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컵 특수로 물가 올라, 빈곤층 힘들어지고 범죄율 상승
⊙ 태권도 수련생 흑인 1만여 명 “태권도는 神이 남아공에 준 선물”
⊙ “흑인으로 태어났다면 남아공이 좋다고 말하지 못할 것” (남아공 청소부)
⊙ 태권도 수련생 흑인 1만여 명 “태권도는 神이 남아공에 준 선물”
⊙ “흑인으로 태어났다면 남아공이 좋다고 말하지 못할 것” (남아공 청소부)

- 공항 천장에 매달린 축구공 모형에는 ‘HOST CITY, City of Champions, City of Tshwane’라고 적혀 있었다. 월드컵 개최에 대한 자부심이 드러나 있다. 츠와니(Tshwane)는 행정수도 트리토리아의 다른 이름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으로 가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머릿속엔 시끄러운 부부젤라(Vuvuzela) 소리와 함께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서만 보던 물소떼, 그리고 영화 <디스트릭트9> 속 외계 생명체(이 영화의 배경이 남아공이다),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백인우월주의적인 인종차별정책)에 반발하는 흑인들의 폭동 장면이 뒤엉켜 지나갔다.
정신을 차린 뒤에는 ‘얼마나 더울까’, ‘음식은 입에 하나도 안 맞겠지’, ‘말은 하나도 안 통할 텐데 취재는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이런 걱정은 자료를 하나하나 찾으면서 기우(杞憂)였음이 드러났다. 아프리카의 가장 남쪽, 남반구에 위치한 남아공은 겨울이었고, 아프리칸스어뿐 아니라 영어도 공용어였다. 음식은 네덜란드와 영국,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포르투갈의 음식 문화가 더해져 다채로웠다.
세계의 석탄 매장량 10% 보유한 축복의 나라
두 달 전, 기자는 17시간의 비행 끝에 남아공 요하네스버그공항에 도착했다. 겨울의 끝을 맞고 있는 남아공의 기온은 7℃, 점퍼를 꺼내 입었다.
월드컵이 끝난 지 한 달여가 지난 요하네스버그공항은 축제가 끝난 고요한 연회장(宴會場) 같았다. 거대 축구공 모형이 천장에 매달려 있었고, ‘Welcome to Africa, Welcome Worldcup’이란 문구가 쓰인 색색의 플래카드들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비행기의 창 아래로 끝없이 펼쳐진 산과 들이 들어왔다. 물감으로 칠한 듯 구름 하나 없는 하늘에서 햇빛이 쏟아졌다. 비행기 옆자리에 앉았던 남아공 사람에게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지 모든 게 평온하다”라고 했더니, 그는 웃으며 “뭐가 그렇게 감격적인가? 이곳의 일상적인 모습일 뿐”이라고 대답했다.
‘아프리카의 유럽’이라고 불리는 남아공은 자연적으론 축복받은 나라다. 남반구에 위치해 1년 내내 최고기온이 20℃를 조금 넘는 온화한 날씨를 갖고 있다. 일조(日照)시간이 하루 평균 8.5시간이라 사계절 내내 녹음(綠陰)이 우거진다. 비료 없이 씨만 뿌려도 밭에서 당도 높은 망고, 바나나, 귤을 재배할 수 있고, 마을의 작은 구장에도 천연 잔디가 무럭무럭 자란다. 크롬, 백금, 망간, 바나듐, 알루미노 규산염, 다이아몬드, 우라늄, 철 등의 광물자원은 어느 곳을 파도 내다 팔 수 있을 정도로 나온다. 석탄도 전 세계 매장량의 10%가 있단다. 이 석탄을 석유로 액화해 사용하는 기술(CTL)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에 따라 기름값이 리터당 약 8랜드(남아공 화폐단위ㆍ한화 약 1300원)로 싼 편이다.
공항에서부터 뒷돈 필요한 범죄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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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아공의 주차요금 정산기. 요금 지불 후 영수증을 뽑아 주차장 출구에서 제출해야 한다. 요금은 1시간에 5랜드(약 810원)다. |
우리 일행이 가자 경찰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더니 그 교민의 지갑을 빼앗아 열었다. 두둑한 랜드(남아공 화폐) 뭉치가 순식간에 경찰의 뒷주머니로 들어갔다. 빼앗긴 돈은 1200랜드(한화 약 20만원)였다. 남아공의 1인당 평균 봉급이 3000~5000랜드(50만~80만원)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그 경찰은 한꺼번에 봉급의 3분의 1쯤을 강탈한 것이다. 기자가 “오자마자 이런 일을 당할 줄 몰랐다”고 했더니, 교민은 씩씩거리며 한마디 했다.
“한국인들이 버릇을 잘못 들인 탓도 있습니다. 붙잡히기만 하면 돈부터 건네니까 한국인만 보면 돈 타령입니다. 월드컵특별법정으로 잠잠해졌나 했더니 원상태가 돼버렸군요.”
“아무도 믿지 않으면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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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아공에서 규모가 가장 큰 프리토리아 대학 박물관 앞 광장. 프리토리아 대학은 QS(영국 대학평가기관) 세계 대학순위에서 451~500위권이다. |
그렇지만 월드컵이 끝나자 범죄는 다시 기승을 부렸다. 아니 오히려 늘었다는 얘기가 많았다. 프리토리아(Pretoria) 대학 교회에서 만난 한국 교민들도 이렇게 말했다. 송모(50)씨는 “월드컵 기간에는 새벽까지 부부젤라를 부는 등 돌아다니는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다시 위험해져서 해가 지면 집 밖에 나가기 두렵다”고 했다.
정부의 월드컵 특수로 물가가 비싸지는 바람에, 빈곤층의 삶이 더 힘들어지고 범죄율이 더 높아진 것 같다고 말하는 교민도 있었다. 1995년에 남아공에 정착한 선교사 조세핀 리(42)씨는 “월드컵 기간 물가가 치솟아서 교민들도 힘들었는데, 빈민가의 흑인들은 어땠겠느냐”며 “월드컵 때 정부가 예산을 많이 써서 그걸 메우려 물가를 올린 거라는 말도 있다”고 했다.
한국 주재 남아공 대사관은 이번 월드컵을 유치하는 데 남아공 정부가 사용한 예산이 930억 랜드(13조9천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 중 경기장과 도로, 통신시설을 짓는 데 330억 랜드(5조2800억원)가 들었다. 월드컵에 따른 재정지출이 늘어나면서 지난해 말 기준으로 GDP 대비 재정적자는 6.7%까지 치솟았다. 조세핀 리씨의 말이다.
“공무원 월급이 적어서 제복을 입고 일하던 경찰도 밤엔 도둑으로 변하고, 밖에 세워둔 경비조차 믿을 수 없는 도시가 여기입니다.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교민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아무도 믿지 않으면 안전하다.’”
백인만 사는 富村 입구부터 신분 확인
아무도 믿지 말아야 안전하다는 말을 교과서처럼 실천하고 있는 곳이 백인 주거 지역이었다. 요하네스버그 북부에 위치한 샌튼(SANTON)은 월세가 약 250만원인 아파트가 있는 부촌(富村)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백인이라고 한다. 몇몇 마을은 도로 입구에서 신분확인을 해야 들어갈 수 있었다. 작은 성(城)을 연상케 하는 화려한 주택에는 교도소처럼 높은 담과 전기 철조망이 쳐져, 이웃과 철저히 격리돼 있었다. 집마다 보안요원도 부리고 있었다. 낡은 옷을 입은 흑인이 대문 앞을 지나가면, 백인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그를 계속 주시(注視)했다.
밤늦은 시간, 기자를 옆 좌석에 태우고 샌튼 근처 프리토리아 고속도로를 달리던 남아공 주민 자메이(23) 씨는 이렇게 물었다.
“원래 야간 운전은 피하는 편입니다. 한국에서 ‘Car jacking’(차량 탈취)이라는 말을 들어봤습니까?”
기자가 “들어봤지만, 한국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말”이라고 대답하자 “부촌 근처에 형성된 흑인밀집지역에는 차량 탈취범들이 잠복하고 있기 마련”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은 정말 평화로운 나라”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오래전부터 한국에서 사는 걸 꿈꿔왔고, 내년부터 인천에서 영어 교사로 일할 예정이라고 했다.
남아공에서 달리는 차는 밀폐된 공간이라 안전하지만, 위험한 공간이기도 했다.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대중교통은 위험(실제로는 대중교통이 거의 없다)하기 때문에 개인 차량이 꼭 필요한데, 남아공에는 음주단속이 거의 없어, 번화가 근처에는 술에 취해 운전하는 차들이 많다고 한다. 교통사고도 많은 편이다.
프리토리아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있는 옌틀(24) 씨는 “초등학교 시절 3명의 친구, 16세 때 단짝 한 명이 모두 교통사고로 죽었다”며 “한국처럼 음주운전 단속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차창 내리면 총 맞기 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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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촌인 샌튼 시내 근처, 한 흑인이 “I rather die of hunger then to steal, Please help”(도둑질하느니 굶어 죽는 게 낫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라고 쓴 종이를 들고 구걸하고 있다. 신호등 근처에는 항상 걸인이나 행상이 있다. 대부분 흑인이다. |
신호에 걸려 멈춰 있으면 10번에 8~9번은 차량용 휴대전화 충전기, 배지(Badge) 등을 파는 잡상인, 돈을 구걸하는 걸인들이 창문을 두드렸다. 한 번은 각국의 깃발을 파는 행상이 있기에, 한국 국기가 얼마냐고 물어보려고 창을 내리려 했다. 그러자 운전하던 자메이 씨가 “절대 창을 내리면 안 된다”며 “물건을 사거나 기부하려고 창을 열면 총을 들이대는 경우가 있으니까 그냥 못 본 척하라”고 했다.
월드컵 때 부부젤라, 깃발을 팔던 사람들이, 물건을 파는 척하면서 소총을 품이나 소매에 숨기고 강도짓을 했다고 한다. 실제로 월드컵 기간 SBS 취재진이 요하네스버그에서 신호대기 중 유리를 깨고 물건을 훔치려는 괴한의 습격을 받은 일도 있었다.
그때 한 여인이 낳은 지 얼마 안 된 듯한 작은 아이를 품에 안고 창을 두드렸다. 안타까웠지만 시선을 외면했다.
만원 남짓으로 커다란 스테이크 먹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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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아공 태권도 장학생들이 연습하는 프리토리아 대학 스포츠 센터. 지하 창고를 개조한 곳이다. 조정현 사범이 태권도 장학생 꼬뺄라의 동작을 교정해 주고 있다. |
허리에 검은띠를 매고 다니는 태권도 유단자들이 곁에 있기 때문이었을까, 열흘 동안 묵을 프리토리아에 도착하자마자 경계심은 완전히 풀렸다.
요하네스버그에서 약 60㎞ 떨어져 있는 프리토리아는 남아공의 행정수도다. 이곳은 남아공에서 가장 명문(名門)인 프리토리아 대학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거리마다 자카란다(Jakaranda) 거목(巨木)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습기 하나 없는 바람은 선선했고, 자카란다 낙엽이 분위기 있게 흩날렸다. 프리토리아 대학 근처의 집들은 전부 저층의 주택으로 세모꼴 지붕을 가졌고, 정원마다 수영장이 있었다. 미국 드라마에서만 보던 한가한 동네 같았다. 거리에 벤치도 없고, 행인이 거의 없다는 점만 달랐다.
프리토리아를 중심으로 다녔던 음식점의 음식들은 하나같이 일품이었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 음식보다 훨씬 맛있었다. 향신료가 풍부해 한국인 입맛에 잘맞는 편이라고 한다. 한국의 1/3 가격이면 커다란 스테이크도 먹을 수 있었다.
남아공 풍광에 취해서 “한 달만 더 있고 싶다”고 현지인들에게 말하면 현지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리와 만났던 현지인들은 전부 한국에 가고 싶어 했다.
숙소 청소부 레베카(36) 씨는 “남아공이 너무 좋다”고 말하는 기자에게 “남아공에서 흑인으로 태어났다면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10대 때부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다는 시파스 시오타우(28) 씨는 숙소의 경비다. 그는 매일 저녁 8시부터 동이 트는 새벽 6시까지 뜬 눈으로 숙소를 지켰다. 그의 말이다.
“20대에 경비원을 하는 사람이 한국에도 있습니까? 지금 이 먼 나라까지 여행하는 당신과 경비원인 저를 보세요. 월드컵 때 TV로 한국의 도시를 봤는데, 저는 한국이 더 아름다운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돈을 더 벌면 한국으로 가서 사는 게 꿈입니다.”
실제 한국에 사는 남아공 교민 수는 1000여 명 정도로 파악되지만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한다.
장학금 지키려 필사적으로 연습하는 태권도 장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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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녀석 강한데?” TPC 조정환 단원이 이노센트 씨의 발차기를 받아주고 있다. |
그렇게 시오타우 씨는 태권도 강습에 참여하게 됐다. 조정현 사범과 단원들이 함께한 태권도 강습은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 늦은 날은 8시까지 프리토리아 대학 스포츠센터와 츠와니 기술 대학(Tshwane University of Technology) 운동장에서 진행됐다. 강습 첫날, 프리토리아 대학 스포츠센터의 화려하고 넓은 농구장, 기계체조장을 지나 꼬불꼬불한 계단을 내려갔다.
“돌려차기!” “아자-ㅅ!(A-JA)”
어색한 발음이지만 익숙한 기합소리가 들려왔다. 지하공간을 개조한 10평(33.05㎡) 남짓한 도장, 4명의 흑인 선수들이 쭉쭉 뻗은 다리로 발차기 연습 중이었다. 남아공 태권도 장학생들이었다. 목이 다 늘어난 티셔츠 차림, 굳은살이 하얗게 튀어나온 맨발이다. 아디다스 태권도복,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봉사단원들과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남아공의 태권도 장학생들은 남아공 태권도의 대부 조정현 사범이 남아공 곳곳, 주로 흑인밀집지역인 빈민가에서 뽑은 고등학생들이다.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면서 남아공 체육부에서 돈을 지원해 현재 4명의 장학생이 프리토리아에서 매일 5시간 이상씩 수련하고 있다. 이들 중 실력이 좋은 학생은 국가대표가 되고, 그렇지 못한 학생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현재 남아공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는 10명으로, 전부 한국에 가 있다.
조 사범은 “장학금을 지키기 위해 모두 필사적으로 연습하고 있다”며 “그렇지만 다른 친구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하므로 매정해져야 한다”고 했다. 현재 있는 4명의 장학생들은 1년 정도 수련했다. 조 사범의 말이다.
“매일 몇 시간씩 함께 땀을 흘리다 보면 정이 들 대로 드는데, 몇 명은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친구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면 살아갈 모습이 눈에 선해서 시간 흐르는 게 무섭네요….”
태권도는 가난한 흑인들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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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현 사범, 가드 모코보도 남아공 태권도협회장, 조정환, 여진호 단원(왼쪽부터). 가드 모코보도 협회장은 “더 많은 사범이 남아공에 와야 한다”고 했다. |
조정현 사범이 한국식으로 회초리를 들고 소리치자, 태권도 장학생 와디(17)와 꼬뺄라(16)의 몸이 굳어지면서 기합소리가 한결 커졌다.
한국 사람들이 “다른 애들한테 맞고 다니면 안 된다”며 꼬마 시절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혹은 군 입대 후 억지로 태권도에 발을 들이는 것과는 달리, 남아공 선수들에게 태권도는 ‘신분 상승의 사다리’라고 한다.
장학생들의 고향은 위험지역으로 불리는 흑인밀집지역이다. 남아공에는 템비사(Tembisa), 소웨토(Soweto) 등 흑인밀집지역이 있다. 도로 근처에 붙어 있는 이 지역들은 대표적인 우범지대(虞犯地帶)다. 남아공 정부는 이 지역의 정확한 개수와 주거 인구에 대해서조차 밝히지 않았다. 조정현 사범은 이런 밀집지역에 들어가 재능 있는 흑인 청년들을 데려다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곳에선 범죄 피해를 당해도 사실이 보도되지 않는다. 월드컵 기간 동안 한국의 언론사 기자들도 이곳에 들어가 취재를 하려다 방송장비를 빼앗겼다.
5명 중 가장 실력이 좋다는 꼬뺄라는 흑인밀집지역 ‘라마코가’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는 “계속 그곳에 있었더라면 함께 범죄에 가담하거나, 피해자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이다.
“태권도를 못해서 장학금을 못 받게 되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야 하잖아요? 그게 싫어서 이 악물고 연습하고 있습니다.”
꼬뺄라의 꿈은 남아공 출신 최초로 태권도 국제대회 챔피언이 된 ‘던칸 마슬랑구’ 선수처럼 금메달을 따는 것. 꼬뺄라는 이날도 벽을 붙잡고 2800회 발차기 연습을 했다. 정신없이 연습하다가 하나밖에 없는 선수용 도복이 찢어져 난감해 한 적도 있다.
가드 모코보도(60) 남아공 태권도협회장에 따르면 과거에 백인의 전유물이었던 태권도가, 이제는 흑인의 것으로 뒤바뀌었다고 한다. 태권도 수련생 중 90%(1만여 명)가 흑인이고 10%(1000 ~2000여 명)가 백인이다. 모코보도 협회장의 말이다.
“제가 스물두 살, 한창 태권도에 빠져 있을 적에는 태권도장이 백인 지역에 있었습니다. 백인 주인에게 허락 증서를 받고 운동해야 했지요. 오후 7시 이후에는 백인 거주 지역에서 나가야 했어요. 7시 이후에 발견되는 친구들은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태권도를 15년이나 했지만 단이 없다. 백인 사범들이 돈을 많이 내야 승단 시험을 볼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1995년 그가 태권도협회장이 되면서 국기원의 단증 제도가 도입됐고, 부정부패가 많이 사라졌다.
모코보도 협회장은 “태권도가 가난한 흑인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며 “태권도는 하나님이 한국인에게 준 선물이며, 한국인은 그 선물을 남아공에 준 셈”이라고 했다.
흑백 간 빈부 격차 여전
기자는 남아공행(行) 비행기 안에서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전기를 읽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남아공 평화의 상징인 만델라는 흑인인권운동가다. 남아공 내 아파르트헤이트를 없애기 위한 운동을 펼치다가 27년간 복역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된 후에는 백인 포용 정책을 펼쳐 큰 지지를 받았다.
이후 세계 언론들은 흑백갈등이 이제 거의 없고, 흑인 우대 정책으로 인해 백인 빈민가까지 생겨났다고 보도해 왔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youtu be.com)에서 ‘South Africa’라고 검색하면 백인 빈민들에 관한 동영상들이 조회수 상위에 랭크돼 있다. 2007년 8월에는 ‘journeymanpictures’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Poor White-South Africa’(가난한 백인-남아공)의 일부가 게재됐다. 영상은 고급 술집에서 웃고 떠드는 중산층 흑인들의 모습과 교회에서 예배 중인 빈민층 백인들의 모습을 대비시키고 있다. 9월 현재 69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댓글 수는 2만1495건이다.
그러나 기자가 남아공 현장에서 접한 모습은 딴판이었다.
백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프리토리아 시내 주택에는 대부분 전기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몇몇 집은 전기 울타리에 사냥개와 독사가 있으니 절대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문까지 붙여 놨다. 그런 성채 같은 집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문을 열어달라고 하는 걸인, 행상들은 예외 없이 흑인이었다.
우리와 동행했던 23세 백인 여대생은 BMW의 고급 SUV 차량을 가지고 다녔다. 반면 흑인 태권도 사범 아르센(27) 씨는 탈탈거리고 한쪽 문이 고장 난, 15년 된 중고 도요타 차량에 흑인 친구들을 꽉꽉 싣고 다녔다.
정부의 인종차별 정책이 공식적으로 사라진 남아공. 짧은 기간이었지만, 백인과 흑인 간 ‘인종 구분’은 너무도 확연했다. 능력의 문제인가, 정책의 문제인가, 문화의 문제인가. 아니면 부의 세습 때문인가. 불가능하리라던 월드컵까지 훌륭히 치러낸 남아공이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여 답답했다.⊙














































