도 있었다.
 
  김 의원은 조사결과에 대해 “지진에 관한 공학적 전문지식이 부족한 건축사에게 서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3~5층 건축물의 내진구조안전확인 책임을 위임한 결과”라며 “서민의 생명, 안전,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이에 대한 시급한 대책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건축구조기술사회의 한 관계자는 “총 공사비의 2% 이내 수준인 내진설계 비용을 아끼기 위해 비양심적 범죄행위를 한 사람도 문제지만, 말도 안되는 서류를 허가해 준 행정부서는 더 큰 문제”라며 “관련법 개정과 함께 철저한 감리 감독에 대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2~5층 규모의 다세대주택과 1층을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필로티(pilotis)’ 구조 건축물은 지진에 더욱 취약하다. 한국의 다세대주택은 별도의 내진설계 없이 슬래브(slab·콘크리트 판) 위에 조적벽체(시멘트 벽돌 벽)를 마구 올려놓는 형식이 대부분이라 지진이 발생하면 치명적인 파손이나 붕괴의 위험이 있다. 또 많은 중저층 건축물에 적용된 필로티 방식도 지진발생 시 건물기둥이 붕괴해 큰 사고가 날 수 있다.
 
  이외에도 건축물에 부착된 각종 마감재와 옥외간판은 내진설계가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건물붕괴와 연관성은 없지만, 지진발생과 동시에 떨어져 행인에게 큰 위험을 끼칠 수 있다.
 
  한국은 멀쩡한 백화점이 무너지고, 다리가 절단되는 사고를 경험한 나라다. 일본과 달리 판 경계에서 떨어진 ‘지진안전지대’라고 하지만, 전체 건축물의 97.6%를 지진에 무방비 상태로 방치하는 것은 상식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서기 779년, 경북 경주 지방에서 지진으로 100여 명이 사망했고, 1311년 11월엔 고려 왕궁이 지진으로 피해를 당했다. 한국에서의 지진발생 가능성은 기우(杞憂)라고 하지만, 전문가들 누구도 100% 안전은 장담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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